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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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동안 마음이 아파서 고단했다. 100년 전이라는 배경과 구수한 사투리가 초반의 몰입을 조금 방해했다. 한동안 가벼운 것들만 읽으려 고집했던 탓이다. 언제는 깊고 어두운 이야기라면 골라서 읽고 싶었는데, 사는게 복잡하고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가볍고 밝은 것만 찾게 되었다. 금방 그만둘 수 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도 어렵지 않은 글들을 소비했다. 핑계가 좋았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는게 더딘 것도 일제강점기에 홀어머니가 삼남매를 바듯이 먹여 살리는 형편, 그중에서도 맏딸에게 지워진 의무와 책임같은 것들이 오롯이 느껴지는 시작이 답답해서 였다. 한 며칠, 초반의 몇장을 읽다가 밀어두었다가 다시 집어들기만 했다.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 12시가 넘어서 문득 잠이 깬 밤이었다. 다시 잠은 오지 않고 책을 읽다 잠들어야지, 하고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손에 들었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이른 새벽이었다.

 

 놀라운 흡입력이었다. 어깨가 아파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책의 절반쯤 읽었고, 그 뒤로는 재미있어서 끝까지 읽어버렸다. 버들, 홍주, 송화의 삶이 마음 아프면서도 살다보면 좋은 날도 오겠지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사진만 보고 외국에 있는 신랑과 결혼을 하러 가는 '사진 신부'들의 여정을 순진하게도 같은 마음으로 바라봤다. "삼 년 절은 오이지맨키로 쪼글쪼글한(78)" 신랑이 기다리고 있는 포와는 농장에서 일하다 채찍으로 맞은 상처 흉터가 남은 이주노동자들의 팍팍한 터전이었다. 그제서야 나무에 옷과 신발이 걸려있고 돈을 쓸어담는다는 부산 아지매의 말이 거짓말이었지, 하고 고개를 주억였다. 버들뿐 아니라 홍주, 송화가 마음먹고 떠나온만큼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랐었다.

 

 여자의 삶에서 남자는 무엇일까. 세 소녀가 시집가겠다며 하와이로 떠나 겪은 일들을 보며 더 잘살고 싶어서 떠나왔는데도 마음처럼 살아지지 않는 현실이 갑갑하고, 남편의 존재가 그녀들에게 짐만 더 얹어주는 것 같아 원망스러웠다. 울며 결혼을 거부하고 싶어하는 손녀뻘의 소녀들을 데려다 결국 아들 낳은 첩으로 삼으려는 홍주의 남편과 술마시고 폭력을 휘두른 송화의 남편은 끔찍했고, 나라를 위해 일한다고 집안은 돌보지 않고 떠나버린 버들의 남편은 뭐라 비난하기 어려워 괴로웠다. 남편이 부재할 때 뭉친 세 사람의 삶은 오히려 남편이 있을 때보다 더 나았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열심히도 살았는데, 한편으로는 남편의 빈자리가 그들에게 계속해서 상처로 남아있는 것이 쓸쓸했다. 상처받고 괴로우면서도 사람에게 정을 주고, 사람에게 의지하며, 사람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니.

 

