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뒤에서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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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읽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책은 한참동안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실에 있는 탁자 한켠에 놓아둔 읽을 책들의 목록 안에서 몇번이나 순서가 밀렸다. 쌓아뒀던 책들도 지금은 거의 다 사라지고 몇권 남지 않았는데, 다른 책을 먼저 읽었다가 몇장 읽지 않고 그만두고 오늘 그냥 갑자기 '문 뒤에서'를 먼저 집어들었다. 아무래도 집중이 안될 것 같아 조금 읽다가 재미없으면 정말 그만 둬야지 그런 마음이었다. 정말 솔직하게.

 

 원어로 책을 읽어도 그럴까. 번역되어 나온 책을 보면 가끔 특유의 꾸밈, 묘사가 좀 부담스럽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 그는 키가 크고 말랐으며, 벌써 젊은이였고, 젊은이처럼 비쿠냐 원단의 긴 회색 바지에 다른 옷에 비해 색조가 무거운 직물 재킷을 입고, 호주머니에 열 개비짜리 마케도니아 담뱃갑을 넣고, 목에는 실크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27)" 같은 어딘지 어색한 문장이 그렇다. 주인공이 사춘기이고 예민한 성격이기 때문에 초반에는 그 신경질적임을 견디는 것도 어려웠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보니 이미 책의 중반에 와 있고 그 다음 내용이 어떻게 될지 계속해서 궁금해졌다. 분량 자체가 160쪽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책이긴 하지만 초반의 어수선함, 바탕 다지기같은 작업이 지나고 나면 확 재미있어져서 순식간에 읽게 된다. 끝까지 관통하는 '문 뒤에서'라는 제목의 의미와 함께 내용의 여운도 깊게 남는다. 성석제의 '첫사랑'을 보는 것 같기도하고, 이 또래에 흔히 있을 법한 현실감을 잘 살렸다.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한 막장 소재들도 넘쳐나는 와중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화인처럼 찍힌 그날'이라는 문구는 좀 애매했다. 이런 일이 얼마나 흔하냐면, 싸이시절에도 그랬지만 아직도 SNS 저격글이란 이름으로 이런 상황에 대한 경고문구를 만들어놓은 사진들이 10대들에게는 유행처럼 돌아다닌단다. '너 호박씨 까는거 내가 모를 줄 알았지' 어쩌고 하는 내용으로. 친군줄 알았는데 내 뒷 얘기하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는 상처가 흔하긴하지만 어쨌든 당하면 속은 상할 사건이긴 하겠다.

 

 솔직히 말하면 숙제를 같이 하는 그룹이니 초대니 하는 말들 때문에, 주인공이 게이인가, 혹은 저 동네 애들은 저렇게 좀 끈끈하게 친구관계를 만드는가 싶은 의문이 들었었다. 오텔로라는 친구에게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냐고 떠보듯 물어보는 것도, 또 그의 덩치에 의지했다는 표현도 그랬다. 풀가가 카톨리카들 앞에서 말했을 때도 그렇고. 애초에 둘이 숙제를 핑계로 딴짓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저게 진짜로 그렇게 된다고?' 싶은 도시전설의 발견이었다. 남자들의 우정이 원래 그런 것이란 말이야......? '첫사랑'의 서양 버전 같다.

 

 카톨리카의 행동도 이해못할 것이 상처주고 싶었던 걸까, 진짜 갑자기 오지랖을 부리고 싶었던 걸까. 갑자기 왜? 둔한 중년의 감성이 기민하게 눈치채지 못한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무슨 심리들인 것이지 대체. 사춘기처럼 예민하던 시절에는 이런 글을 읽으면 인과관계가 보일 듯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성질급한 한국인이 되어서 혹은 좀 무덤덤한 둔치가 되어서 그런지 '왜 저렇게 행동하지'싶은 의문만 남는다. 누가 설명해줬음 좋겠다. 어쨌든 짧고 재밌다. 무슨 내용일지 몰라 미뤄뒀었는데 진작에 후딱 읽어치울걸, 싶었다. 조르조 바사니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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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니처 Signature -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는 나만의 경쟁력
이항심 지음 / 다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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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그니처'에 대해 표면적인 예상만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요즘 자신에 대해 하던 고민과 비슷한 맥락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고여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에는 그런 성향과는 상관없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 움직일 수 있었는데, 나이를 먹고부턴 잠깐 사이에도 확 뒤쳐진 것을 느끼게 되었다. 세상 변하는 것을 느끼며 '요즘은 저런단 말이야?' 같은 생각만 하고 있다가 어느새 '너무 뒤쳐졌나?' 할 때가 종종 생겼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래의 전망은 밝지 않은데, 이 불확실함 속에서 살아나가려면 고여있음에서 벗어나 나도 좀 달라져야 되는게 아닐까싶었다.

