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우리 막내 동생은 막내인데도 아들이어서 그랬을까
부모의, 특히 엄마의 ‘과도한‘ 관심과 애정과 기대를 몹시 버거워 했었다. 엄마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조용하고 선비 기질 농후했던 우리 막내는 엄마의 ‘기‘에 눌려 ‘기‘ 한번 못펴보고 살았고 결혼해서는 아내와 엄마 사이에서
중재하느라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오늘 친구와 우연찮게 만나 커피를 마시며 이런 얘기들을 했었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난 왜 이 모든 것이 엄마탓인것만 같은지 모르겠다고...
특히 여동생이 힘든 엄마를 피해 외국으로 나가버리고 남동생은 병을 얻어 손 써볼새도 없이 하늘 나라로 가버린게 다 엄마 때문인거 같은 생각이 밀려올 땐 가슴이 무너져내리면서 너무 힘들어진다고... 나 너무 외롭다고... ..!

집에 돌아와 쓸쓸한 마음에 읽을 책을 찾는 내 눈에 보뱅의 책이 들어왔다. 마침 펼쳤는데 막내라서 사랑만 받고 자란 그녀 ‘지슬렌‘에 관한 문장들이 나온다.
자연스레 내 하나뿐인 여동생과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난 남동생이 보고싶고 사무치게 그립다.

이게 다 우울한 오늘 날씨 탓이다!



맏이를 너무 엄하게 대했다는 건 훨씬 후에야 깨닫는다. 맏이들은 부모가 너무 젊었던 나머지 자신이 잘못될까 염려하며, 불안한 마음에 심한 제재를 가했다고 말한다. 
부모들은 맏이에게 실망스러운 일을 절대 하면 안 된다는 부담을 주기 마련인데, 어깨 위에 그런 짐을 얻고 즐겁게 살아가기는 어려운 법이다.  - P23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첫째는 체면에 짓눌린다. 사람들은 동생이 태어났으니 더 의젓해지고 책임감이 강해져야 한다고 차마 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러나 막내에게는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다. 태
어난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이들이 마법사가 아님을 깨달으며,
이러한 깨달음은 실수를 통해 커진다. - P23

네가 엄마 노릇을 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엄마가 자식을 올바르게 사랑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들은 너무 사랑하거나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의 크기를 정확하게 측량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 P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리 터무니없는 말도, 그 말의 터무니없음을 지적하는 다른 말이 차단된 채 지속적으로 듣게 되면 그럴듯해집니다.솔깃해집니다. 불안, 갈등, 불만, 
차별, 혐오, 위험과 같은 부정적인 말들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시대착오적 슬로건을 내걸고 혐오를 조장하는 이상한 단체의 회원들이 이런 거짓말을
퍼뜨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현실이 몹시 우려됩니다. 피부색과 종교와 국적에 대해 편파적인 생각을 가진 이런 집단은 언제나 있었지만 지금처럼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적은 없었습니다. 이들이 자기들의 정체를 스스럼없이 드러내도 괜찮을만한 상황이 조성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 P312

 나는 집단적인 광기가 불러올 화를 두려워합니다. 예컨대 이런 현상들을 두려워합니다. 이 도시의 골목은 오래전부터 악취로 유명했는데도 마치 외부인들에 의해 갑자기 악취가 생겨났다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더 심해졌다고 주장합니다. 이 도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가난했는데도 외부인들이 자기들이 가진 돈과 기회를 빼앗아서 가난해졌다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그 때문에 더 가난해졌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친구들 중에 누가 저들의 것을 빼앗아 가난하지 않게 되었습니까? 우리 친구들이 아는 이른바 외부인 중에 부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까? - P313

황선호는 잎이 무성한 나무 밑으로 들어가 거의 직각이 되게 고개를 젖혀 나무에 가득 열린 열매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내려 나무줄기 한가운데로 옮겼다. 친구 김경호. 세월이 엉겨 붙어 바래고 흐릿해진 이름을 그는 읽었다. 그의 손이 나무줄기를 어루만졌다. 보보체리나무예요, 하고
그가 말했다.
- P352

황선호는 자기 입에 체리를 넣고 눈을 감았다. 그의 옛동료는 벌써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말을 잃었다. 손바닥 위의 체리를 입으로 가져가지도 못했다.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이 그 열매를 입에 넣지 못하게 했다. - P353

"나는 그 도시에 없는 사람이에요. 벌써부터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그래요. 여기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앞으로도 여기있는 사람이기를 원해요. 친구들의 친구가 되기를 원해요." 황선호는 보보체리나무 밑에서 그 말을 했다. 그 말을 할 때 나무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가볍게 흔들렸다.  - P3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속삭임 우묵한 정원》 배수아/은행나무

처음 몇 페이지만 시작해놓고 한동안 안읽었더니
하나도 기억이 안나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는다.