 순순히 소녀에서 엄마로 성숙해져가는 세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진주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옳은 결말이라는 것은 없겠지만 아름답기만한 끝맺음은 아니었어서 마지막까지 쌉싸름하게 읽었다. 결국은 그렇게 되었구나, 좀 더 좋은날이 많았어도 좋았을텐데 싶었다. 400쪽에 가까운 분량이지만 전개된 내용에 비해 너무 갑자기 결말이 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송화의 이야기가 버들이나 홍주에 비해 적어서 아쉽기도 했다. 송화라는 인물이 가진 사연도 깊어 그녀에게 대한 이야기가 더 나왔어야 덜 채워진 채 서둘러 끝맺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진주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헛헛한 마음이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 3시간을 넘게 읽었으면서도 마지막에 더 읽을 내용이 없어 아쉽다는 생각이 들다니, 좋은 책이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멕시코의 유카탄을 배경으로 한 김영하의 '검은꽃'이 떠올랐다. 에네켄 선인장 농장으로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은 적 있었다. 그리고 일년 정도 지나지 않아 유카탄 반도의 무지개학교를 방문했다. 검은꽃을 읽을 때에는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스콜이 쏟아지는 변덕스러운 날씨를 뚫고 찾아간 무지개학교는 한산했다. 먼길을 온 우리 일행에 대한 환영은 따뜻했고, 아직도 남아있는 지난 세월의 흔적이 마음에 걸려 나는 위로도 응원도 변변한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한채 기약없을 다음을 나누고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난다. 그게 십년도 지난 일이다. 여유롭고 느긋한 곳답게 아마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겠지. 문득 언젠가 하와이도 가보게 될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검은꽃을 읽고 생각지못하게 유카탄에 갔던 것처럼. 개인적으로 인상깊은 것은 검은꽃이지만,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더 재밌게 읽었다. 둘 중 하나만 읽어봤다면 꼭 다른 한 책도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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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해결사 깜냥 1 - 아파트의 평화를 지켜라! 고양이 해결사 깜냥 1
홍민정 지음, 김재희 그림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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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냥의 이름을 보며 까만 털을 가지고 있는 고양이라서, 깜냥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덧붙인 설명이 있지만 깜냥의 행동을 보면 '깜냥'이라는 말이 어째서 붙었는지 깨닫게 된다. 잘은 쓰지 않아도 그런 말이 있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떠올린다. '고양이 해결사 깜냥'은 짧은 이야기들이 여러 편 이어져 있기 때문에 동화로 읽기에도 좋지만, 깜냥의 이야기를 만화로 보게 된다면 또 좋을 것 같다. 가제본을 미리 받아 읽으면서 다양한 색채가 들어간 삽화가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정식 출간된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번에 읽은 내용은 깜냥이 어떻게 아파트 '고양이 경비원'이 되었는지에 대한 도입부 정도 되는 것 같다. 앞으로 보여줄 활약상이 더 기대되는 좋은 시작이었다. 아주 오랫만에 동화책을 읽은 것 같다. 다만 경비 아저씨가 고단한 생활을 하셨던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이야기 곳곳에서 밥 한끼 제대로 드실 수 없을만큼 바쁘고,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모습을 보인다. 깜냥이 귀엽고 또 기특한만큼 동화를 읽은 아이들이, 읽어주는 어른들이 주변의 이웃들에게 배려있는 모습을 가져야 함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아파트에는 워낙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깜냥이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궁금해진다. 세상에, '아파트의 평화를 지켜라'라니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겉보기에 평화로워 보이는 우리 아파트의 현관과 엘리베이터에 잔뜩 붙은 안내문들을 떠올린다. 물론 대부분의 날들이 별일없이 지나가지만, 안내문마다 붙은 공고와 협조사항들의 내용은 평화롭지 않다. 담배를 피지 마세요, 층간소음을 조심해주세요, 심지어 새와 고양이들의 먹이를 주지 마세요. 라는 내용도 있다. 깜냥이 본다면 얼마나 상처받을까 싶은 내용아닌가.

 

 창비의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인 '고양이 해결사 깜냥'이 많은 주제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내용도, 생각도 넓혀줄만한 좋은 동화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길고양이들에 대한 시선도 개선시켜줄만한 내용도 담았으면 한다. 나아가서는 더 고양이다운 캐릭터로, 더 고양이다운 묘사가 더해진다면 펭수를 잇는 좋은 캐릭터가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앞으로 이어질 깜냥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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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락 UNLOCK - 내 안의 가능성을 깨우는 6가지 법칙
조 볼러 지음, 이경식 옮김 / 다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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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의 도시들이 잠겨지기(lockdown) 시작했을때, '언락'을 읽었다. 속속들이 전해지는 속보를 통해 보이는 잠겨진 도시의 풍경들은 생소하고 아름다웠다. 사람이 더이상 오가지 않는 거리의 황량한 분위기와 아름다움이 이 강력한 바이러스가 주는 충격과 함께 인식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외부 활동을 최대한 제한해야 한다는 지침을 거의 전세계가 따르고 있다. 와중에 여전히 밖으로 나가 이웃과 함께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이탈리아의 한 시장이 분노에 찬 영상을 업로드했단다. 영상 속의 그는 '당신이 언제부터 조깅을 즐겨했는가, 이웃과 함께 어울리길 좋아했는가'하는 냉소적인 물음과 함께 집안에 머무르기를 강력히 경고했다.

