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철학의 최전선 - 가장 뜨거운 다섯 가지 주제와 그 사유의 지도
나카마사 마사키 지음, 박성관 옮김 / 이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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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20세기에서 21세기에 철학자들이 크게 논의한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정리한 책이다. 다섯 가지 주제는 정의론, 승인론, 자유 의지, 마음의 존재, 실재론이다. 책은 이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한 여러 철학자들의 논의를 넘나들며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는데 충실히 설명하면서도 간략히 다룰 수 밖에 없다 보니 이해가 쉽지 않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철학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은 편이다. 워낙 어렵기도 하며, 이것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설명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설명으로 내가 가장 신뢰하는 것은 진화론과, 우주론, 지리학이다. 이들의 설명이 가장 그럴 듯 하고 인간이 만들어 낸 설명 방법 중 비교적 인과가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다. 철학은 과학적 방법보다는 인간의 부실한 합리성에 의존하며 사실 그 합리성도 개인적인 특출한 자질과 그 사람이 자라난 지역의 역사와 문화권에 의해 생성된다. 때문에 상당히 매력적이고 뛰어난 설명이 많지만 역시 많은 한계를 지니며 부실하다. 이 책도 재밌었지만 그러한 한계 내에 있다고 생각된다. 하여튼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본다.


1. 정의론

 윤리학은 종래 메타윤리학 중심이던 것이 롤스에 의해 인간의 행동 기준으로 삼아야 할 정의의 원리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널리 실행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가 필요한가 등 실제적인 가치 판단의 문제로 논의의 축이 이동한다. 롤스의 정의론은 사회계약의 틀을 사용한다. 그는 사회계약의 틀로 자원 배분 문제를 포함한 정의의 원리를 선택하는 데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계약은 곧 다수결의 원리로 이어지게에 기존의 공리주의와 차별성이 없어진다. 차별성을 두기 위해 롤스는 원초상태와 무지의 베일을 설정한다.

 원초상태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행복 추구를 위해 함께 협력할 때 어떤 권리를 각자에게 할당할지 또 공동으로 관리하는 각종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지 논의하기 위해 모인 상황이다. 무지의 베일은 사람들이 어떤 원리를 채택할 때 그게 자기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 알 수 없도록 그 사람의 지위를 망각시키는 원리다. 롤스는 이로 인해 사람들이 두 가지 원리로 정의를 구상할 것이라 생각했다. 제1원리는 기본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개인에게 평등하게 보장하는 것이고 제2원리는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허용하는 두 가지 조건이다. 하나는 그 불평등이 있어야 가장 불우한 이의 기대편익이 최대가 되는 것이며 둘은 그 불평등이 직무나 지위가 전원에게 공평하게 개방된 경우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센델은 이런 롤스의 무지의 베일을 비판한다. 센델은 무지의 베일처럼 당사자들이 연고 없는 상태에서 행하는 계약은 무의미 한다고 주장한다. 계약이란 상이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의견교환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인식하고 대립을 파악하여 납득가능한 합의에 도달하는 것인데 무지의 베일상태에선 이런 합의가 있기 어렵다.   

 센델은 롤스나 모든 근현대의 자유주의 국가의 법에는 현실의 인간이 보편적 이성능력으로 보편적 정의와 권리를 인지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만일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각자의 정체성에 따라 달라지는 '선' 이전의 것이 있는 것이라 하였는데 그것이 '정'이다. 센델은 선보다 정이 선행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현상은 선에 대한 정의 우위라고 부른다. 하지만 센델이 보기에 국가는 중립적이지 않으며 선에 대한 정의 우위가 아닌 특정 선에 우세하게 조직되어 있다. 때문에 자유주의는 자신이 비중립적인 문화 위에 성립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그래서 각 개인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어떤 정의가 요구되는지를 숙고하기 위해서 우리 공동체 속에 배양되어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공동선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

 아마르티아 센은 잠재능력을 윤리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잠재능력은 개인이 기본재를 충분히 활용하여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가능성인데 이는 가난한 제 3세계일 수록 중요하다. 그리고 센의 공동 연구자 누스바움은 문화적 관습이나 생활습관으로 선진국 여성보다 개발 도상국 여성들이 잠재능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다. 다만 누스바움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자연으로 받아들이는 여성이 잠재능력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과 그것의 무리한 강요는 옳지 않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2. 승인론

 언급한 정의론에서 방식이야 어떻든 개인 간의 합의가 중요한 절차로 작용한다. 때문에 승인론이 등장한다. 이론 합의에 의한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이 보편적 합리성을 갖춘 자율적인 주체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인론은 인간이 주체성을 갖고 있느냐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흐름이 있는데 가치중립성을 표방하는 자유주의 계열의 정의론은 인간의 보편적 이성을 전제한다. 반면 보편적 이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기고 무의식과 역사성, 지역성에 의한 생성을 강조하는 쪽이 있다. 

 부정적인 쪽에는 프랑스의 구조주의가 있다. 구조주의는 주체가 자율적으로 존재하며 판단이나 행동하지 않는다고 본다. 각종 구조, 언어를 비롯한 각종 기호체계의 유닛에 의해 본인이 알지 못하는 곳, 즉, 무의식에 규정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그 구조를 밝히려 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간 포스트 구조주의는 구조를 실체시하는 경향마저 문제삼으며 구조의 유동성을 강조한다. 데리다는 개인이 판단을 할 때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확신하고 이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데 이 내면의 기준은 에크리튀르(주체와 대상을 규정하는 다양한 기호)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한 에크리튀르는 다른 에크리튀르에 따르며 이것의 원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콰인의 전체론은 사람들이 대상에 대해 품은 신념이나 과학적 명제는 각각 독립적으로 성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정당성을 상호 증명하는 그런 상호의존적 체계라는 주장이다. 이 견해에 따라면 개개의 명제들은 진리성이 상대화되어 궁극적인 형태의 이론적 토대의 부여는 불가능하다. 결국 전체론은 포스트구조주의와 비슷한데 로티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그는 인식론을 기반으로 한 근대철학과 분석철학은 양자 모두 토대주의에 기반한다고 파악한다. 그는 절대적 근거가 없는 토대주의 대신 프래그머티즘적 태도를 보인다. 이는 상이한 유형의 다양한 학문과 담론사이에서 회화를 성립시키는 매개, 즉, 논의를 진행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이며 그는 이를 중시한다. 절대적 토대보다는 서로 간의 논의를 받쳐주는 형식을 중시하는 것으로 이는 해석학이다. 


3. 자유 의지

 자유의지는 오랫동안 이성을 갖춘 합리적 주체처럼 철학에서 당연시 되어 온 하나의 전제였지만 과학의 성과로 현재에는 전체적으로 부정된다. 사회생물학자인 윌슨은 자유의지에 대해 자신의 행위를 선택하는 자기는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신체의 다양한 회로 속에 진행되는 의식 외부의 프로세스에 의해 조종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완전한 지휘권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의지란 결정에 이르기까지 의식 외 활동, 마음의 매커니즘이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기에 생기는 행복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대니얼 데닛은 인간이 왜와 어떻게를 혼동한다고 말한다. 이는 진화론적 근거가 있는데 원인은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어떻게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유는 왜에 대응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자연계에는 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순한 인과과정인 어떻게만 존재하지만 인간은 문화적 진화과정에서 이 왜가 분화되어 나온 것이다. 진화상 단순한 생명체는 자신의 목적인 유전자의 유지 복제를 위해 본능적으로 프로그램된 단순한 행동을 반복한다. 이는 거의 확실하고 규칙적이다. 하짐나 생명체는 복잡해지면 유전자의 복제, 유지를 위하여 환경에 더욱 능동적으로 대응하게 되고 본능을 넘어선 지능이 생겨나 현재 상황에 대한 자신의 대응을 꾸준히 시뮬레이션 하고 왜 이 행동을 해야하는지를 계획하고 반성하며 되묻는다. 이런 것이 확장하여 여러가지에 대해서 왜를 묻게 되는 것이다. 즉, 데닛이 말하는 자유의지는 굳이 필요가 없는 인과만으로 존재하는 우연적 자연계에 대한 효율적 대응과정에서 왜가 분화되어 생겨난 것이 된다.

