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를 알면 보이는 것들 - 공간은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짓는가
정은혜 지음 / 보누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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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고교 때 가장 좋아한 과목은 지리였다. 난 남자치곤 무척 공간 감각이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면허증도 힘들게 땄고 장소도 웬만히 가선 길을 잘 기억하지도 못한다. 지금도 지도를 잘 보지 못하고, 스마트폰으로 네비를 켜고도 도보로 찾는 건 무척 힘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리가 좋았고 심지어 잘하기까지 했다. 

 그건 지리가 단순 자연이나 공간에 대한 것 보다는 인문적인 내용을 많이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내가 좋아했던 부분도 이런 부분이었다. 공간이나 위치와 관련하여 그것과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부분에 재미를 느꼈던 것 같고 그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번에 본 책은 '지리를 알면 보이는 것들'은 지리학에 대한 여러 학문적 동향과 여러 개념을 잘 정리해서 모처럼 지리 공부를 기본으로 돌아가 충실히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책을 쉽게 잘 썼다.

 지리학은 크게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나뉜다. 자연지리를 지형학, 생물지리, 해양지리. 지질학, 기후학, 토양에 대한 것이다. 인문 지리는 도시지리, 문화지리, 관광지리, 사회지리, 경제지리 등 공간조직 인간과 환경 간의 상호작용에 관한 것이다. 즉, 인간이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공간의 형태를 연구하는 것이다. 

 공간은 물리적 실체나 틀을 의미하며 대개 광범위한 규모를 의미한다. 지역은 동질적 공간 단위를 의미하며, 장소는 어느 한 지점으로 의미가 부여된 구체적인 공간이다. 장소가 모이면 그것이 지역이 되며 지역이 모여 공간을 이루는 형식이다. 장소는 자연환경적 요소와 인문학적 요소 간의 상관관계에 따라 만들어지고 항상 역동적으로 진화한다. 

 장소는 지역 주민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다. 장소는 주변의 물질적 복지와 삶의 가치, 생활 양식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장소는 문화적 또는 감정적 상징의 공간이며 장소는 변화와 혁신, 저항과 갈등이 표출되는 공간이다. 

 인간은 지역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요소들을 그들 자신의 필요해 의해 하나의 체계적인 상호 연관된 요소들로 변형시킴으로써 지역의 특성을 만들어 간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특정 지역은 다른 지역과 구분될 수 있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게 되며, 이 지역적 특성은 결국 그 지역 주민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게 된다. 결국 장소는 공간의 자화상이며 그 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참모습이 왜곡없이 가장 솔직하게 반영된다. 

 지리에는 세계 시스템 개념이 있다. 이는 경제적인 것으로 세계 시스템이란 정치 경제적으로 경쟁 관계이거나 상호보완적인 연관성이 나타나는 상호의존적 구조를 말한다. 이 시스템하에서 세계는 중심지역, 주변지역, 준주변지역으로 구성된다. 핵심지역은 교역을 주도하고 첨단기술을 통제 보유하며,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 서유럽, 북미, 일본이며 식민주의로 정체경제적으로 주변 지역을 착취하며 성장했다. 주변지역은 종속적이고 불리한 교역, 낙후된 기술, 낮은 생산성을 보이며 아프리카와 중남미 지역이다. 준주변지역은 핵심지역과 주변지역의 중간 성격으로 개발도상국이 여기 해당한다. 

 핵심지역의 내부적인 발전은 주변 지역이 제공하는 식량과 원료로 가능하다. 핵심지역에서 생산하는 공산품의 시장으로 주변지역이 이용된다. 주변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생산성에 상대적 우위가 있는 물품만을 생산하는 지역으로 전락한다. 식민지 산업경제체제는 핵심지역에 종속된다. 실제 사하라 이남 55개국 중 48개 국가가 국가 수입의 절반을 차, 코코아, 커피 3개의 작물에 의존한다. 

 주변 지역은 핵심지역에 의해 3가지로 분류되는데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상업작물 위주의 물품을 생산하는 지역, 아프리카 자체의 지역 시장을 대상으로 물품을 생산하는 지역, 자급자족적 생산체제를 통해 노동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지역이다. 

 주변 지역은 제국주의와 식민정책으로 자본과 교통, 운송, 경영, 뉴스, 통신, 언어, 종교, 과학, 건축, 도시계획 등의 거의 전 분야를 핵심지역에 크게 의존한다. 그리고 핵심지역이 식민과정 혹은 그 이후에 여러 과정을 통해 주변지역에 건설한 항구, 철도 등은 식민지의 내부적 재구조화에 영향을 준다. 

 주변 지역은 식민지에서 1960년대 대부분 독립했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경제적으로 핵심지역에 종속되어 있다. 여기엔 거대 기업들에 의한 신식민주의가 작동한다. 초국적 기업은 90%이상이 핵심지역에 본사가 있다. 이들은 부정적 역할이 많다. 우선 국민정부의 동의없이 상품, 서비스, 자본을 이동시켜 국민국가의 힘을 약화시킨다. 둘째, 자체내부시장의 힘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교란해 자유시장경제를 파괴한다. 셋째, 개발도상국의 환경을 파괴한다. 넷째, 강한 힘으로 주변 지역의 경제상황과 법률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변경한다. 

 경관은 인간과 자연간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으로 도출된 독특하고 실체적인 결과물이다. 경관은 자연 경관과 문화경관이 있다. 문화경관은 인간의 여러 문화요소가 매개체인 자연과 융화되어 특정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문화경관은 다섯 가지가 있다. 

1. 일상 경관

 인간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경관으로 골목길이나, 시장, 대학가등 일상의 공간이다.

2. 상징적 경관

 특정 경관을 직접 창출하거나 재정적으로 후원한 사람들이 일반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나 신념을 내재한 경관이다. 특정 양식으로 건축한 탑이나 건출물, 동상 등이다. 

3. 힘의 경관

 무력과 자본, 종교적 권위를 내포한 경관이다. 

4. 절망의 경관

 인간의 절망적 감정이 담긴 경관이다. 슬럼가나 판자촌, 노숙자가 머무는 곳이다.

5. 버려진 경관

 자포자기, 학대, 자본의 철수, 파괴, 폭력의 장소다. 시골의 버려진 집, 폐교 등이다. 


 경관의 텍스트화는 경관이 마치 텍스트처럼 집단이나 개인에 의해 쓰이고 읽힌다는 견해다. 경관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그 경관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려는 의미가 있으며 경관에 새겨진 의미를 소비하는 독자가 존재한다. 

 영역성은 일반적으로 개인이나 사회 특정 집단이 특정한 장소나 공간적 영역에 지속적인 집착을 보이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영역성을 지닌다. 영역은 우리에게 안정감, 안전함, 정체성 등의 의미를 주기 때문에 각자는 영역에 강한 집착을 갖는다. 반면 근접학에서는 영역성은 본능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이 공간에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도시는 인간이 수렵채집 경제에서 농경으로 변화하며 잉여생산물의 발생으로 생겨났다. 초시 세계제국은 도시를 이뤘으며 산업화 이후 도시의 발전은 본격화했다. 2050년에는 세계 인구가 94억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 64억이 도시에 살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는 특유의 생활방식을 갖는다. 우선 사회구조의 변화다. 인구의 집중과 분산, 인구 구성의 변화, 인구 이동 및 유통의 증대, 토지 이동의 변화 교회화, 계층 및 계급 구조의 유동화와 균질화, 기관 및 시설의 집중과 분산, 가족형태의 변화다. 다음은 생활 구조의 변화다. 집단 참가의 다양화, 근린관계의 희박화와 일면화, 가족관계의 단순화와 개인화, 생활기능의 점진적 제도화다. 마지막은 의식 구조의 변화로 도시적 성격의 형성으로 개인주의, 세계주의, 표준 주의가 생겨난다. 시민의식이 형성되고, 개인이 해체되며, 정신 장애와 자살, 비행, 변화의 다발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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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어스 - 홀로코스트, 역사이자 경고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조행복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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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대 독일 히틀러의 나치는 정권을 합법적으로 획득했다. 이 정치적 결과의 여파는 2차 세계대전이다. 세계 규모의 전쟁으로 군인과 민간인 수천 만이 죽었다. 그리고 그 중 전쟁 당사자도 아닌 유럽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은 무려 수백 만이 학살 당했다. 우린 대개 이것을 독일인이 자행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유대인의 학살에는 상당 부분 현지인의 적극적 협력이 있었다. 책 '블랙 어스'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이 같은 입체적인 분석이 담긴 책이다. 우선 히틀러에 대해 언급한다.


