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지음, 공진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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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었구나! 라는 것을 알고 나니 문체가 어째서 이다지도 가시가 돋친 듯 강했는지 이해 완료. 읽으면서 내내 기원했던 아버지의 죽음을 다음 편에서 바로 볼 수 있다니 좀 더 계속 읽어봐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다 읽었는데도 뭐가 ˝괜찮아˝인지는 아직 모르겠어서 답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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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의 아버지 에드워드가 개새끼였네..... 아내인 엘리너에게 하는 행동을 봤을 때도 이미 어렴풋이 짐작이 갔지만 아들 패트릭에게 한 행동은 정말 인간이하다. 넌덜머리나는 새끼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새끼 대체 언제 죽지? 앞으로의 내용은 모르지만 비명횡사하거나 돈 없이 그지꼴로 죽거나 모두에게 버림받는 인생이 남아있다면 더없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영국상류층의 위선과 폭력, 학대, 냉소, 신랄한 풍자 등등의 수식어들로 이 책을 말한다. 하지만 난 이 패트릭 멜로즈 5부작을 좋아하지는 못할 거 같다.

대화도 한결같이 쓰레기 같다. 인간들이 쓰레기라 그런건가? 작가 자신도 어릴 때 이런 쓰레기 같은 일들은 겪었을 거 같은 생각이 문든 든다.








"거기 그대로 있어." 데이비드가 일어나 노란색과 흰색의 파자마 매무새를 만지며 말했다.
패트릭은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엔 흐릿하게, 그리고 곧 좀 더 분명하게 자기가 처한 위치의 굴욕을 인지했다.
침대에 얼굴을 파묻은 상태에서 바지는 무릎에 뭉쳐 있고, 이상하게 등뼈 꽁무니가 젖어 우려되었다. 패트릭은 피가 나는가보다 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칼로 등을 찔렀나 보다 했다.
아버지가 화장실에 가서 휴지 한 움큼을 가지고 돌아와, 패트릭의 궁둥이 사이로 조금씩 흐르기 시작해서 점점 차가워지는점액을 닦아냈다.
"이제 일어나도 돼." - P113

"중산층 사람들이 니컬러스 당신이 말하듯이 중산
층에서 멀어질 수 있어요?
"그럼요. 빅터가 아주 두드러진 사례죠." 니컬러스는 너그러움을 보였다.
빅터는 대화를 즐기고 있다는 듯이 웃었다.
"물론 여자들은 그러기가 더 쉽죠." 니컬러스는 말을 계속했다. "결혼은 여자를 처량한 환경에서 넓은 세상으로 들어 올려주는 축복이에요." 그리고 브리짓을 흘긋 보았다. "대타가 필요할지 모를 사람들에게 그림엽서나 보내며 시간을 보내는 그런 부류의 호모가 아니라면, 실제로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죠. 아주 매력적이고 박식해야 하기도 하고." 
니컬러스는 빅터를 안심시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 P180

"니컬러스는 물론 전문가지, 몸소 여러 여자를 밑바닥에서 건져 냈으니까." 데이비드가 끼어들었다.
"상당한 비용이 들었죠." 니컬러스가 동의했다.
"밑바닥에 끌려 들어가서 치른 희생은 훨씬 더 컸지 않은가,니컬러스?" 데이비드는 니컬러스에게 정치적 굴욕을 상기시켰다. "어쨌거나 자네는 밑바닥이 마음이 편한가 보네."
"기가 막히네요, 선생님. 나처럼 그렇게 시궁창에 내려갔다 와 보면 밑바닥은 장밋빛 인생 같아 보인답니다요." 니컬러스가 런던 토박이 사투리를 웃기게 흉내 냈다.
- P181

