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필립 스테드 지음, 에린 스테드 그림, 김경주 옮김, 마크 트웨인 원작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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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동화책을 읽은 게 언제였지. 나름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청소년 도서는 가끔 챙겨보려고 하는 편인데, 동화책을 읽은 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도 동화책을 읽을까. 너무 좁은 표본이지만, 주변에서 동화책 읽으며 재미있어 하는 아이를 본 적이 너무나 오래다. 한 십년 전 쯤 아이들을 가르칠 때 가끔 재밌어하는 부분이 나오기도 했지만, 요즘은 아이들이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투브 영상을 보는 것을 더 많이 봤다. 나이든 사람들의 관념 속에 있는 어린이의 성숙함을 넘어선지 오래인 초등학생들 뿐 아니라, 유모차에 타고 있는 어린 아기들도 핸드폰에서 나오는 영상에 귀신같이 반응한다. 시대가 변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쉽다.

 

 그런데 새삼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이라는 파격적 제목을 단 동화의 출간 소식에 동화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어른이지만 너무 오래 동화를 안 읽었다는 이유로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다. 섬세한 선과 바랜듯한 색감으로 표현된 삽화도 마음에 들고, 출간되기까지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쏘아진 신호를 잡아 천천히 풀어놓은듯한 시간차가 마음에 들었다. 지금 출간되지만, 요즘의 감성이 아닌 동화가 나오리라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이 독특한 제목의 동화는 그런 기대를 잘 충족시켜 주었다. 묘하게 시니컬한 부분들이 끼어들곤 하지만 그 뿌리에는 가장 기본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잘 쓰여진 대부분의 동화가 그렇지만,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도 어린아이 뿐 아니라 어른까지 전연령을 아우를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소년과 왕자, 그리고 그의 동물 친구들이 나오는 내용이라 가볍게 모험을 떠난 소년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왕자를 구하고 부귀를 얻어 행복하게 지내게 된다는 흐름을 떠올렸다. 그런데 소년의 유일한 친구인 닭의 이름이 '전염병과 기근'일 때부터 비버섬의 이름이 왜 비버섬인지에 대한 사소한 논쟁이 끼어들 때부터 이 알 수 없는 동화가 독자를 어디로 데려갈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요상한 내용을 베드타임 스토리로 딸에게 들려준다고?' 칼데곳 수상자인 필립과 에린의 손에서 재탄생한 이 동화는 확실히 만만치 않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며 웃음을 주다 어떤 부분에서는 동화적 허용을 가볍게 이용해버리곤 한다.

 

 조니가 주주꽃을 먹은 뒤로 겪는 일들은 환상적이라 기대했던 감성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속으로 잠시 씨앗이 큰 넝쿨이 되어 자라는 것은 아닐까, 꽃을 먹다니 조니는 채소도 잘 먹는 소년이네, 이런 생각을 해보긴 했다. 어린시절 책을 읽으며 이런저런 상상을 하길 좋아했는데, 아주 오랫만에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을 읽고 나서 주주꽃을 먹는 일을 상상해봤다. '클로디아의 비밀'을 읽은 뒤로 한참동안 어느 박물관의 어디에 숨어야 들키지 않을까 고심하거나, 사람들이 동전을 던진 분수대를 골똘히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내가 만약 주주꽃을 먹는다면, 어떨까. 다들 책을 읽고 나서 주주꽃을 먹고 나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뭘지 생각해보도록 하자.

 

