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빗 - 내 안의 충동을 이겨내는 습관 설계의 법칙
웬디 우드 지음, 김윤재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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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나은 나'가 되라며 험난한 과제를 안겨주지만, 또 한편에서는 그 과제를 달성하는데 더 큰 비용을 지불하도록 몰아붙인다. 험악한 세상이다. 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정확히 간파해야 한다. (49) ]

 

 험악한 세상이다. 어김없이 연초는 찾아왔다. 시간의 흐름은 유연한 것인데 거기에 기준을 두어 시작과 끝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매년의 의식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작심삼일' 새해가 시작한지 삼일이 지났다. 19년의 31일밤부터 20년의 1일의 첫날까지 당신이 세운 올해의 목표들을 이루기 위한 수많은 계획은 3일의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있는가? '해빗'은 3일째 슬슬 의지가 무너져가고 있는 당신이 또 다른 실패를 기록하지 않도록 도와줄 책이다. 어쩌면 이번에는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희망을 안겨줄 책일지도 모른다.

 

 삶의 변화, 성공적인 삶 같은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자기계발 같은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해빗'의 내용이 익숙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책은 당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 '습관'을 활용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당신이 목표로 하고 있는 행동이 습관으로 형성되면 당신은 그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당신의 '의식적 자아(43)'는 목표도 잘 세우고 계획도 잘 잡지만, 특히나 그것이 장기적이고 복잡한 것일수록 하지 않아도 될 핑계를 찾는데도 열심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살을 빼기 위해 식단을 만들고 운동을 하기로 계획표를 짜는 것도 잘하지만, 오늘 야식을 시키고 운동을 빼먹으려는 구실도 잘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습관화된다면 '비의식적 자아'가 저항을 줄여주기 때문에 이를 강조한다. 

 

 책에서는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행동들이 패턴화 된 것이 그것이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읽으면서 정말일까 싶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를 하는 일이나, 안전벨트를 하는 것, 아이에게 자기전에 책을 읽어주는 일등을 꼽았는데, 습관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것들 역시 해야만 하는 일들이기 때문에 혹은 요구받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 같다. 늦게 일어나 시간이 없거나 양치가 너무 귀찮아도 남들 앞에 그냥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양치를 한다. 안전벨트는 법으로 강제되어 있기도 하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도 아이가 원하기 때문과 더불어 자신이 잡은 좋은 부모의 이상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습관은 무의식의 영역이 더 크게 작용하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마트에서 늘 먹던 브랜드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습관적 선택에 가깝다. 또 책을 읽을 때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여 앉는 것 같은 버릇처럼 일상의 영역에서 조금 벗어난 특이성이기도 하고.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제시된 방법들이 습관 설계라기 보다는 좀 더 오래가는 계획 실행 방법 제시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 나오는 많은 예가 다이어트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바꿔치기 전략(190)'은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는 우리 뇌는 우리가 다이어트를 위해 열량이 낮은 식단으로 식사를 대체한다면 그 차이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이내 다른 음식을 요구한다고 한다. 우리가 뇌를 속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이는 습관화로는 이루기 어려운 의지의 문제 가까울 것이다. 좋은 습관을 들이고자 희망하는 우리를 매번 좌절하게 했던 그 '의지(170)'.

 

