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른 :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스토리콜렉터 74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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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발다치의 추리소설,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그 네 번째 작품이다. 1-3번째는 출간과 더불어 바로 읽었던 것 같은데 이 시리즈를 지난 몇 년간 놓치고 있었다. 그 사이 이 작품을 포함해 세 권이 더 나온 것 같다. 모두 봐야겠다. 데커 시리즈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추리 소설을 많이 보진 않지만 그래도 데이비드 발다치와 넬레 노이하우스의 책이 재밌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것도 볼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소 이 둘에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다.

 에이머스 데커는 발다치가 만든 독특한 캐릭터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으로 거구를 자랑하지만 뇌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고, 그 다친 뇌가 그를 변화시켜 경찰의 길로 이끈다. 지금은 FBI다. 그는 공감능력과 사회성을 상당 부분 상실한 대신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경험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뇌를 갖게 되었다. 이는 수사엔 축복이기도 하나 지옥이기도 하다. 데커는 자신의 딸과 아내, 처남이 살해당한 장면을 영원히 기억하기 되었기 때문이다.

 4번째 시리즈에서 데커는 배런 빌이라는 곳으로 휴가를 가게 된다. 같은 FBI동료인 재머슨의 자매 집으로 휴가를 따라 나온 것이다. 데커는 재머슨의 조카와 놀아주다가 곧 폭풍우가 들이닥칠 것을 감지한다. 자매집 뒷에는 집이 하나 더 있었는데 데커는 그곳에서 보이는 불빛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다. 곧 폭풍우가 밀어닥치고 데커는 그 집을 향한다. 집을 급습한 데커는 두 구의 시신을 발견한다. 희생자 둘 은 모두 기묘한 방식으로 살해당한듯 했다. 이상한 것은 무척 한적한 이곳에서 범인이 어떻게 이렇다할 목격과 흔적도 없이 두 개의 시신을 이 집에 놓았냐는 점이었다.

 휴가기간임에도 데커는 이를 수사하기 시작한다. 우린 휴가기간이 아니냐는 재머슨의 말에 데커는 바로 휴가니깐 이런 걸 한다는 식으로 응수한다. 사건은 점점 커진다. 사실 배런 빌에서 살인은 총 6건이 발생한 상태였다. 데커는 자신만의 뛰어난 능력을 이용해 이 사건들의 공통점을 찾아나간다.

 마을 배런빌은 몰락한 미국의 한 소도시다. 과거 탄광이 있고, 제조업이 발달하여 마을 사람들은 대개 이 직업에 종사했다. 그리고 그 탄광을 발견해 굴지의 사업가로 부를 축적한 것이 배런 1세였다. 세계사의 흐름처럼 미국의 제조업과 석탄산업을 몰락했고, 배런빌의 사업들도 몰락해버린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활력을 잃은 마을 사람들은 재기하지 못하고, 약에 의존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런 마을에서 6명이나 살해당한 것이다. 

 마을의 높은 곳에는 배런가의 후손을 살고 있다. 그는 대저택을 갖고 있지만 겉모습만 요란할 뿐 오래도록 관리가 되지 않아 폐가나 다름없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된데는 배런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아무 상관없는 후손 배런을 온 마을 사람들이 증오하고 괴롭히며 부자라 생각한다. 실제 배런은 무척 가난한데도 말이다. 

 데커가 수사한 사건엔 지역 경찰이 가세하고, 미마약수사국도 관여하게 된다. 데커가 발견한 시신 두구가 사실 미마약수사국의 수사관들이었기 때문이다. 사건은 마약과 배런가, 그리고 과거의 증오와 사건들이 얽혀 흥미진진하고 복잡하게 전개되어간다. 

 이 과정에서 에이머스 데커는 습격을 당해 머리에 큰 부상을 입게 된다. 데커는 긴 숫자의 일부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를 일시적으로 격게되는데 위험한 상황이나 살인사건 장면을 보면 나타나는 그의 공감각 색채도 사라지게 된다. 반면 데커는 기존의 능력을 크게 유지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챙기고 공감해주는 사회성을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된다. 데커가 변하게 되는 것일까? 아마 시리즈가 계속되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데커는 결국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데 그 뒤에는 배런가와 관련한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그걸 하나하나 긴장감 있고 속도감 있게 전개하는 것이 이 책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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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2-06 0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타이틀만 보고는 왠지 제 생각
이 나더라는 ㅋㅋ

휴가가 필요해~
 
악을 기념하라 - 카체트에서 남영동까지, 독일 국가폭력 현장 답사기 보리 인문학 2
김성환 지음 / 보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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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모든 국가엔 악이 자행되었다. 그리고 그 국가에는 국가가 악을 자행한 시간과 장소, 사람이 있다. 하지만 시간은 지나면 역사가 되어버리고 악을 직접 지시하고 실행한 사람은 무책임하게 죽어 사라진다. 하지만 그 장소만은 어떻게든 남는다. 그 건물이 온전하던 아니든 적어도 터는 남는다. 일각에선 이런 장소를 그대로 온존하여 악을 기억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에선 그 끔찍한 기억을 지워내고 싶어한다. 지워내고 싶은 자는 악에 가세했거나 옹호했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자, 혹은 그 일을 당해서 트라우마를 지우고 싶은 피해자, 혹은 혐오를 보기 싫어하는 일반의 감정이다. 하지만 저자는 과감하게 악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기념은 아니다. 기억에 가까운데 그런 장소를 지칭하는 한국어가 마땅히 없고 기념관 밖에 없으니 이런 용어를 책전체에 걸쳐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 악이 많이 자행된 국가다. 굴곡진 역사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군 세력과 일반 한국인에게 일본인과 친일파가 자행한 악, 분단 후 전쟁 전 혼란기에 여수, 순천, 제주에서 행해진 악, 한국전쟁 중 양 세력에 의해 행해진 악,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독재정권기에 행해진 악들이 그것이다. 이 악은 당시 집권 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한국은 악이 일어난 장소를 온존하기 보다는 없애려는 쪽에 가깝다. 대표적인 것이 김영상 정권때 있었던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였다. 당시에도 논란이 조금은 있었지만 결국 대다수 여론은 그것을 없애는 것 선택했다. 저자는 이것을 온존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저자에게 거의 동의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생각이 좀 다르다. 악의 장소는 온존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맞지만 총독부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과 광화문을 너무나도 철저히 가리고 파괴했기에 그냥 두기엔 좀 그랬다. 부수기 보단 어려워도 인근으로 이전이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사실 우리에게 잘 보존되어 남아 있는 악의 장소는 많지 않다. 저자는 위의 열거된 악이 자행된 시기 중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 주로 주목한다. 당시 공포의 장소는 남산 중앙정보부 6국, 서빙고의 보안사 분실. 남영동의 대공분실이다. 이중 위 두 개는 사라지고 남아 있는 것은 남영동 대공분실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곳에 주목하고, 책에서 그 온존 방향을 주장한다. 

