아래로부터의 포스트식민주의 우리 시대의 주변 횡단 총서 1
로버트 J. C. 영 지음, 김용규 옮김 / 현암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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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많이 가는 도서였다. 늘 책을 읽는 분야가 한정적인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지냈는데, 인문/사회 관련 도서를 더 많이 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이 앞서던 차에 작년부터 자음과 모음에서 나오는 하이브리드 총서 시리즈를 한두권씩 읽기 시작했었다. 나름 다양한 분야의, 잘 접해보지 못했던 내용의 도서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었는데, 이번엔 또 자모의 책만 열심히 파고드는 것이 분야는 둘째치고 출판사의 다양성이 심히 부족하구나 싶었다. 그런데 마침 현암사에서 새로 기획한 '우리시대의 주변/횡단 총서' 시리즈를 알게 되었다. 표지부터 다소 딱딱한 감이 없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 내용은 생각 외로 재미있었다. 다른 시리즈 들도 천천히 기쁘게 만나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아 기대된다.

 

포스트 식민주의에 대한 담론을 다룬 이 책은 우리가 우리 사회와 현대 사회의 흐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그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어째서 우리는 서구화된 모델을 세련되고 합리적인 것이라 받아들이는가. 예를들면 분홍은 촌스럽고 핑크는 세련되었다는 감각처럼. 혹은 히잡을 둘러쓴 여자는 자신의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는 것이라 딱하게 여기는 생각같이. 다국적 기업이 소비자를 기만하고 제 몸 부풀리기에 열중하는 것이 그저 자유경쟁체제 아래서의 당연한 결과인양 받아들이는 일이. 그런 구분을 두는 근간에는 어떤 사고가 작용되고 있는가 생각해 볼 계기를 주는 책이었다. 자립해서 섰다고 생각해왔는데, 사실은 종속되어 있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비서양국가의 현실을 깨우치며 읽은 기분이다.

 

"흔히 두 가지 종류의 백인이 있다고 얘기되어 왔다. 주변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이 백인이 아닌 상황에는 처해본 적이 없는 백인과 그 방에서 자신만이 유일하게 백인인 경우를 경험한 백인이 그것이다. 그 순간 그들은 아마 처음으로 그들 사회의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은유적으로 말해, 서양 바깥에 있는 세계의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경험이 실질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즉 소수 집단 출신이 된다는 것, 항상 주변부에 있는 사람으로서 산다는 것, 결코 규범적인 자격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 즉 발언할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서문에서 가장 흥미롭게 생각된 부분이었다. 한국에 온지 몇년이 다 되어가도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외국인을 만나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은 영어만을 사용하며 한국에서 살아가는데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레 영어로 말을 하고, 한국인들은 그들의 영어를 알아듣고 그것에 답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모두 얻을 수 있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가 영어권 혹은 백인이 사는 나라에 가서 얼마간 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 나라의 말을 못한다는 것이 불편하거나 부끄러운 일로 다가오지 않을까? 어쩌면 생활 자체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좀 더 비약적인 경우로, 백인이 아닌 외국인들이 한국에 온지 몇년이나 지났는데도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면. 그 경우에도 주변인들은 그들이 한국말을 배우길 종용하지 않을까.

 

