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안읽혀 ...
수술실 들어간 내 꽁주는 왜 안나오지
한 시간이면 되는 수술이랬는데...

"130으로 달리고 있었어." 누군가가 말했다. 대부분 프랑스어를 썼다. 죽은 자는 독일인이라고 했다. 독일 신분증을 갖고있다고. 엘런은 이국에서 병이 나거나 죽는 상상을 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빛기둥이 있는 런던 집이 아니라 혈육이 사는 고향으로 가고 싶었다. 엘런은 지금 옆에 있는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자기 머릿속의 생각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몸을 떨었다. - P101

현실에서 사라져 어린 시절로, 엘런의 두려움을 탄생시킨 어둠의 근원으로 이동했다. 서둘러 기도문을 외웠고, 동물들이 바보처럼 빠져 죽곤 하던 습지의 수렁과 미친 여자 둘이 자살한 산속의 호수를 떠올렸다. 주변 몇 킬로미터 내에 아무런 건물도 보이지 않던 산속 호수 그 자체가 여름날의 서정이고 기만이었다. 잔잔한 수면 위의 수련. 잎보다 꽃이 더 풍성한 식물. - P101

엘런은 죽음이 두려웠다. 엘런은 언젠가 바다에 갔을 때 위험할 정도로 깊은 곳까지 나아가려는 자신을 제지하던 젊은 신부를 떠올렸다. 신부의 눈은 애정을 담은 채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신부는 긴장한 듯 경고문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엘런은 보지 못했다. 신부가 없었다면 충격 속에서 대비도 없이 원치않는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엘런은 눈을 빛내며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 신부의 창백한 손을 잡고, 검은색 커다란 사제복 소매에 가려 보이지 않는 손목 쪽으로 손가락을 넣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신부의 순결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감히 그러지 않았다. - P101

"뒤로 쓰러져 봐." 엘런이 팔을 놓아주자 바비가 말했다.
"못 해." 엘런이 말했다. "운동 신경이 없어서"
"젠장, 맞는 말이야." 바비가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가르쳐주겠어."
그러고는 손을 뻗었는데, 그 움직임이 마치 날개를 펴는 독수리처럼 잽싸고 날랬다. 엘런이 독수리에 관해 아는 것이라고는 어디서 들은 이야기뿐이었지만. 바비는 엇비슷한 간격으로 손가락을 벌리고 손바닥을 조금 오므리면서 그 위로 쓰러지는 엘런을 받아 내려고 준비했다. - P111

"어서." 바비가 말했다. 다른 손으로 엘런을 살포시 뒤로 밀었는데, 몸을 기울인 엘런의 모습은 뻣뻣한 막대기 같았다.
"날 믿으라니까." 바비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엘런이 그간의 거친 이야기와 싸움과 술에 취한 나날들을 잊어버릴 수있을 만큼 부드러웠다. 엘런은 뒤로 쓰러졌으나 자연스럽지 않았고, 바비는 "좋아."라고 외치며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뒤에 선 그는 엘런이 쓰러질 때마다 조금씩 뒤로 움직였으므로, 엘런은 매번 더 큰 용기를 내야만 했다. 둘 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바비가 확실하고 근사하게 엘런을 받아 낼 때마다 엘런은 바비의 든든한 손이 너무나도 좋아서 공연히 더 안겨 있고는 했다. 
비스듬하게 바닥을 향한채, 그에게 몸을 맡긴 채. 바비는 단 한 번도 목을 잡거나 시시덕거리지 않았으나 엘런은 지금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음을 알았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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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6 0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하수 2024-11-16 20:50   좋아요 1 | URL
네~~^^
복강경으로 하는 간단한 수술이었는데 회복실에서 기다렸다 나온거라 꽤 걸리더군요!
지금은 집에 데려와 몸조리하고 아주 좋아졌어요.
입맛도 돌아와 잘 먹어서 그저 감사한 날입니다~~^^
 

나 원 참!
혼자 있는 여자한텐 말을 걸어줘야한단 법이라도 있나. 뭔 근자감인지...

