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상의 여러 생물들이 적응도를 높이기 위해 협력을 하는 것처럼 인간도 협력을 한다. 인간이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생물학적 장치와 사회문화적 밈에 해당하는 증거는 많다. 의사소통을 위해 생겨난 언어, 기본적으로 처음 보는 타인에게도 협력을 우선적으로 제공하려는 착한 마음, 눈동자의 방향을 상대방에게 공개하는 투명한 공막, 협력을 위해 생겨난 규칙으로서의 윤리 규칙, 종교 및 사회 제도 등이 그렇다. 

 그리고 사람은 협력을 하기 위해 서로를 마주 본다. 서로 마주할 때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서로의 얼굴이다. 협력을 하려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생각과 감정을 알아내야 하는데 인간은 언어 외에도 몸짓 그리고 주로 얼굴의 표정과 눈빛을 통해 그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하건, 회의를 하건, 사랑을 하건, 싸움을 하건, 협력을 하건, 대결을 하건 늘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렇기에 특정인과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는 것을 우린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외면이라 표현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죽일 때 심지어 동물을 죽일 때 조차도 그들의 눈을 가리거나 얼굴을 가리고 보지 않으려 하는 것도 외면이란 단어와 깊은 관련을 지닌다.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감정이 가득 담긴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도 사람은 무엇을 하든 서로를 만나고 얼굴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대면은 사실 매우 당연한 것이기에 그다지 주목 받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2020년 전 세계를 코로나19 팬데믹이 강타하면서 서로 직접 마주하며 얼굴을 마주보는 상황이 매우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대면이란 용어는 새롭게 부각되었고 그에 반대되는 말로 비대면이란 말도 거의 새롭게 주목받았다. 코로나 이전에 과연 비대면이란 용어를 우린 얼마나 사용했었을까. 하지만 대면의 정확한 반대말은 비대면이 아니라 언급한 것처럼 외면이다. 책 대면, 비대면, 외면은 이걸 잘 지적한다. 

 그도 그럴것이 비대면은 원격수업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매체로 어찌되었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부족할지언정 관계를 연결해주는 작용을 해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물리적으로 대면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연결하게 해주기에 사람의 연결이라는 본질적인 기능을 대면보다 잘 시행하는 측면조차 있다. 하지만 외면은 어떤 수단이 있든 특정인과의 관계를 완전히 끝어내는 것이기에 대면의 완전한 반대말이 되게 된다.

 농경사회 이후 산업사회로 접어든 현대사회는 외면의 사회로의 전환이라 볼 수 있다. 과거 사람들은 서구이든 동양이든 자기가 태어난 지역에 거의 묶여 살았다. 직업도 신분도 거의 평민에 농민이었기에 모두 가난했고, 먹고 살기 위해 좁은 공동체에서 서로에게 강하게 의지하며 살았다. 특히 공동 노동이 더욱 요구되는 동양의 벼농사 중심 농경 사회에서 이런 경향성이 훨씬 강했다. 때문에 외면이란게 있을 수 없었다. 생존을 위해 서로의 협력이 강하게 요구되었고 이로 인해 관계는 강화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 사회가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 도시에 제조업 및 많은 서비스 업이 생겨났고,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신분에서도 해방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농촌의 좁은 공동체에 갇혀지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사회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는 예전보다 더욱 서로에게 의지하는 구조를 만들어 냈지만 그 의존하는 구조는 오히려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과거 내가 신을 신발은 내가 만들거나 인근의 사람이 만들어주어 의존을 바로 알 수 있었지만 지금 가게에서 내가 산 신발은 판매자가 만든 것도 아니고 그조차 모르는 머나먼 곳의 여러 사람이 불특정하게 조금씩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직업에 종사하건 전통 농경사회에 만큼의 절대적 협력이 요구되는 직업은 매우 줄어들었으며 공간적으로도 이사가 잦아 공동체 형성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사람은 도시에 오히려 과거보다 높은 밀도로 뭉쳐 살면서도 서로를 외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협력하는 존재로 진화했기에 자신이 소외되어 외면 받는 것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견디지 못한다. 즉, 외면 받는 사람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불행해진다. 그리고 외면 받는 사람이 많아져 그들이 불행해지면 그들을 외면한 사람도 결국 불행해지게 된다. 한국은 어떻게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외면 사회로의 전환이 가장 빠른 나라라고 볼 수 있다. 그걸 증명하는 지표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압도적인 저출산율과 빈부격차, 사회 전체에 만연한 갑질, 그리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의 증가다. 

 과거 한국은 전통 농경사회에서 현대자본주의 산업사회로 빠르게 전환했다. 그렇기에 외면 사회를 위한 물질적 조건이 갖춰졌음에도 사람들은 농경사회에서 공동체를 유지하던 버릇이 남아 바로 외면사회로 전환하지 않았다. 서울의 아파트에 살면서도 이사 왔다고 주변에 떡을 돌리고, 평상을 같이 만들어 공동 이용하고, 옆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고, 셋방 살이 하는 집의 잔치 날이라도 되면 주인 집이 거실을 내어주고, 모르는 사람이 집을 방문해도 일단 주스 한 잔 정도는 내어주고, 부자의 조건이 오직 돈많은 아니라고 대답했던 80-90년대 정도까지의 생각은 그래서 가능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도 크게 소외되지 않았다. 고도 경제성장기라 학력이 매우 낮아도 간단한 기술을 배워 어렵지 않게 취직되었고, 월급도 꾸준히 올라 집 하나 장만하여 가정을 이뤄 가난을 탈출해 평범한 삶을 이루는 것이 지금처럼 매우 어렵진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상 중산층이 가장 두텁게 형성되었던 것이 이 시기다.