일차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우리가 당연시 했던 작은 부분들이 어떤 면에서는 얼마나 서구에 맞춰진 편협하거나 강제적인 잣대에서 비롯되었는가 였다. 서양인들이 비서양을 바라보는 자기 중심적인 시각에 비서양인 우리들도 물들어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구분, 외국인 중에서도 백인과 유색인종에 대한 구분이 분명히 존재하는 사회에서 그런 구분의 기준 역시 백인이 만들어놓은 기준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유색인종이면서 동시에 같은 아시아 계열의 타 민족을 무시하는 행태는 천박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유럽인들에게 베일은 동양의 에로틱한 신비를 상징하곤 했다. 무슬림들에게 베일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냈다. 오늘날 베일의 의미는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많은 서양인들에게 베일은 여성을 억압하고 예속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드는 가부장적 이슬람 사회의 상징이다. 다른 한편 이슬람 사회나 비이슬람 사회의 많은 무슬림 여성들 사이에서 히잡과 같은 베일은 문화적.종교적 정체성을 상징해왔고, 여성들을 점차 스스로의 선택의 문제로 그것을 착용해왔다. 그 결과 베일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 널리 착용되고 있다. 오늘날 당신이 누구냐에 따라 베일은 통제냐 도전이냐, 억압이냐 자율이냐, 가부장제냐 비서양의 공동체적 가치냐를 상징한다."

 

또 하나, 표지에서도 그렇듯이 눈만을 내어놓은 히잡을 쓴 여인이 우리를 직시하고 있다. 자신을 두고 어떤 선입견이나 설명을 거부하는 듯한 확고한 눈동자가 표지에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상징적인지- 사실 표지를 본 순간 이 책이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 그녀를 둘러 싼 우리의 시선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도 쉽게 떠오른다. 히잡을 갑갑한 멍에로만 떠올렸으나, 그 것이 종교적이고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간과했다. 억압을 해방시켜준다는 시각이 또 다른 억압으로 존재한다는 것, 타자의 입장에서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그들을 이해하여 구해낼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나와 다름에 대해 편협하고 폭력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이 책을 마주했을때 - 제목이나 표지의 색감마저 - 다소 어렵거나 재미없게 보여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좀 개선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데, 사실 보는 것과는 다른 면이 많은 책이다. 오히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접근하고 있고, 무엇보다 번역이 좋았던 것 같다. 이책이 쉽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을 많이하고 읽어서 그보다 부담이 덜해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는데, 문장이 꼬여지거나 어색하게 번역된 부분이 적고 명료하게 의미를 전달하여 읽기 편했다. 인문/사회 서적에 관심은 있는데 뭘 읽어야 좋을지 모르겠거나, 쌓아놓은 배경지식이 많지 않아 고민되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다른 총서 시리즈들도 기대되는 첫 단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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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욤비 -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
욤비 토나.박진숙 지음 / 이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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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의 책 읽기는 계속되고 있다. 광범위하고 방대하진 않지만, 근근히 이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얼마 전에 난민법이 개정된다는 뉴스와 함께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본 적이 있다. 난민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한 다른 나라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우려 섞인 의견들이 많았다. 과격한 표현도 있었는데,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 글을 보면서 마찬가지로 난민법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생각을 갖게 되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난민법이니 뭐니 나 자신의 입장을 어느 쪽으로 정하기 이전에 관련된 분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 댓글만으로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입장을 정했다고 생각하고 있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열심히 찾아 공부할 정도의 열의를 가지고 있는 건 또 아니었고. 그러던 차에 '내 이름은 욤비'의 출간 소식과 함께 저자와의 만남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고 해서 책부터 찾아 읽었다.

 

 

'내 이름은 욤비'는 저자인 욤비 토나씨의 에세이 혹은 자서전과 비슷하다. 그가 고향인 콩고를 떠나 어떻게 대한민국으로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에 대한 여정이 꽤 상세히 적혀있다.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정치적 활동을 이유로 고향을 떠나오게 된 경위와 한국에 도착한 처음 어떤 일을 하게 되었는지,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했던 일들, 그리고 책을 내고 강연을 하게 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책에서 접할 수 있다. 욤비씨는 대체적으로 한국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긍정적인 자세로 이야기하려 한다. 그가 만났던 좋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좋지만, 공장에서 일하며 만났던 사람들, 특히 그를 새끼야'라고 부르던 사장님들이나 인종 차별을 하면서도 그것이 심각한 문제인지 의식조차 못하는 사람들- 한국의 문화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씁쓸하기도 했다.