1
여행의 시작에 우체부가 왔다.
이것은 최초의 여행에 관한 글이다. 여행은 편지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런데 편지는 무엇으로부터 왔는가? 편지가 도착하던 바로 그 순간 나는 어떤 것과 우연히 마주친 직후였는데, 그것은 내가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장소인 숲이었다. 심지어 나는 그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노라고 고백해야 한다.  - P7

아침. 정물. 손에 잡히는 대로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한 권 꺼내든 나는, 소파에 편하게 자리 잡고 책을 무릎 위에 놓고는 나이프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아무 페이지나 펼쳐지도록 만들었다. 나는 집중해서 독서를 할 생각이 없었고 책을 처음부터 읽어보려는 의도도 없었으며, 심지어 그 책이 무슨 책인지조차 몰랐고 제목이나 저자 따위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날 아침 나는 저절로 나타나는 어떤 글의 파편과 우연히 마주치기를 바랐을 뿐이다. - P7

한번 집을 떠난 MJ가 집에 언제 돌아오는지 아무도 몰랐다. 짧게는 며칠 혹은 몇 주, 어느 때는 한 달 이상이나 연락도없이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던 MJ는 어느 날 인사도 없이 불쑥 집 안으로 들어섰고, 밤에 전등불이 켜진 방을 보고 나서야 MJ의 귀가를 알게 되는 일이 보통이었다. 깊은 밤, 화장실에 가는 길에 목격한, 여행가방을 들고 복도를 걸어가는 MJ의 뒷모습. - P15

나는 다시 잠이 든다. 식모는 MJ가 병든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러 가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그게 사실인지는 식모 자신도 확신이 없었고 우리도 믿지 않았다. 그보다는 MJ가 직접말했듯이 일 때문에 여행을 떠난 거라고 생각했다. 전등불이켜진 밤, 집에 돌아온 MJ는 텔레비전이 있는 좁다란 식당에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우리에게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은채, 계절에 상관없이 거의 항상 걸치고 다니던 짙은 색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벽에 길고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며 거울이 걸린 복도 가장 끝에 있는 자신의 방 앞으로 가서는, 정말로 하숙인처럼,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방문을 열고, 말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버리곤 했다.
방문 아래에 쌓여 있는 오래된 편지들. - P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연수 작가의 <밤은 노래한다>는 1930년대, 우리가 간도(연변, 동만주로 불리는 곳. 연길, 화룡, 왕청, 훈춘 등 조선과 인접한 네 개 현을 지칭했다고 한다)로 알고 있는 동만주의 항일 유격 근거지에서 벌어졌던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분명 우리 조선 사람들의 역사이지만 너무도 생소한 '민생단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 앞에서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었다. '민생단'이라는 정치 조직은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 간도지방은 항일 운동의 근거지로 혹은 일제의 침탈로 정든 고향을 등지고 쫓겨나다시피 옮겨간 고난의 땅이었다. 그곳에서 우리 민족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유혈 사태가 일어나 일제의 토벌로 죽은 수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는데 그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전혀 들어본 적도 없고 역사적 사실임에도 역사 시간에조차 배운 적이 없을 만큼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 그리고 그 '민생단 사건'을 간략히나마 알지 않고서는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불가능하다는 점, 이 민생단 사건이 중국의 공산당과 관련이 깊고 이후 소규모로 이루어진 유격대의 조선인들의 가족과도 같은 끈끈한 조직성이 북한의 김일성 정권의 형성과도 연관이 깊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소의 불편감이 몰려왔다. '공산당' 조직과의 연관성 때문에 우리 역사에서 잊혀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이러한 불편감은 작품을 읽는 내내 사라지지 않지만 그와는 별개로 작품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불편감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보자면, 일단 민생단이라는 조직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채로 처음 접하게 되었고 작품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아지는 부분이 있지만 한 마디로 명확하게 규정하긴 힘들었기 때문이며, '민생단 사건'의 전개 과정이 너무 참혹했다는 점 ㅡ 서로를 민생단으로 밀고하고 거짓으로 자백하고 가족과 친지,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하고 온갖 억울한 누명을 쓰고 허망하게 죽어나가는 조선인 사회 ㅡ 을 보면서 우리가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는 북쪽의 정권이 연상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불편감이 더욱 심화된다. 불편감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사실은 내 감정에 딱 맞는 용어를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민생단 사건'의 과정은 검색을 통해서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현대사학자 한홍구 선생의 '해제(그 긴밤, 우리는 부르지 못한 노래, 밤이 부른 노래)'를 읽으면서 더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렴풋이 느낌으로 아는 것과 명확하고 또렷하게 아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는 것을 글을 읽으며 느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민생단 사건'은 친일과 공산당 조직, 스파이라는 용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정치 조직이었던 것이다.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자, 일부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간도의 친일 조선인들은 간도를 만주로부터 떼어내어 식민지 조선에 병합하자는 움직임을 물밑에서 벌였다. 이런 흐름은 중국인 공산주의자들 ㅡ이들은 동시에 민족주의자이기도 했다ㅡ을 당연히 자극했다. 1932년 2월, 간도에서 일군의 친일 조선인들은 한때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했던 민족주의자나 전향 공산주의자들을 포함하여 '민생단'이라는 정치조직을 결성했다. 이 민생단은 조선인의 간도 자치를 표방했는데, 일제는 조선인의 간도 자치나 간도의 조선에의 병합이 중국인들의 강력한 반발을 가져올 것이라 우려하여 금방 민생단을 해산해버렸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일제가 민생단원을 훈련시켜 중국공산당 내에 스파이로 잠입시키고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 일제가 중국 공산당 내에 밀정을 침투시킨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만한 일이었지만, 스파이에 대한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해제, 민생단 ㅡ빛,어둠,그림자 중에서 발췌, 348쪽) 


