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189호 - 2020.가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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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과 비평의 2020년 가을호 계간지가 나왔다. 계간지를 읽은 것이 십여년 전이었는데, 그때보다 지금 더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계절을 받는다.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손안에 들어오는 책 한 권으로 느낀다는 것이 이제는 왜 남다른 느낌이 들까. 계간지를 읽는 방식이 달라져서 그런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이 훨씬 즐겁다.

 

 여름호를 읽는 동안은 우한 폐렴의 직격탄을 맞은 생생한 상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면 가을호에서는 아마 이어지는 삶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지 않을까 싶었다. 특집으로 다루고 있는 코로나 19를 보며 역시, 하고는 계속해서 막막했다. 이어지는 흐름으로 리베카 솔닛의 글을 실은 현장 부분도 흥미로웠다. '팬데믹과 마스크 쓰지 않는 남자들'이라니.  

 

 작가조명에는 출간전 미리보기를 했었던 '철도원 삼대'의 황석영 작가가 등장했다. 제목이나 작가나 전부 독자에게 한껏 부담을 주는 이름들이다. 삼대 그리고 황석영. 내심 작가조명에 등장한 노작가를 향한 치켜세움을 의심하던 눈길도, 스스로에게 읽고 싶은 것만 읽어도 된다고 습관적인 관대함을 펼치려던 마음도 접었다. 작가조명을 통해 책도 다시보게 되었다.

 

 가을을 보내는 동안 천천히 아직 더 읽어야하지만 미리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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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이랑 지음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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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펼치자마자 숨이 턱 막힌다. 솔직히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작가의 책이니 속시원한 까발림?같은 것도 있고, 그 당당함만큼의 벌이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월달 수입 42만원, 2월달 수입 감사하게도 96만원의 선명한 글씨가 눈에 들어오자 내 마음이 먼저 텁텁해졌다. 하필 또 오늘, 그동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구장창 사마시다가 이때에만 우유와 당분이 들어간 따뜻한 커피를 시켰을 줄이야. 벌컥 시원하게 들이켤 것도 없이 목이 마르고 입이 텁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오죽했으면 돈이 필요하다고 해야 했을까. 인생이 뭐 그렇게 시원시원했으면 이런 글도 없었겠지, 뒤늦은 자각이 온다.

 

 보여지는 삶은 멋졌다. 책안쪽 날개에 실린 압도적인 분위기의 사진도 그렇고, 시상식에 참석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예술가의 삶. 재능도 많은지 이것저것 하는 일도 다양하다. 작가는 이런 자신을 두고 남들은 하는 일이 많아서 돈을 잘 벌거라 생각하지만 아니라고 말하는데, 이것저것을 하는 것 자체가 슬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재능과 용기가 그 안에서 빛나는 것 같아서. 그럼에도 불쑥 들이밀어진 숫자 얘기에는 부럽다는 말도 갈 길을 잃는다. 저 특별함과 돈의 문제가 보기와는 다르게 반비례하는 것이라면 그 용기도 재능도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는 것이 더뎠다. 사실 나에게도 작가 지인이 있다. 이랑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그가 때로 흘려두는 팍팍함을 주워놓았다 만나서 밥이라도 한끼하고, 차라도 한 잔 할때 조금이나마 펴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작고 별 것 아니었어서 씁쓸했다. 그도 나에게 차마 다 하지 못한 말들이 이렇게 있었겠지 싶고, 어차피 서로 없는 처지에 때로 만나 밥 한 술 같이 하는 것으로 얼마나 위로가 될 수 있었을까 싶어졌다. 외국에 나가서 며칠을 머물고, 지방 이곳저곳을 돌고, 서울 어디를 찾아 강연을 하던 그의 바쁨이 책 안에 옮겨놓은듯 그대로 담겨있었다.