 참 이상한 것이 왜 우리가 피하고자 하는 일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습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육식, 밀가루 음식, 단 음식 먹기, 전혀 운동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있기, 다리떨기, 늦잠자기 같은 것들은 그 자체로 습관이 된다. 보상이나 바꿔치기 같은 것도 필요없이! 이 때문에 습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것이, 노력이 필요하다는 부분에서 습관과는 이미 떨어져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졌다. 습관도 이미 본성에 가까운 것이라 노력을 통해 얻은 습관은 지치고 방심한 때에 와해되지 않을까? 습관을 만들려는 노력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을수록 나도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습관을 들이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습관화 된 행동으로 이루어진 삶이 만족스러울까. 비록 전부 좋은 습관이라하더라도. 습관적으로 삶을 산다면 완벽할지 몰라도 어쩐지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한잔 마시고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그 앞에서 물을 맞으며 서있는 안좋은 습관없이)씻고 신선한 채소를 곁들여 균형잡힌 아침식사를 하고 몸에 좋지 않은 커피 등의 음료를 마시지 않고 고구마나 과일, 채소스틱으로 간식을 먹고 매일 집청소도 하고 30분 이상 책을 읽고 30분 이상 운동을 하고 2시간 이상 티비를 보지 않고 할일을 미루지 않고 일할때는 일에 집중하고 6시에 저녁을 먹으면 야식을 먹지 않고 스킨케어를 빼먹지 않고 자기 전에 핸드폰을 하지 않고 12시 전에는 꼭 잠자리에 든다면. 인생이 완벽할지는 몰라도 사는게 즐겁거나 좋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읽으면서 평소의 생활태도와 그동안 목표를 세우고 실패했던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든 책이었다. '습관은 애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에게 들여지지 않은 행동을 습관으로 설계하려면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약간의 모순을 느꼈다. 복잡한 생각은 접고 올해의 목표에 집중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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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철학 학교
요하네스 부체 지음, 이기흥 옮김 / 책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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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사리 '나무에서 갑자기 나무토막'으로 넘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이 튀지 않게 하기 위해 신경쓰면 읽었다.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책의 내용을 온전히 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며 읽었기 때문에 생각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일도 적었다. 오히려 가끔 생각하길 멈추고 눈으로만 책을 읽어나가다 정신을 차리는 일이 있었다. 내 '영혼의 부동하는 핵심'을 찾아 '영혼의 평화'를 좀 향해가려는 마음이 오히려 '닦달당하는 영혼'을 채찍질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우리의 영혼은 얼마나 닦달당하고 있는가? "이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빠져나올 수 있을까? 내가 좀더 강해져야 하는가? 나를 좀더 '분발시켜야' 하는가?" 세레누스의 질문(54)은 현대사회의 우리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현시대의 젊은층을 소진시킨 자기계발과 노오력이다. 과도한 경쟁으로 스펙 쌓기에 매몰된 젊은층에게는 여가와 취미까지도 실용성과 의미가 있어야 가치가 인정된다. 실제로는 게임과 핸드폰, 인터넷 같은 것이 전부라도 스펙용 취미를 만들어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집중한다.

 

 우리는 이런 노력들이 자신을 뒤쳐지지 않는 제대로 된 길 위에 올려놓을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쌓인 피로의 도피처로 '미니멀, 슬로우 라이프, 워라밸'같은 삶의 방식이 등장하지만 이것이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 피로, '닦달 문화'의 근본적인 해결 방인 되어줄 수 없음을 책은 꼬집는다. 그렇다면 영혼의 평화를 위해서 무려 '먹고사는 일은 잠시 접어두고 생각 좀 해보'자며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철학 학교'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첫번째로 저자는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정신의학 명제를 꼽는다. 신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좋은 것은 쉽게 얻을 수 있다. 삶의 난관은 원래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들이 네 가지 명제이다. 언뜻 쉽게 이해가지 않는 내용이지만 책을 찬찬히 읽다보면 의미가 파악된다. 초반부터 2장의 내용까지 들어가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지만, 이어지는 3장 우정에 대한 내용과 4장의 완벽하지 않은, 그러려니 하는 삶에 대한 내용은 2장에 비하면 좀더 수월하게 읽힌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것은 3장의 우정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때로 상대가 나를 무척 실망시키는데도 왜 한 인간에게 쉼 없이 마음을 줘야 하는걸까? (160)" 하는 질문은 친구관계를 넘어 전반적인 사람사이의 관계,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떠올리게 했다.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이 매일같이 일어나는데, 왜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기를 멈출 수 없는 것일까. 혹은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희망을 품고 사회를 구성해나가야 하는 것일까. 이런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가 약간의 전환점 같은 내용이 인상적으로 들어왔다.

 

 책에서 '굉장한 절친'이라는 영화(220)에 대해 나오는데, 얼마 전에 보았던 설경구 조진웅의 '퍼펙트맨'이란 영화랑 비슷한 내용이라 눈길이 갔다. 검색해보니 '언터쳐블 1%의 우정'이란 영화를 '퍼펙트맨'이 리메이크 했다고 나오는데 책에서는 제목이 다르게 나와 있었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우연히 엮이며 뜻밖의 케미를 이루는데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인데, 양극단의 삶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두 사람이 얽히는 '교차점'과 '순간'을 통해 인생이 주는 묘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퍼펙트맨 말고 언터처블이. 