 

사실, 난민법에 대한 나의 입장을 책을 읽고 욤비씨의 강연을 듣고 나면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좀 더 편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의 입장을 분명하게 하는데 어려움을 준다. 우리의 편함을 조금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글쎄... 난민법과 함께 다문화에 대한 고려가 함께 이루어져야 되는 상황이라면 단순히 인도적 차원에서 편함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입장을 정리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하다. 인터넷 댓글에서 본 것처럼 뗏목을 타고 오는 수천 수백의 난민들을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이게 되는 심각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한국사회의 문제들과 더불어 생각해볼만한 문제인 것 같다.

 

책 자체는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난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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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없는 메타포 11
크리스 린치 지음, 황윤영 옮김 / 메타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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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해할 수 없는 시선으로 시작된다. 마치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 좋지 않은 불운으로 비롯된 엉크러진 상황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끊임없이 호소하는 사람이며 이성적인 인물이다. 나는 평화와 안정된 관계를 지향하며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런 나 자신과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대와 마주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모든 행동과 나를 부정하고 있다. 그녀는 나의 설득을 전혀 들으려하지 않고, 흥분된 감정으로 거부와 분노만을 보인다. 나는, 그리고 나와 그녀는 결코 그런 것들로 이어져있으면 안되는데.

 

이 책은 주인공 키어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나로 표현되는 인물은 독자에게 모든 상황을 전달해주는 인물인 키어이다. 우리는 키어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된다. 키어의 눈, 키어의 귀, 키어의 생각, 키어의 마음. 우리는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인물을 믿고 이야기 속으로 따르게 된다. 낯선 세계에서 우리를 인도하는 안내자가 주는 정보를 우리는 쉽게 받아들이고 그 정보에 의지하여 책의 마지막 장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길을 찾는다. 우리는 키어가 처한 상황을 난감하게 받아들이며, 키어가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가 우리와 함께 마지막 장에서 만족스럽게 책을 덮을 수 있길 기대한다. 우리는, 독자이다.

 

이 책의 구성이 바로 이런 독자의 마음을 잘 파고든 것 같아서 더욱 흥미로웠다. 키어의 눈으로 주변을 볼 수 밖에 없는 독자는 주위의 이야기와 자신이 본-키어의 눈- 것이 다름을 의식한다. 그리고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 키어는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위 사람들을 얼마나 잘 생각하는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왔는지, 어떤 사람처럼 보이길-되길 원하는지. 그의 이야기를 보면서 독자들은 그에게 동조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생긴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그가 성숙한 행동을 하는데 서툴수도 있고 오해가 생겼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가벼운 일들부터. 초대를 받아서 간 축구팀 파티에 불청객인 풋볼팀 친구들이 몰려와 축구 선수들을 괴롭힌 사건. 옷이 벗겨져 풀장에 들어가 있어야 했던 축구선수들이 즐거워했었다'는 키어의 이야기와 그 부분을 빼고 좋지 않았던 부분만 누군가 찍어놓은 비디오 테이프의 내용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부터. 풋볼 시합 중에 일어난 '불운한' 사고로 상대팀의 한 선수가 다시는 풋볼을 할 수 없는 몸이 되버린- 그래서 키어가 킬러로 불리게 된 일까지도 키어는 정당한 시합을 규칙을 지켰기 때문에, 독자들은 진실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독자들의 외부의 시선과 키어 자신의 시선이 서로 교차하며 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의심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키어의 시선이 과연 사실일까? 키어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과연 착한 인물일까? 그리고 키어와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지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점점 가까운 과거로 이야기가 옮겨지기 시작한다. 지지와 키어가 아름다운 밤을 보내게 되는 졸업식날 밤으로. 지지는 남자친구 칼과 작은 다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지지를 좋아하고 있던 키어는 그 작은 틈을 대신하게 되는 행운을 얻는다.

