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성의 결정은 의심받을까?
터리스 휴스턴 지음, 김명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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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이란 말 자체가 혐오되고 부정되는 현실에서 어떤 것이 진짜 맞는 길일까 항상 생각해보게 된다. 여성은 세계와의 싸움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요지의 한 교수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현실을 비판하고 천장을 깨려 돌을 던져야 할 때조차 여성은 그것에 도전하려는 자신이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지부터 따져 묻는 자기검열의 코르셋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교수의 논조였다. 그때 '아!'하고 놀랐으나, 아직도 예민하고 민감한 주제로 다뤄지는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검열'이 그치지 않는다. 특히나, 일부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의 등장 조차도 원색적인 비난이 되는 시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개인적 고민이 이 책의 내용과 비슷한 뜻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관심이 갔다. 만약 반페미니즘 성향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페미니즘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가진 한계나 받는 차별은 분명 존재한다는 의식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항상 핑계가 많고 자신의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하던 남성직원에 대한 따끔한 질책이 훗날 '이유없이 자신을 싫어하는 선임'이라는 표현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왜 여성상사의 지시나 명령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은 채 상대방을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표현할까.

 

 "사람들은 여성과 남성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똑같이 힘든 감정을 경험할 때도 여성이 감정을 내비치면 더 가혹하게 평가한다.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분노가 번득이거나 감정이 상했을 때의 표정을, 그녀가 진짜 감정적이거나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창으로 여긴다. 다시 말해 성격적 결함으로 여기는 것이다. 헌트의 말에 따르면, 그런 여성은 남성과 함께 연구실에서 일하지 않는 게 좋다. 똑같이 좌절하거나 풀 죽은 표정인 남성은? 그 표정은 일시적인 것이다. 하필 운 나쁜 날 그를 목격했을 뿐이다. -p.287 5장 스트레스는 여성을 취약하게 하는 대신 집중하게 한다" 

 

 책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부분이 있었다. 때문에 특히 해당 장은 유의하여 읽었는데, 특별히 예상을 넘어서는 해석은 없었다. '여성은 감정적이다'는 흔한 고정관념이 이런 해석을 야기하는 것이다. 다만 명료히 정리되어 있는 내용을 읽으며 개인적 체험 역시 갈무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물론 이 책에서도 여성이 가지는 특질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있다. 여성과 남성을 넘어 성의 구분이 이분법이지 않은 시대에서 이를 나누는 것 자체가 불만족스러움을 주지만, 이 특질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감안하고 읽을만한 수준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여성의 행동에 대해 '여성적 특질'로 구분지어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전형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여성은 공간감각 능력이 뒤떨어져서 운전을 잘하지 못한다는 '김여사'라는 표현이 그 대표적인 예다. 미숙한 운전 실력으로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개개인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운전을 하는 사람이 집에서 밥이나 할 것이지 운전대를 붙들고 나온 여자들인것만은 아니다. 이들이 좀 더 주의깊게 운전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은 당신을 답답하게 만들지라도, 혹은 벼락같이 당신의 앞을 차지해 휙 달려가버린 얌체로 느껴질지라도, 이들 모두가 '김여사'로 통칭되며 능력이 더 낮은 존재로 치부될 수는 없다. 

 

 우리는 사회가 원하는 역할상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는 넓게보면 남녀노소를 떠나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사회에서 요구되는 각각의 역할에 맞춰 개인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우리가 '코르셋'이라고 부르는 '**는 **해야한다' 류의 이미지가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역할에 대한 제약을 넘어서 권리와 의무에 대한 제한까지 이어진다면 이를 개선해야함은 분명하다. 이전에 담론화되지 않았던 문제이고, 고정적인 관념으로 굳어진 문제를 깨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 변화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알고 자신을 정립하기 위해서 더 많은 텍스트를 접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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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면서 채워지는 이상한 여행 - 탕가피코 강에서 배우는 나눔의 규칙 모두가 친구 35
디디에 레비 지음, 알렉상드라 위아르 그림, 마음물꼬 옮김 / 고래이야기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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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방학을 맞아 아빠를 만나기 위해 탕가피코 강을 따라 밀림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소년 마르쿠스의 이야기가 담긴 이 그림책은 탕카피코 만의 독특한 규칙이 함께한다. 배가 정박하는 곳에서 누군가의 물건을 받으면 그 대신 자기가 가진 것을 하나 내어 줘야 하는 것이다. 이 독특한 규칙이 눈길을 끄는 동화책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의 마음도 술렁이게 만든다.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나누는 것보다 받은 것에 익숙한 우리가 자신이 가진 것을 남과 나누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 가진 것을 덜기도 참 어려웠는데, 다른 이에게 준다는 것은 더 힘들것이다.

