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지방의 역설 - 비만과 콜레스테롤의 주범 포화지방, 억울한 누명을 벗다
니나 타이숄스 지음, 양준상.유현진 옮김 / 시대의창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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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 영양소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다. 탄수화물은 에너지원, 단백질은 몸의 구성 재료, 지방은 에너지의 저장과 체온 보호, 몸의 구성 재료 역할을 맡는다. 그래서 3대 영양소인데 이 중 사람들이 가장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아무래도 지방일 것이다. 지금은 조금 분위기가 바뀌어 탄수화물을 먼저 피하고 단백질을 가장 선호한다. 하지만 지방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는 여전하다. 지방은 기름이기에 심혈관에 악영향을 미칠 것 같고, 무엇보다도 지방이 지방을 만들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이런 우리의 통념은 거의 반 세기를 지배한 미국의 통념에서 비롯되었다. 


1. 포화지방에서 불포화 지방의 시대로

 20세기 초반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전례 없던 심장병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18-19세기만 해도 심장병을 앓는 사람은 거의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과 그에 따른 식품, 의학계의 대처가 필요했다. 심장병이 갑작스레 늘어난 이유는 분명치 않다. 농업 혁명으로 식량 사정이 좋아져서 일 수도 있고, 늘어난 평균 수명 때문일 수도 있으며, 환경오염이나 도시생활의 스트레스나 술과 담배, 마약 같은 중독 물질의 사용 증가가 원인일 수 도 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지목한 것은 앤설 키스라는 사람이 주장한 포화지방이었다. 지방은 수소 원자로 둘러싸인 탄소 원자의 사슬로 구성된다. 사슬 내 이중결합이 하나만 있으면 단불포화 지방산이고, 이중 결합이 두 개 이상인 경우 다불포화 지방산이 된다. 이중 결합은 덜 안정적 구조라 언제라도 풀려서 다른 원자와 결합하기 쉽다. 여기에 탄소사슬이 구부러져 이웃한 사슬과 나란히 있지도 못한다. 그래서 이중 결합 분자들은 성긴 형태로 구성되어 액체상태의 기름으로 존재한다. 반면 포화지방산은 단일 결합 수소 원자로 포화되어 새원자로 결합하지 않고 직선으로 밀도 있게 있어 상온에서 고체 형태를 유지한다. 

 포화지방은 주로 동물성 지방이다. 반면 불포화 지방은 식물성 지방이다. 앤설키스는 심장병과 콜레스트롤과의 상관관계에 주목했다. 콜레스트롤은 혈관 내에서 용해되지 않고 단독으로 혈관 안팎을 드나들지 못한다. 이런 내부의 콜레스트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작은 잠수정이 지단백이다. 이 지단백이 운반하는 콜레스트롤의 종류에 따라 HDL과 LDL로 구분된다. HDL 지단백은 동맥 벽을 비롯한 인체 조직의 콜레스트롤을 청소하고 간으로 운반한다. LDL지단백은 콜레스트롤이 동맥 벽에 붙게 만든다.

 콜레스트롤은 동물성 지방을 성취하면 명백하게 증가했다. 하지만 심장병과의 상관관계는 과학적으로 연관이 미흡했는데 앤설키스와 그를 옹호하는 자들은 이를 밀어붙였다. 여기에 심장협회가 편승했고, 미디어가 가세했다. 그리고 식품업계와 의약업계도 이익을 보고 따라 붙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미국에서 1920년대 식물성 기름이 식품화하였다. 그리고 갑작스레 만병통치약으로 권장되었다. 식물성 기름의 소비 상향 곡선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증가했으며 이는 심장 질환의 증가 추세와 일치한다.

 식물성 기름은 1910년 이전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에 이르면 미국은 총 열량의 7-8%까지 상승하게 된다. 식물성 기름은 두 가지 경로로 식탁에 올랐다. 웨슨, 바즐라 같은 브랜드에서 병에 담아 판매한 시판 샐러드용 기름과 조리요 기름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마가린, 크리스코, 쿠키, 크래커, 머핀, 빵, 튀긴 과자, 즉석기품, 프림, 마요네즈 등에 상용한 고체 상태의 기름인 경화유다. 둘 다 건강상 치명적 문제가 있는데 액체 상태의 식물성 기름은 가열하면 산화물질이 나와 발암 가능성이 있고, 경화된 상태의 기름은 트랜스 지방을 함유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런 사실은 입증되지도 문제되지도 않았다. 

 식물성 기름은 액체보다는 수소화 과정을 통해 다불포화 지방산을 단단히 만든 경화유 형태로 제조 유통되었으며 그 영향은 수십년 간 이어지게 된다. 1차 대전 당시 미국 정부는 유럽에 동물성 지방은 라드를 수출하였는데 국내 동물성 지방이 모자라자 식물성 쇼토닝의 사용을 권장한다. 그 결과 나라의 요리 책에서 라드와 버터는 거의 사라지고 크리스크와 마가린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의약업계는 콜레스트롤 중 HDL보다는 LDL에 주목했다. HDL은 그 상승을 막는 약물을 개발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던 반면 LDL을 내리는 약물은 쉬웠기 때문이다. LDL의 상승을 막는 약물인 스타틴은 2011년에만 9560억 달러의 수익을 냈다. 하지만 HDL은 높은 것 보다는 낮은 것이 문제였다. HDL이 낮은 경우 높은 사람보다 오히려 심장발작의 위험이 무려 8배나 높았다. 하지만 당시 이런 것은 거의 주목되지 않았다.

 사실 반대의 결과는 많았다. 세계에는 동물성 지방을 마구 섭취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에스키모는 거의 동물성 지방만을 섭취했지만 이들은 심장질환은 커녕 이렇다할 암이나 대사 증후군, 퇴행성 질환이 전혀 없었다. 오직 전통세계를 떠나 미국식 식단에 노출된 이들만이 그러한 병에 걸렸다. 아프리카엔 마사이가 있었다. 인근엔 채식주의자인 아키쿠유족이 있었는데 이들은 골격기형, 충치, 빈형, 폐질환, 궤양, 혈액질환등의 질병이 많았다. 반면 마사이 족은 류마티스 관절염 만이 있었을 뿐 매우 건강했고 심장질환이 없었다. 여기에 마사이들은 아키쿠유보다 키는 13cm몸무가넨 10kg이나 많이 나갔다.

 그리고 멀리 갈 것도 없이 19세기 미국인들과의 비교도 가능했다. 구세계나 아시아인들과 달리 미국인들은 본격적 산업화 이전인 19세기 부터 육류 섭취가 많았다. 이는 미대륙의 광활함과 풍요로움때문이었다. 지천에 널린 게 잡아먹을 만한 동물이었다. 1909년 미 도시인 8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장 빈곤한 사람이 연간 136파운드에 육류를 먹었고, 가장 부유한 자는 200파운드에 달했다. 심지어 18세기의 흑인 노예조차 150파운드를 먹었다. 현대 미국인들은 육류 제한권장으로 고작 연간 100파운드를 먹으며 그 중 절반이 가금류인 닭이다. 건강에 좋지 않다고 알려진 적색육류의 섭취가 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그럼에도 19세기 심장병 환자는 기록상 매우 드물다. 

 당시 사람들은 냉장 트럭과 선박이 개발 되기 이전이라 신선한 과일을 접하는 것이 어려웠으며 지천에 고기가 많았던 지라 굳이 작물 재배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질 않았다. 실제 당대의 미국인은 영국인보다 육류 섭취가 두 배에 달했다.


