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문학과 사회

<우울사회> 중에서...
탈진과 우울 상태에 빠진 성과주체는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 의해 소모되어버리는 셈이다.
그는 자기 자신으로 인해, 자신과의 전쟁으로 인해 지치고 탈진해버린다.
그는 자신에게서 걸어 나와 바깥에 머물며 타자와
세계에 자신을 맡길 줄은 전혀 모른 채 그저 자기
속으로 이를 악물 뿐이다.(95쪽)


프로이트에 따르면 멜랑콜리란 나르시시즘적인 동일시를 통해 자아의 일부로 내면화된 타자가 자아에 대해 파괴적 작용을 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타자와의 갈등은 내면화되고 자기 자신과의 갈등관계로 전화하여 결국 자아의 빈곤과 자기 공격성으로 이어진다. 

반면 오늘날 성과주체가 앓는 우울증 등의 질환은 이렇게 내면화된 타자와의 갈등관계 또는 양가적 관계를 전제하지 않는다. 우울증에는 아예 타자의 차원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 - P94

소진Burnout은 자주 우울증으로 귀결되거니와 이때 우울증을 유발하는 원인으로는 오히려 과도한 긴장과 과부하로 파괴적 특성까지 나타내는 과잉자기 관계를 들 수 있는 것이다. 
탈진과 우울 상태에 빠진 성과주체는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 의해 소모되어버리는 셈이다. - P94

그는 자기 자신으로 인해, 자신과의 전쟁으로 인해 지치고 탈진해버린다. 그는 자신에게서 걸어 나와 바깥에 머물며 타자와 세계에 자신을 맡길 줄은 전혀 모른 채 그저 자기 속으로 이를 악물 따름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남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속이 텅 비어버린 공허한 자아뿐이다. 주체는 점점 더 빨리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서 마모되어간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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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전반적인 가속화와 활동과잉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분노wut하는 법도 잊어가고 있다. 분노는 특별한 시간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전반적인 가속화 및 활동과잉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가속화와 활동과잉은 넓은 시간적 지평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때 미래는 현재를 연장시킨 것 정도로 축소되고, 다른 것에 시선을 던질 수 있는 부정적 태도가 싹틀여지는 전혀 없다.  - P50

반면 분노는 현재에 대해 총체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분노의 전제는 현재 속에서 중단하며 잠시 멈춰 선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분노는 짜증Ärger과 구별된다. 오늘의 사회를 특징짓는 전반적인 산만함은 강렬하고 정력적인 분노가 일어날 여지를 없애버렸다. 분노는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오늘날은 분노 대신 어떤 심대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짜증과 신경질만이 점점 더 확산되어간다. - P50

사람들은 불가피한 일에대해서도 짜증을 내곤 한다. 짜증과 분노의 관계는 공포와 불안의 관계와 유사하다. 공포가 특정한 대상에 관한 것이라면
불안은 존재 자체의 문제이다. 불안은 현존재 전체를 붙들고 흔들어댄다. 분노 역시 하나하나의 사태에 관한 것이 아니다. - P50

분노는 전체를 부정한다. 분노가 보여주는 부정성의 에너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분노는 예외적 상태이다. 세계가 점점 더 긍정적으로 되어가면서 예외적 상태도 더 줄어든다. 아감벤은 이처럼 긍정성이 확대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한다. 예외상태가 한계를 이탈하여 정상 상태가 되어간다는 그의 진단과는 반대로, 오늘날 사회의 전반적인 긍정화는 모든 예외 상태를 흡수해버린다. 그리하여 정상 상태가 전체를 지배하기에 이른다. 
증대되는 세계의 긍정성이야말로 "예외 상태"나 "면역성"과 같은 개념에 대해 사람들이 주목하게 된 이유이다. 하지만 그렇게 주목받는다고 해서 이런 개념들이 현재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이들이 소멸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 P51

힘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긍정적 힘으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 힘으로서 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니체의 말을 빌린다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다. 이러한 부정적 힘은 단순한 무력함, 무언가를 할 능력의 부재와는 다른 것이다. 무력함은 단순히 긍정적인 힘의 대립항일 뿐이다. 무력함은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는 것으로, 결국 그 무언가에 대한 종속이며 그 점에서 긍정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 P52

부정적 힘은 무언가에 종속되어 있는 이런 긍정성을 넘어선다. 그것은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다.
지각하지 않을 수 있는 부정적 힘 없이 오직 무언가를 지각할수 있는 긍정적 힘만 있다면 우리의 지각은 밀려드는 모든 자극과 충동에 무기력하게 내맡겨진 처지가 될 것이고, 거기서 어떤 "정신성"도 생겨날 수 없을 것이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만 있고 하지 않을 힘은 없다면 우리는 치명적인 활동과잉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무언가 생각할 힘밖에 없다면 사유는 일련의 무한한 대상들 속으로 흩어질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기 Nachdenken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긍정적 힘, 긍정성의 과잉은 오직 계속 생각해나가기Fortdenken만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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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문학과지성사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오랜만에 철학책...
교양 수업으로 들었던 철학, 심리학 기초 용어들도 눈에 띄어 새로웠다.
얇아서 금방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읽다 뭐라고요? 싶어 앞으로 다시 돌아가 읽고 오면 또 그럭저럭 이해가 되어 잘 읽고 있다.

나의 집중을 가장 방해하는건 자기 책도 아니면서
밑줄 쫘악---- 참 열심히도 그어놨다.
낙서에ㅡ 나름 요점 정리한 거겠지 ㅡ 이젠 연한 보라색 색연필로다가 그어놓기까지.
비양심도 이 정도면 역대급이다.