 그리고 악이 엄청 자행되었고 그랬음에도 이를 잘 보존하고 기억하며 교육하고 있는 독일의 사례를 주목한다. 독일은 2차대전 중 반나치체제인사,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유대인, 집시 등을 격리 수용하고 절멸시킨 수용소와 이를 자행한 국가폭력기구들이 많이 있었다. 저자는 이런 독일을 집적 방문해 살피고, 남영동 개발의 해법을 찾는다.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로 대개 독일과 일본을 지목한다. 그들은 엄청난 반인륜적 전쟁 범죄를 저질렀는데 이후의 행보는 우리가 알듯 사뭇 다르다. 양국다 대표 지도자가 공식석상에서 피해국에 사죄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횟수와 진정성에서 독일이 앞선다. 또한 일본은 사죄의 발언을 언제했나 무섭게 자국내 정치인이 그를 뒤짚는 망언을 일삼는다. 하지만 독일은 그런 면에서 일관된다. 또한 자신들이 행한 악의 장소를 철저히 인정하고 보존하는 점에서도 다르다. 일본은 하시마섬을 국제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조건으로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해 기록하기로 하였는데 이런 국제상에서의 약속마저 지키지 않는 국가다. 

 양국이 이렇게 다른 길을 가게 된 이유는 뭘까. 혹자는 냉전 체제를 말하지만 저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한다. 미국은 2차대전의 원흉인 독일과 일본의 전쟁 범죄자를 철저히 엄단하려 하였다. 하지만 발빠른 소련의 움직임이 장애였다. 소련은 유럽에서의 점령지를 빠르게 공산화하였고, 아시아엔선 북한과 중국이 공산화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자본주의 진영을 공고히 하기 위해 냉전의 경계선이 있던 침략원흉국가를 빠르게 정상화할 필요가 있었다. 국가의 재건을 위해선 실무를 행할 공무원과 기업인이 필수였고, 그래서 전쟁에 가담한 이들 상당수가 이렇다할 처벌을 받지 않게 된다. 우린 일본만 그렇다 생각하는데 사실 독일도 그렇게 되었다. 

 양국의 행보가 갈리는 것이 이후다. 저자는 그 차이로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꼽는다. 독일은 나치청산에 사실상 실패한 후, 거의 20년을 그대로 간다. 나치청산 문제를 다시 거론한 것은 바로 68혁명 세대다. 이들은 전쟁에 무책임하게 동조한 아버지 세대를 비방하고, 나치 청산 문제를 20여년만에 독일사회 수면으로 다시 끌어올렸다. 독일의 과거 청산은 크게 5단계로 나뉜다. 우선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68혁명, 1980년 미국에서 홀로코스트 TV방송을 계기로 일어난 반성 운동, 1980년대 역사 수정주의 논쟁, 1990년 통일 이후 동독 과거사 청산 논의다. 

 이처럼 독일의 과거사 청산운동은 2차대전 종전과 같이 완성된 것이 아니고 수십년 간 독일 시민사회의 노력과 그에 호응한 정치권의 반응으로 인해 조금씩 이뤄졌다. 책을 보다보면 기념관이 1980년대나 90년대 지어진 것도 있는데 그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또한 독일 역시 한국처럼 지방마다 정치색이 보수, 진보성향인 곳이 있기에 지역마다의 접근과 시기도 각각 달랐다. 이런 독일의 모습을 보면 결국 일본이 그렇게 되지 못한 이유를 시민사회의 미약한 힘에서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반면교사로 한국 역시 시민사회의 힘이 미약하다면 우리의 악을 인정하고 온존하기 어려워 지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나치 수용소의 역사와 유대인 절멸정책

독일은 1차대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이 생겨난다. 전쟁의 책임으로 황제는 퇴위하고 공화국이 들어선 것이다. 당시 사회주의 세력와 우파세력의 갈등이 극심했기에 바이마르 공화국은 극단적 입장을 배제하고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도록 정치체제를 설립했다. 그래서 공화국을 유일 체제로 삼고, 의회의 권한을 세웠고, 비례대표제를 운영했으며 복지제도와 사회보장제를 도입했다. 또한 평소엔 의회우위의 정부를 운영하면서도 당시 시국이 어지러웠기에 비상시국엔 대통령에 비상대권을 갖춰 혼란을 수습케 하였다. 

 이처럼 바이마르 공화국은 좋은 정치를 시도하였지만 대내외 조건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베르사유조약에 서명했기에 거액의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또한 패전의 책임으로 상당 부분의 영토도 상실하였다. 여기에 1920년대 세계 경제공황이 불어닥치며 민심이 급격히 이반되었다. 이 때 나치당이 등장한다. 이들은 베르사유조약에 서명한 바이마르 공화국을 매도하고, 사회주의 세력이 1차대전에 찬성한 것을 공격하여 이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 결국 1930년 내각은 붕괴하고 대통령 비상대권체제가 들어선다. 당시 대통령인 힌덴부르크는 다수당인 나치당의 당수 히틀러를 총리로 지명한다. 히틀러는 이를 수용하자마자 대통령을 가두고 공산당, 사민의원을 체포한다. 그는 입법권을 히틀러 행정부에 위임하는 악법도 통과시킨다.

 그의 이런 과감하고 위험한 행보에 긴장을 느끼는 독일인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더 시국이 그를 도왔다. 국회방화사건이 일어난 것인데 사실 일탈 개인의 소행이었지만 히틀러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사회주의자 유대인의 일로 꾸민 것이다. 대대적 사정이 이뤄졌다. 전국에 걸쳐 공산당직자, 공산, 사민의원을 체포했고 그 수가 무려 8천에 달했다. 히틀러는 경찰력 뿐만 아니라 개인 친위대인 SA를 활용하였고 이들은 훗날 그 악명높은 SS가 된다. 

 한편 수용인원이 많아지자 전국의 유치장이 부족해진다. 나치당은 유대인이 운영하던 공장을 무단 압류하여 수용소로 개조하였는데 이것이 훗날 독일 전역의 유대인 절멸 수용소가 된다. 이 수용소는 나치 초기 공산당, 사회주의자를 가두는 용도로 쓰였고, 격리와 노동력 착취가 주 목적이었다. 나치는 수감자를 식별하려고 여러 색의 역삼각형을 썼는데 유대인은 유독 노랑색의 정삼각형을 썼다. 그러다보니 유대인이면서 사회주의자면은 별 모양의 식별표를 갖게 되었는데 이게 악명 높은 다윗의 별 수감자 식별표식이 된다. 나중엔 거의 죽음을 의미하는 모양처럼 여겨지게 된다. 당시 핍박받고 처형된 의원수는 무려 96명이었다. 민주주의의 완전한 파괴였다.

