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등장
근데 시작부터 맘이 불안해지네
올리브...제발...!
케빈을 지켜주었으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불현듯 데이지 포스터가 춤추러 가는이야기를 할 때 내비치던 미소가 생각난다. 방금 데니즈의 카드에 대해, 데니즈가 자신의 인생을 행복해한다는 사실에 대해 느낀 안도감이 갑자기, 묘하게도 뭔가 소중한 것을 잃은 듯한 상실감으로 변한다. "올리브." 그가 불러본다. - P55

그녀는 수돗물 소리 때문에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게 틀림없다. 그녀는 전처럼 키가 크지도, 어깨가 넓지도 않다. 물소리가 그
친다. "올리브" 그가 부르고, 그녀가 돌아본다. "당신, 날떠나지 않을 거지. 그렇지?"
"아, 또 무슨 소리야. 헨리. 사람 참 지겹게 만드는 재주 있다니까." 그녀는 얼른 수건에 손을 닦는다.
헨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올리브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평생 말하지 못할 것이다). 데니즈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던 그오랜 세월 동안, 데니즈에 대한 작은 미련 한 톨을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었다는 걸 아니지, 그런 생각은 감히 품을 수도없어 그는 곧 아니라며 이 생각을 떨쳐버릴 것이다. 누가 스스로를 남의 행복에 배 아파하는 좀스러운 사람이라 생각하겠는가.
말도 안 된다. - P56

갈비뼈 속에서 감각이 느껴지면서 낮은 파도에 물 끝자락이 찰싹대듯 편안한 정적이, 안도감이 찾아왔다. 뒷좌석에는 담요가 하나 있는데,그는 집 안에 아이들이 없다핻느 담요를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그는 집 안에 아이들이 없다해도 담요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지금 담요에는 라이플이 싸여 있지만, 다시 돌아올 때(곧, 여기까지 오랫동안 차를 타고 오면서 느꼈던 내면의 공허함이 아직 안도감으로 남아있는 동안 돌아올 터였다) 그는솔잎 위에 누워 담요를 덮을 것이다. - P62

키터리지 선생님! 이런 젠장. 그녀는 7학년 교실에서 봤던 것처럼 똑같이 광대뼈가 두드러지고 거침없는 얼굴이었다. 케빈은 그녀를 좋아했지만, 다른 아이들도 다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논짓으로 그녀를 물리치거나 차의 시동을 켤 수도 있었지만 선생님을 존중했던 예전의 기억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그녀가 차 유리를 톡톡 두드리자, 케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몸을 조수석으로 쑥 빼고 반쯤 열린 창문을 완전히 내렸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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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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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잠시 후 할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거나,
아니면 그런 반성조차 전혀 없는 뻔뻔함으로 할머니?하고 부르면 할머니는 언제나 응, 하는 평온한 대답을주었다. 나는 할머니가 그렇게 평온하게 대답할 것을아주 잘 알고 있었으므로 할머니를 부르는 내 마음에는불안함이나 죄책감이 전혀 없었다. 조금 전 우리 사이에 오간 못되고 버르장머리 없는 말들과 실쭉한 얼굴이아예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평온으로 곧바로 돌아갔다.
나는 그렇게 넘치는 관용속에서 자랐고, 내 못됨에 대해서 별다르게 반성하지 않았다.

*그렇다. ‘관용‘
이 말이 눈에 딱 들어온다
우리 외할머니에게도 그런면이 있으셨다.
무슨 말이건 하면 "그랬나?" 하며 대꾸해주시던.
엄마에게선 결코 볼수 없었던...
아버지 병구완에 바쁜 엄마 대신 우릴 키우시고 살림을 맡으셨던 외할머니 생각난다. 마지막 몇 년을 저 아래 합천의 요양병원에서 지내시다 돌아가셨는데도 가보지 못한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 P179

환한 웃음과 시무룩한 한숨 사이 정도에 불과한 할머니의 작은 감정 표현은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내 마음을 안정시켰다. 아마도 모종의 동화과정이었을 것이다. 울고불고 난리치다가도 할머니를 보면 그속상한 얼굴 정도로 마음이 잦아들고, 좋아서 깔깔대고흥분하다가도 할머니를 보면 또 그 환하게 웃고 있는얼굴 정도로 마음이 가라앉는 식이다. 지나치게 예민해서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정신없이 치달리던 내 감정의전류계는 할머니라는 거울을 통해 좀 더 느긋하고 묵직해졌다. - P188

