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은 소설가로서만 아니라 생전 수백편의 에세이를 발표한 산문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독서, 글쓰기, 책, 작가, 문학과 관련된 에세이 아홉 편을 선정해서 번역하였는데, 첫 편부터 흥미가 확 동한다.
독서에 드는 비용을 산출해내는 조지 오웰의 시도가 재미있다.^^
언뜻 생각해보면 우리집 책들만 해도 수백권인데 그 동안 정리한 책은 이보다 훨씬 많으니 독서는 꽤 비용이 많이 드는 취미임에 틀림없다!




*책 대 담배
두 해 전에 신문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하는 친구가 공장노동자 여러 명과 함께 공습이 끝나고 난 뒤 일어날지 모를 화재를 감시하고 있을 때였다. 그들은 친구가 편집자로 있는 신문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이 그 신문을 보고 있었으며 그 신문을 괜찮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가 그 신문의 문학 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때 그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혹시 우리가 문학 면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고 묻는 건 아니죠, 그렇죠? 어쨌거나 그 신문은 왜 12파운드 6펜스씩이나 하는 책들에 관해 그렇게 자주 떠들어 대는 거요? 우리 중에 12파운드 6펜스를 책 사는데 쓸 수 있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어요." 

친구가 말하길 이들은 수파운드씩 들여 당일치기로 블랙풀로 여행을 간다는 것을 생각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 P7

책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책을 읽는 것조차 돈이많이 들어서 평균적인 사람들은 갖기 힘든 취미라는 생각이널리 퍼져 있기에 이를 한번 세세하게 계산해 볼 필요가 있다. - P7

독서에 드는 비용을 시간당 몇 펜스라고 정확하게 산출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먼저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 한 권 한 권의가격 전부를 합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런 다음에 추가적으로 들어간 비용을 책 가격 총액에 더하면 지난 열다섯 해 동안 내가 책에 쓴 비용을 꽤나 정확하게 산출해 낼 수 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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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3-01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오웰이 살았던 시절에는 노동자들에게 책값은 아주 비쌌을 거 같아요. 하지만 요즘은 그래도 다른 취미에 비해서는 정말 저렴한 아주 가성비가 좋은 취미가 아닌가 뭐 그렇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공짜로 볼 수 있는 도서관도 있구요. ㅎㅎ

은하수 2023-03-01 18:34   좋아요 1 | URL
그랬을 거 같아요 제 생각에두요. 책 읽기를 취미로 하기 쉽지 않은 어려운 시대였죠. 우리보다 먼저 책읽기의 풍요로움을 알았던 곳이었겠지만 1930~40년대의 영국이라 할지라도 그건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근데 저 첫 에세이를 계속 읽다보니 결국 책만큼 가성비 좋은 취미도 없을거란 결론을 도출해 내더라구요 ~~ 그래서 저도 마지막엔 당연하지 하면서 웃었어요^^
 
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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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렵게 읽을 책을 선택하고 나서 그 책을 구입을 할 것인지 구입을 한다면 신간을 할 것인지 중고로 들일 것인지, 아님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것인지를 최종 선택을 하고 이러한 어려운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 엄선한 책이 나에게로 왔을 때!

  책이 술술 너무 잘 읽히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하면, "아, 이거 너무 아까운데..."  시간이 아깝거나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게 된다.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은 일단 읽어보기로 마음을 정하고 무심코 도서 반납하러 갔다 검색해보고 마침 도서관에 있어서 살짝 놀란 마음으로 빌려 오게 되었는데 들고 와서도 한참을 묵혀 두었다 펼치게 되었다. 그런데 반납일의 압박감을 느낄 새도 없이 책이 너무 술술 읽혀서 놀라웠고 술술 읽히는데 읽어 보기로 마음을 정하기까지의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재미가 있었고 책을 읽고 있는 그 시간이 너무 만족스러웠다. 햇살이 가열차게 비쳐 들어오는 썬룸에 앉아 그 뜨거움을 스카프로 가리면서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이야기에 빠져든 시간이었다.

