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는 히가시노 게이고,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가가 형사 시리즈...
책장이 너무 빨리 휘리릭 휘리릭 넘어가니 아쉬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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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찌르는 동정심, 스스로 혼란을 느낄 만큼 날카로운 동정심이 그를 휩쌌다. 저 마르고 커다란 눈을 한 어린애 같은 얼굴들,
저 시골의 가난한 옷차림이 그에게 갑자기 놀랄 만큼 분명한 사실을 일깨웠다. 아이들, 그저 어린애들 아닌가. 부대에서는 저 어린아이의 면면이, 인간의 면면이 군모 아래, 부동자세 속에, 장화의 삐걱임 속에, 훈련된 말과 동작 속에 감추어져 있지...... 그것이 여기서는 전부 그대로 보이네. - P284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이상하게도 오늘 그의 마음에 떠오른 생각과 인상, 복잡하고 무거운 모든 짐들 중에서도 가장 힘겨운 것은 바로 저 소년 모집병들과의 만남이었다.
"살아 있는 힘," 노비꼬프는 혼자서 중얼거리고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살아 있는 힘, 살아 있는 힘." - P284

군대 생활을 하는 내내 그는 상관 앞에서 기계나 무기를 잃어버리는 것에, 자동차나 모터나 탄약을 낭비하는 것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힘의 커다란 손실을 동반하는 군사작전에 대해 상관들이 심각하게 분노하는 모습은 본적이 없었다. 종종 상관은 더 높은 상관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그저 어깨를 으쓱이고 두 손을 내보이며 "병사들 절반을 투입했는데도 방어 계선을 차지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변명하기 위해 사람들을 화염 속으로 보냈다. - P285

살아 있는 힘, 살아 있는 힘.
그는 살아 있는 힘을, 심지어 보신주의나 명령의 형식적인 이행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교활함과 고집 때문에 포화 속으로 몰아대는 경우도 몇번이나 보았다. 전쟁의 가장 비밀스러운 비극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음으로 보낼 권리를 지닌다는 점이다. 그러한 권리는 모두가 공동의 대업을 위하여 포화 속으로 전진한다는 사실에 의해 유지되었다.
- P285

39
그 마음 아파하며 울음을 터뜨리던 꼴로스꼬프는
 왜 그런 글을썼을까? 왜 모스뜹스꼬이는 침묵했을까? 순전히 겁이 났기 때문에? 끄리모프 역시 마음속에 있는 것과 다른 말을 한 적이 얼마나 많았나! 하지만 말하고 쓰는 순간 그는 자신이 바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여겼다. 자신은 늘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고 믿었다. 때때로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이 모든 게 혁명을
위한 일이야." - P324

갖가지 사건들이 일어났고, 일어났고, 또 일어났다. 끄리모프는 동지들을, 그들에게 죄가 없음을 확신하면서도 제대로 변호하지 않았다. 때로는 침묵했고, 때로는 들리지 않게 나직한 소리로 중얼거렸고, 때로는 더 나쁜 짓도 했다. 침묵하거나 들리지 않게 나직한 소리로 중얼거리는 것보다 더 나쁜 짓이었다. 당 지역위원회에서, 당 시위원회에서, 당 주위원회에서 그를 호출했고, 가끔은 보안부에서 그를 호출했다. 그러고는 그에게 그의 지인들, 당원들에 대해 물었다. 그는 한번도 동지들을 모함하지 않았고, 죄 없는 이에게 죄를 뒤집어씌우지도 않았으며, 밀고나 성명을 쓰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 친구들을, 볼셰비끼들을, 제대로 방어하지 않았을 뿐이다. - P324

수용소로 소포를 보내고 편지를 받을 수 있도록 중간에서 자기주소를 내어주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보통은 노파나 주부 또는 당적 없는 소상인이었다. 웬일인지 이들은 모두가 두려움이라는걸 몰랐다. 그중 어떤 노파들 ㅡ집안일 해주는 여자들, 종교적 편견으로 가득한 문맹의 유모들 ㅡ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체포되고 남겨진 고아들을 찾아 그들이 수용 시설이나 고아원에서 살지 않도록 제집에 거두었다. 하지만 당원들은 무슨 전염병 피하듯이 이 고아들을 외면했다. 이 늙은 소상인들, 아주머니들, 문맹의 유모들이 볼셰비끼 레닌주의자들, 모스똡스꼬이, 끄리모프보다 훨씬 더 양심적이고 용감하지 않은가?
- P325