 그래서 복지의 '복'자도 흔적도 거의 없던 90년도 중반 정도까지의 한국 사회에서 외면과 그로 인한 소외는 과거보다는 확실히 심해졌으나 그리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모든 것이 전환된다.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농경사회의 부모를 지닌 이들이 조부모나 그 이전 세대가 되고 이후 세대는 도시가 고향이 되어버리며 농경 사회의 공동체 문화는 확실히 깨져나갔다. 여기에 돈이 우선 시 되는 상황이 생겨났으며 세계화와 자동화로 지방의 제조업이 무너져나가며 대도시권 대기업과 지방 기업간 소득 격차가 상당해졌다. 그로 인해 수도권 집중현상이 더욱 심해져 지방과의 격차가 더욱 심해졌고,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은 과도하게 올라버려 지방에서 올라오는 젊은이들은 지옥고에 갇혀 살게 되었다. 복지는 조금씩 생겨났지만 충분하지 않아 사회안전망이란게 부실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심해졌다. 사람들은 과거 초기 산업화때 교육기회를 통해 계층 이동에 성공했던 경험을 통해 능력주의를 종교처럼 신봉하며 많은 돈을 사교육에 쏟아붇고 있다. 그리고 능력주의는 사회의 부조리의 원인을 무능력한 자신에게로 돌리게 해 사회구조의 개선을 어렵게 하고 소외 받은 이들의 처지를 정당화해 그들을 더욱 외면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외면 받은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게 되었고, 서로 간의 가진 것의 차이는 그 어느 때보다 심해졌으며, 자기와 가족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자기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갑질이 사회전체적으로 펴졌으며, 물질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외면 받은 이들이 무분별하고 잔혹한 범죄를 대낮에도 여기저기서 일으켜, 여성이 밤늦게 도시를 돌아다녀도 별일이 없을 정도로 전 세계에서 치안이 가장 좋다는 장점도 거의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결국 해결방안은 서로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 간의 관계의 회복이다. 즉, 다시 대면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서로 외면이 가능한 자본주의 사회로 들어선 만큼 공동체의 회복은 사회적 제도적 경제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학교 교육의 회복이 필요하다. 최근 서이초 초등교사의 자살사건이 일어날 만큼 한국의 공교육은 사망 상태에 가깝다. 하지만 학교는 여러 어린 학생들을 모아 서로 협력하고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하는 사회의 일차 기관이다. 때문에 서로를 대면하게 하고 외면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시작이 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동학대법이 과다 적용되어 약간의 생활 지도만으로도 교사가 소송에 시달리고, 학부모가 무차별하게 민원을 제기하는 상황에선 이런 교육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한국은 관계의 붕괴와 능력주의의 부작용으로 인해 갑질이 만연한 사회인데, 초기 손님이 가게주인에게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사회의 약자인 여러 서비스 응대자와, 하급 민원 대응 공무원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어느덧 과거 함부로 하기 어려웠던 교사에게까지 미치게 되었다. 최근 이런 갑질을 일부 학부모의 일로 국한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전국의 교사들은 매주 서울에서 수만명이 운집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교사 집단은 매우 낮은 교직단체 가입률에서 볼 수 있듯 좀처럼 뭉치지 않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집회가 한 달 이상 지속된다는 것은 이런 갑질이 대부분의 교사가 생존의 위기를 느낄 정도로 만연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전국의 유초중고 교사의 수는 40만 정도인데 이들이 한 번씩만 갑질을 당했다고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무려 40만에 가까운 학부모가 갑질을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여튼 아동학대법의 개정과 적절한 생활지도권의 부여로 교권이 자리 잡고 교실 내의 질서가 자리잡혀야 학교교육의 회복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래서 교사가 의욕과 여유를 갖고 과거의 전통적인 지식 전달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다양한 문제를 서로 협력하여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우는 참교육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사회 복지 제도의 확충이다. 과거 농경사회는 가난한 이를 마을에서 도왔고 친족이 도왔다. 하지만 지금은 친족의 수도 줄었고 농경사회처럼 어려운 이를 돕는 전통도 사라졌다. 그렇다면 사회 복지를 통해 이들을 도와야 한다. 이는 물질적 지원 뿐만 아니라 정서적 지원도 포함한다. 최근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물질적으로도 불우하지만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학창시절부터 촘촘한 정신건강상태의 관리와 지원이 이뤄져야 하며 성인이 된 후엔 이것이 지역 행정기관으로도 이어져 관리가 되어야 한다. 현 정부와 일부 사람들은 이런 강력 범죄가 일어나자 처벌의 수위를 높이거나 경찰력을 배치하는 방향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에 가까우며 많은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외면을 받아 정신적 물질적으로 붕괴하고 자기 중심적 사고에 빠져 남을 탓하며 범죄를 일으키는 이들은 대개 잡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때문에 애초에 그런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능력주의 사회로 대학입시까지 단 한 번의 기회를 주고 실패자를 영원히 낙인찍고 경쟁의 승리자에겐 과도한 보상을 평생 제공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인생의 여러 차례에서 다시 기회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를 위한 꾸준한 학습기회에 지원을 제공한다. 

 마지막은 결국 공동체의 재생이다. 한국은 박정희정권이 없애버린 지방지차제도를 부활시킨지 거의 30여년이 되어가지만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된 사례가 거의 없다. 노동시간의 단축, 그리고 다양한 복지제도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에 관심을 가질 여유를 주고, 제도적으로 예산 사용 및 제도 제안 권한을 많이 부여하여 스스로 살아가는 지역을 개선시키는 경험을 꾸준히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것이 잘 정착되면 지역에 애착을 갖고 살아가게 되어 지역에 정착하는 경우도 많이 생겨나 도시로의 집중 현상도 다소 완화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소규모 지역 단위로 관계가 회복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는 매우 심각한 저성장 국면에 확실히 접어들었으며 저출산고령화로 나라의 노동력 및 소비력이 줄어 경제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또 미중갈등이란 대외적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지구 온난화를 넘어선 열대화가 사회 하층민부터 그 생존을 위협해 나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을 포함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관계의 회복보다는 외면을 더욱 크게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지금부터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더 나은 사회, 살만한 사회라 사람들이 생각하게 될 것이고 다시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믿으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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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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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아는 만큼 보고 관심 있는 만큼 무언가를 바라본다. 그 외에 나머진 무의미한 배경으로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건축가라면 당연히 어딜 가든 땅과 건축물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건축가 유현준은 그런 눈으로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면서 여행을 하면서 전 세계를 누비며 다양한 건축물을 보고 인상에 남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 30개를 선정해 수록하고 소개한 것이 이번 책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이다. 

 사실 전 세계는 아니고 아무래도 건축이 발달한 선진 사회 위주인데 유럽과 북미(사실상 미국이다.) 아시아(거의 일본과 중동) 3부분으로 나눠 자신이 선정한 최고의 건물 30개를 소개한다. 물론 고대 건물은 제외되며 20세기 이후 만든 현대 건물만이 그 대상이다. 

 인간의 건축은 철근콘크리트 공법이 발견되며 크게 변화한다. 비로소 중력과 주변 환경에 따른 기후의 제약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었으며 건물은 매우 높게 지어졌고 집적도가 매우 높은 메가시티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는 철근과 콘크리트가 열팽창 계수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환경에서든 철근과 콘크리트의 혼합은 그로 인해 균열 같은게 생겨나질 않는다. 르코르뷔지에는 건축의 선구자로 철근콘크리트 공법을 매우 사랑했고, 이것이 건축의 미래라 생각했다. 그가 생각한 콘크리트를 활용한 근대 건축의 5원칙은 다음과 같다.

1. 1층 필로티가 가능해졌다. 기존 서양건축은 벽이 힘을 받는 구조였지만 철근콘크리트 기둥으로 인해 벽이 힘을 받지 않아 1층을 비울 수 있게 되었다. 이 1층은 작은 건물은 주차장이나 다른 공간, 대형 건물에선 광장으로 이용될 수 있다.

2. 역시 벽이 힘을 받지 않다 보니 자유로운 형태의 평면 설계가 가능해졌다.

3. 역시 벽이 힘을 받지 않다 보니 자유로운 입면 설계가 가능해졌다.

4. 역시 벽이 힘을 받지 않다 보니 기존의 세로 긴 창에서 가로 긴 창으로 파노라마 뷰 등이 가능해졌다.

5. 옥상에 방수 처리를 하여 과거처럼 기울어진 지붕이 아닌 평면 옥상이 가능해졌다. 이로써 옥상에 다양한 시설이나 옥상 정원 등이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1. 퐁피두 센터

 건축물의 구조체와 기계 설비를 그대로 드러낸 스타일을 하이테크 건축물이라고 한다. 과거의 건축물은 중력을 이겨내는 거대한 기둥들이 그대로 보여 사람들에게 감탄사를 일으켰지만 현대의 건축물은 대개 이들을 감추는데 하이테크 건축은 이를 다시 드러낸다. 프랑스의 퐁피두 센터를 철골 트러스 구조가 건물의 입면에 그대로 드러난다. 파이프는 3가지 색을 띤 부분이 있는데 녹색 파이프는 상수도 관, 파란 파이프는 공기순환 공조 덕트, 노랑 파이프는 전기선을 안에 품고 있다. 이 센터의 구조가 노출된 이유는 사실 내부의 기둥을 없애 넓고 다양한 전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건축에서는 건물이 클수록 중력과 땅의 흔들림, 그리고 바람에 의한 횡압력을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의 경우 철근을 가득 품은 기둥을 땅에 깊숙히 많이 박아 무게를 지탱한다. 하지만 횡압력이 문제가 되는데 당기는 힘에 강한 철근을 입면에 정사각형으로 배치하고 엑스자 형태로 이 철골구조의 휨을 방지하여 이를 해결한게 퐁피두 센터다. 

 퐁피두 센터가 더 대단한 것은 광장 때문이다. 퐁피두 센터는 건물 앞에 드넓은 광장을 확보하였는데 이 땅을 기울어져 있다. 물론 땅은 센터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따라서 걸어다니는 사람은 중력에 이끌리듯 자연히 건물로 향하게 되며 앉은 사람도 당연히 건물 쪽을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된다. 


