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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일기 - 세상 끝 서점을 비추는 365가지 그림자
숀 비텔 지음, 김마림 옮김 / 여름언덕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책을 다루는 직업을 선망하기 나름이다. 서점 주인, 도서관 사서, 작가, 출판업관련자 등이다. 출판업은 아예 그 쪽으로 취업을 해야하고, 도서관 사서는 공무원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작가는 되기도 힘들뿐더러 소득 문제로 대부분 주업보다는 부업으로 해야한다. 그러면 어이없게도 가장 쉽게(?) 책을 다루는 직업으로 마땅한 건 아무래도 서점 주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겠지만.
그런데 이 가장 되기 쉬운 책 관련 직업이 지금은 정말 어렵다. 인터넷, 그리고 모바일, 플랫폼이 모든걸 장악하면서 실제 소매업이 모두 위축되었고 특히나 디지털로 변환이 쉬운 음악, 책, 영화는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물성이나 현장감이 가장 불필요한 음악이 가장 먼저 와해되었고, 다음은 책, 그리고 영화순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실제 타워레코드가 가장 먼저 망했고, 다음은 지역 소매서점과 대형서점들이 망했고, 영화관들은 그래도 아직 건재하다.(물론 메타버스로 영화를 즐기는 시점이 온다면 영화관도 끝장나리라 본다.)
서점일기는 무척 독특한 책이다. 스코틀랜드의 위그타운이라는 시골지역에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쓴 일기이기 때문이다. 서점 주인은 숀 비텔로 서점 이름은 더 북 숍이다. 책은 400페이지인데 2013년 아니면 2014년의 한 해를 서점을 운영하며 쓴 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매 장이 항상 날짜로 시작하고 온라인 주문건수와 실제 찾은 책수, 그리고 그 날 있었던 내용, 마지막엔 가장 중요한 손님수(책에선 실제 책을 사간 손님수만 기록한다.)와 매출액을 적어놓았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서점이면 매출이 얼마나 될지 자못 궁금한데 참고로 작가 숀 비텔은 2001년에 서점을 인수했고 그렇다면 이 일기를 쓰는 시점은 그가 책방을 운영한지 대충 10년이 조금 넘는 시점이 된다. 매출액은 파운드로 적어놓았는데 사실 들쭉날쭉하다. 정말 적을땐 십파운드대의 매출이 나오고 제법 많을땐 400파운드 가량의 매출도 나온다. 아주 거칠게 그냥 평균 200파운드를 매일의 매출로 잡으면 365*200파운드이니 연간 73000파운드의 매출이 나온다. 그리고 1파운드가 우리돈으로 대충 1600원이니 한국돈으로 이 서점은 매출은 연간116,800,000원 정도가 된다. 이게 이익이면 좋을 텐데 매출이니 아마 비텔이 버는 돈은 이돈의 대충 절반가량이 아닐까싶다. 다행이 건물은 본인 것이니, 월세는 없을 것이지만 일기에 나오듯 비텔은 꾸준히 서점에 책을 구매하여 채워넣는다. 그래서 버는 돈이 적을 듯 하다.
일기 내용은 정말 일상이다. 가장 먼저 쓰는 것은 그날 출근하는 알바생이다. 니키, 로리, 배선, 플로 등의 알바생이 나오는데 의대생부터, 지역의 학생, 지역에 잠깐 머무는 관광객부터 다양하다. 이들은 비텔과 가족같이 사는데 툭하면 비텔의 집인 서점에서 자기도 한다. 비텔은 서점의 가장 위층에 거주한다. 알바생들이 하는 일은 주로 손님들이 마구 잡이로 꽂아놓은 책의 정리, 그리고 새로 베텔이 입고한 책을 역시 정리하는 것과 아마존이나 다른 온라인으로 주문받은 책을 주문하고 정리하고 발송하는 것등이다. 손님이 아주 많지는 않은 서점이므로 비텔은 가급적 알바생들이 주말이 아닌 평일엔 따로 나오게 하려고 조절하는 편이지만 책을 보면 잘 그렇지 않기도 하다. 느낌인데 알바생들은 나오는 날의 원칙은 있지만 마음껏 마음대로 나오는 것 같기도 하며 비텔은 투덜거리면서도 그걸 허용하는 듯 하다.
서점 일기엔 다양한 손님이 나온다. 진상들이 많은데, 하루 종일 책방을 뒤집어 놓으면서도 책을 한권도 안사가는 진상들, 그리고 책을 뒤적거리며 주인이 보는 앞에서 아마존 가격과 비교하는 진상들, 적혀 있는 책값에 불만을 가진 진상들, 그리고 책을 팔러 와서 자신이 원하는 가격과 다르다 불평하는 진상들, 와서 주인에게 갑질하는 진상들, 비텔의 책들이 기부받은 것인데도 돈 받고 판다고 지레짐작하며 불만을 내놓는 진상들, 가격을 마구 후려치는 진상들 등이다. 이런 류의 진상들은 갑질문화가 발달한 한국에만 많은 줄 알았는데 유럽에도 많으니 놀라우면서도 다행이란 생각이다. 한국만 이상한건 아니란 생각이다.