 

 " 생각보다 '인사 건네기', '자기소개 하기'. '이메일 보내기'와 같이 아주 작은 행동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기회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머릿속으로 백날 생각해도, 아주 작은 행동 하나로 기회를 만들어낼 가능성의 문을 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84) " SNS를 활발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 싶어진다. 자신에 대한 표출도 잘하고, 수많은 낯선 사람들을 향해 선뜻 말을 건넨다. 선별해서 보일 수 있는 가장 밝고 좋은 모습일뿐이라 하더라도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을 들이는 것을 이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됐다. 실제로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이 생겨나는 것을 보기도 했으니까.

 

 책에 나온 지아 지앙의 '100일간의 거절을 통해 배운 것들'이라는 테드 강연(93)은 매우 유명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 수 있는 도전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먼저 했는데, 지금은 저 정도의 패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뭘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가급적이면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한번쯤 물어볼 수도 있는 요구사항을 그냥 참고 넘기고, 사과의 말을 불필요하게 많이 쓰고 있었다. 최근에 가게에서 간단한 요청을 하려다 민폐가 되면 어쩌지하고 불편을 감수하려는데 일행이 '물어만 보는게 뭐 어때' 하고 얘기하자 아주 쉽게 일이 해결된 적이 있었다. 그런 가벼운 마음도 필요하다고 머리속에 기억해둬 보았다.

 

 30대 이상인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누군가 칭찬을 하면 '아니에요,'하고 부정하는 것을 지적하는 글을 본적이 있다. '감사합니다'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를 부정하고 낮추면서 겸손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런 편이었는데, 몇년전 90년대생 신입 직원이 들어오면서 칭찬을 받으면 '감사합니다'라고 받는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운 한편, 굳이 나도 상대방의 호의에 나를 낮추는 말로 대답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져 조금씩 마음을 바꾸게 되는 일이 있었다. 4장에서 나오는 '반사된 효능감'(121)부분을 읽다보니 신뢰를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연습(129)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칭찬도 하고 응원하고 하고 또 그걸 기꺼이 받아들이고.

 

 책에서 제시하는 기준들이 내가 알고 있던 것들과는 달라져있었다. 노하우가 런하우로, 실패라는 리스크가 성장 원동력으로, 회사에서의 존재감이 무에서 유로. 일터에서는 특히 회의시간에는 가급적 존재감없이 마치 의자나 책상이 된 것처럼 물아일체되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했는데 회사에서 존재감을 표출하는 것에 대한 강조를 보니 어색했다. 다른 내용들은 많이 수긍하며 읽으려 노력했는데,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는 산을 만난 느낌이었다. 워라밸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선을 던지는 내용도(237) 아직 강제적으로라도 도달해야 할 밸런스의 근처에 가지도 못했는데 그 뒤의 문제부터 너무 빨리 끌어온 것은 아닐까 싶었다.

 