2. 루브루 박물관

 루브루는 원래 성곽이었던 것이 그 자리에 궁이 건설 된 것이다. 루이 14세가 귀족 세력 약화를 위해 베르사유에 궁을 지어 옮긴 이후 루브르는 왕실의 보물 수장고가 된다. 프랑스 혁명 4년 후에 개방되어 지금같은 박물관이 된다. 1980년대 프랑스는 넘쳐나는 작품과 보물로 인해 루브루의 증축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건축가 페이는 루브르의 중정 앞에 35m*35m*22m의 유명한 뜬금없는 유리 피라미드를 건축했다. 이는 지하로 증축된 루브르의 입구 역할을 한다. 이는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 볼 수 있는데 더 놀라운 것은 루브루 안에 입구와는 달리 지하로 향하는 유리 피라미드도 설계했다는 것이다. 이는지하공간에 많은 빛을 들어오게 하는 역할을 하며 지하의 역방향 유리 피라미드는 전통처럼 돌로 만든 작은 피라미드와 맞닿아 있다. 중국계인 페이가 아무래도 중국의 음양설의 영향을 받아 이처럼 설계한 것이 아닐까라고 저자는 추정한다.


3. 롱샹 성당

 일반적으로 건축물은 좌우 대칭이다. 그리고 그 중심선은 권위자의 권력을 세워주는 선 역할을 한다. 그런데 롱샹성당은 신이라는 권위자가 있음에도 네 개입 입면과 평면도가 모두 좌우 비대칭이다. 종교 공간은 신의 공간이기에 대개 권위적이다. 공간상 제단과 사람을 떨어뜨리고 공간이 모자라다면 예배당 앞쪽은 좁게 뒤쪽은 점점 넓어지게 좌석을 구성하여 멀게 느껴지게 한다. 롱샹성당은 이를 도치한다. 제단쪽으로 갈수록 자리가 넓고 뒤로 갈수록 자리가 좁아져 제단이 가깝고 친근한 공간으로 변모한다. 신과 권위적 만남이 이뤄지는 공간이 아닌 것이다. 

 롱샹 성당은 서양건물 치곤 이상하게 동양의 나무 건축 처럼 육중한 지붕을 갖고 있다. 다만 지붕과 벽 사이에 틈을 두어 빛이 들어오고 육중함을 낮췄다. 큰 지붕은 큰 하중을 요구하는데 건축가는 보와 기둥을 지붕과 벽에 숨겨 이를 감췄다. 다만 그러다 보니 벽이 상당히 두꺼워지게 되었는데 기둥이 있어 벽의 윗 부분은 두께가 상대적으로 얇고 아래부분은 두껍다. 그리고 건축가는 여기에 다양한 크기의 창을 낸다. 벽이 두꺼우니 창은 당연히 깊게 들어가며 상부 및 하부에 위치함에 따라 깊이가 달라져 다양한 빛의 효과를 낸다.


4. 피르미니 성당

 르코르뷔지에는 말년에 경사로에 심취한다. 경사로는 방문객들이 자신의 보폭대로 걸으면서 주변 경관을 편안히 감상하며 건물로 진입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피르미니 성당은 신과 신도 간의 관계를 3가지로 설정하여 3가지 공간을 마련했다. 제단과 같은 층의 예배석은 제단을 우러러 보게 되는 공간이다. 제단의 다른쪽의 예배석은 경사지며 올라가게 지어져 제단을 내려보며 편안하게 예배를 보게 하는 공간이다. 다른 하나는 2층의 예배석으로 제단을 확연히 위에서 내려다보며 관조하는 자리다. 


5. 유니테 다비타시옹 

 역시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아파트다. 보통 아파트의 상가는 저층에 위치하는데 특이하게도 상가가 8-9층에 복층으로 지어졌다. 한쪽엔 창으로 빛이 들어오며 이는 상가의 주인이 입주민임을 의미한다. 

 그는 건물을 증기선처럼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건물 2층이 7미터나 들려있고 1층은 피로티구조인데 기둥이 위는 굵고 아래는 오히려 얇아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하다. 옥상엔 진짜 증기선 처럼 큰 굴뚝이 있다. 이 집합주택의 가장 큰 특징은 단위가구 설계다. 단위 세대는 작은 단층에서 복층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코르뷔지에는 입주자를 1-8인까지 6개, 연령은 영아에서 노인 7단계로 분류했다. 그래서 14개 타입의 집이 있다. 

 일반적으로 건축에서는 복도와 같은 공용면적을 최소화하고 전용면적을 극대화히기 위해 호텔처럼 복도가 가운데 있고 집이 복도의 양측면에 위치한다. 이 경우 복도가 매우 어둡고 해가 들지 않게 되며 집들도 한쪽이 서로 막혀있어 통풍이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복도를 한쪽으로 놓으면 위의 문제는 해결되나 방이 복도와 접하는 면적이 좁고 건물이 폭이 좁고 높아지는 문제가 생겨난다. 코르뷔지에는 중복도를 유지하면서 한 집은 기억자형 한 집은 니은자형으로 설계하여 이를 해결한다. 

 아파트의 바깥에는 빛의 삼원색과 색의 삼원색에서 착안하여 빨강, 파랑, 노랑, 초록의 4가지 색을 번갈아가며 칠했다. 그래서 집들이 외곽에서 바라봐도 개성있어 보인다.


6. 구겐하임 미술관

 낙수장으로 유명한 로버트 라이트의 작품이다. 그는 코르뷔지에와는 정반대로 자연과 어울리는 건축을 이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구겐하임 미술관은 도시 한복판에 있는 것으로 이렇다할 자연환경이 없다. 그래서 그는 이 경우 환경보단 건축물의 용도에 집중한다.

 미술관의 용도는 당연히 미술품의 전시다. 그리고 전시를 위해서는 미술품의 대부분이 회화인 만큼 벽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미술관은 그래서 여러 개의 방은 갖고 있는데 누구나 경험한 것처럼 방을 빙빙돌다보면 관람 경로가 헛갈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술관엔 반드시 화살표가 있다. 

 로버트 라이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30미터나 되는 기다란 벽을 연속되게 만들었고 이를 경사로로 하였다. 그래서 관람객은 아래층부터 경사로의 벽을 따라 설치된 미술품을 관람하여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된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이런 구조이기에 밖에서 보면 마치 아이스크림 처럼 보이게 된다.

 경사로 가운데는 여섯 층이 뻥뚫린 빈 공간을 만들었고 그 공간 위에는 천장을 두어 햇빛이 들어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경사로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데 이것의 방지를 위해 상부로 올라갈수록 경사로의 폭이 오히려 넓어지고 내려 갈수록 좁아지게 구성했다. 


7. 시티그룹 센터

 도심의 건물을 개발하여 높게 짓기 위해서는 넓은 땅이 필요하다. 하지만 생각만큼 주변 건축물이나 토지의 구매가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공중권을 사들려 해결할 수 있다. 공중권은 해당 건물의 윗부분, 공중을 개발할 권리다. 이걸 팔 수 있는데 대형 건물을 짓고자 하는 건축주가 주변 건물의 공중권을 사서 윗 부분을 크게 지을 수 있게 된다. 

 시티그룹 센터는 12층 아래로 건물을 비워 시민을 위한 공지를 제공했다. 그 덕에 용적률이 상향되었다. 시티그룹 센터는 근처에 교회가 있어 부지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그래서 공중권을 매입하고 과감히 큰 건물의 아래 부분이 비웠다. 대개의 직사각형 건물은 꼭짓점에 기둥이 있는데 이 건물은 모서리 각 중앙에 기둥이 있다. 그리고 아래 빈 공간쪽으로 역삼각형 모양으로 기둥을 모아 건축했다. 그 덕에 특이한 모양이 되었고 아래 부분이 크게 비해 개방된 광장을 조성하게 되었다.

 이 경우 바람에 취약해지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층부에 동조질량 감쇠기를 설치했다. 이는 네 개의 끈에 매달린 무거운 추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이동해 건물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 구조를 안정화 시키는 공법이다. 


8. 허스트 타워

 허스트 그룹은 1928년 6층짜리 사옥을 지어 활용했다. 하지만 시대가 지니면서 46층짜리 고층 건물을 지으려 했는데 구사옥을 보존할 필요가 있었다. 건축가인 노먼 포스터의 결론은 구옥의 내부는 모두 철거하되 입면을 남기고 그 자리에 신형 46층 건물을 올리는 방안이었다. 