 로젠버그는 윌슨 이상으로 자연주의와 과학주의 입장을 취한다. 자유, 자유의지, 도덕성, 의지의 목적은 모두 환상이며 인간의 현상들의 의미를 인문과학에 의해 해석하는 것은 무력하다고 말한다.


4. 마음은 존재하는가

 마음철학에서도 인지과학이나 심리학 생물학 등의 성과를 받아들여 마음을 물맂거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물리적 경향이 강하다. 다만 마음을 구성하는 요소로 생각되는 의식, 자기의식, 감각등을 어떻게 설명할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있는 편이다.

 정신의 모듈성은 컴퓨터가 정보를 처리하는 것처럼 인간도 각 모듈에서의 처리가 연속적으로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을 마음이라고 본다. 데니얼 대닛은 기존의 마음 철학들을 비판하며 이것들은 모두 뇌의 어딘가에 의식에 중핵에 해당하는 장소가 있고 그곳에 위치한 진정한 자기가 의식 내 모든 사건을 조장하고 있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는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성의 의해 의식을 전체적으로 통합하는 포괄적인 주체는 없으며 내 의식에 있어서는 그때그때 다른 경로로 여러 단계에 걸쳐 결정이나 판단이 이뤄진다. 다만 나중에 그 과정을 돌아보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보고할때 마치 자기 주위의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의 의도에 따라 실행한 통일된 주체가 있는 것처럼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 뿐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행동에 예측 가능해져 생존을 할 수있으며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통해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음에서는 개개인이 외부 세계를 인식할 때 의식에 생기는 감각의 질적 변화인 퀄리아가 중요시 된다. 이는 마음의 근거로 주장할 때 많이 이용되는데 데닛은 이런 퀄리아 역시 물리적 자극에 반응하는 성향복합체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5. 실재론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으로 실재론은 그 근거가 철저히 박탈된다. 하지만 이에 대항하여 사변적 실재론과 신실재론이 등장한다. 이들은 주체의 인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부정하기 힘든 실재가 있음을 철학적인 사변을 통해 밝히려고 시도한다. 

 현대의 실재론은 과거의 이데아 같은 형이상학적 전제에 의존하지 않으며 주체의 의식을 초월하는 실재에 관해 사유하면서 어떤 속성을 갖는 대상이 존재하는지 보여주려고 한다. 상관주의는 칸트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주제가 어떤 대상과의 관계속에 있으며 그 관계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는 견해다. 상관주의에 따르면 어떤 존재도 필연성이 있기 어렵다. 메이야수는 그래서 세계를 수학화하여 상관주의에서 벗어나려 시도한다. 하지만 자연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체의 의식과 무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논의는 쉽게 부정된다. 

 브라시에는 인간이 개념장치를 매개로 실재의 구조에 접근해 가는데 이 세계는 지적으로 이해하도록 되어 있지 않아 애당초 의미가 주입되어 있지도 않다. 때문에 인간의 개념장치에 의한 행위는 불가피하게 형이상학으로 치닫게 된다. 그는 우주가 무감각, 무목적인 것으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이 그것을 그냥 드러내고 받아들이는게 지성의 성과라고 말한다. 

 샤비로는 과학 수학 역시 인간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기존 견해들이 인간의 입장에서 사물을 분석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에게 사물이 작용하고 있는지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물들과 함께라는 느낌이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에서 실재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들에게 주는 느낌이 현재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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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삼국지 - 글로벌 반도체 산업 재편과 한국의 활로
권석준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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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는 한국 수출액의 20% 정도에 주식 시가총액에서도 역시 20%를 차지한다. 한국은 자동차, 스마트폰, 첨단 가전, 조선, 석유화학 등 제조업 부분에서 고루 강하지만 무역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세계 시장에서도 반도체 산업의 규모는 매우 크다. 세계 반도체 산업의 규모는 연간 2000억 달러에 달하며 향후 인공지능, 자율 주행차, 사물 인터넷, 통신 분야에서 반도체의 요구도는 날로 커질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 80년대부터 반도체를 시작했는데 불과 20여 년 만에 세계적 선두 주자에 위치에 올라섰다. 이 시기부터 세계 반도체 산업은 냉전의 붕괴로 세계화가 추진되며 비용을 가장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분화되었다. 설계와 공정 생산, 그리고 여기 필요한 소재, 부품, 장비를 공급하는 업체가 나라 별로 비교 우위에 따라 다분화 된 것이다. 이런 체제에서 한국은 오랜 수혜를 받으며 선진국의 위치로 올라섰으나 이제 그 게임이 끝나버렸다. 미국은 자신들의 위치를 위협하는 강국 중국을 제대로 견제하기 시작했으며 반도체는 차세대 산업의 주력으로 그 제재의 주요 대상이다. 문제는 대중 수출 규모에서 한국의 반도체는 연간 800억달러에 달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전처럼 눈치를 보며 애매한 위치를 고수하기 매우 어려워졌다. 이 책은 이러한 형국에 대한 분석과 해답을 제시한다. 책은 우선 한중일 삼국의 반도체 발전의 역사와 현 시점 향후의 과제를 제시한다.


1. 일본

 반도체의 역사는 서진한다고 한다. 최초 개발은 영국, 다음은 미국, 일본, 한국과 대만, 중국 순으로다. 중국으로의 걸음은 미국의 제재로 미지수가 되었지만 하여튼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 반도체를 제패했던 국가다. 일본은 한 때 세계 최초의 NAND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기술개발, 세계 최초의 KB급 DRAM 양산 공정 개발, 세계 최초 CMOS이미지 센서 양산, 세계 최초의 수퍼컴퓨터 개발이 일본의 작품이다. 

 1970년대 만해도 지금과는 매우 다르게 동아시아 국가는 반도체 시장에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국가 주도로 준비하여 1980년대부터 시장을 장악한다. 통신산업성 주도로 초 LSI 기술 연구조합을 설립하여 기업 간의 중복투자 방지, 기술 노하우 공유 등으로 일본 만의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한다. 그 결과 NEC가 1985-1991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반도체 상위 10개 기업 중 6개가 일본 기업이었으며 전체적인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무려 80%에 달했다.

 이런 일본 반도체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1985년 미국 통상법 301조(언론에 자주 나오는 수퍼 301조다.)를 걸고 넘어진다. 무역 제재와 보복 관세를 시작하였는데 그래서 일본 반도체 기업은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50%이하를 유지하고 일본 국내 시장의 20%를 미국 기업에 내줘야 했다. 이 기간 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수율을 높이고 극단적 품질 강화로 대응한다. 하지만 이는 차세대 기술의 미비로 한국과 대만에 밀리게 되는 패착이었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반도체 생산에 세계적 변화가 일어난다. 기존에 반도체는 설계와 제조의 공정을 모두 한 회사에서 담당했었다. 하지만 세계화의 바람과 더불어 미국의 일부 반도체 회사들이 이 관습을 포기하고 설계와 생산을 분리하기 시작한다. 설계와는 다르게 생산공정과 수율관리는 막대한 자금과 인력 및 시행착오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부터 세계 반도체는 설계만 하는 팹리스, 팹리스의 설계를 의뢰 받아 제작해주는 파운드리, 그리고 이 공정에 필요한 소재, 부품, 장비를 공급하는 회사들로 분업하여 최적화되기 시작한다. 반면 일본 업체는 이 흐름을 타지 않았다. 이들은 자체 생태계를 믿고 설계, 소재, 부품, 공정, 후공정에 이르는 수직계열화 방식을 고수하여 경쟁력을 잃게 된다. 

 결국 일본 반도체는 90년대 이후 급격히 몰락하여 지금은 흔적만 남게 되고 소부장에 집착하는 신세가 되었다. 일본의 패착은 3가지가 요인이었다. 우선 자신들이 구축한 기술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과 그로 인해 세계 시장에 대응력이 떨어진 점, 자신들의 기술을 믿고 과도하게 혁신을 하여 효율과 수익률을 떨어뜨린 점, 그리고 과거엔 성공적이었지만 시대착오적인 정부의 과도한 간섭이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 반도체를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대만 TSMC와도 협력하는 등 자신들만의 생태계 구축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는다. 일본은 미국의 중국 제재에 편승해 칩4동맹에 편승하여 과거의 영화를 회복하려 한다. 

