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부모로서는 대체로 부족했지만, 그래도 나의 아빠는 매우좋은 사람이었다. 아빠는 부유층을 상대로 일했기 때문에 평범한서민들을 닦달할 일이 없었고, 자기 일을 올바르게 잘하고 싶어했기에 책을 읽으며 공부도 열심히 했다. 봉급이 꽤 많았지만 그것을 과시하지 않았다. 시카고 출신의 아빠는 가난 속에서 자란 리투아니아계 유대인 어머니 밑에서 반듯하게 자랐다. - P142
아빠의 의외의 모습 한 가지는-사실은 전혀 어울리는 짝이라고 할 수 없는 엄마를 선택한 것도 의외기는 했지만 병원을 놀랍도록 혐오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싫어하는 것 이상이었다. 아빠는 병원이라면 질색을 했다. 운전하다가 병원이 있는 동네가 나오면 그 앞을 지나가는 것조차 싫어서 굽이굽이 불편한 샛길을 지나야 하는 더 먼 길을 택했다. - P143
오빠는 곧잘 사라지고는 했다. 그러나 평범한 사춘기 소년처럼, 종일 안 보이다가 취해서 집에 들어온다거나, 무릎에 검불을 묻히고 머리칼은 땀으로 눌린 채 새벽 두시에 들어오는 그런 식이 아니었다. 한적하고 고요한 대낮에, 오빠는 집에 있다가도 집에서 사라졌다. 나는 오빠가 자기 방에서 대학교 기숙사로 떠날 짐 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물건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다가도 문득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P158
우리는 만장일치로 래리를 사장으로 뽑았지, 엄마가 줄줄이 걸린 팔찌들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그 말하는 폼이 사랑에 빠진 소녀가 너무 티나지 않게 그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싶어 애쓰는 모습 그대로였다. 취미가 이토록 오래 이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 P136
조금 뒤 아빠는 접시를 말끔히 비우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오빠는 방으로 돌아가 전자기학에 관한 숙제를 했다. 엄마는 수세미로 조리대 위를 닦았다. 나는 식탁을 마저 치우고 나서 구운 쇠고기 남은 것을 랩으로 싸 냉장고 안에 넣었다. 다음 날 불륜 샌드위치 속에 들어가겠지. - P137
나는 문 앞에서 오빠를 불렀고,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불을 켰다. 오빠가 방 한가운데, 카드 테이블 앞에, 노트북 컴퓨터를 앞에 두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옷을 입고 있었고, 깨어 있었다. 오빠는 아파 보였고 수척했지만, 내게 오빠는 늘 조금 아프고 말라 보였다. 오빠, 내가 놀라서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여기 있었어? 괜찮아? 괜찮아, 오빠가 조용하게 말했다. - P247
오빠는 보통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처럼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니 의자 다리가 오빠 신발 안으로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였다. 의자의 두 다리가 오빠의 바짓단 속으로 들어가 있는 것 같았고, 더욱 가까이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의자 다리가 바짓단을 통과할 수 있게 오빠가 실제로 바지에 딱 맞는 크기로 구멍을 낸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명백하게도, 의자 다리가, 발치에 고무가 씌워진 그 밝은 회녹색 알루미늄 금속이, 오빠의 발이 있어야 할 그 공간에, 오빠 신발 안에 들어가있는 걸 볼 수 있었다. - P253
의자 다리가 왜 오빠 바지 속에 들어가 있는거야? 내가 물었다. 그저 어떤 상황인지 알려고 가볍게 물은 거였다. 오빠는 아무 말이 없었다. 더 이상 화를 내지도 않았다. - P254
나는 오빠 발치로 가 앉았다. 오빠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기는 쉬웠다. 오빠가 나를 차버리고 싶어 한다는 게 느껴졌지만, 오빠 다리 가까이에 의자 다리가 있었기 때문에 오빠는 나를 찰 수 없었다. 나를 손으로 붙잡아 멀리로 밀어버릴 수도 있었건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좀 전의 부드러움이 여전히 그 안에 있었다. 로지, 오빠가 말했다. 그리고 내가 몸을 숙이고 오빠 바짓자락을 들췄을 때, 상처는 없었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본 그것을. 피는 전혀 없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피가 오빠 다리에서 솟구쳐 나오는 것을 보았다면, 오빠에게 수술이, 진통제가 필요했다면, 베이지색 카펫 위로 피가 스며들고 있었다면. - P255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오빠가 의자 다리를 자기 살 속에 찔러넣지는 않았다는 것, 하지만 아무튼 거기 있는 것은 양말이 신겨져 신발 안으로 들어가 있는 의자 다리라는 것이었다. 살점으로된 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혹은 사람 다리 같은 옅은 환영만이 희미하게 어른거릴 뿐이었다. 오빠가 자기 다리를 자른 건가? 아니었다. 다시 한번 피는 전혀 없었다. 대신 의자 다리 주변에 사람다리의 어스름한 형체가 의자의 억센 금속 주변으로 인체의 부드러운 희미한 빛무리가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그랬는지 아무튼금속과 살갗이 무리 없이 뒤섞여 있었다. 