사실 어제 하루만에 다 읽을 수도 있었는데 아쉬움이 크기도 했고, 아름다운 결말을 남겼다 하루 더 기쁨을 만끽하고 싶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눈이 떠져서 마지막 부분을 다시 휘리릭 읽으며 그 시간을 맘껏 즐겼다.

  

  1930 년대로부터 이어지는 여인 4대의 이야기가 우울하지만은 않고 결말이 희망적이어서 얼마나 기쁜지...

  작품은 주요 화자인 지연이 희령이라는  도시에 내려와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리어 자신의 상처와 대면해야 했다. 그래서 가끔은 지연이를 바라보는 일이 힘들기도 했다. 그런 지연이가 이 소설 속 어떤 인물보다도 내게 힘을 준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데 지연이가 상처을 치유해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조우하게 된 외할머니 영옥이 들려주는 여인 3대의 이야기들은 지연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큰 힘을 발휘한다. 상처는 더 큰 상처를 통하여 치유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시간들이었다. 

  

  백정의 딸로 태어난 삼천이(지연의 외증조모), 그리고 그런 그녀를 평생의 친구로 삼은 새비와 딸 희자,  삼천이의 딸인 영옥(지연의 외할머니)과 미선(지연의 엄마)으로 이어지는 여인들의 이야기는 가부장제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에서 철저하게 고통 받는 약자였지만, 운명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등장하는 남편, 아버지들은 하나 같이 그녀들에게 정상적인 가정을 제공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간 이하의 행동들을 보여줌으러써 분노를 유발케 한다. 가부장으로서의 권위와 권력만을 행사하면서 한시도 가족을 보호하지 못하고 딸 자식을 자식으로도 생각하지 않으며(삼천의 남편, 사실 남보다 못하다. 사고로 죽었을 때 정말 일말의 동정심도 느낄 수 없었다.),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이 있으면서도 속여서 결혼을 하고 그것이 탄로가 나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으며 사과도 하지 않는 파렴치한 인간(영옥의 남편, 미선을 키우게 해준 것을 무슨 크나큰 시혜를 베푼줄 안다. 천벌 안받나???), 바람을 피우고 가정을 등한시 하면서도 바람을 피운 원인을 아내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부도덕한 남편(지연의 남편, 제일 한심한 인간. 배울만큼 배운 놈이니까...)들을 보면서 -아. 그러고 보니 미선의 남편도 참 할 말이 많긴 하다. 미선이 1박 2일 이상의 여행을 한번도 못해봤다는... 그놈의 밥 때문에...암으로 입원해서도 지연이에게 아버지의 밥 걱정을 하게 만든! 그리고 퇴원해 왓는데도 혼자 식탁에서 저만 꾸역꾸역 밥 먹는 저 밖에 모르는 인간.그게 사람인가 싶다. - 우리가 과연 이런 아버지, 남편, 삼촌, 오빠... 같은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 뭘 바랄 수가 있을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아버지와 엄마, 외할머니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도 생겼다. 최소한 우리 아버지는 밥 먹을 때 생선 가시를 다 발라서 식구들 먹게 해 주셨다. 항상!!! 결혼해서 혼자 맛있는 부분 발라 혼자 먹는 남편 모습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그렇다고 남편을 저런 나쁜 인간들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세상 아빠들은 다 우리 아빠 같은 줄 알았었는데 그때 좀 실망 ㅠㅠ  아무튼 우리 3 남매에겐 더없이 좋은 분이셨는데 엄마에겐 또 다른 것이 문제이긴 하다. 각설하고 그 분들의 삶을 책에서와 같이 오래 들을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이 안좋은 사람이 엄마와 나인데 이런 말 하려니 좀 . . . . . .

  

  지연이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처를 회복해 가는 과정이 보기 좋았다.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랄까...

  결국 딸들은 엄마를 깊이 이해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로구나 생각을 하니 나도 언젠가는 엄마를 그저 아무런 이유없이 엄마를 엄마로 인정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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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3-01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하수님.별다섯의.감동이.전해집니다 읽고 나눌 이야기도 참 많은 소설이죠?^^완독 축하드려요.