 히틀러는 수용소를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대규모 시설로 격상하고자 하였다. 그런 임무를 맡긴 자가 히믈러였다. 히믈러는 또 아이케를 등용한다. 아이케는 전국의 수용소를 총 관리하였는데 그는 작센 수용소를 먼저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모델로 삼았기에 이후 나치의 수용소는 하나같이 비슷한 양태를 띄게 된다. 

 나치는 이후 수용소를 운영하면서 1941년 이후 유대인 절멸 정책으로 전환하였을 때 존더 코만도를 유대인중 선발했다. 이들은 건장한 자들로 하는 일이 동료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인도하고 죽은 뒤 시신을 소각장으로 운반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임기는 고작 6개월로 이후엔 그들도 같은 운명이었다. 잔혹하고 슬프게도 이들은 그 6개월 간의 상대적으로 나은 대우를 위해 이일을 도맡았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동유럽에서 가장 잘 자행되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는 의도주의와 기능주의가 독일 학계에서 충돌했다. 의도주의는 히틀러의 중앙정부 지휘하에 학살이 일사분란이 일어났다는 것이고 기능주의는 기존의 반 유대주의와 더불어 학살이 각 지방에서도 나치의 직접적 명령없이도 자율적으로 집행되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학계는 양자를 절충하는 것으로 나치의 직접 시행과 이에 자극받고 호응하는 지방조직의 자율적 자행이 같이 일어난 것으로 파악한다. 

 동유럽에서 유대인 학살이 잘 행해진 것은 당시 동유럽 사람들의 반감 때문이었다. 이들은 전쟁 이전 소련의 강제병합과 침공으로 반소주의 반공주의가 강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전 유럽에 퍼진 반 유대주의도 있었다. 나치는 해방군처럼 여겨졌고 이들이 선전하는 공산주의자가 곧 유대인, 유대인이 곧 공산주의자라는 슬로건은 아주 잘 먹혔다. 동유럽에서 유대인을 살해하는 일반적 방법은 이들을 숲으로 끌고가 땅을 파게한 후 일렬로 무릎끓려 총살 한 후 다시 묻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손이 많이 가자 나중엔 이동한다고 버스를 타게 한 후, 밀폐시켜 배기가스를 다시 집어넣어 일산화탄소로 죽게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이후 청산가스가 발명되자 버스안에서 가스를 사용하게 되었고 수용소에서도 가스를 이용한 집단 학살이 일반화하였다. 유대인들은 씻는 다는 목적으로 샤워실에 들어섰는데 이후 문이 밀폐되고 가스가 새어나왔다. 가스는 무거워 아래부터 찼다. 그러다보니 가스실에선 죽음의 피라미드가 형성되었다. 가장 약한 아이와 노인들이 위로 오르지 못하고 깔려 가스를 마시고 죽었다. 가스를 피해 그 시신 위로 올라간 여성이 죽었고, 마지막은 그 시신 더미로 올라간 건장한 젊은 남성차례였다. 이렇게 죽음을 맡게 되니 가스실에는 사람이 켜켜이 피라미드처럼 쌓인 죽음의 피라미드가 생겨나게 되었다. 정말 끔찍한 정면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기념해야 하나

저자는 독일의 사례를 살펴보며 기념관에는 조성에 장소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건이 일어난 곳이 무엇보다 기념관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물도 보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픔을 아픔 그대로 드러내어 타인이 그것을 자신의 아픔으로 공감할 수 있을 때 사회적 치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새로 짓고, 치장하는 것은 공감을 약화시킨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한국엔 이런 대표적인 장소가 있는데 바로 4.19기념장소다. 원래 4.19이후 정부는 기념장소를 서울시청앞과 남산에 조성하려 하였다. 그곳이 대표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이런 민주적 혁명을 부정하기도 옹호하기도 어려웠던 박정희 정부는 장소를 아무 상관없는 수유리로 옮겨버린다. 여기에 조형물도 교체해버렸는데 김경승이 만든 애도상과 수호자상은 남여로 매우 비한국적인 우람한 체격의 사람들이 조각되었다. 이런 장소성과 당대 한국인과 아무 상관이 없는 모습은 기념관을 피상적이고 공감이 어려운 장소로 만들어버렸다.

 서대문 형무소도 마찬가지다. 서대문 형무소는 악이 역사적으로 자행된 곳으로 일제와 독재정권이 모두 사용했다. 하지만 싹 새로 만들어버렸고 시기도 특정지어버렸다. 지금의 서대문 형무소는 주로 일제의 악을 드러내는데 사용된다. 또한 새로 제작한 고문 도구 및 마네킹을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역사성을 훼손하였다. 

 저자는 남영동에서만큼은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남영동은 보존되어야 하고 새로 신축할 필요가 있다면 지나치게 현대적이고 외양이 색달라 본래 공포건물의 아우라가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기념관은 피해자를 기억하나 그 범죄를 기획하고 조직, 실행한 사람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정치, 상황도 잘 설명하고 드러내야 한다. 한국은 이런 범죄에 대해 피해자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해자와 그 정치상황에 대한 기억은 필수적이다. 즉, 현장과 피해 기록을 잘 보존하고 국가폭력이 자행된 정치, 사회적 맥락을 기념관을 잘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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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수업 -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예술 강의
문광훈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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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사놓고 몇 년을 책장에 쟁여두다 보게 되었다. 이유는 그냥 지난 주 정도에 비가 와서다. 사람은 당연히 주변 날씨에 영향을 받고 그것은 가끔 책을 고르는데도 작용하곤 한다. 가볍고 그림을 보려고 책을 들췄는데 이런,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다. 책에는 작가가 평생을 살아가며 사회와 역사, 시, 그림, 음악에 대한 자신의 사유가 잔뜩 담겨있었다. 내가 약한 류의 책이었다. 책은 읽을 수록 묘한 느낌인데 활자가 술술 읽혔지만 확 내 것으로 들어오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알 것 같은데 모르는 느낌, 모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이해는 안 되는 그런 묘함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당연히 저자 만큼 사회와 예술을 관련 짓는 경험이 크게 적기 때문이겠다.

 책은 미학을 공부하는 이유부터 시작한다. 역시 이유부터 잘 다가오진 않았고 그럴듯 하단 느낌이었다. '미학은 하나의 문이자 교차로 역할을 하며 다른 것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미적인 것을 통해 감각이 쇄신되고 이것이 사고의 언어의 쇄신으로 이어진다. 현재와 일상을 넘어서는 경험을 갖게 한다. 더 넑고 깊은 지평으로 사람은 안내한다. 미적인 것의 향유를 통해 자기 삶을 살게 한다.'였다. 저자는 미학 수업은 내가 내 삶은 제대로 살아가는데 기여해야 하는 것이고 미학 수업의 목표는 삶의 자발적 구성이라며 책의 문을 연다. 