2. 지중해 식단의 등장

 포화지방에 대한 경계로 지방을 강하게 경계하는 상황에서 지중해 식단이 등장했다. 여기엔 미국에서 활동하던 그리스계 안토니오 트로포촐라의 역할이 컸다. 그는 지중해 식단이 올리브 유를 듬뿍 사용하여 지방 함량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민들이 심혈관 질환이 낮음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에 해당 지역이 적극적으로 응했다. 이들은 남유럽식 식단이 미국에서 인기를 얻고 전 세계로 퍼진다면 올리브 유 뿐만 아니라 토마토, 감자, 과일, 채소등의 판매와 이미지 상승으로 커다란 수익이 창출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이들은 미국의 전문가들을 구슬렸다. 아름다운 지중해 지역에서 축제 같은 컨퍼런스를 개최했고, 경비를 제공했다. 그 결과 많은 미국내 과학자, 음식전문가, 기자들이 지중해식을 극찬하기 시작했다. 

 건강 전문가들은 과일과 채소 섭취 외에도 새로운 식이 방법이라 환영했다. 그리고 지중해식 식단은 기존의 미국 건강식단에 비해 맛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지중해식 식단처럼 올리브유를 샐러드와 튀김에 적극 사용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미국인의 일일단 올리브유 소비량은 1990년 당시의 3배에 달한다. 

 올리브유는 식물성 기름이기에 다불포화지방산이다. 하지만 대두유를 비롯한 다른 식물성 기름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기에 조리용으로 적합하다. 이는 장점이다. 올리브유는 혈압강하와 유방암에 예방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입증되지 않았다. 올리브유는 지중해의 강한 햇살에 적응해 색소를 지녀 안토시아닌과 플라보노이드, 폴리페놀을 함유한다. 하지만 올리브유는 통념과는 다를게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 않다. 올리브유는 17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누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대규모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야 지중해 식단에 합류한 것이다. 

 여기에 지중해 식단과 올리브유가 건강에 좋다는 증거도 사실상 부족하다. 지중해는 온화한 기후조건에 서로 의지할 대가족 제도, 시에스타 같은 건강에 좋은 조건들이 많다. 그들의 수명을 단지 음식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그들이 심장질환이 드문 것은 올리브유보다는 식단에 설탕이 적게 사용되기 때문이란 의견도 많다. 

 그럼에도 지중해식 식단은 포화지방을 거의 금지해 매우 금욕적이고 제약이 많았던 시대에 맛을 살리는 먹거리로 위안을 주었으며 지방을 먹는 것에 대해 관대한 분위기를 가져왔다. 또한 올리브유 자체는 언급한 것처럼 산패하기 쉬운 액체식물성 기름에 대한 역사적으로 검증된 좋은 대안이었다. 


3. 트랜스지방 금지의 시대

 동물성 지방의 금지 이후, 식물성 지방이 식품 업계에 공고히 자리 한다. 경화유는 저렴하면서도 다용도이기에 대형식품회사와 동네빵집까지 모두 사용하기 용이하다. 경화유는 지방 결정이 작아 반죽안에 기포가 오래 머물러 폭신한 케이크 제조가 가능하다. 경화유는 수소화를 적게하면 부드러운 형태로 폭식한 식감을 주고, 수소화를 많이 하면 단단해져 초콜릿이나 캔디의 코팅처럼 형태를 잡아주기에 적합했다. 

 과거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 푸드 업체들은 프렌치 프라이를 튀기는데 우지 같은 동물성 기름을 사용했다. 하지만 공익과학센터의 압박으로 1980년대 수지, 라드, 팜유대신 경화대두유가 프렌치 프라이 제조에 사용된다. 

 식물성 기름의 시대가 도래하며 미 대두협회는 강력한 경쟁자였던 열대성 기름을 공격한다. 주 대상은 팜유였다. 말레이시아 팜유는 미국에서 생산한 대두유보다 15%나 저렴해 큰 경쟁자였다. 이들은 열대성 기름의 지방 함량이 매우 높은 부분을 집중 공격하여 미국의 거의 모든 기업이 식품에서 열대기름 대신 대두유를 사용하게 만든다. 

 이런 시기에 프레드 쿰머로우란 사람만이 트랜스지방에 대한 7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하며 경계한다. 그는 1957년 사이언스지에 첫 논문을 발표한다. 24구의 사체를 부검한 결과 몸 전체에서 축적된 트랜스지방의 발견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트랜스지방이 완전대사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실제 트랜스지방은 인체세포의 정상적 지방산을 대체한다. 그리고 칼슘흡수를 증가시키는데 이는 석회화를 유발하여 혈관의 동맥경화를 일으킨다. 

 1997년 쿰머로우의 동료인 랜들우드는 기름을 수소화하면 트랜스 지방 외에도 50가지의 인공지방산이 생성됨을 입증했다. 이들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당연히 미지수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인의 1980년대 트랜스지방의 섭취는 하루 12그램에 달했다. 과거 지중해 식단에 관여했던 하버드의 역학자 월터 필렛은 트랜스지방이 매년 3만명의 심장질환을 야기한다고 기고했다. 이는 과학적 근거가 없었던 것이었지만 세계적으로 충격을 주었다.

 가장 먼저 움직은 것은 유럽의 덴마크였다. 이들은 식물성 지방에 대한 경고 신호를 꾸준히 감지하고 있었는데 긴급회의를 열고 세계최초로 트랜스 지방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분위기는 전세계적으로 진행되었다. 미 식품 협회는 식물성 지방의 안정성을 알리고자 대규모 연구를 학자 주드에게 의뢰했다. 하지만 연구결과는 당연하게도 식물성 지방의 위해가 입증되는 결과로 나왔다. 결국 미국의 분위기도 반전되어 2006년 1월 1일부터 모든 가공식품의 영양 성분표에 트랜스 지방 함량 표기가 의무화되었다. 

 규정 발표 날 시중 경화유 포함 제품은 무려 42720종이었다. 크래커는 100%, 쿠키85%, 베이킹 믹스는 75%, 칩 모양 스택은 70%, 마가린은 65%, 파이와 초콜릿 칩은 65%가 경화유를 포함하고 있었다. 식품 업계는 편리하고 가공이 편한 고형지방에 익숙해져 있었고 이것이 없으면 가공식품의 생산이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여기에 미 기업은 좋은 대체재인 팜유도 거부한 상황이었고, 동물성 지방은 오래전에 버렸다. 

