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배우는 시간 -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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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를 다닐 때 일이다. 한 수업에서 유언장을 작성을 과제로 내주었던 기억이 난다. 스물을 갓 넘긴 젊은 학생들에게 있어 죽음, 그리고 그를 준비하는 유언장이라는 주제는 아주 낯설고 어려운 것이었다. 약간의 동요가 지나가고, 유언장 작성이라는 과제는 어색한 웃음과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풀기 위한 호기로운 농담으로 덧대어졌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죽음은 대학생들이 가진 젊음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주제이고 그저 글쓰기 과제일 뿐이니, 진지하고 심각하게 무게잡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였다. 어떤 내용을 써서 제출했는지 기억나지 않는걸 보니 대충 글자수를 채웠던 것 같다. 지나온 시간만큼, 그때보다는 더 많은 죽음을 만났고 죽음이란 것이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는 것도 느끼고나니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때는 결혼식 예절이 궁금했는데, 이제는 장례식장 조문 예절이 더 신경쓰일 나이가 됐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도 자신의 노화가 문득문득 신경쓰이고, 병원과 더 가까워지게 되면서, 전보다는 자주 지인이 전하는 부고를 접하게 되면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특히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이라는 표지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예전에는 드라마에서도 집안 웃어른을 집에서 모시다 상을 치르는 장면을 가끔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병원에서 보내드리는 경우가 더 많은 듯 하다(101쪽 통계청 데이터참고). 드라마에서도 의사의 선고로 죽음을 확정짓는 장면을 많이 봐왔기 때문인지, 자신의 노후에 대해 떠올릴 때도 자연스럽게 병원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이 떠오른다. 그런데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이 따로 있다니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가끔 대학병원같은 대형병원을 찾을때면 병원의 규모가 너무나 커서 놀라고, 그 큰 병원에 가득한 환자들 수에 놀라고, 대기시간이 길어서 한 번 더 놀라곤 했다. '세상에 아픈 사람 참 많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앞으로 다가올 노화와 질병들을 떠올리게 된다. '죽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죽음보다 더 나쁜 일들이 일어'난다는 김현아 교수의 말처럼, 사는 동안 삶의 질과 죽음의 질(89) 모두 놓치지 않고 충족 시키기 위해서는 공부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187)', '연명의료계획서(189)', '심폐소생술은 시행하지 말 것에 대한 요청서 [DNR:do not resuscitate](230)'라는 것을 처음 봤다. 막상 지금 나라면 사인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가볍게 생각해봤을때도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자신을 의식하고 당황스러웠다.

 

 책의 초반 내용은 다른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서 두렵기도 하고, 조급한 마음도 들었는데 2장의 '생로병사의 이유를 찾지 마세요' 부분을 읽으면서 복잡하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 이처럼 우리는 병에 항상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무엇을 피하면 그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이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병균이나 독성물질에 의한 몇가지 질환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그 원인이 명확히 밝혀져 있거나,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인과관계가 단순한 질환은 거의 없다.(137) " 는 문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평소에 가볍게 배가 아프거나, 피부에 작은 문제가 생겨도 무엇 때문에 이런 상황이 생겼는지 이유를 찾고, 결론을 내리려고 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트러블에서 원인을 찾던 습관을 유지한다면 나중에 큰 병에 걸렸을 때 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생각됐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들은 과오로 비롯된 벌칙같은게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중요하겠다.  

 

 확실히 무거운 내용들이 많다.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지겠지만, 중년의 나이쯤 접어들게 되면 피하지 않고 한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은 책이었다. 많은 사례들을 대면하기가 괴롭고,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직접적인 조언이 궁금하다면, 4장의 좋은 죽음이란(299)의 내용만이라도 읽어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가 대비해야 되는 마지막의 형태도 달라졌고, 또 달라지게 될 것임을 새삼 느꼈다. 우리 삶을 더 충실하게 살기 위해, 가끔은 가장 어두운 마지막 과정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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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
제임스 리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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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주제로 책을 썼구나 싶었다. 성매매여성들의 삶에 대한 실화소설이라고 해서 다소 어두운 내용들이 나올 것을 예상하며 읽었다. 내용은 예상보다 더욱 적나라하고 가혹하다. 아무래도 소설이 지금으로부터 약 20년전인 2000년과 2002년의 군산에서 일어난 성매매업소 화재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지금의 실태와 다른 면도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2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간의 흐름을 감안해서 읽어야 할 것이다.