 

키어는 지지를 위로하기 위해 또, 자신의 졸업식에 불참한 두 누나를 직접 만나러가기 위해 누나들이 있는 대학 기숙사를 지지와 함께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잘 조율해오고 있었다 믿었던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그것도 아주 가까운 친누나들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독자들은 분노에 빠진 키어의 모습을 보면서 그를 동정하기 이전에 그가 가진 차갑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은 모두 부정하고 그를 아끼는 마음으로 남기는 작은 칭찬만을 받아들이는 키어의 모습, 절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자기 변명을 하며 주장을 내세우는 키어의 모습.

 

그리고 키어는 우리의 시선이 되어주는 안내자에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날선, 낯선이 인물이 되었다. 키어의 행동에 대해 냉정한 눈으로 이야기하는 누나의 입을 통해 독자들의 불안은 확신이 되어 돌아왔다. 키어는 그가 말하는대로-원하는대로 착한 인물인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그렇게 포장하고 싶은 인물이었을 뿐. 집으로 돌아갈 차를 돌려보낸 키어가 누나들에 대한 분노와 술, 약으로 인해 불안정한 상태가 된 키어가 지지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고 그녀를 캠퍼스 안의 방문객 숙소로 인도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되풀이 되어 온 지지와 키어의 대립이 시작된다.

 

키어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말하지만 지지는 그가 그녀를 강간했다고 말한다. 키어는 그녀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며 그녀를 설득하려 하지만 지지는 그녀의 입장을 고수한다. 시종일관 키어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봤기 때문에 일견 어떤 상황일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지지가 원치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키어의 강간은 확실한 사실이다. 에고에 가득찬 인물이 어떻게 타인의 생각을 짓밟고 자신만을 강조하는지 키어를 통해 볼 수 있다.

 

 

데이트 폭력에 관한 청소년 소설로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이 잘 표현된 작품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키어라는 인물을 통해 차갑고 잔인한 범죄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알 수 있다. 타인과 조율하고 교감할 수 없는 자신만 가득찬 사람, 자신을 우선하기 위해 타인을 냉정한 계산 위에 올려놓아도 무감한 사람이 바로 키어이다. 그런 인물이 꼭 키어와 같은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 곁에 있다면 인간적인 유대가 공감되지 않는 단절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해되지 않는 낯선 상황에 떨어진 키어의 시선에서 '나'를 분리해낸다. 키어의 시선과 나의 시선을 동일시하며 느꼈던 불편함을 정체를 깨닫게 된다. 나는 자기합리화에 빠진, 자기애에 집중하는 이기적이고 유아적인 행동을 일삼는 키어를 객관적인 눈으로 보게 된다. 인물에 대한 파악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장치로 독자의 반응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요소였다. 읽기에는 편하지 않을지 몰라도 재미있는 방향으로 서술된 좋은 책이었다. 조각 퍼즐을, 끊어진 필름을 맞추어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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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289
이수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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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를 고르면서 어딘지 모르게, 사실은 확실하게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 비디오를 보고 있는 고양이에 대한 사실적인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누구라도 그려지지 않을까, 고양이 비디오를 보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이. 하지만, 이 시집은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을 확실하게 그려낸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는, 시집은 그런 성질의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그리고 저 고양이로 시작해서 고양이로 끝나는 시집의 제목이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지 먼저 떠올렸더라면 책장을 펼쳤을때 이런 당혹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 같다. 말랑말랑한 환상에 사로잡혔던 사람에게 주체와 타자와 언어를 넘어선 전위적인 시들이 밀려왔다고. 그것은 말랑하진 않아도 환상적이긴 했다.