 업계가 찾은 답은 에스테르 교환 방식이었다. 모든 지방산 사슬은 세 개씩 한 묶음인데 글리세롤이라는 분자가 이 셋을 하나로 결합시켜 삼지창 모양을 만들고 이것을 트리글리세라이드라 한다. 트리글리세라이드는 용해되지 않고 혈액에 존재하는데 그로 인해 심혈관 질환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물질이다. 에스테르 교환 방식은 삼지창 분자의 순서를 바꾸는 것으로 수 많은 새로운 트리글리세라이드를 생성하나 트랜스지방은 아니기에 법적 문제가 되질 않는다. 현재 이 방식이 트랜스지방의 퇴출 이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초기에 트랜스지방이 그랬던 것처럼 이 것들은 인체에 대한 위해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트랜스지방은 퇴출되었지만 액상 식물성 기름은 그대로 사용된다. 식물성 기름의 리놀렌산은 분해되면서 활성산소, 트리글리세라이드, 기타 산화부산물을 배출한다. 산화부산물은 1970년대에 주목받았다. 그 중 하나인 알데히드는 높은 화학적 반응성으로 조기 세포사망을 일으키고 유전자를 손상하며 기본세포기능을 저하시켰다. 다양한 식물성 기름은 튀김에 사용하는 온도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도 산화부산물을 발생한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해결책은 올리브 기름의 사용과 동물성 지방으로의 회귀일지도 모른다고 제안한다. 물론 동물성 지방의 사용은 온실가스를 마구 배출하는 가축의 대규모 사육과 윤리적 문제를 동반한다. 하지만 저자는 건강상의 문제로 초래하는 비용과 그 비용은 서로 상충할만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책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친 지방에 대한 편견과 그 근원과 문제점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단순 건강책이라 생각했는데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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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 김누리 교수의 대한민국 교육혁명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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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생각보다 병들어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소득이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국인은 겨우 24%만이 그렇다고 대답했고, 59%는 더 벌어져야 한다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공정한 운동장에서 능력에 따라 배분하는게 옳다는 능력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답니다. 또한 자녀에게 관용을 가르쳐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겨우 45.3%가 찬성했는데 이는 조사 52개국 중 당연히 5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김누리 교수는 한국이 이런 정신병에 빠진 야만의 트라이 앵글로 경쟁-능력주의-공정을 말한다. 한국인은 이런 야만을 내면화시켜 약탈적 자본주의와 천민 자본주이에 허덕여 고통받으면서도 그것을 놀랍게도 자신의 무능과 노력 부족으로 치환시켜 내면화해 저항조차 하지 않는다. 이는 에리히 프롬이 말한 정상성의 병리성 현상이다. 

 한국은 경쟁이 상당히 치열한데 이렇게 된 이유로 저자는 3가지 정도를 꼽는다. 우선 일제국주의에서 시작한 사회적 다윈주의와 이후 미국의 시장 자유주의의 혼합이다. 둘다 무한한 경쟁을 옹호하는 체제로 이 둘은 한국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둘째는 사회 자체가 너무 불평등해 경쟁이 격렬하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자산을 국민소득으로 나눈 값을 피케티 지수라 하는데 이 값이 높을 수록 자본이 유리하고 노동이 불리한 세습자본주의 사회다. 한국은 이 수치가 무려 9인데 프랑스 혁명 당시 불평등했던 프랑스의 수치가 7.2에 불과하다. 마지막은 한국이 강력한 평등지향적 사회라는 점이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기존 기득권 세력이 완벽히 몰락하였는데 그렇다보니 강력한 평등지향과 경쟁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의 병리에 저항해야하는 사회의 주요 조직 중 하나가 대학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은 그런 일을 하기는 커녕 자본의 시녀로 완벽히 종속되어 있다. 물론 대학이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독재정권까진 대학은 권력에 저항했었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 대학은 지적 세계의 거주자가 아니라 시장의 소비재로 전락했다. 진리 탐구는 사라지고 기능적 정보만 넘쳐난다. 학생은 취업을 위해 소위 스펙 쌓기에만 열중한다. 그래서 지금의 대학은 학생회가 서지도 않고 온갖 사회 비리와 국제 문제가 터져도 조용하기만 하며 대자보하나 붙질 않는다. 

 게다가 언젠가부터 신문사들이 감히 대학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적 탐구가 아닌 딱 재별이 대학에 원하는 기준으로 대학을 평가한다. 취업률이 얼마나 높냐, 영어 수업은 얼마나 뒤느냐 등의 식이다. 거기다가 자본 권력은 대학자체를 구매하기도 한다. 삼성은 성균관대를, 두산은 중앙대를 매입했다. 그러다보니 교수마저 자본의 하수인으로 전락했고 학생은 자본의 도구로 기능하면서 그것이 어느 순간 정체성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자본은 직접 대학을 인수화하거나 대학 평가로 이데올로기를 장악하면서 대학을 탈정치화해버렸다.  

 특히나 한국은 대학의 공영성이 매우 낮다. 대부분의 대학이 사립대학이며, 그 사립대학 마저도 공공의 재정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다. OECD국가들의 경우 대학재정의 90%이상을 정부재원으로 충당받아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자유로운 학풍을 추구할 수 있지만 한국의 경우 고작 15%에 불과하다. 자본의 노예가 될 수 없으며 학생에게 막대한 등록금을 부과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는 과거 이승만의 잘못이 크다. 그는 북한에 맞서 토지 개혁을 단행한다. 유상매수, 유상분배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지주 자본들이 산업자본으로 전환하였다. 다만 학교설립을 하면 땅의 소유권을 유지하고, 다양한 특혜를 제공하였는데 그러다보니 한국이 이처럼 사립학교가 난무하게 된 것이다. 이는 각종 사학 비리와 교육의 자본 종속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은 지나치게 공정에 몰두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각종 학벌과 인맥의 부작용을 경험했기에 그에 대한 반발이라 생각된다. 오죽하면 지난 대선의 화두가 공정이었을까. 하지만 공정을 불공정과 특권을 비난하기도 하지만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공정하기만 하면 그 게임의 패자에겐 막대한 불평등과 차별이 부여되도 괜찮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공정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공정은 사실 정의 구현의 수단이자 과정에 불과하다. 공정은 규칙이지만 정의는 원칙이며, 공정은 상식이나 정의는 철학이고, 공정은 수단이지만 정의는 목적이며, 공정은 시장논리이지만, 정의는 사회의 논리다. 지금 한국에서 이런 기만적 공정을 가장 정당화하는 분야가 교육이다. 공정을 명분으로 기계가 채점하는 수능은 자유와 개성, 사유를 말살한다. 그리고 상대평가로 인해 학생은 경쟁을 하게 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대와 공감을 잃고 인간성을 상실한다. 이처럼 경쟁교육은 한국인을 잠재적 파시스트로 만들고, 능력주의는 헬조선으로 만들었으며, 공정주의는 불평등과 차별의 사회를 고착화한다. 

 저자는 대안으로 독일의 사례를 제시한다. 독일은 2차 대전의 전범국이지만 68혁명 이후, 교육혁명을 이뤄내며 진보적, 도덕적 국가로 자리매김한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2015년 시리아 난민을 무려 117만이나 수용한다. 이는 독일의 경제가 튼튼한 덕분도 있지만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관용의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를 시민이 수용하지 않는다면 정치권은 재집권이 어렵기에 철학이 있어도 시행하질 못한다. 독일은 실제 2017-2019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국가로 선정되었으며 2015년 이후 무려 400만의 난민을 수용했는데 이는 전국민의 5%에 해당하는 수치다. 

 독일은 과도한 학습도 노동으로 치부하여 과도한 학습 노동을 법으로 규제한다. 대개 초1-2학년은 하루 30분, 초 3-4는 40분, 5-6학년은 92분, 7-10학년은 120분 이하다. 시험도 1주일에 2과목 이상을 실시 할 수 없으며, 하루에 1과목 이상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대부분의 학교가 1시에서 3시면 수업이 끝나고 오후에 학생들은 영화나, 연극, 공연, 연애 등 철저한 자유시간을 보낸다. 