 

 '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은 소희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그녀가 몸담고 있는 군산 개봉동 성매매업소, 티켓다방, 호주 원정 성매매 등의 현실을 고발한다. 가감없는 적나라한 문장들이 보여주는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읽고 있다보면 경찰, 공권력, 지역사회 등과 뿌리깊게 유착된 포주들을 통한 사회문제 빚과 폭력, 감금에 시달리는 성매매여성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저자가 소설을 통해 내고자했던 목소리가 아주 분명했지만, 사회의 가장 어둡고 예민한 문제이다보니 관련 사건을 찾아보는 일도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되었다.

 

 책에서는 성매매 여성들의 사연도 조금씩 풀어냈는데 하나같이 어렵고 막막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수천만원의 빚으로 그녀들의 삶을 옥죄고 있는 업소의 운영방식 또한 가혹했다. 정신병을 앓는 여성, 병에 걸려 갈수록 피폐해지고 괴로워하는 모습, 도망쳐서도 일을 구할 수 없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 업소를 관리하는 주인 아주머니와 깡패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는 암담한 상황이 계속된다. 그럼에도 일기를 쓰며 앞으로 삶을 꿈꾸고, 이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탈출을 시도하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대기도 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잘 접하지 않았던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소설 속의 내용들이 머리속에 강렬하게 머물렀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군산에 가면 개복동 화재 참사에 대한 전시를 진행하고, 추모 상징 조형물을 만드는 등 해당 사건에 대한 자료를 최근까지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책을 읽고 나니 나중에 군산을 찾는다면 개복동 '예술거리'를 한번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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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큼은 내 편이 되어주기로 했다
권민창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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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만큼은 내 편이 되어주기로 했다' 제목이 참 괜찮다. 얼마 전에 가수 비가 "무조건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주나? 치열한 시대에 나라도 나를 사랑해야지" 라고 한 말이 인상깊게 남았다. 생각해보면 참 흔한 말인데, 이 말을 한동안 조리돌림에 가까운 밈으로 다뤄졌던 비가 했다는 것이 큰 가산점이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노력해서 세상에 내놓은 결과물들을 가지고 시무20조나, 엄복동같은 단위를 만들어내며 비난하고, 우스갯거리로 소모하는 상황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이겨내어 성공하기까지의 마음가짐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비의 태도와 저자 권민창의 에세이 '오늘만큼은 내 편이 되어주기로 했다'의 제목이 주는 메세지는 요즘 세상을 살아내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한동안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자리를 잡고 있던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가 떠올랐다. 침체된 출판시장에서 역주행 신화를 쓰며 15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는 일상에서 겪고 들은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 전하는 형식의 에세이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얻은만큼 권민창의 '오늘만큼은 내 편이 되어주기로 했다' 역시 비슷한 울림을 전하는 책이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언어의 온도'를 좋게 읽었거나, 이런 에세이 류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이 책도 마음에 들 것이다.

 