1. 히틀러의 세계관

 히틀러는 사회적 다윈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인간은 동물의 하나로 자연의 풍요를 차지하려는 투쟁에서 차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차지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본성에 반하는 죄악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겐 약자인 다른 이들의 생존을 허용하는 것은 그 자체가 범죄다. 그는 낙원을 창조의 조화가 아니라 인류의 투쟁으로 생각했고 이는 기독교적 열명을 생물학의 리얼리즘과 결합한 것이다. 

 그는 인간 종족이 생물종과 비슷하다 생각했고, 여전히 하등종족에서 고등종족들이 진화한다고 보았다. 인간은 하등종족과 고등종족이 교배가 가능하지만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었고, 종족투쟁으로 유사종족이 짝을 이루고 다른 열등 종족은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법칙이었다. 

 그래서 히틀러는 국가나 민족도 중요시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우수한 종족이 자연 투쟁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히틀러에게 2차대전은 독일 국가의 승리라기보다는 우수한 종족이 자연법칙을 통과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그는 만약 독일이 패배한다면 그것은 독일 민족이 약했기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런 왜곡된 투쟁적 자연관을 가진 히틀러에게 유대인은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존재였다. 히틀러에게 인간의 원죄는 정신과 영혼의 범죄가 아니라 다른 인간 종족을 투쟁의 대상이 아닌 협력하는 동료로 인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를 만든 것이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은 지구와 다른 민족을 지배하기 위해 인간의 목적은 자연 투쟁이 아닌 인간의 질서로 도치시키는 초자연적 관념을 생성해 냈는데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도 그런 일련의 것들이었다. 

 히틀러에게 윤리학 같은 것은 그 자체가 오류이며 유일한 도덕이라 할 만한 것을 자연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종족에 대해 충성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비종족적인 것은 모두 유대적인 것이 되며 보편 관념은 유대인의 지배도구가 된다. 이 보편 관념은 비유대인의 정신에 침투하는데 이것은 그 종족 공동체의 정신을 약하게 만들어 유대인을 이롭게 할 뿐이었다. 

 이런 유대인의 왜곡으로 인해 강자가 약자를 굶겨 죽이는 적자생존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 오히려 최적자가 희생되는 이상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 때문에 유대인이 존재하는 한 독일인 같은 강자들은 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1차 대전 때 독일이 패배한 것도 세상의 전체구조에서 유대인에 의해 어떤 부분이 왜곡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히틀러는 만약 1차대전 개전 초기 독일이 효과적으로 유대인을 제거했다면 독일은 패배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기에 독일의 지배를 위한 투쟁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우선 열등한 종족을 굶겨 죽여 그들의 땅을 빼앗는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을 말살하는 것이다. 강자로써 독일인은 다른 열등종족을 지배해야 하며 그들을 유대인에게서도 해방시켜야 한다. 즉, 해당지역을 점령하고, 그 지역의 유대인을 말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히틀러의 정책은 식민주의이면서도 반식민주의의 모순을 띄게 된다. 

 히틀러는 과학기술도 부정하는 편이었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의 과도한 발전은 인간의 생존력을 지나치게 높여 적자생존이라는 투쟁의 결과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과학기술의 발전은 종족투쟁에서 종족의 우월성을 보인다는 면에서만 유효했다. 히틀러는 농학을 부정했는데 그것이 자연에 개입하여 더 많은 땅을 취하지 않고서도 식량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하여 투쟁 논리를 위협하기 때문이었다. 히틀러는 과학은 한계가 분명하고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히틀러는 유대인이 잔혹한 자연을 대면하지 못한다고 보았으며 그들을 자연이 가혹하게 작용하는 이질적인 곳으로 보내면 정글의 법칙에 굴복할 수 도 있을 것으로 보았다. 히틀러에게 그곳은 시베리아 였으며 실제로 히틀러는 초기 유대인을 학살하기 보다는 그런 곳으로 보내버려서 치워버리려는 생각을 했었다.

 유럽에 대한 히틀러의 세계관도 독특하다. 그는 영국과 미국을 인정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독일과 피를 나눈 우수종족이고 대제국의 건설자로 이를 입증했다. 그는 세계를 구분했는데 우랄산맥까지의 유럽대륙의 건설은 영국과 미국이 간섭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으며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영미와의 아마겟돈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다. 독일은 1차 대전 당시 영국에 해상봉쇄를 당했는데 히틀러는 이것이 식량을 확보하여 남에게 주지 않을 능력으로 일종의 지배력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넓은 유럽 대제국을 확보하는게 우선 과제였다. 

 유럽제국의 건설로 눈을 돌린데는 독일이 차지할만한 식민지가 없다는 현실적 문제가 관련한다. 독일은 강했으나 늦게 통일한 국가로 남은 땅은 유럽 뿐이었다. 하지만 유럽대륙은 이미 꽉 찼었는데 인종주의 관념이 그 해결책이었다. 이는 기존 유럽제국의 시각으로 이미 원주민이 있음에도 그들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었다. 독일에겐 이 대상이 동유럽인이었다. 폴란드, 우크라이나, 발트3국, 벨라루스인 등이다. 러시아 슬라브 족도 마찬가지다. 

 히틀러는 이런 열등종족들은 국가를 건설할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 지역을 점령할 때 해당 국가를 철저히 파괴한다. 마치 전에 없었던 것처럼. 이들이 현재 만든 정부는 환영으로 유대인이 만든 보편관념에 의한 껍데기일 뿐이다. 러시아는 본질적으로 독일인 상층계급과 지식인이 만든 창조물이었다. 우크라이나 인은 더 우습게 보아서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식민지인이다. 

 히틀러는 자신의 이상의 실현을 위해 7가지 정책을 추진한다. 일당 국가, 폭력 전문 집단 생성, 정복지를 무정부 국가 상태로, 제도들의 이중 교배, 독일 유대인의 세계화, 전쟁의 재정의다. 


2. 소련

 독일은 다른 제국에서 토지를 강탈하는 재식민적 경향을 , 폴란드는 다른 제국들을 해방하여 그 식민의 이탈에 기여하는 탈식민적 경향을 띄었다면 소련은 내부식민국가를 지향했다. 스탈린은 놀랍게도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 토착민에게 쓴 정책을 자국민에게 쓰고 싶어했다. 소련은 자본주의와 단절되었다. 하지만 체제 경쟁으로 더 성공해야 했기에 유일한 희망은 인적자본을 포함하여 소련 국경안의 자본을 잘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런 내부식민화의 핵심은 농업집단화로 사유지를 박탈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일부는 농업 노동자, 나머지는 도시나 수용소 노동자가 되었다. 이는 거센 저항과 대규모의 기아를 초래한다. 특히 우크라나이 지역에서는 대량기아가 발생하였는데 이로 인하 현지인들은 소련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게 된다.

 내부에 우크라이나 인들이 상당수 있었던 폴란드는 이런 기아사태에도 불구하고 지원이나 비판을 하기는 커녕 자국의 이익을 위해 1933년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 우크라이나 인들은 폴란드에 대해서도 상당한 배신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인들에게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여 그 체제를 부수는 것이 희망이 된다.  

