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鄕愁와 추구, 혹은 무지와 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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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곳을 떠나 낯선 곳을 떠도는 인물, 가령 장기 출장을가거나 발령을 받은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출장이나발령은 대개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고, 갑작스럽게 닥치고, 거부할 수 없다. 선택할 수 없는 것은 거부할 수도 없다. 그것이삶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배운 교훈이다. - P54

출장지/발령지에서의 삶은 임시적이다. 떠났으나 이르지못했고, 이르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이들의 처지다. 임시는 정해져 있지 않은 시간을 이른다. 여기서 기간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 P54

임시는 잠시와 동일시될 수 없다. 임시와잠시는 같은 시간이 아니다. 한곳에 오래 살아도, 심지어 시민권을 받은 후에도 외부인 취급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정착민의 안정은 유보되고 여행객의 자유는 압류된다. 임시 거처. 유배지거나 광야거나. 어느 쪽이든 정착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같다. - P54

자기 집을 갖지 못한 사람에 대한 소설을 여러 편 썼다. 집을 가지고 있으나 집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과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은 인물들도 여러 명이다. 이를테면 자기 집인데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들어가지 못하거나 타인(가깝거나 먼)에의해 집이 훼손되는 일을 당한다. 내 소설의 인물들은 안타깝게도 정착과 안정에 이르지 못한다. 대부분 임시적 삶을 산다. - P55

집의 상태는 그 사람의 신분을 비유한다. 다른 사람의 땅에 지어진 집은 임시적이다. 다른 사람의 땅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의 삶은 불안정하다. 집이 흔들리는 것은 땅이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그 집이 자기 땅이 아닌 곳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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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너 가문의 요람인 우크라이나의 도시는 유대인 주민들의 눈에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세 구역으로 나뉘었다. 옛 그림들에서 볼 수 있듯, 아래쪽에서는 배척당하는 자들이 지옥의 암흑과 불길에 휩싸여 허우적댔고, 평온하고 창백한빛이 비치는 중앙은 평민들의 차지였으며, 위쪽은 선민들의 거처였다. - P7

여기 게토에서 태어난 한 사람이 있다. 스무 살이 된 그의수중에는 단돈 몇 푼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사회생활을•하며 한 단계씩 올라갔고, 강에서 꽤 떨어진, 아래 구역과의 경계에 있는 시장 근처로 옮겨 정착했다. 결혼한 후 그는 유대인에게는 금지된 짝수번지에 살게 될 것이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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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태기 극복은 한국문학이 답~~~ 그리고 뜻밖의 낭보, "소설가 한강, 한국 첫 노벨 문학상" 쾌거 이뤄...!>  

지난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거의 2 주 동안 어찌된 일인지 읽으려고 집어 드는 책마다 책장이 넘어가질 않고 지루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어서 그런가 도통 한 권을 끝내질 못하는 거다. 책 한 권을 너무 오래 들고 있으면어찌나 답답한지... 휴일도 많아서 우리집 두 남자가 집에 있으니 정신도 산만해지고 남편은 뭐라도 하기만 하면 귀찮게 이거 갖다 달라 저거 갖다 달라 하면서 계속 불러대는 데다 사이사이 끼니를 준비하다 보면 진득하니 앉아서 책을 읽는 건 사실상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은 어느새 유튭 숏츠에 눈이 가 있고 그걸 보면서도 머릿 속으론 책 읽고 싶은데 생각하면서 쌓여 있는 책을 봐도 딱히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재밌어 보이지를 않는 거다. 그래서 생각해낸 특단의 조치가 바로 오랜만에 중앙도서관으로 출동하는 거였다. 한동안 상호대차, 희망도서 신청으로 신간, 구간 할 거 없이 꽤 빌려다 읽었는데 아직 10월 초이건만 희망도서 신청이 마감이 되었다니 청천벽력..... 우리 동네는 작은 도서관이니까 일단 중앙 도서관으로 가서 눈에 들어오는 책을 마음껏 집어오리라, 잭 리처의 책이나 장르소설, 로맨스 소설이라도 빌려다 읽고 책태기를 극복해 보리라... 생각을 하고 갔다가 갑자기 한국문학 서가를 발걸음을 옮기면서 천천히 책등에 눈맞춤을 시전하다보니 있다..! 눈에 들어오는 책들이... 자주 가서 눈맞춤 할 땐 없었는데, 혹은 안보였는데 갑자기 보인다. 아님 대출 나갔다 돌아왔나??? 아무튼 반갑다 반가워 내 눈에 띄어줘서...! 너무 천천히 눈맞춤을 한건지... 빌리고 싶은 책들이 많았지만 기간은 한정적이고, 짧은 반납일 사이에 딸램도 며칠 와 있을테고 친구들과 1박 2일 안동 여행도 잡혀 있는지라 욕심은 살짝 내려놓고 7권으로 타협했다. 



