 

 읽으면서 전부 다 마음을 씁쓸하게만 했던 것은 아니다. 틈마다 비집고 들어선 짧은 만화들은 별 내용이 아닌데도 재밌다. 파란색 입술을 한 사진을 떠올렸을때, 소담하고 아기자기한듯한 만화의 분위기랑 잘 연관이 안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상하게도 일상적인 내용이고 짧고 단순한 그림인데도 마음이 간다. 사실 잘 모르던 작가였는데 다른 책들도 궁금해질만큼 괜찮았다. 책의 글들도 매우 솔직하고 인간적이라 예술을 하는 나랑 다른 사람의 삶이라는 느낌이 덜했다. 분명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는 맞는데, 큰 흐름에서는 공감되는 생활이 묻어나는 점이 좋았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분위기였지만, 오히려 더 좋았다. 요즘 많이 보이는 힐링에세이들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먹고 사는 일에 대해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제들이 끼워져있어서 저자의 여러 면모를 조금씩 엿보는 것 같다. 2부의 첫 내용에서는 당황하기도 하고, 4부의 어떤 내용에서는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누군가 가까운 사람이 아플일이 점점 많아지는 나이가 되니 이렇게 전해듣는 이야기도 그냥 넘기기 어려워진다. 이상하게도,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음 잘 여미고 살아야지 싶은 다짐이 들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스스로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아마 20대 후반, 30대를 넘긴 여성이라면 공감할만한 여운이 아닐까 싶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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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에게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 나를 잃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심리 안내서
휘프 바위선 지음, 장혜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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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와는 한동안 만나지 않았었다. 연락조차 주고 받지 않았던 시간이 길었지만, 그런 것쯤은 문제되지 않는 사이다. 작년, 오랜 침묵 끝에 그녀가 먼저 연락을 주었고 마침 내가 사는 곳 근처에 볼일이 있기에 겸사겸사 얼굴을 보기로 했다. 늘 그렇듯 그녀는 밝고 쾌활했다. 농담을 주고받는 일이 자연스럽고 잘 웃었다. 밥을 먹고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의 볼일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여전한 태도로 우울증 때문에 병원에 다니고 있고, 병원이 이 근처라 진료를 보고 오는 길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내가 어떤 얼굴로 어떤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 자신의 모습이야, 스스로 보면서 말할 수 없으니 기억하기로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라고 조언해주는 글을 어디선가 본 것도 같은데 막상 느닷없는 대면은 당황스러웠다. 그녀를 소중히 여기고, 그녀의 낙관적이고 명랑한 모습을 좋아했던만큼 마음도 소란스러워졌다. 그날 이후로 자연스럽게 병원에 방문하는 날이면 얼굴을 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시간을 보내다가도 문득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소중한 사람에게 우울증이 찾아왔'을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정말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서 책을 읽었다. 마음으로는 하나부터 열까지 알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구태의연한 조언같은 것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제약된 태도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그게 더 부담이 되는 건 아닐까. 우울의 증상들을 보면서 지금 나는 어떤가 헤아려보기도 했다. 수면에 대한 고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유심히 읽었다. 수면에 관한 부분은 너무 해당되는 점이 많아서 다른 부분들이 좀 겹치는 것 같이 느껴진다면 상담을 받아볼까 생각도 해봤다. 대부분의 경우 염려하는 것에 비해 내원이 필요할만큼 증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들은 하지만.

 

 처음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요즘은 우울이나 공황으로 병원 많이들 간다고, 약 먹고 꾸준히 치료받으면 괜찮아질거라는 말을 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을 하는 것을 권하지 않았다. 힘들겠다고 공감하고 위로를 해주는 말을 추천해서 당황스러웠다. 오히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겨주면 상대방의 부담이 덜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런 말이 괴로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쉽게 말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으려나 싶었다. 내 입장에 비했을때 상대방이 평이하게 대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누군가가 또 우울을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고민이 좀 됐다.

 

 아주 밀접하게 생활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책에 나온 내용들로 어떤 도움이 될만한 행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다만 지금 어떤 상황일지 혹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밖으로 나와 나를 마주하고 있을지는 조금 짐작을 해보게 된다. 그녀 뿐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병을 거쳐갈지 모른다. 어쩌면 나에게도 우울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럴 때 이 책의 내용을 떠올리면 생각이 좀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룸펠스틸츠헨 효과(189)처럼 이름붙인 것, 정체를 아는 것에 대해서는 덜 당황스러울테니. 책을 읽고나니 지금껏 알아온만큼 그녀를 오래도록 보리라 마음먹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괜찮아질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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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이자벨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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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략...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걸 원해. 뭔가를 수중에 넣어도 금세 느끼지. 원하던 게 아니었다는 걸. 우리의 인생에는 그런 일들이 너무 많아. 사랑도, 이상도, 고통도 다 그래. 우리는 계속 꿈꾸지. 당신은 아직도 여전히 사랑을 꿈꾸지?" (417) "