의자가 당연하다는 듯 오빠 다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렇게 오빠를 해체시키거나 흡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나 그렇다는 양 자연스럽게. - P256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침묵. 오빠 집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그 모어헤드 의자들. 어느 날 내가 불쑥 나타났을 때, 이 집에 있는 것들은 침대를 비롯해 다른 가구들까지 전부 복도에 나와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오직 모어헤드 의자 네 개만이 오빠 방에 있는 건 아닐까. 펜 몇 개와, 신발과 함께. - P256
오빠에게 일어났던 그 일을 나는 내게 있었던 일인 듯 정확하게 다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실에만 관심을 두었다. 나는 오빠를 보았다. 분명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오빠는 내게 말을 했고, 나를 로지라고 불렀다. 오빠는 뭔가에 몰두해 있었고, 짜증이 나있는 것 같았고, 그다음에는 무척, 달콤할 만큼 친절했다. 근처에 무기 같은 건 갖고 있지 않았고, 약을 한 것 같지도 않았으며, 내게 여러 번, 자기는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빠는 나를 현관에서 맞아주지 않았다. - P265
조지프 괜찮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목구멍이 꽉 막혀왔다. 나도 몰라, 내가 잠시 뒤에 말했다. 아빠에게도 전화할 거야. 나 존스에 있어, 점원이 눈을 비비고 잡지를 한 장 넘기는 것을 보며 내가 다시 말했다. 점원은 잡지를 접어 다른 물건들 사이에 쑤셔 넣었다.
또 사라진 거야? 조지 오빠가 물었다. 응, 내가 낮게 말했다. - P270
더 단순하게 지내는 것이, 기숙사 학교 식당에서 벌어질 뻔한 드라마는 애초부터 피하는 것이 내게 더 좋은 선택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오빠가 없어졌기 때문에 집에 남아 있었다. - P302
내가 오빠 집에 다녀온 뒤로, 오빠는 딱 한 번 돌아온 적이 있었다. 엄마는 날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차를 몰고 오빠 집으로 갔고, 엿새째 되던 날 오후 오빠가 다시 자기 방바닥에 불가사리처럼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엎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지프가 돌아왔어! 오빠 집 전화기 너머에서 엄마가 우리에게 노래를 불렀다. 조지프가 살아 있어! 엄마는 병원에서 오빠 곁을 지켰다.
안도감에 흠뻑 젖어 오빠 손에 입을 맞췄고, 아빠는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가 몇 번 더 왔고 팡파르가 울려 퍼졌지만, 나는 아무런 안도감도 느낄 수 없었다. 의사들이 와서 오빠를 여러 가지로 검사했고 아빠는 전문가들에게 전화해 특별히 신경 써줄 것을 부탁했으나, 오빠는 일단 병원에서나오자 이삼 일 더 머물렀을 뿐이었다. 오빠는 자기 집에 혼자 남겨지자마자 다시 사라졌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P302
그래도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역시 버몬. 트의 그곳, 프랑스 식당, 리요네즈였다. 조지 오빠와 아빠와 같이 있던 그 밤, 내게 최고의 양파 수프를 내주었던 곳. 두 명의 주인은 프랑스 리용이 파리 버금가는 식도락 도시로 급성장하기 전에 리옹에서 이리로 건너왔다. 안에 들어가면 테이블은 달랑 두세 개에 웨이터들은 불러야만 왔으며, 창문에는 등급 B라고 적힌 데다, 내가 가면 보통 젖히고 들어가는 주방 문 바로 옆자리에 앉혔지만, 난 그런 것은 아무렇지 않았다. - P323
거기서 나는 치킨 디종이나 뵈프 부르귀농, 아니면 간단한녹색 채소 샐러드나 파테 샌드위치를 시켰고, 음식이 나오면무엇이 됐든 녹아들고 말았다. 특히 곁들여 나오는 약간의 사극치 그라탕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시금치와 치즈의 균형을 정확히 맞추는 요리사의 기분은 기쁨에 넘쳤다. 시금치와 치즈의만남을 주선하고 있는 둘이 즉시 사랑에 빠지리라는 걸 알고 있는 중매쟁이 같았다. 물론 소소하게 다른 데 주의를 빼앗기거나딴생각에 빠져 있는 마음도 들어 있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음식을 느낄 수 있었다. 음식이 중심이었다.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은마음을 다해 음식에 열중하고 있어서 나는 정말로, 다른 데서와는 비교할 수 없이,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천천히 먹었다. 내 주변의 공기가 달라지는 기분이었다. 목적이생기는 것 같았다. 이런 게 바로 조지 오빠가 가는 길일 것이었다. 흔들리는 주방 문 따위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한주에 적어도 한 번, 때로는 더 자주 그 식당에 갔다. 보통 내 일상은 부모님과의 고요하고 슬픈 저녁들 그리고 그것을 제외하면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러 세상으로 통하는 출입구와 같은 이 식당에 들르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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