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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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시를 접하는 사람들은 시의 낯섦이나 해독의 어려움에 부딪치며 멈칫한다. 뭔가에 가로막히는 기분이 드는 것은 시가 일상적으로 쓰는 생활 어법과 다른 어법을 쓰기 때문이다. 시는 은유라는 이상야릇한 수사법을 품는데, 은유는 일상 화법과 다르게-말하기다. - p.29 은유의 깊이, 은유의 광휘 " 

 

 저자는 "시를 읽어도 '우주에서 은하의 속도는 시속 100만 마일'이라는 지식을 얻을 수" 없음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불분명한 근간의, 명확하지 못한 우주라는 시공을 나름의 해석으로 그려낼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은 또 무엇일까. 문학적 상상이 그 안에 있다. 우리는 우리가 익혀온 이름난 시를 아끼고 사랑함에도 새로운 시를 마주했을때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던 낯섦과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은유의 힘' 안의 스물네 단락의 글을 읽다보면 그토록 경계했던 시읽기의 오독과 무지의 공포가 점차 옅어짐을 느낄 수 있다. 장석주는 '은유의 힘'을 통해 시인과 시라는 것들이 우리 삶과 분리된, 해석하지 못할 기호에 머물지 않도록 한다. 그는 시인을 "우리 주변에 즐비한 것들의 발견자"로, 시는 "삶을 이루는 모든 찰나에서 파열하듯이" 나타나 직관으로 낚아채진 번개와 같은 빛줄기로 묘사한다. 이는 시와 시인이 우리와 다른 것을 보고, 보여줌을 드러내지만 한편으로는 괴리되지 않았음을 말한다. 실제로 시에게로 다가가는 과정을 통해 "우주에서 은하의 속도는 시속 100만 마일"이라는 지식을 얻지 않았는가.  

 

 장석주는 '은유의 힘' 안에서 수많은 은유들을 논한다. 이는 "인간은 스스로가 만물의 영장, 우주의 주인이라는 믿음", "오만한 영장류의 시대"를 시인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에서 보여주는 목가적 소망의 노래에 대입하기도 하고, "실재계를 비추지만 현전을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닌 '거울'이라는 장치를 통해 인간 자아 발달을 얘기하기도 하고,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가르는", "기호이자 상징체계"인 언어의 역할을 드러내기도 한다. 더불어 그는 "보다 정교한 상징체계를 기반으로" 삼으며 "전복과 파괴라는" 망치질에 단련되는 시와 철학의 유사성, "세계와 대면하는", "감각의 확장"을 유도하는 몸과 그 안에서 "신체라는 영토를 탈주해 독립된 지위를 갖는" 얼굴에 이르기까지 감각과 기관으로 확장-세분되는 것들에도 주목한다. 시인은 인류 최후의 목소리이며, 일곱번째의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는 존재이고, 말을 모으는 사람이며, 이 말들은 기호이자 이름이고 얼굴이며 비로소 완성되어 현존하는 의미이자 본질이 됨을 강조한다.

 