 이런 우크라이나의 사정은 히틀렁게 상당한 기회가 될 수 있었지만 그는 우크라이나 인들을 열등종족으로 보아 정치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3. 폴란드

 폴란드는 1차대전의 결과 독립국이 되었다. 하지만 그 지위는 크게 불안했다. 서로는 독일이 동으로는 소련이 있었다. 폴란드는 균형외교를 추구하며 소련과 독일 양자와 모두 불가침 조약을 맞는다. 동상이몽이었다. 이 상호간 불가침 조약에 대해 폴란드는 현상유지에 대한 양국의 약속이라 믿었고, 독일은 폴란드가 소련과의 군사행동 협력에 나섰다고 보았으며, 소련은 폴란드가 소련의 협력자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래서 소련은 1939년까지 자국내 폴란드 인들을 모두 정화해버린다. 폴란드는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이렇다할 항의조차 하지 못한다. 

 히틀러는 폴란드 인을 우습게 보았음에도 2차대전 전까지 폴란드를 협력자로 삼으려 했다. 이는 1차대전의 아픔 때문이었는데 당시 독일은 서로는 프랑스 동으로는 러시아를 모두 상대해 패퇴했기 때문이다. 이런 독일의 지정학 때문에 히틀러는 폴란드를 협력자로 하여 동쪽의 안정을 도모하고 소련을 같이 상대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런 제안은 현상 유지를 위한 폴란드에겐 위험천만한 생각으로 그들은 이런 독일의 제안을 계속하여 거절한다. 폴란드에게도 독일처럼 반유대감정이 있었다. 폴란드내 유대인은 3백만으로 가장 큰 유럽 내 유대인의 터전이었다. 그만큼 자국내 유대인의 영향력도 컸고 이는 대공황 이후 더욱 강해진다. 


4. 오스트리아

 인구 5300만의 합스부르크 제국은 1차대전으로 붕괴한다. 제국은 여러 개로 쪼개졌는데 오스트리아는 수도 빈과 독일어권 지역으로 인구 700만의 소국이었다. 제국의 가장 부유한 곳은 체코슬로바키아가 되었다. 광대한 국내시장도 붕괴하였다. 그래서 신생 오스트리아 인은 정체성이 없었고 자신을 독일인이라 생각하였다. 

 베르사유조약은 이런 위험성을 인지하여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합병 금지를 명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히틀러는 다민족 국가인 오스트리아를 싫어하면서도 통합의 대상으로 생각하였다. 대공황 때 농업국인 오스트리아는 상당한 고난을 겪었지만 독일은 이를 먼저 극복하고 오스트리아 노동자에 일자리를 제공하고 이에 오스트리아는 큰 감명을 얻는다. 

 독일은 군사적 팽창 정책으로 막대한 재정 적자에 시달린다. 한편 오스트리아는 대공황으로 인한 보수적 경제 정책으로 외환과 금 보유가 충실했다. 이는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오스트리아는 동맹인 이탈리아로부터 버림을 받고 영국과 프랑스로부터도 지지를 얻지 못했다. 이에 슈슈니크 정권은 히틀러의 침공협박에 스스로 나라를 지킬 의사가 없다고 표명함으로써 자연스레 독일에 합병된다.  

 이후의 일은 놀랍다. 오스트리아인들은 나치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홍위병이 되어 나치의 구호를 외치고 유대인을 폭행하고 찾아내어 거리에 무릎을 꿇리고 청소시키는 망신주기를 시킨다. 재산도 강탈하는데 이 충격으로 오스트리아 내 유대인은 수백명이 자살한다. 


5.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슬로바티아는 독일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산악지대를 베르사유조약에서 요구한다. 이는 승인되었고, 그들은 다민족국으로 자유주의 헌법을 만든다. 그리고 합스부르크 왕국의 부유한 지역을 차지해 유럽 최고의 군수산업국이 된다. 

 히틀러는 이를 탐내 체코 침공을 선언한다. 1938년 뮌헨에서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지도자들은 놀랍게도 이 침공을 승인하여 체코가 독일에 영토를 이양해야 한다고 결정한다. 체코의 유대인들은 자신의 국가가 파괴되고 재산권 상실의 공포에 빠진다. 그리고 이는 실현되어 독일은 체코 내 금융, 산업 자산의 1/3을 헐값에 탈취하다. 


6. 폴란드 합병

1938년 11월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체코의 상당부분을 병합한다. 오스트리아의 재정과 체코의 무기 여기에 900만의 주민이 제3제국에 추가되었다. 독일은 폴란드의 영토 양도를 원했고 그 대가로 소련과의 전쟁, 폴란드내 유대인 문제 해결, 우크라이나 지역 영토를 약속한다. 폴란드는 전쟁을 원치 않았기에 이를 거부했고, 히틀러는 소련과의 전쟁에 폴란드를 끌어들이려는 지난 5년간의 노력을 뒤로 하고 침공을 결정한다.

 히틀러는 1939년 8월 20일 소련과 리벤트로프-밀로로프 협정을 맺는다. 핀란드, 발트3국, 폴란드를 소련과 독일이 세력권으로 분할하는 것이었다. 폴란드는 서부는 독일로 동부는 소련으로 쪼개지게 된다. 히틀러는 서부 폴란드에서 인텔리를 몰살한다. 그리고 1941년 유대인은 게토에 수용한다. 히틀러는 이들을 프랑스를 격파한 후 그들의 식민지인 마다가스카르로 보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쉽게 격파했으나 해상을 장악한 영국에 의해 대규모 해상운송이 불가능했다. 이에 선회하여 소련을 침공해 유대인을 보내버릴 장소로 시베리아를 선정한다. 

 동부 폴란드에서는 소련에 의해 거의 30만 폴란드 시민이 굴라크로 추방되었다. 소련의 입장에선 폴란드 장교단이 위협이었다. 그들은 나라의 군사, 교육, 정신적 토대였다. 그래서 모두 제거한다. 폴란드 남자가 사살되면 그 가족은 추방되거나 착취되었다. 소련은 민족차별을 범죄로 규정한 나라로 공식적으로 반유대주의는 범죄였다. 하지만 소련의 반자본주의적 행태가 유대인을 괴롭힌다. 소련은 폴란드 통화를 폐지시켜 유대인의 재산을 소멸시켰고, 이로써 채무도 같이 소멸되어 주요 채권자인 유대인에 큰 손실을 안겼다.  


7. 홀로코스트

 독일이 동유럽을 병합하고 침공하며 히틀러가 사전에 국내에 조직했던 특수임무단이 위력을 발하게 된다. 이들은 1941년 독일 군경과 함께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수많은 민족주의자와 협력하게 된다. 이 집단들은 6개월간 같이 집단 학살 기술을 개발한다. 

 독일은 동부전선에서 대량학살을 억압당한 민족들이 추정상의 지배자인 유대인에 터뜨린 정의로운 분노로 포장했다. 하지만 동유럽 현지에서 유대인에 대한 그들의 분노는 히틀러의 생각과는 다르게 종족적 동기가 아니라 정치적 동기였고 극히 일부에게만 향했다. 

 이에 당황한 히틀러는 과거 소련에 점령당했다 독일에 점령당한 이 이중점령지에서 소련에 점령된 경험을 이웃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바꾸려 한다. 현지인들 역시 소련 점령하에서 협력한 경험으로 인해 자신들의 생존과 죄를 씻기 위해 독일에 협력한다. 마치 조선에서 친일파가 미국에 빠르게 부역한 것과 마찬가지다. 

 독일은 유대볼셰비즘에 입각해 공산주의는 결국 유대인의 작품이고 유대인을 공산주의자로 정의하면서 사실상 소련 부역자들을 대개 용서한다. 그 결과 독일과 현지인의 합작으로 대량학살이 가능해지게 된다. 