그런데 그다음에 하셨던 말씀은, 친구가 이전까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근데! 거 뭐 될 필요는 없다!"
아버지의 이북 사투리를 좀 더 문어체로 옮기면 이렇게 될 것이다.
"근데 상담대학원 갔다고 해서 꼭 상담사라는 직업을 가질 필요는 없다."
듣던 나도 깜짝 놀랐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말이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친구는 울컥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빠는 언제나 좋은 아버지였지만, 그날 해주신 말씀은 가장 중요한 말씀이었어. 대학원에 합격해서 기뻤지만, 사실 완전히 좋기만 한 건 아니었거든. 내가 무슨일을 한 건가, 애들 키우면서 이 공부를 내가 끝까지 할수 있을까? 난 두려웠어. 대학원만 다니고 상담사는 되지 못할까 봐서 정말 두려웠다고. 근데 아빠는 내가 두려워하는 걸 아셨던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기뻐하시면서도 ‘거 뭐 될 필요는 없다‘라고 하신 거지. 그 말씀을 들으니까 마음이 정말로 편안해지고, 그래 결과야 어찌되든 한번 해보자고 용기가 솟았어."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함께 울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훌쩍훌쩍 울면서 산길을 걸었다.

*나도 그렇던데..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했지만, 딱히 취업을 할수 있단 생각은 안했는데, 죽어라 공부하고 썩히기 아깝다고 왜 취직안하냐고 그런말 듣고나니 용기가 오히려 꺾여서 지원서 내볼 생각도 안하게 됐다.
아이 씨... 나두 저런말해주시는 아버지 갖구싶네.
나두 저런말 해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근데... 역시 기대와 격려는 무서운거야! - P199

할머니가 내게 물려주신 유산의 마지막 챕터는 늙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점일 것이다. 내 몸에 늘어가는 주름살과 검버섯이 반갑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노년의내 모습이 할머니를 닮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슬프거나 두려울 것이 없다. 할머니의 모습은 나에게 궁극의아름다움이었으므로, 나는 바로 그 아름다움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이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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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유일무이한 존재라고 믿었는데, 그만 1930년대 잡지 영인본을 들여다보다가 세상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무수히 많았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나만의 것은 무엇일까? 그게, 문득궁금해졌다. 나만의 것. 진짜 나만의 것. - P140

그런 식으로 오후를 보낸 뒤, 도서관 유리문을 열고 나오던 어느 저녁이었다. 5월의 푸른 밤이 교정 위로 드리워졌다. 도시의붉은 불빛에 검게 기대선 저녁 산 이마 위로 별빛이 반짝였다.
유리문을 열자마자, 유리문을 열고 조금 걸어 나오자마자, 참으로 푸른 밤이구나는 생각을 하자마자, 내 귓전으로 노랫소리 크게 울려 퍼졌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문을 닫은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텅 빈 방안에 가득한데 이런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였다.
저도 모르게 나는 그 노래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노래는 계속됐다.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맘 속에 빛나는 별 하나 오직 너만 있을 뿐이야. 무슨 일인지 학교 가운데 있던 금잔디 광장에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키가 작은 사내 하나가 통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며 서 있었다. 그게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김광석이었다. 나는 김광석의 그 노래와 완벽하게 소통했다. 그 느낌은 죽어도 잊지못할 것이다.

*김광석이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살고 있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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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봐야 할 작품

맑은 바다를 배경으로 벌거벗은 사람들과 새들, 처음 <해변의 가족>을 마주했을 때는 하얀 물새들이 먼저 보였습니다. 마치 새들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술래잡기하는것 같았거든요. 새들의 모습이 신나 보입니다. 그리고 알몸의 가족은 행복하게 뒤엉켜 놀고 있습니다.

*이중섭 ,해변의 가족,1950년대 - P100

제주도 이중섭미술관에서 이 작품은 꼭 보고 싶었습니다.
미술관 옥상에서는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섶섬을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거든요. 제 눈으로 섶섬을 보고서 <섶섬이보이는 풍경> 앞에 서봅니다. 화가는 우리가 서 있는 이곳과 비슷한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요. 풍경이 정말 흡사합니다. 신기해서 오랜시간 멍하니 바라보다 왔습니다.

