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여성학 서가 갔다 발견한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책! 처음 몇 장 서서 읽어보다 미련없이 대출해왔다. 처음부터 문장이 마음에 와서 박혀서 두고 올 수가 없었다.
˝또 우리 각자의 가슴속에는 보라색 모터사이클 하나씩 있다.˝

또 우리 각자의 가슴속에는 보라색 모터사이클이 하나씩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그걸 찾아내서 타고 달리기만 하면 된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길 위의 인생(19)

지금 나의 보라색 모터사이클은 뭐지?
일단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길 위의 인생부터 따라가 봐야겠어.

여행하면서, 말하자면 길이 나를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면서,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현실의 삶이 복잡하게 얽혀 있듯 길도 그렇게 얽혀 있다. 길은 우리를 부정에서 현실로, 이론에서 실천으로, 주의에서 행동으로, 통계에서 이야기로 인도한다. 요컨대 머리에서 가슴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길은 삶을 위협하는 위급상황들과 진정한 교감의 섹스가 있는 바로 그 곳이며, 현재에 온전히 살아 있게 하는 방식이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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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걷다 보면 어느새 빠지게 되는 비몽사몽한 상태에 접어들었다. 다리와 머리가 따로 놀아 서로 보조를 맞추려 애쓰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케네스 그레이엄과 버지니아 울프 역시 이런 희한한 현상을 칭송하는 글을 썼고 이 상태가 글쓰기에 필요한 영감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 P136

케네스 그레이엄은 말년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썼다. 
"걷는 사람들에게 자연이 선사해주는 특별한 선물이 있다. 반기계적으로 걷다 그 선물을 얻게되면 다른 식의 활동으로는 도저히 이를 수 없는 수준까지 정신이 깨어난다. 그러면 정신은 말이 많아진다. 상상력이 피어나 살짝 미친 것 같은 상태가 된다. 창의성이 빛을 발하고 고도로 예민해지면서 급기야 유체에서 이탈해 자기자신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한 경지에 다다른다."  - P136

버지니아 울프의 경우엔 다운스의 산마루에서 몽환적인 상태로 자신이 쓰게 될 글을 지껄인 적이 있다고 썼다. 정오의 햇살 아래에서 반쯤 정신착란의 상태로 성큼성큼 걷다 보니 입 밖으로 말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버지니아는 그런 상태를 수영에 비교하는가 하면, 다음과 같은 식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기분이다. 감정과 착상의 흐름, 언덕과 도로와 색채의 느리지만 신선한 변화 사이를 유영하다 보면 이 모든 것이 한데 휘저어지다가 더없이 평온한 행복의 층이 생겨난다. 그럴 때면 나는 사실 이 층에 가장 밝은 그림을 그리면서 크게 소리 내어 말할 때가 많다."
- P136

나는 배를 깔고 누워 시야가 트인 도랑에서부터 초원을지나 그 뒤의 숲까지 쭉 한눈에 담았다. 곰곰 생각해보니 이제 들판 하나만 지나면 틀림없이 강이 나올 테고 그 뒤로 3.2킬로미터를 가면 이즈필드였다. 두더지 모울이 지리를 이렇게 저렇게 더듬어보다 정든 고향에 거의 다 왔음을 직감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지리를 가늠하던 중에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 P138

나는 벌떡 일어났다. 저 초원 꼭대기를 굽이돌아 흐르던 강이 있었다. 넘칠 듯 강둑으로 차오르고 수면에는 잡초가 물살에 따라 너울거렸던 강이. 그 강을 반갑게 떠올린 이유는 강폭이 3미터에 깊이도 거의 그만큼 깊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수영을 즐기기에 딱 좋았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물푸레나무 그늘 아래로 흐르는 강물이 흡사 석탄 물 같아 보여서 선뜻 뛰어들지 못하고 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빤히 내려다보기만 했다. 물속에 들어가고픈 마음이 간절했고 강물 색도 전에 봤을 때보단 훨씬 깨끗하긴 했지만, 발가락을 담가보니 덩어리진 침전물이 묻어 올라왔고 황갈색의 작은 물고기 떼가 수면을 스치며 빠르게 헤엄쳐 다녔다. - P138