 또 하나, 직감(69)을 따르라는 내용은 좀 부담스러웠다. 몰입해서 읽다가 갑자기 너무 불확실한 키워드가 등장해서 흐름이 끊겼다. 직감을 이유로 좀 더 편한 길로 가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핑계를 댈수도 있다. 차라리 어떤 기준을 세우도록 조언해줬다면 좋았을 것 같다. 책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릿, 살롱문화에 대해서도 나오고 공간의 변화(211)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단순히 자기 자신을 계발하라는 내용이 아니라 좀 더 넓혀서 시대의 변화를 함께 짚어낸다. 그런 다양함이 같은 내용만 반복하지 않도록 해줘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시그니처'에서 제시한 흐름에 맞춰 변화하는 자세들을 많이 수용하면서 읽으려고 했는데도 열정이 지나치게 담긴 내용이라 읽으면서 때로 마음이 부담스러워졌다. 몇개의 키워드만 잡아서 노력해도 충분히 좋은 시그니처를 가진 인재가 될 수 있을 내용이니 잘 걸러서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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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러브 소설Q
조우리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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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라스트 러브'의 출간 소식을 듣고 친구에게 먼저 알렸다. 1세대 아이돌 팬클럽 출신인 작가가 쓴 소설이 나왔대, 하면서. 부정확한 얘기긴 한데, 그렇게만 전했어도 친구는 이미 '라스트 러브'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보다도 훨씬 빨리 이 책을 읽었다. 얘기를 나누고 1주일, 2주일이었던가 한달이 채 되지 않아서 읽었다고 메세지를 보내왔었다. 그래서 그만 아차, 하고 다음에 만나기 전까지 나도 읽어봐야지 하고는 이제서야 읽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읽고나서 친구를 만나면 말 할 꺼리가 생기겠다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솔직히 내가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내용이라 어정쩡해졌다. 응칠같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전체관람가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술영화제 출품작이었던 그런 느낌이다. 

 

 누군가의 팬이 되어본 적이 없다. 누구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좋아지지 않았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건, 그냥 텔레비전에 나오면 잠시 채널을 고정해두는 정도, 인터넷을 하다 이름이 나오면 사진 한 번을 보는 정도, 얼마간 기억해두다 금새 잊어버리고 마는 작은 정보를 눈으로 훑어보는 정도였다. 팬클럽에 가입하고 방송국에 찾아가고 앨범이나 사진, 뭐 굳즈같은 것을 사고 댓글을 달고 n차를 찍고 그런 열성적인 일을 해본적이 없다. 연예인이라서만이 아니라 사실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 방식이 그렇지 못한 편에 가깝다. 주변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스스로 느끼기에는 누굴 그렇게 많이 좋아해본 적이 있는가 싶다.

 

 그래서 책 곳곳에서 피어나는 연예인과 팬의 관계성 같은 걸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고 읽었다. 누군가의 팬이었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책이 더 각별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럼 이 책이 훨씬 더 재밌거나 혹은 읽으면서 떠올릴 것이 너무나도 많아 풍부하게 즐길 수 있었을까 싶었다. 그럼 그건 참 부럽겠다. 누굴 좋아해서 인생이 어떻게 더 풍부해졌고, 힘든 시기를 이겨냈고, 현생을 갈아서 쏟아부을 목표가 있고, 어쩔 땐 눈물의 탈덕도 해보고 이런 것들도 사실 부럽다. 새우젓이고 모래알이고 연예인만 빛나고 팬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느낄때가 있겠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나에게는 그게 마치 환하게 빛나면서 타오르는 에너지로 보인다.

 

 재밌는 건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최애가 생긴다는 점이다. 다인이 분량이 가장 많은 것 같아서 다인이를 눈으로 쫓다가, 지유가 제일 예쁘대서 지유에게 관심이 갔다가 지유와 재키는 제로캐럿에서 탈퇴해버렸으니 도로 다인으로 정했다. 매번 가장 좋은 파트를 가져갔다고 했으니 무대에서도 제일 눈에 띄었겠지, 연기도 하고 재계약도 하니까 하나만 터지면 앞으로 더 잘되겠지 싶었다. 다른 사람들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까, 그럼 다들 누구를 최애로 여기면서 책을 읽었을까 싶었다. 아이돌은 많이 나오니까 언젠가 누가 제로캐럿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하지 않을까, 그럼 작가가 성덕이 되는걸까, 제로캐럿이 성덕이 되는걸까.