 저자는 예술에서 사회와 연관시켜 자유와 책임을 중시한다. 예술작품에는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미래의 에너지가 경험의 잔해로 기억 속에 녹아 있다. 이 에너지를 얼마나 넓고 깊게 받아들이냐는 개인에게 달려있다. 이 때 느끼고 생각한 것은 미학의 표현 수단인 언어, 음악, 색채로 표현할 수 있다. 이 때 표현은 자유의 영역인데 여기선 자신의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 자유와 책인 중 하나라도 누락된다면 그 예술은 곧 한 낯 미망에 불과하단게 저자의 말이다. 뭔가를 느끼고 자유롭게 표현하지만 그것을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 사람에 대한 책임과 관련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사람에게 삶의 충일성을 떠올리게 해준다. 사람은 실존적 삶을 살아간다. 뭔가를 선택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기 포기하기도 해야한다. 우리의 시간과 자원, 능력은 한정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와 다른 사람은 내 마음 처럼 절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삶은 어떤 가능성의 구체화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가능성의 포기다. 예술은 불가능한 것들을 상상속에 가능하게 해주면서 이런 충일성을 가능하게 한다. 

 저자는 낭만주의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낭만주의는 예술 장르에 딸, 그리고 나라, 시기, 작가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낭만주의는 무한한 것에 대한 열망이라는 공통 분모를 갖는다. 근원적인 것들은 단조롭고 무한하며 순환하는데 그렇기에 낭만주의의 풍경화는 무한성의 경험을 표현한다.  

 그림을 감상하는 법은 어렵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림은 우선 천천히 음미해야 한다. 우린 관광을 가거나 미술관에 가면 너무 많은 작품과 시간에 쫓겨 급하게 음식을 먹듯 그림을 관람한다. 제대로 소화가 될리 없다. 그림을 보는 방법에 왕도는 없지만 저자는 그림에 나타는 사물의 배치, 빛이 어디에서 나와 어디를 비추고, 인물의 표정이나 팔다리, 그리고 몸의 자세에 대해 살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화가의 기술적 숙련성과 관심, 성격, 문제의식에 대해서도 알고 그림을 본다면 더욱 좋다고 한다. 

 초상화는 역사적으로 정치권력을 가진 자이거나 막대한 부를 가진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화가의 가족과 친구, 일반 서민도 대상이 된다. 그리고 초상화도 과도한 표정이나 제스처등 이상화된 형태에서 탈피한다. 과시, 자랑에서 벗어나 삶 자체, 인물의 성격과 고민, 세계관이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은 렘브란트의 자화상이다. 워낙 유명한데 그는 초상화로 유화만 50개, 에칭 판화는 30개, 소묘로는 10개를 남겼다. 20세부터 죽을 때 까지 매년 한 두개를 그린 셈이다. 그의 모습의 변화는 세월에 따른 노화,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위치의 변화, 세계관의 변화는 매우 잘 담아낸다. 

 발레는 300년 전 궁정 예술의 한 형식으로 주로 군주를 찬미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남자가 의례적으로 춤을 추다 차츰 여성에게도 허용이 되었다. 낭만주의 시대가 되면 요정이나 유령같은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인 표현이 필요해졌고 그로 인해 남자보단 여자가 오히려 더 어울리게 되었다. 발레의상이 소매없는 코르셋이나 종 모양의 넓은 스커트로 줄어든 것도 이 때다. 치마폭이 넓어야 아래 위로 뛸 때 불룩해져서 허공에 뜨는 듯 해 중력으로부터 해방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늘 날의 미가 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름다움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의 느낌에서 시작되기 때문인데 나와 대상은 미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미는 내가 느끼는 주관적, 감각적인것이면서도 다른 사람도 같이 그것을 느낄 수 있기에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는 감각과 사고, 개인과 사회를 이을 수 있으며 그래서 바른 미는 현실을 성찰할 수 있다. 하지만 감각만이 있는 미는 반쪽짜리다. 이것이 사유와 연결되어야만 한다. 감각과 사유가 같이 있는 참된 미는 나와 타자와 현실과 이념을 잇는다. 이 이어짐 속에서 두 세계는 대립을 벗어날 수 있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시도 언급한다. 사실 나는 시가 매우 어렵다. 시집은 정말 짧은데 나는 내가 경험한 생각과 느낌을 주변 사물이나 다른 것에 잘 비유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시인이 비유한 것도 잘 와닿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이걸 시간과 공을 들여 붙잡고 싶은 욕구도 딱히 없는 편이다. 그 시간에 다른 지식책과 이야기책을 보는걸 더 선호한다. 저자도 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는 사물 삼투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삼투적인것은 대상 속에 작가가 감정을 투사시켜 마치 내가 그 대상인 것처럼 느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즉, 시인은 자기만의 중얼거림이 아니라 무엇을 기대어 그것을 상상으로 관통하면서 자신을 표현한다. 시의 언어를 빗대어 말하기 또는 이미지의 비유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독일어로 교양은 bilden이고 영어로는 build가 된다. 즉, 교양은 미리 만들어졌거나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다른 무엇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성과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교양있는 사람은 스스로 만들어서 된 사람이다. 문화는 인간 삶의 의미 있는 활동 전체를 말하는 것인데 그래서 교양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삶의 문제가 된다. 지금 내가 내 삶과 현실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면 스스로 만들기 위해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살아간다면 나는 이미 교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양은 이렇기에 당연히 사회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고양의 형성 이념은 타인에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상호의존성이기도 하다. 교양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반드시 타인과 사회는 연관된다. 혼자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고 우리는 관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주체는 대상과의 이런 만남을 통해서 자기의 감정과 사고 판단련과 행동력을 검토 성찰하게 되는데 그래서 교양 개념은 윤리적, 정치적 차원을 갖게 되기도 한다. 즉, 교양은 자유로운 자기 창출이면서도 더 온전한 인간으로 변모하는 해방의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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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력 시대 - 재야생화되는 지구에서 생존을 다시 상상하다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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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지구 역사에서 등장한 생물 중 자신들의 번식이란 측면에서 유래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드물어야만 하는 생태계 최고 포식자의 위치를 차지하면서 그 개체수가 무려 80억개에 이르렀고, 주변 환경을 높은 지능과 사회성을 바탕으로 한 문명의 구축으로 자신에게 맞게 완전히 개조하여 사실상 환경에 의한 절멸과 진화 압박에서도 거의 벗어났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성공 뒤에는 그림자도 같이 짙다. 너무 많이 먹어 인간은 상당수의 비만 인구를 갖게 되었고,이로 인한 건강문제와 높은 사망률로 막대한 돈을 쓰게 되었다. 반면 비만으로 고생하는 수를 상회하는 다른 인간들은 굶주림으로 여전히 고생한다. 환경 문제도 발생했다. 비록 지구의 모든 생물이 의존하고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태양에너지가 거의 무한히 공급되지만 물질이나 쉽게 쓸수 있는 에너지는 거의 바닥났다. 그리고 과거의 축적 에너지를 마구 잡이로 쓴 결과 상당한 오염과 기후위기라는 결과를 불러왔다. 현재로썬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한 사회 내에서 인간들 간에 가진 것의 격차도 문제다. 극도의 효율화로 지구에서 착취해낸 부가 그나마도 인간 소수에게 집중되었고 나머진 매우 적은 것을 얻으며 효율화의 논리로 가진 자들에 의해 점점 발전하는 디지털 도구로 강하게 통제되고 있다. 훌륭해 보였던 정치체제인 대의 민주주의도 상당한 한계를 드러내며 실패하고 신뢰를 잃었으며 어느 덧 다음의 체계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인간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 종을 유지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의 다른 생물종들과 함께 나아가고 생존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책 회복력 시대는 현재의 문제를 강하게 진단하고 이리 된 역사적 기원과 여러 생각과 변화들, 향후 변화해야할 우리의 생각과 체제, 과학, 생각에 대해 이야기 한다.