왜, 정말 왜 그럴까? 무서워서? 그저 비겁하기 때문에?
인간은 공포를 극복할 능력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깜깜한 곳으로 들어가고, 병사들은 전투에 나가고, 젊은이는 낙하산을 메고 한발짝 내디뎌 낭떠러지로 뛰어내린다.
그러나 이 공포는 특별한, 힘겨운, 수백만 사람들이 극복하기 어려운 공포다. 이 공포는 모스끄바의 납 같은 잿빛 겨울 하늘에 불길한 붉은 글씨로 울긋불긋 적힌 그것, ‘고스스뜨라흐(‘국가에 대한 공포‘를 뜻하는 약어. 작가가 만들어 낸 신조어다.)‘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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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때 보바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순혈 노동자 출신이오. 아버지도 노동자였고 할아버지도 노동자였지. 내 이력은 유리처럼 투명하오. 그러나 나 역시 전쟁 이전에는 쓸모가 없었소."
"어째서요?"
"난 노동자·농민 국가가 귀족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관료주의를 보지 않소. 하지만 전쟁 전 노동자인 내가 왜 강제노동을 해야 했을까? 도무지 알 수가 없더군. 왜 내게 창고에서 감자 고르는 일을 시키는지, 혹은 거리를 청소하게 하는지 말이오. 난 그저 계급적 관점에서 수뇌부를 좀 비판했을 뿐인데 ㅡ그들은 정말 호화롭게 살았거든 ㅡ곧장 내 목을 조르는 거요. 내가 보기엔 결국 그것, 노동자가 자신의 국가 안에서 고통을 당하는 상황이 관료주의이고, 그
속에 관료주의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 같소." - P113

다렌스끼는 보바의 말이 무언가 매우 중요한 것을 건드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자신을 진정으로 불안하게 하는 주제에 대해 말하거나 듣는 일에 익숙지 않았던 그는 문득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눈치 보지 않고 두려움 없이 이야기하는 행복,
마음에 불안과 당혹감을 심어주기에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것에 대해 논쟁하는 행복이었다. - P113

여기 오두막 바닥, 술에 취했다가 다시 깨어난 이 소박한 군인과나누는 한밤의 대화, 우끄라이나 서부에서 이곳 사막까지 쫓겨온 사람들의 존재를 주위에 느끼며 이어가는 대화 속에서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평범하고도 자연스러운 것, 바람직
한 것이자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 것, 그래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
인간 대 인간의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 P113

"그렇다고 내가 원한에 가득 차 있거나 한 건 아니오." 다렌스끼가 말을 이었다. "오히려 허리 굽혀 백번 천번 감사하고 있지. 난 행복하오. 그리고 바로 여기 또다른 비극이 있소. 내가 행복하려면,
내 조국 러시아에 힘을 바칠 수 있으려면 이처럼 가혹한 시간이 와야 한다는 점 말이오. 참 씁쓸한 일 아니오? 차라리 저주를 받는 게 낫지." - P114

여전히 대화의 본질, 자연스러운 빛으로 삶을 밝혀주는 중요한 핵심에는 도달하지 못한 기분이었으나, 평소 생각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것을 생각하고 말한 지금 다렌스끼는 기쁨을 느꼈다. 그는 보바에게 말했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든, 오늘밤 당신과 나눈 대화를 난 평생 후회하지 않을 거요." - P115