 문학작품 안에서 은유의 상징과 의미를 정답찾기 하듯이 찾아낸 교육 아래에 길러진 수많은 '**년생 아무개'들을 돌이켜보자. 그것은 자신의 얼굴이며, 떠올릴-떠올릴 수 없는 또다른 수많은 얼굴들이다. 대학 강의실, 한 교수의 입에서 "어둠은 모조리 일제고, 빛은 죄다 조국의 해방이냐"는 일갈을 듣기 전까지,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의 자투리들을 파헤치며 정답을 찾아냈던 기계에 지나지 않았다. 시인 장석주의 신간 '은유의 힘'은 기계들에게 던지는 -살충제 성분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계란이다. 굳어져 무디고 어쩌면 녹이 슬었을 기계에 던져지는 계란이 기계 작동의 매커니즘을 일거에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이는 얼굴과 기계를 향해 던지는 작은 충격과 균열을 주는 시도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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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 - 페미니즘이 이자혜 사건에서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 우리 시대의 질문 5
양효실 외 지음 / 현실문화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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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 말해지거나 더 말해진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를 잃고 혼란스러워진다. - p.105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를 읽기 위해 우선 문제가 되는 "이자혜 사건"부터 찾아봐야 했다. 현실문화에서 나온 우리 시대의 질문 다섯번째 시리즈인 이 책은 "페미니즘이 이자헤 사건에서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 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의 275쪽에 약간의 정보가 기재되어 있지만 그로서는 정확한 내용을 알기 어렵고 따로 포털을 검색하여 해당 사건을 갈무리하여 이 책의 출간 의도와 배경을 알아야만 했다. 누구나 책을 읽기 전에 해당 사건에 대해 알아야 하겠지만, 이 사건을 알아본다면 이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정확히 판단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쟁점이 되는 성관계에서 두 주체의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여부부터 시작하여, 당시 미성년이었던 피해자의 선택에 주체성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도덕적, 사회적 문제도 얽혀있다. 거기에 제 3자인 이자혜의 성폭행 공모/조장이 있었는지에 대한 여부까지 간다면 더욱더 복잡해진다. 이자혜가 그려낸 창작물들과 남겨놓은 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안의 글들이 보여주는 당혹스러운 폭력성과 원색적인 욕망의 적나라한 표출은 현실과의 경계를 교묘히 이용한 이입과 조롱의 단면이기도 했다. 알아보기 위해 건드렸다가 더욱 복잡해진 눈으로 '당신은 피해자입니가, 가해자입니까'를 읽었다.

 

 쟁점은 이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 혹 모두가 순결하고 정의로운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 이자혜가 닿아있는 모든 부분에서 그를 제거하여 삭제해버렸다는 점이다. "소비자본주의는 이제 '유저' 혹은 '독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비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도덕적인 행위는 이제 윤리적인 소비자가 문제시된 생산물, 혹은 생산자를 시장에서 축출함으로써 실현된다. 성폭력 사건에 연루된 소설가, 시인의 작품을 삭제하라는 요구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을 시장에서 쫓아내라는 요구들은 그 작품 내지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된다는 식으로 개념을 과도하게 적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윤리의 이름을 내건 집단적 알리바이 만들기에 가깝다. - p.44 페미니즘이 해시태그를 만났을 때" 공공연히 알려진 유명인에 의한 폭력/피해 사건의 피해자들이 이를 알리면서 원하는 것이 사과와 보상 그리고 유명인인 가해자를 공적인 매체에서 더이상 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이자혜가 '제거'된 각계각층의 빠른 피드백이 대중의 요구에 발빠르게 부합한 점으로 보인다. 부정을 저지른 자의 창작 또는 공공연한 사회/경제적 활동은 사회윤리 의식에 반하는 결과를 보인다. 수많은 '청산'들은 시대의 과제이고, 우리는 그토록 빛이 어둠을 이기고 진실이 거짓을 이기는 사회가 되길 바라왔다. 자신의 욕망과 이기로 타인을 상처입히고 손해보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그의 죄과와 별개로 구분되는 창작/사회/경제 활동으로 인해 대중의 지지를 얻고 이익을 보며 지내고 있다면 그러한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었다.

 

 사건을 바라보는 개인적 관점 때문에 서문에서부터 이어지는 내용들이 편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많은 관점들이 "이자혜는 여자이기 때문에 수 시간만에 밥줄이 끊겼다(이 주장을 반박할 만한 근거가 있다면 제발 알려달라). - p.120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며 그의 제거됨의 부당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계속하여 만약 자신이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고려해보길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미지가 경험하는 세계는 두말할 나위 없이 21세기 한국사회의, 여성의, 청년의, 빈곤 계층의 경험이 녹아 있다. - p.172 오해의 세계" 는 점에서도 이미 삭제된 이자혜의 창작물들 중 남아있는 몇 편만을 본 지금에서도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음을 밝힌다. 공통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그렇지 않다면 미자를 통해서 느꼈을 공감을 부정하는 것이고 자신은 깨끗하길 원하는 위선'이라는 시선 역시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한편으로 이자혜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이들이 쓴 글을 읽으며 만약 내 지인의 일이라면 다른 면모를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동감을 한다. 이 이상의 것들은 더이상 판단할 수도 말할 수도 없는 것에 부친다. 현시점에서 가지고 있는 뒤늦은 부스러기들로 이만큼의 입장을 드러낸 것 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이다.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언급하는 일 만으로도 부정적인 것으로 취급/분류되는 날선 분위기와 무엇도 결론나지 않은 채 소멸된 사건의 흐름이 그러하다.   