 

1. 인간 사고 방식의 변화

 인간은 원래 원시시대 물활론적 사고 방식이 강했으며 다른 생물체들보다는 확실히 환경 적응력이 뛰어났지만 여전히 묶여 있어 자연과 자신을 관계짓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문명의 발전과 사회가 커지고 인간이 자연을 활용하고 착취하는 능력이 강해지며 사고 방식이 점차 변화한다. 중세 봉건사회만 해도 인간은 지구가 신의 창조물이며 아담과 하와의 후손에게 신이 인간을 맡겼다는 인식을 교회가 견지했다. 신이 내림차순으로 물려준 창조물이므로 감히 자연을 소유한다는 개념보다는 점유한다는 생각 정도를 했었다. 

 529년 몬테카시노의 베네딕트는 베내딕트 회를 창시하고 가장 중요한 규칙으로 게으름이 영혼의 적이라 규정한다. 이는 기록상 시간의 흐름을 희소한 자원으로 인식한 최초의 시도였다. 인간사회에서 효율성을 측정하는 하나의 척도인 시계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된 순간이었다.

 르네상스 시기엔 선형 원근법이 발명된다. 이는 인류가 공간을 인식하는 방법을 바꾸었는데 공간의 수학화에 영감을 주어 현대적 지도 제작의 도구와 기법을 제공했다. 원근법으로 인해 시선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평가되고, 크기가 조정되고 , 포획, 수용, 사유화의 잠재적 대상이 되었다. 인간은 관찰 대상을 응시하고 수학이라는 측정 수단을 통해 연구 중인 현상을 객관화하고 파악하는 초인적 관찰자가 된다. 또한 원근법으로 인해 청각 보다는 시각 우위의 문화가 형성된다. 과거 유럽은 청각 문화가 발달해 대부분의 계약을 증인이 있는 앞에서 구두계약했다. 하지만 시각적 문서로 대체되었고 청각 문화가 공동체 개인간 거리를 좁히는 문화인 반면 시각 위주 문화는 거리를 멀리하고 개인적 공간을 탄생시킨다. 공동체보다 개인의 탄생이 우선시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인쇄술이 등장한다. 인쇄술의 발달로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모두 가두는 변혁을 하게 된다. 인쇄물로 인해 구전땐 없었던 특정 지식에 대한 개인 저작권의 개념이 생겨난다. 그리고 인쇄로 인해 널리 퍼진 책은 시간 자체를 포획하고 격리시켰다. 사실과 진실에 대한 구전 감각은 원근법에 이어 인쇄물로 인해 완전히 주변부로 밀려나게 된다. 인쇄는 다양한 토착어와 방언도 없앴는데 책을 팔려면 아무래도 하나의 공통 언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쇄혁명 후 농경, 목축, 도시 개발로 유럽은 삼림이 크게 감소한다.

 영국은 대안을 석탄에서 찾았는데 문제는 이 석탄을 파기 위해 일정 깊이로 파고 내려가면 반드시 물이 차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물을 퍼내기 위해 증기기관을 발명한다. 그리고 1780년대 석탄 연소 중기기관이 산업에 적용되었고 증기기관차가 등장해 1830년대 시속 98km로 이동한다. 시간의 장벽이 사라지고 이동거리가 단축되었으며 교통과 물류에 엄청난 영향이 왔다. 배송속도, 시간, 계절의 영향과 장벽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새로운 에너지원과 이동 물류방식의 유럽과 미국을 1890년대까지 시공간적으로 강하게 압축했다. 그리고 경제 사회활동을 움직이기 위해 효율성 개념이 사회의 지배적인 주제로 자리매김한다. 이동이 빨라지면서 각 지역마다 제각가인 시간을 맞추기 위해 표준시가 도입되게 된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며 자연에 대한 소유권 개념이 생겨난다. 로크는 사유재산권을 빼앗을 수 없는 자연권이라 주장했다. 그는 지구의 공유지에 대한 지배를 신의 위대한 존재 사슬을 토대로 한 공유에서 각 개인이 지구의 일부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로 바꿔냈다. 

 20세기초 이 효율성을 극한으로 밀어 붙인게 테일러 주의다. 효율성의 핵심은 마찰, 즉 경제활동의 속도와 최적화를 늦추는 중복과 반복을 제거하는 것이다. 테일러는 이를 위해 경영진이 생산과정 모든 단계에서 모든 노동자의 거의 모든 움직임을 통제하는 분업 시스템을 고안한다. 놀랍고도 당연하게도 테일러주의는 효율성을 신봉하는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간다. 가정에도 도입이 되었고, 학교시스템에도 도입되어 고도로 표준화한 교육이 이뤄진다. 

 테일러 주의는 포드주의로 이어진다. 포드주의는 빈약한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당시엔 혁명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면서도 노동자의 급여를 늘리는 방식을 실시했다. 다만 대량생산에 초점을 두다보니 유연성이 부족하고 실시간 수요 변화대응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를 개선한 것이 도요타의 린 생산 방식이다. 표준화한 제품라인의 대량생산에 의존하는 회사는 비용절감을 위해 최대 역량으로 라인을 돌리게 된다. 시설비가 워낙 많이 들어갔기에 항상 최대로 가용하려고 노력하며 경영진은 생산 차질을 없애려고 추가 인력과 과잉 생산을 재고로 돌려 이를 해결하려 한다. 다만 제품 라인의 교체가 비싸 고객은 대량생산으로 인해 저가의 혜택을 보는 대신 신제품과 다양성을 포기해야 한다. 