 

2. 중국

 중국은 2020년 기준 전역에 50개가 넘는 반도체 투자 사업을 진행중이다. 총 투자비가 무려 2430억 달러로 한국 돈으로 280조다. 돈은 엄청나게 투자하지만 현재 반도체 자급률은 15%에 불과할 정도로 성과가 미비하다. 중국 반도체는 사실 정부 주도로 지난 20년 간 급성장해오긴 했다. 이들의 발전 비법은 강력한 정부의 정책과, 연구 개발 분야의 투자, 그리고 해킹을 이용한 무분별한 해외 기업들의 기술 탈취와 해외인력 스카우트를 통한 기술 획득이다. 

 중국은 공산당 중앙정부가 시책을 펼치면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지방 정부들이 무리하게 이 시책을 적극 추진하는데 반도체 분야도 그렇다. 하여튼 여러 시책에 무리하게 참여한 대가로 2020년 기준 중국 지방 정부의 부채는 무려 4600조다. 중국 국가 전체의 부채는 무려 6경원에 달한다. 중국 31개 성 중 8곳이 GDP대비 부채가 100%가 넘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거의 절반 이상의 성이 이런 처지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더 이상 투자를 위한 여력이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여기에 중국은 고령화 문제와 엄청난 부채, 미국과의 제재로 인한 저성장 국면에 고착화되면서 반도체 부문의 기술 획득이 쉽지 않게 되었다.

 현재 중국이 기술적 한계에 부딪힌 부분은 10나노 공정이다. 10나노 까지는 비교적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그 이하로 내려가면 기술에 차원이 달라진다. 반도체는 패터닝을 통해 생산하는데 패터닝을 글자 그대로 반도체 표면 위에 2차원이나 3차원의 구조로 아주 미세한 작동 패턴을 새겨넣는 공정이다. 그리고 이것이 섬세해질수록 작은 크기에도 집적도가 높아져 고성능의 반도체가 생겨난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크기엔 큰 변화가 없음에도 무어의 법칙을 따라 성능이 꾸준히 개선되는 것은 이런 패터닝 기술이 극도로 발달해왔기 때문이다. 

 이 반도체 패터닝에는 품질이 매우 우수하고 신뢰도가 높은 광원이 필요하다. 이 광원에 감과원을 노출시켜 패턴을 얻기 때문이다. 넓은 파장의 저렴한 광원을 쓰면 물질이 전자기파를 흡수하는 정도가 달라져 균질한 제품을 얻을 수 없으므로 아주 좁은 범위의 파장이 필요하다. 레이저나 플라스마 발광이다. 

 10나노 이하의 공정에서 사용하는 광원이 EUV다. 이 광원은 신뢰도가 매우 높으나 여러 물질이 잘 흡수되는 문제가 있다. 때문에 EUV공정에서는 나노두께로 수십겹을 겹쳐 극도로 반사율을 높인 거울을 여러 개 연결하여 광원을 집결시켜 패터닝을 한다. 때문에 처음 광원 세기의 7.5%수준에 불과해지고 전력 역시 크게 소모한다. 이렇게 낭비가 심한데도 이 기술이 아니면 10나노 이하 공정이 불가능하기에 이 기술이 사용된다. 

 이 고성능의 EUV장치를 양산단가에 맞춰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네덜란드의 ASML이다. 문제는 미국의 제재로 중국은 ASML의 EUV장비를 수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장비는 대당 1800억원의 고가이지만 돈이 많고 안달이 난 중국에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ASML은 네덜란드 기업이지만 EUV장비 생산에 필요한 부품 20%정도가 미국에서 생산되다. 때문에 중국은 EUV를 구매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중국의 반도체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한다. 중국 자체만의 힘으로 오랜 역사와 협력을 자랑하는 반도체 기술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를 자체의 물량과 돈, 그리고 해외 기술 빼돌리기와 스카우트로 해결하려 하겠지만 이 또한 미국의 강력한 제재로 쉽지 않은 형국이 되었다. 또한 기술 개발에 성공하더라고 세계 표준과 멀어지는 갈라파고스화가 진행되어 완전히 독자적인 길로 가게 된다면 그 또한 문제가 된다. 하지만 중국의 넘쳐나는 인재와 반도체 분야의 논문 수준의 우수성과 기초과학 분야에서의 뛰어난 능력을 보면 위협적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3. 한국

 한국은 1980년대부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다. 당시 일본 업체가 세계를 제패하고 있었으므로 한국의 도전은 무모해보였다. 한국은 1980-90년대까진 선두 업체와의 기술 격차를 줄여나가며 동시에 선행 기술을 개발하는 전략을 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는 선행기술을 적어도 두 세대 이상 먼저 개발하는 초격차 전략을 펼쳐 성공한다. 그 결과 삼성은 1996년 세계 최최로 1GB급 DRAM개발에 성공한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미국은 한국 반도체를 견제한다. 정부의 기술개발 보조금, 세제지원 축소, 대기업의 자금조달 투명화, 대출자금 정보 공개등이 요구되었다. 당시만 해도 반도체는 삼성외에도 현대와 LG에서도 사업을 진행했는데 현대반도체가 LG반도체를 흡수 합병한다. 21세기 초반은 반도체 업계가 불황이었기에 현대 반도체는 15조에 달하는 부채가 있었고 자본금이 부족해 신기술에 대한 투자도 미비했다. 결국 2001년 말 채권단에 매각되어 워크 아웃에 돌입했고 매각 후 하이닉스로 이름을 바꾼다. 2005년 업계가 호황으로 전환되어 흑자기조로 정상궤도에 올랐고 이동통신으로 자본을 쌓은 sk가 인수해 지금의 SK하이닉스가 된다. 

 대만의 TSMC는 파운드리 회사다. 파운드리는 설계사가 설계하거나 특정 제조사가 주문한 반도체를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 제작해주는 회사다. 때문에 파운드리 회사에는 고도의 신뢰와 기술이 요구된다. 파운드리 회사는 고객의 입맞에 맞추기 위해 반도체 설계 단계부터 고객사와 협력하며 그들의 공정에 맞게 최적화해준다. 그리고 여러 회사의 칩을 설계해나가며 다양한 기술을 익히게 되고 이를 통해 시너지 효과도 갖게 된다. 