은하수 2023-03-01 12:5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는데 저도 작가처럼 자르고 줄여 리뷰를 쓰느라 힘들었어요

얄라알라 2023-03-02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을 며칠 사이 다시 한 번 더 읽는 일은 드문데, 그 만큼 이 소설 좋았어요

은하수 2023-03-02 11:48   좋아요 0 | URL
맞아요
가끔 꺼내 먹고 싶은 이야기들이예요 여자들의 이야기라 더욱 좋구요^^
 

책장이 어쩜 이리 술술 넘어갈까...

나는 희령을 여름 냄새로 기억한다. 사찰에서 나던 향 냄새, 계곡의 이끼 냄새와 물 냄새, 숲 냄새, 항구를 걸어가며 맡았던 바다 냄새,
비가 내리던 날 공기 중에 퍼지던 먼지 냄새와 시장 골목에서 나던 과일이 썩어가는 냄새, 소나기가 지나간 뒤 한의원에서 약을 달이던 냄새・・・・・
내게 희령은 언제나 여름으로 기억되는 도시였다. - P9

희령에 처음 간 건 열살 때 일이었다.
할머니 집에서 열흘 정도 지내는 동안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줬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산속에 있는 사찰에도 가고 집 근처의 바닷가에도 갔다. 시장에서 갓 튀긴 팥 도넛과 꽈배기도 먹고, 집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할머니의 친구들과 춤을 추기도 했다.
어린 내 눈에 희령의 하늘은 서울에서 보던 것보다 더 높고 푸르렀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건 할머니와 함께 본 희령의 밤하늘이다. 나는 그때 은하수를 맨눈으로 처음 봤는데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배가 울렁거리고 간지러웠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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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3-01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술 넘어가는 책, 짱입니다.

은하수 2023-03-01 10:55   좋아요 0 | URL
네 .. 정말 짱짱입니다
벌써 다 읽어버렸어요 ㅠㅠ
 

스니커즈를 신고 세상 밖으로 나가 거리를 활보하고 싶었다. 배터리파크부터 조지워싱턴브리지까지 하염없이 걷고 싶었다. 하지만 커다란 쇠망치 같은 피로가 덮쳐오는 바람에 그대로 소파에 쓰러져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진심으로 절망했다. 아무리 차별화하려고, 달라지려고 기를 써도 나는 결국 엄마처럼 돼버리는구나. 소파에 누워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여자가 되는구나. 내가 조와 잤던 게 아빠와 잔 것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던 건 조가 나이 많은 유부남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세상을 보는 관점에 남자-남편-아빠, 여자-아내-아이라는 철옹성 같은 구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 P293

언제나 나에게 왜냐고 물었다. 한 번씩 숨쉬기가어렵다고 느끼는 건 왜인가요? 마음이 직사각형 공간인건 왜 그래요? 왜 특정한 작은 공간만 항상 공격을 받는걸까요? 그 공간이 넓어지고 확장돼 삶을 채워주지 못하는 건 왜죠? 왜 그럴까요? - P295

모든 ‘왜‘가 달리는 순간마다 도시의 거리를 달리고 내삶의 거리를 달릴 때마다 위에서 아래로 고꾸라지듯 내게쿵 하고 떨어졌다. 책상에 묶여 있는 게 아닐 땐 나가서달리곤 했다. 숨이 찰 때까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미칠 것같을 때까지. 당장 행동해! 움직여! 채워 넣어! 너한테는시간이 없고 멈춰서 숨 고를 시간은 더더욱 없어. 물론 언젠가는 숨도 편하게 쉴 수 있고, 여유를 부릴 수도있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냥 맨발로 필요한 것을 향해뛰어. 내면 공간이 잠깐 넓어졌다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게 느껴지니, 더 빨리 더 많이 일해 더 빨리 끝내라니까.
못하겠어. 가슴 안쪽에서부터 고통이 느껴졌다. 사실 타자기 앞에 앉아 있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몸 어딘가가 아팠고, 일어나면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 상태로 30분을더 그 앞에서 버텼다. 그러다가 바닥에 쓰러질 것 같았다.
다시 나를 타자기 앞으로 질질 끌고 가 묶었다. 그게
차라리 나았다. 그러지 않으면... - P295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가다가 뭉텅이로 사라져버리기도한다…………. 마흔여섯, 마흔일곱, 마흔여덟・・・・・・ 이제 과거는 없고 계속 진행되는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일흔여덟, 일흔아홉, 여든, 맙소사. 엄마가 팔순이 되었다. 우리는여전히 가만히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엄마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거실 소파에 앉는다. - P298