15
젊은 장교가 복도로 나와 호송병에게 몇마디 하고는 미하일 시도로비치를 들여보낸 뒤 그대로 문을 열어두었다.
방은 비어 있었다. 카펫 깔린 바닥과 꽃병에 꽂힌 꽃송이들, 벽에 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숲과 붉은 지붕을 올린 농가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곳이 도살 감독자의 방이군, 모스똡스꼬이는 생각했다. 죽어가는 짐승들이 가래 끓는 소리를 내고, 그들의 내장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피투성이 도살자들이 있는 곳 바로 곁. 그러나 카펫이 깔린이 평화로운 방과 도살을 연결 짓는 것은 책상 위에 놓인 검은 전화기들뿐이었다. - P119

적! 얼마나 단순하고 분명한 단어인가. 다시금 체르네쪼프 생각이 났다. ‘슈트룸 운트 드랑(독일어. 격랑의 시대)"에 참으로 보잘것 없는 운명이야.
 그런 시대에 레이스 장갑을 끼다니. 모스똡스꼬이는 자기 손바닥과 손가락을  살펴보았다. - P119

18
그레꼬프가 넓적한 사자코를 벌름거리며 입을 열었다. "샤뽀시니꼬프, 동지는 전출이오. 당장 연대 참모부로 돌아가시오."
세료자는 여자의 손을 꼭 쥐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흠칫 떨렸고, 그녀 또한 그의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숨을 들이켰다.
혀와 입천장이 바싹 말라 있었다.
구름 낀 하늘과 땅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외투를 덮고 누운 이들 모두 뜬눈으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 P156

모든 게 정말 멋지고 살가웠는데. 세료자는 생각했다. ‘천국에서 추방되는군. 그가 농노를 가르듯 우리를 갈라세우려는 거야.‘ 그는 애원과 증오를 품고 그레꼬프를 바라보았다.
그레꼬프는 가늘게 뜬 눈으로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시선이 세료자에게는 더없이 혐오스럽고 잔혹하고 뻔뻔스럽게 여겨졌다. - P156

"명령은 그게 다요."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무선전신수가 동지와 함께 떠날 거요. 여긴 무전기가 없어 아무 일도 못하니 그녀를 연대 참모부로 데리고 가시오." 그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거기서부터 동지들은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할 거요. 증서를 가져가시오. 둘 몫으로 한장만 써두었소. 끄적거리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내 말 알아들었소?"

갑자기 세료자는 평생 한번도 본 적 없는 아름답고 인간적이고 현명하고 슬픈 두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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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운명2》 바실리 그로스만

바실리 그로스만은 우정 혹은 우애를 논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 8권과 제9권의 내용을 상황에 맞게 요약한다.
자유와 평등과 우정은 작가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이다.


8
우정! 얼마나 많은 종류의 우정이 있는가. 노동 속의 우정, 혁명과업 속의 우정, 긴 여정 속의 우정, 병사의 우정, 겨우 이삼일 사귀고 헤어지지만 그 며칠의 기억이 오랜 세월 잊히지 않는 이송 감옥속의 우정. 기쁨 속의 우정, 슬픔 속의 우정. 평등 속의 우정, 불평등속의 우정. - P65

우정은 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우정은 일과 운명의 공통성 속에만 존재하는가? 때로는 견해 차이가 별로 없는 사람들 간의 증오, 같은 당원들 간의 증오가 적들에 대한 증오보다 더 크다. 종종 함께 싸우러 나가는 이들의 서로에 대한 증오가 그들 공동의 적에 대한 증오보다 더 강하다. 감옥에 갇힌 자들 간의 증오가 간수를 향한 증오보다 더 크다. - P65

물론 같은 운명, 같은 직업,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 친구를 사귀는 경우가 가장 잦지만, 이런 공통성만이 우정을 결정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 P65

자신의 직업을 싫어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친구가 될 수 있고, 또 실제로 친구가 되기도 한다. 전쟁 영웅과 노동 영웅이 서로 친구가 되고, 전쟁의 태만자와 노동의 태만자가 서로 친구가 된다.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끼리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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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수송열차들이 전선을 향해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 후방에 있는 사람들은 가슴 아플 만큼 벅찬 감정에 휩싸인다. 바로 저 대포들이 저 새로 칠한 전차들이 당장 전쟁의 행복한 결말을 가까이로 당겨올 가장 중요한 일, 신성한 일을 위해 예정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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