 폴란드에서는 지역에 따라 학살의 양상이 크게 달랐다. 폴란드 북동부는 유대인 학살이 적었던 반면 남동부에서는 학살이 많았다. 남동부에는 우크라이나 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는데 이들은 국가설립을 위해 나치에 기대하는 것이 많았기에 협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현지인들은 나치에 협력해 유대인을 죽임으로써 정치적 사면을 받는 것도 있었지만 그들의 재산도 하나의 목적이었다. 유대인이 사라짐으로써 그 재산의 강탈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소련은 동유럽을 점령하면서 기존 국가를 파괴하고, 지식 계층과 군을 몰살한다. 그리고 이런 강압적 분위기에서 상당수 현지인들이 소련에 협력하게 되었으며 재산상의 손실도 컸다. 때문에 후에 독일이 점령한 이런 이중 점령지에서는 소련의 재산 몰수와  나치의 반유대주의의 결합으로 비 유대인이 유대인을 죽일만한 물질적 유인이 생겨나게 되었다. 물론 점령이 주민의 상당수는 나치의 기대와 다르게 분별없는 반 유대주의자라 종족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어디나 소련에 적극 협력한 경찰이나 의용대가 있었으며 이들은 수만에 이르렀다. 

 이런 이중점령지에서는 이 같은 요인으로 인해 유대인의 사망률이 무려 97%로 상당히 높게 나타난다. 놀랍게도 이는 소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은 소련의 영토를 상당히 많이 점령하는데 이들은 상당히 나치에 협력적이었다. 이들은 공산정책으로 재산을 빼앗기고 기아를 겪었으며 소수 민족의 경우는 몰살당하기도 하였다. 소련의 정책은 내부간의 고발 문화를 권장하였는데 이런 상태에서 소련시민에게 나치에 대한 협력은 소련정책 협력이라는 범죄에 대한 손쉬운 세탁이었다. 그리고 소련시민들은 나중에 소련 세력이 회복하자 바로 다시 판을 바꾸게 되고 대조국 전쟁으로 자신들이 유대인 이웃을 학살한 행위를 덮어버리게 된다. 1941년말까지 나치가 소련 시민의 협조를 받아 소련 점령지에서 학살한 유대인의 수는 100만에 가깝다.

 독일의 수용소는 처음엔 학살장소가 아니었다. 아우슈비츠 정문의 문구처럼 이 장소는 강제 노역의 장소였다. 독일에게 사로잡힌 유대인의 운명은 독일의 사정에 따라 달랐는데 노동력이 절실할 때면 잠시 살아남을 수 있었고 노동력보다 식량이 절실할 때면 살해되었다. 아우슈비츠는 악명이 높지만 사실 대부분의 유대인이 학살당한 장소는 트레블린카, 베우제츠, 소비부르, 헤움노다. 

 혹자들은 상당수의 독일인들이 전쟁 중 학살을 몰랐다고 하지만 당시 학살의 규모를 생각하면 이는 불가능하다. 독일 내에서 학살이 처음부터 정해졌던게 아닌 만큼 수차례의 정책적 토론이 있었고, 전장과 수용소에서 학살에 참여한 이들의 편지가 가정으로 송부되었다. 심지어 일부 가족은 수용소에 방문하기도 했다. 이처럼 독일은 거의 전체적으로 학살에 대한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이를 인지했다.

 독일의 학살은 3가지 방식으로 변화하였는데 처음엔 구덩이 위에서 사살하였고, 나중엔 기차칸에 가두고 내연 기관의 배기가스를 투입하여 질식시켰고, 마지막은 가스실이었다. 가스실에서 사용한 시안화수소는 원래 폴란드인 수감자 수용소 훈증에 사용했던 것이다. 나중엔 소련 포로 살해에 그리고 유대인 살해로 이어졌다. 

 유대인의 학살엔 국가파괴도 관련한다. 나치의 점령지중 국가가 파괴된 곳에서 학살은 쉽게 자행되었다. 반유대주의가 있었을 지언정 국가가 존속한 곳에서는 그 시민을 보호하는 기관과 힘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덴마크와 에스토니아는 모두 나치에 점령당했는데 에스토니아는 사전에 소련에 의해 국가가 파괴되었고 덴마크는 나치에만 점령당해 그렇지 않았다. 나치는 덴마크 국가 파괴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덴마크는 주권을 유지하며 유대인 학살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일부 유대인은 동유럽에서 노동력 부족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동부유럽은 2차 대전 당시 농업지대로 기계화는 없었고, 인력과 축력에 의한 노동집약적 농업이었다. 대공황의 강타로 시장에서 분리되어 자급자족적 농업이었다. 독일은 소련 침공 때 운송수단으로 수백만 마리의 말을 사용했으며 동유럽에서도 말을 마구 잡이로 징발했다. 그리고 전쟁으로 독일 내 노동력이 부족하자 처음엔 고용의 형태로 나중엔 징발과 강제의 형태로 동유럽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수백만의 동유럽 사람들이 독일로 끌려가게 되었으음로 동유럽의 농가는 심각한 노동력 부족을 경험하게 된다. 때문에 나치를 피해 돌아다니는 유대인 아이들은 노동력의 수단으로 구원의 손길을 얻기도 한다. 

 그외에도 결혼이나 결혼의 전망, 성적 욕구 등은 유대인에게 또 다른 생존의 기회가 되었다. 그 외에도 일부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유대인을 구조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대인을 집안에 들이는 것은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였고, 반면 고발하면 부족한 식량상황에서 설탕과 소금, 보드카등을 얻을 수 있었으며 근심걱정이 사라지게 되었다. 때문에 보호보다는 밀고가 보다 일반적인 현실이었다. 


8. 미래의 홀로코스트

 히틀러는 생활 공간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는 대량학살로써 지구를 회복하겠다는 계획과 독일인 가족에게 더 나은 삶을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이처럼 생활 수준이 삶과 혼동되면 부유한 사회가 생존이라는 명목으로 더 가난한 사람을 공격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인류는 이런 위기를 겪고 한다. 녹색 혁명이후 전 세계 식량은 안정되어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2010년 농산물 가격이 치솟자 중동에서는 항의 시위와 혁명, 민족 정화가 자행되었다. 때문에 장래의 식량 부족은 국가의 엘리트로 하여금 히틀러처럼 정치와 과학간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지 선택하게 할 수도 있다. 

 인간은 산업화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 위기를 겪고 있다. 현재 1.5도가 상승한 상태가 이대로라면 금세기 안에 4도의 상승도 예측된다. 이런 기후 위기로 전례없는 폭풍이나 가뭄에 발생하는데 이는 기본적인 자원의 안전에 대한 예상을 뒤흔들게 되고 사람들은 이에 히틀러식의 정책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기후 위기는 세계적 문제이므로 세계적 해법을 요구하나, 일부 지역에서는 그 세계적인 적을 규정하는 것이 한 가지 확실한 해법이 된다.

 아프리카는 지금도 경작 가능한 토지와 식수가 부족하다. 하지만 허약한 소유권과 부패한 정권, 그리고 전 세계 미개간 토지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 아시아 식량 안보의 핵심 계획이 되어 버렸다. 현재 중국은 일인당 경작지 공급이 세계 평균의 40%에 불과하고 이 마저도 연간 100헥타르씩 감소하고 있다. 중국은 식량 자급이 불가능한데 과거 중국 공산당은 대규모 기아와 경제적 풍유를 모두 가져온 바 있어 식량안보에 무척 민감하다. 그래서 중국은 아프리카를 자국의 식량 안보의 해결책으로 생각한다. 

 식수도 마찬가지다 80억 인구중 10억은 생존에 필요한 하루 1.9리터의 물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10억은 위생에 필요한 하루 19리터의 물을 확보하지 못한다. 중국의 일인당 물소비는 아직 세계 평균의 1/3에 불과하다. 중국인 다수가 의존하는 물은 빙하가 녹은 물이며 중국의 민물 절반과 지하수 상당수가 이미 오염으로 사용이 어렵다. 향후 온난화로 인한 물부족으로 중국을 물이 풍부한 시베리아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 

 중동에서는 국가가 약하고 이슬람 근본주의가 있다. 이들은 오랜 기간 미국인과 영국인, 유럽인을 전 지구의 적으로 규정해왔다. 이들의 이런 반세계적 사고는 전 지구적인 현상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기에 용이하다. 중동에서 기후 위기 및 경제위기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위기가 발생하면 유대인은 손쉬운 희생양이 될 것이다. 

