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국악 수업 - 40가지 주제로 읽는 국악 인문학 지식 벽돌
이동희 지음 / 초봄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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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대중음악은 세계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자국의 음악이 그 나라를 넘어 세계에서 이 정도로 흥행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더구나 우린 변방인 아시아가 아닌가. 그치만 그 이름은 한국음악이 아닌 K pop이다. 글자 그대로 외국, 특히 미국음악을 들여와 우리의 색을 입힌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진정한 한국의 음악은 국악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음악을 단순히 음악이라 하지 않고 국악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앞에 별도의 지칭이 붙었다는 것은 이미 즐기고 듣는 생활음악의 자리를 서양음악에 내주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은 그 외에도 자국의 언어 교과를 국어, 역사는 국사라고 하는 좀 이상한 면이 있다. 

 한국인은 대개 국악을 즐기지 않는다. 잘 알지도 못하고 대중음악이 아니며, 학교에서 딱히 배운적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교육과정이 개정되어 음악교과의 거의 절반을 국악이 차지한다. 하지만 개정 이전 교육과정을 경험한 기성세대는 음악시간에 국악을 접한 비중이 10-20%정도에 불과했었다. 

 국악은 한국인의 현대 정서와 다르게 좀 많이 느리다. 물론 빠른 곡도 있지만 대개 확실히 서양음악에 비해 느리다. 이는 서양음악이 빠르기의 기준을 심박수로 한 것에 비해 국악은 호흡수로 하기 때문이다. 심박보단 호흡이 확실히 느리다. 여기에 국악은 궁중, 양반 계층을 중심으로 발달하다 보니 그들의 유교문화가 반영되어 느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국악을 일상생활에 잘 활용한 예가 서울지하철의 환승음악이다. 기존엔 서양음악과 다른 음악을 사용하다 2009년부터 국악곡 '얼씨구야'를 음악으로 사용했다. 다들 한 번은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14년만에 곡을 '풍년가'로 바꾸었다. 

 국악은 원래 작곡가가 없다. 그냥 연주자들이 다양하게 변주하는 과정에서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중반부터 국악도 작곡가가 출현한다. 그리고 음악도 다양화한다. 

 국악은 원래 양반과 중인이 즐기는 정악과 서민 중심의 민속악으로 구분한다. 정악은 양반, 중인이 모여 취미로 음악, 시낭송, 서예, 그림, 바둑 등을 즐기며 듣는 풍류악이다. 민속악은 서민 중심으로 생성되고 향유한 음악이다. 대표 장르가 판소리이며 숙종대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는 12마당이었지만 치정극과 복수 이야기를 덜어내고 삼각오륜에 부합하는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흥보가만 전해진다. 없어진 이야기들은 모두 재밌고, 양반을 비판하며, 성적인 면이 많은데 무척 아쉽다. 민속악엔 기악독주곡인 산조, 사물놀이, 시나위 등이 있다. 현재 국악은 여기에 창작국악이 더해져 지금은 총 3장르가 된다. 

 국악기를 만드는 재료는 8가지다. 대한제국의 백과사전은 증보문헌비고는 이를 팔음이라 칭한다. 쇠, 돌, 명주실, 대나무, 바가지, 흙, 가죽, 나무로 각각 금부, 석부, 사부, 죽구, 포부, 토부, 혁부, 목부라 한다. 금부악기는 편종, 특종, 방향, 징, 꽹과리, 나발이 있다. 편종은 가장 낮은 황종부터 반음씩 총 16음계고 특종은 황종음 하나만을 내는 큰 종이 매달린 악기다. 방향은 16개의 건반이 있는 큰 실로폰 같은 악기다. 석부악기는 편경과 특경인데 편종, 특종과 같은 방식으로 돌로 만든 차이다. 사부악기는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비파가 있다. 죽부는 대금, 중금, 소금이 있고 리드로 부는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와 단소, 풍소가 있다. 포부는 생황이 있는데 이것은 국악기 중 유일하게 화음연주가 가능하다. 토부는 훈과 부가 있는데 훈은 오카리나와 비슷하고, 부는 큰 질 그릇을 내서 채로 쳐서 소리를 내는 악기다. 혁부믄 장구와 북, 소고가 있다. 목부는 박과 축, 어, 태평소가 있다. 축은 제사의 시작에 어는 제사의 끝을 알리는 악기다. 