 가장 인상깊었던 꼭지를 몇 개 소개하자면, '사소한 표현의 차이가 만드는 변화(58)'에서 소개한 "토니 로빈스의 변형어휘(60)"라는 개념이었다. 요즘은 혐오표현이 너무 빈번하고 적나라하게 쓰인다. 사소한 불만이나 차이에도 극혐이란 말이나 벌레를 뜻하는 말을 붙여 쓴다. 말이 공격적이고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일에 익숙해지고 무감해지면 생각과 행동도 똑같이 과격해져갈 것이란 우려를 평소에도 했던 탓에, 이 내용에서 소개된 글과 '변형어휘'에 대한 개념을 읽으며 공감되는 점이 많았다. 새롭게 보이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표현들이 처음엔 유행어라서, 혹은 재밌어서 사용하게 되지만 이내 어휘를 빈곤하게 만들고 감정을 과잉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아 조심하고 순화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잘 아는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나 '나이브스 아웃', '사랑과 영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등을 잘 녹아내려 쓴 글이나, '여덟 단어', '모든 것이 되는 법', '미움받을 용기', '열두 발자국' 같은 책들을 함께 소개한 글을 보면 여름이 지나는 길고 무더운 시간동안 이 책과 영화들도 하나씩 함께 감상하고 싶어진다. 책 속의 책/과 영화 챌린지처럼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다. 요즘처럼 부정이 만연하고 쿨함이 강조되는 때에, 긍정과 배려를 강조하는 내용의 글을 읽다보면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잠들기 전 꺼내 먹는 예쁜 말 처방전"이란 수식이 이해가 되는 책이었다. 더위와 장마에 지친 몸과 마음을 책으로 위로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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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 - 우리가 지나쳐 온 무의식적 편견들
돌리 추그 지음, 홍선영 옮김 / 든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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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가장 관심을 끌었던 책의 제목이 '선량한 차별주의자'였다. 선량한, 이란 말과 차별주의자라는 말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그 둘이 붙어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했다. 요즘은 워낙 다양성을 존중해야함이 강조되고 있다보니, 혹시 내가 어떤 다수의 시선에서 무의식적인 차별을 하고,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지 매번 조심해야 한다. 돌리 추그의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도 우리가 지나쳐 온 무의식적 편견들에 대한 내용이다. 최근의 관심사가 반영된 내용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사람이 자기 위협을 얼마나 순식간에, 매끄럽게 처리하는지는 아무리 과장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의 몸은 박테리아와 싸우게 되어 있고 마음은 자기 위협과 싸우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악한 일을 해도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모두, 심지어 '선한 사람들'조차 악행을 저지른다. 다른 사람의 악행은 금세 눈에 띄지만 자기 자신의 악행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 법이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이 완벽히 윤리적이고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며 완벽히 '선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56) "

 

 디즈니에서 '인어공주'를 실사화 하면서 인어공주 역할로 흑인 배우를 캐스팅 한 일은 꽤 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 전부터 넷플릭스는 자체 컨텐츠를 제작할 때 흑인 배우의 비중을 늘리고 있었고, 많은 작품들에 성소수자 캐릭터들이 들어갔다. 이런 움직임과 더불어 페미니즘이 중요한 문제로 불거지고, 채식주의자를 위한 급식이 요구되고, 흑인인권운동이 큰 규모로 퍼져나갔다. 사회는 분명한 움직임으로 변하고 있는데 우리의 의식은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우리가 차별과 편견을 직접적으로 행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지금 변화되고 있는 사회의식의 기준에 적합한 판정을 받을 수 있을까?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면면을 따져보면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했다.

 

 "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나는 선한 사람'이라는 살얼음판을 걷는다. 행여나 그릇된 말이나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을까 끊임없이 노심초사한다.(97) " 나 역시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책의 내용이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누구나 자신을 악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고, 편견이 있는 사람이라는 수식을 달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 모든 변화와 변화에 대한 지지는 분명 이전과는 다름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은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 느낌이 자신이 혹시 그릇된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꾸만 점검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공감도 하고 자신의 입장과 비교해보며 읽어보게도 됐다.

 

 " 연민은 원 안에 있는 누군가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이다. 그 사람의 처지를 안타까워는 하지만 그가 느끼는 감정을 애써 느끼려 하지는 않는다. 멀리 떨어져 바라보면서 그들의 감정을 자신의 것과 타자화한다. 선의에서 비롯된 연민도 상대보다는 자신을 위한다. 자기 감정을 중심에 두는 것이다. ...중략... 연민에는 또 다른 희생이 따른다. 누군가를 안타까워할 때 우리는 무심코 자신을 더 높은 위치에 올려 놓는다. 앞서 살펴보았듯 권력감은 쉽게 찾아온다. 믿는 사람이 이런 권력감을 느끼면 의도치 않은 인식과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278)"