그날 저녁 내내 슬프고 고요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줄곧엄마에게 내려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 밤 엄마는무척 어여쁘게 보인다. 결이 고운 흰머리, 보드라운 피부그 자체로 완벽한 작품처럼 보이는 주름지고 지친 노인의얼굴 하지만 지난 세월은 엄마를 엄마만의 세계로 끌고가고 눈에는 다시 그 혼란이 찾아온다. 엄마를 놓아주지않는 저 끈질긴 삶이라는 혼란.
"인생이 연기처럼 사라지네."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말한다. - P300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저미는 듯해 그 고통을 감
히 느낄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 "정말 그렇네." 나는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제대로 살지도 않았는데. 세월만 가버려."
엄마의 부드러운 얼굴이 결심이라도 선 듯 확고하고 단단해진다. 나를 보더니 강철 같은 목소리로, 이디시어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네가 다 써봐라. 처음부터 끝까지, 잃어버린 걸 다 써야 해." - P301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다. 우리는 끈끈하게 얽힌 혈육이 아니다.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 같은 인생을 그저 바라보는 두 여자다. 엄마는 젊어 보이지도 늙어 보이지도 않고 그저 당신이 목도하고 있는 바, 그 혹독한 진실에 깊이 침윤되어 있다. 엄마한테 내가 어떻게 보일지는 나도 모른다. - P301

"그래 맘대로 하든지." 나 하는 짓이 어찌나 마음에안 드는지 목소리까지 떨린다. 엄마의 오만 엄마의 경멸.
엄마에게서 결코 떨어지지 않을 기질. 절대적으로 엄마곁에 머물러 있을 것들. 언어의 상징이 존재의 숙어로 이것들이야말로 엄마의 자아를 완성한다고 믿는다. 타인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건 불쾌한 일에서 헤어나는 엄마만의 방식, 당신과 타인을 분리하는 방법, 옳고 그름을 아는 법,
당신의 주장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 순간 엄마의 삶이 이해되면서 묵직한 돌이 가슴을짓누르는 것만 같다. - P309

엄마는 겁에 질렸다가 이내 뉘우치고 나를 가여워하기 시작한다. 요즘 들어 엄마는 부쩍 유순해졌고
그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 "아니야, 아니다." 엄마는 황급히 수습한다. "엄마 이야기야. 그때는 그랬다고. 뜻 있어서 한 말 아니야. 넌 당연히 잘 살았지. 그건 세상이 다 알아줘. 그렇게 성내지 마라. 세게 말하려던 것뿐이니까.
엄마가 잘못 말했다. 이제 너한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쏟아지던 말이 느닷없이 멈춘다. 다른 생각이 엄마를 사로잡은 것이다. 엄마가 방어의 방향을 튼다. "너 정말 모르겠니?" 엄마는 애원하듯 말한다. "엄마한테는사랑밖에 없었잖아. 내가 뭘 가져봤겠니. 아무것도 없었어.
아무것도 달리 뭘 가질 수 있었겠니? 네가 인생 얘기하는거 다 옳지. 다 맞는 말이야. 너한테는 일이 있었잖아.
너만의 일이 있잖아. 너는 여행도 많이 했고, 세상에나, 여행이라니! 넌 지구 반 바퀴는 돌아봤지. 난 여행은 꿈도 못 꿔봤는데! 나한테는 네 아빠 사랑밖에 없었어. 인생 살면서 누릴 게 그것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그 사랑을 사랑했다. 아니면 뭘 어쩔 수 있었겠니?" - P317

엄마가 침묵을 깬다. 이제 격한 감정이 거둬진 목소리,
그저 호기심에 대답을 바라는 초연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러면 엄마랑 좀 멀리 떨어져 살지 그랬니? 내 인생에서 멀리 떠나버리지 그랬어. 내가 말릴 사람도 아니고."
나는 방 안의 빛을 본다. 거리의 소음을 듣는다. 이 방에 반쯤 들어와 있고 반은 나가 있다.
"안 그럴 거 알아, 엄마."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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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3-01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

전 어제 읽기 시작해서 1/3
지점을 통과하고 있답니다.