 

 마음을 지키고 영혼의 평화를 얻으려고 책을 읽어봤는데, 읽다가 어려워서 정신을 잃었다. 철학은 아직까지도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이고, 두번째 읽고 있는 중이지만 한번 읽은 것으로는 전체적인 내용을 훑었을 뿐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크리스마스를 캐빈 대신 철학 학교와 함께하니 아주 기쁘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평소대로 먹고 마시고 캐빈과 보냈어야 하는가 싶지만,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철학 학교'를 읽으며 몸대신 마음이 살찌워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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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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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후아나의 꾸무럭한 날씨를 떠올려본다. 테라스 밖으로 멀리 보이던 바다 물결이 빛날때 돌고래가 튀어올랐다고 믿었던 날이, 건조하고 더운 바람, 길거리의 개들, 페인트 칠이 된 건물들, 아주 젊었던 시간에 그 곳이 있었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에서 티후아나를 만나는 건 반가웠다. 미국으로 넘어가기 위해 호시탐탐 국경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사람들, 바닷가를 따라 길게 늘어진 철조망 같은 것, 싱코 이 디에스의 보니따 플라자 같은 것들이 잊고 있었던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마음을 때려오는 그리움이 가득 밀려왔다. 언젠가 꼭 한번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마음속에 항상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 읽으면서 반가웠다.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킨다면, 멕시코는 괜찮은 곳이었다.

 

 티후아나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국경은 주말이면 긴 줄을 이룬다. 미국에서 돌아오는 길은 어렵지 않지만 미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일일이 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길이 막히기 시작한다. 빅 엔젤의 가족들이 멕시코와 미국을 오가며 살아온 역사에는 이 국경 사이의 예민함이 드러나 있다. 말뚝과 펜스가 쳐져있던 티후아나의 바닷가에서 '넘어가고 싶으면 수영을 해서 가면 되겠네'하던 물음에 그 생각때문에 바닷가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는 대답을 들었던 기억도 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미국으로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빅 엔젤이 자신에게 얼마나 프라이드를 가졌을지 이해가 됐다.

 

 멕시코에서 죽음이란 무엇일까. 처음 멕시코에 갔을 때 시장의 상점에서 가장 많이 본 것들이 해골 모양을 한 장식품들과 피냐타였다. 죽음, 죽은자를 연상시키는 해골 모양의 장식품들과 파티에 빠지지 않는 피냐타 인형이 함께 걸려있는 상점들의 모습은 처음에는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 전혀 어둡거나 엄숙하지 않게 화려하게 장식된 해골들이 참 독특했다. 그곳에서는 삶과 죽음을 같은 자리에서 함께 전시하고 있는 것 같아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을 읽으며 참 멕시코스럽다고 생각됐다.(당연하게도!) 장례식과 생일 잔치를 앞 둔 이 가족의 이야기는 죽음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가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죽음, 삶, 가족. 어울리지 않는 저 단어들은 사실 인생이란 테두리 안에서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장 아끼는 사람들과 필연적으로 이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나이 먹을수록 절감한다. 그것은 어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라 가혹하다. 어릴 적에는 내가 뭐든지 할 수 있게 나이를 먹고 성숙해가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는데, 내가 클수록 자라오며 의지했던 부모님이 점점 불안해지고,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간 것이 아쉬워지기 시작한다. 내가 너무 빨리 자라서 그들도 이렇게 빨리 늙어간 것이 아닐까. 책 속에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온 빅 엔젤이 늙고 병들어 페를라와 미니에게 몸을 의지하여 목욕을 하는 장면이 있다. "미안하다. 다 미안해. 네가 아기였을 적에, 내가 널 씻겨주었는데. 나는 네 아버지였어. 그런데 지금은 네 아기가 되었구나.(309)" 핸드폰 조작법을 몇번이나 다시 알려드릴때 부모님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신 건 아닐까. 