*이중섭, 섶섬이 보이는 풍경, 1951 - P101

화가들은 그림으로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당시를 바라보는 시대상, 본인이 바라는 이상향, 그리고 작금의 현실이
캔버스에 드러나게 되죠. 그리고 이 
<서귀포의 환상>을 보자면 이중섭 화백은 자신의 감정에 참 솔직했던사람 같습니다. 여러분도 이 작품을 보면 당시 화가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나요? 전체적으로 꿈, 환상처럼 몽환적입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람들이 과일을 따거나 과일을바구니에 담아 나르고 있죠. 어떤 아이는 새를 타고 신나게 공중을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화가가 상상한 환상의 나라였을까요…. 무릉도원이 이런 곳이었나 봅니다. 당시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고단하면서도 행복했던 감정이 직관적으로 전해집니다.

*이중섭, 서귀포의 환상, 1951 - P113

그리운 제주도 풍경>은 이중섭 화백이 가족과 헤어진 후가족을 그리워하며 편지에 동봉한 그림입니다. 해변에 게들이 모여 있죠. 아들 태현과 태성이 게의 다리를 잡아당기고, 부부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아이들 옆을 자세히 보면 일본어로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부부의 모습에도 ‘엄마‘, ‘아빠‘라고 적혀있죠. 혼자 남겨진 그가 떠올렸던 행복한 제주에서의 삶이 눈물로 뿌옇게흐려진 시야처럼 느껴집니다.

* 이중섭, 그리운 제주 풍경, 1954 - P116

그는 살아생전 소를 참 많이 그렸습니다. 들판의 소를 자세히 관찰하다가 소도둑으로 몰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그를 증명하죠. 대표작 중 하나인 <흰 소>를 보면 잿빛의 배경에 흰 소가 당당히 서있습니다. 이 그림의 흰 소는 백의민족이었던 대한민국을 의미합니다. 색상뿐만 아니라소는 그 우직하고 성실한 면도 한국인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몸을 자세히 보면 피골이 상접해 있지요. 한국전쟁 당시의 생활고를 그림으로 승화시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요소들을 딛고도, 이 그림에서 가장 강렬한 지점은모든 것을 꿰뚫는 눈빛 아닐까요. 소의 눈을 보노라면 참혹한 현실 속에서 뚫고 나가려는 삶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나요. 이중섭 화백은 끝없는 역경과 고난에 굴하지 않고헤쳐가는 본인의 모습을 소의 형상으로 재현합니다.

*이중섭, 흰 소, 1954
- P119

1955년 1월, 미도파 화랑에서 ‘이중섭 작품전‘이 성황리에열렸습니다. 특히 소 그림이 인기가 좋았는데요. 당시 전시회에 방문한 미국대사관 문정관이자 미술 애호가인 아서 맥타가트는 곧바로 이중섭 작품의 가치를 일찍 알아보고 구매하기도 했습니다. 이중섭이라는 위대한 화가를 가장 먼저 알아본 서양인이라 불리죠. 그는 소 그림과 유화,그리고 은지화 10여 점을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이중섭화백의 은지화석점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기증하죠. 오늘날 그곳에서 이중섭 화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 P125

결국 간염이 급격히 악화되어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입원했지만 1956년 9월 6일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 이중섭은무료 병동에서 지켜보는 이 하나 없이 만 40세의 나이에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지키는 이 없는 영안실에 이틀 동안 방치되었죠. 그의 시신은 친구들이 장례를 치른 뒤, 일본에 있던 가족에게 뼛가루의 형태로 보내집니다. - P127

나의 상냥한 사람이여 11월28일자 편지는 반가이 받았소.
그동안 서울은 추웠지만 어제부터 봄같이 따사로워졌소.
더 추워져도 끄떡없을 테니 아고리를 굳게, 굳게 믿고 힘내시오. 나는 당신이 보고 싶고, 당신의 멋진 모든 것을 꽉꽉 포옹해보고 싶소.
길고 긴 입맞춤을 하고 싶소. 나만의 멋진 천사, 다시없는나의 다정한 아내여 건강하게 견디어 냅시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긴 뽀뽀를 보내오. 상냥하고 따듯하게 받아주구려.
<사랑하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 中>