나는 이즈필드 다리 근처에서 산사나무 아래에 앉아 진녹색 야생 자두 사이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우는 푸른머리되새를 구경했다. 쨍쨍한 햇빛에 늘어져 있는데 낚시꾼 두 명이 지나갔다. 두 사람 모두 머리를 빡빡 밀었고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다. 한 사람은 휴대전화로 통화 중이었다. "그래, 이 친구야, 표지판도 있으니까 잘 봐봐. 필트다운의 그 주유소까지 쭉 내려와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돼. 그래, 이 친구야. 그렇지! 알았어, 조금 이따 보자고." - P139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하루 종일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날 종일토록 사람 구경을 못했던 것은 아니다. 플레칭에서 옥수수밭 사이로 걸어가는 사람도 보고, 샤프스브리지 인근의 농장을 지날 때도 내리쬐는 햇빛 속에서 모자도 쓰지 않고담벼락 쪽의 쐐기풀을 제초기로 베어내던 남자를 봤다.
인기척은 드물었지만 새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강둑의 산사나무에서 새들의 노랫소리가 흘러넘쳤다. 굴뚝새의 날카로운울음소리는 병 안에 동전이 떨어지며 부딪치는 소리 같았고, 박새들이 일제히 울어대는 소리는 그리스어로 의견과 훈계를 주고 받는 소리처럼 들렸다. - P139

그만 가서 자려고 발길을 돌렸을 때 하늘에 불이 붙은 듯했다. 순간순간 변하는 저녁노을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불가능했다. 앵커 Anchor 부근의 들판에서 댕기물떼새 한 마리가 날개를 노처럼 퍼덕거리며 하늘을 날았다. 동쪽의 물푸레나무 군락지 쪽으로 갸름한 달이 나타났다. 좀 전에 흘끗 봤던 물고기와 똑같은 흐릿한 은빛이었다. 저녁노을은 꽃가루나 먼지나 검댕 입자들이 대기 중에서 빛을 분산시키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 P143

그날도 푹푹 쪘다. 나는 크리켓 구장을 가로지른 후 길게 뻗은 돌투성이의 길을 걸어 강가로 내려갔다. 그날 아침만큼 행복한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걷다보면 거품이 솟듯 들판이 지평선 위로 솟아올랐다. 바컴 밀스로 향하며 보트하우스 농장의 방목지를 지나갈 때는 노래도 흥얼거렸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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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노래
레스 벨레츠키 지음, 데이비드 너니 외 그림, 최희빈 옮김 / 영림카디널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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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새들의 노래를 들어볼 수 있다. 200종 새들의 아름다운 컬러 그림과 노랫소리가 궁금하다면 QR 코드 인식만으로 가능하다. 조용한 집안에 앉아 블루투스 스피커 연결해놓고 길게 노래하는 새들의 소리 듣고 있었다. 울음 소리가 아니라 ‘새의 노래‘라고 지은 책 제목이 맘에 든다.

그러나 내가 제일 궁금한건 우리 동네 살고 있는 새들의 이름과 노랫 소리다. 내가 썬룸에 앉아 책 읽고 있으면 새들이 우리집 데크나 담장 끄트머리에 앉아 그 작고 귀여운 부리로 노래하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새의 이름이 그 순간 너무 궁금한거다. 대체 이름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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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8년 현암사 초판본.. 나름 역사와 전통의 출판사란건 난 알고 있다. 책 표지는 신경 쓴게 확실한데 비해 책 편집은 별로다.

2018년 당시에도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한 가장 지적인 여행‘이란 부제목에 혹해 구입해 두었을 거다. 어마어마한 책 정리에서도 살아남았다. 작가의 힘이라기보단 버지니아 울프^^

1 주일간 버지니아 울프를 느끼며 우즈강 도보여행이라니 꽤 낭만적이다. 물론 여행을 떠날 당시 작가의 사정은 낭만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이의 글을 읽는 나는 낭만적으로 느끼게 된다.

만약 우리나라 ‘~~과 함께한 섬진강 여행‘ 부제가 붙었다면? ... 그런 책이라면 읽는 내내 대부분의 지명이나 분위기, 풍경, 지형 등등이 모두 너무도 쉽게 파악이 되겠지만... 아쉽게도 백악질 지형의 우즈강 주변은 지명도 지형도 풍경도 전혀 모르겠다.
우즈강 주변 사진이 같이 첨부되어 있었다면 참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달랑 불친절한 지도 한장.