 린 생산방식은 이런 문제점에 주목해 민첩성과 유연성을 도입했다. 시장의 현재 수요에 맡게 생산하면서 고객의 개별 선호에 맞는 다양한 제품을 동시에 제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런 유연성을 위해 린 생산 방식은 노동력을 협력하는 팀으로 구성한다. 상명하달식에서 상호대면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다양한 팀이 실시간으로 현장 문제를 해결해 가동 중지시간도 줄어든다. 그래서 린 생산 방식은 결함, 고장, 지연, 관료주의, 재고의 다섯가지를 제로화한다. 린 생산 방식은 효율성을 무척 높이지만 역시 문제가 있다. 여전히 권위가 형성되어 있으며 노동자에 요구하는 사항이 더욱 까다롭게 비민주적이다. 모든 직원은 정신 육체적으로 더욱 착취당한다. 그결과 기업은 더욱 효율성을 높이게 된다. 즉, 린 생산 방식은 테일러 주의의 강화에 불과하다. 

 현대 기업은 여기서 더 나아가 노동자에 게임 요소 마저 도입한다. 테일러 주의와 린 생산방식에서 노동자는 자신이 착취당하고 있음을 인지한다. 하지만 게임 요소는 이런 착취를 은폐하기에 노동자는 게임 방식으로 적극 참여하기 까지 한다. 

 3차산업혁명이 가져온 디지털 기술의 발전인 인간 효율화를 더욱 극대화한다. 인간이 개발한 GPS는 지구의 자원을 수용 사유화하고 소비하기 위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합리화도구다. 인간이 구축한 스마트 디지털 인프라는 시간 조정과 동기화로 모든 것을 연결하고 통제한다. 재계와 각국의 정부는 사이버 공간 전반에 걸쳐 과거의 자료를 모두 수집하여 분석하는데 많은 자산을 쓰고 있다. 이는 미래를 그 데이터를 분석한 인공지능을 개발하여 미래를 예측, 설명, 규정, 선점하기 위해서다. 이런 예측에 의한 선점은 앞으로 생산성과 효율성을 더욱 극대화할 것이 자명하지만 문제가 크다. 이는 타인의 미래를 확장된 잠금 상태로 유지하고 특정 인구가 자기 나름의 의제에 따라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막아 궁극적으로 권한 강탈의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주체성과 능력도 약화시킨다. GPS의 사용으로 인간은 이동방향과 공간을 인식하고 그려내는 능력이 상당히 약화되었다. 또한 몰입형 가상 신세계로 인해 문해력과 어휘력이 급감하였고 이로 인해 의사소통능력이 감퇴하였다. 그래서 정보처리 능력을 증가한 반면 비판적 사고에 중요한 숙고와 분석, 상상력을 줄었다. 때문에 개개인의 인지 주체성은 상실되고 있는 반면 충동성만 증가했다. 전반적 인지능력이 현저히 저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위기와 정치위기, 경제위기가 몰아치고 있다. 커다란 위기상황인 것이다.


2. 과학이 변해야 한다.

 뉴턴에게 물질과 운동하는 우주는 질서 정연하고 계산할 수 있으며 자발성이나 예측 불가능성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즉, 질적인 세계가 아닌 계산하고 측정할 수 있는 양적 세계였다. 수학은 세상을 이해하고 착취하는 과학이 디었고 뉴턴은 계몽주의 시대를 수학화했다. 뉴턴의 운동에서 시간은 가역적이었다. 시간은 의미가 없어서 그가 만든 이 탈시간적 도식은 경제활동의 모델링 도구가 되어 경제학을 현실과 동떨어지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근대 과학적 방법론은 몇 가지 함의와 공통 방법론을 갖게 되었다. 우선 체계적 ㅣ실험과 귀납 연역적 추론, 가설 및 이론의 형성 실험이다. 다음은 지식이나 예측, 통제의 목표와 객관성, 재현성, 단순성, 과거의 성공등 모두에게 알려진 일련의 최우선적 가치와 정당성의 동반이다. 그리고 방법론으론 전체 집합을 이해하기 위해 종종 단일 현상을 분리하고 구성요소와 부분의 작용을 관찰하여 이론을 만드는데 중점을 두었으며 이 과정에서 과학자가 편견이 없다고 가정하였다. 하지만 실제 세계는 전체에서 분리될 수 없으며 지구 자체와 지구상의 거의 모든 물질이 완벽한 폐쇄적 체계가 아니기에 부분을 완전히 분리 될수 없다. 또한 과학자 역시 편견을 갖고 과학 연구에 임하며 이 과정에서 지원을 받는 단체에 의해 이득을 취하고 그들을 위해 연구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때문에 과학은 다음처럼 바뀌어야 한다.

 우선 자연을 정보와 에너지의 교환을 통한 자신의 구조적 형상을 조직화할수 있는 개방적이고 역동적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 자연은 새로운 상황과 패턴, 환경, 상태에 맞춰 스스로를 변모시키고 적응한다. 그래서 과학은 향후 부분의 특성에서 시스템 전반의 속성으로, 대상에서 관계로, 폐쇄적 시스템에서 개방적 시스템으로, 복잡성의 측정에서 포착 및 평가로, 관찰에서 개입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불가능한 예측을 버리고 기대와 적응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3. 기업도 변해야 한다.

 인간은 문명을 발전시키며 매번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 인프라 패러다임의 변혁은 사회집단의 존립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세 가지 구성요소의 결합을 수반하는데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과 에너지와 동력의 새로운 원천, 새로운 물류 운송 방식이다. 그리고 우린 두 번의 인프라 변혁을 경험하고 세 번째 인프라 변혁을 실시하고 있다.

 1.2번째 인프라 변혁은 1.2차 산업혁명이다. 이중 2차 산업혁명은 주로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것으로 중단없는 운영을 위해 돈과 시간, 인력의 광범위한 지정학적 군사적 투입이 필요했다. 1.2차 산업혁명의 인프라는 중앙 집중형 설계였는데 상의하달 피라미드 식으로 작동하고 지적, 물리적 재산권이 계층별로 사유화되는 경우에 최상의 효율성을 보였다. 이런 중앙집중 인프라는 투자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충분한 규모의 경제를 창출하기 위한 수직적 통합이 요구되었고 그에 따라 자원과 생산수단을 선점한 소수가 신흥 시장을 장악하고 각 산업의 전체 및 부분을 지배했다. 철도, 전신, 전화, 송전, 송유, 자동차 산업등이 이 시기의 것으로 그 개발과 배치, 운영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여 정부 및 일부 가문도 자체 운영이 불가능했기에 주식회사 및 금융자본, 초기 자본가 계급이 발달하게 된다. 