 독일의 대학 시험은 아비투어는 90%이상의 학생이 합격한다. 독일은 대학 희망 3원칙이 있는데 학생이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 원하는 시기의 진학이다. 물론 독일도 국문과, 법대, 의대 등 지원희망을 많은 학과가 있다. 국문과가 인기 있는게 특이한데 독일은 방송, 출판, 언론 등 글쓰기와 관련한 지적 영역이 넓어 이 분야의 직업이 폭넓기 때문이다. 의대의 경우 인기가 많아 대부분 대기 시간이 7년이며 이 정도를 기다리면 거의 대부분이 입학이 허용된다. 그래서 독일엔 어린 대학생이 적은 편이다. 또한 놀랍게도 학과 대기시간이 길수록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높다. 

 독일이 이렇게 된 것은 68혁명 때문이다.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독일 역시 전후 자신을 철저히 반성하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진 못했다. 상당한 나치협력자들이 정재계에 가득했다. 하지만 68혁명이후 사회 개혁을 이뤄내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당시 독일은 긴급조치법으로 68혁명을 주도하는 대학생을 대학에 가두었는데, 그들의 영역이 대학내로 제한되며 역설적으로 대학 개혁부터 시작해 사회개혁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독일에 68세대가 있다면 한국엔 86세대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독재와는 잘 싸웠을지 몰라도, 이후 제대로 된 사회를 구축하지 못했다. 한국의 86세대는 군부독재하의 비정상사회를 민주정부하의 비정상사회로 바꿨을 뿐이다. 이들은 정치적 정당성을 가진 새로운 기득권이 되어 많은 영역에서 비정상성을 심화시켰다. 86세대는 결국 한국교육의 경쟁주의, 능력주의 우열사고, 권위주의를 척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신자유주의 식으로 왜곡하고 악화시켰다. 

 저자는 교육개혁을 위해 교사의 역할을 강조한다. 실제 독일의 교육개혁과 사회개혁에도 교사의 역할이 지대했다. 독일의 연방의회의 경우 13-15%의 의원이 교사출신이다. 또한 OECD 평균 교사 출신 의원도 10% 정도이며 핀란드가 20%로 최고다. 하지만 한국은 사실상 0명이며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에 대한 사회적 주목이 이뤄지며 이번 총선에서 간신히 2명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한국의 교사는 정치적 권한이 모두 사멸된 상태다. 이는 교사의 정치적 중립의무때문이다. 이승만정권은 정권을 위해 교사를 마구 정치운동에 강제 동원하였는데 교사의 정치 중립 의무는 이런 행위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생겨났다. 하지만 박정희가 이것을 악용하면서 정치적 권리를 박탈한다. 저자는 교사는 지적으로 훌륭하고 직업적으로 높은 윤리성을 요구 받는 집단이기에 교사는 이대로 정치적 금치산자로 묶는 것은 민주주의의 퇴행이자 정치영역에서 사회적 손실이라 주장한다.

 저자는 대학의 개혁을 주장한다. 대학 개혁 방안으로 국가 차원의 대학 재정지원을 주장한다. 그리고 대학 차원의 대학 개혁도 요구하며 교수가 대학개혁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본다. 대입시험의 폐지, 대학서열의 폐지, 대학등록금 폐지도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 교육의 대전환도 주장한다. 능력주의에서 존엄주의로, 성장을 위한 교육에서 성숙을 위한 교육으로, 경쟁교육에서 연대교육으로, 지식교육에서 사유교육으로의 전환이다. 

 저자가 보기에 현대 한국의 과제는 인간 존엄성 회복과 사회 정의의 실현이다. 그리고 존엄교육은 능력주의 교육을 대체하는 것으로 자신이 얼마나 존귀하고, 타인 역시 얼마나 존귀한지를 인식하게 하는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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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빅테크로 흐른다 - 가치투자 3.0 세대를 위한 명쾌한 테크주 투자법
애덤 시셀 지음, 고영태 옮김, 홍영표 감수 / 액티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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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경제는 바야흐로 빅테크의 시대다. 2021년 세계 10대 기업 중 8개가 테크 기업이다. 세계는 4차 산업혁명으로 치닫고 있으며 디지털화는 점점 강력해 질 것이기에 지금이 시작이라는 이야기도 많다. 테크기업들은 기존 기업에 비해 몇 가지 특징을 지니는데 일단 유형의 물질 자산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원가 압박 및 재고, 도난에 시달리지 않으며 높은 수익을 얻는다. 또 이 높은 수익을 경쟁력 유지와 강화를 위해 연구 개발과 마케팅에 상당한 돈을 쓴다는 점이다. 전통 기업들은 브랜드 및 기술 경쟁력이 이미 상당 부분 확보되어 있기에 이런 부분에 아주 많은 돈을 쓰지 않으나 테크 기업은 그렇지 않다. 

 책은 이러한 테크 기업에 우리의 투자가 향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새로운 가치 투자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가치 투자의 변천을 살핀다. 가치 투자의 첫 형태인 1.0은 벤자민 그레이엄이 만들었다. 그는 대공황 시기에 주식 시장을 경험했기에 안정성을 중시했다. 그의 가치투자 1.0은 안전마진과 미스터 마켓으로 대표된다. 안전마진은 주가가 기업의 가치보다 낮을 때 매수하라는 것이다. 그레이엄의 시기에는 기업이 가진 자산과 총 가치보다 주가가 오히려 낮은 저평가 기업이 많았다. 그리고 미스터 마켓은 시장을 친구처럼 대하며 그가 공포에 질려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주식을 팔 때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이런 가치 투자 1.0은 상당히 괜찮은 투자 방법이지만 여러 사람이 이 방식을 따를 수록 결국 저평가 기업이 사라진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저평가 기업의 주가가 회복되면 다시 저평가 기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새로 구성해야한다는 단기전략이라는 점이 한계다.

 가치 투자 2.0은 워렌 버핏으로 대표된다. 버핏은 윌레엄스의 영향을 받았다. 윌리엄스는 기업의 가치는 현재가치로 할인된 미래 이익의 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누구도 기업의 미래를 알 수 없기에 현재가치로의 할인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기업의 당기 주당 순이익인 PER 대비 현재 주가를 대략적인 지표로 삼아 주식이 투자하기 좋은 가격인지 측정했다. 

 그리고 버핏은 해당 기업의 경쟁 우위를 살폈다. 모든 기업은 일종의 경제적 성으로 시장에서 사방에서 공격을 받는 취약한 상태다. 하지만 일부 기업은 낮은 가격과 지속적 품질 개발로 해자를 구축할 수 있는데 이것이 지속되면 강력한 브랜드를 갖게 된다. 그리고 브랜드는 20세기 후반 미디어 생태계에서 파생한다. 당시 미국이 방송국은 3개 뿐이었는데 이들에게 광고료라는 비싼 통행료를 내고 소비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업이 브랜드라는 경제적 해자를 가질 수 있었다. 

 버핏의 이런 가치투자 2.0방식은 20세기 후반에 흔들리게 되었다. 우선 케이블 티비가 등장하면서 유료교량 통행세는 사실상 해체되기 시작한다. 더불어 디지털 시대는 인터넷으로 인해 맞춤형 광고가 중요해졌다. 그리고 버핏의 해자는 20세기 산업이 단순화했기에 가능했다. 당시만 해도 새로운 기업이 특정산업에서 기존에 해자를 높이 쌓아올린 기업과 경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기존 기업은 강력한 브랜드에 대량생산 및 대량투자로 낮은 원가로 생산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엔 이런 것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래서 버핏도 사실상 가치투자 3.0으로 갈아탔으며 여기엔 애플에 대한 투자가 있었다.