올해 들어 이승우 작가의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식물들의 사생활』『생의 이면』을 읽고 내가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춘 작가라는 느낌이 빡~~ 하고 왔다. 결국 『이국에서』를 다시 빌려 왔다. 이 책은 사실 구매했다 되팔았는데 『식물들의 사생활』을 읽기 전이었다는 것이 그저 아쉬울 뿐. 읽은 후였다면 끝까지 읽었을 거다. 분명히. 어떤 책을 먼저 읽었는지가 작가에 대한 인상을 결정하는데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고요한 읽기』는 구매했다. 지금 읽고 있는데 한 챕터씩 천천히 음미하며 읽기 좋다. 작가의 독서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그 책들을 통한 사유의 방식과 글을 풀어내는 과정을 글로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찬탄의 한숨이 새어나오고 더더 집중해서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다. "자기에 대한 의심과 돌아봄이 없는 이해만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읽기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나를, 사람을, 세상을 정말 잘 읽어야 합니다."(서문ㅣ감추어진 동굴, 7쪽) 이런 문장을 읽었는데 허투루 읽을 순 없지 않나!





















김연수 작가의 『밤은 노래한다』는 한국문학 서가의 거의 제일 첫 칸에 있었다. 작가 이름 순이니까^^ 김연수 작가의 책도 꽤 많이 읽었는데 리뷰는 안 쓴다는 것이... 리뷰를 쓰기 어렵다는 것이 맹점. 아무튼 좋아하는 작가라 더 생각할 것도 없이 픽! 

배수아 작가의 책은 한 권도 안 읽었는데 난 이상하게 이 작가의 책을 읽은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다. 그러면서 나랑은 별로 안맞는 거 같단 생각을 했었다. 그런 착각을 불러 일으킨 작품은 조경란의 『혀』였다. 어떤 이유로 이런 착각을 하게 된 것일끼. 알 수가 없지만 그런 이유로 배수아 작가의 작품을 대할 기회는 조경란의 작품을 읽은지 14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도래하게 된 것이다. 어떤 글을 쓰는 작가인지 잘 읽어봐야겠다.



















송시우 작가의 작품 중 제일 먼저 읽은 것이 한국형 사회파 미스터리의 가능성을 열어 준 수작으로 평가받은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이었다. 미스터리 뿐만 아니라 1980 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와 미스터리가 혼합된 수작이라는 것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신인 작가라고 하기 힘든 필력을 보여 주어 읽으면서도 너무 놀랐던 작품이었다. 그래서 작가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상승해 있었는데 다음에 읽었던 『달리는 조사관』은 『라일락 붉게 피던 집』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 가볍고 경쾌해서 재밌게 읽긴 했는데 살짝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작품인 『검은 개가 온다』는 우울증에 대한 무지를 깰 수 있었고, 아울러 인간의 내재된 악의가 표출될 때 얼마나 끔찍한 결말에 이룰 수 있을지를 묵직한 분위기 속에 표출해 내었다. 『아이의 뼈』는 이미 읽은 작품이었는데 안 읽을 줄 알고 또 빌려왔더라는... 몇 개의 단편만 다시 읽었는데 표제작인 「아이의 뼈」, 제목이 기억에 남았던, 한 때 콜센타 직원들의 단골 멘트였으나 지금은 사장된, 그러나 제목과는 전혀 상반되는 내용의 섬뜩한 단편이었던 「사랑합니다, 고객님」, 「5층 여자」등은 기억에 남을 거 같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려고 들어가보니 예약이 자그마치 4~6명씩 각 도서관마다 대기하고 있었는데 평소엔 매번 책이 없어서 아쉬웠던 우리동네 작은 도서관에 예약없이 대출중이어서 얼른 예약 걸어놨는데 불과 이틀 뒤에 예약도서 대출안내 톡이 왔다. 하루 반만에 다 읽을 수 있었는데 예상외로 높은 별점을 주어도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았다. 별5까지는 아니어도 넷이나 넷반 정도는 괜찮을 듯. 보통의 사랑 이야기로 읽혀서 좋았다. 백온유 작가의 「페퍼민트」는 약간 편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을 듯하여 빌려왔다. 청소년 문학인가??? 전작인 「유원」이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단다.




티비 뉴스를 들으며 저녁을 먹고 있는데 "소설가 한강, 한국 첫 노벨 문학상 수상" 이라는 속보가 떴다. 순간 내 눈을 의심하며 꺅 놀랐는데 소름이 올라왔다. 진짜 깜짝 놀랐다. 전혀 기대도 안했고 예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을 제외하고 동아시아 작가들에게 유독 인색한 노벨 문학상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몇 작품 읽지는 않았지만 나름 아끼는 작가였기 때문에 기뻤다! 지금 보니 기사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오늘 저녁엔 속보와 기사 읽으면서 오랜만에 집에 온 딸램과 얘기나 실컷 해야겠다. 난해하다, 재미없다, 진도가 안 나간다 하면서 꽤 여러 권을 읽어서 깜짝 놀람. 오늘 한강 작가 덕분에 기분좋게, 여러모로 자주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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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자 2024-10-11 0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아 정말 너무 굉장하지 않습니까...!!! 노벨 문학상 발표 나자마자 기사 특보로 뜬 거 보고 숨이 헉!! 막히면서 말이 안나오더라구요 정말 말 그대로 말이 안나오더라구요...!!!!

