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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ㅣ 더 갤러리 101 2
이진숙 지음 / 돌베개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갤러리101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은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이다. 르네상스에서 낭만주의까지 다룬 1권에 이어 인상주의에서 추상주의까지의 예술 사조와 작가, 작품, 시대를 다루고 있으며 시기는 19세기 중반에서 1차대전까지이다. 1권이 신에서 왕과 귀족, 그리고 평민으로 예술의 주도권이 넘어가며 미술에 인간의 시대가 도래함을 다룬 것이라면 2권은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모든 것이 흔들리고 인간이 소외되는 과정에서의 예술을 다룬 것이다. 때문에 제목이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이 아닌가 싶다.
이 시기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시대가 매우 빠르게 변화한다. 때문에 모든 가치관과 정체성에 흔들리게 되었고 그에 따라 예술도 사조가 상당히 빠르게 변화한다. 19세기 중엽에서 1차대전까지는 근대의 형성기다. 벨에포크와 데카당스의 시기이자 새로운 희망의 20세기와 그와 반대인 절망적 전쟁이 일어난 극단의 시기다. 근대 사회 인간은 마침내 신분과 종교의 속박에서 자유로운 개인이 되었으나 반대급부로 이젠 개개인이 자신이 무엇이 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정해야하는 혼란의 시기였다.
20세기 과학의 발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낙관론을 발전시키기도 했지만 반대 급부로 서구 이외 외 지역에 대한 식민지 착취와 폭력, 자연에 대한 착취가 이뤄졌다. 개개인은 더 이상 사회의 관행에 순응하지 않았으며 그에 따라 통상적 여성상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그래서 팜파탈이 예술의 주 소재가 된다.
1. 라파엘전파, 바르비종파, 리얼리즘,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라파엘 전파는 산업화 이후 부르주아 문화의 속물성에 저항하며 라파엘 이전의 가식없는 미술로 회귀하자는 주의다. 디테일을 중시한 사실주의적 그림이 이들의 특징이다. 바르비종파는 파리 근교의 바르비종에서 활동한 풍경화가들을 가르킨다. 이들은 자연광에서 자연을 직접 관찰하여 그리는 것을 선호했고 자연을 그리는 새로운 감수성과 방식을 가졌다. 리얼리즘과 인상주의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했다. 리얼리즘은 혁명 이후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모습을 진실하게 기록하는 것을 중시하는 사조와 미술과 문학에서 동시 등장했다. 기존의 관점에서 보면 고사하지 못한 주제와 소재도 편견없이 예술로 가져와 다뤘기에 이후 예술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바꾼다. 인상주의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채 속에서 자연 묘사를 중시하는 예술가 그룹으로 그와 더불어 파리 시민의 삶을 미술의 주제로 삼은 본격적 근대 미술운동이다. 하지만 편견없이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묘사하는 객관주의는 결국 개인의 순간적인 경험에 의존하는 주관주의로 전환되는 모순을 야기하기도 했다. 신인상주의는 인산주의의 경험적인 리얼리즘에 반발해 고적주의적 정신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사조다. 점을 찍어 표현하는 점묘파가 대표적이다.
19세기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의 시대로 그야말로 명암이 분명한 시기였다. 산업혁명과 제국주의로 나라로 과도한 부가 들어오고 있었으나 어린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동원되고 착취되어 성년이 되기도 전에 죽음을 맞았고 템스강은 죽음의 강이 되었다. 또한 도덕적으로는 금욕의 시대였지만 그 어느때보다 사창가가 번성했고 식민지에 대한 착취가 정당화된 모순의 시기였다.
이런 시기 밀레는 전통적 삶이 남은 시골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밀레는 당시 주류 아카데미와 반대의 길을 걸었는데 그들은 신화나 역사의 인물을 주로 다뤘다. 반면 밀레는 평범한 시골의 사람들을 그렸다. 이는 사람들의 요구와도 다소 부합되었는데 산업화와 도시화로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향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순되게도 시골의 사람들이 주인공이기보다는 배경이기를 원했는데 밀레가 다룬 시골의 농민들은 마치 영웅처럼 그림의 주인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당대 프랑스인들은 밀레의 작품에 불편함을 느꼈고 미국에서 인기가 좋아 현재 밀레의 작품 다수는 미국이 소장하고 있다. 반 고흐는 이런 밀레의 시골 배경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다.
구스타프 쿠르베는 미술사에서 탄생과 죽음에 대한 태도변화를 가져온 인물로 꼽힌다. 그는 오르낭의 장례식을 그리며 진행하는 사제는 권태스럽고 냉정하며, 이해관계를 다지는 듯한 사람들, 하늘을 잘라낸 듯 그림을 길게 그려 지상의 문제만을 강조하는 그림을 그려냈다.