 가치 투자 3.0은 이런 테크기업의 가치를 알아보는 방법이다. 저자는 BMP방식을 제안한다. B는 비즈니스로 해당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낮아야 하고, 크고 성장하는 산업 섹터에 속해야하며,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를 가져야 한다. M은 경영진으로 그들이 소유주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가이며, 비즈니스 가치를 높이는 핵심 요인을 아는가이다. 만약 경영진이 기업의 가치는 높여 자신이 보유한 스톡옵션등을 통해 자산을 늘리지 않고, 연봉에 관심이 많거나 주가 상승시 보유한 기업의 주식을 팔아치운다면 이는 부적합 신호다. 또한 ,구글의 경우처럼 기업의 이익보다는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다양한 실험적 사업에 몰두한다면 그도 좋지 않은 신호다. 마지막은 P로 주식의 가격이다. 저자는 PER20이하를 제시하며 이는 주식 수익률 5%를 의미한다. 

 테크기업은 네트워크 효과가 중요하다. 이는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그 경제적 이익이 제곱으로 비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비롯한 테크 기업들의 도구는 사용자의 수로 인해 선순환 효과를 낳는다. 테크기업이 누리는 네트워크 효과는 사실 인터넷 망에 의존한다. 하지만 테크기업들은 그 최고 수혜자이면서도 이 망의 유지와 구축에 거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테크기업은 전통적 PER로 살펴볼 때 주가가 상당히 고평가 되었다. 웬만한 테크 기업들은 미 주식시장의 활황을 감안해도 전통기업에 비해 50-60정도 가까이 되는 PER을 보인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이는 회계상의 실수에 불과하다. 전통기업은 언급한 것처럼 연구개발비와 마케팅비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테크 기업은 수익의 상당 부분을 이에 할애한다. 이로 인해 착시가 벌어진다. 전통기업의 투자는 대개 공장 설비 투자인데 전통적 재무제표는 이를 감가상각 처리하여 10년 이상의 긴 시간을 두고 조금씩 감가한다. 때문에 대규모 투자에도 재무제표상 이익에 여전히 크게 남아있다. 하지만 테크기업의 개발비와 마케팅비는 바로 비용으로 처리된다. 만약에 이러한 부분을 그렇게 처리하지 않고 보정한다면 테크기업의 고평가 PER은 놀랍게도 현재 전통기업의 수준과 비슷해진다. 투자자들은 이를 이미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향후 관련 법률과 변동성으로 인해 테크 기업들이 위기에 처한다는 것을 과잉경계로 본다. 만약 독점 법과 규제 등에 의해 테크기업이 쪼개져도 해당부분은 건실하게 남아 오히려 더욱 주가가 성장할 것이라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구글 알파벳에서 유튜브만이 쪼개 나온다면 얼마나 커질지 상상이 안간다. 또한 정부의 규제 역시 쉽지 않다고 본다. 이미 디지털 화의 상당부분의 진행으로 공공기관과 민간영역의 상당부분이 테크 기업의 도구에 의존한다. 여기엔 심리적 물리적 비용이 모두 들어가는데 물리적으로 이들의 교체엔 많은 비용이 필요하며 이를 활용하는 능력이 심리적 전환비용 역시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ms가 상당한 투자로 빙을 만들었어도 소비자들은 이미 구글에 익숙해 바뀌지 않는게 바로 그러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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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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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나라 국회의원은 50대 이상의 남성, 학력은 sky, 직업은 법조인, 언론인, 기업인으로 대표 된다. 국회의원이 전 국민을 고루 대표해야 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연령, 출신 학교, 성별, 직업 측면에서 상당히 편향적 분포다. 그래서 모든 직군과 연령에 고루 국회 의원을 배당하자는 추첨 민주주의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런데 가끔 한국의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다뤄지는 직업도 상당히 편향적이란 생각을 한다. 이런 엔터 산업의 직업군도 놀랍게도 국회의원의 경우와 상당히 비슷하다. 의사, 검사, 변호사, 기업인, 언론인 정도가 가장 많이 다뤄질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병폐 능력주의와 관련이 깊다 생각한다. 평범한 회사를 다니고, 장사를 하는 사람도 정작 자신의 이야기보단 저 먼 소위 성공한 권력층의 삶에 관심이 깊다. 관련 연구나 통계는 본 적이 없지만 누군가 지난 30년 정도를 가지고 연구를 한다면 반드시 이렇게 나올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그리고 경찰관이나 소방관, 군인 등의 직업도 어느 정도 특수성과 소재성으로 다뤄진다. 그런데 유독 교사 직업은 외면 받는다. 물론 학생과 학교라는 공간과 소재는 충분히 다뤄진다. 전 국민이 경험 한 것이고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충분한 아픔과 비리 등을 느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사 자체가 중심이 되어 진행된 것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유일하게 떠오르는게 '선생 김봉두' 정도다.

 책 '지켜야 할 세계'는 교사가 책의 주인공이란 점에서 독특하다. 읽어보니 여기서 지켜야 할 세계는 두 개 정도다. 교사로서 갖고 있는 자신의 교육철학,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삶이다. 주인공은 윤옥이란 중등 국어 교사로 정년 퇴임을 앞에 두고 있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아들 상현이 있고 어느 겨울날 눈길을 거닐다 미끄러 넘어져 머리를 다치고 뇌출혈일 일어난다. 하지만 추운 겨울 길가 행인이 적어 오래도록 방치되다 발견되어 병원에서 일년 간 누워있다 사망한다. 이런 결론 부분으로 책은 시작을 하고 윤옥의 삶으로 들어간다. 

 윤옥은 동생 지호가 있다. 아빠는 공장에서 사고로 사망했고, 엄마가 방직공장에 나가 생계를 유지한다. 동생 지호가 중증 뇌병변이기에 윤옥은 학교를 나가지 못한다. 엄마가 출근한 사이 동생을 돌봐야 했던 것이다. 그들은 인천의 한 산동네에 사는데 수림상회를 운영하는 수림 엄마가 이들과 친근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결심을 한다. 지호를 한 목사에게 보내버린 것이다. 목사는 수상했으나 지호를 아들로 생각하겠다고 하며 지호를 들쳐 업고 나간다. 제발 사라지기를 바라던 동생이 그리 없어지니 윤옥은 서글펐다. 그리고 아마 착각이었겠지만 동생 지호는 헤이지며 '안녕 누나'란 말을 남긴다.

 그렇게 윤옥을 학교에 가게 되고 성적이 우수해 서울의 사범대로 진학한다. 당시만 해도 교사는 그리 선호하는 직업이 아니었기에 사범대 출신들도 대개 기업이나 공기업을 가거나 고시를 보곤했다. 하지만 윤옥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독재정권이기에 그들에 저항하던 정훈을 만난다. 다. 윤옥은 정훈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게 발령이 난 윤옥은 학교의 현실에 저항한다. 학교는 소위 임원학생들에게 발전기금을 걷고 있었다. 윤옥은 이를 거부하고 이로 인해 학생 주임, 교감, 교장과 갈등 관계에 서게 된다. 그러면서 정훈을 다시 만나 인근의 민들레 야학에 나가게 되고 학생 수연과 관계를 맺게 된다. 수연은 달랐던 윤옥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 당시 전교조가 들어섰다. 정훈은 가입을 권유했고, 학교에 실망하던 윤옥은 가입하고 파면된다. 윤옥과 수연으로 인해 곤란을 겪던 학생 주임은 수연을 마구 잡이로 폭행하고 자신을 압박하던 교감의 자리도 뒤집어 버린다. 