 

 탕가핑코 강을 여행하며 낮선 여자아이에게 자신의 엠피쓰리와, 게임기를 나눠줘야 하는 마르쿠스는 이제 겨우 아홉살인데, 어른들도 실천하기 어려운 나눔을, 과연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나누면서 채워지는 이상한 여행'을 읽었다. 마르쿠스는 게임기 대신 무엇을 얻게 될까?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마르쿠스는 "정말 끔찍한 여행이야."라며 떠나온 집을 그리워한다. 모험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마르쿠스에게 벌레가 많고 더운 밀림으로의 여행은 버거운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르쿠스의 마음이 점차 변화한다. 나누고 가벼워질수록 마르쿠스를 답답하게 만들었던 것들이 없어져간다.

 

  진하면서도 따뜻한 색감의 그림과 함께 신비한 여행에 동참하는 기분으로 동화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몇가지 아쉬운 부분이 공들이 그림과 색감에 비해 글씨가 단조롭고 다소 묻히는 느낌이 들었다. 전혀 개성적이지 않은 텍스트의 배열로 오히려 그림이 주는 감상을 방해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르쿠스의 변화가 다소 거칠게 표현되었다. 어른의 눈으로 봤을때, 짧은 내용으로도 전형적인 이유를 유추해낼 수 있지만 아이들은 왜 마르쿠스가 갑자기 변하게 되었는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엠피쓰리가 없고, 게임기가 없고, 신발이 없어지고 마르쿠스가 느낀 것이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아이들의 "왜?"라는 질문에 어른의 시선으로 넘겨짚은 '정답'을 알려주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약간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탕카핑코의 규칙을 활용해서 놀이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하루나 시간을 정해두고 탕카핑코 활동을 해보면 어떤 물건에 관심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경험을 해보기도 하는 등 이색적인 체험형 독후활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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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재테크의 미래 - 대한민국 미래의 부를 창출하는 새로운 투자법
정재윤 지음 / 다산3.0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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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나아가 2030년의 한국과 세계 경제는 어떤 상황일까. 언제든 역사적이지 않은 시절이 있었겠느냐마나는, 지금 이 시대 역시 급진적이고, 역사적인 순간임이 분명하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바꾸는 우리 경제의 미래는 무엇일까. 기술 발전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은 예전 2000년 닷컴 버블, 2008년 모바일 혁명 때에 비하면 훨씬 적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장 큰 우려는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면 어떡하나'이다. -p.40 1장 저금리 저성장 시대와 4차 산업혁명의 엇박자" 


 거의 모든 영역에서 4차 산업혁명에 관한 화두가 오르내린다. 이제 정말, 세상에 또 한번 변화가 찾아오려는 것이다. 편의점 계산대에 아르바이트생 대신 바코드 기계와 자동 포장 장치가 설치된다는 것 말고도 이 변화를 가까이 체감할 수 있는 것이 있었을까. 4차 산업혁명에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노동 시장의 변화일 것이다. 이에 맞춰 어떤 인재가 되어야 할 것인가, 혹은 인력은 어떤 식으로 소비되어야 하는 것일까가 그동안 접한 4차 산업혁명 관련 도서들의 주 내용이었다면, 다산북스에서 내놓은 이 신간 "4차 산업혁명 재테크의 미래"는 그보다 더욱 실제적인 문제인 '돈'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변화를 통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는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종내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고 어떤 식으로 충족시켜야 하는지가 관심사인 것이다. 다소 낯선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흥미롭게 읽었다.