 반면 삼성전자는 종합 반도체 회사다. 즉, 제작 뿐만 아니라 반도체 설계까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쟁업체들이 고객이 되기도 한다. 삼성은 2017년부터 시스템 반도체에서 파운드리 부분의 사업을 독립시켰다. 그리고 2020년부터 파운드리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저자는 삼성이 파운드리 부분의 법인을 독립시킬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이는 삼성과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들인 기술 유출 문제로 삼성에 제작을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객 사의 신뢰를 얻기 위해 법인의 분리가 필요하고 파운드리 제작사로 거듭날 때 삼성이 TSMC의 경우처럼 고객 다양성을 통한 경쟁력을 확보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현대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의 동력이 되고 있다. 그 동안 한국은 중국과 미국의 협력 체계 하에서는 양국사이에서 모호한 입장을 취하며 경제적 이득을 얻어왔다. 하지만 미중갈등의 고착화로 판이 변하면서 이런 입장을 위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저자는 과감히 한국이 중국을 버리고 미국이 운영하는 칩 4동맹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연간 80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 시장의 포기와 관련 산업체에 큰 타격을 입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미국이 반도체 뿐만 아니라 세계 과학 기술을 선도한느 강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로 제조업 각 분야에 대한 원천기술을 선점하고 확보하여 시장의 지배력을 보존해오고 있다. 특히, 각 산업의 공정마다 원천기술을 갖고 있어 자신들의 기술이 세계 시장의 표준이 되게끔 하는 노하우가 강하다. 현재 반도체 산업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는 패터닝이 극 미세화하며 원자 두께 이하의 양자영역으로 치닫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는 양자 ICT가 중요해질 텐데 이 부분에서도 미국이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은 미국이 선점해나가는 기술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이를 잘 따라가며 몇몇 기술에서는 세계를 선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상실하게 될 중국 시장 역시 생산기지와 소비지로 아세안을 주목해야 한다. 인도와 호주가 중국을 대신할 새로운 생산 및 공급기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양국 모두 미국과 친밀한 경제, 정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에 대한 시각도 거두지 말아야 한다. 우선 이들이 꾸준히 시도할 기업 기술 유출을 막고 인재의 스카우트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흔히 첨단 기술 인력에 대한 스카우트가 이뤄진다고 믿지만 반도체 공정에서는 긴 시간 이 환경에서 근무하여 각종 시행 착오를 겪고 이를 해결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중국 기업은 회사 승진에서 밀리거나 정리해고 위기에 처한 즉, 기존 기업에서 크게 신경쓰지 않는 인재를 거액에 스카우트 하여 단기간 고용하고 버린다. 때문에 인력에 대한 처우를 높이고 감시도 더욱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산학협력도 중요하다. 반도체에 대한 산학협력은 미흡한 수준으로 대학에서 현재 기업의 현장 수준에 필적할 만한 시설을 갖춘 학교는 서울대가 유일하다고 한다. 네덜란드 수준으로 산학협력을 강화해 시설과 보안을 강화하고 현장의 경험 많은 고수준기술의 인재가 학생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소재, 부품, 장비의 생태계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자유로운 분업체제에서는 이를 글로벌 공급망에 맡겼지만 이것이 붕괴된 지금은 비용이 더 들더라도 자국내에 안정적인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본의 쓸데없고 무리한 제재로 다수의 일본 소부장 기업들이 한국으로의 진출을 희망하는데 이들에게도 적극 지원을 해 한국에 종속되는 생태계로의 편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계 정세의 급변으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이제 새로운 공식을 따라 새로운 위기와 기회를 맞는듯 보인다. 중국 시장의 상실은 단기적으로 큰 손실이지만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제거되는 이점이 있기도 하다. 향후 이 부분에 대한 불투명성은 매우 높아 보이며 반도체 부분에 대한 개인의 투자도 무척 조심스러워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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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 - 고종 즉위부터 임시정부 수립까지, 개정판
김태웅.김대호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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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대사 중 고종 즉위에서 대한 제국까지 시기에 일어난 주요 사건 29가지를 주제로 정리한 책이다. 당시 세계는 격변하고 있었고 한국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시기로 조선의 주체적인 면이 많이 부정되고는 하지만 책은 이것은 결과론적인 설명일 뿐 우리 나름대로의 노력이 드러났음을 보여준다. 물론 충분치 못했고, 방향성에도 문제가 있으며, 얼마 되지 않는 힘도 충분히 뭉치지 못했음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 주 이유다. 

 우리는 강화도 조약으로 알고 있는 것의 실제 이름은 조일수호조규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은 기존 유교질서에서는 외교 관계를 조규나 장정으로 맺었다. 조선 역시 전통적인 관계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기에 조규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향후 청과는 조청상민수륙장정을 맺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일수호조규는 많은 문제가 있지만 교과서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문제로 관세 문제가 있다. 일본은 처음엔 조선 측에 5%정도의 관세를 허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선은 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실수를 저지른다. 전통적으로 일본 상인과 거래하는 조선 상인의 각 포구에 세금을 물려왔었기에 그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관세 문제는 이후 조미수호 통상조약을 맺게 되어서야 자주권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비싼 수업료를 치뤄가며 하나하나 근대 조약에 대해 배우게 된 것이다. 

 갑신 정변은 급진 개화파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이들은 당시 20-30대로 무척 이나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정변을 일으킨 이유는 임오군란 이후 청의 내정 간섭으로 개혁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에 의해 민씨 일가가 적극 등용되어 급진 개화파 자신들의 입지가 크게 줄었다. 또한 정부가 심각한 재정 위기로 이렇다 할 개혁을 하기 어려운 것도 이유였다. 하지만 이는 불과 삼일천하로 끝나게 된다. 실패 이유로는 이들이 지나치게 젊어서 주변에서 신의를 얻기 어려웠다는 것, 이합집산하는 것처럼 보였던 개화 반대 세력들이 정변 시 의외로 결집한 것, 의지했으나 일본인 너무나도 쉽게 물러난 것, 마지막으로 백성의 지지가 없었던 것이 꼽힌다.  

 임오군란 이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 체결된다. 장정은 언급한 것처럼 청과 조선의 전통적인 규정이다. 청은 이 장정으로 5% 관세율, 치외법권, 내지 통상권을 얻는다. 내지 통상권으로 인해 조선의 상인 집단이 큰 타격을 입는다. 이전만 해도 개항장의 조석 객주는 상품중개, 숙박업, 자금대여를 했고 기존의 외국 상인은 이 객주를 통해 물건을 사들이고 판매했다. 하지만 내지 통상권으로 객주가 배제되었고 유통단계가 줄어 청으로부터의 수입품 가격이 싸져 조선 상품의 경쟁력이 크게 상실된다. 청은 일본 상인을 압도했는데 양쪽다 유럽에서 수입한 물건을 판매하면서 청은 직수입해 판매했고, 일본은 청에 유럽에서 수입한 물건을 다시 수입해 파는 형태였기에 가격 경쟁력이 더 낮았기 때문이었다. 

 동학농민군은 어찌보면 망해가는 조선의 마지막 보루였다. 하지만 패배했는데 책은 그 요인으로 4가지를 꼽는다. 우선 군사전문가가 아니었던 전봉준의 전술적 패착이다. 물론 무기나 훈련도 면에서 동학군은 일본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수가 훨씬 많았고, 지리적 우위가 있었던 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다음은 남접과 북접의 노선 차이다. 양자는 서로를 적대하기 까지 했고 보다 호전적이던 남접에 비해 북접은 그렇지 못했다. 마지막은 늦은 봉기다. 청일전쟁으로 일본군이 7월에 경복궁을 불법 점령했는데 농민군은 10월에서야 봉기한다. 이 3개월 간 일본군은 후방의 불안한 없이 청군에 집중해 그들을 제압하고 편안하게 조선군까지 장악 후 농민군을 상대할 수 있었다. 농민군은 좌충우돌하느라 결정적 시기를 놓쳤고 빨리 올라오지 못해 충분한 병력 규합도 이뤄지지 않았다. 

 청일전쟁은 조선을 무대로 일어난 만큼 큰 피해를 안겼다. 일본은 전쟁 중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군으로 협박하여 각종 협정을 강제로 체결해 조선 내 병참기지를 건설하고 인부와 우마, 군량을 마구잡이로 징발했다. 말을 듣지 않는 조선인은 쉽게 살해하기도 하였다. 대포는 20문, 소총은 무려 2천정을 조선군에게서 약탈한다. 일본군과 관련자 20만을 위한 물자를 조선에 강요하였고 각종 성범죄를 일으켜 성병을 퍼뜨리기도 하였다. 청군과의 평양성 전투에서는 수많은 시체와 동물사체를 방치해 이질이 발생하였다. 결국 청일전쟁으로 조선인은 무려 30만이 사망하게 되는데 이중 주 무대였던 평안도에서만 6만이 사망하게 된다.  

 청은 이 전쟁에서의 패배로 자신들의 중화질서 최후의 보루인 조선을 사실상 상실하게 된다. 시모노셰키 조약으로 요동반도와, 타이완, 펑후열도를 상실하고 전쟁배상금을 무려 은 2억냥을 물게 된다. 이는 당시 청의 3년치 재정으로 청은 배상금을 내기 위해 유럽 국가에 차관을 빌려 더욱 곤경에 처하게 된다. 여기에 청은 약체로 취급되어 유럽열강들의 마구잡이 침략에 더욱 시달리게 된다. 반면 일본은 서구 열강의 재평가를 받게 되며 사실상 열강의 반열에 올라선다. 또한 청에 조계를 설치하게 되어 청이라는 거대한 소비시장을 확보하게 되고 적자가 흑자로 전환된다. 그리고 청에게서 받은 배상금으로 제철소를 설립하고 배상금의 84%를 군비확장에 이용해 또 다른 침략을 준비하게 된다. 