 이런 와중에 정훈의 민들레 야학도 정권의 폭력에 문을 닫게 된다. 정훈은 유학을 선택하고, 윤옥에 서점을 차릴 자금을 만들어준다. 윤옥은 서점에 전념하고, 정훈을 믿는다. 하지만 정훈은 수연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임신시키고는 그 사실도 모른 체 유학을 떠나 버린다. 그래서 윤옥은 결혼도 하지 않은체 상훈이란 아들을 갖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 윤옥을 복직하고 정훈도 돌아온다. 돌아온 정훈은 미국물을 잔뜩 먹어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를 언급하던 좌파적 성향을 버리고 소위 수요자 중심교육 따위의 우파 성향을 띠며 돌아온다. 그는 성공하여 교육감이 되지만 장학사를 임명하던 과정에서의 비리가 드러나 위기에 몰린다.

 정년을 앞둔 윤옥은 수림 아줌마의 부고를 듣는다. 엄마는 윤옥이 떠난 후 인천 산동네에서 수림엄마와 같이 수림 상회를 운영하였는데 그런 엄마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엄마는 한 다큐 방송에서 오래전 지호를 데려간 목사를 보았고, 그는 다른 이름으로 강원도 원주가 아닌 제주도에서 지호 같은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엄마는 제주로 향해 그를 보았고, 그는 지호가 아닌 아이를 지호라 말하며 엄마에게 소개한다. 그로써 엄마는 아들 지호가 이런 사람 밑에서 고통 받다 오래전에 죽었음을 확신하게 되다. 윤옥은 엄마의 그런 사실을 알게 되고 제주도로 향한다. 

 책을 보면서 한 사람의 교육자로써 누나이자 딸로써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로써 지켜야할 세계가 중첩되고 기승전결을 일으키며 하나로 만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런 장면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준다. 책은 이런 장치가 잘 되어 있었고, 그 소재로 한국 사회의 아픔인 교육 문제와 장애인 가족 문제를 다뤄 그것을 더욱 강화한 듯 하다. 

 저자는 작년 서이초 사건을 보며 그것이 이 책을 펴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과거 교사들은 입시경쟁에 시달리던 학생이 자살하여 모였지만 이젠 폭압적인 시장 교육과 시민성이 없는 학부모, 학생으로 인해 자살한 교사로 모이게 되었다. 이 표현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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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착각 - 뇌는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발명하는가
그레고리 번스 지음, 홍우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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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매우 당연 시 여기지만, 생물의 역사를 바라본다면, 그리고 지금 개발하고 있는 인공지능을 본다면 자의식 관념은 생각보다 얻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생물이 나라는 관념을 진화시킨 것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라는 관념으로 자신을 외부와 구분하여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생존기계인 신체를 내적으로 보호하고 존속 시키는고자 하는 매커니즘을 갖는 것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책 '나라는 착각'은 이러한 나라는 도구에 대한 논의다. 나의 시점은 과거와 현재, 미래로 나뉜다. 그리고 인간 정도의 고등 생물은 거의 유일하게 이 세 가지를 매끄럽게 연결하며 통일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실제로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와 천양지차다. 그리고 놀랍게도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를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사실상 왜곡해서 기억한다. 미래의 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과거의 나의 경험을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여 대비한다. 그리고 순간 순간 지나가는 현재의 나는 사실상 순간을 대응하기 위한 망상에 가깝다. 하지만 과거를 종합해 현재를 구성해 미래를 대비하는 순간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계속 하고 있다.

 과거는 사실상 개인에게 정체성의 단단한 기반이 된다. 인간은 과거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않는다. 과거는 사실상 무수한 파편에 불과한데 인간의 뇌는 이러한 파편들에 의미를 부여해 현재의 자아로 이어지는 서사 도구를 만든다. 그리고 이 지난 일을 토대로 평가하여 미래를 예측하는데 그것이 미래의 자아라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뇌는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로 매끄럽게 연결하여 인식한다.

  이처럼 당연한 일을 쉽지 않다. 그래서 인간의 뇌가 개발한 도구가 바로 이야기다. 이야기는 일련의 사건을 표현하는 매우 효율적 방법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당연히 있었던 모든 일을 말하지 않으며 시간 순서상 인과가 있는 중요한 것들만 엮은 것이다. 때문에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을 압축하여 기억하게 만드는 매우 효율적 도구가 된다. 그래서 서사 구조를 제대로 갖춘 이야기는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고 왜 일어났는지 설명한다. 인간은 이야기를 이용하여 우리 주변의 세계와 우리 자신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를 이해하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도구는 결국 기억이다. 그래서 책은 기억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룬다. 기억은 과거의 자아의 근원인데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내부적 근원과 외부적 근원이다. 내부적 근원은 우리의 기억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외부적 근원은 외부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이야기나 사진, 영화, 오디오, 문자 매체를 포함한 기록, 타인의 기억 등이다. 

 인간은 이런 기억으로 자신을 구성하는데 기억엔 당연히 망각과 일부만의 기록으로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인간의 뇌는 이런 빈틈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내부적, 외부적 근원을 통해 메우려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의 정확도는 더욱 떨어지는데 인간은 자신의 기억을 더욱 믿으려는 경향을 갖게 된다. 부정확한 기억은 고정되기 보다는 계속 왜곡되어 우리 뇌에 깊이 새겨진다. 기억은 사각지대가 있는데 뇌는 시뮬레이션을 통하여 없는 것, 놓친 것을 채워 넣는다. 

 결국 과거의 기억은 미래를 대비하는 현재의 나를 구성하기에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특히 어린 시절이 그렇다. 인간은 잘 기억하기 위해 서사를 형성하며, 인간이 형성하는 서사의 구조에는 바로 어린 시절 부모와 주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중대하게 원천으로 작용한다. 서사를 위해 뇌는 기억을 서로 다른 유형으로 분리하여 처리한다. 비선언적 체계는 언어나 라벨링이 필요 없는 기억으로 자전거 타기, 악기 연주, 운동 기억이 그렇다. 매우 다양한 형태로 두뇌의 여러 곳에 기억된다. 선언적 체계는 사실과 사건에 관한 지식으로 뇌 측두엽 해마에 의존한다. 이들은 사실지식와 의미지식으로 나뉜다. 

 뇌는 기억을 하기 위해 경험을 일시적으로 즉각 기억하는 암호화를 한다. 이는 일시적인 단기기억으로 이것이 오래지속되려면 결국 장기 저장 시스템으로 이동해야 한다. 통합은 기억을 장기 저장 시스템으로 옮기는 과정으로 몇 분이나 몇 시간 혹은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잠은 통합이 일어나는 과정이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억은 오직 통합 후에만 가능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매우 중요하지만 뇌의 미성숙으로 인해 잘 남지 않는다. 기억에 중요한 해마와 감정적 과정을 담당하는 뇌 구조물의 연결은 가장 먼저 성숙하는데 그 시점이 5세 정도다. 때문에 대부분의 인간은 5세 이전의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물론 두 살이 되면 해마시스템이 연결되고 죽음과 같이 높은 각성 상태를 일으키는 사건이 뇌에 저장되기에 충격적 사건은 기억에 남긴 한다. 그래서 청소년기가 되어도 2.5세 정도까지는 대략 기억이 가능하다. 하지만 유년기의 기억은 결국 나이가 들면서 오래되어 서서히 의미를 잃어 사라지게 된다. 