 

 우리가 집 안에서 최대한 홀로 있어야 하는 이 때에,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거품 낸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일? 거품 낸 계란을 구워먹는 일? 필요 이상으로 고생스럽고 결과물은 대단한 맛을 내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책을 읽어보자. 코로나 바이러스가 몰고 오는 경제 불안에 맞서 " 내 안의 가능성을 깨우는 6가지 법칙 " 에 대해 소개하는 '언락'을 읽어보기에 좋은 시기다. 비록 해마다 봄이면 즐기던 꽃놀이는 할 수 없어도, 나 자신을 일깨우는 자기계발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이 한권을 가지고 며칠은 버틸 수 있을만큼 적당히 두툼하고, 적당히 오래 읽힌다.

 

 '언락'은 세상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일 수포자들의 가냘픈 마음을 파고든다. 나는 수학과는 절대 함께 갈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부정적인 생각만 바꾼다면 달라질 수 있다고? 믿기 어려운 주장이지만 과거에 공부할 때 좋아하는 과목, 잘한다고 생각하는 과목의 공부는 어려운 부분이 나와도 힘들지 않게 계속하고 못하는 과목, 싫어하는 과목의 공부는 조금만 어려워도 금방 포기하고 하기 싫어했던 기억이 났다. 나는 수포자니까, 수학은 원래 잘 못해. 하는 생각이 노력을 포기하는 뒷받침이 되어주었다. 만약 그런 부정적 생각이 없었다면, 수학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뇌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뇌 과학 및 한계 제로 접근법이 변화의 초석을 마련해줄까?

 

 '언락'을 읽으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들이 어떤 식으로 사고에 영향을 주었는지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의 제니퍼교수의 일화(35)만 보더라도 사회의 통념으로 갈라놓은 가능성들의 방향에 대해 의심하도록 만든다. 정말 여학생이 문과적 재능이 더 뛰어날까? 정말 남학생이 이과적 재능이 더 뛰어날까? 혹은 나는 원래 남들보다 공부를 못하는 걸까? 내 수준에 맞는 한계가 있는걸까? '언락'은 이 모든 의문에 대해 아니라고 답한다. 물론 그동안 학습된 고정관념이 뿌리뽑히지 않은 상태에서 이 대답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책은 뇌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인간에게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여러번 증명한다.

 

 읽으면서도 믿기 어려운 것이 세번째 법칙에서 소개하는 " 생각을 바꾸면 신체와 뇌도 함께 바뀐다 " 는 부분이었다. 머리로 트레이닝하는 것만으로도 신체에 실제적인 변화가 생긴다니. 운동하기는 싫지만 운동해야겠다고 버릇처럼 생각하는 게으름뱅이에게는 이보다 더 반가운 얘기가 없었다. 하지만 실제 조사 결과를 앞에 두고도 솔직히 진짜 가능하리라고는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내재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도 의심하기에 바쁜 자신의 마음을 생각해보니 다른 무엇보다 오랜 시간동안 굳어진 틀리는 것, 느리게 배우거나 실행하는 것(법칙5),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될까?' 하고 의심하고 '안되겠지' 하고 포기하는 " 자기 불신 (123)"의 태도를 바꾸는것이 어렵겠구나 싶어졌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돕는다'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언락'에서 말하는 개념을 뜻하는 바라면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우주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로 노력한다면 가능성이 더 많이 열릴 수 있다는 수많은 예시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릿'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에필로그에서 이를 언급하며 '그릿' 방식을 뛰어넘는 모토로 한계 제로의 마인드 셋을 제시하는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선택과 집중이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특히 청소년시기에는 얼마나 심리적으로 부담을 주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교육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 책 다 읽어보길 권한다.

   

 국내 확진 경로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으나 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입국자들이 남아있는 탓에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에, 혹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이 기간이 더 길어지게 된다면 그동안 '나는 잘 못해, 나는 재능이 없어'라고 생각했던 분야에 대해 시도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단어나 숙어를 외워본다거나, 제 2의 외국어를 다시 시작해보거나, 과감하게도 책장 구석에 있는 수학의 정석을 꺼내들어 문제를 풀어 볼지도 모른다. 혹은 이 기간이 끝나고 구직활동을 다시 열심히 도전할 사람들은 자격증 공부에 도전해도 좋겠다. 준비없이 불경기를 걱정하고, 집안에 틀어박힌채 넷플릭스를 보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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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짓기 -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데이비드 기펄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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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고 난 뒤로, 그와 같은 경험을 또 해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살아갈수록 앞으로 남은 것들은 더하는 것보다 덜해나가는 과정이 더 많다는 것을 마주할때면 그만 마음이 암담해진다. 누군가와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도 지금은 얻었어도 나중엔 덜어내야 하는 값이 된다니, 인생을 맨몸으로 왔다 또 맨몸으로 가는 것이라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진다. 요즘 들어서는 특히 부모님 연세 즈음의 분들이 병원을 찾는 소식이 늘었다. 저자의 어머니, 아버지, 친구까지 암에 걸렸던 일처럼 '아프다'는 것이 아주 괴롭고 무서운 일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누군가에게만 내려지는 고통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녹아들고 있는 것 같다.