엘리너는 최고라는 영국인의 예의에 그토록 높은 비율의 노골적 무례함과 검투사의 경기 같은 측면이 있다는 게 여전히 납득되지 않았다. - P181

 남편이 그 자유를 남용한다는 걸 아는 한편 그
몰인정한 언행에 자기가 간섭하는 게 또한 얼마나 ‘따분한‘ 일인지도 알고 있었다. 데이비드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약점이나 실패를 상기시켜 줄 때면 엘리너는 희생자들의 기분을 자기 것으로 삼아 그들을 구해 주고 싶은 욕구와 남편에게 유희를 망쳤다는 비난을 듣고 싶지 않은, 똑같이 강한 욕구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 갈등에 몰입하면 할수록 더 곤궁한 처지에 몰렸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틀릴 것이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 P182

브리짓은 무화과를 조금 입에 물고 깨지락거렸다. 앤은 브리짓을 지켜보면서 여자라면 누구든 언제고 자문할 때가 있기 마련인, 내가 눈감고 참아야 하나? 라는 해묵은 물음을 머리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눈감고 참아야 하나? 앤은 브리짓을 어느 동양폭한의 발치에 축 늘어져 있는, 목걸이를 단 노예로 생각해야 할지, 점심에 먹지 않고 남기려는 애플파이를 먹도록 강요당하는 반항적인 여학생으로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P193

앤은 니컬러스가 그전보다 더 한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니컬러스는 기껏 젠체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늘 어리석은 말을 하고, 어리석어 보이지 않으려고 늘 젠체하는 말을 하는 그런 부류의 영국인이었다. 그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획득하는 수고를 하지 않고 자기 풍자의 대상이 되었다. 스스로 ‘검은 늪지대의 생명체‘*라고 생각하는 데이비드는 바로 그 퇴행한 실패자들 가운데서 고등한 종種일 뿐이었다.

*영화 <해양괴물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에 나오는 선사시대 괴물 - P193

엘리너의 짓밟힌 표정에도 더 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다만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을 패트릭 생각이 나자, 앤의 냉담한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 생각은 결국 똑같은 결론을 내리게하는 자극제가 될 뿐이었다. 앤은 이 사람들과 더 이상 어떤 관계도 갖고 싶지 않다는 것, 빅터는 일찍 가는 것을 당황스러워하겠지만,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앤은 빅터를 쳐다보고, 눈썹을 추켜올리고 문 쪽을 향하는 눈짓을 했다. 인상을 찌푸릴 줄알았던 빅터는 웬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마치 후추를 갈아넣을까요, 라는 말에 그러라는 듯이. 앤은 잠깐 뜸을 들인 다음 엘리너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는, "안됐지만 우리는 이만 가 봐야겠어. 긴 하루였어. 자기도 분명 피곤할 거야" 하고 말했다.
"네,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일에 진도 좀 나가야 해서요." 빅터가 단호히 말하고, 의자에서 무거운 듯 몸을 일으켰다. - P194

빅터는 잠든 보초를 깨우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식당 문을 살살 닫았다. 빅터가 앤을 보고 웃자 앤도 마주 웃었다. 그들은 멜로즈 부부 집을 떠나는 게 얼마나 마음이 후련한지 불현듯 깨달았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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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들(패트릭)에게 이런 기분이 들게 만드는 아버진 대체 어떤 사람이지? 엄지와 검지로 양쪽 귀를 잡고 아이를 들어올리고 아이가 아파하거나 말거나 그걸 교육이라고 생각하다니 대체 어떤 정신머리를 가진 인간이면 이렇게 되는 건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여기 있으면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해, 패트릭은 생각했다. 발작처럼 복받치는 가슴을 가다듬지 못해 숨을 들이쉴 때 목이 메었다. 그것은 마치 스웨터를 뒤집어쓰고 머리를 목둘레로 뺀다는 걸 잘못해서 소매에 쑤셔 넣다가 온통 꼬이게 되었을 때, 머리를 빼지 못하고 숨을 잘 쉴 수 없었던 때와도 같았다. - P45

아버지는 왜 그랬을까?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그러면 안 될텐데, 패트릭은 생각했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그러면 안 될텐데. - P45