 

 언젠가 우리에게 모두 마지막 토요일이 올 것이다. 항상 그것이 아주 먼 후의 일이라고 자신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실제로 그 날이 언제일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다. "하느님 제기랄! 주님, 죄송합니다.(150)"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을 읽으면서 영화 '코코'를 떠올렸다. 영화에서는 '죽은자의 날'을 배경으로 하는데, 가족을 중요시하고 삶의 한 부분으로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특유의 문화가 아름답게 그려져 책을 읽으면서 영화의 내용이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우리가 멕시코에 대해 갖는 이미지나 멕시코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주로 갱단에 관한 무섭고 암울한 내용이 많지만, 멕시코는 아름답고 멋진 나라다. 멕시코에 가보고 싶어지고 그리워지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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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마음 시툰 : 안녕, 해태 1 청소년 마음 시툰 : 안녕, 해태 1
싱고(신미나) 지음 / 창비교육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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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와의 이별이 '손을 놓친 것 같'다는 표현을 본 순간 가벼운 마음으로 넘기던 책장을 덮었다. 어쩌면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 마음 시툰'인데 왜 이렇게 내 마음을 울리는걸까. 잔디가 예지와 처음 나란히 앉은 학교 운동장 벤치에 등나무가 얽혀 있는 모습에 나의 고교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도 등나무가 있는 쉼터가 있었다. 친구들과 무슨 일만 생기면 그 자리에 모여 놀았던 기억이 난다. 등꽃이 예쁜 줄, 좋은 향기가 나는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지금도 등나무를 보면 항상 반갑고 친근한 마음이 드는 것은 그때의 기억 덕분이다. '안녕, 해태'가 더욱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가는 인물들이 많았다. '문학 덕후일 뿐 뭐가 되고 싶은 마음은 1도 없'는 잔디는 꽤 공감가는 친구다. 금사빠 기질은 나와 전혀 다르지만, 소녀의 마음은 그럴 수도 있는 법이니. '수학 8점 받은' 잔디의 아빠는, 내 점수가 결단코 더 높지만, 나와 영혼의 쌍둥이 같은 인물이기도 했다. 잔디는 20년 후 자신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했지만, 나는 이제 더이상 궁금하지 않다. 물론 20년 전의 내가 생각했던 그런 모습은 전혀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나는 수학과는 사이가 별로인 문학 덕후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에게는 미래가 두렵고 궁금하겠지만, 어떻든 자신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조금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주 뛰어나고 대단한 사람이 건네는 위로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나이를 먹으면 친구 사이의 일은 하나도 어렵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더 어렵다. 매일 만날 수 있을 때는 오늘 마음이 상해도 내일 풀릴 수 있는 '다음'이 당연하게 있었다. 서로 상처도 주지만 힘든 일도 가감없이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순수함도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의 세계가 굳어지면서 친구를 대하는 일도 이리저리 생각해보는 일이 맍아졌다. 쪽지를 적어 보내고, 공통점 한두개를 찾아, '우리 친구할래?' 하는 말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도 어려워졌다. 망원동 고양이들과의 첫만남에서 해태가 힘들어했듯이, 나와 다른 사람과 굳이 맞춰가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지는 일이 많아졌다. 신경림 시인의 '동해 바다-후포에서' 시를 읽으며 잠시 마음을 다듬었다. 책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시들이 참 좋았다.

 