은하수 2023-03-01 10:54   좋아요 1 | URL
그래도 비비언 고닉의 매력에 푹 빠지셨을 거예요..그렇죠? ^^
 

탐험을 나선 지 거의 12 개월여 만인 1915년 11월 21일 인듀어런스 호가 침몰했다. 남극의 얼음 위에서 대원들은 보트를 끌고 새로운 캠프를 찾아 이동해야 한다. 그 과정이 너무 고되고 힘들지만 행군을 몀출 수는 없었다. 멈춘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4부 페이션스 캠프

대원들은 부서진 배에서 약 100m 떨어진 넓고 안전한 부빙 위에 캠프를 설치했다. 다섯개의 텐트에 인원이 배정되었고, 각 대원들에게는 슬리핑백이 지급되었다. 기온은 영하39도까지 떨어졌다. 가장 가까운 육지는 60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때의 일을 맥니쉬는 이렇게 적었다.
 "가죽 백이 18개밖에 없어 우리는 제비뽑기를했다. 난생 처음으로 내가 당첨되었다."
 대부분의 고급 대원들은 질이 떨어지는 재규어울 백을 뽑았다. 하지만 거기에선 조작의 냄새가 강하게 풍겼고, 일부 대원들은 즉시 그사실을 알아차렸다.

노련한 뱃사람인 베이크웰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제비뽑기가 약간 조작되었다. 섀클턴 대장과 와일드 부대장, 웨슬리 선장, 그리고 다른 고급 대원들 모두가 울 백을 뽑았기 때문이다. 품질이 좋고 따뜻한 가죽 백은 모두 일반 대원들의 몫이었다." - P79

10월 30일 아침, 행군 준비가 완료되었다. 일단 섀클턴, 허드슨, 헐리, 워더로 구성된 답사 팀이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섀클턴이 "이제 로버트슨 섬으로 간다!" 고 소리치자 모든 대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답사 팀의 임무는 빙구와 얼음 덩어리 등 장애물을 헤치고 보트와 썰매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었다.

오후 2시 55분, 강아지 세 마리와 그동안 인듀어런스 호의 마스코트였던 고양이 ‘치피 여사‘ 를 크린이 총으로 쐈다. 한 번도 썰매를 끌어본 적이 없는 강아지 시리우스의 처리는 맥클린에게 맡겨졌다. 시리우스는 총구를 빤히 쳐다보며 맥클린의 손을 핥았고, 맥클린은 손을 너무 떠는 바람에 총알을 두 방이나 쏘아야 했다. 총소리가 얼음 위로 울려
퍼지며 모두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 P83

며칠 동안 ‘회수 팀‘이 인듀어런스 호와 오션 캠프 사이를 오가며 필요한 물건을 날랐다. 비록 상당량의 물품들이 눈 속에 파묻히긴 했지만, 그래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일부를 포함하여 많은 물품들을 회수할 수 있었다. 갑판에서 조타실을 통째로 떼어와 보관창고로 사용했으며, 맥니쉬는 갑판에 구멍을 뚫고 배 밑바닥으로 내려가 무엇보다도 소중한 식량을 꺼내 왔다. 설탕과 밀가루 봉지가 나오자 모두 환호했으나 호두와 양파, 소다수가 나타나자 대부분 신음소리를 냈다. - P86

얼음이 녹으면서 주변 경치가 조금씩 변했다. 들쭉날쭉했던 병원이 조금씩 편평해졌고 곳곳에 작은 물줄기가 만들어졌다. 낮도 훨씬 길어져서 새벽 3시에 뜬 해가 오후 9시나 되어야 질 정도였다. 대원들은 물개를 사냥하고 카드놀이를 하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나오는 글을 놓고 입씨름을 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11월 21일 저녁, 개에게 먹이를 준 뒤 텐트에서 책을 읽거나 잡담을 하고 있던 대원들에게 갑자기 섀클턴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배가 가라앉는다!"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온 대원들은 높은 망루 위에 서서 인듀어런스 호의 최후를 말없 - P93