우리 민족이 일제를 피해 고향 땅을 등지고 간도 땅에 정착하였지만 그곳은 엄연히 중국 땅이었으며 우리 조선인들은 앞으로는 중국인들에게 노예와 같은 삶을 강요당했고 뒤로는 일제의 토벌대에 막혀 퇴로도 없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중국, 일본, 조선 그 어느쪽에서도 보호를 받지 못했던 우리 조선인들에게 "'공산당'은 피억압 인민들을 유토피아로 인도해줄 메시아적 존재"로 다가왔으며 일제의 토벌을 피해 산간 오지 마을에 피란민 마을을 세운 조선 이민자들은 이 피란민 마을에 "소비에트 또는 적색정권"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다. 토벌을 피해 도망쳐와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꿈꾸었지만 일본의 토벌대가 무기조차 변변이 갖추지 못한 유격근거지에 쳐들어오면 더 깊은 산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중국 공산당은 이런 현실을 당과 유격대 내에 민생단 스파이가 침투한 결과로 돌렸고 일제의 토벌대에 포위된 '유격근거지'는 민생단 숙청이라는 광풍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민생단이라는 감투를 쓰고 처형된 항일혁명가들의 혐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것들이었다. 일제에 체포되었다가 구사일생 살아나거나 처형장에서 중상을 입고 돌아와도 민생단으로 처형했고, 일을 게을리하면 민생단의 지령으로 태업을 일으키려 한다고 하고 반대로 일을 열심히 하면 정체를 감추려 한다고 민생단으로 몰았다. 밥을 흘리면 어렵게 구한 식량을 낭비한다고, 밥을 설익게 하거나 태워도, 밥을 물에 말아 먹으면 용변을 자주 보느라 혁명과업을 게을리하게 된다고, 고향이 그립다고 말하면 민족주의적 향수를 조장한다고, 동지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려도 패배주의를 조장한다고, 가족 중에 민생단 혐의자가 나와도 모두 민생단으로 몰아 처형하는 등의 간첩, 스파이 꼬리표는 끝이 없었다.(해제 참고함) 