서점 일기에는 주변의 다양한 이웃들도 등장한다. 비텔의 연인인 애나, 툭하면 제법 기묘한 지팡이를 깎아와 그걸 비텔에게 주고 대신 책을 살수 있는 적립금을 얻는 이교도 문신남 샌디 등이다. 샌디의 지팡이는 놀랍게도 일주일에 한개 정도 팔리는데 비텔의 서점에는 책 외에도 다양한 아이템들이 판매되고 있다. 그래서 비텔은 알바생들 혹은 애나와 더불어 주변 도시인 갤러웨이에 가서 특별한 것들을 사오기도 한다. 도무지 팔릴 것 같지 않던 스쿠터가 팔리기도 하고, 200년전 변기로 쓰이던 화분이 팔리기도 한다. 물론 모두 비텔이 사온 가격보다 비싸게 팔린다. 그려려고 사온 것이니 당연하다. 알바생들이 나와 한가한 날이면 비텔은 그들에게 가게를 맡기고 강이나 호수를 가서 자유로이 낚시를 즐기거나 다른 이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아무래도 헌책을 구매하는 일이다. 비텔의 서점이 큰 만큼 책을 정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연락이오는데 그러면 비텔은 사연을 듣고 괜찮다 싶으면 방문해 살만한 책을들 갖고 오는 편이다.
사람들은 책을 소장하던 사람이 죽거나, 이사하거나, 집을 정리할때 주로 책을 팔곤 한다. 내가 언젠가 죽으면 내 가족들도 내 책을 정리할듯 싶은데 과연 값나가는 책이 있을지 모르겠다. 비텔에 의하면 베스트 셀러나 인기 작가의 책은 소장가치가 거의 없다. 사람들은 해리포터 초판에 큰 값어치가 있을 줄 아는데 그 초판은 엄청나게 많이 팔렸고 때문에 헌책으로써 가치가 별로 없다. 그리고 시리즈나 한질로 이루어진 책들의 경우 단권도 의미가 없다. 그런 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체를 갖고 있기를 원하기에 낱권 거래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비텔은 서점 일기를 통해 아마존을 적잖게 비판한다. 거의 나오는 수준이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이 원균 욕을 하는 빈도로 잦다. 비텔이 서점을 인수한 2001년만 해도 아마존은 아직 작은 기업이었고 온라인 담당 직원을 정규로 하나 줄정도로 온라인 책 판매가 소매상에게도 괜찮은 사업이었다. 하지만 아마존이 모든걸 독점하고 책을 출판사보다도 싼 가격에 공급하자 이는 곧 하지 않기는 어려운 부업으로 전락한다. 아마존 이전 영국에는 건전한 서점 네트워크가 있었고 이들은 손님이 원하는 책을 서로간의 정보 교환을 통해 어떻게든 구해줄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젠 이걸 아마존이 대신하니 그러한 사람은 필요없어졌다. 그리고 과거엔 중고책을 보면 그것의 전체적 수량과 대충의 가격을 파악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것도 이젠 아마존이 대신하면서 그러한 사람들도 사라졌다. 아마존은 비텔의 서점도 평가하는데 실적인 좋음에서 보통, 나쁨으로 왔다갔다 한다. 주문을 제때에 찾아주지 못하면 평판이 떨어지고 나쁨까지 떨어지면 온라인 판매가 사실상 중단된다. 비텔은 이것도 관리를 해야하는데 알바들의 실수나 시스템의 문제인 경우도 많아 쉽지 않아보였다.
이런 모든 어려움에도 비텔은 서점을 운영한다. 아마도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고 본인 말로는 이 모든 어려움에도 이렇게 혼자서 사업을 해나가는게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것보다 자유롭기 때문이란다. 비텔은 책을 좋아하는 서점 주인이기도 한데 시간이 나면 책들을 읽어내고 서점 일기에서 다양한 책들을 평하기도 한다. 비텔이 하는 재밌는 사업으로는 지역의 북페이스티벌과 랜덤북클럽이 있다. 지역의 축제는 지역과 연계하여 운영하는 것인데 비텔은 적극 협조하고 관광객이 집에 머무르게 하기도 한다. 랜덤북클럽은 비텔이 고안한 것으로 일정 금액을 매달 지불하는 회원들에 한해 괜찮은 서점의 책을 매달 배송해주는 것이다. 비텔은 책의 수준을 높여 회원들이 그것을 당장 온라인에 팔하는 이득을 볼 수 있는 수준으로 책을 구성한다.
서점일기는 잔잔하면서도 제법 긴데, 재밌다. 비텔의 블랙 유머도 간간히 섞여 있고 스코틀랜드의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재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점을 운영하는 모습을 엿본다는게 가장 재밌다. 독특하면서도 읽을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