이 지켜보았다. 뱃고물이 하늘 높이 치솟더니 곧 이어 뱃머리부터 서서히 물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원들을 태우고 처녀 항해에 나섰던, 헐리에 의하면 ‘바다의 신부‘ 였던인듀어런스 호가 마침내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모두들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베이크웰은 그날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목구멍에 무엇인가 걸린 것 같았는데 삼킬 수가 없었다…….… 이제 우리는 완벽하게 외로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섀클턴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오후 5시에 인듀어런스 호는 머리부터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가장 상처를 많이 받은 뱃고물이 맨 마지막으로 물 속에 들어갔다....도저히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 P94

12월 21일 새클턴이 대원들에게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 "12월 23일에 다시 서쪽으로 행군을 시작한다." 하지만 많은 대원들이 이번발표를 달갑지 않게 받아들였다. "모든 면에서 지난번보다 상황이 훨씬 좋지 않다." 그린스트리트는 이렇게 적었다. "대장이 행군 생각을포기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우리 텐트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 P95

먼저 18명이 줄을 연결하여 배 두 척을 끌고 조심스럽게 눈길을 헤쳐나갔고, 나머지대원들은 필요한 물품들을 정리했다. 텐트, 요리 도구, 창고, 썰매 등을 꼼꼼히 챙겼고, 남은 배 한 척은 오션 캠프에 남겨두었다. 꼬박 8시간에 걸쳐 강행군을 한 첫날, 그들은겨우 2km를 걸었다.

며칠 동안 힘들고 별 소득도 없는 행군이 계속되었다. 대원들은 충분히 쉬지도 못했고, 허기를 완전히 채우지도 못했으며, 옷은 항상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하루에 2km씩 빙구와 질퍽한 얼음 위를 걷느라 모두 파김치가 된 상태였다.
 "힘들고 희망도 없는 행군이다. 더 이상 이런 짓을 하고 싶지 않다." 베이크웰은 이렇게 적었다. - P95

섀클턴은 결국 어쩔 수 없이 행군 중단을 결정했다. 힘겨웠지만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대원들은 단단해 보이는 얼음 위에 새로운 캠프를 만들기로 했고, 이틀간의 탐색 끝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 일렬로 텐트를 세웠다. 온갖 좌절에도 불구하고 이젠 부빙 위에서의 생활을 다시 확립해야 했다.
"캠프 이름을 ‘페이션스 캠(Patience Camp)‘로 정했다." 오들리는 기록했다.

이제 1916년 1월이었고 해빙의 조짐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아 부빙의 위치는 줄곧 남위 66도 부근에 머물러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면서 다시 지루함과 침울함, 그리고 고통스러운 긴장이 찾아왔다. - P96

4월 8일 저녁, ‘제임스 커드 호 바로 아래에서 얼음이 삼각형으로 갈라졌다. "배를띄울 때가 다가왔다고 느꼈다."섀클턴은 이때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4월 9일 아침이되자 대원들은 출발 준비를 모두 갖춘 채 마지막 식사를 했다. 그리고 오후 1시, 마침내섀클턴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명령을 내렸다.

배를 띄웠다. 각자의 위치는 이미 몇 개월 전에 정해져 있었다. ‘제임스 커드‘호는섀클턴과 와일드가 맡았으며 클라크, 헐리, 허시, 제임스, 워디, 맥니쉬, 그린, 빈센트, 맥카티가 탔다.
 ‘더들리 더커‘ 호는 워슬리가 책임졌으며 그린스트리트, 커어, 오들리, 맥클린, 치덤, 마츤, 맥리오드, 홀리스가 탔다.
 가장 작은 ‘스탠콤 윌스‘ 호에는 리킨슨,
맥클로이, 하우, 베이크웰, 블랙보로, 스티븐슨이 탔고 허드슨과 크린이 지휘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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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3-01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만난 책인데,
반갑네요.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네요.

은하수 2023-03-01 10:53   좋아요 1 | URL
읽기 전에 가졌던 그냥 건조하기까지 했던 무관심이 미안해집니다 인간의 인내란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질수 있는건지 ... 인간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