 

 생각보다 덤덤히 읽혔는데, 파인캐럿의 내용이 가장 재밌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비슷한 글을 가장 많이 봐서 익숙하기도 하고 해서, 그냥 그랬다. 이제 친구를 만나면 '라스트 러브' 얘기를 꺼낼 수 있게 됐다. 그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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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수업 -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9가지 질문
김헌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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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하는 삶'이라는 말을 보고 떠올린 것은 오래된 기억이었다. 청소년기 정도였을까, 어떤 책에서 항상 의문을 갖고 질문하는 아이가 성공한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대체로 그런다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그렇구나 넘기는 편이어서 딱히 이건 왜 이런거냐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던터라 그 책을 읽고는 또, '아, 그럼 나는 성공하기는 어렵겠구나'하고 받아들였던 기억이 있다. 물론 상처도 좀 받고, 아직도 기억하는 걸 보면 앙심도 좀 품었다. 도무지 하늘이 왜 파란지 궁금하지도 않고,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냥 하늘은 예쁘고 닭도 계란도 맛있었다. 그래서 정말로 성공하지는 못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으니 지금와서는 조금 분하기는 해도 저자 나름의 어떤 통찰이 있었나보구나 짐작해볼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세월의 때를 타고 보니 예전에는 없던 의문이 조금씩 생겼다. 일을 하면서는 저 사람은 왜 일을 저렇게 하는가 싶기도 하고, 회사의 업무 체계는 누가 뭐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서 일개미를 고문하는가 분노에 가까운 의문도 품었다. 뉴스로 인면수심의 범죄 소식을 들을 때면 세상은 왜 이 모양일까, 귀신은 뭘하길래 바빠서 저런 사람은 안 잡아가나 궁금했다. 그러다 나이를 조금 더 먹고나니 지금껏 그저 남들 하는만큼은 한다고 살아왔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도 궁금해졌다. 이런 질문들은 사실 딱히 답은 없고 생각할수록 마음만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리 생산적이지 않아 생각하다가도 금방 털어내고 만다. 좋은 질문은 뭘까. 나는 정말 질문을 못하는, 그래서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인가. 그럼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천년의 수업'을 통해 어떤 질문이 성공하는 좋은 질문일까 접해보고 싶었다.

 

 책의 초반에 꿈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꿈을 가졌던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아주 오랫동안 꿈에 대해서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고, 또 나이들고서는 꿈이야 어릴 적 이야기지 싶은 마음에 나이듦을 이유로 꿈을 가질 필요조차 없다고 여겼다. 사실 지금도 꿈이 뭐냐고 물어오면 변변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예전에는 꿈을 직업으로 생각했다. 초등학교 어린이날 작문 주제로도, 중고등학교 진로조사용지의 빈칸을 채우면서도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그 직업이 주는 이미지만 가져다가 심지어 제대로 된 방향성도 잡지 않고 그게 꿈이라고 말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꿈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책에 나오는 대기업에 취업한 여자분(50)의 이야기가 영 남일 같지 않은건 그 때문이다. 직업이 꿈이 되면, 여러 이유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꿈도 같이 잃게 되는걸까? 그게 꿈이 맞을까?

 

 이때 나온 이야기들이 나중에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나 결핍과 욕망까지도 연결되는데 어쩐지 생각해보니 씁쓸했다. 꿈꾸는 것은 결국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이고, 욕망은 결핍을 느낄 때 생기는 것(250)이라 하니, '(꿈은) 결핍에서 온다(47)'는 양면성이 보였다. 저자는 이런 결핍, 고통, 열악함 같은 것들이 인생을 더 흥미진진하고 멋진 이야기로 만들어 줄 것이라 위로한다. 완벽한 주인공이 역경 하나 없이 성공하는 이야기를 보면 '하나도 재미가 없(146)'을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먼치킨 주인공이 나와서 다 쎄고 다 이겨버리는 고구마없는 내용의 판타지물도 굉장히 좋아한다. 이게 대리만족이라는 걸까. (...) 나는 내 인생의 주연(142)이고 획일화 된 사회의 기준에 맞추지 못했다고 자존감을 깎아가며 이번 생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선 조연에 지나지 않음을 몇번이고 깨달으면서 살고 있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읽으면서 재밌기도 하지만 복잡했던 것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이야기와 서양 철학이 접목된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 '만화로 보는 고전' 시리즈 세대지 그리스로마 신화 세대가 아니라 아무래도 신화 흐름에 빠삭하지 않아서 더 그랬다. 단어 하나를 가지고도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서 이해하는데 더 오래걸렸구나 싶었던게 '인간다움(93)'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가졌던 질문들이 '서양에서 말하는 '인간다움'과는 조금 다른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인간다움'에 가까웠고 그 차이가 와닿았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몇몇 실험을 통해 본 적 있는데,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내 생각도 '남들하는만큼 하며 살아왔다'는 표현처럼 관계망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는 것(94)'로 여겨왔다는 점이 재밌었다. 익숙하지 않은 서양 철학에 대한 내용은 당연히 복잡할 수 밖에 없었고.  

