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이 원하고 손에 넣으려는 것이 명백한 세계에서 누군가는 남다를 것 없는 탐욕을 온몸으로 발산한다.
짓밟고 속이고 악을 쓰며 두 손 가득 그러쥐는 것만 무한히반복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다시금 공허함을 온몸으로발산하기도 한다. 그마저 속임수인 경우도 허다하다. 한편설령 속임수라는 사실을 내심 알아챈 후에도 마주한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면 닦아주기 위해 손부터 뻗는 사람도 있다.
은하를 보면서 그런 마음이야말로 흔치 않고 귀한 것이라고성지는 진심으로 느꼈다. 동시에 귀한 것을 재빨리 알아보고 집어삼킬 기회를 노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래에서 왔습니다> - P30

여느 때와 같은 멜로디였으나 평소와는 다른 파동으로 퍼져 나가는 것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아, 하고 성지의입 밖으로 탄성이 비어져 나왔다. 생애 처음으로 오디션에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도 바로 이런 느낌이 들었던것이다. 극도의 불안이 일순 눈물이 샘솟는 환희로 탈바꿈되던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어쩌면 그때처럼 이 전화한 통이 인생의 다음 장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그럴 것이다. 성지는 예감의 실체를 확인하기에 앞서 휴대폰을 꼭 쥔 채 천천히 숨을 내쉬며 양쪽 어깨를 쭉 폈다. 그러고는 이내 결심한 듯 화면 위로 시선을 옮겼다. <미래에서 왔습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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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배역 스펙트럼이 점점 좁아짐에도 불구하고 이연은 배우로서 지금 제 나이와 경험이 싫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연은 인간을 더연민하게 됐으니까. 이연은 그리스신화 속 영웅이나 현대의 범인못지않게 "그 나머지 사람들을 애정하게 되었다. 자신을 이기지못하는 이들을 잘못된 선택을 하는 자들을 변명하고 나약한 이들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이들을 깊이 응시하게 되었다. 우선이연부터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연은 착한 사람보다 성숙한 사람에게 더 끌렸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싶었다. 어쩌면 젊은 시절 주사 때문에 동료들이 이연을 기피한적이 있어서일지 몰랐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성민은 잘 몰랐지만. 김애란 <홈파티> - P106

오대표의 목소리를 듣자 이연의 머릿속에 문득 학교에서 배운 서사 이론 하나가 떠올랐다. ‘작가로서 당신이 누군가에게 뭔가 주고 싶다면 그에게서 먼저 그걸빼앗으라‘는 법칙이었다. 그래서 이연은 지금도 소설이나 연극,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면, 사랑이나어떤 성취 혹은 명예 앞에서 너무 벅찬 감정을 표할 때면 어김없이 ‘저 사람 곧 저걸 잃어버리겠구나‘ 예감하곤 했다.  김애란<홈파티>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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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를 그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달콤한 향기는 그대로이다. 여전히 장미이다. 아버지 이야기를 끝으로 말없이 도시락을 비우고 있는 마마두에게 내가 말을 건넸다. "장미를 세네갈에서는 뭐라고 불러?" 입에 넣은 생선튀김을 천천히 씹어 넘긴 다음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짐짓 무심한 어조로 대꾸했다. "프랑스어도 똑같아. 장미의 이름은 장미." <장미의 이름은 장미> - P104

마마두는 수업시간에 자주 늦었다. 그는 내 옆자리가비어 있으면 거기 와서 앉았고 아니면 맨 뒷자리에 앉았다. 의도적인지 우연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언제나 무표정했고 내게 건네는 말은 ‘하이, 수진‘과 ‘바이 수진‘뿐이었기 때문이다. 마마두가 가까이 다가오면숲의 내음 같기도 하고 도서관의 책 냄새 같기도 한 희미한 향수 냄새가 났으므로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숲과 책의 냄새는 그가 즐겨 신는기다란 회색 스웨이드 로퍼와 함께 등장하곤 했다.<장미의 이름은 장미> - P85