 국악의 시작은 당연히 민족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의 왕산악은 중국의 칠현금을 참고하여 6개 줄의 거문고를 만든다. 백제는 금동대향로에 5명의 악사가 등장한다. 유명한 노래 정읍사는 수제천의 전신이다. 신라는 진흥왕대에 가야의 우륵을 통해 가야금을 만든다. 12줄 악기로 왕은 우륵에게 계고, 법지, 만덕의 세 제자를 붙여주고 이들은 각각 가야금과 노래, 춤을 배운다. 하지만 가야와 신라의 정서가 달라서인지 이 세 제자는 스승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음악을 변형한다. 신라는 국가음악기관은 음성서를 설립하고 삼현(거문고, 가야금, 향비파), 삼죽(대금, 중금, 소금)의 악기를 편성한다. 그리고 나당연합군 시절 당에서 당악이 유래하며 자신들의 음악을 향악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발해는 왕립음악기관인 태상시가 있었고, 연해주에서는 유목민의 악기인 바르간이 출토된 걸로 보아 초원의 음악도 수용한 것 같다. 고려는 송을 통해 교방악과 사악이라는 음악이 유래하여 당악에 편입된다. 송휘종은 1116년에 대규모 아악을 보내주었는데 이 때부터 우리 음악이 당악, 아악, 향악으로 구분된다. 고려는 궁중무용인 중재가 유행했고, 청산별곡, 서경별곡, 가시리, 쌍희곡, 사모곡이 유행했다. 고려는 궁중음악을 관장한 대악서, 공인의 실질적 음악 연습과 교육을 하는 관현방, 종묘에서 노래와 연주를 익히는 아악서가 있었다. 조선전기는 외국의 영향이 없는 독자적 음악의 발전시기다. 세종은 정간보를 창안했고, 새 악곡을 창작하고 아악을 정비했다. 세조는 궁중음악기관 5곳을 통폐합하여 장악원을 만들고 종묘제례악의 기틀을 마련하고 아버지가 만든 곡들은 여기에 편입시켰다. 성종은 최고의 음악 교본은 악학궤범을 완성한다. 양난으로 조선은 많은 악기를 상실한다. 그리고 음악이 중심이 민간으로 이동한다. 조선 후기에는 성악곡이 기악곡화하는데 염니락, 영산회상, 낙양춘, 사관풍류, 횡성곡 등이 그렇다. 그리고 악곡의 속도가 빨리지고 고음화한다. 개화기는 판소리를 오페라처럼 만든 1인 1역의 창극이 크게 유행한다. 일제강점기 정악은 이왕직아악부로 명맥만 유지했고 민속악은 민중자각의 모태가 되어 크게 발전한다. 1951년 국립국악원이 개원하고, 54년 대학에 국악과가 신설되었으며 62년 중요무형문화재법에 따라 64년 종묘제례악이 1호로 지정된다. 그리고 1994년이 국악의 해로 지정된다. 

 조선 세종은 음의 기준을 정한다. 황해도 해주의 곡식 기장의 길이를 기준으로 하여 국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황종 음을 대는 대나무 율관을 제작한다. 이를 근거로 주선율을 연주하는 편종과 편경을 제작한다. 세종은 전반기엔 아악, 후반기는 향악에 집중한다. 여민락, 취풍형을 작곡하고 종묘제례악도 작곡한다. 세종은 아악이 궁중음악이므로 왕과 왕비의 제사인 종묘제례악에 당연히 향악을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학문의 덕을 기리는 보태평과 군사적 업적을 기리는 정대업을 작곡한다. 하지만 반대가 심해 당대엔 어려웠고 그 아들인 세조가 이를 종묘제례악으로 지정한다. 