 엥겔은 인간의 서사 발달을 연구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먼저 2-3세 아이들은 확장된 자아를 갖는다. 이들은 어느 시점에 자신이 과거를 갖고 있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과거와 현재의 자아를 연결하려면 정신적 시간 여행이 가능한 특별한 인지적 하드웨어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인간만의 특징이다.

 3세가 되면 아이들은 타인, 특히 가족 구성원에게 일어나는 동시 발생적인 사건을 자기 삶에 끼워 넣는다. 가족과 이갸기하며 직접 경험 외에도 공유지식을 기반으로 과거 정보를 흡수한다.

 3-5세가 되면 더욱 확장되어 친구의 이야기도 서사에 포함한다. 또래 아이들은 재미 있다고 여기는 사건에 반응하고 무엇이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빠르게 익힌다. 경험한 이야기를 눈으로 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나 다른 사람의 눈에서 설명을 아직 불가능하다.

 5-9세가 되면 이야기의 레퍼토리가 늘어난다. 어느 이야기가 적합한지 피드백을 일으키고 부모와 또래에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 시점이 되며 아동은 바야흐로 놀라운 이야기꾼이 된다. 이 때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은 채로 개인적 세부 사항 회상도 가능하다.

 9세에서 사춘기가 되면 안정화가 특징이다. 정체성의 근간을 형성하는 모형이 잡혀감에 따라 이야기의 레퍼토리가 점차 간소화한다. 현실을 알게 되고 받아들이는 이야기의 범위가 늘며 편집을 학습한다. 전제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배우게 되며 이제 사건과 기억의 조각들은 논리적인 판든을 거쳐 서사 구조에 녹아들게 된다. 

 이렇게 서사 구조가 개인에게 형성되면 이는 자아의 형성과 연결된다.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말하는 이야기의 토대가 되며 초기 이야기는 뒤 따르는 모든 이야기의 모형을 형성하므로 이 때의 이야기는 새로운 정보를 인식하는데 가이드이자 방파제가 된다. 다가오는 사건의 중요성은 그 사건의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 사건이 진행 중인 서사에 얼마나 잘 맞느냐에 따라 평가된다. 그래서 개인은 직면하는 사건이 안 맞는 이야기인 경우 이야기 자체를 왜곡하여 바꾸거나 아예 사건을 포기한다. 

 인간은 생존 기계로서 항상 에너지를 아끼고 고효율로 진화했다. 그래서 인간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으며 모든 것에 주목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뇌에는 모든 사건의 중요한 일부를 인과로 엮는 서사가 있다. 이야기는 언급한 것처럼 중요한 것을 의미 있게 인과로 엮기에 고효율적이다. 뇌는 어쩌며 효율적 저장을 위한 기저 함수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사용한 압축 표현이 스키마다. 스키마는 기존의 정보를 회상하고 새로운 사건을 인코딩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스키마가 한 번 형성되며 우리 뇌는 그 이후로 보고, 듣는 정보를 스키마와 일치하도록 편향한다. 그래서 새로 입력된 정보가 스키마의 일치하지 않으며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거나 기존의 모형과 가장 잘 맞도록 기억을 바꿀 수도 있다. 스키마와 서사의 역할을 매우 비슷해 보인다.

 인간은 효율적으로 기억하기에 기억은 연속적이지 않고 사건 경계에 의해 정의된다. 실험 결과 피실험자가 이동하거나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주의가 필요하지 않는, 즉 사건 경계가 없는 경우이므로 그 반대의 경우에 비해 5배나 기억이 5배나 압축되었다. 즉, 신경 쓸만한 사건이 5분 간 빈발하며 인간의 기억은 5분 정도를 거의 기억하나, 그냥 무의미 하게 걷거나 일상적인 행위를 하면 5분 중 그 행위를 1분 정도만 기억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어떤 도전적 프로젝트를 동료와 의견충돌을 거치며 협의하며 해결해나간 2시간은 실제 2시간이지만 그냥 가벼운 산책 길을 걸은 기억은 2시간이 아니다. 아마 20분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뇌는 생존을 위해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지금의 감각 기관에 들어오는 정보를 계산하여 미래를 꾸준히 예측한다. 이런 사후 확률의 계산에는 과거 경험한 사전 확률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뇌는 기억의 한계로 모든 사전 확률을 갖고 있지 않으며 인식 판단에 따라 몇 가지 확률만 고려하여 판단한다. 그리고 이는 매우 효율적이다. 그리고 인간의 뇌는 마땅한 사전 확률이 없는 경우 무언가를 잘못 판단하는 인지 오류가 생긴다. 이런 해석을 오류를 경험하면 인간의 뇌는 이 경험을 활용하여 외부 세계에 대한 기존의 믿음을 평가하고 감각 입력의 기준을 갱신하여 올바른 사후 예측이 가능하도록 대비하게 된다. 

 인간의 자아 관념의 물질적 근거는 뇌의 중앙선을 따라 이어지는 피질 스트림의 활성화다. 이 부분은 물리적 감각을 처리하는 감각 시스템과 기억 상징적 표현에 의존하는 더 추상적인 표현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배열된다고 여겨진다. 이 피질스트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항상 활성화되어 있다. 그리고 자아를 구성하는 모든 시스템을 결합하기 위해 협력한다. 피질스트림은 외부 활동에 집중하면 감소하는데 이 과정이 몰입이다. 즉, 몰입하면 자아감은 상실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우린 그러한 경험을 한다. 

 비인격화 현상은 자아와 관련하는 또 다른 중요한 도구 중 하나다. 이는 자신의 생각, 감정, 감각, 몸행동에 대해 비현실적이거나 분리되었거나 외부 관찰자가 되는 것 같은 경험이다. 매년 전체 인구의 1/5정도가 이런 비인격화 증상을 겪는다. 생각보다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빈도이기에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런 해리 증상을 겪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해리는 자아를 몸과 분리하는 현상으로 도무지 쓸모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이야기는 공간과 시간에 제약된다. 하지만 해리는 이런 제약으부터 해방을 가져온다. 우리가 다른 시점으로 해리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이야기를 다른 시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인간은 이런 해리를 본질적으로 좋아하기에 다른 사람의 시점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는 RPG게임이나 코스프레 게임이 인기가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뇌에는 서사를 위해 해리와 예측, 압축이라는 삼위일체의 도구가 존재한다. 뇌는 이 도구를 적절히 이용해 사건을 연결해 서사를 구성한다. 이 서사는 인과로 이어져 있으나 그것이 실제적 인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서사 구조에 대해서는 연구가 있다. 2017년 버몬트 대학교 연구자들은 쿠텐베르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는 소설 1327권을 분석한 것이고 모두 달라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6개의 서사구조로 분류한 것이다. 서사구조는 빈털터리에서 부자, 부자에서 빈털터리, 구덩이에 빠진 남자, 이카루스, 신데렐라, 오이디푸스 구조가 있다. 빈털터리에서 부자는 나락에서 시작해 정점에 오르는 구조다. 부자에서 빈털터리는 정반대로 정점의 영웅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전형적 비극 구조다. 구덩이에 빠진 남자는 좋은 조건을 갖춘 이가 위기에 빠져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를 극복하고 예전의 지위를 회복하는 구조다. 이카루스는 바닥에서 시작해 정점에 올랐다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구조다. 신데렐라는 영웅의 여정이다. 바닥에서 시작해 정점에 올랐다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막바지엔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다시 정점을 향하게 된다. 마지막은 오이디푸스 구조로 잘나가던 사람이 나락에 떨어지고 다시 정점에 올랐다가 마지막엔 다시 바닥으로 가는 구조다. 