 

 사건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275쪽의 개요와 197쪽의 '도덕적 폭력, 그 상큼한 쾌락의 원천'에서 다시 서문으로 이어지는 순서로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65쪽의 '이 여자들을 보라:애드리언 리치의 '강간'과 비르지니 데팡트의 강간 이론'인데 이자혜 사건과 거리감을 둔 글로 맨 처음 혹은 가장 마지막에 읽는 것을 추천한다. 전체적인 흐름을 잘 아우르는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이자혜와 거리를 둔 내용의 글이 더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심정적으로 그녀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입장에서 사건을 해석한 글도 접해보고 싶었다. 번외로 아쉬운 점은 우리 시대의 질문 시리즈가 꽤 좋은 기획으로 출간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목록이 있는지 찾아봐도 검색이 잘 걸리지 않는다.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1,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2, 곁에 서다 3 까지만 대표 포털에서 검색되고, 인터넷 서점에서도 헬조선에는 정신분석 4 까지만 확인된다. 다섯번째 시리즈까지 나왔는데. 시리즈 디자인을 좀 더 통일감있게 해서 시리즈 느낌도 팍팍 내주고, 검색에서 확인될 수 있게 출판사 블로그에서도 강조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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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은 길 소금창고 그림책 1
잔니 로다리 글, 풀비오 테스타 그림, 이현경 옮김 / 소금창고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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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유명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있다. "...전략...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라는 잘 알려진 내용이다. 잔니 로다리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아이들에게 전하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었다. 전자가 좀 더 생의 비애와 수수께끼에 대해 은유적인 분위기를 풍겼다면 후자는 마치 권장 캠페인처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어른의 눈으로 책을 읽은 결과, 이 짧은 동화 안에서 세 번의 예상 외의 줄거리를 맞닥뜨렸다. 고집쟁이 마르티노가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길을 떠나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길을 걸으면서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이 첫번째였다. 두번째는 도착한 성에서 고집쟁이 마르티노에게 권했던 보물들을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그것을 마을 사람들과 고루 나눴다는 점이다. 이것들이 이 짧은 동화를 다른 것들과 다르게 느끼게 만드는 점이기도 하면서 어른의 눈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기도 했다.  

 

 남들과 같아지지 않을,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지 않을 주체적인 사고를 가지도록 도와주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길이 어디선가 나타난 한 마리의 개가 길잡이 역을 해줄 순탄한 길이 아닐 수 있음을 그래서 고집쟁이 마르티노 역시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길을 갔음을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을 읽을 어린아이들이 차차 자연히 알게 될 현실이지만, 빠져있으니 어쩐지 '만약에 이 길에 사나운 개가 가로막고 있다면 어떻게 할 거니?'하고 물어보고 싶어지는 부분이었다.

 

 두번째는 고집쟁이 마르티노의 성실함, 요행을 바라지 않는 태도를 시험하기 위한 권유라고 생각했는데 쉽게 받아들이고 말 그대로의 포상이었음이 의외였다. 세번째는 가진 것을 나누면 더 많은 것을 바라는 다른 사람들의 욕심을 경계하는 마음에서 함께 나눴다는 점이 예상 밖이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어른의 눈으로 동화를 읽은 감상이라,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점을 가장 흥미롭고 즐겁게 생각할지 또 이런 부분들이 의외의 요소들로 느껴질지 궁금해졌다.