 그는 기존 구옥에 수직으로 구멍을 여러 개 뚫고 철골 기둥을 넣었다. 이 철골 기둥에 철골 가지는 붙여서 기존 건물의 입면을 양쪽에서 붙잡게 만들었다. 그렇게 구옥의 입면을 유지하고 신사옥을 올렸는데 구옥의 높이만큼은 과감하게 로비홀로 구축했다. 그래서 이 구간에는 건물을 받히는 기둥과 로비, 엘리베이터만 존재한다. 그리고 구옥과 신사옥 사리에는 거리를 몇 미터 두고 여기에 창을 설계하여 매우 밝은 로비를 구축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고층 건물일수록 횡압력을 견디기 어려운데 허스트 타워는 대각선 부재를 사용하여 이를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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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더 갤러리 101 2
이진숙 지음 / 돌베개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갤러리101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은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이다. 르네상스에서 낭만주의까지 다룬 1권에 이어 인상주의에서 추상주의까지의 예술 사조와 작가, 작품, 시대를 다루고 있으며 시기는 19세기 중반에서 1차대전까지이다. 1권이 신에서 왕과 귀족, 그리고 평민으로 예술의 주도권이 넘어가며 미술에 인간의 시대가 도래함을 다룬 것이라면 2권은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모든 것이 흔들리고 인간이 소외되는 과정에서의 예술을 다룬 것이다. 때문에 제목이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이 아닌가 싶다.

  이 시기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시대가 매우 빠르게 변화한다. 때문에 모든 가치관과 정체성에 흔들리게 되었고 그에 따라 예술도 사조가 상당히 빠르게 변화한다. 19세기 중엽에서 1차대전까지는 근대의 형성기다. 벨에포크와 데카당스의 시기이자 새로운 희망의 20세기와 그와 반대인 절망적 전쟁이 일어난 극단의 시기다. 근대 사회 인간은 마침내 신분과 종교의 속박에서 자유로운 개인이 되었으나 반대급부로 이젠 개개인이 자신이 무엇이 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정해야하는 혼란의 시기였다. 

 20세기 과학의 발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낙관론을 발전시키기도 했지만 반대 급부로 서구 이외 외 지역에 대한 식민지 착취와 폭력, 자연에 대한 착취가 이뤄졌다. 개개인은 더 이상 사회의 관행에 순응하지 않았으며 그에 따라 통상적 여성상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그래서 팜파탈이 예술의 주 소재가 된다.

 

1. 라파엘전파, 바르비종파, 리얼리즘,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라파엘 전파는 산업화 이후 부르주아 문화의 속물성에 저항하며 라파엘 이전의 가식없는 미술로 회귀하자는 주의다. 디테일을 중시한 사실주의적 그림이 이들의 특징이다. 바르비종파는 파리 근교의 바르비종에서 활동한 풍경화가들을 가르킨다. 이들은 자연광에서 자연을 직접 관찰하여 그리는 것을 선호했고 자연을 그리는 새로운 감수성과 방식을 가졌다. 리얼리즘과 인상주의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했다. 리얼리즘은 혁명 이후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모습을 진실하게 기록하는 것을 중시하는 사조와 미술과 문학에서 동시 등장했다. 기존의 관점에서 보면 고사하지 못한 주제와 소재도 편견없이 예술로 가져와 다뤘기에 이후 예술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바꾼다. 인상주의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채 속에서 자연 묘사를 중시하는 예술가 그룹으로 그와 더불어 파리 시민의 삶을 미술의 주제로 삼은 본격적 근대 미술운동이다. 하지만 편견없이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묘사하는 객관주의는 결국 개인의 순간적인 경험에 의존하는 주관주의로 전환되는 모순을 야기하기도 했다. 신인상주의는 인산주의의 경험적인 리얼리즘에 반발해 고적주의적 정신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사조다. 점을 찍어 표현하는 점묘파가 대표적이다. 

 19세기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의 시대로 그야말로 명암이 분명한 시기였다. 산업혁명과 제국주의로 나라로 과도한 부가 들어오고 있었으나 어린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동원되고 착취되어 성년이 되기도 전에 죽음을 맞았고 템스강은 죽음의 강이 되었다. 또한 도덕적으로는 금욕의 시대였지만 그 어느때보다 사창가가 번성했고 식민지에 대한 착취가 정당화된 모순의 시기였다. 

 이런 시기 밀레는 전통적 삶이 남은 시골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밀레는 당시 주류 아카데미와 반대의 길을 걸었는데 그들은 신화나 역사의 인물을 주로 다뤘다. 반면 밀레는 평범한 시골의 사람들을 그렸다. 이는 사람들의 요구와도 다소 부합되었는데 산업화와 도시화로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향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순되게도 시골의 사람들이 주인공이기보다는 배경이기를 원했는데 밀레가 다룬 시골의 농민들은 마치 영웅처럼 그림의 주인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당대 프랑스인들은 밀레의 작품에 불편함을 느꼈고 미국에서 인기가 좋아 현재 밀레의 작품 다수는 미국이 소장하고 있다. 반 고흐는 이런 밀레의 시골 배경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다. 

 구스타프 쿠르베는 미술사에서 탄생과 죽음에 대한 태도변화를 가져온 인물로 꼽힌다. 그는 오르낭의 장례식을 그리며 진행하는 사제는 권태스럽고 냉정하며, 이해관계를 다지는 듯한 사람들, 하늘을 잘라낸 듯 그림을 길게 그려 지상의 문제만을 강조하는 그림을 그려냈다. 

 에두아르 마네의 올램피아도 당시 큰 비난을 받았다. 일단 올랭피아란 이름 자체가 당시 매춘부의 흔한 이름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과감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으며 전통적인 여신처럼 8등신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 인간의 몸을 갖고 있었다. 이는 예술을 관람하는 남성 관객들에게 자신들의 더러운 현실을 마주하게 하는 불쾌감을 안기게 된다. 마네는 이처럼 더러운 현실을 비판하고 그대로 드러내어 직시하게 함을 물론이고 누드는 비너스로만 표현되던 회화의 관행까지 같이 전복시켰다. 

 드가는 발레리나와 여가수 등 여성을 매혹적으로 많이 그려낸 화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평생 독신이었고 인간혐오 염세가였다. 그가 이런 것은 인간의 마뜩지 않은 감정을 읽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가가 갈던 시기는 영웅이 아닌 범인의 시대였고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필요의 경제에서 욕망의 경제로 이행하는 시기였다. 1852년 몽마르셰 백화점이 등장하고 중산층 부인의 소비가 증가한다. 당시 여성에겐 거의 모든 것이 허용되지 않았는데 그나마 가능한 게 소비활동이었다. 평범한 일상사가 예술의 주제가 되면서 거대담론에 가려진 다양한 인간사가 의식되고 시민사회의 속물성과 부조리를 드러내는 갈등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그럭저럭 잘 굴러가면서 많은 시민들이 권태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드가는 이 만성적 권태를 회화로 잘 표현했다. 압생트 마시는 사람들이나 자두 브랜디 등의 작품에 권태로운 표정이 묻어난다. 

 과거 회화는 그 주제가 신화, 중교, 역사로 검증받은 내용이었다. 그리고 원근법과 비례등의 장치도 그림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전제는 세상에는 신이 하나이고 진리도 하나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관행에 마네는 의문을 제기했고 미술의 낡은 상상의 질서를 해체했다. 그리고 그림에 담아야할 내용과 그리는 형식에 대해 선입견 없이 자연을 그대로 그리고자 한 것이 인상주의다.

 따라서 모네 같은 인상주의에서는 루앙대성당을 그릴 때 여러 장면을 그리게 된다. 매 순간의 변화가 진실이기 때문이다. 모네는 수련 연작을 그리면서 마지막에는 하늘과 물의 구분이 사라지고 물과 수련의 구분도 사라지는데 이는 서양의 전통적 이분법을 넘어선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런 인상주의의 방식은 매순간을 그려야 한다는 불가능한 인상의 함몰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그래서 인상주의는 훗날 상징주의와 추상화로 이어지게 된다. 