 책에서 조니가 보여준 마음은 꽤 순수하고 따뜻한 것이어서 동화를 읽는다는 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때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 지치고, 관계가 주는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도 누군가에게 '당신을 알게 돼서 정말 기쁘다'고 말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봐야 겠단 생각을 했다. 새삼 돌이켜보니 상대를 판단하고, 낙인찍고, 용서가 적었던 시간을 보냈다. 아마 왕과 올레오마가린 왕자와 비슷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가장 싫은 캐릭터의 모습이 가장 나와 닮아있다니. 금방 잊혀지는 부질없는 다짐이지만 남에게 더 유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이제 막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아이들이 읽는다면 좋을 것 같다. 인간관계, 인연의 소중함과 무거움을 그 꼬맹이들이 다 이해할까 싶지만 만나서/놀아서/친해져서 좋았던 친구를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도 의미있겠다. 주변의 꼬맹이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지만 몇 번 책을 선물로 주었는데, 원치 않는 선물을 가져다 안긴 탓에 아이들이 감사하다는 인사조차 엄마의 눈치를 보며 고역으로 해내는 것을 보고는 이 눈치 없는 선물을 그만 하기로 했었다. 아이들은 왜 동화를, 책을 안 좋아하는 걸까. 아쉽다. 때로 동화의 가치를 아이보다 어른들이 더 크게 보는 것 같다. 아마 이미 뭔가를 잃고 난 뒤라 그렇겠지. 간만에 어린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간을 즐겼다. 모두 '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과 함께 환상적인 시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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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 - 애플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조용한 천재
린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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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쿡은 잡스의 유산을 보전하며 '내 안의 모든 것,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회사에 쏟아붓고자' 노력하겠지만 결코 잡스와 같아지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내가 될 수 있는 최상의 팀 쿡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실로 그는 지금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p.41) "

 

 상대적인 것일 수 있어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젊은 감성과는 동떨어진 편이다. 갤럭시말고는 핸드폰을 써본 적이 없고 주변의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다. 언젠가 지인이 자신의 주요 고객층은 아이폰 유저였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한 경영인의 인터뷰를 본 내용을 얘기한 적 있었다. 아이폰 유저들이 흔히 말하는 '감성'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고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흐름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어머 그럼 갤럭시 유저는 뭐 감성이 없나' 하고 한마디했지만, 확실히 아이폰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감성'이란 것이 있긴 있나보다. 젊음, 유행, 인싸같은 수식어를 단. 쨌든, 잡스의 죽음 이후 여전히 잘 나가지만 - 아이폰의 전망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던터라 '팀 쿡'에 대한 책이 궁금했다.

 

 다른 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인물의 이야기는 새로웠다. 아무 접점이 없는 사람이지만 잘 알려진 유명인의 죽음에 대한 내용은 여전히 애석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잡스가 애플에 미치는 영향, 그 자체로 애플과 동일시 될 수 있는 존재감이 그의 죽음과 함께 팀 쿡에게로 승계되는 계승적 구도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주었다. 잡스가 그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해왔던 인물이 바로 그 사람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애플을 이끌어가게 되었을 때, 그가 느꼈을 부담이 과연 어땠을까. 전에는 쉽게 새로 나온 제품의 디자인이나 반응에 기대 '애플은 전보다 못해졌어'라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빈자리를 채워 운영할 결단을 내리고 지금껏 보여준 행보만으로도 대단하다 생각하게 되었다.

 

 잡스의 죽음 이후에 몰아닥친 상황이 이어질거라 생각한 것과는 달리 팀 쿡의 어린시절부터 이어지는 내용들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그가 참가했던 몇몇 활동들은 비즈니스적 면모가 두각을 나타냈음을 보여주는 예시로 쓰였고, 앨라배마에서 겪었던 인종차별 사건들, 게이인 성 지향성 등은 그가 요즘 시대에 맞는 가치관을 가진 인물임을 보여주는 점으로 정리되었다. 누군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초반 부분은 전형적인 전기물의 양식을 그대로 이용했기 때문에 심심하게 느껴졌다. 왜 우리가 자소서를 쓸 때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자라'같은 상투적 표현이 지양되지만 막상 쓰려면 그런 표현들이 절로 나오는 실수를 여기서도 범한 것이다.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우리가 알고 싶었던 팀 쿡에 대해서는 6장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책에서는 잡스 이후 팀 쿡이 선보인 첫 프레젠테이션에서 느꼈을 대중의 실망감까지도 잡스가 보여줬던 흥미로운 애플 제품발표회의 전형을 깨버린 것으로 표현된다. 다만 읽다보면 애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팀 쿡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름없음이 보인다. IBM과의 파트너쉽이 가져온 영향, 애플워치의 등장 같은 기업 연혁이 팀 쿡과 불가분의 것이지만 그를 말하는 게 될 수 있을까. 10장에서 나오는 커밍아웃 부분에서 이런 갈증이 조금 해소되는 듯 싶다가 그가 가진 소수와 다양성에 대한 열린 태도가 여성인력고용 같은 카테고리와 엮이면서 기승전애플로 돌아간다.