 인간은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렇기에 나라는 관념은 다시 한번 부정 당하기 쉽다.인간은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기에 이를 위해서 나의 개인적 의견 보다는 집단, 즉 다수의 의견을 따르도록 진화했다. 물론 이를 어길 순 있으나 이는 집단에서 배제된다는 생존의 위기를 감수하는 행동하기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수반한다. 즉, 결론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합리성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주변 대다수의 의견에 의존하고 편향한다는 것이다.

 테트리스 같은 게임에서 같은 모양을 찾기 게임이 있다. 이 모양은 회전하면 달라 보며 그리 쉽진 않다. 실험 참가자들은 혼자 하는 경우 정답률이 86%였다. 하지만 게임의 다수가 거짓말을 하여 거짓답을 다수가 제시하고 이것이 공개되는 경우 이것을 추종하여 정답률이 무려 59%까지 떨어졌다. 정상적으로 혼자서 답을 한 경우 피험자의 뇌는 두정엽이 활성화했다. 여긴 정신 회전 작업을 담당한다. 하지만 거짓말에 둘러싸여 압박을 느낀 경우 편도체가 활성화했다. 여긴 감정을 담당하는 곳으로 거짓임을 알면서도 이에 대한 고민을 느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인간은 무리에서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전문가의 의견을 추종한다. 실험에서 전문가의 의견에 반대하는 경우 편도체와 마찬가지로 각성과 관련한 대뇌섬이 활성화했다. 이런 일련의 결과는 인간은 무리에 속했고 그것을 보호와 자원, 성적 접근을 허용했다. 때문에 인간은 무리 다수, 혹은 무리의 우두머리의 의견을 따르도록 진화했다. 다른 권위에 의존하는 것은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에서 개인을 해방시켜 정보의 처리와 저장에 들어가는 에너지도 줄여주는 장점이 있다.

 인간의 뇌는 고유의 서사를 갖고 있으며 이것은 상당히 굳건하지만 환경의 적응이 중요한 만큼 변화하기도 한다. 그 주요 방법은 이야기를 듣거나 읽어서 거기에 몰입하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경우 뇌 영역의 활성화는 그 사건들이 개인적인 서사에 통합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감각운동대가 놀랍게도 독서 후에도 지속적인 패턴을 보이는데 이는 소설이 마음 속 해동을 재현하였음을 의미한다.

 수 천년의 문화적 진화는 인간의 뇌가 이들 주인공의 서사를 흡수하게 했다. 자신만의 서사로 가득 차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책을 읽으면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를 강화하고 발전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그 캐릭터에 동화되고 그 경험이 결과적으로 독자인 나의 뇌를 변화시켜 나의 서사구조를 변화한다. 

 현대 사회는 매체가 다양해져 인간의 다양한 매체로 다른 인물의 서사구조를 경험한다. 저자는 TV와 영화도 이야기와 비슷한 효과를 가질 수 있지만 한계를 지적한다. 우선 양자는 독서에 비해 수동적인 소비를 하게 한다. 그리고 독서에 비해 몰입 시간이 짧고, 인지적 요구가 적다. 그렇기에 뇌의 서사구조를 바꾸기엔 효과가 다소 부실하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독서는 비교적 오랜 시간을 요구하고 그렇기에 읽으며 새로운 기억과 그것이 새로운 서사구조에 통합될 충분한 시간을 부여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좋은 소설은 독자를 다른 사람의 몸 안에 집어 넣고 그들 처럼 느끼고 생각하게 만들며 독서 후에도 며칠 간 뇌의 흔적으로 남게 된다.

 인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서사구조에 의해 세계를 파악한다. 하지만 세계엔 인간을 유혹하고 설득하는 서사구조를 가졌으면서 옳지 못한 정보와 가치를 가진 것들이 존재한다. 음모론이 대표적이다. 음모론은 소문에 기반하기에 내편과 적이라는 집단 극단화를 촉진한다. 그래서 음모론은 무리에 속하고, 전문가에 의견에 의존하려는 인간의 성향을 강하게 자극한다. 또한, 음모론은 인간이 좋아하는 서사구조 중 하나인 영웅의 여정구조다. 대개의 음모론은 하나의 비극적 사건으로 시작하여 그것의 책임이 외부집단의 누군가에 있다는 식으로 이어진다. 음모론을 주창하는 사람 자신아니 그 가족이 이 과정에서 희생되었다면 순교자로 여겨져 더욱 강화된다. 예를 들면 코로나 백신에을 맞고 사망한 사람들이 다수 발생했다. 물론 그 과학적 인과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도탄에 빠진 희생자 가족 집단에 한 무리가 이것이 정부가 은폐한 백신의 부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그들을 이 완벽한 서사구조에 완벽히 빠져든다. 그런데 음모론을 제기한 자들 중 일부가 과학자이거나 그들 자체가 피해자라면 순교자효과라 발생하며 음모론은 크게 강화하게 된다. 

 저자는 그렇기에 우리가 사회와 개인의 발전을 위해 올바른 서사를 갖추도록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엔 저자가 말한 뇌의 구조와 서사에 대한 이해가 다시 요구된다. 뇌는 효율을 위해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일부를 기억하며 그 일부들을 연결하기 위해 서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서사는 압축을 필요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뇌는 사전확률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은 해리를 통해 자신을 넘어서 사전확률을 더욱 확장시킨다.

 인간에겐 이렇게 만들어진 중심적 서사구조가 있다. 서사는 쉽게 바뀌지 않으며 인간은 독립적이지도 않고 다수와 외부의 의견을 쉽게 추종한다. 하지만 그게 항상 옳지만은 않기에 서사를 바꾸는 힘도 있다. 그것을 책 읽기를 통해 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은 옳다고 여겨지는 건강한 정보와 서사를 담은 지식, 이야기를 꾸준히 소비하는게 중요해진다. 그래야 음모론에 빠지지 않고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건강한 서사를 갖춰나가며 이를 바탕으로 올바른 예측과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아의 형성과 서사, 뇌와 관련한 재미난 책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간에게 어떻게 주요 서사구조가 세계 보편적으로 생겨났는지에 대한 연구의 결여다. 아마 그런걸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을 듯 하다. 그리고 그 여섯가지는 인간이 집단에서 생애를 살아가며 보이는 과정과 결과의 거의 전부일 것이다. 누구나 위로 올라가고 아래로 떨어지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 중의 하나를 겪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여섯가지만 있고 그것에 강하게 공감하며 반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책은 본질적으로 지식도 이야기로 파악한다. 맞기는 하나 양자는 조금의 차이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도 아쉽다. 하지만 책은 매우 훌륭하고 인간의 자아 관념과 탄생, 인식구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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