 시와 함께하는 책이라 그런지 윤동주 문학관을 방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말 멋진 장소니 한번쯤 그곳에 발걸음을 해보길 추천한다. 책을 읽을때는 어쩐지 도드라지는 흐름인 것처럼 보이지만 굳이 소개되어야 할만큼 의미있는 공간이다. 시를 감상하는 것이 어쩐지 어렵게 느껴져 시를 일부러 읽는 일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할텐데, '안녕, 해태'는 만화를 보며 시도 함께 읽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주 매력적인 책이다. 아직 1권만 읽어보았는데, 앞으로 잔디가 겪게 될 일들이 어떨지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게 끝났다. 예지는 과연 어떤 아이일까! 언뜻 보이는 예지의 과거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잔디는 어떻게 어려움을 헤쳐나갈까. 해태는 무사히 어른 해태가 될 수 있을까? 이어질 2권과 3권의 내용이 기대된다. 연령을 떠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무해한 만화를 만나게 된 것 같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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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이야기 - 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딘 버넷 지음, 임수미 옮김, 허규형 감수 / 미래의창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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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히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는 말이 유행했다.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는 저 유행어는 멍 때리고 있는 순간에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내장기관들의 노동마저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도 내 뇌는 뭔가를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아까 먹어치운 음식들을 소화시키고, 그리고 내가 채 눈치채지 못하는 일들까지도 번잡하게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이끌려 활동하고 있는 심장과 폐의 모습을 본 적 있는데, 그렇게 바쁘고 열심일수가 없었다. 그러니 알게 모르게 우리는 내가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상태이긴 한데, 사실 나는 그마저도 살아있기 위해 치열한 상태다. 때문에 한껏 게으름을 부리고 싶을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 격렬히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고 외치는 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게으름과 부지런에는 뇌가 있다. 아주 대단한 성능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는 내 뇌를 떠올려본다. 내가 뭘 좋아했더라, 최근에는 어떤 생각을 자주 했더라,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던 일이 뭐였지, 아 기억이 안나 요즘 자꾸 잘 까먹네, 넷플릭스랑 왓챠보느라 요즘은 머리를 쓸 일이 없어, 저번에 천정 턱에 머리 부딪힌거는 괜찮나, 요새 왜 밤잠을 설치지, 가족력 중에 치매가 있었나, 호두를 먹으면 뇌에 좋은가 같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생각들에 대한 대부분의 답이 '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뇌 이야기' 안에 들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평소에 내가 겪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줄줄이 나와서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다 흥미롭게 읽었다.

 

 가장 먼저 나온 주제인 멀미부터 시작이었다. 그래, 내가 대체 왜, 장거리 버스를 타면 아무것도 못하고 나무토막처럼 늘어져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며 멀미를 하지 않기만을 기도해야 하는지 우리 백만 멀미인들은 너무나 궁금할 것이다. 책에서는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대중적 이론으로 고유수용감각에 대해 얘기한다. 우리가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할때 고유수용감각은 신체의 직접적인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이동에 대한 신호를 보내지 않지만, 전정계의 귓속 액체는 가속도로 인해 우리가 실제로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를 보낸단다. 두 기관의 이 상반된 신호가 멀미를 일으킨다고 한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걸어다니는 것은 옳지 않으니 직접 해볼수는 없겠지만, 그럼 실제로 그 안에서 진행방향쪽으로 계속해서 걸으면 두 기관이 같은 신호를 보내게 될테니 멀미를 덜하게 될까? 책에서도 멀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교통수단을 타지 않는 것이라고 제시하고 있으니 아마 아닐 것 같다.

 

 2019년 목표로 다이어트를 세웠는데 실패하고 2020년 목표로 다이어트를 다시 잡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을만한 주제도 있었다. 다이어트를 실패하게 되는 이유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때문도, 먹을 것만 보면 입에 침이 고이기 때문도 아니라 뇌 때문이라고 한다. 내 몸을 이렇게 만든 것이 뇌라니, 뇌 이놈! ... 뇌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똑똑하여 다이어트를 하려고 내가 먹은 다이어트 식품들에 속지 않는다고 한다. 포만감을 주지만 칼로리는 낮은 음식으로 배를 채워도 금방 배고픈 이유가 뇌에 있었다. 우리의 좋은 친구 위는 고칼로리 메뉴를 거절하고 싶어하더라도 말이다. 기나긴 역사의 다이어트 실패 이유를 뇌에게 따지고 싶은데 뇌마저 내것이라 안타까울 뿐이다. 

 

 다이어트 실패의 또다른 원인은 내 뇌에서 이상적 자기를 이루기 위한 의무적 자기가 제대로 활동하지 않고 있어서 였다. 마침 책에서 "예를 들어, 저녁에 피자를 먹고 싶다면 어떻게 될까?(307)"란 문장이 나왔는데, 방금 저녁으로 피자를 먹은 사람이 읽기에 편한 내용은 아니었다. 이어서 "피자는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피하는' 사람이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다시 샐러드를 찾게 된다(307)"는 문장을 읽으며 내 성격이, 통제권이, 동기부여가 제대로 할 일을 하고 있지 않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뇌가 그랬다니까 내 탓인데 내 탓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내 뇌 안에서 동기부여는 " '저것 봐, 케이크야! 먹자!'와 같은 기본적인 반응과 관련된 시스템(308)"에 지나치게 많이 의존하고 있는지 모른다. 심지어 노력, 고통에 대한 보상을 맛있는 음식으로 하고 있는 점도 체중조절에 방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팩트로 얻어맞으니 또 아프다. 2020년에는 꼭!