겨울철에는 물웅덩이가 얼어 표면 아래 기포들이 갇힌 것을볼 수 있었다. 공기가 얼음에 잠겨 나오지 못하고 밑에 붙들려있는 것이다. 패트릭은 그게 싫었다. 그건 너무 불공평했다. 그래서 항상 얼음을 깨뜨려 기포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 P45

여기 있으면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해, 패트릭은 생각했다. 그러자 다른 생각이 뒤따랐다. 내가 여기에 있는 걸 아무도 찾지못하면 어떻게 될까?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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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파티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홍한별 옮김 / 강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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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맨스필드의 소설이 '별로'라는 그런 리뷰를 어딘가의 글에서 먼저 보아버린 나...

하필 왜 그런 리뷰를 먼저 읽어버린 거였을까? 그랬다면 편견 따위 가지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 하지 않았던 작가였다. 세상엔 읽을 책이 무궁무진한데 굳이 별로라는데 읽으려 애쓸 게 뭐람 하면서 작가에 대해 어떤 평가가 내려져 있든, 영미 문학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든 관심이 없었다. 평소의 나의 습관대로 작가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는 거다. 





이 단편집의 초,중반 몇 몇 단편을 읽을 때까지도 "단편 소설의 정수"라고? 정말? 그 정도까지는 아닌 거 같은데? 이렇게 의심하면서 내 맘대로 되지도 않을 평가를 내려버리는 우愚를 범하고야 말았다. 결과적으로는 뒤로 가면서 한 편, 한 편이 점점 재미있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을 읽고 나서는 다른 작품을 찾아 읽어보고 싶을 만큼 좋아졌다! 세상에는 내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뛰어난 작가가 어딘가에 숨어있다 뿅 하고 나타나 나를 뒤흔들고 어지럽게 빙빙 돌리면서 가지고 놀다가 너 어디 맛 좀 봐라 에잇! 하면서 좁아터진 나의 세계관을 주욱 찢어발기고 어때? 하고 놀리기도 하고 옛다! 하면서 작가만의 고유한 무언갈 던져주고 가기도 한다. 그러니까 난 정신을 차려야 하는 거다. 내가 경험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잘 모르면서 왜 잘난 척을 해서 이런 낭패스러운 기분을 갖고 마는 것인지 내 스스로도 왜 학습이 안되고 이런 사태를 자꾸 반복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 뭔가! 하지만 작품이 좋았고 쓰고 싶다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난다고 해서 다 된 게 아니다. 단편집의 리뷰를 쓰는 일은 정말 또 별개의 일이라 난 단편집 리뷰 쓰는 것이 세상 제일 난감하더라는...ㅠㅠ  





이 단편집에는 총 1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우연한 계기로 지금쯤은 - 설사 별로라고 알고 있었어도 여기저기서 자꾸 나타나는 '캐서린 맨스필드'라는 이 작가의 작품을 - 읽어봐도 크게 손해날 건 없겠지 싶기도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를 도서관에서 찾아보았는데 그때 든 생각으로는 이왕 읽을 거라면 이 한 권으로 끝날지도 모르니 수록 작품이 많을수록 좋겠다는 판단이 섰고 그래서 이 책을 대출 받아 온 거였다. 1922년 발표된 《가든파티》는 맨스필드의 최고의 작품집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발표 당시 수록된 작품은 <대령의 딸들>,

<미스 브릴>, <마 파커의 인생>,<신식 결혼생활>, <가든 파티>,<만에서>의 6개 단편이었다. 나머지 단편 7편 중 <레만 식당>은 초기 작품집인 《독일 하숙에서》, <심리>, <영화>, <딜 피클>, <어린 가정교사>는 《환희》에 실렸었고, 남편이 편집자로 있었던 아방 가르드 잡지 『리듬』에 발표했던 <가겟집 여자>, 생전에 발표되지 않았던 <인형의 집>이 있다. <인형의 집>과 마지막 단편인 <만에서At the Bay>는 연작 단편이다. 그래서 짦은 중편 정도의 분량이라 난 더 재미있었다. 