 

 다만 컴퓨터 산업의 줄기를 꿰고 있는 사람이라면 팀 쿡의 여정이 보여주는 이 산업 흐름이 꽤 흥미로울 것이다. 문과라서 어떤 부분들은 좀 전문적인 내용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냥 이런 흐름이었구나 하고 읽어 지나간 부분도 있었다. 잘 모르더라도 IBM, 컴팩, IE, 애플, 마이크로 소프트, 델, 게이트웨이 같은 들어본 적 있는 이름들이 나와서 해당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또 다르게 느껴지겠다 싶었다.

 

 팀 쿡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잡스의 이야기도 나올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는데, 간혹 팀 쿡을 극대화하기 위해 잡스를 좀 쳐낸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p.146,171,182,187,244,391) 팀 쿡만의 장점을 드러내다보니 그런 것 같은데, 잡스를 다룬 책에서는 반대되는 방식을 썼겠지 비교해보고 싶어 스티브 잡스에 대한 책을 가진게 있었나 한시간을 찾아봤다. 결국 못 찾았다.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안보이는지 아쉬웠다. 독서의 끝이 엉망이 된 책장 정리라는 과업을 남기고 말았다. 조잡함을 경멸했던 잡스와 과도한 재고를 증오했던 쿡의 체제를 따라 영원히 고통받는 갤럭시 유저는 책장 정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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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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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언 반스와 요리라니. 좋아하는 드라마 시리즈가 몇 없는데 그 중 '크리미널 마인드'라는 미드가 있다. 거기에 로시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중년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FBI 행동분석 팀의 일원으로 이탈리아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른 어떤 요소보다 로시가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인물임이 느껴지는 부분은 그가 요리를 하고 음식을 즐긴다는 점이었다. 대단치는 않아도 자기 자신과 대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보일 요리를 할 줄 안다는 것은 꽤 매력적이고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줄리언 반스를 보면서 좀 더 늙은 고든 램지를 떠올리기도 하고, 그를 조금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요리를 할 줄 안다'는 키워드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요리가 대체 무엇이관대!

 

 본인은 어떤 타입이냐면 익숙해진 몇가지의 음식 말고는 대부분의 요리는 다 레시피를 보고 한다. 전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잘'도 붙일 수 없이 그저 좀 할 줄 아는 정도의 수준이다. 때로는 내가 한 음식은 그 자체로 특히 먹기 싫을 때도 많은 편이고.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그저 웃을 수 없는 부분이 좀 있었다. 38쪽의 잼을 만들기로 한 이웃에 대한 이야기도 1파운드 용량의 빈병으로 과일과 설탕의 분량을 잰 것이 왜 실패의 원인인가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다. 저 방법을 합리적 계산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내가 전혀 깜깜한 사람이란 말은 아니다. 음식과 먹는 것에는 관심이 지대하기 때문에 요리를 하는 것에는 약할 지라도 음식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라고 자존심을 좀 세우고 싶다.

 

 '요리를 할 줄 안다'는 매력을 떠나서도 기본적 생존을 위해 추천사에서 나오듯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 중에 한 분야로 마땅히 요리가 들어가야 되는 게 옳지 않을까 생각했다. 편의점, 배달 음식이 발달했어도 어떠한 경우에서도 할 줄 아는데 편의를 위해 선택하는 것과 다른 방법이 없이 이용하는 경우는 다를 것이다. 자기 먹을 것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은 배워서 어른이 되는 일이 남녀의 일에 구분이 없고 1인 가구가 더 늘어난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기본이 되야할 것이다. 더욱이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사는 중/노년층의 남성들 중 상당수는 기본적인 끼니를 위한 요리를 강습하는 지원 클래스가 있기도 하고, 반찬 지원이 들어가도 밥 챙겨먹는 일에 익숙치 않아 받은 반찬 그대로 상해 버리는 경우도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된단다. 적어도 이런 일은 없어야 할테니.