 

 솔직히 어떻게하면 만족스럽게 살까, 무엇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같은 질문들 안에서는 크게 바라는 것이 없어서인지 공감을 많이 하지 못했다. 작은 목표와 희망에 기대를 걸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길어져서 그런지 책에서 제시하는 질문들이 터무니없이 크게 느껴졌다. 도리어 꼭 그런 것들을 바라보며 살아야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의 명성이나 후대의 평가(119)'를 실감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평범을 살아내기도 벅찬 시대에 그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의 예시들은 멀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 저는 후대에 뭘 남기지 않아도 그냥 소소하게 맛있는 것이나 먹고 좋은 경치나 좀 보고 그렇게 살면 족합니다,하고 움츠러든다. 순응하는 삶, 버티는 삶에 익숙해지다 못해 길들여진 것일까. 값싼 위로나 건네는 흔한 책들이 질린다고 해놓고 그 이상을 보라하면 자꾸만 '안될거야'하고 외면하게 된다.

 

 '천년의 수업'을 읽기 전까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글을 몇 개 읽고 있었는데, 여기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어(210) 경제나 기술 전문가가 아닌 인문학자의 눈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짧지만 관심있게 읽었다. '인문학은 들어설 틈이 없어 보(210)'인다는 표현에 조금 웃었다. 바로 그 전까지 나도 앞으로 내가 구할 수 있는 범위의 직업들은 제일 먼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책을 읽으며 벌어졌던 저자와의 거리가 다들 이런 생각을 하긴 하는구나 싶은 마음에 좀 줄어들었다. 다만 우리가 어떤 말을 하건, 앞으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어떤 교육을 통해 인간을 역할에 의미를 부여할지에 대해서는 기술을 손에 쥔 쪽의 일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

 

 가장 기대하면 읽은 부분은 여덟번째 주제였다. 제목도 무려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한가(243)'라니, 혐오가 넘쳐나는 시대에,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지만 내가 맞고 네가 틀린 세상에, 가끔은 나 자신도 이해가 안가는데 말이다. 혐오가 넘쳐 극혐이니 00충이니 하는 표현이 예사로 쓰이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스스로도 이건 과잉된 부정이 아닌가 싶어졌다. 쉽게 쓰이는 만큼 혐오에 길들여지는 느낌이라 의식적으로 덜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집단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면 힘들수록 혐오가 더 쉽고 빨리 그 자리를 차지한다. 크게는 사이비 종교, 범죄자 인권, 일부 정치인들에서 작게는 층간소음, 길거리 흡연 같은 것들 마저도. 이들이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이고,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일때가 있겠지만 배려, 양보, 이해같은 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정말 모르겠다.    

 

 처음 책을 읽기 전에 차례를 훑어봤을때 조금 고루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질문들의 목록을 만들어놓은 것 같아서 기대됐었다. 처음 지리하게 써놨던 나의 질문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같은 것도 결국은 '천년의 수업'의 9가지 질문들- 이를테면 '나는 누구인가'나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할까' 등의 주제 안에 녹아있는 면이 있기 때문에, 좀 더 고차원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받침이 되었다. 어떤 것들은 부드러운 어조 아래에서 다 채워지지 않는 의문을 남기기도 했지만, 나와는 다르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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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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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속이 복잡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할머니와 나 자신이 얽힌 이야기를 끌어오고 싶지 않다.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또 고통스러운 이야기기 때문에 굳이 풀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책의 내용이 내용인지라, 그런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이야기인지 읽어보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비교도 하고 지난 시간을 떠올리게도 됐었다. 책을 읽으며 했던 생각들을 전부 꺼내어 둘수는 없을 것 같아 이리저리 잘라내다 보니 별로 할 수 있는 말이 남아있지 않았다. 풀어낼 수 없는 말들이 쌓여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차라리 밝고 희망찬 얘기로 채워져있는 소설들이라면 좋았을 것을. 얼마 전 읽은 '씨씨 허니컷 구하기'는 할머니와 소녀가 나오지만 '나의 할머니에게'와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나의 할머니에게'를 읽고 기분이 좀 묵직해졌다면 '씨씨 허니컷 구하기'가 조금 위로가 되지 않을까,싶다.