대부분의 단편에서 여성 화자의 감정의 변화에 주목하여 전개가 되고 있고, 주제도 다양해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부각한다든가 , 가부장제의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 계급의식, 그리고 부르주아의 위선과 허위 의식 등을 짦은 단편 속에 여지없이 드러내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에는 여성작가로서 폄하되고  동 시대 남성 작가들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점은 캐서린 맨스필드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여성의 심리와 감정의 섬세한 변화를 잘 표현해낸 단편 <딜 피클>이나 <심리>와 같은 작품을 남성들이 과연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남성 작가들을 비롯해서 일반 남성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여성의 "미묘한" 심리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평가절하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또한 가부장제의 속박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다룬 <대령의 딸들>과 <만에서> 등의 작품에 나타난 남성, 아버지, 남편의 모습은 권위주의적이고 여성들을 옭아매듯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흔들려고만 하는 "야만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의 여성들은 그냥 참고만 있지 않는다. 그래서 너무 맘에 들어~~! <대령의 딸들>에서는 권위주의의 화신이자 억압적인 아버지였던 대령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결혼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던 두 딸들이 이제는 아버지라는 유령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용기를 내었고, 역시 <만에서>의 여성들은 남편의 권위주의적이고 이기적인 행동과 말을 은근히 무시하고 따돌리고 있으며 남편이자 형부, 사위인 남성이 흥분해서 체신 머리 없이 하는 행동에 훨씬 품위 있고 당당하며 차분하게 대처한다. 완전히 대비되는 남성과 여성의 행동에 웃음이 나고 재밌다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





단편 집을 구성하는 작품 중의 한 편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훌륭한 하나의 작품으로서 기능할 때 모든 단편들이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아름답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젊은 여성들이어서 내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던 미스 브릴과 미스 모스(단편 <영화>)에게도 희망의 소식이 들려오기를. 또 <마 파커의 인생>에서는 세상에 하나뿐인 예쁘고 소중한 손자를 잃고 마지막 희망마저 놓아버린 마 파커 할머니와 이에 대비되는 마 파커 할머니가 일을 해주는 집 주인 소설가 양반의 무감각한 가슴이 부디 좀 말랑말랑해지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인간적인 위로까지는 아녀도 공감은 해 줄 수 있을텐데. 돈 많은 양반이면 뭐하고 소설가인데 돈만 많으면 뭐하나 싶었고 그 계급 의식은 대체 뭐에다 쓰는 건가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도 싫어하지만 최소한 이 소설가 양반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도 좀 실천해줬으면 오죽 좋았을까 싶었다. 정말 무심하기가 이를 데 없어 내가 신이라면 머리통을 한 대 날려버렸을 거다! 

 




표제작인 <가든파티>의 주제를 굳이 논하자면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 허위 의식 등을 고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마 파커의 인생>에서의 소설가 선생보다 더한 무신경하고 예의없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가든'에서 파티를 열 정도이니 돈도 많고 집도 으리으리 멋진 건 말할 것도 없다. 거기다 날씨까지 도와주니 금상첨화 아닐런지... 오죽하면 첫 문장이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가든 파티에 적당한 날씨를 미리 주문한다고 하더라도 이보다 더 완벽한 날씨를 구하진 못했을 거다."(p231) 이 문장에 대해서라면 '로쟈'님의 탐구 정신이 빛나는, 《가든파티》의 리뷰 글이 있더라구요!)."라고 했을까! 정원사가 새벽부터 일어나 잔디를 깎고 비질을 해서 정원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정원의 장미는 하룻밤 사이에 수백 송이가 피어나 아름다움을 뽐낸다. 아침부터 인부들이 차양을 치러 오고 엄마와 딸들은 파티를 위해 치장을 하느라 바쁘다. 