6장
식당에는 테라스가 있었다. 한쪽 끝에서 건너편 끝까지 하얀 식탁이 죽 늘어선 너머로 야자수가 보였다. 근사한 야자수 기둥 위로 노란 조명이 환하게 비추었고 식탁 위에선 촛불이 타올랐다. 성수기 동안 흘러내린 촛농이 촛대 옆면에 두껍게 굳어 있었다. 두툼한 촛대 안에서 온갖 색상의 양초가 타올랐고, 온갖 색상의 촛농이 굳은 흔적을 남겼다. 엘런은 남자의 양초 이야기를 떠올렸다. 크리스마스 연휴 무렵이면 두 사람은 친구가 되어, 엘런이 남자에게 선물을 주게 될까?  - P58

옆자리에는 가벼운 당뇨를 앓는 미국인 의사가 앉았다. 신경 써서 식단을 관리해야 하는 사람.
"어디에서 왔어요?"
"잉글랜드요." 엘런이 말했다. 엘런은 잉글랜드에서 왔다고 말하기가 지겨웠고 게다가 그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아일랜드에서 왔다고 말하면 요정이나 할머니에 관한 지루한 이야기가 이어지니 어쩔 수 없었다. - P58

남자는 가족이 있지만 혼자 공부 중이라고 했다. 외롭다고.
"오해하지 말아요." 남자가 말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아이들과 햄버거가 인생의 전부라고 했다.
"엘런은 어때요?" 그가 물었다.
"나도 행복해요." 엘런이 말했다. 가족이 있음을 넌지시 알리려고 자기 결혼반지를 내려다보았다. 둘이 카지노에 가면 어떨까?
"나야 좋죠." 남자가 말했다. 엘런이 고개를 저으며 무어라 대꾸하려는데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렸다.  남자가 빵 껍질을 건네고는 꼭꼭 씹으라고 했다.
"씹어요." 그의 목소리가 아주 컸다. 
시범을 보이려고 와작와작 씹었다. 정말이지 상스러운 인간이었다. - P59

"오해하지 마세요." 그가 말했다. "나는 저녁이면 마나님 모시고 외출하는 남자니까. 우린 즐겁게 지낸답니다."
엘런은 불쾌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엉뚱한 상상을 하실까 봐 마음이 안 좋아서요. 그러느니 처음 보는 여자랑은 절대 말 섞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고." 그의 눈에 노여움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엘런은 줄곧 냅킨의 꿰맨 자리만을 내려다보았다. 여러 차례 세탁한 까닭에, 꿰맨 실은 벌써 오래전에 천만큼 하얗게 표백되어 있었다. - P59

"그래도 같이 가시겠어요." 남자가 말했다.
"그만 물어봐요." 엘런이 버럭 대꾸했다. 남자는 손가락을튕겨 웨이터를 불렀다. 앳된 남자 직원이 다가오자 미국인은디저트 주문을 취소해 달라고 말했다. 직원은 말을 알아듣지못했다. 미국인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자리를 떠났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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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기상청에서는 날이 뜨거울 거라고 했다. 오보가 아니었다. 닷새 내내 천상에서는 태양이 지글거렸고 지상의 도시 런던도 부글부글 끓었다. 여름을 기다리던 사람들도 이제는 산들바람이 불어 숨 돌릴 틈이 생기기를 바랐다.  - P11

엘런은 오로지 밤에만 서늘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정원에 물을 주면서, 석조 벽감에 앉은 채로, 미래를 내다보는 돌. 뜨거운 한낮에 빨아들인 열기를 밤에 돌려주었고, 엘런은 그 열기에서 무언가 인간적인 것을. 이를테면 필요할 때를 대비해 모아 둔 어머니의 애정 같은 것을 보았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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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고 백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61시간>을 읽고 110 특수부대장인 터너 소령과 잭 리처의 만남을 얼마나 기대했던가. 두 사람을 엮어 한꺼번에 보내버리려는 시도를 하다니 간도 크지. 이번에도 리처의 활약은 말할 것도 없이 대단했지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기만 한 거 같고 너무 쉬워보여서 약간 김이 새는 느낌이라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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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2부에서는 오리건주의 숲에서 일하는 송이버섯 채집인과 일본에서 그 버섯을 먹는 사람을 연결하는 공급사슬을 살펴보고 있다. 그 과정에는 우리가 공장 노동을 통해 알고 있는 자본주의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공급사슬은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대목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노동이나 원료를 합리화하지 않고도 ‘부의 축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뒤이어 이러한 공급과 축적의 사슬에서 작가가 설명하는 용어들이 좀 아리송하면서 어렵단 생각이 들었고 난 그 과정에서 '착취'와 '축적'이라는 용어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원재료의 채취와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그것을 설명하는 용어인 ‘번역‘, ‘패치‘ 같은 단어가 오히려 본질을 흐리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 용어들이 한번에 딱 와 닿지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아!‘ 하면서 이해가 되었다.
이 작가의 글은 한번에 바로 와 닿지 않는 생소한 용어들이 많은데 다시 돌아와 반복해 읽으니 확실히 읽는 재미가 있다.