 모네는 눈앞의 생생한 현장을 캔버스에 옮긴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조르주 쇠라는 이 과정을 하나로 체계화, 과학화, 방법화 하려 시도한다. 대부분 인상주의자는 순간의 인상이 중요해서 구상을 위한 스케치를 거의 하지 않았으나 쇠라는 대충 스케치를 하고 공간 배경을 확정하고 인물 없이 배경을 그리고 이후 인물을 그려냈다. 쇠라 이전엔 색을 혼합했지만 그는 점묘법으로 혼합하고자 하는 색들을 점으로 주변에 배치해 혼색의 효과를 드러냈다. 이런 분학주의는 인상주의를 과학 체계화하고자 하는 시도였으며 쇠라는 색조, 색상, 선의 대위로 그림을 체계화하였다. 


2. 후기 인상주의, 아르누보

 후기 인상주의는 세잔, 반고흐, 고갱을 지칭한다. 하지만 이들은 형식상의 공통점은 없었고 인상주의 이후 현대미술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르누보는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으로 회화, 조각, 건축의 분리는 기초로 하는 시스템이 반발해 공예를 포함한 종합예술을 지향했다. 기존의 역사적 양식을 모두 거부하고 동양적, 장식적 성격을 갖는다. 

 세잔은 매일 아뜰리에에서 그림을 반복적으로 그렸다. 그리는 소재도 제한되 사과와 정물, 생트빅투아르산과 고향 액상 프로방스의 풍경만을 그렸다. 사람도 주변 인물만을 제한적으로 그렸다. 세잔은 확정된 진리의 모방으로써의 미술을 거부한다. 세잔은 사과의 신화, 실용적 목적을 모두 걷어내고 사과 자체를 바라보는 시도를 한다. 즉, 감각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세잔은 세세히 그리지 않고 사과를 바라 보았을 때의 감각을 상기 시키는 정도로만 된다는 생각으로 그린다. 세계는 풍교롭고 광대하며 아름다우나 이를 표현하는 화가의 재료는 유한하다. 하지만 그중 가장 무한한게 색채다. 그래서 세잔은 색채를 다양화하며 비슷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비슷한 것을 꾸준히 그려나간다. 

 종합예술을 지향한 아르누보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을 발전시킨다. 당시는 세기말과 벨에포크라는 두 얼굴의 시대였고 소비의 활성화로 광고라는 새로운 창이 열렸다. 알폰스 무하는 광고에서 스타로 유명세를 떨친다. 광고는 불특정 다수에 호소력을 가져야 했는데 이것이 대중성이다. 소비는 욕망의 대중화와 욕망의 민주화를 가져왔다. 이것은 진정한 세속화의 길로 중요한 것이었다. 소비는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특권적 행위가 아닌 유행에 따르는 대중적 행위가 되었다. 하지만 무하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이것을 느꼈지만 그의 조국 체코는 동유럽의 식민지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는 민족주의자이면서 코스모폴리탄이었으며 이를 위해 조국으로 돌아가 헌신한다. 


3. 나이브 아트, 야수주의, 입체주의, 미래주의, 표현주의, 추상미술, 아방가르드

 야수주의는 입체주의의 주지주의와 대조적으로 주정주의적 성격이다. 표현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입체주의는 하나의 시점은 원근법을 파기하고 다시점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재구성하고자 했다. 미래주의는 기계 문명에 대한 찬양, 역동성과 속도감을 새로운 미의 기준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전쟁찬양과 여성멸시, 파시즘 스캔들을 야기했다. 표현주의는 르네상스 이후의 사조인 자연의 재현보다는 인간의 내적 상태를 구현하고자 했다. 감정의 직접 표현을 위해 형태의 왜곡과 과감한 색채를 사용했고 청기사파, 다리파, 신즉물주의 등의 독일 미술의 주요 특징을 이룬다. 추상미술은 눈에 보이는 자연과 사물을 묘사하지 않는다. 칸딘스키의 추상미술,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가 해당한다. 아방가르드는 군사용어로 첨병이라는 뜻이다. 전위 예술로 관습을 타파하는 혁신적 예술을 지칭한다.  

 정제된 쾌락주의는 앙리 마티스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베르그송은 인간의 지성은 진화의 최고 산물이지만 창조적 진화를 인식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인간의 본능이 생명과 근본적으로 공감할 수 있기에 지성에서 해방된 직관만이 이를 통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베르그송의 철학은 비지성적, 직관적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마티스의 특징은 단순함에서 오는 힘과 명징함에서 오는 원숙함이다. 당시 화가들은 음악의 조화로움 때문에 음악을 미술로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가 많았다. 그 조화 방법 중 하나가 색채인데 마티스는 초록, 주황, 청색, 갈색 등의 단순한 색채를 사용했다. 마티스는 색채와 관련한 모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였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은 여성의 참정권 요구와 매독등의 공포로 팜파탈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항으로 순종적인 여성인 팜마르질 모두 팜파탈과 더불어 남성을 기준으로 여성을 바라 본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쟁으로 남성의 생산력에 의존하지 않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 등장한다. 독일의 케터 콜비츠는 시대의 아픔과 정신적인 고통을 육체의 언어로 번역한 예술가다. 표현주의 화가들이 대개 소외감이나 근원에 대한 갈망 등 개인 내면에 천착했다면 콜비치는 사회적 이슈를 대상으로 삼았다. 

 말레비치는 검은 사각형을 그렸다. 그는 작품을 전시장의 동쪽에 전시했는데 이는 러시아 전통에서 동쪽 모서리에 이콘화를 설치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것은 이 그림이 일반적 그림이 아니라는 의미이며 검은 사각형은 절대주의의 신호탄이 된다. 그는 3차원 공간의 대상세계가 진실이 아닌 환영이고 세계의 참된 실재를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말레비치는 예술가는 순수한 느낌의 절대적 우위를 가진 존재로 모든 대상적 사상에서 해방된 우주적 운동을 경험하고 이를 대상 세계와 아무 연관 없이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의 색면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칸딘스키는 자연 그래로의 감정을 표출하는 표현주의와 표면적인 일상만을 다루는 리얼리즘, 인간 내면의 힘을 일깨우지 못하는 탐미주의 모두 낡은 것이라 보았다. 그는 예술이 그동안 잊힌 정신적인 것인 인간의 내적인 필연성에 따라서 영혼의 상태를 드러낼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하는 시대라고 칸딘스키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음악을 참조한다. 칸딘스키는 회화를 인상, 즉흥, 구성으로 구분한다. 인상은 외부 자연의 즉흥적 느낌으로 재현적 요소다. 즉흥은 즉흥적인 정서적 반응으로 무의식, 자연발상, 내재적, 비물질적인 것이다. 구성은 오랜 기간 준비와 예비를 통해 탄생하는 궁극적 예술이다. 그의 구성에서 대상은 사라지고 주체가 파악한 세상의 모든 요소를 조화롭게 재배치하여 완전한 추상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몬드리안은 말레비치, 칸딘스키와 다소 다른 길을 갔다. 말레비치는 현실과 단절하고 4차원의 세계로 나아갔다면 칸딘스키는 인상, 즉흥, 구성의 세 단계를 통해 세상과 가깝고 멀어지는 영혼의 상태를 구현하고자 했다. 이들은 방법은 다르나 주체가 세상을 어떻게 수용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몬드리안의 추상은 현실에서 본질을 추출하고자 했다. 몬드리안에게 색채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는데 빨강은 인간의 육체, 노랑은 이성, 파랑은 영혼을 의미한다. 그는 이들을 조화시키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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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의 순간들 더 갤러리 101 1
이진숙 지음 / 돌베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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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를 훔친 미술'로 유명한 작가 이진숙의 책이다. 저자는 책 '인간 다움의 순간들'에서 그것을 졸고라 칭하지만 사실 내가 본 미술 책들 중 '시대를 훔친 미술'은 단연 최고 중 하나다. 그 책에서 작가 이진숙은 서구에서 예술은 시대를 다소 앞서기도 때론 뒤따라가기도 하였는데 그것을 재밌게 잘 풀어냈다. 