다른 꽃들은 하나도 없고 "큼직한 분홍색 꽃들이 활짝 피어 핏빛 줄기 위에서 무서울 정도로 싱싱하게 빛나는" 칸나 화분이 배달되어 오고 여러 가지 맛난 파티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런데 여기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길 하나 건너 대문 맞은 편 가난한 오두막집이 모여 있는 동네에서 발생한 죽음. 배달꾼의 말을 빌자면  "거기 스코트라고 짐마차 모는 젊은 사람이 살거든요. 오늘 아침 호크 거리 길모퉁이에서 말이 견인기관차를 피하려고 휙 도는 바람에 머리부터 길바닥으로 떨어졌어요. 그러곤 죽었죠."(p247) 아내하고 아이 다섯이 있다는데... 


이 집에서 유일하게 막내딸 '로라'만이 파티를 취소하라고 말한다. "당연히 파티는 못하는 거죠? 그렇죠? 악단도 오고 사람들이 몰려올 텐데. 소리가 다 들릴 거예요. 이웃이나 다름없잖아요."(p249)  하지만 모든 가족들은 그것이 우연히 일어난 사고라고 말하고 파티는 계속 된다. 정말 "몰인정"한 사람들이다. 거기다 더 가관인 건 파티가 끝나고 남은 음식이 아까워 그것을 바구니에 챙겨 파티복을 갈아입히지도 않고 최소한의 예의도 차리지 않은 채 막내딸인 로라에게 들려 죽은 짐마차꾼의 집으로 조문을 보낸다는 거다. 하... 정말...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지키라고 있는 건 아닐 텐데 해도 해도 너무했다. 로라가 파티복을 입은 채 음식이 든 바구니를 들고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 짐마차꾼의 집으로 걸어가는 그 때, 로라는 문득 깨닫는다. 

"...코트라도 입고 왔으면. 드레스가 번쩍거리는 것 같아! 벨벳 리본이 늘어진 커다란 모자까지...... 모자라도 다른 것을 쓰고 올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을까? 그렇겠지.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처음부터 잘못이란 걸 알았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p256)


깨달음의 순간, 그리고 지금까지 평온하던 삶의 균형이 깨지는 파열의 순간! 이 깨달음이 로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지만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맨스필드가 로라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은 그녀가 비록 어린 여성이지만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충실히 쌓아가는 인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여성들의 자각을 보여주는 주인공이 사실은 이 단편집에 여럿 등장한다. 호색한으로 무뢰한으로 폭군으로 권위적으로 무개념적인 남성상들에 대비되면서 근대적인 시각을 가진 여성 인물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이런 여성들을 만나는 재미가 남달랐던 단편집이었다. 강추합니다.





혼자 있을 때 삶을 생각하면 언제나 슬프기 마련이다. 흥분감 같은 것은 사라져버리고, 고요함 속에서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부르고, 처음으로 내 이름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만에서> 중에서,
p347

작은 구름이 달을 가로질러 고요하게 흘러갔다. 그 암흑의 순간, 바다는 괴로운 듯 깊은 신음 소리를 냈다. 구름이 흘러가고, 막 음산한 꿈에서 깨어난 듯 희미하게 살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온 세상이 고요했다. <만에서>의 마지막 문장,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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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파티》중 <만에서At the Bay>