 갑오개혁은 4시기로 나눌 수 있다. 1기는 1894년 7월에서 -12월로 군국기무처가 중심이 되었다. 당시 청일전쟁으로 일본의 간섭이 적어 조선의 자율성이 컸다. 2기는 12월에서 1895년 7월로 일본이 승리하고 농민군 마저 진압해 박영효를 내세워 내정에 개입했다. 일본인 고문관이 간섭을 했고 홍범14조가 반포된다. 3기는 1895년 7월에서 8월로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3국 간섭으로 일본의 조선 보호국 시도가 실패한다. 박영효는 역모로 몰렸고 조선의 자율성이 다시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4기는 을미사변기로 1895년 8월에서 96년 2월까지다. 을미개혁 시기로 태양력, 단발력, 종두법이 시행되며 이로 인해 반일, 반정부 투쟁이 강화된다. 

 갑오개혁으로 조선은 사실상 근대사회로 편입된다. 군주권을 제한하고, 의정부와 내각의 결정권을 높였다. 8아문과 이를 관리하는 대신이 생겨난다. 탁지아문은 중구난방이었던 조선의 조세를 체계화하고 관리했다. 신분제도와 과거제가 폐지되었고, 학무아문으로 교육을 강화한다. 

 을미사변으로 고종은 신변에 큰 위기를 느끼고 아관파천한다. 첫 시대는 병사를 일으켜 크게 움직이는 바람에 실패했으므로 2차 시도는 엄비를 통해 소규모로 실시해 성공한다. 고종은 엄비를 궁으로 불러들였고 당시 궁녀들인 수시로 궁과 바깥을 드나들었기에 엄비가 궁에서 나가는 가마 두 개를 이용해 세자와 함께 탈출한다. 아관파천으로 갑오정부 대신들은 몰락한다. 이후 박정양, 이완용, 이범진 등 러시아는 미국을 중시하는 관리를 등용해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한다. 하지만 아관파천으로 여러 이권을 상실한다. 러시아는 삼림채벌권을 획득해간다. 아관파천 신 내각은 반일 왕권강화 세력이었다. 과거 의정부 시스템을 부활시키고 일본인 고문관과 교관을 파면하고 러시아인 고문과 사관을 초청한다. 아관파천 이후 열강은 이전보다 적극적인 직접 투자를 통한 이권 약탈을 시도한다. 광산채굴권이나 삼림벌채권, 철도 부설권 등이다. 이에 대규모 사업에 필요한 필요한 자본과 고도의 기술이 투입된다.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와 일본은 3개의 의정서를 체결한다. 1차는 러시아가 유리해서 조선내에서 일본 상인과 균형을 맞추는 합의가 이뤄진다. 2차에선 일본과 러시아의 이익이 균형을 이루고 

3차에서는 러시아가 일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이는 당시 러시아가 만주의 뤼순과 다렌을 조차하여 만주에서의 이권을 강화했기에 일본을 달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종은 결국 궁으로 돌아온다. 경복궁은 을미사변이 일어나기도 했고 방어가 어려웠기에 고민 끝에 경운궁으로 환궁을 결정한다. 훈련 받은 친위대 80명을 배치했고 수리 공사 후 환궁하게 된다. 돌아온 고종은 칭제건원한다. 고민이 있었으나 수많은 관료들이 찬성한다. 칭제건원을 국제사회가 인정하느냐가 문제였는데 공사가 반대의견을 냈던 러시아가 의외로 가장 먼저 이를 인정하고 축하전문을 보냈다. 일본도 조문하여 이를 인정한다. 당시 극심했던 조선 내 반일감정을 누그러트리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되니 조선과 큰 이해가 없던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도 제국 선포를 인정하게 된다. 가장 불만을 가진 건 청이었다. 청의 일부 사람들은 이를 청일전쟁의 패배보다 더 수치스럽게 여길 정도였다. 하지만 조선 내에 청의 상인이 상당히 많이 진출해있었기에 이들의 보호를 위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독립신문은 서재필이 창간했다. 서재필은 갑신정변 주역 중 하나로 이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0년이 지나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의사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시민권을 가진 의사자격으로 귀국해 신문을 창간한다. 서재필은 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운다. 대한제국의 선포와 이에 따른 각계각층의 호응이 이어졌고 고종은 공사비의 20%를 지원한다. 독립신문은 순한글로 발행한 근대신문이었다. 신문은 무려 3천부나 발행되었는데 당시 신문 1부를 거의 200명 정도가 돌려보거나 공공장소에서 낭독을 통해 같이 읽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영향력이었다. 하지만 독립신문은 근대화를 이끌었으나 서구를 지나치게 미화하고 전통을 지나치게 냉소하고 혐오하며 멸시하는 자세를 견지한다. 민중 역시 교화의 대상으로 바라보았고 의병은 심지어 도적으로 취급했다. 때문에 독립신문은 역사적 평가와는 달리 위로부터의 개혁을 강조한 셈이다. 독립신문은 의회 설립을 추진한다.그들은 정부 25인 독립협회 선출 25인으로 구성된 중추원을 제안했으며 민의를 반영하는 하원에는 관심이 없었다. 

 간도는 아쉬움의 땅이다. 청은 자신들의 발원지인 이 지역을 신성시해 봉금정책을 폈다. 하지만 청이 약해지며 19세기에 봉금정책이 느슨해지자 조선 농민 다수가 세도정치를 피해 두만강 너머로 이주한다. 영국과 러시아의 위협으로 청은 1881년 봉금을 해제하고 자국민을 이 지역으로 이주시킨다. 이로 인해 청인과 조선인간의 갈등이 시작된다. 청일 전쟁 후, 청의 세력이 조선에서 약해지자 조선은 간도문제를 다시 거론한다. 그리고 1897-98년 조사를 하여 토문강이 두만강이 아닌 쑹화강의 지류하고 확신한다. 1900년 청에서 의화단 사건이 일어나자 산둥성에서 수천명의 피난민이 발생하여 간도로 이주한다. 대한 제국은 이에 1901년 함경북도 국경에 경무서와 본서를 설치하고 200명 규모의 경찰을 파견해 자국민을 보호한다. 대한제국은 이범윤을 간도 시찰원으로 파견해 조사를 한다. 1903년 2만 7천여호에 10만에 달하는 조선인이 간도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청이 파견한 관리가 세금을 강요하고 변발에 호복까지 요구해 피해가 많았다. 이범윤은 청의 관리를 포박하고 납세의 의무가 없음을 선언한다. 대한제국은 이범윤을 북변간도 관리사로 임명했으며 현명한 이범윤은 정식 군대를 동원할 시 국제 문제의 발생을 우려해 사병을 조직해 조선인을 보호한다. 하지만 러일 전쟁 후 일본 통감부는 간도를 대한제국령으로 승인하려다 구미 열강을 의식해 간도협약을 맺어 간도를 청에 일방적으로 양도한다. 대신 만주에서의 이권을 확보하게 된다. 

 러일전쟁은 일본 함대가 인천과 뤼순을 동시 기습 선제공격하며 발발한다. 일본은 뤼순을 핵심 목표로 삼았는데 해안 포대로 러시아군이 이곳을 요새화하자 점령이 불가능했다. 이에 대규모 육군을 동원한다. 하지만 방어가 강해 무려 3만이 사망하자 인근 고지를 점령하여 러시아 군의 동태를 파악해 극동함대를 제압하고 뤼순을 점령한다. 러시아의 사상자는 3만이었으나 일본군은 무려 6만이 사망한 승리 아닌 승리였다. 뤼순의 점령은 양국의 운명을 갈랐는데 일본의 승리를 점친 열강이 일본의 국채를 사들여 일본은 전비 확보가 유리해졌고 러시아는 국제적 위상이 추락하고 내부분열에 휩싸인다. 

 뤼순 전투 이후 양국은 만주 평텐에서 격돌한다. 러시아군 31만에 일본군 25만의 대전투에서 러시아는 9만 일본은 7만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일본은 여기서도 승리해 승기를 잡았으나 대규모 병력 손실로 더 이상의 전투여력이 남지 않았다. 반면 당시 인구대국 러시아는 본토에 충분한 병력이 남아있었다. 여기에 일본은 재정난도 심각했다. 하지만 1905년 러시아에서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하며 전쟁수행이 어려워진다. 러시아의 발트함대는 220일간 지구의 3/4를 돌아 동해에 당도한다. 발트함대는 영국이 일본을 도왔기에 수에즈를 이용할 수 없었고 인도, 싱가폴, 말레이시아에 정박할 수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패배했고 포츠머스 회담이 열린다. 