 한국의 아리랑은 본래 강원도 정선을 비롯하여 영월과 평창 등 태백산맥 일대에 분포한 메나리조의 아라리에서 유래했다. 아리랑의 의미는 밀양의 전설적 인물 '아랑'이라는 설, 신라왕비 알영비라는 설, 긴(아리) 강(라)이라는 의미라는 설, 아리따운 임을 의미한다는 설, 나의 이치를 찾는다는 설등 다양하다. 

 사물놀이는 풍물놀이 중 판굿을 극대화한 음악이다. 1978년 김덕수와 금용배를 비롯한 젊은 20대 예인들이 완성했다. 단기간 폭발적 인기를 얻었으며 리듬만으로 하나의 장르를 완성한 매우 독특한 음악이다. 사물놀이는 꽹과리, 장구, 북, 징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각각 별, 인간, 달, 해를 상징하고 소리는 번개, 비, 구름, 바람에 비유된다. 

 민속악 중 유일한 기악 합주곡이 시나위다. 시나위는 전라대 일대의 무속음악의 반주가 독립하여 발전한 것으로 재즈의 즉흥성을 갖고 있다. 

 민요는 지역별로 독특한 음계와 발성법을 갖고 이를 토리라고 한다. 경기, 충청일부의 음악은 경토리다. 맑고 경쾌하며 음악이 분명하고 빛깔이 부드럽다. 굿거리 장단과 세마치 장단을 쓴다. 전라도는 육자배기 토리다. 극적이고 굵은 목을 눌러내는 특유의 창법이 있다. 떠는 목, 꺽는 목이 있으며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장단을 쓴다. 평안도와 황해도는 수심가토리다. 하늘하늘한 소리와 큰소리로 부르다가 콧소리를 낸다. 함경도와 경상도는 메나리토다. 경상도는 장단이 빠른 반면 함경도는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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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그림과 편지들 - 세상에서 나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 내 동생 테오에게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이승재 옮김 / 더모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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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고흐는 그 유명세에 비해 살아 생전 단 한 점의 그림 밖에 팔지 못했다. 물론 주변의 예술가나 지인들은 그의 그림을 꽤 원하기도 하고 얻어가기도 했지만 세속적 인기는 없었던 셈이다. 판매에 성공한 유일한 그림은 '붉은 포도밭'이다. 그의 대표작은 아닌 셈이다.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반 고흐만이 아니다. 당시의 '인상주의' 화풍은 지금이야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지만 당시엔 매우 새로운 시도로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시대를 앞서간 셈이다. 고흐는 그의 동생 테오와 상당히 많은 서신을 주고 받았다. 그래서 다른 화가들에 비해 우리는 그의 실존적 어려움과 고민, 인간 됨에 대해 다소 살펴볼 수 있다. 

