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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ㅣ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사람은 남들이 하려는 걸 같이 하며 체제, 집단에 순응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정반대로 남들이 안하는걸 해서 차별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구를 갖기도 한다. 모순되는 측면이지만 각각이 진화상의 적응도를 높이기에 개인은 양극단의 스펙트럼 어느 한 곳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각 사안마다 또 달라지기도 할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차별성을 조금 더 중시하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10년 정도 전에 부커상 수상으로 한강 작가가 떠들썩 했을 때 정작 그 책을 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작가의 다른 책은 몇 권 보았다. 이건 또 순응적인 면이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이라는 커다란 대세가 나타나자 더 순응성을 발휘해 작가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나보다 대세를 따르는 경향이 강한 아내가 이것을 당시 구매해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이 오래되고 바랬다.
책은 충격적이고 치밀하고 끔찍했다. 주제를 잘 드러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느낀 것 처럼 기분이 전혀 나쁘진 않았으며 인상적이었고 책이 전달하고자하는 바를 꾸준히 생각하게 하는 느낌이 있었다. 책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이다.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은 삼남매의 둘째인 영혜일진데 그녀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장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도 작가의 장치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운 영혜는 철저히 타자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책을 다 읽고나니 이 소설에 새겨진 장치는 세 가지 인 것 같다. 첫번째는 주인공 영혜가 점자 주체이자, 비파괴적인 존재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처음엔 채식주의자, 그 다음엔 식물로 변해가는 과정 마지막엔 모든 섭식을 거부하며 정신마저 정말 식물이 되어가는 과정이다.두 번째 장치는 영혜의 이런 변화를 모두 타자가 관찰 서술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주체로 완성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치라 할 수 있다. 타자는 영혜의 남편, 누나의 남편, 누나로 이어진다. 이들은 모두 영혜를 이해해자 못하고 받아내지 않지만 점차 그녀를 이해하는 관점이 깊어진다. 마지막은 잔혹성이다. 아주 끔찍하진 않지만 육식의 거부와 자해, 바람 등은 한국에서 문화적으로 허용되기 어려운 것들이다. 소설을 보고 기분이 나쁘거나 언짢은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파괴적인면과 비주체성을 초점화하기 위한 장치라 생각된다.
책 내용은 이렇다. 채식주의자의 아내 영혜는 평범한 전업주부 아내다. 남편이 그녀를 선택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어디 내놓아도 튀지 않고 지적, 미모, 능력, 성격면에서 극히 평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난하고 자신감 없는 남자는 이런 이유로 그녀를 선택한다. 그리고 지금까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어느날 고기를 매우 잘 먹던 그녀가 잔혹한 꿈을 꾸고 채식주의자로 돌아서기 전까진. 영혜는 밤에 누군가를 죽이고, 혹은 자기가 죽는 듯한 꿈을 꾸고 이후로 고기를 먹지 않게 된다. 거기에 남편과의 잠자리도 거부한다. 그에게서 고기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남편은 처음엔 그려려니 했으나 심각해지자 이를 처가식구들에 알린다. 아내가 잠자리를 거부하는건 짜증이 났는데 강제적으로 성교를 시도했고 몇 차례 성공하면 오히려 강한 쾌감을 갖기도 한다.
가족간의 모임에서 장인은 영혜에게 강제로 고기를 먹인다. 극심한 충격에 영혜는 과도로 손목을 귿고 모임은 난장판이 된다. 영혜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남편은 그녀와 이혼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1장 채식주의자의 내용이다
2장 몽고반점은 영혜 언니의 남편 시점이다. 그는 아내보다 처제인 영혜가 마음에 든다. 이상한 일이다. 도무지 예쁜 구석이란 걸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다 영혜가 가진 몽고반점에 눈이간다. 그의 작업은 예술가로 여러가지 사진, 비디오 작업을 한다. 그는 영혜를 찾아가고 자신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요구한다. 영혜는 놀랍게도 이를 받아들여 그 앞에서 전라가 된다. 그는 영혜의 몸에 무엇에 홀린듯 그림을 그리고 사진 작업을 한다. 다른 업계 동료들은 한물 간듯한 그가 보여준 놀라운 색감과 작업에 감탄한다. 하지만 그는 무언가 부족함을 느낀다. 그가 생각한 완성은 영혜와 남자와의 성교였다. 그것이 작품을 완성시킬 것만 같았다. 자신이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자신은 영혜와 도무지 그림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모델을 시켜 작업을 했지만 결국 그가 성교를 거부한다. 영혜의 방을 찾는 그는 결국 자신의 몸에 그림을 그리고 비디오로 촬영하며 영혜와 성교한다. 그것은 성적인 욕망보단 뭔가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내가 목도한다. 아내는 실성한 동생 영혜와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자신의 남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3장은 나무불꽃이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영혜는 마침내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언니는 그런 영혜를 살리려고 노력하면서도 자신의 비주체적인 삶에 대해서 깨닫고 영혜의 삶을 이해하고 다소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것이 향하는 점은 죽음이라는 점에서 그 모순에 경악한다.
저자는 인간이 가진 비주체성과 폭력성에 천착한 것 같다. 책에 등장하는 영혜와 그 언니는 매우 비주체적인 존재다. 결혼생활, 그리고 직업, 어려서 가족관계 모두가 그렇다. 그럼에도 그냥 남들처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자신을 억지로 잊어가며 살아가는 그런 비주체적 존재로의 삶을 저자는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폭력이다. 인간 존재는 육식을 하고 성경쟁과 자원경쟁을 하기에 본질적으로 폭력적 존재다. 하지만 그런 필수적인 생존을 위한 폭력 이외에도 인간은 많은 폭력을 휘두른다. 저자는 인간 존재의 이 두 가지 면을 이런 여러 장치를 통해 부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채식주의자는 그런 면에서 작가 한강의 여러 책 중 가장 좋았으며 그렇기에 주목받을 만한 책이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