에두아르 마네의 올램피아도 당시 큰 비난을 받았다. 일단 올랭피아란 이름 자체가 당시 매춘부의 흔한 이름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과감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으며 전통적인 여신처럼 8등신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 인간의 몸을 갖고 있었다. 이는 예술을 관람하는 남성 관객들에게 자신들의 더러운 현실을 마주하게 하는 불쾌감을 안기게 된다. 마네는 이처럼 더러운 현실을 비판하고 그대로 드러내어 직시하게 함을 물론이고 누드는 비너스로만 표현되던 회화의 관행까지 같이 전복시켰다.
드가는 발레리나와 여가수 등 여성을 매혹적으로 많이 그려낸 화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평생 독신이었고 인간혐오 염세가였다. 그가 이런 것은 인간의 마뜩지 않은 감정을 읽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가가 갈던 시기는 영웅이 아닌 범인의 시대였고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필요의 경제에서 욕망의 경제로 이행하는 시기였다. 1852년 몽마르셰 백화점이 등장하고 중산층 부인의 소비가 증가한다. 당시 여성에겐 거의 모든 것이 허용되지 않았는데 그나마 가능한 게 소비활동이었다. 평범한 일상사가 예술의 주제가 되면서 거대담론에 가려진 다양한 인간사가 의식되고 시민사회의 속물성과 부조리를 드러내는 갈등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그럭저럭 잘 굴러가면서 많은 시민들이 권태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드가는 이 만성적 권태를 회화로 잘 표현했다. 압생트 마시는 사람들이나 자두 브랜디 등의 작품에 권태로운 표정이 묻어난다.
과거 회화는 그 주제가 신화, 중교, 역사로 검증받은 내용이었다. 그리고 원근법과 비례등의 장치도 그림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전제는 세상에는 신이 하나이고 진리도 하나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관행에 마네는 의문을 제기했고 미술의 낡은 상상의 질서를 해체했다. 그리고 그림에 담아야할 내용과 그리는 형식에 대해 선입견 없이 자연을 그대로 그리고자 한 것이 인상주의다.
따라서 모네 같은 인상주의에서는 루앙대성당을 그릴 때 여러 장면을 그리게 된다. 매 순간의 변화가 진실이기 때문이다. 모네는 수련 연작을 그리면서 마지막에는 하늘과 물의 구분이 사라지고 물과 수련의 구분도 사라지는데 이는 서양의 전통적 이분법을 넘어선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런 인상주의의 방식은 매순간을 그려야 한다는 불가능한 인상의 함몰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그래서 인상주의는 훗날 상징주의와 추상화로 이어지게 된다.
모네는 눈앞의 생생한 현장을 캔버스에 옮긴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조르주 쇠라는 이 과정을 하나로 체계화, 과학화, 방법화 하려 시도한다. 대부분 인상주의자는 순간의 인상이 중요해서 구상을 위한 스케치를 거의 하지 않았으나 쇠라는 대충 스케치를 하고 공간 배경을 확정하고 인물 없이 배경을 그리고 이후 인물을 그려냈다. 쇠라 이전엔 색을 혼합했지만 그는 점묘법으로 혼합하고자 하는 색들을 점으로 주변에 배치해 혼색의 효과를 드러냈다. 이런 분학주의는 인상주의를 과학 체계화하고자 하는 시도였으며 쇠라는 색조, 색상, 선의 대위로 그림을 체계화하였다.
2. 후기 인상주의, 아르누보
후기 인상주의는 세잔, 반고흐, 고갱을 지칭한다. 하지만 이들은 형식상의 공통점은 없었고 인상주의 이후 현대미술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르누보는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으로 회화, 조각, 건축의 분리는 기초로 하는 시스템이 반발해 공예를 포함한 종합예술을 지향했다. 기존의 역사적 양식을 모두 거부하고 동양적, 장식적 성격을 갖는다.
세잔은 매일 아뜰리에에서 그림을 반복적으로 그렸다. 그리는 소재도 제한되 사과와 정물, 생트빅투아르산과 고향 액상 프로방스의 풍경만을 그렸다. 사람도 주변 인물만을 제한적으로 그렸다. 세잔은 확정된 진리의 모방으로써의 미술을 거부한다. 세잔은 사과의 신화, 실용적 목적을 모두 걷어내고 사과 자체를 바라보는 시도를 한다. 즉, 감각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세잔은 세세히 그리지 않고 사과를 바라 보았을 때의 감각을 상기 시키는 정도로만 된다는 생각으로 그린다. 세계는 풍교롭고 광대하며 아름다우나 이를 표현하는 화가의 재료는 유한하다. 하지만 그중 가장 무한한게 색채다. 그래서 세잔은 색채를 다양화하며 비슷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비슷한 것을 꾸준히 그려나간다.
종합예술을 지향한 아르누보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을 발전시킨다. 당시는 세기말과 벨에포크라는 두 얼굴의 시대였고 소비의 활성화로 광고라는 새로운 창이 열렸다. 알폰스 무하는 광고에서 스타로 유명세를 떨친다. 광고는 불특정 다수에 호소력을 가져야 했는데 이것이 대중성이다. 소비는 욕망의 대중화와 욕망의 민주화를 가져왔다. 이것은 진정한 세속화의 길로 중요한 것이었다. 소비는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특권적 행위가 아닌 유행에 따르는 대중적 행위가 되었다. 하지만 무하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이것을 느꼈지만 그의 조국 체코는 동유럽의 식민지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는 민족주의자이면서 코스모폴리탄이었으며 이를 위해 조국으로 돌아가 헌신한다.