 동생 테오는 평소 심장에 지병을 갖고 있었는데 형의 죽음이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고흐가 죽고나서 고작 반 년만에 자녀와 아내를 두고 죽고 만다. 고흐의 동생 테오의 서신은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던 테오의 아내가 대량으로 발견하고 이에 큰 감명을 받고 세상에 공개하며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고흐의 집안은 괜찮은 형편이었다. 아버지는 목회자였고 큰 아버지는 유럽 여기저기에 지점을 둔 화랑을 하고 있었다. 고흐의 아버지는 고흐를 목회자로 만들거나 세속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여러 노력을 하고 학교에도 보내봤지만 민감하고 감수성이 있는 고흐의 영혼은 그것에 걸맞지 않았다. 고흐는 큰 아버지가 운영하던 구필화랑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인상주의 화풍을 접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27살이라는 지금으로 봐도 매우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결국 화가가 된 그를 집안에서는 어떻게든 정착을 시키기 위해 안트베르펜의 미술학교로 보내기도 했으나 고흐가 전형적 교육과정과 그림 그리는 방법을 거부하면서 이조차도 무산된다. 동생 테오 역시 집안의 화랑을 물려받아 일을 한다. 그리고 테오는 제법 돈을 벌었는데 이것이 고흐의 물질적 기반이 된다.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돈이 아니었다면 평생 그림을 한 점 밖에 팔지 못하는 비인기 아마추어 작가인 고흐가 그렇게 많은 작품을 남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재 세계인은 고흐의 작품에 대해 동생 테오에게 상당한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빚은 무엇보다도 고흐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앞 부분은 항상 이전에 돈을 보내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염치없게도 다시 돈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점철된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이 점점 발전하고 있으며 새로운 시도와 노력으로 곧 그림이 팔릴 것이라는 망상에 가까운 기대도 보인다. 

 고흐는 특유의 임파스토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는 그림에 유화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형식으로 고흐는 색을 섞기도 했지만 혼합하려는 두 색을 가깝게 두텁게 칠해 혼합효과를 내기도 했다. 임파스토 기법으로 그의 그림은 강한 질감과 두터운 느낌, 강렬한 색조, 깊은 공간감과 입체감을 준다. 하지만 이 기법은 필연적으로 물감을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었고 고흐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했다. 그럼에도 고흐는 이 기법을 고수하고 대부분의 작품이 이 방법을 사용한다. 

 고흐는 자신처럼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는 작가들을 위한 하나의 예술 공동체를 구상했다. 그들이 한 장소에 모여 같이 작업하고, 게중에 운 좋고 당대의 인정을 받는 작가가 얻는 수익을 어려움을 겪는 작가를 위해 사용하고 그런 어려움을 겪는 작가가 성장해 다시 공동체에 기여하는 그런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구상도 망상에 가까워 친구인 고갱 하나를 영입하는데도 실패한다. 고갱도 고흐 만큼은 아니지만 당시에 그림이 잘 팔리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는데 동생 테오의 경제적 유인책으로 고흐와 합류했다가 고흐의 민감함과 예술적 지향성의 다름. 그리고 프랑스 아를에 대한 실망으로 가까운 시일에 고흐를 떠나버린다.

 고흐는 고갱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동생의 결혼으로 경제적 지원이 감소하거나 끊어질 것에 대한 염려로 상당한 정신적 불안을 보인다. 지역 주민과 집주인은 그런 고흐를 정신병자로 여겼고, 그는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모처럼 꾸며 놓고 오래도록 그림 작업을 했던 아를의 하숙방에서도 쫓겨난다. 고흐는 잠시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병원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바깥에서 총상을 입는다. 그는 처음엔 괜찮은 듯 보였으나 갑작스레 상황이 악화되어 이틀 만에 사망하고 만다.  

 고흐의 삶은 전체적으로 매우 불행했다. 아버지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림을 그린 사촌형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으며 동생 테오조차 형의 그림이 팔릴만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0년의 시간을 그리며 단 한 점의 그림도 팔리지 않았으니 형에 대한 애정과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쳐도 충분히 그럴만하다. 여기에 동시대의 예술가들 역시 그의 그림에 주목하지 않았다. 연애사도 불운해 고백하는 사람마다 집안의 반대, 혹은 이미 연인이 있거나, 아니면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평생 독신이었다. 이런 모든 악조건에도 꾸준히 그림을 그려낸게 그에겐 하나의 해방구이자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지금 그의 그림 하나하나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매우 비싸게 팔리는 현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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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건축가 한 명쯤 - 미켈란젤로부터 김중업까지 19인의 건축거장
장정제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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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품에는 그 작가의 정신과 생각, 시대의 흐름이 투영된다. 그래서 예술이라고 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건축물에도 건축가의 정신과 생각, 시대의 흐름이 반영된다. 물론 사람들은 거대하고 반드시 사용한다는 점에서 건축물을 좀처럼 예술품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이는 예술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괜찮은 건축물은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망해가던 지역의 분위기를 바꾸고 관광객을 불러와 다시 활성화 시킬수도 있고 지역의 느낌을 잘 살라기도 완전히 바꾸기도 하며, 사람들의 정신에도 영향을 미친다.