그럼에도 책을 읽는 재미는 꽤 크다. 작가의 글에 집중해달란 의미로 해석해봤다. 아무튼, 글에 집중하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이라니... 이 책 읽고 다른 책도 찾아 읽겠지 싶은 생각이 딱 든다.



도입이 되는 1장부터 7일간 여행의 여정을 기록한 8장까지로 구성이 되어 있다. 지금은 ‘2장 근원을 찾아서‘로 우즈강의 근원으로부터 여행의 시작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마지막 작품 《막간》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부분이 걸린다.

《막간》이 집필된 시기는 세상이 크게 달라지기 전, 즉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다. 큰 변화가 닥치리라는 것을 버지니아는 예상했지만 살아서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79)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다 <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1941년 3월28일 우즈강에 투신했고 책은 7월에 출간이 되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다는 저 번역은 잘못된거 아닌지... 작가의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 초보적이라...
겨우 2장까지 아직 초반인데 오탈자도 많고 기본적인 번역 오류도 잡아내지 못했다니 조금 실망. 자꾸 거슬린다.
그래도 표지는 너무 예뻐 맘에 쏙! 역시 표지는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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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자취를 따라 우즈강을 도보로 여행하다니... 넘 좋겠다!
이런 혼자만의 여행이 너무 고프다.






봄이 여름에게 자리를 내주던 무렵이었다. 나는 하지쯤에 맞춰 브라이턴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연중 낮이 가장 길다는 때에 전해오는 미신으로는 하지가 되면 여러 세계 사이의 벽이 점점 얇아진다는데, 나는 어쩐지 이 미신에 마음이 끌렸다. 그러고 보면 셰익스피어가 하지 축제 Midsummer day 전날 밤을 뒤죽박죽 소동 이야기‘의 배경으로 설정한 것도 그저 우연의 일치는아니다. 잉글랜드는 6월이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 떠나기 며칠 전 나는 꽃이 만발한 들판으로 나가 시원하고 아늑한 강물 속으로 들어가고픈 열망에 들떠 돌아버리기 직전이었다. - P29

전날 밤에 나는 육지 측량부 지도 
Ordnance Survey Map 세 장을 바닥에 펼쳐 놓고, 구상해둔 이동 경로를 볼펜으로 쓱쓱 그어가면서 최대한 물가 가까이에서 걸을 수 있는 보도와 오솔길을 쭉 이어봤다. 하지만 공식 산책로인 우즈 웨이 Ouse Way는 초반부 경로가 그야말로 물을 겁내듯이 짜여 있는 탓에 아무리 이탈해서 간다 해도 첫 삼 일은 물이라곤 어렴풋하게 밖에 못 볼 듯했다.

강둑 지대가 무단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돼 있었고 우즈강이 휘감고 있는 대부분의 땅은 사유지라 철조망과 출입금지 표지판으로 예나 지금이나 길이 막혀 있었다. - P34

나는 몇 달 동안 여러 지도로 하이 월드High Weald의 이 구역을살펴보며, 울타리 사이로 이리저리 얽히면서 동쪽으로 뻗어나가 굽이진 개울물로 합쳐지는 파란색 선들을 눈으로 좋았다. 덕분에 물이 시작되는 발원지가 어디쯤일지 확신하고 있었지만미처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있었다. 여름철에 급격히 왕성해지는 생명력이었다. 들판 언저리에 보이는 산사나무 울타리 옆으로 개울물이 흐를 것으로 예상했는데, 막상 와보니 그 자리에는독을 품은 하얀 산형화를 피운 독미나리와 쐐기풀이 허리높이까지 자라나 벽처럼 막아서고 있었다. 물이 흐르고 있는지.
아니면 그 물먹는 귀신 같은 풀이 수분을 빨아 먹어서 도랑이메말라 있는지 도저히 분간할 수 없었다.  - P36

나는 잠시 근방을 서성이며 망설였다. 마침 그날은 일요일이라 지나다니는 차가 별로 없었다. 이스트랜즈 농장 쪽에서 쌍안경으로 관찰하지 않는 한 불법으로 들판을 가로질러 강의 발원지로 표기된 곳으로 슬그머니 들어가는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킬 염려는 없었다. 나는에라 모르겠다는 심산으로 울타리 밑으로 기어서 들어갔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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