『밤은 노래한다』는 일본 만철의 직원으로,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는 무감각한 조선 청년 김해연, 학창 시절을 함께하며 혁명을 꿈꾸었던 박도만, 최도식, 안세훈, 박길룡이라는 네 젊은이, 그리고 역시 신여성으로서 혁명조직의 일원이었던 이정희의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민생단 사건'의 잔혹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김해연은 만철의 직원으로 대련에서 일하다 용정으로 파견되어 측량작업을 하면서 간도 임시파견대(토벌대)의 중대장인 나카지마 다쓰키 중위와 친해지게 되고, 박길룡의 소개로 이정희라는 신여성을 알게 된 뒤 결혼을 꿈꿀 정도로 깊이 사랑하게 된다. 혁명조직의 일원이었던 이정희는 나카지마 등을 통해 일본 토벌대의 정보를 수집하여 조직에 전달하다가 발각되자 김해연에게 피하라는 메세지가 담긴 편지를 남기고 자살한다. 김해연과 나카지마는 일본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과거 공산주의 운동을 하다 전향한 최도식을 만난다. 

김해연은 이정희의 자살로 충격을 받아 조사를 받고 풀려난 후 아편에 중독되어 괴로워하다 만철에서도 해고되고 결국 이정희가 자살했던 나무에 목을 매달지만 가지가 부러져 살아난다. 그러나 그에 대한 후유증으로 말을 잃게 되고 한동안 말문이 막혀 고통받는다. 김해연은 일본 만철에서 측량 기사로 일하던 경력으로 사진 현상을 할 줄 알았고 용정의 한 사진관에서 현상 기사로 일하게 되는데 그곳이 하필 혁명조직과 연결된 곳이란 걸 알게 된다. 그는 그 곳에서 식모살이를 하면서 혁명조직에 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하던 여옥을 만나 다시 사랑하게 되었고 유격대장 박도만과도 친해지게 된다. 사진관 식구들과 여옥 언니의 결혼식이 있었던 유정촌으로 가던 중 일본 토벌대의 습격을 받아 사진관 식구들이 모두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여옥은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되는 불운을 겪는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해연은 결국 혁명조직에 몸 담기로 결심하고 유격대의 훈련과 정신 개조를 하고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다. 그 당시 중국 공산당은 조선인들의 스파이 활동에 대한 의심이 짙은 시기여서 조선인들의 공산당 입당에 엄격한 제한을 두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드는 두번째 의문이 중국 공산당 입당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이 의문도 '해제'를 읽음으로써 해소되었다. 


"1930년대 초반의 동만주는 일본 제국주의와 동아시아 민중이 격돌하는 최전선이었다. 그러나 전선은 매우 복잡했다. 이곳은 조선공산주의운동, 중국공산주의운동, 국제공산주의운동이 아주 복잡하게 읽히면서 '일국일당一國一黨'원칙이 강력히 시행된 곳이었다. 일국일당 원칙이란 한 나라에 체류하는 외국인 공산주의자들이 자국의 공산당이 아니라 주재국의 공산당에 가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해제, 347쪽)