 1.2차 산업혁명의 인프라는 기업이 주주들에게 계속 증가하는 이익을 줄 수 있또록 효율성을 최적화하였다. 또한 사실상 제로섬 게임으로 다수보다는 소수가 더 많이 보상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3차 산업혁명은 다르다.

 3차는 인프라가 중앙집중이 아닌 분산형으로 설계된다. 이것을 사유화를 피해 개방적으로 투명하게 유지될 때,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를 개방적으로 투명하게 유지할 때 가장 잘 작동한다. 네트워크와 플랫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더 많은 사회적 자본을 축적된다. 3차 산업의 인프라는 플랫폼에 대한 중앙집중형 명령과 제어를 어렵게 하는 버전으로 계속 자체 진화한다. 데이터의 수집과 저장, 분석과 알고리즘의 관리를 수직적으로 통합된 거대 글로벌 기업에서 지구 곳곳에 분산된 첨단 기술 중소기업으로 옮기는 수평적 공간이동이 강제진행된다. 

 현재 자본주의의 버팀목은 시장 교환가치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력을 물건의 가치와 분리시켰는데 그래서 최적의 시장은 한계비용으로 판매하는 것이 된다. 시장엔 다운 타임이 존재한다. 이는 거래 시간 외에도 판매자가 재고, 임대료, 세금, 급여, 기타간접비를 처리해야 하는 것으로 판매자는 여기에 마케팅, 광고, 구매권유도 해야한다. 이 모든 것을 비용으로 시장 교환에서 더 많은 시간과 비용 추가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한계비용이 증가하는데 디지털시대는 이 한계비용을 거의 0으로 수렴시킨다. 

 상업활동은 시장의 시작-중지의 거래에서 네트워크의 지속적 흐름으로 바뀐다. 네트워크엔 다운 타임이 필요치 않다.경제는 소유권에서 접근권으로, 시장의 판매자와 구매자에서 네트워크의 공급자와 사용자로 전환된다. 한계 비용은 이 과정에서 디지털 상호연결로 더 낮아지며 네트워크의 지속적인 서비스 공급과 트래픽의 종단없는 흐름으로 한계비용이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지식공유에서 에너지 공유, 차량 공유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제활동이 잠재적으로 서비스가 된다. 서비스 제공자는 일반적으로 자산을 소유하기에 과거와 다르게 수명이 긴 고품질의 물건을 제공하게 된다 그리고 시스템은 과거처럼 효율성이 아닌 회복력을 강화할 대리 기능성을 갖춘 공급망과 물류배치에 관심을 두게 된다. 

 결국 3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경제적 변화가 일어난다. 소유에서 접근으로, 판매구매자 시장에서 공급자 사용자 네트워크로, 제로섬에서 네트워크 효과로, 성장에서 번영으로, 금융자본에서 자연자본으로, 생산성에서 재생성으로, 선형 프로세스에서 인공지능 프로세스로, 부정적 외부효과에서 순환성으로, 수직통합형경제에서 수평통합형경제로, 중앙집중형 가치사슬에서 분산형 가치사슬로, GDP에서 QLI로, 세계화에서 세방화로, 글로벌 대기업에서 유동적 네트워크에 블록체인으로 결합한 민첩한 첨단 중소기업으로, 지정학에서 생물권 정치로다. 


4. 다양성, 적응성, 회복력의 시대로

 2008 경제위기, 코로나 팬데믹, 미중갈등,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인류는 효율성에만 집중한 사회의 대가를 치뤘다. 비용만을 생각한 글로벌 공급망으로 인해 여타 선진국에서는 웬만한 제품하나 생산할 능력을 이미 잃고 있었으며 여러 환경문제와 정치문제, 국제문제에 대해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효율성을 버리고 다양성과 적응성을 기반으로 하는 회복력 시대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당면한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매우 회복력이 강한 종이다. 과학계에서는 초기엔 인간이 홍적세에 이미 완성되었고 거의 진화하지 않았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하지만 이후 인간은 긴 환경 변화를 거치고, 스스로 만든 문명과 공진화하며 상당 부분 또 다시 진화했고 뛰어난 적응성을 기반으로 한 회복력을 보인 존재다. 즉, 회복력은 인간 종의 주요 특성인 것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발전된 기술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시대다. 디지털 시대에는 인간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인 자유의 개념이 변호하게 된다. 본래 자유는 서구에서 인클로져 운동으로 경작지에서 쫓겨난 수백만 농노에게 강제로 주어진게 시초다. 그들은 노동력을 도시의 일터와 공장에 제공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대가로 보상과 자유계약이 허용되며 자유로운 산업노동자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그들에게 그 자유는 강제로 주어진, 기존 질서와 정체성을 흔드는 혼란스러운 타율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해야하는 부담을 가졌기에 초기의 자유는 부정적 자유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이 자유는 배타적 권리와 자급 자족의 원리, 타인에게 예속되지 않은 섬 같은 개인을 양성하는 자유였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자유는 자율성과 배타성이 아닌 접근성과 포용성을 기반으로 한다. 디지털 세대는 확산중인 플랫폼에 참여할 수 있는 접근성으로 자유를 판단하며 그들에게 포용성은 수평성의 확장이자 성별, 인종, 성적 지향, 심지어 살아 있는 다른 생명체들과의 제휴가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 자유는 모든 구성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자유이며 전 세계적 디지털 공유자산으로 축적하는 사회적 자본을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접근성과 포용성은 향후 새로운 정치의 기반은 동료시민정치의 근간이 된다. 

 앞으로 회복력 시대의 정치는 하향화하여 거주하는 생태지역과 최대한 밀접한 수준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 이는 시민 사회와 대의 정부 사이에서 중개자 구실을 하는 분산형 동료 시민 거버넌스다. 

 인간은 공감하는 동물이다. 인간의 공감 능력은 인간 인프라가 새로 개발되어 구축되고 전개될 때 마다 그 범위를 확장하여 왔다.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정령 숭배의식이 공감의 기반이었고, 수자원 농경 제국 시대에는 신학적 의식이, 그리고 산업시대에는 그것을 넘어선 국가, 이념 등의 이데올로기가 그 역할을 했다. 공감의 확장은 인프라의 확대로 인류의 시공간적 연결성이 확대되면서 같이 확장하였다. 그리고 회복력 시대의 공감은 생명애 의식이 된다. 