 책 '좋아하는 건축가 한 명쯤'은 현대의 수많은 건축가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들의 건축물과 건축가의 정신, 생각을 책에 담았다. 책이 쉬울거라 기대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저자는 건축가들의 성향과 건축철학은 이해하고 책에 담았는데 건축에 조예가 적은 나로써는 한글자 한글자를 이해하기가 좀 어려웠다. 좀 더 쉽게 썼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책의 두께에 비해 많은 건축가를 소개하였고 건축책이나 적지 않은 분량이 건축물 사진에 할애되었기에 설명이 더욱 적은 느낌이었다. 내용의 난이도를 조금 쉽게 하고 건축가의 수를 조금 줄였다면 더 좋은 책이 되었으리란 생각이다.

 책에 나온 여러 건축가를 들어보기도 하고 다소 알기도 하였는데 우선 자하 하디드가 눈에 띄었다. 왜인지 나는 자하 하디드를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에 나온 사람들도 그런 것처럼 유명한 건축가는 대개 남자이기 때문이다.이는 과거 교육이 남자 중심으로 이뤄진 탓에 기인할 것이나 남자가 여자보다 대체적으로 공간감각이 더 뛰어나다는 것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여튼 자하 하디드는 이라크 태생 여성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2016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자하 하디드는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 동대문 디지털 프라자등을 건축했는데 유기적으로 잘 흐르면서도 비정형적이고 비대칭적이로 뫼비우스의 띄처럼 안과 밖이 같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게 특징이다.

 다음으로 눈에 띈 사람은 프랭크 게리다. 그는 1920년대 생임에도 아직도 살아있다. 그의 건축물은 굉장히 비정형적이고 금속을 많이 사용하여 건물을 뒤틀어 놓는데 이로 인해 건축물이 무척 눈에 띈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월트디즈니 콘서트 홀이 대표적이다. 그는 과거 사람으로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았는데 건축 스타일상 컴퓨터의 도움이 설계에 많이 필요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물론 본인이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나라 작가로는 김수근과 김중업이 마지막에 나온다. 두 사람은 대조적이다. 둘 다 뛰어난 건축가이나 김수근은 어려서부터 부유히 살았고 권력의 중심에서 국가 건축 사업을 주도했으며 다른 김중업은 독재정권을 비판했기에 변방에 머물렀다.

 김수근은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워커힐 호텔이나, 남산자유센터, 경동교회, 공간사옥을 지었다. 특히 그는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도 건축했다. 1986년에 사망했으니 완공을 보자마작 죽은 셈이다. 저자는 다른 건 몰라도 그의 공간사옥은 매우 높이 평가한다. 김중업은 올림픽 공원의 상징물인 평화의 문을 만들었다. 놀랍게도 근대 건축의 일인장니 르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이기도 하다. 김중업은 모더니즘의 정방형 건축보다는 유기적인 곡선과 한국성을 드러내는 조형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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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2 - 최고의 나를 만드는 62장의 그림 습관 그림의 힘 시리즈 2
김선현 지음 / 세계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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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사람은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이건 놀랍게도 자연과 대상을 나름의 철학과 관점으로 묘사하고 창조한 예술 작품에도 적용된다. '그림의 힘2 편은 이런 개념으로 예술 작품을 소개한 책이다. 이런 작업이 성공적이었는지 2권까지 나왔다.