 

시집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떠한지, 표제작인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의 전문을 옮겨온다. 이 제목에 매료되어 시집을 고르기도 했기 때문에 가장 기대를 했던 시기도 하고, 표제작은 다른 시보다 각별하게 느껴지는 그런 마음이 있는터라, 단 하나, 이 시만 골라서 옮긴다.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고양이 비디오를 틀어놓고

고양이가 하나 둘 셋

의자에 하나 둘 셋

바닥에 하나 둘 셋

창틀에 하나 둘 셋

 

고양이를 관람하는 고양이들

 

고양이를

관람하는 고양이를

관람하는 고양이들

 

거대한

고양이 인형들

 

모두들 고양이를 추모한다.

고양이 비디오를 틀어놓고

 

모두들 고양이 흉내를 낸다.

 

고양이를 끄고 싶은데

고양이 비디오를 끄고 잠들고 싶은데

비디오는 계속 돌아가고

 

고양이도 계속 돌아가고

 

고양이를 따라

고양이를 소비할 뿐

 

고양이 흉내를 내지는 않고

 

고양이 비디오 앞에

고양이가 하나 둘 셋

 

 

이 시에서 보는 것처럼, 고양이에 대한 경계가 어느 순간 사라진다.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들이, 어느새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를 보는 비디오 속의 고양이처럼 되어졌다가 또 고양이 흉내를 내는 고양이가 아닌 것으로, 또 다시 고양이를 소비하는 비디오가 돌아가는 것으로, 다시 고양이 비디오 앞에 선 고양이로 허물어져서 해쳐졌던 것이 원래의 것으로 돌아오며 끝을 맺는다. 대상이 무한하게 뻗어나가고, 세밀하게 나눠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려지는' 느낌의 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확장되고 압축되어 그리는 이수명의 시들이 읽기에 편하지 않았다. 그의 실험적인 언어들은 유희의 공간을 확장하고 언어들이 스스로의 밖으로 저항하고 해방하도록 도모했으나, 그 범위가 나보다 넓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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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작은 집 창가에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3
유타 바우어 글.그림, 유혜자 옮김 / 북극곰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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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에서 나온 책들을 눈여겨 보게 된다. 몇권 제목을 아는 것은 많지 않지만, 눈에 띄는 동화가 있어서 출판사를 보면 북극곰이었던 경우가 몇 번 있었다. 특히 특유의 색감과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출판사의 취향이랄까, 방향... 정신이 출판물에서도 느껴지는 건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손에 들어온 '숲 속 작은 집 창가에' 표지와 제목에서도 물씬 느껴지는 숲 속 늦가을의 정취. 이런 분위기를 뭐라 딱 꼬집어서 어떤 것이다'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가슴 어느 곳이 꽉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면이 있다.

 

'숲 속 작은 집 창가에' 어떤 일이 있는 걸까?

 

저자 유타 바우어는 독일의 작가이다. 그의 작품인 '할아버지의 천사'는 독일의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단다. 이 책도 아름다운 내용이 담겨 있을 것 같다는 기대.

 

숲 속 작은 집 창가에- 하는 제목을 따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떤 운율이 생기고, 운율이 곧 음률로 바뀌어 우리에게 익숙한 동요 한 소절을 떠올리게 된다. 동화의 내용도 바로 그 동요와 같다. '숲 속 작은 집 창가에- 토끼 한 마리가 뛰어와- 문 두드리며 하는 말-' 하고 불렀던, 바로 그. 바로 그 동요에 모티브를 얻어 그림과 이야기로 재탄생한 동화인 것이다. 3절로 구성되어 있는 동요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토끼가 나오는 절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동요였던 터라, 반갑고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떠오르며 애틋한 느낌도 들었다. 동화책이 훨씬 더 각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전체적으로는 짧은 글귀와 풍부한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뒷편에는 악보와 함께 동요를 부를 수 있도록 가사로 정리하여 적어놓은 것이 있고, 노래부르면서 쉽게 할 수 있는 율동에 대한 그림도 함께 나와있다. 구성도 동화만큼이나 예쁘고 다정한 편. 이런 동요 동화책이 시리즈로 나온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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