 

 첵을 읽다가 요리책이 몇 권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문득 멈춰섰다. 몇 권이나 있더라. 정확하게 떠오르는 건 한 권, 책장으로 달려가 살펴봐도 두 권 정도? 애초에 요즘같은 시대에 요리책이라는 것이 뭐 그리 필요하단 말인가. 인터넷으로 검색만하면 황금레시피나 백종원 표 같은 수식을 단 요리법들이 쏟아져나온다. 그것 뿐인가 줄글과 사진이 첨부된 요리법도 이제는 구식이다. 유투브같은 플랫폼에는 요리방법을 담은 영상이 나온다. 한꼬집이나 한소끔 같은 애매한 표현들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영상으로 보면서 배우거나 따라하면 되니까. 요즘은 중장년층도 유투브를 많이 본다던데 책에 대한 연연이라니 줄리언 반스의 연식이 느껴지는 부분이구만, 하고 생각했다. 다만 요리하는 남자가 요리책을 갖고 있는 편이 조금 더 섹시하긴 할 것이다.  

 

 줄리언 반스의 어조가 시종일관 까칠하고 적나라해서 좀 웃으면서 읽었다. 가령 스테이크를 구울때 15초에 한번씩 뒤집으라는 내용이 나오면 (p.143) 굽는 시간이 8분이라면 한덩이 32번씩 4인분에 128번 뒤집으란 말이냐, 그동안 사이드는 누구더러 만들라는 거냐고 성을 낸다. 잡다한 주방기구를 넣어두는 서랍을 정리할 때면 뭔지 모를 기구들과 죽은 벌레, 말라서 발견되는 잡곡까지도 솔직히 밝힌다.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를 읽는 시간은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가가 내 안에서 지나치게 평범한 인물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전보다 더 마음에 드는 인물이다. 먹고 사는 일이 버거울 때, 마음먹고 차려낸 요리가 내가 먹어도 맛없을 정도로 망했을 때, 번거로운 요리과정과 냉장고에서 마르고 썩어가는 재료가 지긋지긋할 때, 사먹는 음식이 지겹게 느껴질 때, 혹은 그냥 줄리언 반스의 글이 땡길 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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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5-28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싶던 책이었는데,테일님 리뷰보다 스테이크 부분에서 깔깔 웃었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테일 2019-05-30 01:46   좋아요 0 | URL
저 까칠한 부분이 좋아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꼭 읽어보시길 바래요! ;-)
 
10대를 위한 그릿 - 청소년을 위한 꿈과 자신감의 비결
매슈 사이드 지음, 토비 트라이엄프 그림, 장혜진 옮김 / 다산에듀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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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시작하는 잭의 이야기가 꽤 멋지다는 것은 인정한다.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은 평범한 소년이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가는 성공을 이뤄내기까지의 이 이야기는 저자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했다. 얼핏 희망을 주는 이야기지만 머리속 한편으로는 보통의 경우라면 승부욕 강하고 재능이 많았던 형이 성공했을 것이란 생각이 떠돌았다. 진짜 평범이라고 하는 건 그런거니까. 이런 찌들은 생각을 하다가 이래서 이 책이 필요한 거구나 느꼈다. 아직 10대인 독자들이 이렇게 찌들기 전에 '그릿'을 알고 믿고 도전하게 된다면 더욱 긍정적일 것이다.

 

 평범한 주말 오후, 이 책을 들고 근처 카페에 앉아서 읽기 시작했다. 옆 테이블에는 수학과외를 받는 학생이 있었다. 2의 7승과 8승을 연달아 묻는 질문에 간단한 계산도 틀리는 학생의 답이 귀에 들어왔다. 문득 그만했던 시절에 수학과외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수학이 발목을 잡을 때면 학원을 다니거나 이리저리 수소문 해 과외를 받곤 했었는데 결과는 항상 실패였다. 한번도 수학을 중간 이상의 결과로 끌어올린 적이 없었다. 옆자리 학생이 끝내 2의 10승까지 답을 얻어낸 것을 들으며 한번 답을 틀리면 그 단계에서 수학을 포기했던 과거의 내가 안타까웠다.

 

 노력하라는 내용을 담은 계발서 등에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편은 아니지만 청소년들을 위한 내용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도 어른만큼이나 현실적이고 성숙한 요즘이지만 그 애들이 가져서 마땅한 희망과 의지를 전달해주는 책이 있다면 좋은 것이고, 누군가는 솔직하고 직선적으로 책의 내용을 받아들여 긍정적으로 소화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칭찬의 효과나 이름붙이기에 대한 부분은 꽤 공감했다. 잘한다, 재능있다고 믿는 분야에 대해 그만큼 더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게 되는 면이 있으니까.