3. 나이브 아트, 야수주의, 입체주의, 미래주의, 표현주의, 추상미술, 아방가르드
야수주의는 입체주의의 주지주의와 대조적으로 주정주의적 성격이다. 표현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입체주의는 하나의 시점은 원근법을 파기하고 다시점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재구성하고자 했다. 미래주의는 기계 문명에 대한 찬양, 역동성과 속도감을 새로운 미의 기준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전쟁찬양과 여성멸시, 파시즘 스캔들을 야기했다. 표현주의는 르네상스 이후의 사조인 자연의 재현보다는 인간의 내적 상태를 구현하고자 했다. 감정의 직접 표현을 위해 형태의 왜곡과 과감한 색채를 사용했고 청기사파, 다리파, 신즉물주의 등의 독일 미술의 주요 특징을 이룬다. 추상미술은 눈에 보이는 자연과 사물을 묘사하지 않는다. 칸딘스키의 추상미술,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가 해당한다. 아방가르드는 군사용어로 첨병이라는 뜻이다. 전위 예술로 관습을 타파하는 혁신적 예술을 지칭한다.
정제된 쾌락주의는 앙리 마티스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베르그송은 인간의 지성은 진화의 최고 산물이지만 창조적 진화를 인식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인간의 본능이 생명과 근본적으로 공감할 수 있기에 지성에서 해방된 직관만이 이를 통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베르그송의 철학은 비지성적, 직관적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마티스의 특징은 단순함에서 오는 힘과 명징함에서 오는 원숙함이다. 당시 화가들은 음악의 조화로움 때문에 음악을 미술로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가 많았다. 그 조화 방법 중 하나가 색채인데 마티스는 초록, 주황, 청색, 갈색 등의 단순한 색채를 사용했다. 마티스는 색채와 관련한 모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였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은 여성의 참정권 요구와 매독등의 공포로 팜파탈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항으로 순종적인 여성인 팜마르질 모두 팜파탈과 더불어 남성을 기준으로 여성을 바라 본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쟁으로 남성의 생산력에 의존하지 않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 등장한다. 독일의 케터 콜비츠는 시대의 아픔과 정신적인 고통을 육체의 언어로 번역한 예술가다. 표현주의 화가들이 대개 소외감이나 근원에 대한 갈망 등 개인 내면에 천착했다면 콜비치는 사회적 이슈를 대상으로 삼았다.
말레비치는 검은 사각형을 그렸다. 그는 작품을 전시장의 동쪽에 전시했는데 이는 러시아 전통에서 동쪽 모서리에 이콘화를 설치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것은 이 그림이 일반적 그림이 아니라는 의미이며 검은 사각형은 절대주의의 신호탄이 된다. 그는 3차원 공간의 대상세계가 진실이 아닌 환영이고 세계의 참된 실재를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말레비치는 예술가는 순수한 느낌의 절대적 우위를 가진 존재로 모든 대상적 사상에서 해방된 우주적 운동을 경험하고 이를 대상 세계와 아무 연관 없이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의 색면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칸딘스키는 자연 그래로의 감정을 표출하는 표현주의와 표면적인 일상만을 다루는 리얼리즘, 인간 내면의 힘을 일깨우지 못하는 탐미주의 모두 낡은 것이라 보았다. 그는 예술이 그동안 잊힌 정신적인 것인 인간의 내적인 필연성에 따라서 영혼의 상태를 드러낼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하는 시대라고 칸딘스키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음악을 참조한다. 칸딘스키는 회화를 인상, 즉흥, 구성으로 구분한다. 인상은 외부 자연의 즉흥적 느낌으로 재현적 요소다. 즉흥은 즉흥적인 정서적 반응으로 무의식, 자연발상, 내재적, 비물질적인 것이다. 구성은 오랜 기간 준비와 예비를 통해 탄생하는 궁극적 예술이다. 그의 구성에서 대상은 사라지고 주체가 파악한 세상의 모든 요소를 조화롭게 재배치하여 완전한 추상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몬드리안은 말레비치, 칸딘스키와 다소 다른 길을 갔다. 말레비치는 현실과 단절하고 4차원의 세계로 나아갔다면 칸딘스키는 인상, 즉흥, 구성의 세 단계를 통해 세상과 가깝고 멀어지는 영혼의 상태를 구현하고자 했다. 이들은 방법은 다르나 주체가 세상을 어떻게 수용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몬드리안의 추상은 현실에서 본질을 추출하고자 했다. 몬드리안에게 색채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는데 빨강은 인간의 육체, 노랑은 이성, 파랑은 영혼을 의미한다. 그는 이들을 조화시키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