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발저의 소설을 연달아 읽고 있다!
이 단편집에는 42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첫번째 단편인 ‘시인‘의 전문이다.
˝나는 참으로 멋지게 그리고 보기 좋게 옆으로 비껴나 있었다.˝는 이 문장이 바로 작가 자신를 표현하는 거 아닐까.
시인
아침의 꿈과 저녁의 꿈, 빛과 밤. 달, 태양그리고 별. 낮의 장밋빛 광선과 밤의 희미한빛. 시와 분. 한 주와 한 해 전체. 얼마나 자주 나는 내 영혼의 은밀한 벗인 달을 올려다 보았던가.
별들은 내 다정한 동료들. 창백하고 차가운 안개의 세상으로 황금의 태양빛이 비쳐들 때 나는 얼마나 크나큰 기쁨에 몸을 떨었던가. 자연은 나의 정원이며 내 열정, 내 사랑이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나에게 속하게 되니, 숲과 들판, 나무와 길들. 하늘을 올려다볼 때 나는 왕자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저녁이었다. 나에게 저녁은 동화였고, 천상의 암흑을 소유한 밤은 달콤하면서도 불투명한 비밀에 감싸인 마법의 성이었다. 종종 어느 가난한 남자가 뜯는 하프의 현이 영혼을 울리는 소리가 되어 밤을 관통하곤 했다. 나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또 귀 기울였다. 모든 것이 좋았고, 옳고 아름다웠다.
세계는 온통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장엄하고 유쾌했다. 그러나 음악 없이도 나는 유쾌했다. 나는 시간에 현혹당하는 듯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듯이 시간에 말을 걸었고, 시간도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고 생각했다. 시간에 얼굴이 있는 듯 한참을 쳐다보았고, 시간 또한 묘하게 다정한 눈동자로 나를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떨 때 나는 마치 물에 빠져 죽은 사람과도 같았다. 그만큼 고요하고, 소리 없고, 말없이 나는 그냥 살았다. 주변의 모든 사물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누구도 생각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을 나는 하루 종일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나 감미로운 생각이었는지.
아주 드물게 슬픔이 나를 방문했다. 때때로 보이지 않는 무모한 무용수처럼 구석진 내방으로 불쑥 뛰어드는 바람에 웃음이 터진적도 있었다. 나는 아무도 아프게 하지 않았고,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나는 참으로 멋지게 그리고 보기 좋게 옆으로 비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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