 

 책 안 가득히 펼쳐진 조화로운 삽화와 반복해서 읽어주어도 부담되지 않을 분량의 글 조합이 매력적인 동화책이다. 책을 권장할만한 연령층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유치원생인 조카는 이제 책 읽어달라는 말 대신 핸드폰이랑 컴퓨터 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에, 5세 아이들 정도까지에게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 혹 독후활동을 겸한다면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읽고 학년 별 독후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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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된 소녀들
정란희 지음, 이영림 그림 / 현암주니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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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올리는 오늘 8월 14일은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다. '나비가 된 소녀들'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하고 있다. 시대와 국가, 사회의 문제인 이 깊은 주제들을 어떻게 짧은 동화 안에서 풀어낼 수 있을지 궁금했었다.

 

 책에서 주인공 나연이는 열세 살이다. 나연이의 외증조 할머니인 넬마 할머니에게는 '넬마의 비밀'이라는 비밀이 있다. 넬마 할머니는 여성도 배워야 한다며 나연이의 엄마를 열심히 교육시켜 대학까지 보냈고, 예쁘고 똑똑한 엄마는 나연이의 자랑이자, 동경이다. 나연이는 엄마가 열세 살일 때 할머니께서 알려준 '넬마의 비밀'이 엄마가 멋지게 성장한 원동력임을 알고 그 비밀을 알고 싶어 한다. 좀처럼 한국으로 와 나연이네를 만나려 하지 않던 넬마 할머니는 과거 도움을 받았던 한국인 정복순 할머니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온다. 나연이는 넬마 할머니가 한국에 온다는 사실에 들떴지만, 곧 넬마 할머니로부터 '넬마의 비밀'과 한국으로 온 이유를 알게 되고 혼란에 빠진다. 넬마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로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게 속아 끌려가 위안부로 지내야 했던 과거가 있다. 넬마 할머니는 그것을 '넬마의 비밀' 불렀고, 그리고 나연이가 열세 살이 된 지금 그 비밀에 대해 알려준다. 

 

 여기서 나연이가 매우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아무리 요즘 아이들이 많이 똑똑해지고 성숙해졌다 하더라도 위안부 문제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충격적인 주제일거라 염려가 되었다. 주인공인 나연이는 성숙하게 극복하고 이해하게 되지만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참상을 전달하려면 제대로 된 교육과 많은 시간의 투자가 없이는 어린 아이들에게 충격을 줄 수도 있는 주제가 될 것 같아 읽으면서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나연이의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연이가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는 내용이 심각성에 비해 좀 가볍게 해결되는 모습을 보인 점이 아쉬웠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나연이의 감정 변화는 비교적 섬세하게 다루었으나 외의 다른 인물들의 행동이 너무나 빠르게 긍정적인 면으로 바뀌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특히 나연이를 놀리던 학교 친구들의 행동이 그렇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갈등이 남아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남아있다는 점도 보여주고 그것 역시 시간을 들여 풀어가게 될 문제라는 점을보여줬다면 좋았을 것이다. 더불어 바쁜 엄마와 나연이 자매들 사이에 있는 갈등이 어떻게 고조되고 해소될 것인지 궁금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예사로이 지나간 것 같아 아쉬웠다. 엄마가 하는 일을 함께 해보고 머리로는 이해한다고 해도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이해하는 척하게 되는 겉으로만 성숙한 아이가 되는 것일텐데 싶었다.

 

 짧은 동화지만 위안부 문제에 관한 내용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고 울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요즘만큼 많은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위안부 문제가 잘 알려지고 지속적인 관심을 받는 시기가 없는 것 같다. '나비가 된 소녀들'은 더 많고 정확한 기록을 남기고 알리는데에 힘을 보태게 될 좋은 동화다. 그동안 영화 '귀향'의 멋진 성공에 뒤이어 '눈길'이나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등의 영화들이 등장했는데, 아이들을 위한 관련 작품이 등장하여 반가웠다. 우리 모두가 다 알고 배우는 역사속의 수많은 사건들처럼 위안부 문제도 함께 안고 갈 수 있도록 배우고 접해야 할 것이다. 다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해가 많지 않은 초등생 아이에게 이 책을 읽힌다면 충분한 설명과 대화를 통한 전후의 독서 활동이 함께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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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5시에 퇴근하겠습니다
이와사키 유미코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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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가장 목적을 잃고, 잘못된 곳에 잘못된 이의 손에 놓여진 책이 될 것이다.