 이번 책은 갤러리 101 시리즈 총 3권의 첫 번째 작품이다. 갤러리 101 시리즈는 제목처럼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 시대를 조망하며 작가 101명의 삶과 작품, 시대에 대해 풀어낸 시리즈이다. 어찌 보면 시대를 훔친 미술을 더 상세하게 쓴 격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책을 보다 보면 여러 작품과 작가들이 등장해 방향을 잡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책은 친절하게도 큰 장을 들어설 때마다 시대의 흐름과 주요 사건, 그에 따른 미술 사조를 설명해준다. 또한 책의 쪽의 좌측엔 작가의 이름 오른쪽엔 그 작가가 따른 사조를 기입하는 친절을 보이기도 한다.


1. 르네상스

 책 '인간 다움의 순간들' 은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까지를 다루는데 시기는 16세기부터 19세기 정도까지라고 할 수 있다. 책에 등장하는 이 시기의 미술 사조를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르네상스다. 고대 그리스 로마 이후 서구는 종교가 지배하는 중세 천년의 암흑기에 있었다. 예술은 종교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며 당연히 소재도 종교를 벗어날 수 없었다. 르네상스는 신에서 인간이 모처럼 중심이 되었으므로 예술의 소재도 인간으로 전환된다. 당시 르네상스의 근간이 되는 철학은 신플라톤주의다. 아름다움의 궁극적 원인인 이데아를 추구하는 미적 이상주의 자연을 재현하되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려는 이상화태도다. 때문에 르네상스 시기의 작가들은 자연과 인간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려면서도 본질적인 미를 드러내기 위해 이상화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그래서 재현이 중요한 방법으로 자리 잡는다. 재현은 눈에 보이는 자연, 사람을 그대로 묘사하려는 것으로 이를 위해 일점소실 원근법과 공기 원근법, 명암법 등 다양한 회화기법이 등장한다. 이런 경향은 19세기 인상주의 까지 지속적 영향력을 갖게 된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회화를 그리는 방법으로 프레스코화와 템페라가 있다. 프레스코화는 벽에 회칠을 한 후 젖은 상태에서 빠르게 그리는 수채화의 일종이며 벽에 그리다 보니 공공미술의 성격을 띄었다. 템페라는 계란 노른자에 안료를 풀어서 그리는 방법이다. 하지만 양자 모두 현실 재현에 부족함을 갖는 방법이기에 마침내 유화가 등장한다. 유화는 안료를 기름에 풀어서 그리는 방법으로 이로써 예술품은 더 강한 질감과 표현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으며 현실의 재현도 강력해졌다. 더 나아가 유화는 인간 심리의 미묘한 감정과 심리, 영혼의 미세한 떨림까지 표현 가능하게 하였다. 

 이 시기는 지금은 매우 흔한 이젤 페인팅이 등장한다. 이동이 가능한 이젤 위에서 그림을 그리는게 가능해지면서 예술품은 사적인 재산의 일부가 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초상화가 등장한다. 기존에 초상화는 신화나 종교적 인물만이 대상이었으나 이젠 평범한 세속의 인물이 주인공이 되면서 개인의 가치가 서서히 증대됨을 보여주었다. 

 르네상스를 연 작가로는 이탈리아의 마사초가 꼽힌다. 마사초가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은 그가 그림자를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중세 천년간 예술의 대상은 신이나 성인으로 이들은 모두 빛 그 자체이므로 그림자가 존재할 수 없다. 때문에 그림자를 그렸다는 것은 예술이 종교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되며 그림에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그림 안에 빛의 방향이 결정되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원근법이 등장한다. 중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중시했기에 거리와 상관없이 중요한 것을 크게 그려넣었다. 그리다 보니 신과 성인, 왕이나 귀족이 크게 그러졌으며 평민은 그려지지 않거나 가장 작았다. 하지만 원근법이 등장하면서 신분과 상관없이 거리에 따라 크기가 달라졌다. 그 자체가 혁명적 시도였던 것이다. 

 중세에 등장한 그림 중 현재까지도 가장 가치가 높은 작품은 단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다. 모나리자의 가치가 높은 것은 몇몇 장치 덕분인데 우선 평범한 여성이 등장하면서 심지어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웃음이 무슨 문제인가 싶겠지만 서양문화의 두축인 헬레니즘과 히브리즘 모두에서 웃음은 금기시된 것이었다. 양자는 무거운 엄숙한 문화인데 특히 중세엔 중교적 구원이 중요시되면서 현실의 삶은 경시되었다. 때문에 현실에서의 웃음을 작품으로 드러내는 것은 지금 여기서의 삶이 즐겁게 의미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된다. 심지어 모나리자에는 배경이 있는데 당시 초상화의 대상은 왕이나 귀족이었고 그들의 배경은 당연히 그들의 영지였다. 그런데 모나리자에는 당돌하게도 배경이 존재한다. 다빈치는 모나리자에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회화의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 윤곽선을 자연스럽게 번지듯 그려 넣는 일종의 명암법이다. 또한 당시만 해도 아직 캔버스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모나리자는 목판에 그려진 작품이다. 

 르네상스 시기는 개인이 탄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는 예술에 그대로 반영되었는데 초상화가 그 증거다.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무려 상인계급의 첫 초상화다. 중세인은 거실이란 공동공간에서 거주했는데 그러다 문이 생기고 공간이 분할되어 사적인 공간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런 개인이 등장해 초상화와 더불어 자화상도 생겨난다. 1500년 알브레히트 뒤러는 놀랍게도 정면 초상화를 그렸는데 중세만 해도 정면 초상화는 신을 그릴 때만 가능했다.  


2. 매너리즘과 바로크

 매너리즘은 1520년에서 1600년까지 미술, 조화, 발전, 진보에 대한 르네상스적인 낙관을 잃어버린 시대에 예술가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며 나타났다. 그래서 이들은 형식적인 유희에 탐닉하게 된다. 매너리즘적 인간은 르네상스적 확인과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로 그들의 신체는 고전적인 비례를 잃고 길쭉하게 변형되어 그려지게 된다. 바로크는 17세기에 번성한 미술 양식으로 찌그러진 모양의 진주라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했다. 바로크 미술에서 인간은 분열하고 불안해진 세계를 살아가는 결점투성이 개인이다. 당시는 종교갈등으로 인해 구교는 권위회복과 교회의 영광을 위해 교회미술에 큰 관심과 투자를 했는데 이것이 바로크 미술의 원동력이 된다. 

 이 시기는 카라바조, 푸생, 루벤스, 벨라스케스, 램브란트, 프란스 힐, 페르메이르가 등장했으며 이들은 그림 앞에 마주서면 실제 사건을 보는 듯한 최고조의 환영주의를 이끌었다. 테네비브리즘이라는 극단적 명암대조법도 등장했는데 사건의 중요한 부분은 환하게 나타내고 나머지는 어둡게 처리하여 사건에 집중하게 하는 방법으로 카라바조가 시작해 램브란트가 이를 최고 경지로 이끌었다. 

 17세기에 네덜란드는 스페인에서 독립한다. 네덜란드는 시민의 힘으로 독립하여 강한 자긍심과 원동력을 갖고 있었고 보통 사람들에 의한 황금기를 경험한다. 이런 평민들의 시대는 풍경화와 풍속화 정물화가 하나의 장르로 등장하는 계기가 된다. 

 카라바조는 회화의 세기인 17세기를 연 화가다. 그는 테네브리즘, 자연주의, 드라미티즘을 개발했다. 그의 자연주의는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으로 예술적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고 추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래서 카라바조가 그린 몸은 인간의 육체적 한계, 생로병사의 고통을 그대로 드러내며 신성한 기적을 거부한다. 

 아우구스부르크 종교화의로 일국 일교의 원칙이 정해진다. 그래서 각 국이나 지역의 종교는 왕이나 제후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으며 예술도 이를 추종해 신의 영광을 찬양하던 미술에서 왕의 권력을 찬양하는 미술로 전환한다. 그래서 17세기 중반 이후 궁정 바로크 미술이 크게 발전하게 된다. 군주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왕권신수설을 주장했고, 지동설을 옹호했는데 이는 천동설을 고집하는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태양과 비유되던 왕권을 강화하는데 더욱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같은 차원에서 자신들의 초상화도 많이 그렸다. 때문에 왕권의 정당성이 부족했던 프랑스의 마리 드 메디시스나 영국의 찰스 1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2세, 나폴레옹등이 요란하게 초상화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왕과 성직자, 광대를 모두 그린다. 그는 이들을 미화하지 않고 그려냈는데 그림에 담은 그의 인물 해석은 17세기의 관습과 편견을 넘어섰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신분이나 부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교황도 그렸는데 그의 고집스러운 면과 불안한 표정을 그대로 그려내 교황자체가 매우 불안하게 여겼다고 한다. 