 저자는 이런 위기의 해결책으로 의외로 국가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홀로코스트는 국가가 파괴된 곳에서 자행되었다. 이런 저런 불만이 있어도 국가는 권리의 인정과 보증, 보호 역할을 하기에 이런 현상을 지역에서 방어한다. 또한 복지국가도 중시한다. 성공적 복지국가는 파시즘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한 국가내 극우주의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낙후되는 불평등이 심한 경우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기술의 꾸준한 투자도 방법이다. 히틀러는 과학을 부정했지만 현대의 과학기술은 기후 위기 시대에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물부족은 해양담수화 기술의 발전으로 해결이 가능할 수 있으며 식량문제도 수직 농업이나 배양육 등의 문제로 해결이 가능할 수 있다. 저자는 연대와 우리의 과거로부터의 학습도 강조한다. 현재의 우리는 생각보다 히틀러로부터 멀리 나가지 못했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우리가 연대하지 않고 특정 세력을 전 지구의 희생양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히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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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4월 20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엄마가 이미 2022년에 돌아가셨으니 난 고아가 된 셈이다. 내 나이가 이미 한국 중위 연령을 넘어섰기에 정확히는 '고독한 아저씨'가 된 셈이다. 아버지 장례식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한국전쟁을 경험하신 큰아버지가 그런 소리 말란다. 당시 전쟁 이야기를 짧게 하시면서 전쟁 고아가 무척이나 많았다고. 

 우리 엄만 2009년에 뇌출혈로 쓰러져 14년간 온전치 못한 마음과 신체로 와병하다 코로나 19를 계기로 가족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런 엄마의 병수발을 가장 많이 든게 우리 아버지다. 자식 둘은 결혼해서 지방으로 나가 가정을 꾸린지라 아버진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의지하긴 했지만 어머니를 가장 많이 돌보셨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진 그제서야 당신 몸을 돌보시기 시작했고, 갑작스레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엔 다리가, 그리고는 허리가 그리곤 귀가, 그리곤 가슴이 아프셨다. 결론은 폐암이었다. 확진을 받았을 땐 뭔가를 해보기엔 상당히 늦은 시점인 작년 말이었다. 의사는 3-4기를 운운했지만 내가 듣기엔 4기 같았다. 그리고 어느 암이나 그렇지만 폐암 4기는 생존률이 10% 미만이다. 의사는 항암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이런 경우 평균 4개월에서 1년 정도 생존한다고 하였고 그 말처럼 아버진 진단 후 4개월 정도 살다 돌아가셨다. 아버진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지 않으셨다. 엄마의 경우처럼 되는 것을 가장 싫어하셨기 때문이다. 

 1-2월엔 내가 병원에 통원시켜 드리며 돌보았고, 상황이 악화되자 아버진 동생 집에 머물며 2-3월을 보내셨다. 동생은 목포에 산다. 3월에 그 먼 목포를 아버지를 보러 어린 아들을 데리고 주말에 내려가곤 했다. 말기 암 환자는 하루하루가 달랐다. 3월 초만 해도 식욕이 크게 감퇴하고 고통을 겪어서 그렇지 같이 식사도 하고 손자를 훈육해주시기도 하고, 같이 이야기 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3월 말이 되자 하루 종일 누워계셨고 고통이 너무 심하고 먹기는 커녕 진통제마저 먹는 것이 불가능했으며 섬망이 심해져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리고 중환자실과 호스피스를 2주 간 전전하다고 돌아가셨다. 동생 부부는 집에서 아버지를 돌보며 사람이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며 죽음을 향해가는 어려운 과정을 매일 보았다. 평생 갚지 못할 빚을 동생에게 지게 되었다.

 폐암은 급사가 많다. 폐가 갑작스레 멈추면 사람도 갑자기 죽기 때문이다. 4월 20일은 중환자실에서 아버지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 모처럼 면회가 가능한 날이었다. 그래서 어린 아들을 데리고 비가 내려 막히는 고속도로를 따라 목포로 향하고 있었다. 임종을 보러 가려는 것도 아닌 그저 면회였다. 그러다 갑자기 돌아가셨단 연락을 받았고 반쯤 내려가던 길을 되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중간에 친척들과 가족, 직장에 연락을 하고 상조에 연락을 하고 동생과 장례식장을 잡았다. 그렇게 장례식장에 도착해 계약을 하고 빈소를 차리는데 무척 피곤했다. 8시간을 운전했다.

 장례는 짧게 3일을 잡았다. 최근 돌아가시는 분들이 적어 화장장이 여유가 있어 가능했고 어머니때와는 다르게 이젠 아버지도 돌아가셨으니 정리할게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첫날에는 빈소를 늦게 차려 조문이 한산했으나 다음 날은 정신없이 바빴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먼 친척들과 친구들, 또한 오랜 만에 보는 나의 친구들도 볼 수 있었다. 나이가 들고 서로 가정과 직장에 바쁘니 이런 때나 보게 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친척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모르는 아버지의 삶을 볼 수 있었다. 자식과 어머니 없이 오랜 기간을 사시며 나는 보지 못한 아버지의 인생이었다. 아버진 월남전에 참전했기에 참전유공자였다. 그래서 대통령 조문기와 한 재향군이 분이 오셔서 약간의 의식을 해주셨다. 참으로 감사했다.

 엄마와 같이 납골당에 모시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장례식은 워낙 바쁘고 맞이할 사람이 많아 의외로 슬픔을 느낄 만한 시간과 공간이 적다. 그게 한꺼번에 몰려온게 집으로 돌아오는 차량 안이었다. 흐르는 눈물과 피로로 인한 졸음이 겹쳐 힘들었다.

 다음 날 아버지가 홀로 사시던 전세 집을 찾아가 동생과 집 정리를 시작했다. 집주인에게 연락하여 사정을 이야기하고 인근 부동산에 전세를 냈다. 그리고 구청을 찾아가 사망신고를 하였으며 유산 정리를 위해 관련 자산을 파악해주는 원스톱 서비스를 신청했다. 점심을 먹고 동생과 집정리를 시작했다. 오래 혼자 사시며 검소하고 깔끔한 성격에 이렇다 할 짐이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사는 집이라 모든 것이 무척 많았다. 아버지의 손길이 닿은 어떤 것 하나 버리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버리기 힘든 것은 옷이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담배 냄새가 잔뜩 벤 옷이었지만 아버지의 체취인 만큼 그것마저 그리웠다. 여러가지 짐을 버리는데 쓸만한 것을 동생과 나눠 챙겼고 오랫동안 우리 집에 있었던 기념할 만한 것들은 챙겼다. 

 나이가 들고 홀로 사셨음에도 의외로 먹을 게 많았다. 한참을 먹을 빻은 마늘을 얼린 것들과 김치 및 아버지가 평소 좋아하는 라면 등을 버리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았다. 먹을 수도 없었고 버리기도 쉽지 않을 것들이었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집을 배우는데 할애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기에 이불을 가장 마지막에 버렸는데 그것을 버림으로써 다시 이 집에 머물지 않게 될 거란 생각이 드니 다시 쉽지 않은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어버지 집에서 아직 쓸만한 가전 제품 몇 가지와 아버지의 직장 20년 근속패, 그리고 천주교 십자가, 코트 한 벌을 챙겨왔다. 직장 20년 근속패는 늘 우리 집에 있던 것으로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아버지가 늘 자랑스러워 하셨던 것이라 버릴 수 없었다. 십자가 역시 난 더 이상 성당을 다니자 않지만 성당을 열심히 다니셨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오래 전에 성당에서 구입한 후, 매우 오랜 기간을 우리 집 거실을 장식했던 것이라 버릴 수가 없었다. 이런 걸 버리는게 맞는 것이라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는 키는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내가 덩치가 더 커서 대부분의 옷이 맞지 않는다. 하지만 코트 한 벌이 유독 컸고 입어보니 그게 맞았다. 아버지 냄새가 가득 벤 옷이었다. 그걸 하나 챙긴게 다행이었다. 아버진 살아 생전 당신에게 세 가지 걱정거리가 있다고 하셨다. 하나는 와병하는 엄마, 다른 하나는 아직 가정을 잡지 못한 동생, 다른 하나는 장애가 있는 나의 큰 아들이었다. 엄만 아버지 보다 먼저 돌아가셨고, 동생은 늦게 나마 장가를 가서 두 가진 해결되었다. 나머지 하나가 남은 채로 돌아가셨는데 나의 아들인 셈이다. 그것을 내가 해결해드려야 할 문제다. 