 

 출근은 정시보다 앞당겨 해야 당연한 것인데 정시퇴근이 너무나 확실히 보장된 사회에서 근무하지만, 왜 때문에 야근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가. 기한이 정해진 업무를 위해 점심시간도 반납하고 퇴근마저 반납하여 일하지만,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스트레스는 혼자만의 것이 된다. 연장 근무는 당연하게 하지만 급여 정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할일이 많은데 그런 쓸데없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간 마음만 상하니까. 그런데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매일을 일하러 다녔는데, 남은건 몹시도 상한 마음과 정신, 건강뿐이다. 월급이란 것도 받는 것 같은데 그건 대체 어디 가 있는지. 청년의 몸에 노년의 체력만이 남아 주중엔 일하고 주말에 몰린 잠을 몰아자기에 바쁜 현대 직장인들의 모습이다. 우리에게 '사장님, 5시에 퇴근하겠습니다'가 어떤 위로를 줄까.

 

 내용에 일러스트가 포함된 위트있는 촌철살인이 담긴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일목요연한 회사 개혁 성공 비법에 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다. 제목만큼의 임팩트가 본문에 없어서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전반적인 내용은 우리-노동자-만 알고 사측은 모르는 회사 경영 성공 비법에 관한 내용이다. 슬프게도 이 책은 노동자들만 백명천명 백날천날 읽어봤자 소용없는 우리끼리도 밥 먹으며 커피 마시며 술 마시고 충분히 했던 탁상공론이다. 책을 읽고 감명받아 회사를 위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 혼자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사용자에게 개혁의지나 문제점에 대한 의식이 없는데 노동자가 바꾸겠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깨달았듯이, 학교의 주인은 '우리'라고 가르쳐도 주인행세는 교장이 하듯이, 회사의 주인 역시 사원이 아니라 일만 내가 된 것처럼 하라는 것이지 실제로, 명백히 사장님 아닌가.

 

 이 책도 어떤 부분에서는 구태의연한 면이 있다. 완전히 노동자를 위한 시선으로 개혁된 회사 문화가 아니라 노동자와 사측의 입장이 절묘하게 조절된 방안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의 변화와 사원들의 니즈를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했다는 면이 높은 포인트를 받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노동자 입장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 의문이 들게 된다. 가만히 출퇴근만해도 퇴사 욕구가 솟아오르는 날씨에 기름까지 부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 땅에 어디든 '저런' 회사는 없고, '저런' 회사에도 그 나름의 사표를 안고 다니는 노동자들이 존재할 것이라는 씁쓸한 사실 또한 우리는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빛좋은 개살구나 신포도처럼. 그러니 앞으로 세상이 좀 더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판타지를 품고 제목에서 오는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으로 만족하자.  

 

 한 구인사이트의 광고가 논란이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노동자가 갑이다.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 사장은 나쁘다. 는 등의 내용이었는데, 이에 분개하여 해당 구인사이트를 이용하지 말자는 각종 업체 사장님들의 집단적인 반발이 있었다.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직장 상사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것이다. 출판사도 알 것이다. 표지에 적혀 있다. "우리 사장님이 읽어야 하지만 절대 사지 않을 책!" 이라고. 친절하고 위트있는 마음가짐으로 이 책을 넌지시 사장님/혹은 상사의 책상위에 올려놓는 짓은 품에 안고 있는 사표도 그 책 위에 함께 꺼내놓을 직장인이 아니고서야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끼리 읽고 세상엔 이런 곳도 있구나 '걸어서 세계 여행'을 보듯이 관람하자. 아니면 곧 퇴사하는 다른 동료에게 부탁하여 사장/상사 자리 근처에 떨어뜨려 달라고 해보자. 그것말고는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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