3. 로코코,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루이 14세의 사후 그 손자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섭정시대가 등장한다. 그리고 섭정양식이라 불리는 섬세하고 장식적인 귀족 중심의 문화가 펼쳐지고 이것이 로코코다. 로코코 속 인간은 전원에서 사랑을 나누는 카사노바적 인간이거나 돈과 능력은 있으나 정치권력에서 소외한 인간이다. 신 고전주의는 퇴폐적 로코코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미술이다. 그리스 스타일을 모범 삼아 표현과 포즈에서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을 추구한다. 프랑스 혁명 초기 주요세력이 원하는 이성적인 사회질서에 상응하는 미적 이상을 보여주는 인간이 주인공이 된다.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의 보편적 미 원칙을 거부한다. 이성보다는 감정, 보편보다는 특수, 합리보다는 비합리를 추구한다. 신고전주의가 그리스 로마라는 보편을 지향했다면 낭만주의는 각국의 역사라는 개별을 향한 운동이다. 그래서 각국의 민족적 특성에 관심이 있었으며 예술가들은 인물의 개성에 주목한다.

 신고전주의는 로코코의 몽롱한 유희에서 벗어나 다시 의미 있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등장한다. 때문에 신고전주의는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교훈이 담겨야 하며 그래서 그 주인공은 영웅이다. 그래서 자크 루이스 다비의 그림에는 유독 죽음이 많으며 대상은 트로이의 핵토르나 소크라테스, 프랑스 혁명의 마라등이다.

 앵그르는 터키탕을 그렸다. 그림은 특이하게도 원형인데 이는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남성 중심의 관음증을 의미한다. 앵그르의 시대에는 비너스를 그리는게 이미 낯간지러운 시기가 된다. 그래서 비너스의 자리에는 마음놓고 쳐다봐도 되는 새로운 약자인 오달리스크라는 동양 여자가 자리한다. 이는 남성위주의 제국주의적 시각이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 그리고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으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하지만 과거의 혁신적 강자 스페인은 아직도 절대왕정과 종교재판에 갇혀있는 전근대적 국가였다. 프란시스 고야의 그림은 그래서 어두운 낭만주의가 된다. 자식을 삼키는 사투르 누스나 5월 3일의 저항 등은 그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낭만주의에서 테오도로 제리코도 어둠움을 그린다. 그가 주목한 것은 시신과 정신병자다. 그는 메두사호의 뗏목을 그려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러냈으며 정신질환자들을 초상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흔히 비정상으로 분류되던 그들을 초상화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제리코는 그들을 인간의 영역으로 복귀시켰고 우리는 그들로부터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어리석음과 약함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제리코의 낭만주의는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 철학과 신고전주의가 놓치고 있던 한 측면을 예술로 발전시켜 이후 현대 예술사에서 추가 중심으로 자리 잡는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19세기 초반에는 현재의 상황을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빗대어 그리는 관행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건을 직접 다루는 역사화가 등장한다. 이는 새로운 역사적 주체인 민중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독일 낭만주의는 독일 국민의 민족 의식 자각과 관련이 있으며 그들은 신고전주의는 프랑스 양식으로 간주하여 거부하고 게르만의 뿌리는 찾으려는 노력으로 낭만주의를 전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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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경고 : 6도의 멸종 - 기후변화의 종료, 기후붕괴의 시작, 2022 우수환경도서
마크 라이너스 지음, 김아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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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략 5억년 전에 지구에서 생명체가 폭발적으로 진화하며 번성했다. 하지만 이후 다섯 번 정도의 대멸종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끔찍했던 것이 페름기 대멸종이다. 90%이상의 생물이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의 주범은 놀랍게도 극단적 '지구 온난화'다. 판게아로 지구가 하나로 연결되있던 당시 지구의 온도는 지금보다 6도 이상 높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로 인해 지구 상의 환경이 극심하게 변하여 멸종이 일어났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지금의 시베리아에서 마그마가 상당히 대규모로 넓게 분출한다. 그런데 이 마그마는 지층 틈사이로도 수백km를 파고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대규모의 석탄층을 만났는데 잠자던 이 층은 뜨거운 마그마와 만나 폭발하고 대규모 산소와 만나 그야말로 엄청난 불기둥을 내뿜는다. 대기에는 이렇게 엄청난 탄소가 보급된다. 이산화탄소와 황의 분출로 지상엔 강한 산성비가 대규모로 내며 생명체를 사멸시킨다. 여기에 달궈진 지층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 염화메틸과 메틸브로마이드를 배출하는데 이는 성층권으로 올라가 오존층을 파괴한다. 이로써 지상의 생물들은 강한 자외선에 강한 산성비, 온난화로 인한 극초온에 시달리게 된다.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한 지상에는 풀한포기 남아있지 않다. 대체로 가물었는데 어쩌다 폭우가 내리면 이것이 모든 토양층을 휩쓸고 지나가 대지를 불모지로 만들었다. 이런 육상의 풍부한 유기물은 폭우로 대량으로 바다에 유입되었는데 이로써 바다도 죽어버린다. 안그래도 고온으로 대양의 산소가 고갈되고 바닷물이 뜨거워져 아래로의 산소공급도 끊긴 상황이었다. 여기에 육지로부터의 부영양화로 녹조가 발생하고 산소는 더욱 고갈된다. 때문에 당시의 바다는 거의 무산소화가 되어 대부분의 바다 생물도 사멸한다. 이것이 페름기 멸종의 진상이다. 문제는 이것이 자연적이기는 하나 온실가스 배출에 의한 지구 온난화로 인함이었고 이것이 인위적으로 당시보다 10배나 빠른 속도로 인간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은 1도부터 6도까지 온도가 상승하면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인간에게 하나하나 경고한다. 이 책은 2007년 정도에 나왔던 책인데 당시만 해도 어느 정도 희망이란 걸 갖고 있던 저자는 개정판을 내는 10년 후의 상황이 더욱 암울해지자 더욱 강한 어조로 책을 통해 경고를 한다.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 인류와 지구 상의 아무 죄 없는 생물들의 생존가능성은 낮아진다. 분야별로 정리해봤다.


1. 식량부족

 21세기 말까지 인간은 개체수가 100억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이들을 부양하려면 지금의 2배 정도의 식량생산이 필요하지만 기후 위기로 식량생산량은 줄어들 전망이다. 당초 2도 정도까지의 기온 상승이라면 이산화탄소 비료 효과로 식물이 오히려 더 잘 자랄 수 있다는 기대찬 희망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지가 못하다. 여기에 이산화탄소가 식물이 과공급되면 다른 미네랄 함량을 떨어뜨려 작물의 영양가마저 떨어지게 된다. 기온이 급상승하면 밀, 옥수수, 콩, 쌀 등 인간의 주산물이 견딜 수 있는 내열한계를 넘어서게 되어 사실상 노지재배가 끝장나게 된다. 

 물론 이들의 재배지를 북상으로 옮긴다는 현실적인 대책이 있긴 하다. 하지만 시베리아의 토양은 개척된 적이 없으며 기후만 적합해질 뿐이지 토양이 재배에 적합한지도 미지수다. 또한 상당수의 가축들도 열로 인한 스트로스와 가뭄, 질병의 창궐로 지금처럼 많은 식량을 제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방법은 재배지를 사전에 북상시키고 미리 경작 준비를 해 놓는 것, 그리고 유전자 조작으로 내열성과 가뭄에 잘 견디는 품종의 개발, 다소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수직농업이나 배양육처럼 실내에서 식량을 보급하는 것을 강구하는 것이다.