*편지 중에 본인을 ‘아고리‘로 부르는 이유에 대하여
--이중섭이 일본에서 유학할 당시 ‘아고리‘라고 불렸다고 한다. 당시 같은반에 이씨가 세명 있었는데, 이중섭은 턱이 길어 일본어로 ‘턱‘이라는 뜻의 ‘아고‘
와 성인 ‘이‘를 합쳐 ‘아고리‘라 불렸다고한다. 종종 편지에 스스로를 ‘아고리‘로 칭하는게 이런 까닭이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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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형제 없이 홀로 남은 아기는 일가친척 집을 전전하며 자라다가 너댓 살 무렵 경기
도 용인의 외가로 보내져 그곳에서 자랐다. 당진에서 용인은 먼 길이었다. 아침에 배를 타고 뱃멀미로 깔딱 숨이 넘어갈 무렵, 묻에 내려주더라는 것이 희미하게 남은 그분의 기억이었다.
오늘날 용인시 양지면 평창리, 그 당시엔 
‘번말‘이라고 불렀던 외가 동네에서 사촌들과 어울려 자라며 나의할머니는 비로소 안정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외할아버지가 나를 예뻐하셔서 한 손으로 달랑 안고 다니셨지. 내가 몸집이 작아서 다 커서도 안고 다니셨지. 마당에 과일나무가 많았는데 그걸 따서 주셨지.
복숭아랑 감이랑 먹고."


~~당진도 반갑고...
평창리는 내가 수시로 산책 가는 동네!
우리집이 있는 제일리에서 바로 건너 보이는 마을이다. 지금은 우리 동네나 평창리나 전원주택단지들이 많이 있는데 여전히 농사짓고 사는 원주민들도 꽤 된다.
할머니 사시던 시절엔 어땠으려나 궁금하다.

부모없이 자랐으나 구박받지않은 어린시절을 보내셔서 그리도 맘이 포근하신건가 싶다.
- P91

"네가 나한테도 저런, 그럴 때가 있는데, 그게 뭔지몰라도 별 소리 아닌데도 희한하게 기분이 괜찮더라고.
그래서 나도 놀이치료 할 때 아이들한테 한번 써봤어.
병뚜껑이 안 열려서 울고 있는 아이한테 ‘저런‘이라고말하고 가만 있어봤어. 그랬더니 아이가 눈물을 닦고금세 괜찮아져서 다른 놀이를 하는 거야. 난 너무 놀랐어.."


~~정말 그러네
난감한 상황일때 ‘저런‘이라는 말을 쓸법한데, 신기하게 자주 사용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네!
스스로 해결하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부모라면 누구나 알것인데
‘저런‘이라 말하고 가만히 기다린다니...
가능한 일일지...ㅎ - P121

"아, 상담에서 ‘버틴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핵심적인 개념이야. 상담학 교과서에 보면 상담사가 내담자에게 해주어야 하는 일이 ‘정서적 지지가 되어주고 버틴다‘라고 되어 있어. 나는 그걸 글로 배우고 외웠지만사실은 버틴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거든. 그런데 그날 저런이라고 말하고 가만히 있는 동안 버틴다는 게 뭔지 알겠다 싶은 기분이었어. 아이가 해야할 일을 내거 대신하지않고 기다려주는거야. 그게 버티는 거였어.

~~그렇지
백퍼센트 공감! - P124

친구의 분석에 의하면 ‘저런‘은 바로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하지만 중요한 ‘공감‘의 언어라고 했다.
"보통 아이가 속상해서 울면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괜찮아‘라고 말하는데, 사실 아이는 괜찮지 않거든. 저런이라는 말 속에는 정확한 공감이 숨어 있는 거야. 아이가 뜻대로 되지 않아서 놀라고 속상해하는 마음을 알아주는 말인 거지. 그렇게 아이가 정확하게 이해받고나면, 설명하는 다른 말이나 도움 행동을 주지 않아도스스로 괜찮아져. 그래서 뚜껑 열기를 다시 시도해보든지, 도와달라고 청하든지, 뚜껑 열기 말고 다른 놀이를하든지 하는 식으로 다르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끌어낼 수 있는 거야. 정말 놀랍지 않아? ‘저런‘은 정말이지 멋진 말이더라고!"
그는 ‘저런‘이 단순하고 흔해 보이지만 매우 맵시 있고 효과적인 공감의 언어이며, 아이의 마음속에 난 작은생채기에 발라주는 연고와 같은 것이고, 그 짧은 한 단어만으로도 아이는 지지와 공감을얻어 스스로 회복에 이를 수 있는 것이라고 ‘저런‘의 의미와 효과를 정리하며 흐뭇해했다.

~~~길지만..
아무튼 너무 맞는말이라 남겨두고 싶어 친구의 말을 다 적어본다.

작가는 이 말이 당연히 할머니의 언어라고 했다. 참으로 미니멀리스트한 언어 사용자이시지만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말만 하신 현명하고 지혜로운 분이셨단 생각이 든다.

아... 나도 격하게 써먹고 싶어진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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