 별로 대단한게 없지만 그냥 이런 아들을 믿고 어머니와 같이 편하게 쉬셨으면 한다. 그 시대 아버지들이 다들 그러셨지만 자기 인생 없이 평생 일만 하고 아끼고 안쓰며 즐기지 못하고 고생만 한 인생이었다. 아버진 몇 년 전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우셨다. 아버지가 영화를 보며 우는 것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기에 놀랬지만 그 영화 자체가 아버지의 인생과 너무 비슷했기에 그럴 수 밖에 없으셨을 것이다. 아버진 어린 나이였지만 한국 전쟁을 경험했고, 베트남전에 참전했으며, KBS이산가족찾기에 직접 참여하셨다. 상당히 감정이입에 되셨을 거다. 굴곡진 인생을 힘들게 마무리 하신 아버지가 역시 어렵게 산 어머니와 더불어 편히 쉬셨으면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 옆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늘 계셨을 것처럼 내 옆에도 늘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실 것이다. 그렇기에 늘 부끄럽지 않게 잘 살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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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4-29 0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4월 20일이면 거의 일주일 전이네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족께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물총새 2024-04-29 0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순식간에 읽었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blanca 2024-04-29 09: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페넬로페 2024-04-29 15: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중년의 나이에도 고아란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부모님의 빈 자리는 채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음 잘 추스르시기를 바래요^^
 













 





 영장류의 한 무리가 인간으로 진화한 이후, 호모 사피엔스는 뛰어난 지능과 사회성으로 그 개체 수를 꾸준히 늘려왔다. 현재 그 수는 무려 80억에 이르렀고 금세기 안에 100억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지구의 자연을 변환하여 만들어낸 산물들은 경제성장이라는 것으로 측정 되었다. 지표의 모습도 자신들의 발달한 문명을 이용해 몰라보게 변화시켜 인간의 생존과 생활 편의 만을 위해 도시라는 형태로 만들어 그곳에 모여산다. 그리고 인구 성장과 경제성장은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말한 것처럼 산업혁명이 촉발된 18-19세기까지 거의 변함이 없었다. 매우 밋밋한 성장이었다.

 그러다 19세기 말부터 서구권을 중심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수명이 늘어났다. 책 '인구의 힘'에서는 서구 선진 사회의 인구가 어떻게 증가하고 안정세를 찾았으며 각 나라마다 다른 인구성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구증가와 기술로 자연을 활용하고 착취하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며 경제성장도 그에 못지 않은 궤적을 그렸다. 

 그래서 인간은 지난 100년 간 인구 성장과 경제 성장을 매우 당연 시 해왔다. 일부 지역이 두 가지 측면에서 마이너스를 겪거나 경제 공황이나 세계 대전 같은 이례적 사건으로 전 세계가 같이 고초를 겪긴 했지만 대부분 일시적이거나 국지적인 현상이었다. 세계의 인구와 경제는 매우 꾸준히 성장해왔다.

 하지만 이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주요 요인은 출산율의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인구의 감소세로의 전환, 미중갈등으로 촉발된 지정학적 갈등, 기후위기다. 소위 성장의 시대에서 축소의 시대로 패러다임이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책 '축소되는 세계'는 이러한 것에 관한 책이다. 

 향후 세계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구가 늘어나는 지역과 감소하는 지역으로 나뉘게 된다. 극심하게 인구가 감소할 지역은 한국, 중국, 일본이 있는 동아시아이며, 유럽과 미국에서도 적지 않은 인구가 감소할 예정이다. 아직은 인구가 성장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포함한 남아시아도 십수년 이후면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설 예정이다. 하지만 당분간 전체적 인구는 성장하는데 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의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 '인구의 힘'에서 언급된 것처럼 인구는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식량 공급이 안정화하고, 의료기술의 발달로 전염병 및 응급처치가 가능해져 사망률 및 평균수명이 늘어나 급격이 성장한다. 그리고 도시화로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며 자녀의 양육부담이 커지며 출산율이 급감하며 안정화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두 지역은 아직 열악한 도시화 수준과 심각한 빈곤, 여성의 낮은 교육수준으로 인해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게 된다. 

 현재 동아시아 지역의 인구 감소는 가장 심각한 상태다. 일본은 2040년이면 지자체의 절반이 소멸하며, 한국은 2020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률로 총인구 감소가 시작되었다. 중국은 지금 추세라면 2100년이면 인구의 절반이 감소한다. 다른 아시아 지역도 마찬가지여서 향후 5-10년이면 태국과 대만도 인구 감소가 확실시 된다. 현재 세계 최고의 인구 대국인 인도다 마찬가지인데 낮은 도시화율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인구 성장은 둔화하고 있으며 2050년 이후면 확실히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측된다.

 유럽은 서유럽과 동유럽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서유럽인 인구가 20세기 완성된 후 낮은 출산률로 인구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동유럽은 사회적 영향이 컸다. 이들은 공산권의 붕괴 이후 서유럽과 경제적으로 통합되면서 더 나은 일자리를 향해 대규모 이주가 이뤄졌다. 주로 서유럽 쪽으로 이주가 이뤄졌는데 그래서 동유럽은 서유럽에 비해 더욱 빠르게 인구가 감소했다. 하지만 유럽은 미국보다 제조업이 강하고, 공공복지의 수준이 높아 상대적으로 안정된 인구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선진국 중 인구가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나라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률과 경제력을 바탕으로한 높은 인구 흡입률로 이주가 많다. 하지만 트럼프 이후 이주에 대한 제재가 강해지고 출산률도 낮아지면서 사실상 2020년대 들어 인구 성장이 멎춰버렸다. 인구가 감소하면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감소하며 축소도시가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가장 먼저 등장한게 미국인데 이는 2차대전 후 미국이 탈산업화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조업이나, 탄광 등이 있던 도시 위주로 축소도시가 심각하게 나타났다.

 인구감소는 향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예정이다. 인구 통계요인부터 살펴보면 우선 고령인구가 증가한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서비스와 복지시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다음은 1인 가구 증가로 이로 인해 주택공급과 수요간의 불일치가 일어난다. 셋째는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다. 대부분의 업종에서 노동자의 나이가 40세가 될 때 까지는 노동생산성이 증가하고 이후엔 감소한다. 그렇기에 고령노동자의 증가는 숙련노동자의 부족과 우수인재의 해외유출로 이어지게 된다. 마지막은 아동인구의 감소다. 이로 인해 학교를 비롯한 아동관련 시설의 수요가 감소한다.

 다음은 경제성과에 미칠 영향이다. 우선 소비부분인데 상업활동이 줄어들고, 소비 공간 수요가 줄어들며 판매세가 줄어든다. 인간의 소비는 대개 30세부터 40세 중반까지 증가하며 이후에는 감소한다. 고령층이 다른 세대에 비해 앞서는 소비 부분은 의료비가 유일하다. 둘째는 생산성과 혁신이다. 산업성장이 감퇴하고, 숙련노동자가 줄어들며 역시 고급인재의 해외유출이 일어난다. 셋째는 투자와 자본시장에 대한 영향으로 인구감소로 인한 디플레이션이 고착화하면서 경제 전분야에 기대감이 사라져 자본투자가 크게 감소한다. 또한 기존 시설에 대한 투자 역시 멈추게 된다.