 

 이별을 준비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나에게 그 주제는 너무나 어렵고 복잡해서 심지어 낯설기도 하기 때문에, 어른의 수의를 미리 지어두면 장수한다는 속설조차도 사실은 늙음과 미래를 받아들이라는 선고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은 찜찜함이 남아있는 것이다. 때문에 '영혼의 집 짓기'를 읽으면서 여든이 넘은 아버지에게 아들이 자신의 관을 짜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 긴가민가했다. 결국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관을 쓰게 되는거 아닌가, 아버지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도와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관을 만드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데이비드가 겪은 주변 사람들의 "암과 종양의 연대기(295)"는 시종일관 마음을 가라앉혔다. 특히 친구인 존의 죽음은 " 존의 죽음은 받아들이기가 훨씬 힘들(189) "다는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저자가 느꼈을 타격과 상실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첫 달의 두 번째 화요일에 오는 이메일 알람을 삭제하지 못하는 마음이 이해갔다. 때문에 읽기에 편한 책은 아니었다. 아들이 인생의 황혼에 들어선 아버지와 함께 뭔가를 한다는 과정을 세세하고 차분하게 그려낸 부분은 때로는 위트있고 섬세하여 꽤 마음이 가게 읽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약간의 슬픔으로 감싸여 있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유쾌했던 부분은 '허멜 장례 회관'을 방문했을때의 일이다. 2000달러짜리 화장용 관을 구경하려고 했을 때 폴이 " 헉, 안에 누가 있어! (96) " 라며 농담을 했을 땐데, 사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그 순간 내가 관심있어할 만한 어떤 새로운 사건의 시작인것은 아닌지 기대하기도 했었다. 아마 폴만이 할 수 있는 농담이 아니었을까 싶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의 어떤 점을 매력적으로 느꼈는지, 어떤 감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중년의 미국 남성들에게 특히 사랑을 받은 책인 것 같다. sns에 올려둔 책 사진 밑에 좋은 책이라며 댓글을 남겨두고 싶을만큼 미국적인, 차고와 공구를 통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교감이 그들에게 잘 전달되었나 보다. 라고 짐작한다.

 

 그에 반해 나는 한국식으로 인터넷에서 본 조언을 충실히 받아들여, 때때로 일상에서의 부모님 사진을 찍어둔다. 이전에 잘 하지 않던 행동이라 어색하지만 언젠가 가장 보고 싶을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을 하며 최대한 몰래, 자연스럽게 찍는다. 뭔가를 남겨두고 싶은 마음과, 언젠가를 준비하고자 하는 생각이 담겼는데 최근 지인에게도 권유해보았다가 그의 부모님께서 '죽은 사람 사진 두고 봐서 좋을 거 없다'는 말을 하셨다는 듣고 그렇게도 생각하실 수 있겠구나 싶어졌다. 여전히 때때로 부모님의 사진을 찍고 있지만 나중에 과연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남은 이별들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삶뿐 아니라 죽음도 함께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책 " 이라고 오은 시인이 남겨둔 문구를 다시 본다. 나눌 수 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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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삶이 흔들릴 때마다 꼭 한 번 듣고 싶었던 말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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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에서 조금씩 어긋났던 것들을 떠올렸다. 떠올릴 수 있는 소소한 어긋남들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버스를 바로 눈 앞에서 놓쳐 결국은 늦어버린 약속이나, 말 그대로 길이 어긋나 서로 상대방이 늦었다며 불만을 품었던 일, 조금 늦거나 일찍 산 주식, 놓쳐버린 인연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어떤 것들은 여전히 아쉽고 어떤 것들은 무덤덤하다.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는 것인지, 그게 너를 열받게 할 것이라는 것인지 꽃같은 표지없이 제목만으로는 가늠이 어려웠다. 모두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무뎌지고, 그 어긋남 속에서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으니 그 모든 어긋남의 복기와 상관없이 답은 정해져있었는지 모른다.