 

 남아있는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유한함을 절감한 뒤로는 항상 남은 시간들이 간절해졌다. 그래서인지 손보미 작가의 '위대한 유산'에서 1918년에 태어나 1972년에 죽은 할아버지(108)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리 단명한 것은 아니라고 적혀있어 눈을 의심했다. 환갑에 미치지 못하게 50여년 남짓 살았다는 것인데, 짧지 않은가. 시대가 시대니만큼 평균수명이 지금과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짧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두고 얼마나 더 살았어야 할머니를 만족시킬 수 있었을까(108) 생각하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정해진 기간이 없었으리라 생각도 되고, 어찌되었건 떠난 사람을 생각하면 계속해서 같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일 밖에는 없을텐데 왜 그리 차게 썼을까 싶었다.

 

 가장 좋았던 글은 백수린 작가의 ' 흑설탕 캔디'였다. 다른 부분들이 비터한 느낌을 갖고 있다면, '흑설탕 캔디'는 이름답게 스윗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인 박난실 할머니와 프랑스인 브뤼니에 할아버지의 연애담인데 열일곱 첫사랑의 마음을 간직한 노년의 조심스러운 풋사랑같은 느낌이라 좋았다. 확실히 다시 읽어봐도 나이만 다를 뿐이지 닿을 듯 말 듯한 감성을 그대로 가진 첫사랑 이야기와 다름없다. 때로 나이는 먹어가는데 철은 안드는 것 같아 더 나이를 먹고서도 언제까지나 마음은 이렇게 어른이 되질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할 때가 있었는데, 난실씨가 브뤼니에씨를 만나 떠올린 생각들이 마음에 박혔다. 지금의 나도 상상하지 못했었지만, 노년의 나는 어떨까, 늙지 않은 마음을 부여잡고 노인인척 살아가게 될까. 

 

 '위대한 유산'은 스릴러 분위기가 났고, '선베드'는 할머니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불안정한 진서에게 더 관심이 갔다. 어찌되었든, 친구가 없고 가끔은 선을 지키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은 혼자 남겨지게 될까봐 염려하는 진서의 모습에서 나와 주변의 닮은 점들을 발견했다. 이쯤되니 사는게 바쁘다는 핑계로 멀어진 친구들도 많아지고, 간신히 붙잡고 있는 인연들을 어떤 사소한 실수로라도 잃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과잉되고 불안정해보이는 진서지만 이상하게 그녀에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할머니에게'에서 가장 솔직히, 마음에 들었던 글은 윤성희 작가의 작가 노트 (35) 내용이었다. 그냥 거기에는 진짜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은, 진짜.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손녀를 앞에 두고 화투점을 치거나 민화투를 칠지도 모른다는 그런 꿈을 꾸게 만드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할머니'의 존재성을 전면에 내세운 첫 소설집'이라는 띄지 문구가 눈에 띈다. 뭘 그렇게까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파과'에서도 할머니 킬러가 나오질 않는가. 어쨌든 '나의 할머니에게'는 기획이나 디자인이 신선했다. 여섯명의 작가들이 할머니를 주제로 각기 펼쳐낸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는 점도, 무엇보다 표지의 묘한 질감이, 중간중간 끼워진 갈피를 펼치면 만날 수 있는 조이스 진의 그림들마저 남달랐다. 다만 첫 소설집인지라 '할머니'라는 주제를 통해 작가들이 그려낸 내용이 다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아쉬웠다. 첫 소설집이니까 두번째나 세번째가 혹시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앞으로 책이 더 나오게 된다면 이보다는 좀 자유로운, 혹은 넓은 시선으로 '여자 어른'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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