낙서한 책 걸러내는 책 반납기 있었음 좋겠다!
그럼 반납할 때 미리 등록한 계좌에서 책값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허술하고 보완할 게 많은 방법이란 거 아는데 책 보면서 이런 생각까지 한다.
그렇지만 난 나대로 또 이런 인간들 때문에 책상서랍에 지우개 세트로 사다놨지...
연필자국 열심히 지우며 읽는다.
완전히 깨끗해지진 않아서 지우고나서도 약이 오른다.
어쩌지... 그냥 사버려???



규율사회의 피안에서

알랭 에랭베르는 오늘날의 인간형을 니체의 주권적 인간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자기 자신을 닮은 주권적 인간 ㅡ니체는 그러한 인간의 도래를 예고한 바 있거니와ㅡ 은 바야흐로 대중의 현실이 되려는 중이다. 

주권적 인간에게 그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명할 수 있는 상위의 존재는 없다. 그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소속된다는 원칙에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니체라면 대중의 현실이 되려고 하는 저 인간형을 가리켜 주권적 초인이 아니라 그저 노동만 하는 최후의 인간이라고 했을 것이다. 긍정성의 과잉 상태에 아무 대책도 없이 무력하게 내던져져 있는 새로운 인간형은 그 어떤 주권도 지니지 못한다.  - P27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animal laborans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강조적 의미의 자아개념은 여전히 면역학적 범주다. 그러나 우울증은 모든 면역학적 도식 바깥에 있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schaffens- und Könnensmüdigkeit이다. 

아무것도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없다 Nicht-Mehr-Können-Können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다.
우울증 환자는 이러한 내면화된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이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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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12-24 0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감, 동감!
우리 동네 도서관으로 오셔요. 밑줄 친 책 아직 한 권도 못 봤습니다. 소싯적엔 많이 봤는데 정말 열 받습지요. -_-

은하수 2024-12-24 05:54   좋아요 1 | URL
저도 가고 싶네요
밑줄 하나 없는 깨끗한 책 도서관으로요^^
도서관 리모델링은 하면서 왜 책은 폐기하고 새로 구입하지 않는 걸까요. 요즘 리모델링했대서 가보면 환경이 넘 좋은데거리는 멀고 ... 근데 책은 예전책 그대로더라구요.
그럼 그게 진정 리모델링한거 맞는건가요? ㅠㅠ

단발머리 2024-12-24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밑줄 그은책 많이 봤어요. 전 그것보다 더러운 책을 더 싫어하지만요 ㅠㅠㅠ
저희 동네는 아주 옛날 책은 폐기하긴 하더라구요. 그래도 진짜 책보다는 환경이 더 깨끗하기는 해요.

은하수 2024-12-24 14:21   좋아요 1 | URL
저희 동네도 오래 된 도서관이라 오래된 책이 많아요. 일단 크키가 넘 작구요. 내년부터 리모델링한다니... 그나마 제일 가까운 곳인데...걱정이 태산이예요 ㅠㅠ
환경은 좋아지겠지만이 기회에 책도 좀 새로 구할수 있는거는 바꾸면 얼마나 좋을까요,..
뭣보다 책을 깨끗이 보고 반납하는게 젤 중요하겠지만요^^
 

우리 모두는 늑대보다 영장류에 더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늑대의 모습이 거의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늑대를 멸종시킨 대가는 우리가 치러야 한다. 결국 영장류의 계략은 헛된 것이 될 터이므로. 제 꾀에 제가 넘어가서 영장류의 운도 다할 것이다. 그 후에야 비로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을 것이다. 우리의 계략과 영민함과 운이 충만할 때가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이 다했을 때 남은, 혹은 버려진 우리 자신을 말이다. - P22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나는 내가 왜 그토록 브레닌을 사랑했는지, 또 녀석이 떠난 지금 이 순간 왜 그토록 그리움에 몸부림치는지를 깨달았다. 브레닌은 나에게 정규교육이 가르쳐 주지 못한 것, 즉 고대의 영혼 속에 살아 있던 내 안의 늑대를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가끔 수다쟁이 영장류 대신 내 안의 과묵한 늑대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책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늑대를 대변하고자 하는 나의 노력이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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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 지옥.연옥.천국 귀스타브 도레 삽화 수록본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귀스타브 도레 그림,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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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신곡』을 읽었구나! 이런 느낌이 먼저였고, 무시무시한 지옥 편을 거쳐 아직 끝나지 않은 지옥인 연옥 편, 그리고 대망의 천국 편을 차례로 읽어나갈 땐 무신론자인 나도 믿음이 솟아나는 듯한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 아름다운 대서사시를 남긴, 천국의 ‘단테‘를 위해 잠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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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2-22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열심히 연옥 읽는 중입니다!!

은하수 2024-12-22 22:44   좋아요 0 | URL
끝까지 힘내세요^^
천국 편 읽는데... 문지 모를 감동과 벅차오르는 감정이 있더라구요.
어제부터 집중해서 읽고 싶어졌어요.
감동이었습니다!

그레이스 2024-12-2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래서 신곡을 읽나봐요
천국편은 신화와 성경적 지식이 필요해서 각주를 자주 보게 되실듯요^^

은하수 2024-12-23 09:36   좋아요 1 | URL
네 정말요~~
각주 안보곤 못 넘어가요~~
그래도 예전에 성경 조금 읽었다고 천국의 마지막 하늘이 가까워올수록 기대되는 인물들이 있잖아요. 너무 기대하며 읽게 되는 마법이...
감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