2. 식수부족

 인간의 민물의 의존하며 지구 상의 중요한 강들은 많은 경우 산악빙하에 유량을 의존하기도 한다. 산악빙하가 기온 상승으로 고갈하면 아랄해와 중앙아시아 타림 분지의 강유역들, 인더스, 갠지스, 바라마푸트라 강의 유량이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인더스, 갠지스, 브라마푸트라 강은 9억의 인구가 의지하는 강이다. 

 기온이 계속해서 오르면 빠른 증발로 지구 표면은 점차 건조기후화 할 것으로 추정된다. 아프리카의 좁은 지역과 남미 일부와 뉴기니섬, 방글라데시와 인도 중부, 캄보디아 서부와 중부는 오히려 강수가 증가한다. 그리고 알래스카와 캐나다 서부와 중부, 영국, 스칸디나비아, 시베리아, 한국과 일본 지역은 오히려 강수가 보통수준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 외 나머지인 지구의 절대 다수 지역은 강수가 크게 감소한다. 지중해와 호주, 남아프리카, 남미는 건조화한다.

 특히, 놀라운 것은 아마존의 건조화 가능성이다. 아마존은 상당한 생물량으로 1500-2000억 톤의 탄소를 저장중이다. 기온 상승으로 인하 기후 변화로 이 지역은 점자 강수량이 줄고 있는데 물이 부족하면 나무의 생장저해로 숲의 탄소저장 효과가 무려 10억톤가량 감소한다. 아마존 뿐만 아니라 현재 열대상록수림의 2/3이 강우량이 감소하고 있다. 아마존은 내부에서도 벌채가 상당히 진행중인데 이로 인해 건조한 사바나로 변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렇게 된다면 탄소를 흡수하는 것에서 방출하는 방향으로 역할이 변해 지구 온난화에 양의 되먹임을 하는 주요 지역이 되어 버린다.

 

3. 바다의 산성화와 산소고갈

 여름 날 바깥에 나둔 탄산 음료의 운명이 그러하듯 액체는 기온이 높아질 수록 기체를 녹이지 못하고 방출한다. 바다도 그러하므로 기온이 상승할 수록 바다의 기온이 상승하여 산소가 없는 죽음의 공간이 넓어진다. 반면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는 너무 많아져 이것이 바다에 녹아들어가 바다를 산성화시킨다. 

 바다가 산성화하면 가장 먼저 탄산칼슘을 이용하여 몸의 형태를 구성하는 생물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들이 바다 생태계의 가장 하부이자 중추적 역할을 하는 플랑크톤이나 크릴새우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죽으면 바다 생태계는 아래부터 붕괴되어 아무것도 생존하기 어려워진다. 또한 산호초 역시 사멸하고 있다. 높아진 바다의 기온으로 산호는 죽고 있다. 산호군은 놀랍게도 달의 위상과 주변 환경을 이용하여 멀리 떨어진 군락들이 서로 동시에 정자와 난자를 배출하여 수정하는 방식으로 번성한다. 하지만 해수온도 상승으로 이 동시성에 문제가 생겨나고 있으며 그로 인해 1970년대 이후 산호의 번식성공률은 80%이상 감소했다. 산호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4. 생물군의 절멸

 생물은 주변 환경에 맞게 진화했으며 여기엔 당연히 기후대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자신들에게 적합한 기후대가 점차 북상하고 있다. 온난화 때문이다. 온난화로 동식물의 적합 서식지는 10년 간 극지로 약 17km이동했고 고도는 10m나 상승했다. 문제는 생물종이 이를 따라가진 못한다는 점이다. 연구 결과 조류와 나비는 각각 212km, 135km나 뒤쳐졌다. 날아다니는 녀석들이 이 정도이니 걷지 못하는 식물이나 이동에 제약이 많은 육상동물의 사정은 더하면 더했지 못할리가 없다. 이들의 이동이 쉽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적합한 모든 환경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야 자동차나 걸어서 조금만 이동해도 모든 식량과 집등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이 있지만 자연 생물은 그렇지 않다. 갑작스런 원거리 이동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쉬운 이동이 어려운 것이다. 

 여기에 폭염은 이들의 생식력 마저 감소시킨다. 한번의 폭염은 딱정벌레의 생식력을 절반을 줄이고 두 번의 폭염은 이들을 거세시킨다. 질병도 창궐한다. 양서류인 개구리, 도롱뇽은 전염성 피부염으로 개체군이 크게 줄었다. 최소 501종의 양서류가 기온 상승으로 멸종했고 124종은 90%이상 개체수가 줄었다. 

 주요 곤충군은 40%이상 감소했는데 이들은 인간이 주요 식량원으로 삼는 작물의 수정을 담당하기에 식량 수급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5. 해수면 상승

 기온이 지금처럼 상승하면 그린란드의 빙하와 산악빙학, 북극의 방하, 남극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수미터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면 세계 각 지역의 해안 혹은 강가 근처의 인구는 늘 위험체 노출되게 된다. 피신해야 할 인구는 10억 이상이다. 이미 세계 각국의 정부들은 해안에 방어선을 구축 중인데 이를 유지 보수하는데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어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 해안 지역에서 해수면 상승에 맞서기 위해 향후 20년간 필요한 돈만 최소 4천억 달러로 추정된다. 그간 부동산 업자들은 해안지역과 하천 주변에 마구잡이로 주택을 지어 고가에 팔아왔는데 이 엄청난 자산이 좌초 자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해수면 상승은 문화유적과 자연유산도 파괴한다. 카르타고의 유적, 베네치아와 그 지역의 석호, 이스터섬의 조각상, 헤르클라네움의 로마 유적, 티레의 옛 도시, 런던 탑, 자유의 여신상,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가 모두 보존이 어렵다. 


6. 질병 창궐

 기온이 올라가니 당연히 질병이 는다. 기온이 3도만 상승해도 지구의 1/3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매년 20일 이상 죽음의 문턱에 해당하는 기온과 습도에 인간이 노출된다. 당연히 일사병과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급증하게 될 것이다. 특히, 선진국 지역에서는 에어컨이 있는 지역에 머물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의 사람들과 하층민들은 극도의 열스트레스로 인한 죽음에 노출될 것이 뻔하다. 여기에 이렇게 높은 기온은 사람들의 경제활동을 방해하게 된다. 여름철이면 노동이 가능한 시간이 아침 저녁으로 크게 줄어들 것이며 이로 인해 생산저해효과는 날이 갈수록 커질 것이다. 

 모기에 의한 뎅기열은 내부출혈을 일으킨다. 바이러스성이라 항생제 효과가 없다. 이 병은 1970년대 9개 나라에 있었으나 지금은 100개 나라의 풍토병이다. 기온 상승 때문이다. 매년 3억 9천만의 뎅기열 환자가 온난화로 생길 것이며 어린이 사망자만 1만 2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뎅기열을 감염시키는 흰줄숲모기와 이집트 숲모기의 서식지가 온난화로 넓어졌기 때문이다. 한가지 더 무서운 사실은 지구 온난화가 극심화하면 지금의 열대 지역은 모기도 살 수 없을 정도로 더워진다는 사실이다. 뎅기열과 더불어 말리리아도 확산할 것이다.


7. 정치적 혼란

 온난화로 식수 및 식량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이 사단에 가장 적은 기여를 한 가난한 나라가 먼저 붕괴하게 될 것이다. 2000년대 후반 식량과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며 북아프리카 및 중동의 가난한 독재 국가들은 가장 먼지 정치체계가 붕괴했다. 이후 이 지역에서 대량 난민이 발생해 이들이 가장 가까운 선진사회인 유럽으로 이동했고, 이 난민에 대한 반감으로 극우정이가 유럽사회에서 세력을 키우게 되었다.

 온난화로 식수가 고갈되고 이로 인해 식량 자급이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당연히 생존을 위해 이주를 하려 할 것이다. 이주에는 국경을 초월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식량 및 식수가 간신히 자급이 가능한 주요 선진국들은 문을 걸어 잠글것이 자명하다. 당연히 내부에서는 생존을 위해 외부인을 혐오하고 차별짓는 정치가 횡횡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이를 에코파시즘이라 칭했는데 매우 그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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