 생명애 의식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선 교육의 변화가 중요하다. 생명애 의식은 인간에겐 어느 정도 본능적인 것으로 유아와 미취학 시기에 강하게 나타나다 전통 교육에 편입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된다. 생명에 의식은 근복적으로 관계성에 대한 애착이다. 때문에 어릴 적부터 보호자와의 애착 관계, 그리고 사회 안전망 확보를 통해 불안을 제거하고 커다란 사회 역시 애착관계를 사회 구성원 개개인과 형성해야 한다. 아이들은 자연과 밀접한 숲속 학교를 다니는게 좋다 . 숲은 자연에의 애착을 형성하게 한다. 생명애 의식은 공감에 기반하긴 하나 감정적인 접근만은 좋지 않을 수 있다. 공감은 단순한 감정 느낌이라기 보다는 존재의 본질과 그것과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체계화한 인지 경험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공감 신경 회로는 자신을 초월하고 삶을 경험하며 그것을 활용해 연결을 생성하고 주변의 세상에 적응하도록 끊임없이 자극을 보낸다. 우린 이런 적응성이 있기에 회복력 시대를 열수 있으며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지구 공동체의 일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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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격차 해소를 위한 새로운 도전 : 보편적 학습설계 수업 - 모두의 존엄, 모두의 성장을 꿈꾸는 교육
조윤정 외 지음 / 살림터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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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엔 보편적 설계란 것이 있다. 과거 건물은 권력을 가진 특정인의 권위를 세우거나, 일반적인 사람의 특성만을 고려하여 설계되었는데 보편적 건축은 일반인, 장애인, 어린 아이, 왼손 잡이 등 모든 사람을 위한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특징으로 공평한 사용, 사용상의 융통성, 사용자의 지식, 경험과 무관한 쉬운 디자인,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정보, 실수에 대한 포용력, 적은 신체적 노력, 접근과 사용을 위한 충분한 크기와 공간이 있다.

 보편적 학습 설계는 보편적 건축과 비유하여 학습에 있어서도 타고난 유전자와, 가정 환경, 학습 격차, 본인의 성격 등 모두 다른 점을 고려하여 모든 이에게 어울리는 수업을 실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교육은 교육과정부터 수업, 평가에 이르기까지 표준화되어 있다. 표준화된 교육에서 가장 수혜자는 이 표준을 딱 들어맡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 표준을 넘어서는 이들은 너무 쉬워 흥미를 잃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게 되며, 이 표준에 못 미치는 아이는 학습부진으로 낙인찍히고 자신이 학습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난을 받고 자괴감을 갖게 된다. 따라서 보편적 학습 설계는 이런 모든 학습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그에 맞는 교육과정과 활동, 평가를 준비하고 실시하는 것이 된다.

 보편적 학습 설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습자들이 접근 가능하도록 단일 교육과정의 사용, 융통성 있는 교육과정을 광범위한 개인의 능력과 선호도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제시, 간단하고 직관적인 교수로 학습자의 경험, 언어, 지식, 집중도를 고려하여 수업의 복잡성을 조저하여 가장 적합하게 제공, 다양한 표현 수단의 제공, 교육과정에의 참여 독려, 적절한 학습자의 노력수준의 설정, 학습자의 다양한 접근의 허용이다. 

 때문에 보편적 학습 설계는 3가지 원리를 갖는데 이는 3가지 뇌의 네트워크 원리에서 유래한다. 뇌의 3가지 네트워크는 인지적 네트워크, 전략적 네트워크, 정서적 네트워크다. 인지는 우리가 보는 방식을 감지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학습하는 내용에 관한 것이다. 전략은 실행기능과 관련한 것으로 정신 및 운동 방식을 생성 감독하는 것으로 학습하는 방법이다. 정서는 우리가 보는 방식으 평가하고 감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학습하는 이유다. 그래서 인지 전략으로는 다양한 표상 수단의 제공, 전략에 대해서는 다양한 행동과 표현 수단을 제공, 정서는 다양한 참여수단을 제공하여 학습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네트워크는 각각의 세부 전략을 갖는다. 인지적네트워크 즉 표상의 원리에 따른 수업 전략은 학습목표 조직화(다양한 목표와 과제), 질문의 다양화(수준과 특성에 맞는 질문), 핵심 개념 이해(핵심 개념과 원리의 이해가 오래 파지), 미니 수업(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위한 별도의 수업이나 모임), 그래픽 조직자(새로 학습한 내용을 이미 학습한 인지구조에 의미 있게 관련 짓는 시각 자료)가 있다. 

 전략적 네트워크, 즉, 표현의 원리에 따른 수업 전략은 표현 방법 선택, 학습메뉴(반드시 해야 할 것, 선택하는 것, 필수와 선택을 한 후 다음에 할 수 있는 것), 학습 선택판(학습 내용의 다양한 표현 방식 선택), 시행착오 경험 제공, 평가 체크리스트가 있다.

 마지막 정서네트워크, 참여의 원리에 따른 수업 전략으로는 학습 속도의 다양화, 상호작용의 기회 제공, 전문가 팀, 차등적 과제, 학습 일지 등이 있다. 

 보편적 수업 설계는 구체적으로 다음의 순서를 따른다. 우선 사전 단계로 학습자 및 상황 분석과 교육과정 분석이 있다. 전자에서는 학습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학습 환경을 분석하며, 학습의 방해요소 및 확인 분석하고 후자는 성취기준 분석 및 학습 내용의 확인, 교육과정 조망, 교육과정 재구성이 있다. 수업 실행 단계에서는 보편적 학습 설계 목표설정으로 학습자에 따른 개별 목표를 설정한다. 다음은 보편적 학습 설계 수업 계획으로 원리를 적용하고, 그 실행을 위한 교수학습방법과 평가 방법을 구현하는 것이다. 다음은 수업의 실행으로 보편적 수업 설계 전략을 활용한 수업의 실천이다. 마지막은 보편적 수업 설계 평가로 과정중심 평가와 지속적인 피드백의 실시다.

 책에는 보편적 수업 설계를 실행한 초등 사례가 나와있다. 수학과 과학, 국어등이 제시되었는데 학생들의 사전 학습 정도, 다중지능 검사를 통한 원하는 접근 방법등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학습자료를 제시하고, 개별적으로 수업을 진행 평가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교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척 많다. 원칙적으로는 학습자 하나하나에 다가가야 하나 크게 무리지어도 5-6그룹 정도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학습자료도 다양하게 해야하고 평가도 다양하게 해야한다. 교사는 이 과정에 무척 버거우나 그 과정에서 학습자가 개별적으로 성장해나가고 모두가 수업에 적극 참여하여 성취기준에 모두 도달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학습자에 대한 개별적 접근으로 모두가 다르게 나아가니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판과 분노 역시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학습자들의 만족도도 높다. 진정한 학습자로 거듭날 수 있었고 수업에 대한 주체의식이 생겨났고 서로 돕고 협동하며 같이 성장하는 풍토가 생겨났다.

 교육효과는 무척 크다. 하지만 현장의 많은 업무, 학생의 생활지도, 대강화를 절대 해주지 않고 분량도 줄이지 않는 한국의 표준적 교육과정은 이에 대한 장애요소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보편적 학습 설계에 한 번 정도 도전해보는 것은 무척 가치있고 참교육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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