"물론 특별한 재주가 있는 사람도 아주 가끔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에게 그런 행운이 올 거라고 생각하거나 기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전 재산을 로또 사는 데 쓰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그렇다면 은행도, 증권사도, 보험사도 믿을 수 없고, 금융 전문가도 믿을 수 없다는 건데, 도대체 어디에 투자하란 말인가 싶을 것이다. 이제부터 어디에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할지 하나씩 차근차근 찾아보자. -p.106 3장 우리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금융상품"


 초반은 우리가 다루어야 할 주제인 돈과 4차 산업혁명의 변화 양상에 대해 가볍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돈의 흐름과 관련된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가 흔히 저지를 수 있는 계산 오류를 연상하기도 했다. 이는 "10만 원권 상품권이 구입되어 세사람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는 과정을 통해 통화량을 가늠하는" 내용이었는데, 이 내용을 읽으면서 흔히 "보석상이 손해"라고 지칭되는 간단하면서도 아리송한 퀴즈를 함께 떠올렸다. 아마 몇몇의 사람들은 저 키워드 만으로도 연상되는 퀴즈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두 문제는 돈의 흐름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우리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눈 앞의 오류를 지나치는 실수를 범한다는 사실을 드러내준다. 돈과 셈에 약한 편이라 다소 빠르고 간단하게 넘어가는 흐름을 다 따라잡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간 접했던 다른 책들에 비해 4차 산업혁명과 재테크의 영역에 대해 가장 전문적인 내용을 대중적으로 담아낸 듯 하다.


 또 하나,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부동산에 관한 내용이다. 인구절벽을 바라보는 위기론과 도심과 그 외 지역의 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평소에도 관심있게 생각한 주제였다. '부동산 불패 신화',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만연한 현재 흐름에서 앞으로 더 달라질 것이 있을까 궁금한 점이 많았다. '깡통 주택' '하우스 푸어'같은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달라진 생활 양식에 따라 부동산, 특히 주택의 보유가 과거만큼 중요시되지 않는 모습도 보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우려했던 점들과 비슷한 내용들이 많이 등장해 특히 관심을 두고 읽었는데, 이에 관해서는 명료한 전망이 제시되지 못한 채 짧게 마무리 된 점이 아쉬웠다. 다만 "아무 집이나 사도 무조건 오르는 시대는 지났다."는 관점과 강남을 대체할 만한 집중 지역이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을 강조하고 정부 정책으로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려는 시도가 있지만 그것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며 "좋은 입지의 부동산을 차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마무리를 한 점이 재밌었다.


 과거 금리가 높던 시절엔 그저 벌어온 돈을 우직하게 은행에 넣어두기만 해도 목돈이 저절로 쌓였다. 은행이 망한다는 충격적인 사건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큰 이익은 없어도 아무 리스크없이 자산을 불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넣어만 둔 돈에 붙는 수익은 제로에 가깝다. 혹 앞으로는 은행에 돈을 넣어두면 오히려 돈이 깎여나갈 것이라는 농담아닌 농담도 들었다. 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운용하는 것이 중요해진 때에 다양한 흐름을 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다만 다소 전문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평소 경제 용어에 익숙하지 않다면 쉽게 읽어넘길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진입 장벽이 있을지라도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눈을 뜨기 시작한 초년생들에게 특히 도움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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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세사르 바예호 지음, 고혜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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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때로 시집을 읽지만 한동안 뜸했다. 어제 하루종일 날이 흐리더니 오늘은 제법 춥다. 온종일 거리를 쏘다니다 돌아온 이가 길바닥엔 은행이 떨궈놓은 흔적이 폭탄처럼 늘어졌다고 푸념했다. 별 일 없는, 그래서 서러운 한 해가 하루처럼 가고 있다. 무상한 시간을 관조하는 9월의 저녁, 열어놓은 창가 곁에서 읽기 좋을 시집 한 권을 만났다. 다산책방에서 출간한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의 세사르 바예호는 어쩌면 익숙치 않은 시인이다. 하지만 그를 아는 이에게 세사르 바예호는 "무한한 애틋함[une infinie tendresse]-La Vie d'Adèle"으로 새겨질 만한 20세기 현대시의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절판 이후로 그의 시집에 목말랐을 많은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으로 다가온 이 시선집은 독특한 감각으로 눈길을 끌고 마침내 독자를 사로잡는다.

