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든 변소든 여자는 남자의 이미지 속에 있다. 여자는 자신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여자‘로 찾아 헤매며 살아갈 숙명을 짊어지고 있다.
듣자 하니 생전에 마릴린 먼로는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끊임없이 "예쁘다"는 말을 해 주지 않으면 마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듯 불안해하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주변에 있는 누군가는 물론 남성이다. - P23

여자는 만들어진다. 암컷으로 만들어진다. 시집 못 가면 어쩌려고!" 협박하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한 남자의 품속에서 여자는 여성다움으로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여자의 삶에서 보람은 남자를 향해 꼬리를 흔드는 데에 있다고 한다. 꼬리 흔들기 방식은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부터 진한 화장을 한 것까지 다양한 암컷의 모양새로 나타난다. 
남한테서 찾으려는 자신이라는 건 어차피 ‘세상 어디에도 없을 여자‘이다. ‘지금 여기에 있는 여자‘가 삶의 보람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여자로 삼는다면 필연적으로 그는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게 된다. 마음이 찢기고 마는 것이다. 
교태란 자신을 남의 가치관에 팔아넘기는 것을 말한다. 암컷으로서 꼬리를 흔들고 교태를 부리며 살아오게끔 된 여자의 인생이 끊임없이 존재의 상실감으로 위협받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 P23

"당신은 예쁘다"는 마약 같은 말이 끊기면 금세 자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분간 못하게 되는 금단 증상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여자를 남성에게 향하게끔 하는 원흉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여자는 남자 눈 속에 
비친 자기 모습에 어떤 때는 기뻐하고 어떤 때는 두려워한다. 암컷으로 살아온 그 역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여자는 먼로와 같은 여성으로만 존재한다. - P23

단지 암컷으로 잘할지 못할지, 억지로 팔 것인지 솜씨 좋게 비싸게 팔것인지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진한 화장을 하든 맨얼굴이든 남자에게 교태를 부려야 하는 게 바로 여자의 역사성이다. - P24

그런데도 남자들은 ‘예쁘고 멍청해 보이는‘ 마릴린 먼로 같은 여자를 찾는다. 주부와 창녀는 먼로 같은 여자의 양끝에 존재한다. 
거지가 주인인 것마냥 행세할 때는 누구를 살리건 죽이건 자기 마음대로니까 그런 남자의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남자한테 ‘지금 여기에 있는 여자‘는 기껏해야 엄마 정도이다. 
남자는 자신에게 교태를 부려서 존재를 증명하려 하는 여자가 ‘세상 어디에도 없을 여자‘라는 점을 눈곱만큼도 생각지 못하고 ‘마릴린 먼로 같은 여자‘를 좇는다. 
‘마릴린 먼로 같은 여자‘란 남자의 이미지 속에서 사는 모든 여자를 일컫는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여자‘가 되려고 스스로를 잃어가는 모든 여자를 일컫는 말이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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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탕한 여자 같으니." 엘런이 말했다.
"정말이야......." 데니스가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교회에서 대화할 때처럼 낮은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외모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얼굴이 아이처럼 통통했다. 그 순간 엘런은 갸름하고 핼쑥한 얼굴로 데니스에게 달가운 미소를 보냈다. 행복이란 얼마나 단순한가. 간 보호제를 먹고. 돈을 따고. 하지만 그보다 더 단순한 행위, 포옹하고, 구애받고, 하룻밤 숨을 헐떡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대대적인 세뇌가 시작된다. 여자는 정숙해야 한다는 교리의 가르침 사이사이로 끼어드는 은밀한 메시지, 남자와 남자의 몸이야말로 진정하고 절대적인 위로라는 것.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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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가니 청명하고 푸른 하늘 아래, 잔디와 화단이 촉촉했다. 하지만 도로는 벌써 빗물이 말라 건조했고, 공기에 상쾌한 기운이 없었다면 태풍이 지나갔다는 사실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날씨였다.  - P142

엘런은 간밤에 올랐던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빠르게 나아갔다. 그런데 자꾸 굽이가 나타나서 발걸음을 재촉하면 잠시 후 또 다른 굽이가 나타났다. 높은 담벼락이 솟아나서 바다 풍경을 가리기도 했다. 야자수가 담장보다 높이 솟아 있었음에도 가지가 풍성하지 않아서 그늘은 없었다 무화과나무 몇 그루만이 익숙한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 P142

날이 점점 뜨거워졌다. 언덕 꼭대기에 멈춰 서서 브래지어를 풀었다. 저 밑에서, 정확한 거리를 가늠하기는 힘들었으나 저기 내려다보이는 마을에서 호텔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기를 바랐다. 

집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었고, 그러자벌써 기분이 좋았다. 배우를 놓친 아쉬움도 사라졌다. 시드니로인한 메슥거림, 서글픈 여자로 인한 슬픔도 전부 엘런의 삶에서사라졌으므로 이제 엘런은 안전했으며, 집에 가면 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엘런은 달리다가 멈춰 서서 숨 고르기를 반복했는데, 달릴 때든 멈출 때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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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가니 청명하고 푸른 하늘 아래, 잔디와 화단이 촉촉했다. 하지만 도로는 벌써 빗물이 말라 건조했고, 공기에 상쾌한 기운이 없었다면 태풍이 지나갔다는 사실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날씨였다.  - P142

엘런은 간밤에 올랐던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빠르게 나아갔다. 그런데 자꾸 굽이가 나타나서 발걸음을 재촉하면 잠시 후 또 다른 굽이가 나타났다. 높은담벼락이 솟아나서 바다 풍경을 가리기도 했다. 야자수가 담장보다 높이 솟아 있었음에도 가지가 풍성하지 않아서 그늘은 없었다. 무화과나무 몇 그루만이 익숙한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 P142

높은 담벼락이 솟아나서 바다 풍경을 가리기도 했다. 야자수가 담장보다 높이 솟아 있었음에도 가지가 풍성하지 않아서 그늘은 없었다. 무화과나무 몇 그루만이 익숙한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담벼락에서 피어난 양귀비는 크레이프로 만든 종이꽃 같았다. 엘런은 이따금 한 송이씩 뽑아서 향기를 맡고는 손가락으로 꽃송이를 찢어 버렸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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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에 대한 답변>
... ... 사랑을 표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당신은 일생 동안단 한 번이라도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에 빠지면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되는지, 솔직하고순수한 마음으로 느껴본 상태라야만 합니다. 물론 분노나 이름 없는 슬픔 등 모든 이가 살면서 한 번쯤 겪게 되는 감정들의 경우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에 곁들여서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충고는, 최대한 자주 방에서 체조 연습을 할 것, 숲으로 산책을 자주다닐 것, 폐를 강화시키는 훈련을 할 것, 스포츠를 할 것, 단 종목을 잘 선별해 절도 있게 할 것, 서커스 구경을 갈 것, 광대들의 태도를 익힐 것, 그래서 어떤 재빠른 몸놀림이 영혼의 전율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연구할 것 등입니다.

무대는 시가 감각으로 구현되는 장소, 시의 열려있는 목구멍입니다. 당신 다리의 움직임에서 어떤 구체적인 영혼의 상태가 가슴을 도려내는 표현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얼굴이나 얼굴이 나타내 보여야할 수천 가지 표정은 말할 것도 없죠. 당신의 머리카락도 당신의 의지에 복종해야 합니다. 당신이 경악을 몸으로 표현할 때 머리카락이 곤두선다면, 은행가든 양념가게 상인이든 할 것 없이 모든 관객들이 당신 앞에서 오싹함을 느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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