 이 회담에서 러시아는 조선에 대한 모든 일본의 권리를 인정하게 된다. 일본은 뤼순, 다롄의 조차권과 창춘 이남 철도 부설권, 북위 50도 이하의 사할린 섬에 대한 권리를 얻는다. 여기에 동해, 오츠크해, 베링해의 러이사령 어업권도 얻어낸다. 어이없게도 조선을 사실상 넘긴 이 조약을 중재한 미국의 루스벨트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조약 후 일본에서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난다. 1905년 9월 동경 히비야 공원에서 시작한 폭동으로 파출소 70%가 전소하고 1000명이 사상자가 생겼다. 일본인들은 러일전쟁으로 무려 20만 이상의 사상자가 생겼고, 전비부담으로 크게 가난해졌다. 이들은 청일전쟁처럼 막대한 배상금을 기대했는데 배상금은 전혀없었고 이권만 챙겨오니 이에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러일전쟁은 어이없게도 쑨원, 호치민, 네루등 아시아의 주요 지도자들에게 식민지 독립의지를 고취시켰다. 이들은 이 전쟁을 찬양했는데 제국주의 일본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아쉬움이었다. 

 의병은 구한말부터 꾸준히 발생했다. 하지만 내부 문제가 많았는데 가장 심각했던 것은 신분갈드이었다. 실전에 무능한 양반이 신분을 이유로 요직을 차지했는데 이는 전투력 약화와 갈등을 불러왔다. 실제 의병장 유인석은 평민 대장 김백선을 처형했는데 다른 양반 대장이 김백선을 제때 지원하지 않아 김백선이 이에 강하게 항의하지 군기 문란으로 처형한 것이었다. 이뿐이 아니다. 1907년 경기도 양주에서 각 도의 13도 창의대진소라는 연합부대가 결성된다. 10만에 달하는 대병력이었지만 총대장 이인영이 부친상으로 물러나자 이합집산 흩어진다.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뚜렷했다. 하지만 의병의 전투력은 막강했다. 스스로 무기를 개량했고 일제의 것을 탈취하고 지리적 이점과 지역의 도움을 받아 일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에 일제는 1909년 9월에서 11월까지 남한 폭도 대토벌 작전을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 의병 1만 7천명이 사망하고 부상만 3만 7천명이 발생한다. 일제는 의병에 협력한 정황만 보여도 민가도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약탈하였다. 의병토벌엔 한국인 헌병 보조원 4200명도 합세했다. 이들은 대한제국 시기 하급군인 출신으로 악소배들이었다. 당대 지식인들은 의병에 대한 의견도 좋지못했다. 이들은 의병은 시대착오적인 무지몽매한 이들로 취급했고 그래서 무시했다.  

 1차대전의 종전과 파리강화회의에서의 민족자결주의가 널리 알려진다. 이에 고무된 일본 유학생들은 1919년 2월 8일 600명이 몰려 2.8독립선언문을 낭독한다. 이들 중 359명이 귀국해 3.1운동의 선두가 된다. 이들은 종교계의 대표인사들과 만나 독립선언문을 준비하는데 비폭력 만세운동을 원칙으로 한다. 3.1독립선언서에는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하는데 이들은 모두 종교인사였다. 기독교 16명 천도교 15명 불교 2명이었다. 기독교는 일제가 사립학교 법을 통해 종교 수업을 금지시키가 반발심이 컸고, 천도교는 민족 종교로 100만 신자에 막강한 자금력을 갖고 있었다. 불교는 조선의 억불정책에서 일제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해 일제의 협력적이었기에 참여가 적었으며 천주교는 안중근의 의거 후 탄압이 이어질까 두려워 프랑스 주교들이 신자들에게 단속하여 참여가 어려웠다. 유교계의 참여가 적었던 것이 의외인 부분이다. 민족대표의 구성은 아쉬운 부분이다. 자본가, 교육자, 지식인이 모두 제외되고 종교인사로만 채워졌고 사실상 국민의 대부분인 농민도 없었다. 때문에 대표성이 크게 부족했다. 이들은 민중으로 채워진 탑골공원이 아닌 요릿집에서 선언문을 발표하고 체포된다. 3.1운동은 고종의 갑작스런 승하와 이에 따른 독살설로 달아올랐다. 서울에서만 수십만이 참여했고 전국적으로는 200만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는 폭력으로 일관하여 서울에서의 만세 운동은 잦아들고 지방으로 퍼지게 된다. 3.1운동은 사실상 혁명의 성격이 강했고 그래서 3.1혁명으로 오랫동안 불렸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제헌헌법초안을 다듬는 과정에서 한민당 계열 의원들이 3.1운동으로 이를 격하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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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이후, 한국교육을 말하다 - 교육대전환의 시기, 쟁점과 전망
이광호 지음 / 에듀니티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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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대선은 교육 정책이 거의 실종된 선거였다. 양 후보 모두 학교에 큰 관심이 없었고 한쪽은 교육 공약을 스스로 발표하지도 않았으며, 토론회에서도 교육에 대해 이렇다 할 의견들을 서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교육은 앞으로 마주할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초, 중, 고등 교육 모두 엄청나게 줄어든 학령기 인구를 맞이해야 한다. 당초 2050년대에야 마주했을 것으로 예상했던 연간 출생아 수 20만명이 벌써 도래했다. 초중등학교 교실이 텅 빌 것이고 상대적으로 과밀한 신도시나 도심권 학교와의 비교 문제가 생겨난다. 여기에 대학은 향후 10년 안에 1/4정도가 문을 닫아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4차산업혁명 시대도 문제다. 세계적으로 진영 대결이 다시금 살아나며 더욱 첨단 인재 양성이 중요해졌다. 교육 역시 디지털 대전환을 이뤄야 하는데 쉽지 않다. 디지털 인프라의 확충과 그에 걸맞는 미래형 교육과정을 완성해나가야 한다. 

 이 책은 이런 교육 문제와 현안들의 원인을 진단하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저자는 고등학교 교사로 이우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경기도교육청 장학관,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교육 비서관을 지냈다. 그만큼 현장과 교육 현안에 대해 경험과 통찰력이 깊다. 

 한국 교육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몇 차례 개혁을 하긴 했다. 1969년의 중학교 무시험제도, 1974년의 고교평준화제도, 1980년의 과외 금지 조치다. 물론 이는 진정한 개혁이라기 보다는 정권의 서민 지지 획득을 위한 정책에 가까웠다. 진정한 개혁은 사실상 김영삼 정권의 5.31교육 개혁으로 평가된다. 당시 세계화의 흐름 속에 이뤄진 정책으로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척결을 밀어붙은 김영상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 이뤄졌다. 1기는 교육개혁 위원회가 주로 교육학 비전공자들로만 이뤄져 폭넓은 신뢰를 받으며 종합적인 교육청사진을 제시했다. 2기는 교육자, 학부모, 학생으로 구성되어 1기에서 수립한 철학은 교육학적으로 실천하는 방안을 수립했다. 당시 개혁의 주요 골자는 GDP대비 5%  교육 예산 달성(아직도 미완이다), 교원 양성체제개편(역시 미완이다) 등 이었다. 당시 세계적 흐름에 걸맞게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강하여 교육 현자에 수요자 중심 개념과 소비자 주권 개념을 등장시켰다. 이에 대한 부작용은 아직도 현장에 남아있다. 반면 학교운영위원회의 설치와 ,수준별 학습, 학교 다양화 등 민주적인 요소도 도입했다.

 김대중 정부는 교육 정책에서 5.31 개혁을 큰 폭으로 승계했다. 하지만 새교육 공동체 위원회를 만들었고 아래로부터의 개혁과 현장중심교육 개혁을 지향했다. 이는 오늘날 혁신교육지구와 마을교육 공동체 등의 원형이 되었다. 