 

 시는 마치 소설처럼, 혹은 한 편의 일대기를 담아낸 흑백 필름처럼 거대한 흐름으로 다가온다. 그의 삶과 밀접하게 얽매인 시어들 속에서, 때로 치열하게 때로 깊은 구렁 안으로 파고들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시 안에 담긴 한 사람의 삶과 한 시대의 민낯이 산산이 부딪혀오는 충격을 안으며 이 "불행한 만찬"을 "데려와달라고 한 적이 없는" "눈물의 계곡"에서 "언제까지 여기 있"도록 머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세사르 바예호는 시를 통해 내면과 정신 안의 관념을 스치고 지나가는 인생의 찰나를 잡아채고, 삶 그 자체에 뛰어들어 날 것의 속살을 헤집어 드러낸다. 그리하여 다소 낯설고 이국적인 감각들 사이에서 가슴 깊숙이 내려앉는 영혼의 공명을 발견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낮고 어두운 구석구석을 감싸 지나는 시인의 애틋한 시선이 느껴진다. 인생이 싫었던 냉소가 아닌 연민으로.

 

 몇 편의 시들을 마음닿는 대로 소리내어 읽다가 그가 들려주려 했던 운율에 결코 닿지 못함을 좌절하기도 했다. 외국의 시를 접할 때마다 의미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한편, 옮긴이의 책머리에도 표현되어 있듯이 번역된 시 감상에 한계를 느낀다. 짧은 생각이지만, 원문과 번역본, 원어 음성으로 시를 녹음한 QR코드가 함께 있다면 감상의 영역이 폭넓게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이 쓰여진 모든 언어로 시를 감상할 수 없기에 늘 목마름으로 요구되었던 원문으로의 감상 욕구를 조금이나마 충족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닐까. 학습 교재에서는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원문 감상이 필요한 시집에도 도입된다면 좋을 것 같다. 때로 어떤 시들은 소리내어 낭송되는 그 방식으로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에서도 "아에이오우의 아픔"이 특히나 그런 경우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마음에 드는 시들을 한두편 감상과 함께 옮겨내어 볼까 생각해봤지만, 한권에 하나씩 읽어 모두가 내면에 켜켜이 쌓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재미있는 점은 처음 바예호의 시를 옮겼을 당시는 IMF로 위축된 사회 정서를 고려하여 표제로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가 선택되었던 것에 비해, 지금 새로이 개정증보판을 내며 선택된 표제작은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인 것이다. 약 20년 사이의 간극에서 얼어붙은 사회 안에서도 희망을 말하던 시집이 어쩌다 이제는 인생조차 싫은 날을 읊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말 예리하게도, 희망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기보다 나의 어제, 혹은 오늘, 어쩌면 내일일지도 모르는 인생이 싫었던 날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변화된 흐름을 잘 따라간 세련됨으로 감상 욕구를 자극하는 소장할만한 시집이다. 가을이 가기 전에 꼭 한 번 감상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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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놀이 2017-11-05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담아만 두고 아직 손을 못대고 있는 책입니다. 가을이 다 가는데 어쩌지요~~ 표제에 대한 지적은 테일님이 맥락을 제대로 짚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같아도 지금으로서는 바뀐 표제가 더 맘이 끌리네요~~

테일 2017-11-08 19:16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가을을 지나오는 동안 오히려 더 책을 덜 읽은 것 같습니다. 시월은 특히 더 그랬네요. 게으름을 피웠다기 보다는... 가을을 타는가 봅니다. 낯선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시집이었습니다. 언제라도 짬을 내셔서 한 번 읽어보시길... 11월까지는 가을이니까요. ^^..
 
여자의 미래 - 편견과 한계가 사라지는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라
신미남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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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소위 명문 대학을 졸업한 약 절반의 인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란 질문으로 시작된 한 프로젝트를 본 적이 있다. 그 절반의 인재들은 여자였다. 오래된 졸업 앨범에서 찾아낸 그들의 현재를 한명씩 찾아보니 대부분의 경력은 단절되어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가 되어 있거나, 전공과 무관한 소일거리를 겸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뜨거웠던 젊은 시절 사회를 일구는 주역이 되어 열심히 일하고 지금은 어느 정도의 자리에 오른 남자 동기들의 모습과는 현저히 다르다. 물론 시대가 변하기 전이기 때문에 더 전형적인 삶의 형태를 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도 세상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 많은 것들을 배운 여자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왜 여성의 능력은 평가절하되는 것일까? 왜 여성은 선택을 해야 하고,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 저자 신미남의 신간 '여자의 미래'를 통해 여자의 일과 삶에 대한 통찰을 살펴보고자 책을 읽었다.