민준은 월요일 오전 수업이 끝난 뒤 카페테리아와 도서관을 잇는 구름다리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야구 모자를 쓰지 않아서 서글서글한 눈동자와 곧은 콧대가 시원하게 드러났다. 갈색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부드럽게 흘러내렸고 카고 반바지 위에 입은 푸른색스트라이프 티셔츠가 하얀 얼굴에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 오후 수업에서 마야를 만날 수 있는 민준의 얼굴에는 보는 사람이 따라서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는 설렘과 싱그러움이 깃들어 있었다.<장미의 이름은 장미> - P119

나는 여전히 미래에 대해아무런 상상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작가 마마두가 나무배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로 가서 뜨거운 소금을검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을 때 그 푸른 하늘과 호수의장밋빛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상상해본다. 누군가의 왜곡된 히스토리는 장밋빛으로 시작한다.<장미의 이름은 장미> - P135

어떤 헌신은 당연하게 여겨져 셈에서 제외된다. 시기와 처지에 따라 개인의 욕망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 바뀌는 것도 이상했다. 그리고 자기애가 강하다고해서 모두가 자신의 삶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아가씨 유정도 하지> - P211

만약 내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쓴다면 뭘 쓰게 될까. 어린 시절 나는 밥상 위의 반찬들이 유리그릇에 담겨 있는걸 보고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았다. 다시 도자기 그릇으로 바뀌면 겨울이 다가온 것이었다. 그 돈이면 반찬한 가지를 더 올리겠다며 주변의 빈축을 샀지만 어머니는 작은 사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 - P225

"늙으면 이상하게 평소 기억하던 것보다 더 어렸을 때 일이 기억이 나.
내가 마당에서 아장아장 걷고 있는데 우리 아버지가 마루끝에 앉아서 웃으며 손짓하던 것, 그런 게 말야. 그걸뭐라고 해야 할까."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작가니까, 제대로 말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그게 꼭 죽으려고 연습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 지금처럼." 어머니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 - P246

수진이 겨울의 코니아일랜드를 좋아할까. 그럴 것 같았다. 비록 아이스크림 가게는 문을 닫았지만 눈이 펄펄 내리는 날 보드워크를 걸으며 갈매기의 춤을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한 번 와본 장소라 해도, 그리고같은 사람과 온다 해도 다른 눈으로 본다면 전혀 다른 풍경이 될 수 있으니까. 그 풍경 속에서 수진은 눈을 돌려다시 나를 바라볼지도 모른다.<아가씨 유정도 하지>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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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만 있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달까지 걸어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꽉 막힌 어둠 속에서 살아가던 제게 그 말씀들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김연수<진주의 결말> - P57

사람의 마음을 연구한다는 선생님에게만은 제게 용기를 주셨던 선생님에게만은 제 진심을 인정받고 싶습니다. 비록 방향이많이 빗나갔지만, 그럼에도 누군가가 제 마음을 읽으려고 그토록애쓴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니까요. - P58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할 때 선생님은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 P68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 역시 기만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저의 수많은 모습 중에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것들만 모아 저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으니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앞뒤가 척척 맞겠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그것은 기만입니다. 실제의 제 삶은 앞뒤가 척척 맞아떨어지지 않거든요. 제가 선택한 제가 그럴싸한 이야기였듯이 선생님이 분석한 저 역시 또다른 그럴싸한 이야기겠지요. <사건의 결말> 제작진이 편집한 저역시 하나의 이야기이고요. 그러나 아시겠지만, 저는 그 어떤 이야기도 아니에요. 저는 혼돈 그 자체입니다. 카오스그 자체예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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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그는 세상을 거울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신의 내면에 어떤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도 어딘가 뒤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인믿음에 가까웠지만, 그는 늘 눈앞에 펼쳐진 세계의 모습을 통해지금 자신의 내적 상태를 점검하곤 했다. 거리의 풍경을 면밀히살펴보거나 들리는 소리에 자세히 귀를 기울이는 건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 - P44

아마도, 그 의미없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리라. 의미 없는 것들의 무자비함을 -난주의 바다 앞에서.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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