 

편견과 맞서고 자신의 사고를 확장시키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할지 많은 생각을 했다. 보통은, 나와 다른 사람, 혹은 소수의 입장에 있는 사람에 대해 공감보다는 연민의 마음으로 다가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조차도 권력감을 느끼는 폭력적 시선이었을수도 있음을 꼬집는 부분을 읽고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책을 읽고나서 제목을 다시 보니 이 조차도 배려 없음이 느껴지는 어조다. 상처 줄 생각이 없었다는 것,도 사실은 나는 상대방의 입장과 나와 다름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반증이 되지 않을까. 기대 이상으로 깊이있게 다가온 책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 한번쯤 읽고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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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러 수용소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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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모 연예인이 선처없는 악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렇게 쓰니 대단히 큰 사건을 말하는 것 같은데, 악플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일상적이다시피 접하고 있다. 악플을 고소한다고 하면 그 사실만으로 또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현실, 도리어 '당신이 고소해서 사람이 죽는다'는 협박을 보내오는 현실을 오늘도 봤다. 인터넷이 널리 퍼진 이후로 익명에 기댄 악의적인 글들은 끊이지 않고 생겨나고 있다. 댓글창 안에서 뿐만 아니라 악의는 더 다양하고 은밀한 모습으로 변해 퍼져나가고 있다. 악의와 혐오가 넘쳐나는 글들을 보게 되는 때면 너무나 비현실적인 이 '악플러 수용소'의 내용이 차라리 현실화되면 어떨까 싶어진다. 아마 저자도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책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호흡인데, 내용은 꽤 강렬하다. "여기에 들어온 자여, 희망은 버려라!"라는 문구에 걸맞게 악플러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은 혹독한 경험을 하게 된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어느 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을 잃은 열한명의 사람들이 눈을 뜬 곳은 악플러 수용소였다. 하루아침에 수용소에 입소하게 된 열한명의 사람들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해한다. 당황도 잠시 수감자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인권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잔혹한 방식으로 깨닫는다. 100일간의 수감기간 안에 퇴소하기 위해서는 투표를 거쳐 레드볼을 받아야만 한다는 규칙을 전달받고 수용소 생활이 시작된다.

 

 다른 범죄자들도 무사히 선처받는 한국 사회에서 악플을 이렇게 수위높게 처벌하고, 악플과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심각하게 다룰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80년대에 터미네이터 상상하는 막연한 미래 전쟁 느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죽는 장면이 나오는 다소 잔혹한 내용의 책이지만 현실도 그 못지 않게 험난하니, 악플 문제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독자라면 정의구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읽게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악플러들이 정말 저렇게 금방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정신적으로 쉽게 무너질까 싶은 의문도 남았다. 그정도 멘탈을 가진 사람들이면 더 뻔뻔하게 행동하지 않을까?

 

  악플러를 바퀴벌레에 비유한 "바퀴벌레는 완전박멸은 불가능하지만 개체수를 줄일 수 있어(38)" 책 속의 문장이 인상적이다. 해충박멸업체의 피드백을 받은 말일까. 정말 인류는 바퀴벌레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단 말인가... 솔직한 생각으로는 바퀴벌레가 인간보다도 오랫동안, 그리고 더 오래도록 지구에 존재할 생명체로 알려진만큼, 악플러들을 혹은 의도를 가지고 잘못된 자료를 올리거나 퍼나르는 사람들의 행위를 과연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바퀴벌레가 살충제에 내성을 가지듯이 기술이 더 발전하면 할수록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한발 빠르게 헛점과 구멍을 찾아낸다.

 

 이 책을 읽거나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혹시 한번이라도 악플을 써본 적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악플을 쓴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면 잠시라도 좀 마음이 찔릴까? 혹은 우리나라에선 이럴 일이 없지, 하고 가볍게 웃어넘길까? 소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좋고, 전개나 인물에 대한 접근 방식이 시원시원해서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웹툰으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드는 내용이었다. 부디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전에도 앞으로도 악플을 쓰는 일이 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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