 1권을 보지 못하고 2권만 이번에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힘든 연말에 조금은 도움이 된 느낌이다. 하지만 평소 예술책을 보는 이유가 작품과 관련한 작가와 시대상의 반영, 그를 따른 사조를 알고 싶은 것이기에 조금 예상 외였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그림들이 아름답고, 감동을 주기 위해 큰 사진의 작품을 실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몇몇 그림은 책을 펼쳐보면 아름다운 꽃이라도 본 것처럼 '와아'하는 느낌을 준다. 또 다른 장점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가와 그들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서양 미술 책은 시대 변화에 따른 예술 사조의 변화와 그 대표 예술가들의 작품을 다룬다. 그래서 대개 많이 들어 본 사람들의 대개 많이 한 번 쯤은 본 작품들이 나온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심리적 치유에 목적을 두었기에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가들의 아름다운 그림이 나온다. 이런 예술품들은 당대의 시대 흐름을 잘 쫓지 않았거나 앞서가지 못했을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림이 자연을 모사한 웅장함과 아름 다움, 작가만의 개성이 잘 드러나 확실히 위안을 준다. 이런 그림들을 알아가고 위안을 얻고자 한다면 이 책은 볼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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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개정판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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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는 제목이 멋지고 현대적인 만큼, 최근 책이라 생각했지만 개정을 거듭하며 오래 살아 남은 책이다. 작가는 최순우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분이다. 그런데 이분이 사망한 것이 무려 30년전인 1984년이고 책이 나온 시점은 1994년이다. 추측해보면, 작가가 돌아가시고 그 분이 평소 여기저기 써 놓은 글을 후대들이 엮어 책으로 발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술은 변화무쌍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눈에는 오래도록 공감이 가기도 하는 것 같다. 많은 글이 84년 이전의 것일텐데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으니 말이다.

 책은 꽤 두껍고 한 사람이 쓴 것이지만 모음 글이기에 체계적이진 않다. 다만 도자기, 회화, 공예 등으로 묶고 시기 순으로 제시하여 의도치 않은 체계와 흐름을 맛볼 수 있다. 인상 깊었던 부분만 정리해본다.

 탈놀이가 끝나면 원래 그 해에 지었던 탈들은 모두 불에 태웠다고 한다. 옛 사람들의 눈에는 신이 붙었음직한 탈이 모두 타는게 더 마음이 개운했을 것이란게 저자 생각이다. 안동하회마을은 고려 중엽까지는 허씨문중, 그 후에는 안씨, 조선초에는 유씨 문중이 살았ㄷ다. 그 중 허씨문중이 하회탈의 유래와 관련한다. 허씨문중의 허도령은 꿈속에서 하회탈을 만들라는 신탁을 받았다. 그는 목욕재계하고 금줄을 두른 후 작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오랜 작업 기간에 그를 사모하던 처자가 참지 못하고 그를 엿보고 만다. 부정이 탄 허도령은 작업 중 피를 토하며 죽는다. 그는 마지막 탈인 이매탈을 만들 고 있었는데 턱부분을 완성하지 못한지라 하회탈 중 이매탈만이 턱이 없다. 

 하회탈은 모두 12개다. 각씨, 중, 초랭이, 양반, 선비, 이매, 부네, 백정, 할미. 떠달이. 별채, 총각이다. 떡달이, 별채, 총각 3개탈은 일제시대 일본에 반출된 긋 하고 현재 남은 것은 양반과 각시탈이다. 

 한국의 전통 난방 방식은 구들이다. 이중 온돌은 아궁이에서 뗀 불이 일단 하층 구들장을 직접 가열하고 그 불기운이 세분되어서 다시 상층 구들 고래를 간접적으로 구석구석 덥혀 방바닥이 고르게 데워지는 것이다. 이것을 더 합리화한 것이 탕방이다. 탕방은 아궁이에서 뗀 불이 우선 크고 둥근 하층 구들장에 받쳐서 팔방으로 분산되어 상층고래로 올라간다. 상층고래는 중앙부를 기점으로 방사선상으로 구축된 구들 고래를 통하면서 방을 덥히고 이 열은 다시 방 네 벽 변두리를 일주해서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구조다. 