˝아, 남자들이란!˝
스탠리가 출근 전에 하는 꼬락서니라니.. 온 집안 여자들을 다 들먹이면서 귀찮게 한다. 돈 벌어 오는게 무슨 그리 유세를 떨 일이라고...
아내 린다, 처제 베럴, 장모님과 세 딸들, 거기에 물론 하녀인 앨리스까지 모두 자신의 종처럼 부리며 군림하려 든다. 하지만 이 집 여자들은 은근히 그이의 말을 무시하거나 못들은 척 모르는 척 하면서 스탠리 놀려먹기를 즐긴다.^^
가부장제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여자들만 남은 집안의 평화로운 하루가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베럴은 식탁에 앉아 차를 따라주었다.
"고마워!"
스탠리가 한 모금 마시더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어! 설탕을 안 넣었잖아."
"아, 미안해요."
그러고도 베럴은 설탕을 타주는 게 아니라 설탕통만 밀어주었다. 이건 무슨 뜻일까? 스탠리는 스스로 설탕을 타며 푸른 눈을 둥그렇게 떴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스탠리는 처제를 흘깃 쳐다보고 등받이에 기댔다.
"별일 없지? 응?"
스탠리는 칼라를 만지작거리며 무심한 척 물었다.
베럴이 고개를 숙였다. 손가락으로는 접시를 돌리고 있었다.
"없어요." 
베럴이 가볍게 말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더니 스탠리에게웃음을 지어 보였다.
"무슨 일이 있겠어요?"
"아, 아. 그렇겠지. 그냥 처제가 좀....." - P290

"장모님, 빵 한 쪽 잘라주세요. 합승마치가 올 때까지 십이분 남았어요. 제 신발은 하녀한테 닦으라고 줬나요?"
"그래. 준비 다 돼 있어."
페어필드 부인은 아주 차분했다. - P292

스탠리는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장모님, 신발 좀 갖다주실 수 있어요? 그리고 처제, 식사 다 했으면 대문으로 가서 마차 좀 잡아줘. 이자벨, 엄마한테 가서 모자 어디에 뒀는지 물어봐. 잠깐만, 너희들 내 지팡이 가지고 놀았니?" - P292

하녀 앨리스까지도 불려 나왔다.
"혹시 지팡이를 부엌에서 부지깽이로 쓰진 않았겠지?"
스탠리는 린다가 누워 있는 침실로 달려갔다.
"정말 이상하군. 내 물건은 하나도 제 자리에 붙어 있지를 않아.
이제 내 지팡이까지 치워버렸어!"
"지팡이, 여보? 어떤 지팡이?"
린다가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날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는 건가? - P293

... ... 무심한 여자들 같으니! 남자들이 자기들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는 건 당연하고, 지팡이 하나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려 들다니. 켈리가 말들 위로 채찍을 휘둘렀다. - P294

"다녀오세요, 형부."
베럴이 다정하고 즐거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인사하기는 쉽지! 베럴은 손을 눈가에 대고 햇살을 가리며 한가히 서 있었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스탠리도 하는 수 없이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탠리는 베럴이 돌아서서 가볍게 깡총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스탠리가 가버려서 속이 시원한 모양이다. - P295

실제로 그랬다. 거실로 달려 들어오며 베럴이 외쳤다.
"갔어!"
린다도 방에서 소리쳤다.
"베럴! 스탠리 갔어?"
페어필드 부인이 무명옷을 입은 아기를 안고 나왔다.
"갔어?"
"갔어요!"
아, 이 편안함. 그 사람이 집에 없을 때는 얼마나 다른지.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조차 달라졌다. 비밀이라도 나눈 듯 다정하고 정겨운 목소리였다. 베럴이 식탁으로 갔다. - P294

"어머니, 차 한잔 드세요. 아직 따뜻해요."
베럴은 이렇게라도 이제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축하하고 싶었다. 방해할 남자가 없으니. 이 완벽한 하루가 그들의 것이었다.
"아니, 됐다."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아기를 위로 들어올리며 
"우르르르까꿍!" 하는 모습이 페어필드 부인도 같은 심정이라는 걸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닭장에서 나온 병아리들처럼 방목장으로 달려나갔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하녀 앨리스도 같은 기분이 되어 아껴 써야 할 물탱크의 물을 아낌없이 써댔다.
"아, 남자들이란!"
앨리스는 이렇게 말하며 찻주전자를 물통에 넣고 더 이상 공기방울이 올라오지 않는데도 그대로 잡고 있었다. 찻주전자가 남자라서 익사라도 시키려는 듯이.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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