 

 어렸을 적에 좋아했던 소설이 떠오르는 책이었다. 성인 여성 독자들을 겨냥할만한 내용이 아닐까? 젊은 층에게는 어필하기 어려운 감수성인듯 하고, 요즘은 이렇게 쿨하지 못한 관계를 '고구마'라고 기피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적당히 나이먹은 입장에서는 옛날에 읽던 책들과 비슷한 분위기라 술술 읽혔다.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로맨틱하고 약간은 그늘이 진 듯한 우울함이 깔려있는데 이런 분위기를 좋아할만한 독자가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제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재밌게도 번역을 통해서 다듬어졌겠지만, 읽으면서 담담한 문체가 꼭 오후의 빛깔을 띄는 것 같단 생각도 했다.

 

 '오후의 이자벨'을 읽으며 마주한 이자벨과 샘의 관계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사실 없을 '프랑스식 부부생활법'에서 암묵적으로 파생된 관계라 하더라도, 결국은 불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리 잘 포장된 채로 오랜 시간을 이어갔더라도 실제로 인터넷 상에 올라오는 글이나, 재연 프로그램 같은데서 보게 되는 막장 이야기와 크게 다를 게 없는 걸까 싶어 읽으면서 머리속이 복잡했다. 요즘을 떠올리면 더욱 극단과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일밖에 없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배경이 70년대라 그런지 전개가 잔잔했다.

 

 사랑뿐 아니라 삶이 스러져가는 과정이 담겨있는 책이라 읽으면서 그 찬찬한 시간의 흐름이 좋았다.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들의 행동도 있고, 가끔은 이렇게 지나가는 것이 인생인가 싶을 부분들도 있었다. 샘에게 남은 시간이 어떻게 될 것인가, 더이상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 없이 그가 그릴 수 있는 미래를 이루며 살아가게 될까. 궁금해하며 책을 덮었다. 처서가 지났으니 앞으로 다가올 가을에 읽는다면 좋을 책이다. 책을 읽는다면 어쩐지 가을에 읽고 싶을 책이란 말에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여름이 남아있지만 낙엽이 질 때 쯤에 다시 꺼내들어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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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도리스 메르틴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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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투스란 생소한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이 책이 과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몇몇 날카로운 문장들이 인상적이었다.  "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우리의 아비투스와 가장 걸맞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자신의 본질에 맞게 산다고 느낀다.(21) " 내가 가진 아비투스는 어떠하지? 이런 구분을 나누는 것이 과연 유용한 일일까? 현실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더 천박한 구분은 아닐까? 의문이 생겼다. " 그러나 동시에 한계에 부딪히고, 새로운 환경에 진입하자마자 기존의 아비투스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근본적으로 잘못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것이 불안감을 만들고 자신감을 갉아먹는다. 새롭고 어색한 사회적 코드에 익숙해지려면 학습이 필요한데, 그런 걸 가르쳐주는 인터넷 강의는 없다.(30) "

 

 하지만 사회적 계층에 대해 다루고 있다보니 흥미로운 내용도 많고, 직접 경험해보며 느꼈던 것들이 떠오르며 공감되는 내용도 많았다. 새로운 사회적 코드를 알려주는 인터넷 강의는 없다는 말에서, 우리가 처음 고급 레스토랑을 방문했을때 느껴볼 법한 어색함이 생각났다. 이를테면 식기의 사용 순서와 방법 같은 것. 가장 기본적인 이 테이블 매너는 익숙해지기까지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낯선 외국어로 쓰여진 메뉴판, 음식과 와인의 마리아쥬 같은 것들은 쉽게 얻어지는 익숙함이 아니다. 이런 것들을 떠올리니 책에 확 관심이 갔다.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의 카테고리 안에서 또 어떤 것들을 말하고 싶은 걸까. 무엇을 공감하고 얻어갈 수 있을까 기대하며 읽었다. 