 오늘날의 한국 교육은 그 개혁이 매우 어렵다. 민주화로 강한 리더십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고, 양당제의 고착화로 서로 집권할 때마다 교육 정책도 같이 갈아엎어 지속적인 변화가 사실상 어렵다. 또한 저성장과 경제위기의 빈번함으로 오랜 업적주의가 더욱 강화되었고, 기존의 교육열과 결합해 학부모와 학생은 각자도생하는 성향이 더욱 강해졌다. 때문에 사회전반적인 공동체적 가치를 지닌 교육정책에 대해 시민으로서 반응하기 보다는 각자의 유불리에 따라 반응하기만 한다. 이래저래 전면적 개혁이 어려운 형국이다. 때문에 향후의 교육정책은 좌우의 대립을 넘어서고, 충분한 토론과 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저자는 향후 한국 교육 개혁의 방법 및 방안을 제시한다. 우선 언급한 것처럼 교육계 전문가들과 주체들이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범위에서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음은 기존 국가주도의 상명하달식에서 분권과 자율의 원리에서 나아가야 하며 이는 학습자의 삶을 중심에 두어야 함을 의미한다. 평생학습체제와 성인학습자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향후 요구된다. 셋째는 더 이상 무분별한 선진국의 교육정책을 마구 잡이로 도입하는 것이 아닌 한국형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며 마지막은 진보와 보수의 논리에서 벗어나 폭넓은 합의를 이루고 교육 정책에 대해 크게 무관심한 시민들과 교육계의 각종 현안에 대한 인식 차이를 좁혀나가는 것을 주장한다. 

 한국의 교육 재정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이루어진다. 이 금액은 역대 항상 모자랐는데, 최근 2021-2022년 추경을 통해 증가분이 많이 발생하는 바람에 최근 넘쳐난다는 인상을 전국민에게 심어주고 말았다. 물론 이 추경은 기재부의 실수로 발생한 것이며 교육청과 교육부는 사실상 갑작스레 떨어진 돈을 처리하느라 고생한 피해자에 가깝다. 하여튼 최근의 지방교육부금의 과다 발생과 줄어드는 학령인구로 인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줄어야 하며, 초중등교육에만 쓰던 이돈의 일부를 고등교육에 투입하자는 주장이 현정부 들어 강해졌다. 

 저자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지방교부금에 대한 추이 분석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당장 여분이 발생하였고 학생 수가 주는 것을 토대로 함부로 줄이다 보면 다시 교육 재정이 크게 악화되는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 둘째는 현재의 좋은 재정상황을 토대로 이를 시설의 현대화와 첨단화에 집중 투자하자는 것이다. 전국에는 40년이 넘은 학교가 무려 1400개에 달한다. 학교 공간이 교육적 효과가 있다는 이론이 현재 대세이고 미래형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을 더욱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유아 교육 및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지원이다. 유아 교육은 그 교육 효과가 매우 높음에도 지원이 미비했으며 현재 학교 밖 청소년은 무려 5만 명에 달함에도 이들에 대한 지원이 없다. 학교 밖 청소년에게도 공교육 학생에 준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국가교육위원회가 문재인 대통령 때 추진되어 드디어 완성되었다. 국교위는 양당의 대립으로 매번 교육 정책이 180도 바뀌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중장기 교육정책을 수립할 필요성으로 발족했다. 교육정책의 전문성, 안정성, 자주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도 있다. 국교위는 예산에 대한 권한이 없다. 한국에는 교육계 관료가 퇴직 후 사립대학이나 교육기관에 취업하는 교피아 현상이 있다. 2000년 이후 13명의 교육부차관 중 11명이  사립대학의 총장이 되었고 2010-2014년 서기관급 이상 교육부 관룐 39명 중 28명이 대학이나 대학 부속기관에 취업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교육부는 물론이고 산업부, 과학부에서 대학에 각종 사업일 지원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재정은 등록금보다는 상당수 이 사업에서 따내는 돈에 의존하며 이로 인해 교피아가 힘을 갖고 향후 대접을 받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각 중앙부처의 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통폐합하는 강력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며 국교위는 자체적으로 사업과 예산에 대한 조정권한을 갖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강력한 컨트롤 타워가 이를 해줄 필요가 있다. 

 대선에 이은 지선에서 교육감 지형도 크게 바뀌었다. 2018 지선에서는 대부분의 교육감이 진보교육감으로 채워진 반면 이번엔 얼추 비슷해질 정도로 보수교육감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에 진보교육감들이 실천해온 혁신교육에 대한 점검과 반성이 필요해졌다. 

 혁신교육은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에 대한 강한 반발로 생겨났으며 한국 교육에 많은 혁신과 긍정적 개선을 불러왔다. 중앙집중, 상명하달에서 벗어나 지역과 학교현장이 주도하는 교육정책의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학교안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구성하여 창의적이고 학생중심의 교육을 실천했다. 혁신교육 이전 이렇다할 딱딱한 교육서적 밖에 없었는데 이후 실천연구를 담아낸 현장교사들의 책이 봇물을 이루듯 쏟아진게 그 증거다.

 하지만 혁신교육은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고 사실상 실패했다. 우선 자발성만을 강조하고 제도 개선에 미흡했다는 점이다. 초기 혁신교육들은 이상적 소수의 혁신가들의 결집으로 이뤄졌다. 경기도의 남한산초가 대표적 예다. 이들 성공사례들은 양적확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기존 교사들이 전보라 다른 학교로 이동하며 기존의 성공사례도 유지되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혁신교육은 교사의 자발성과 전문성을 믿고 자율성을 강조했지만 대부분의 현장교사들은 이것을 현장과 자기 개선이 아닌 편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기편의로 대응했다. 더군다나 90년대성이 현장교사로 오면서 학교권력은 조직에서 개인으로 넘어갔고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학교는 책임지지 않는 교사 개개인의 공화국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둘째는 혁신학교 학력 저하 논란이다. 한국처럼 강한 업적주의와 각자도생의 사교육에 대한 의존, 이에 따른 교육의 타당성보다는 공정성에 크게 민감한 나라에선 학력 논란은 크게 다가왔다. 사실 학력 저하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공격하는 측에서 제시하는 학력개념은 전통적 문제풀이 능력에 불과하다는 면에서 시대착오적이지만 여전히 먹힌다. 그런 능력으로 대학에 가기 때문이다. 혁신학교가 학력을 저하시킨다는건 여러 논란이 있지만 적절한 대응도 없었다. 세 번째는 대입 공정성 논란이다. 한 학교 교사의 비리로 시작된 이 논란은 정시를 확대시키는 결과를 불러왔고, 교육의 혁신과 타당성보다는 혁신교육의 동력을 약화시켰다. 네 번째는 세계적 양적완화 흐름으로 인한 주식,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폭등이다. 혁신교육은 자산시장의 하락기였던 2008 금융 위기 이후 시작되었다. 자산폭등기엔 강남을 위시로 한 엘리트 교육을 따라하는 현상이 강해지며 반대의 경우는 그와는 다른 흐름을 쫓는데 자산시장 폭등도 혁신교육의 약화 원인으로 꼽힌다. 마지막은 혁신의 유효기간 이다. 혁신교육은 학교장의 아침맞이, 중간놀이시간, 블록타임제, 계절학기 및 방학 등 여러 형식적 혁신을 학교 현장에 일반화했다. 이들은 시도만으로도 초기엔 매우 혁신적이었고 효과도 컸지만 어느 새 일상화 되었다. 이런 동력들이 떨어진 것이다. 

