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알린 ‘어느 공화군 병사의 죽음(쓰러지는 병사)‘의 사진도 조작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어떤 가설에 따르면, 이 사진은 전선 부근에서 실시된 군사 훈련 모습을 담고 있다. p75)˝
˝촬영장소, 날짜 상 실제 상황이 아니˝라는 주장을 입증하는 정황적 증거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을 보면
더욱 이 사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쉴새없이 밀려드는 (텔레비전, 스트리밍 비디오, 영화의) 이미지가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는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진이 가장 자극적이다. 프레임에 고정된 기억, 그것의 기본적인 단위는 단 하나의 이미지이다. 정보 과잉의 이 시대에는 사진이야말로뭔가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자 그것을 간결하게 기억할 수 있는 형태이다. 사진은 인용문, 그도 아니면 격언이나 속담 같은 것이다. - P44
우리는 모두 순식간에 떠올릴 수 있는 수백 장의 사진들을 마음 속에 담고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도록 하자. 우리는 스페인 내전 당시에 찍힌 가장 유명한 사진을 모두 알고 있다. 어느 공화군 병사가 적군의 총알에 명중된 바로 그 순간, 로버트 카파의 카메라가 "쏜"바로 그 사진 말이다. 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거칠기 그지없는 이 흑백의 이미지, 소매 걷힌 하얀 윗옷을 입은 남자가 자신이 쥐고 있던 장총을 던져버리려는 듯이 오른 팔을 뒤로 젖힌 채 산자락 뒤쪽으로 쓰러지는 이미지, 자신의 그림자 위로 고꾸라져 곧 죽을 것 같은 이미지를 마음 속에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 P44
이것은 충격적인 이미지이며, 바로 그 점이 핵심이다. 저널리즘의 일부로 편입된 이미지들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자극하며 놀라게 할 것이라고 여겨졌다. - P44
잔혹한 사진의 경우, 사람들이 그사진에서 원하는 것은 일종의 위선이나 단순한 계략과 마찬가지라고 여겨지는 일말의 예술적 기교가 아니라, 증거품으로서의 중요성이기 때문이다. 지옥 같은 사건을 담은 사진의 경우에는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아마추어이거나 아니면 일종의 서비스처럼)눈에 익은 몇 가지 반反예술적 양식을 도입한 관계로 빛의 양이나 사진의 구도가 적절하지 않은 것일수록 더 믿을 만하다고 여겨진다. 예술적으로 말하자면, 도드라진 재주를 부리지 않은 사진일수록 훨씬 덜 조작된 것이라고 여겨지며(오늘날 고통을 담고 있는 잘 알려진 사진들은 대부분 조작된 것이라는 의심을 받는 처지에놓여 있다), 될 수 있는 한 경솔한 동정심이나 동일시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 P49
한편, 공습으로 민간인들이 가차없이 살육되고 육지에서 대량 학살됐던 훨씬 더 잔인한 전쟁들(수십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수단 내전, 쿠르드족을 겨냥한 이라크의 군사 행동, 러시아의 체첸침공과 점령)은 상대적으로 사진에 담기지 못했다. - P61
1950년대, 1960년대, 그리고 1970년대 초에 유명한 사진작가들이 기록으로 남긴 잊혀지지 않는 수난의 장소들은 대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있었다. 기아로 고통받는 인도의 희생자들을 찍은 베르너 비쇼프의 사진들, 비아프라에서 일어난 전쟁과 기아 사태의 희생자들을 찍은 돈 맥컬린의 사진들, 일본 어촌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오염 사태의 희생자들을 찍은 W. 유진 스미스의 사진들을 상기해 보라.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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