 

 에세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항상 말해왔는데, 최근에 읽은 에세이들 몇 편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이 남은터라,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를 읽고 나서는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취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에세이가 싫은게 아니라, 유행을 탔던 특정 스타일의 에세이가 마음에 안들었던 것 같다. 혹은 중년이 되어가고 있는 여성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킬만한 에세이들만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시작은 마찬가지로 불신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가 울린 수많은 딸들 중 하나에 포함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쩔수가 없나보다. 부모님과 관련된 이야기(20)가 나오니 눈물부터 앞선다. 필연적인 상실에 대한 불안에 오늘은 부모님과 사진 한 장 더 찍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한번 마음이 열리고 나니, 다른 글들도 좀 더 가깝게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부터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으면 나중에 기록해둘때 다시 볼 마음으로 표시를 해두는데 다 읽고나니 어쩐지 무용하게 느껴졌다. 나라면 꺼내두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는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내밀한 경험에 대한 내용도 있고, 그래서 그런 꼭지들에 대해서 무엇이라 쓸수도 없었다. 그저 공감했고,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함께 서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 외에는. 이를테면 초반에 금연하지 못하는 남편(32)에 대한 글은 처음에 불만을 가지면서 비난하는 마음으로 읽다가 결국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문득 사회초년생시절부터 밥벌이가 괴로워지면 이 일을 반평생넘게 계속한 부모님에게까지 생각이 미친적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가 불만을 품었던 부모님의 습관들에 대해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의사에 대한 이야기(273)를 읽으며 의사들은 친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병듦은 결국 시간의 문제일뿐인 시대에, 종종 각종 질환별 명의 목록이라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본 적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잘 저장해두기까지 한. 실제적으로 의사는 권위적인 태도로 반존대를 섞어서 사실만을 전달한다. 기대할 것은 좋은 실력이지 친절함은 아니라는 듯이. 간호사가 친절함을 기본 평가항목에 달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병원 벽에 붙은 간호사 친절 만족도 평가의 별점을 보면서 의사의 치료 만족도 평가는 왜 별점으로 매겨져 전시되지 않는지 생각했다. 일만 잘하면 된다면 간호사도 친절할 필요는 없을텐데. 의사의 친절하지 않은 태도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또 전부가 친절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지만,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환자의 마음을 짐작해보았다.

 

 공감을 한다는 것이 결국은 그만큼 나를 드러내는 것과 같아서 사람사는건 다 비슷하구나, 하고 생각했다가 아직 내가 공감하지 못하고 남겨둔 부분들이 언젠가 내 인생에서도 일어날까 궁금해졌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을 오랜만에 다시 만난 지인(204)의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 이미 끊긴 과거의 인연들을 다시 만나게 됐을때 나는 과연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그들을 마주할 수 있을까. 사람들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일이 부조리하다. 관계를 잘 만들기 위해 생각하다보면 그 의미가 점점 더 깊고 복잡해진다. 품이 들고 복잡한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어지는 나이가 되자 늘리기 보다 정리하기에 가까워졌다. 오히려 생각하지 않을 때에 관계맺기는 더 쉬워지는 것 같으니 아이러니하다.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달라졌다는 말이 나을지, 여전하다는 말이 나을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책의 중간중간 엽서같기도 하고, 작은 그림같기도 한 종이가 끼워져있었다. 말 그대로 끼워져있는 줄 알고 무심결에 잡아당기다 하마터면 그대로 찢을 뻔 했다. 이런 게 어디에 더 있는건가 찾아보니 과연 몇장이 더 들어가있었다. 취향에 맞는 그림은 아닌데, 보다보니 어쩐지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책의 내용도 그렇고, 작은 그림도, 90년대 시절에 보았던 글이 떠올랐다. 엄마가 어디선가 받아온 가계부 중간중간에 끼워져있던 일반인의 수기나 작가의 에세이같은 글이었는데, 일상의 소소함을 담은 내용이 인상적이라 오래도록 간직했다가 어느사이에 잃어버린 그 책이 떠올랐다. 정식 발매된 책이 아니라 판촉용으로 나온 가계부에 실린 글이라 내 머리속의 희미한 기억만 남아있는 글들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주변 사람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물어보면 어떻게 말해야할지 아직도 망설여진다. 그동안 저평가했던 에세이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할까, 아니면 내가 달라진걸까. 그도 아니면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가 대단히 괜찮은 것일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읽어보길 추천한만한 이유가 충분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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