 

 139쪽과 맨 뒷부분에는 훈련 계획표도 첨부해 놓았는데, 이 표로 주간 혹은 월간의 세부 실천 일지를 작성할 수는 있어도 한눈에 키워드를 잡아 보기엔 좀 아쉬운 듯했다. 이 계획표로는 세부사항을 정리하고 큰 틀은 일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만다라트 계획표'로 잡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번 결심했다고 바로 계획을 지키는 것은 어렵지만 계획표처럼 눈에 보이는 표를 만들어놓는다면 적어도 눈에 띌 때마다 의식하게 되는 계기를 준다는 데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재능과 노력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런 생각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 안그래도 사는 일이 팍팍할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책이 있다면 그것으로 그냥 괜찮을 것 같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 그저 꾸준히 혹은 아무 생각없이 일을 시작하는 것 만으로도 좋은 결과에 한걸음 다가서는 계기가 되곤 하니까. 초등학교 4-6학년 정도의 십대, 넓게는 중학생까지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책을 권하고 싶다. 다들 특별한 잭처럼 성장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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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거짓말 : 금기 속에 욕망이 갇힌 여자들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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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군가 우리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주면 오히려 그 거울을 깨버리는 사회, 그것이 바로 모로코 사회다. (p.87)"

 

 '섹스와 거짓말' 은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책의 주제도 그렇고 각 장에 담긴 내용들도 하나같이 불편했다. 불편하다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량이 많은 것도 아닌데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모로코만큼은 아니겠지만, 페미니즘이란 말만 입에 올려도 공격과 비난의 시선이 날아드는 사회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것이 신경쓰인다. 심정적으로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지언정 그것을 표현하기는 꺼려지는 것이다. 이렇게 먼 곳에서도 발끝에 물이 닿을까 주저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호수의 한 가운데에 뛰어들어 파문을 일으키려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처음에는 불쑥 솟아오르는 모로코와 이슬람 사회에 대한 비난을 참아내기 어려웠다. 한명 한명의 증언이 더해질 때마다 더욱 스트레스가 올라가다 " 저 외국 딴따라들이 뭔데 내 나라까지 와서 우릴 가르치려 드는 거야? (p.96) " 하는 내용이 눈에 밟혀 무작정 화내지도 못했다. 우리 내부의 문화이자 문제로 고착된 것들도 외부의 지적을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알기 때문이다. 문화 차이의 존중은 일의 옳고 그름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인지, 그 옳고 그름의 잣대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에 대한 구분이 필요한 것인지 생각했다. 여성의 문제이니까 함께 연대하여 소리를 내는 것이 괜찮은걸까.  

 

 책에서 모로코 여성은 9시 이후에 길에 나서면 안되고, 치마를 입거나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만으로도 창녀 취급을 받는다. 아버지 뻘의 남자와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결혼을 한다. 심지어 강간범은 처벌을 받지도 않는다. 그러다 문득 이 비슷한 일들이 과거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것을 떠올린다. 미니스커트는 경범죄처벌을 받았고, 70년대 대구 고등법원에서 법정약혼, 90년대 서울 고등법원에서 양쪽부모 합의로 성폭행범과 피해자를 결혼시키려는 판결이 있었다. 담배 사례는 담배 피는 여자만 검색해도 아 싫어요 내가 싫어요 사회시선이 그래요 어쩌고 하는 내용이 수두룩하다.

 

 저 시점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멀어졌을까 생각해본다. 충분히 멀어졌을까 아니면 멀어지려 애쓰고 있을까. '섹스와 거짓말'을 읽으며 이슬람 사회에 대한 비난을 하고 싶다가도 그 자체를 비난할 수 없는 비슷한 흔적을 우리 사회에서 발견하기도 하고, 내 옆의 빈자리를 남에게 내주는 일이 공연히 탐탁지 않은 기분을 들게 만드는 것임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정도는 다르더라도 모든 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으로써 존재하기 위해, 원하는대로 행동하기 위해. 발끝이 적셔지는 일이 두렵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고민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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