 

 안타깝게도 첫 심리자본의 내용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저자의 현실인식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 누군가에 대해 '그 사람은 급이 다르다'라고 말할 때, 돈과 외모 혹은 출신 배경을 뜻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보통 '급'이란 그 인물의 마음의 크기, 즉 '그릇'을 가리킨다.(39) " 사회적 차이일수도 있고 개인적인 오해일수도 있는데 '급'이 가리키는 의미에 대해서 우리는 돈과 외모 혹은 출신 배경을 뜻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흔히 연예인들을 말할때도 A급 탑급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이때는 마음의 크기를 전혀 의미하지 않는다. 비급 영화 같은 말이나, '너랑은 급이 달라'로 쓰이는 상투적인 드라마 대사에서도 급은 사회적 계층이 다르다는 말로 통용된다. 아비투스, 믿어도 되는걸까.

 

 문화자본 아비투스에 들어서면서부터 최근 지인과 나눴던 대화의 주제와 비슷한 내용이 나와 흥미롭게 읽었다. 자신만의 취향을 중요시 여기는 요즘 세대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비투스에 나온 " 돈은 있지만 품격이 없다! / 취향이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84) "는 맥락의 흐름은 소비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요즘 세대의 모습이 엿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편집숍에서 옷을 구매하고, 펜을 하나 사더라도 정해진 브랜드를 산다는 얘기를 전해들으며 거리감을 느꼈었다. 다만 이런 소비 성향 차이는 계층의 구분도 될 수 있지만 세대별 차이로도 나눠지지 않을까 싶었다. 이 합리적인 젊은 소비층들은 자신의 관심에 따라 소비의 폭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3장을 읽으면 읽을수록 문화 향유에 있어서 더이상 계층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음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은 최상층이 만들어 낸 신기루가 아닐까?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고 믿게끔 만들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의식을 덜어낸 것이 아닐까? 틈새로 비어져나온 것들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좋아보이는 것을 경험하고 추구하는 것과 향유하는 것의 차이에 무뎌지게 만드는 건 아닐까? 딱히 고소득층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채식을 하고, 유기농 제품을 사용한다. 클래식에 취미가 있는 사람은 조성진의 해외 공연 투어를 가기도 한다. 경계의 구분이 없다고 느껴지게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확고한 구분이 만들어 낸 열망이 구분선이 흐렸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가장 재밌게 읽은 부분은 5장의 경제자본이었다. " 행복하지 않은 상황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돈이 없는 상황이다.(167) " 돈에 대한 노골적인 찬양이 나오기 때문에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이를테면 인터넷에서 흔히 나오는 말장난인 '젊을 때는 돈이 최고인줄 알았는데, 나이들고보니 생각보다 돈이 더 최고였다' 식의 내용을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빌어 옮겨놓기도 했다. " 사람들은 가상 게임에서 게임 머니만 넉넉해져도 금세 태도가 바뀐다. 실생활에서는 오죽하겠는가.(173) " 같은 폴 피프의 실험 내용들도 그렇고 황금만능주의 사회의 민낯, 거기에 졸부의 천박함을 경계하고 찐부자의 고급스러운 생활 방식에 대한 찬양을 오히려 속물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외모'에 대한 내용이 이어지는 신체자본에서도 계속된다.

 

 읽기 전에는 언어자본에 대해 가장 관심이 갔었다. " 내가 쓰는 언어가 내 지위를 드러낸다(240) "는 문장도 그렇고, 요즘 사회문제들이 거친 언어 생활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카운터시그널링'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인상적이었다. 성공한 사람의 겸손한 자세를 뜻하는 말(253)이라고 하는데, 보스턴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말로 자신이 하버드 졸업생임을 드러낸다는 예시가 있었다. 예전 '검사외전'이라는 영화에서 강동원이 서울대 과잠을 입고 관악구쪽에 있는 학교를 다닌다는 말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서울대학생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장면이 떠올랐다. 사기꾼의 수법으로 나온 돌려말하기가 사실은 자신을 둘러 표현하기 위한 심리학 용어도 있는 화법이었다니.  

 

 책의 갖고 있는 이미지에 비해 재밌게 읽었다. 딱딱한 내용일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익숙한 내용들이 많았다. 계급 상승을 위한 조언을 담고 있기 때문에 통찰이 느껴지기 보다는 거부감이 드는 구분들도 있었다. '최상층에 오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최상층으로 구분되는 모든 것들이 정말 더 가치있고 좋은 것인지 의문도 가지게 된다. 무엇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며 읽어야 될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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