그러나 문제는 만주의 경우 중국 본토와 달리 중국 공산당의 세력보다 조선인 공산당의 수가 월등했고 중국은 조선인들이 중국 공산당에 입당할 때 '중국혁명'을 '조선혁명'보다 우선시할 것이라고 의심하였는데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자 조급해져 조선인 공산당원들이 '조선혁명'에 주력할 경우 중국혁명을 위한 역량이 분산될 것을 우려하여 '조선혁명', '조선독립'을 말하는 것을 금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와중에 1932년 2월에 친일 행적을 가진 조선인들이 민생단이라는 정치조직을 결성하였고 이들이 내세운 '조선인의 간도자치 표방' 과 '간도의 조선에의 병합'이라는 모토는 중국 공산당과 중국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러한 배경들이 서로 얽힌 복잡한 형국에서 해연과 박도만은 다리를 절단하고 혁명조직의 재봉대에서 일하고 있던 여옥을 만나기 위해 가다가 토벌대의 정보를 듣게 되었고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다시 돌아갔다가 민생단 혐의로 체포된다. 조선혁명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혁명을 위해 힘써야한다는 '국제주의자'였던 박도만은 결국 민생단의 머리로 불렸던 박길룡에게 사살 당하고 만다. 왜놈들이 아니라 동무들의 손에 죽게 되어 영광이라 말하며 한평생 혁명에 앞장섰던 박도만에게 민생단이라는 굴레를 씌워 배신자로 낙인을 찍은 것이다. 이제 혁명의 격랑에 휩쓸리게 된 해연은 결국 이정희의 죽음에 관계했던 박길룡과 최도식을 처단하는 일을 하기로 결심하였고 토벌대의 포위로부터 조선 혁명군을 구하기 위해 나카지마를 인질로 삼아 고립된 주민들을 구한다. 학생시절부터 친구였던 박도만의 중국혁명 우선 원칙과 대립하였으며 중국공산당과 결별하고 조선인의 손으로 조선혁명을 외치던 박길룡도 이때 포위를 빠져나왔는데 이정희의 죽음에 연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해연은 그를 그냥 둘 수 없었고 한발의 총성으로 그를 처단한다. 마지막 남은 한 사람 최도식. 그와 박길룡은 자신들의 스파이 행적을 감추기 위해 모든 덤터기를 해연에게 씌우기로 하고 이정희를 협박하였으며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정희가 편지를 남기고 자살하였던 것인데, 그를 처단하기 위해 8년의 시간이 흘러 찾아갔지만 그는 이제 완전히 친일의 앞잡이가 되어 만주중앙은행 용정 사무처에서 일하고 있었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는 이미 어린 아이들을 둘이나 둔 아버지였고 그의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지인 최도식을 처단할 수 없었던 해연은 정희의 편지를 전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나고 만다. 






간도의 조선인들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조선이니 민족이니 하는 구호들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까. 그들의 생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는 했던 것일까. 희망이라곤 찾을 수도 없이 어디에서도 보호를 받지 못했던 그들은 스스로 빛을 찾아 희망을 찾아 삶의 의미를 찾아내어야 했지만 일제와 만주, 동아시아의 정세는 극심한 혼란의 와중에 있었고 '민생단 사건'으로 혼란스러웠던 유격 근거지의 조선 혁명투사들은 어느 쪽으로 노선을 정할 수 없었다. "혁명 만세. 그저 앞사람을 따라 하는 것인지, 그저 혁명 만세. 조선혁명 만세도, 중국혁명 만세도, 세계혁명 만세도 아니고, 그저 혁명 만세. 그 어느 쪽도 받아들이지 않아 변경에서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자들의 모호한 아우성, 그저 혁명 만세."(230쪽)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욕구, 가족과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살기 좋은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 무에 잘못일까. 유토피아를 꿈꾸며 선택했던 공산주의, 그리고 자신만 잘 살아보겠다고 동지들을 버리고 선택했던 친일주의자들... 그리고 역사 속에 묻혀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참으로 낯설고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오늘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체사상, '어버이 수령'과 인민들 간의 독특한 혈연적 유대관계, 자주노선, 정치적 생명론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인간 본성의 가장 가장 열악하고 약한 부분을 건드림으로써 굴복하게 만들고 자신에게 불리한 당의 결정일지라도 끝까지 충성을 맹세하며 죽어가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의 기막힌 역설. (이러한 토대 위에 세워진 북한 정권을 생각해보자)이것이 진정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민생단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혹은 반동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 남을 밀고하고 거짓 고발하는 이런 기막힌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역사를 『밤은 노래한다』를 읽으면서 또 다른 역사 속 조선인들을 알게 되고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억할 모든 죽음과 넋들에게 ㅡ자신의 것을 포함해ㅡ 초를 밝힐 것"(한강, 『흰』중 「넋」에서)


또 다른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이 되었지만  "어쨌든 결국 우리는 어제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 그게 중요한 것이다. 반드시 복수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 당장 내 눈앞에서 정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좋다. 이게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라면." 그리하여 나도 주인공 해연이 복수하지 않고 최도식을 그의 아이들 앞에서 용서한 것. 그 결론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니 그러한 결말이어서 좋았다. 그런 결말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시詩인 것도 같고 산문散文 같기도 한, 시적 산문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짧은 문장들. 다시 읽다 보면 다시 수 많은 흰 것들의... 압도적, 연속적 시어詩語들의 숨결에서 한 편의 장편 소설을 숨도 안 쉬고 읽은 듯한 기분에 사로 잡힌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수록 그 문장들의 맛이 잘 우러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