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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 이윤엽 이야기 판화 그림책
이윤엽 지음 / 서유재 / 2023년 3월
평점 :
이윤엽의 이야기 판화 그림책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의 마지막 Chapter 3은 '기억하는 마음'이다.
Chapter1의 '신기한 일', Chapter 2의 '이런 꽃 저런 꽃'은 동시 작자의 주변 인물이나 정경, 풍경, 동물, 마을 사람들이었다면 Chapter 3의 '기억하는 마음'은 그 영역이 좀 더 확대되었다. 가족과 이웃, 주변 식물, 사물에서 기억하고 싶은, 그리고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로 확장되었는데,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작가가 보여주는 아름다움만 생각하고 슬슬 읽던 마음이었다가 그래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모두 잊어서는 안된다고 조용조용히 하지만 간절하게 말하는 것 같다.
우는 사람
어떤 사람이 울어.
어떤 사람이 울면
나는 슬퍼.
나는 괜찮은데
어떤 사람들이 울면
어떤 사람들이 슬프면
나도 슬퍼져.
나도 눈물이 나.
사람은
다른 사람이 슬프면 같이 슬퍼져.
(138면)
연탄 배달이 안되는 좁은 길 끝에 살아서 개울을 건너 몇 번이고 연탄을 날라와야 하는 김씨 아저씨, 그 아저씨 예쁘게 사진을 찍어 주고 싶어 꽃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꽃만 환하게 나왔다는데 "꽃보다 더 환한 아저씨인데"라고 말한다. 올빼미도 아닌데 밤에 일하러 가는 노동자들, 밤에 일하면 온종일 몽롱하고 밥맛도 없고 비실비실 힘이 빠지고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고 그래서 사람은 사람처럼 살아야 하고 올빼미는 올빼미처럼 살아야 한다고... (밤에 일하러 가는 사람). 군인들이 기지를 만들기 위해 흙을 덮는 바람에 쫓겨난 대추리 사람들과 솔부엉이(황새울).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해고 당한 노동자들의 시(기타 만드는 공장)는 우리 사회 흔한 이야기인가 사실은 아니겠지 싶어 검색해보니 콜트.콜텍이라는 기타 만드는 공장이 실제로 있었고, 공장 지붕 위에서 고공 농성하는 노동자들의 기사를 비롯해서 줄줄이 검색된다. 30 년을 몸 바쳐 일했던 회사가 주말을 보내고 출근해보니 공장 문이 자물쇠로 잠겨 있었고 이것도 기가 막힐 일인데 곧 이은 해고조치에 맞서 노동자들은 등촌동 본사에서 또 한강 망원동 지구에서 대법원 앞에서 시위를 이어갔지만 부당해고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경영상 필요한 조치였고, 공장폐쇄도 정당하다는 것뿐이었다. 열악한 근무환경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젊은 사무직원들의 폭언, 폭력도 견디며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지만 보상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바쳤던 열정을 알아 달라"고, 그리고 "다시 콜트.쿨텍의 국내공장을 정상화시켜 해고를 철회하고 복직히켜 달라"고.((투테이 신문, 2014. 05.21, 이경은 기자의 글 발췌)
농민 백남기(좋은 사람), 한진 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85호 크레인)을 다룬 사건들은 워낙 많이 회자되는 기사들이었기 때문에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이들도 다 기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잊으면 안되는데 우리는 어느 순간 이렇게 마음을 무겁게 하던 사건들도 다 잊고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 느닷없이 새로운 사건이 다시 등장하고 사라지고 또 등장하면서 우리는 다시 잊으며 살아간다. 잊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그래도 다시 기억하려고 애써보자. 애써야 한다. 책을 읽으며 다시 기억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잊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이상하게 저절로
사람들이 슬퍼하면
저절로 슬퍼져.
사람들이 엉엉 우는 걸 텔레비전에서 보면
저절로 눈물이 나와.
모르는 사람이고
아주 멀리 있는 사람들인데도
사람들이 슬퍼하는 걸 보면
이상하게 저절로 슬퍼져.
내가 이상한 거야?
(172면)
너 그렇게 생각없이 슬슬 읽다가 뒤통수 맞은 기분이지? ㅎㅎㅎㅎ 누군가 이렇게 말하면서 껄껄 웃는 것 같다.
봄비가 내 방 앞 데크에 떨어지는 소리 들으며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기분 좋았는데 Chapter 3 첫 시부터 슬슬 시동 걸다가 점진적으로 강해진 주먹에 맞은 기분이다. 그러니까 왜 그렇게 쉽게 잊는거냐고, 멀리 있는 사람일지라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라도 슬퍼하지만 말고 기억하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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