 

 

 이 밖에도 나이가 나이다보니 요즘은 짧게 뭔가를 기억하려고 해도 잘 안된다. 가끔 가는 인터넷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항상 잊어버리는 건 문제 삼지도 않는데, 비밀번호 재설정을 하려고 인증번호 6자리를 받아서 입력하려고 하면 문자 확인하고 다시 입력창을 켜는 동안 까먹고 만다. 1학년때 몇반이었는지 같은 과거의 일이 선명하게 기억났었는데 요새는 가물가물 해졌다. 얼마 전에는 외출해서 먹을 죽을 아침 내 만들어서 보온병에 담아 나갔는데 옆에 뒀던 숟가락을 빠트려, 맨손으로 죽을 앞에두고 잠시간 멀거니 바라본 적도 있었다. 숟가락이야 어디서든 구하면 되지만 고생해서 싸놓고 숟가락을 잊어버린 일이 어이가 없어 두뇌조정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깜빡함이 전에는 아, 깜빡했네. 하고 넘어갈 일인데 요즘은 건망증인가 뭔가 스스로 의심해보게 되는 때가 된 것이다.

 

 네번째장의 제목은 참 재밌고 민망하다. "사람들은 다들 자신이 '너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한다"가 그 제목인데, 처음에 썼듯이 내 뇌에 나름 만족하고 있다는 표현에 저 뜻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 민망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자, 물론 내가 맞고 니가 틀리지만' 이란 말의 유행이 여기서 비롯된 것 같아 재밌었다. 다만 키 큰 사람이 더 똑똑할 확률이 높다는 내용에는 의문을 제기한다. 키 큰 기린과 키 작은 기린 종들 중 먹이를 더 쉽게 구할 수 있는 키 큰 기린만이 살아남았다는 다윈식 진화론이 인간의 두뇌에도 적용되었다는 것인가. 진화론도 키와 아이큐의 상관관계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저자의 키가 클 것이 틀림없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키가 큰 사람들은 키가 크다는 것으로도 장점을 뽐내는데, 덕분에 더 똑똑할 확률이 높다고 하면 또 얼마나 키 작은 사람들의 마음이 뒤집어지겠는가. 키 작은 것도 서러운데, 아무래도 저자는 키가 큰게 틀림없다.

 

 얼마전에 한 지인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가 우울을 앓고 있다는 근황을 전했다. 그때는 당황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제대로 위로가 될만한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몰라 그저 '병원은 잘 다니는지, 요즘은 다들 힘들어서 병원도 많이들 가고 감기처럼 아픈 일이라 병원다니는 일이 이상할 것도 없다더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건네고만 말았다. 마침 책에도 우울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지인이 떠올라 주의깊게 읽었다. 그날 내가 그렇게 행동한 것이 그에게 괜찮은 것이었는지 마음에 염려가 남았던 탓이다. 헤어지면서 어쩐지 염려되는 마음에 다음에 만날 약속을 또 잡았는데 그때는 좀 더 위로가 되줄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우울에 대해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나도 혹시 우울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됐다. "나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야(403)"하고 생각했지만, 요즘들어 생겨난 생각의 변화나 개인적인 일들이 마음에 걸린 탓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에게도 분명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분량이 적지 않은데도 지루한 마음 없이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 내가 생각하고 겪었던 일들이 책에도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사람 사는 거 다 비슷비슷하고만? 싶은 자신만만함, 안도감이 든다. 이제 어두운 길을 걷는 것도, 고개를 숙여 머리를 감을 때 이상하게 숱이 많게 느껴지는 것만 같은 공포감도, 속으로 내가 아는 가장 밝고 경쾌한 아이돌 노래의 싸비를 반복적으로 부르지 않아도 좀 더 객관적으로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한 권으로 뇌의 세계를 전부 알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재밌는 부분은 충분히 얻어낸 것 같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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