 경제적 평등도 문제가 된다. 우선 지역 간 격차가 확대한다. 신자유주의는 대부분의 국가의 지방산업 및 제조업을 이전시켰다. 그래서 도시 간 격차가 커졌는데 인구 감소는 이를 더욱 가속화한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중심도시는 세력을 유지하거나 더 커질 가능성이 있고 주변 도시 및 축소도시는 쇠퇴가 가속화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이 발생한다. 중심도시는 높은 자산 가격과 고임금의 일자리가 지속될 것이고 축소도시는 자산 가격이 폭락하고 일자리가 더욱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한 낙인효과마저 생겨나게 된다. 이 낙인 효과는 미래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하게 하여 축소도시의 인구 유출을 더욱 증가시킨다.

 재정 및 정부에도 영향이 크다. 공공세수가 감소할 것이고 지자체의 세수는 더욱 줄 것이며 이로 인해 지자체의 서비스가 감소한다. 고령화로 연금과 복지서비스 수요가 증가하여 사회적 지출 수요가 커질 것이다. 축소도시는 텅 비게 되어 공공시설과 인프라가 잉여화한다. 

 주택시장에서는 주택공급과 수요가 불일치 하게 된다. 빈집이 증가하고 도심과 교외에서 나타나는 인구의 공간적 재구성이 일어나다. 그리고 언급한 것처럼 축소도시에서는 인구의 감소로 주택의 가치가 하락한다. 이로 인해 주택 투자가 줄어들고 주택의 가치도 감소한다. 

 마지막은 양극화와 분리의 문제다. 이미 신자유주의로 인해 양극화와 자산 차이에 따른 분리의 문제는 심각하다. 하지만 인구 감소는 이를 더욱 악화한다. 중심도시와 축소도시 간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이로 인해 시민은 참여가 감소하고 분노로 인해 포퓰리즘과 민족주의의 지지가 더욱 증가한다. 이런 현상은 책 '장벽의 시대'에 잘 언급되어 있다.

 인구감소는 이처럼 전방위적 악영향을 가져오지만 설상가상으로 인류에겐 기후 문제도 있다. 기후변화는 도시에 많은 영향을 미칠 예정인데 기온 상승으로 인한 폭염의 증가, 해수면 상승, 심각한 폭풍, 산불 증가, 가뭄과 사막화 증가, 식량 생산 감소, 강제 이동과 이주의 증가, 경제활동 감소와 경기의 침체다. 

 기후 위기로 해수 온도와 염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날이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멕시코 만류가 아예 멈춰 버릴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인도와 남미, 서아프리카는 강수가 감소하고 유럽은 폭풍이 증가하고 기온은 내려가며 북미는 폭풍으로 해수면이 상승하게 된다. 인간이 만든 도시는 상당수가 강가와 해안가에 위치하는데 기후 위기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폭풍의 증가는 도시의 유지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도시는 인구 밀도가 높고 인간이 만든 복잡한 기반시설이 가득하며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여 있어 기후위기에 더욱 취약하다. 열이 잘 빠져나가지 않아 폭염에 시달리게 되고, 배수가 잘 되지 않아 홍수가 나기 쉽기 때문이다. 라고스, 방콕, 자카르타는 대표적 저지대 도시로 원래 홍수에 약하다. 이들 도시는 인구 증가로 인한 식수 부족으로 수십년간 지하수를 마구잡이로 사용하여 도시가 상당히 빠르게 침하되고 있다. 이들 도시는 모조리 포장되어 있어 강수로 인한 지하수 공급도 불가능하다. 이 같은 아시아의 도시들은 기상 이변으로 도시의 식료품 가격이 오르고 전력이 부족하고, 질병창궐과 상수도 공급중단, 폭염, 대기오염에 시달릴 것으로 예측된다. 

 기온의 상승은 경제성장과도 밀접하다. 향후 세계는 인구 감소로 인한 수요의 감소와 숙력노동자의 감소 및 투자의 후퇴로 경제가 후퇴할 것 가능성이 놀다. 기후 위기는 여기에 기름을 붙는다. 연구결과 연평균기온 13도까지는 노동생산성이 향상된다. 하지만 그 이상이 되면 노동생산성은 하락한다. 더위에 신체가 지치는 것이다. 그래서 2100년가지 기후 변화로 인해 전 세계 생산량은 무려 23%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논의는 책 '기후위기 부의 대전환'에 자세히 정리되어 있다. 

 기온의 상승으로 식량생산의 감소도 예측되는데 아프리카 남부, 서아프리카, 지중해 분지, 미국 서부등 많은 지역에서 농업생산량이 감소된다. 특히, 지중해 지역과 미서부는 세계의 식량창고이기에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반면 캐나다와 시베리아, 북유럽은 농업생산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에 세계는 전제주의 국가의 등장으로 지정학적 위기도 갖고 있다. 90년대 초 동구권의 붕괴로 세계는 미국과 서구사회를 필두로 한 자유민주주의에 포섭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 헝가리, 튀르키예, 중국 등의 국가들은 오히려 더 독재화하였다. 이들은 오히려 경제적으로 성공함으로서 정권의 회복력과 유지력이 갈수록 강화하였다. 그리고 아직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전제주의 국가들에게도 하나의 모범적 사례가 됨으로써 여타 국가들의 자유민주주의로의 전환도 늦추었다. 이 정권들은 서구와의 경쟁으로 기후 변화와 인구감소라는 세계적 과제의 대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거나 협력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파도를 해치기 위해 책은 지속가능하고 지역화한 경제와 사회의 구축을 주장한다. 여기엔 4가지 원칙이 있다.

1. 올바르게 통치하고 바람직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공공 민간의 협력, 도시 주민. 민간 지도자 간의 개방적인 의사소통지원 및 신뢰 형성이다.

2. 모든 수준과 모든 연령에서의 교육을 포함해 지역 사회의 인적 자본구축 노력

3. 자연환경과 건축 환경에서부터 안전, 양질의 의료 서비스, 식량 안보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모든 이의 삶의 질 개선 노력

4. 환경측면에서 지속가능성을 지역 경제의 모든 측면에서 통합 노력


 이런 식으로 지역화가 이뤄진 기반에서 소도시간 네트워크가 이뤄지면 생산이 늘고 교육이 높아지며 세계경제에 대한 의존성이 낮아지게 된다. 지속가능한 도시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인데 포용적이고 참여적 지역사회, 경제적인 구조(로컬푸드 시스템, 분산생산, 분산된 에너지 공급, 재택 및 하이브리드 근무), 환경과 삶의 질 관련 구조(수자원과 녹지 인프라, 예술과 문화, 공공영역), 사회적인 구조(고령화 친화, 네트워크한 교육기회, 네트워크한 의료서비스와 시스템)이 함께 달성되어야 가능하다. 책 '지방도시 살생부'에서도 비슷한 논의를 펼친적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한국적인 측면이 더 강하게 드러나 있어 같이 살펴볼 만하다.

 저자는 3중고의 위기에도 미래에 미국이 유럽연합과 중국을 제치고 여전히 강국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3가지다. 우선 기후 변화로 미국 남부와 서부 지역이 상당한 고통을 겪겠지만 미국의 전체적인 위치는 중위도 및 고위도로 상대적으로 기후위기에 버틸만한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춥고 서늘한 지역은 인구의 이주를 받을 만한 상당한 여력이 있다. 국토의 상당수나 열대 아열대 및 중부이며 인구를 받을 만한 지역도 상당히 부족한 중국과는 다른 면이다. 둘째는 미국은 인구가 감소세이긴 해도 그것이 가장 최근의 일이고 다른 선진국에 비해 출산률이 높고 젊은 층이 많으며 이주에 대한 수요도 많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미국은 제조업이 부족하고 내수경제 중심으로 경제가 돌아가며 대부분의 식량 및 원자재로 자급자족이 가능해 지정학적 위기에도 강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저자가 언급하진 않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도 한몫을 하게 될게 분명하다.