은하수 2024-10-11 00:50   좋아요 2 | URL
꺄~~~ 이랬다니까요^^
저녁 먹다 속보보고 순간 정말 소름 돋았지요. 한국 여성작가가 아시아 최초로 이루어냈네요!
넘넘 멋집니다^^
 

《대도시의 사랑법》 중 <늦은 우기의 바캉스>


요즘 나는 매일 조금씩 부서지는 것 같다. 내 기억 속 규호와 같은 방식으로 부서지고 흩어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 확신에서 좀체 벗어나기 힘들다. - P306

때때로 그는 내게 있어서 사랑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내게 규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규호의 실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랑의 존재와 실체에 대해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 P307

나는 지금껏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몇번이고 
나에게 있어서 규호가, 우리의 관계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둘만의 특별한 어떤 것이었다고, 그러니까 순도 백 퍼센트의 진짜라고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온갖 종류의 다른방식으로 규호를 창조하고 덧씌우며 그와 나의 관계를, 우리의 시간들을 온전히 보여주고자 했지만, 애쓰면 애쓸수록 규호라는 존재와 그때의 내 감정과는 점점 더 멀어져버리고야 만다. 진실과는 동떨어진 희미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 P307

진실과는 동떨어진 희미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내 소설 속 가상의 규호는 몇번이고 죽고 다치며 온전한 사랑의 방식으로 남아 있지만 현실의 규호는 숨을 쉬며 자꾸만 자신의 삶을 걸어나간다. 그 간극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모든 것들을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지난 시간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써왔지만 결국 나의 몸과 나의 마음과 내 일상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더 여실히 깨달을 따름이었다. 공허하고 의미 없는 낱말들이 다 흩어져 오직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만이 남는다. 어깨를 잔뜩 구부린 채 미간에 주름을 짓고 있는 내가 나 자신의 호흡만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세상. - P307

나는 풍등에 쓸 문장을 여러번 고쳐 썼다. 다이어트, 주택청약 당첨, 포르셰 카이엔, 첫 책 대박 나게 해주세요...... 뭔가 다 내 진짜 소원이 아닌 것 같아 빗금을 쳐서 지워버렸다. 아마도 그러는 사이 구멍이 나버린 것이겠지.
나는 결국 풍등에 두 글자만을 남겼다.
규호.
그게 내 소원이었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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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읽기》 / <세상의 끝> 중에서 ...
문장 하나하나 가슴을 친다. 이 가을 독서에 치명적으로 잘 어울린다! 고요하고 깊이 읽기에 좋은 글이다.

˝... 그러니까 내부는 궁극이다. 마지막이다. 막다른
길이다. 거기서 더 나아갈 수 없다. 언제나 ‘나‘는 가장 나중에 만난다.˝ (25쪽)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의 동기가도피인 경우가 있다. 열심히 일하는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 내부를 피해 외부로 달아난 어떤 사람은 외부에서, 그러니까 세상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산다. 그는 내부의 ‘나‘를 만나기가 두려워너 외부에서만 산다. 외부에서 타인과 일과 열심히 산다. 누구보다 바쁘게 최선을 다해서 산다. [캉탕]의 한 인물처럼. 전쟁하듯 산다. 살아남기 위해 매일 싸운다. 한순간도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 늘 마음을 들고 살아야 해서 힘들다. ‘자기착취‘가 그렇게 이루어진다. - P22

그렇지만 그는 다른 사람 눈에 성실하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그 결과 일정한 성취를 이뤄내기 때문에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는 자기와의 만남을 피해 필사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오이디푸스는 얼마나 필사적이었는가! 신탁과 운명을 피하기 위해 그는 망명객이 되고 나그네가 된다. 밖으로, 외부로, 되도록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 자신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두려워하는 것이 또있을까?" - P23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시간이 온다. ‘뒤에서 문이 
닫히고‘, 혼자 ‘나‘에게, 그 무서운 놈에게 넘겨지는 시간. 그렇게 필사적으로 세상과 싸우며 살던 
『캉탕』의 인물 한중수는 어느 날 사이렌 소리를 듣는다. 강연장에서 자기 강연을 듣고 있는, 오래 전에 죽은 아버지를 본다. - P23

그가 세상에서 필사적으로 싸우며쌓아올린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려 한다. 회피하기 위해 앞으로만, 밖으로만 내달리던 그의 걸음이 멈춘다. 앞이 막혔기 때문이다. 끝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는 더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캉탕을 향해 간다. ‘세상의 끝‘은, 그러니까 그가 한사코 도달하지 않으려 한 그의 내부이다. 내부로 들어가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내부가 끝에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우리는 우리의 외부가 알지 못하는, 한사코 알려고 하지 않는 내부를 만난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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