‘구제‘: 한마디로 말해서 자본주의적 농장에서 부를 모으기 위해 생태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살아있는 존재를 끌어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 생태적 과정이라는 것이 단순한 원료일수도 있고 자본가가 인간의 목적을 위해 생태를 개조하거나 목적에 맞게 착취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 ‘구제‘는 자본주의적 통제를 받지 않고 생산된 가치를 써먹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던 석유와 석탄 등이나, ‘노동‘의 전제 조건인 인간 생명은 생산할 수 없다.

‘구제축적‘은 선두 기업이 상품생산 조건을 통제하지 않고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이다.
글로벌 공급사슬을 통해 이루어지는 구제축적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과 허먼 멜빌의《모비딕》에도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현대적 구제축적의 사례도 들어주었는데 바로 미국 소매업계의 거인 ‘월마트‘이다. 아무튼 이 두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하다니 ... 이해가 단번에 되었다.
역시 ‘착취‘와 ‘축적‘이라는 용어가 떠오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공급사슬 번역의 좀 더 밝은 면을 보고자 한다면, 19세기 미국 북부 출신의 투자자가 고래기름을 입수하는 이야기를 다룬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 『모비 딕 Moby-Dicky은 공장 규율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산산조각 낼 만한 소란스러운 국제 포경선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세계곳곳에서 고래를 잡아 얻은 기름은 미국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공급사슬에 유입된다.  - P122

이상하게도 피쿼드호에 탑승한 모든 작살잡이는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태평양군도 출신으로, 미국 문화에 동화되지 않은 토착민들이다. 미국의 산업 규율에 따른 훈련이라곤 조금도 받지 않은 사람들의 전문 기술이 없으면, 그 배는 단 한 마리의 고래도 잡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작업으로 얻은 생산물은 종국에는 자본주의적 가치 형태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 배는 자본주의적으로 조달된 자금이 있었기 때문에 항해할수 있다. 토착 지식이 자본주의적 수익으로 전환되는 것이 바로 구제 축적이다. 고래의 생명이 투자로 전환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구제 축적이다. - P122

여러분이 구제 축적은 옛일이라고 결론짓기 전에 현대의 사례 한 가지를 이야기하겠다. 재고품 관리 기술의 발전으로 오늘날의 글로벌 공급사슬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선두 기업들은 재고품을 관리하게 되면서 자본주의와 그 밖의 것을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경제 제도에서 자신들이 판매하는 상품을 생산할 자원과 노동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소매업계의 거인으로 알려진 월마트는 이러한 혁신을 자리 잡게 한 기업 중 하나다. 월마트는 컴퓨터가 상품을 재고품으로 목록화해 인식하게 하는, 검고 흰 막대기들이 나열된 범용상품코드Universal Product Codes, UPCs‘ 를 필수화하는 데 앞장섰다. 재고품 식별이 쉽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월마트가 상품이 생산되는 노동 및 환경 조건을 무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절도와 폭력을 포함하는 주변자본주의적 방법이 그 생산 과정의 일부분일 수 있다. - P123

나는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의 노래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면서, 범용상품코드가 인쇄된 꼬리표 양면의 차이와 생산과 회계 간의 차이를 연결시켜 생각해본다. 이 꼬리표의 한쪽 면에는 검고 흰 막대기들이 인쇄되어 있어 상품을 상세하게 추적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그 반대쪽 면에는 아무것도 없다. - P123

아무 것도 없는 면은 월마트가 상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징표다. 왜냐하면 가치는 회계를 통해서 번역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월마트는 공급자들에게 계속해서 상품을 더 싸게 생산하도록 강요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야만적인 노동 착취와 환경 파괴를 장려하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야만savage과 구제 salvage는 종종 쌍둥이와 같다. 구제는 폭력과 오염을 이윤으로 번역한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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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1-10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하수 님 정리 정말 잘 해주시네요! 같은 책을 읽었던 사람으로서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은하수 2024-11-10 21:26   좋아요 0 | URL
정리욕구가 마구 솟게 만들어요~~~
한번 읽으면 이해가 안돼서 반복해서 읽게되니 좋고 이렇게 정리하고 싶어지니 더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