 인구의 감소는 성장을 멈추고 자본주의에 상당한 제동을 걸 것이란 점에서 인간이 지난 100년 이상 겪어 보지 못한 위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인구의 감소는 기후 위기의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며 인구 감소는 인구증가와 성장이 불러온 여러 역효과를 해소할 가능성이 있다. 인구의 감소는 투자와 수요의 감소, 생산성의 감소로 경제성장을 저해할 것이지만 여기엔 과학기술발달에 의한 생산성의 혁신이란 면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저자는 스스로도 인정했을 만큼 기술의 단기간 발달에 부정적이지만 인구감소와 기후위기, 지정학적 위기가 장기적인 것인 만큼 기술의 발달로 인한 산업생산성의 향상도 충분한 일어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 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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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성 - 2024 세종도서 교양부분 선정 도서
김덕년 외 지음 / 교육과실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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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육의 실패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주도성이 없다는게 가장 큰 원인일 수도 있다. 주도성은 글자 그대로 문제나 과제에 직면했을 때 자신이 주체가 되어 흥미와 집착성, 도전의식을 갖고 그것을 계속 추구하며, 실행과정에서 수정보완을 하는 적극적 태도다. 한국은 교육에 있어, 능력주의와 관주도의 획일적 교육을 실행하기에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교육에 주도성을 상실한 상태다. 특히 학생이 주도성이 적다는 증거는 대학교육에서의 낮은 성취률과, 특히 해외대학에 진학 시 높은 탈락율로 나타난다. 초중고는 뭔가 상당히 주어지고 입시라를 압박이 있지만 그것이 모두 해제된 대학, 특히 해외대학에선 주도성이 없기에 매우 낮은 성취률과 높은 탈락율을 보이는 것이다.

 현재 세계 각 나라는 교육에서의 주도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으며 한국 교육에서도 나라의 명운을 위해 각 교육주체, 특히 학생의 주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한 당면 과제다. 책 '주도성'은 이 부분에 주목하여 주도성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제시하고, 주도성의 특징, 주도성이 잘 작동하는 교육현장의 사례를 제시한다.

 먼저 주도성의 정의는 어떤 일에 주체가 되어 이끌거나 부추기는 행위다. 본인이 주도성을 행사했다는 증거는 자신이 중심에 있는가, 그리고 자신이 변화를 가지고 왔는가로 판별한다. 주도성을 보는 관점은 3가지 인데 개인적 차원, 사회구조적 차원, 생태적 차원이다. 개인적 차원은 주도성을 개인의 특질로만 보는 것이며, 사회구조적 차원은 사회구조안에서 주도성을 보는 것이고, 생태적 차원은 개인이 속한 상황이나 맥락에서 주도성을 보는 것이다. 사실 주도성은 개인이 처한 맥락과 상황이 중요하다는 면에서 생태적 차원에서의 접근이 적절하다. 

 2022개정 교육과정과 미래교육은 학생 맞춤형 교육을 중시한다. 이 맞춤형 교육은 주도성과 관련한다. 교육에서 학생의 주도성이 잘 발휘되게 교육을 실시하는게 학생 맞춤형 교육이 되기 때문이다. 즉, 학생 맞춤형 교육이란 학생이 교육의 전 과정에서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다음은 주도성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1. 교사나 관리자는 학생이나 교사가 선택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했는가

2. 그 선택을 존중했는가

3. 선택에 따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자율성이 있는가

4. 실패한 경우 다시 일어서도록 격려했는가


그리고 다음은 학교장이 교사나 학생이 무언가에 주도성을 발휘하겠다고 할 때 해야 할 일이다.

1. 지원하지 못할 이유를 찾지 못하면 그게 무엇이든 지원한다.

2. 실패하더라도 마음 껏 해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3. 학생의 교육적 성장을 위해서는 교사가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4. 이를 위해서는 벽을 허물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이 주도성을 발휘하려면 아래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1. 자기 성찰

2. 자율성이 보장되는 환경

3. 지속적인 주도성의 발휘


그리고 학생의 주도성이 잘 발휘되는 환경이다.

1. 삶과 진로를 연결짓는 수업

2. 정규교과과정 외의 다양한 학습 경험

3. 외부 강사 초빙 시 세대 차이 없는 인물 초빙

4. 협의 공간의 제공과 간단한 예산 지원


 교육현장은 학생의 주도성은 강조하면서도 정작 그 주 관련자이자 실행자인 교사의 주도성엔 상당히 무관심하다. 이는 과거 관 주도의 암기식 획일적 교육에 교사의 권위가 강했기 때문인데 설사 그 때조차도 교사는 교육에서의 주도성은 없었다. 그저 학생에게 권위가 막강한 획일적 교육의 말단 실행자였기에 그렇게 착시가 일어날 뿐이다. 때문에 교사의 주도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학생주도 교육을 위해서는 교사의 주도적인 수업과 평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별교사는 주도적으로 교육과정을 분석하고 성취기준을 재구조화하여 수업을 디자인해야 학생 주도성이 발휘된다. 그리고 과정엔 주체로서 교사의 주도성이 필요하다. 

 주도성의 특징은 자유와 상호작용, 성장이다. 즉, 다른 사람과 충분히 상호작용 할 수 있으며, 높은 자율성을 갖고 과제와 문제를 해결해가며 본인이 타인과 더불어 성장할 때 주도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주도성을 성장시키는 수업엔 다음과 같은 사항이 고려되어야 한다. 학생의 자율권 존중, 학생들의 참여와 의견수렴, 자기 평가와 피드백 제공, 협력적 학습 환경제공, 성장의 경험 제공이다. 

 교사는 학생을 주도적으로 만들기 위해 3가지 정도를 고려해야 한다. 학생의 성향을 이해하고, 성공경험을 제공하고 지속적으로 피드백하며, 학생이 자신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야 학생은 자신에 맞게 문제 해결을 위해 시간, 자원, 타인과의 협력을 조절하고 여기에 적절한 피드백을 주어 성공경험을 제공할때 자신감을 갖고 매사에 주도적으로 뭔가를 계획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주도성을 위해서는 프로젝트 학습이 적절하다. 프로젝트 학습을 위해서는 어려운 질문과 지속적인 탐구, 실제성, 학생의 의사와 선택권, 성찰, 비평과 개선, 공개적 결과물이 필요하다. 여기서 프로젝트 결과물이 실제성이 높아 그것이 세상에 실제적인 개선 효과를 주는 것이라면 학생의 동기는 크게 높아진다. 그래서 프로젝트 학습에서는 결과물을 반드시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며 이런 공유기회는 학생으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게 하여 주도성을 높인다. 

 결과물을 보는 사람인 청중에 따라 위계를 갖는데 상위로 갈수록 현실에 도움이 되고 실제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학생의 동기와 참여도를 높여 주도성을 높인다. 단계는 교사의 과제-부모님께 보이는 과제-학교 공동체에 보이는 것-학교 너머 일반 청중에게 보이는 것-비평하는 사람에게 보이는 것-세상에 도움외 되는 것의 순이다. 

 생산적인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학생에게 최대한 많은 책임감을 부여하고 학생이 프로젝트의 목표를 인식하고 실행해야 한다. 교사는 프로젝트를 위해 수업을 철저히 디자인하면서도 학생이 익숙해지면 서서히 책임을 이양해야 한다. 이것을 학습에 대한 점진적 이양이라고 하는데 교사의 시범보이기에서 교사학생의 상호작용, 학생의 독자적 실행 적용으로의 순이다.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교사의 코칭도 중요한데 이런 형성평가 시스템으로 피드업과 피드백, 피드포워드가 있다. 피드업은 어떤 목표를 향해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고, 피드백은 지금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조언과 점검, 피드포워드는 다음 단계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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