 이러한 이중구들이나 탕방구들의 장점은 혼구들처럼 아래목만 필요이상으로 뜨거운 것이 아니라 방바닥 전체를 일정한 온도로 고르게 난방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층 구들장이 오래도록 열을 갖고 있기에 좀처럼 식지 않는 다는 것이다. 

 보통 민가의 구들은 사오년에 한 번씩은 장판을 교체한다. 장판은 벽을 다시 하고 새장판을 한다. 새 벽을 바르고 이것이 마르면 피지나 백지로 초배를 한 다음 튼튼한 대접을 엎어놓고 방바닥을 고루 문질러 미끈하게 다듬는다. 그 위에 다시 창호지를 두어겹 발라서 바탕을 희게 한 다음 들기름을 먹인 두터운 유삼지 각장을 보기 좋게 붙이는 것이다. 이것들이 과거 한국의 집에서 볼 수 있었떤 노란 장판이다. 이 장판 위에 큰댐을 하고 다시 이것이 마른 다음 마른 걸레질을 수없이 하면 윤이나게 된다. 

 회화부분에서는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의 작품과 설명이 순서대로 나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정선이다. 그가 그린 진경산수화는 매우 인상적이다. 어떤 것들은 산세화 수풀이 부드럽게 나오면서도 어떤 것들은 매우 날카롭고 인상적이다. 진경산수화는 역사시간에 마치 실제 경치를 그린 것처럼 나오지만 사실은 화가가 한국의 산세를 중시하되 실제처럼 마음의 것을 그린 것이다. 서양식으로 따지면 인상주의랄까. 이 세 사람은 시대를 거듭하며 일종의 시대적 흐름을 보여준다. 그림은 점차 부드러워지는 경향을 보이고 무엇보다 소재의 차이가 있다. 정선은 그래도 조선 사대부가 그려야 할 것에 얽매여 있다면 김홍도에 이어 신윤복으로 갈 수록 그 경계는 거의 사라진다. 신윤복은 남여간의 사랑과 바람피는 장면, 그리고 여인들을 많이 그렸다.

 도자기의 발전도 눈에 띈다. 삼국시대의 토우와 토기 수준이 고려시대에 이르러 찬란한 청자로 피어난다. 고려 중엽에는 청자의 색은 매우 밝았고, 초기엔 백토를 발라 그림을 그리다 독자적 상감기법이 등장한다. 고려의 청자는 후기로 갈수록 색이 탁해지다 분청사기로 탈바꿈한다. 분청사기는 글자 그대로 청자에 흰 분을 칠해 푸른스름한 흰색을 띄는 자기다. 그러던 것이 조선의 백자로 이어지며 희고희던 백자가 푸른 그림을 갖게 되는 청화백자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의 도자기는 중국과 일본의 것들과 다르게 한 가지 색을 고집하고 절제하여 화려한 그림과 색채를 갖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만의 미다.

 책을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책은 초기엔 흑백이었던 것 같은데 현대인 지금은 모든 작품이 크고 컬러다. 저자는 아무래도 글을 1970년대에 주로 썼을 만큼 당시 한국이 가난하고 인지도가 낮은 나라라 가진 문화적 풍모와 수준에 비해 중일만큼 국제적 인정을 받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가진 것이 훌륭한 것을 알기에 절대 주눅들어 있지 않다. 저자가 오래도록 살아 문화적으로 융성하고 자부심이 넘치는 지금의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었다는 생각이 좀 든다. 물론 그가 근무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이 파괴되고 거듭나 새로지어진 모습도 놀라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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