 

 "전문가로 성장하는 길이 너무나 고통스러울 때, 포기하면 분명 편안해진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그 선택에 책임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육아와 일 사이에서 고통스러울 때 아이를 택하는 편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삼이다. 하지만 이때 희생한 내 인생을 보상받을 생각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옳은 길도 없고 틀린 길도 없다. 내가 옳다고 믿고 선택한 길이 나의 길일뿐이다. 분명한 사실은 여자가 어느 길을 선택하든 그 길 앞에서 한 번은 독해져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p.174 제4장 전문가"

 

 아직 시대가 다를 때, 자신의 길을 걷고 그 길에서 성공한 저자의 글 구석구석에서 그간 지나온 고된 여정이 느껴진다. 아이의 유년시절을 보살펴주지 못했지만 함께하지 못한 10년보다 인간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60년을 바라보며 더욱 가까워지려 노력한다는 내용을 보고, 어린아이를 두고 직장생활을 계속해나가야겠다 선택할때 죄책감만 갖기 보다는 장기적으로 보고 생각을 다르게 할 수 있구나 싶었다. 얼마 전 티비에서 한 여자 방송인이 이 문제에 대해 고충을 토로하자, 외국인 패널이 그녀에게 "당신이 남자라면 그런 고민을 하겠느냐"고 되묻는 장면을 봤다. 다소 탄력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건의 직업군이라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현실에서 저자가 말하는 "편견과 한계가 사라지는 새로운 세상을 준비"해야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기대되었다.

 

 읽으면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표현들에 새삼 지난 직장 생활이 어땠는지 돌아보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생각도 다소 굳어있다고 느끼게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과거 어머니 세대의 집안살림에 비해 자신은 1/10밖에 안되는 수고를 들인다고 하며 자신의 며느리 세대에서는 지금의 1/10도 안되는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하는 부분이었다. 자신은 어땠을지 몰라도 앞으로의 세대에서, 특히 여성도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에서 집안일을 며느리의 몫으로 정해두고 있는 부분은 불만스러웠다. 실용되지도 않은 홈봇이나 사물인터넷이 집안일을 도울 것을 예상하면서도 남편과의 가사분담에 대한 언급은 없다니. 저자의 삶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넓게 유익한 책으로 전달되기 위해 이런 젠더 감수성도 고려된 내용이 더 있었다면 좋겠다.

 

 또 다른 부분은 일터에서 만난 여직원들에 대한 사례들을 꼽은 내용이 아쉬웠다. 대부분은 능력이 충분하면서도 여성적 성향 때문에 이를 제대로 펼치지 못해서 아쉽다거나, 이런 식으로 태도를 바꾼다면 더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담은 내용이었기 때문에 아쉬운대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신뢰'의 문제를 얘기하면서 여직원들의 말을 옮기는 태도를 지적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아내 몰래 급여 통장을 이중으로 나눠달라 요구한 남직원의 행동을 부모에게 용돈을 주려고 하는 갸륵한 마음으로 표현했다. 물론 회사의 일과 개인적인 일의 구분을 두고 신뢰를 따지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신뢰라는 것이 공사를 나누어 판단될 수 있는 일일까. 이 남직원의 행동도 사람 사이의 신뢰를 깨는 일일 뿐더러, 무엇보다 사회 생활을 해보면 알겠지만 사내에서 말 옮기는 건 남녀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본인도 공주에서 무수리가 된 공대 재학 시절에 경험했던 부분임을 책에서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를 여성적 특성으로 대표하여 유형을 정해놓은 부분은 좀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여성들이 스스로 가정 경제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으면 좋겠다. 가정 내에서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기에도 스스로 경제력을 지니는 편이 좋지 않을까? 결혼은 오랜 시간 상대방과 함께 발맞춰 나가야 하는 기나긴 행진이다. 어느 한쪽이 으레 어려운 일을 감당해내야 한다는 법도 없다. 같이 꾸려나가야 든든하다. 그러하기에 우리 여성들도 우리 자신을 스스로 먹여 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걸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여성의 자연스러운 권리이자 의무로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p. 276 제6장 삶"

 

 저자가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또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만큼 일을 선택한다는 것에 대한 강조와 자부심이 큰 내용이다. 여성의 모든 선택은 존중받아야 하고, 반대로 가정을 선택했다고 해서 가정내에서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어느 쪽이든 어려운 일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은 똑같다는 것이 표현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차고 강한 어조의 글이라 시원스럽게 읽히는 한편,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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