 저자는 혁신교육이 디지털 대전환에 소극적이었던 점도 꼽는다. 향후 혁신교육은 기존의 장점을 유지해나가며 디지털 대전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기존 농산어촌 학교 통폐합에 무조건 반대만을 하던 것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합리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교육지원청의 역할도 변해야 한다. 전국엔 176개 지역교육지원청이 있다. 한국은 가장 상위기관으로 교육부가 있고 그 밑에 시도 등 광역지자체급의 교육청이 있으며 그 아래 시군구 규모의 교육지원청이 있고 일선 학교들이 있는 구조다. 지역교육지원청은 고도의 자치성을 바탕으로 특색있는 지역 교육의 실현을 지원하는 곳이 되어야 하나 사실상 교육청의 하부기관으로 예산 및 공문을 내려보내는 역할에 주력한다. 이곳의 수장은 교육장으로 임명직이며 대부분 정년을 앞둔 학교장들이 맡는 편이다. 이들의 임기는 2년 내외로 사실 뭔가를 하기엔 매우 짧다. 때문에 저자는 교육장 직선제나 같은 급의 시군구 등 지자체 장들과의 러닝메이트 선거제를 주장한다. 이를 통해 임기를 보장하고 실질적인 자치권한을 부여해 지역 차원의 교육적 변화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한국은 고등교육의 개혁도 시급하다. 한국의 고등교육은 대학 서열화 문제와 인구절벽으로 지방대학을 중심으로 한 고사위기 문제, 향후 뛰어난 인재를 공급해야하는 질적인 문제를 여러 면으로 갖고 있다. 대학서열화는 사회문화적인 것도 있지만 1인당 교육비가 큰 것에서도 기인한다. 2019년 기준 서울대는 4800만원, 연고대는 2800만원, 서성한은 2300만원, 중경외시는 1500만원, 지방거점국립대는 1700만원 정도의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사용한다. 대학등록금이 대부분 비슷한데도 이처럼 교육비 차이가 큰 것은 교육비가 등록금 뿐만 아니라 산학협력회계 대학발전기금회계에서 충당되기 때문이다. 산학협력은 정부의 사업비나 기업의 연구비 등을 따내는 것으로 상대적으로 수도권 명문대가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이런 대학 서열화와 지방대학을 살려낼 방안으로 RIS를 제안한다. 이는 지자체-대학 협력 기반 지역 혁신 사업으로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광역지자체도 일정비율 재정을 대학에 투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점 국립대를 중심으로 하는 대학과 지자체, 교육청, 산업계 등이 거버넌스를 구성하여 그 지역에 맞게 예산을 사용하여 대학을 운영하는 것이다.

 지역의 대학을 살려내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인구 10만 정도의 지방 소도시의 경우 지역 내 4년제 대학이 문을 닫을 경우 인구가 1만 가량 감소한다고 한다. 향후 10년이면 지방 4년제 대학의 1/3이 문을 닫을 것이며 이는 지역 경제에 엄청난 타격과 인구유출을 가속화 할 것이다. 또한 이는 사학 연금에도 큰 압박이 된다. 사립학교 연금은 공무원 연금과 별도로 운영되는데 재정 상황이 더 좋지 못하다. 사립학교 교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이 연금은 사학이 문을 닫을 경우 교직원들에게 일시불로 수령된다. 때문에 향후 10년간 사립대학이 줄지어 문을 닫는다면 대규모 일시불 수령으로 인해 사학 연금을 고갈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들은 공무원이 아니기에 부족분을 국가재정으로 매꾸는 것에 대한 동의와 실행도 매우 어렵다. 

 지방대학을 살리는 방안으로 외국인 유학생도 거론된다. 현재 한국의 외국인 유학생은 10만명대 규모로 점차 늘어나다가 코로나로 인해 감소했다. 이들은 40만명대로 유치하면 대학 소멸의 위기는 거의 해결된다. 하지만 이문제의 해결은 질과 양이 모두 중요하다. 현재 한국에 입학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대개 동남아시아 출신으로 이들의 학력은 좋지 못한 편이다. 때문에 지방대학 교수들은 한국어 능력과 학력이 모두 부족한 이들로 인해 강의의 질을 낮추는 경우도 있다. 피해는 같이 공부하는 한국인 학생과 유학생 모두에게 돌아간다. 때문에 유학생들은 졸업후에도 한국에 직장을 잡기보다는 유흥업이나 제조업 쪽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입학을 많이 유도하면서도 한국어 능력시험 기준등을 강화하여 질적으로 우수한 인재를 편입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한국은 이들에 대한 국가적 또는 체계적 관리가 거의 없는 편인데 적극적으로 관리하여 한국을 이들에게 제2의 조국 혹은 정착할 만한 국가로 인식시키는게 중요하다. 

 학교의 변신도 중요하다. 지방 읍면 소재의 학교들은 1인당 학생수가 매우 적고 오히려 교직원 수가 많은 등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가 많다. 반면 학교당 투입되는 예산은 학생 수에 비례해서 편성되는 것은 아니기에 어느 지역은 학생 1인당 연간 교육비가 1억 가까이 되는 반면 경기도의 과밀학급은 수백만원에 불과해진다. 이런 차이를 메꿔야 한다. 때문에 읍면 지역 같은 경우 학군제를 풀어 도시 지역 학생도 선택을 할 수 있게 하거나 도시 지역 학생의 유치를 위해 장기유학제 등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학생만 오는 경우 기숙사가 필요하며 일부 지역에서 하는 것처럼 직장까지 보장하여 온가족이 이주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학교시설복합화도 필요하다. 돌봄 및 방과후의 경우 예산과 장소의 편재성으로 지자체에서 여러 곳에서 따로 운영하기엔 현실적 어려움이 많다. 때문에 기존 학교건물에 여러 건물을 추가하여 돌봄 및 방과후, 지역민의 평생교육을 위한 시설을 구축하는 학교시설복합화가 필요하다. 

 저자는 이처럼 다양한 경험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여러 방향에 대해 상세히 진단하고 해결책도 제시한다. 한국의 교육 문제는 시민들이 교육에 대해 정확히 알고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공감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많은 수의 교육정책이 충분히 합리적이로 미래지향적임에도 실패하는 것은 대부분의 시민들이 각자도생상태에서 업적주의와 이를 위하 공정성에만 매달리고, 공공성을 가진 시민으로서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교사와 시민, 학생 모두가 읽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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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 - 실재하는 시간을 찾아 떠나는 물리학의 모험
리 스몰린 지음, 강형구 옮김 / 김영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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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물리학의 흐름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뉴턴의 물리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끈이론으로 이어진다. 이들이 향하는 지향점은 우주 전체를 완벽히 설명하는 대통일 이론이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이후 끈이론이 대통일 이론의 하나의 가능성으로 거론되었고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갇혀 사는 인간이 우주에 대해 알아낸 것치고는 정말 대단하다. 인간은 과학과 수학적 도구, 그리고 기술 개발로 발명한 몇몇 관측  도구와 뛰어난 통찰력으로 우주의 비밀을 이처럼 어느 정도 알아냈다. 우주의 신비와 몇몇 인류 원리 같은 절묘한 상황 때문에 몇몇 학자들은 지금의 우리 우주가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게임같단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 게임은 몇몇 생성규칙을 갖고 있고 한 점에서 무한히 뻗어나가며 공간을 만들어내고 물질과 에너지를 퍼뜨렸다. 그리고 그 물질들은 창조자가 만든 규칙에 의해 계속 퍼지면서 뭉치고 변화하는데, 물질과 에너지가 뭉친 부분에서 구조가 생겨났고 이에 자생적으로 생겨난 몇몇 개체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들이 자체적으로 진화 발전하여 지능을 발전시키고 게임 자체의 물질과 에너지를 이용해 스스로의 문명을 발전시키고 게임의 몇몇 규칙까지 알아내는데 이른다면 정말 대단하지 않겠는가? 

 하여튼 인간은 우주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아냈지만 아직 고전하고 있다. 특히 미시 세계의 양자역학과 거시 세계의 상대성이론은 좀처럼 통합되지 않고 있는데 여기에 많은 물리학자들이 힘을 쏟고 있는 듯 하다. 상대성 이론은 시간을 환상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주변 환경의 변화로 인지 할 수 밖에 없는데 이 변화라는게 중력과 속도가 빠른 곳에선 매우 느리게 일어난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소리다. 즉, 시간은 중력과 물체의 속도에 따라 상대적이다. 여기에 물체의 변화, 즉 정보는 빛에 의해 전달되는데 이 빛이란게 속도 제한이 있다. 그러다 보니 2억광년 떨어진 곳에서는 서로의 2억년 전 모습을 보게 된다. 이렇다 보니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시간은 우주의 공간적 한계, 그리고 물질의 질량에 따른 중력과 속도에 철저히 종속되는 변수로 실재하는 것이 아닌 환상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이론 상으론 거의 불가능해서 그렇지 심지어 과거로 갈 수 있기까지 하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양자 얽힘이란게 있다. 얽힌 입자들은 서로 반대 속성을 띠게 되는데 얽힌 입자 하나가 +전하를 띠면 반대 입자는 -전하를 띠게 되는 그런 것이다. 문제는 이 얽힘이 빛의 속도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얽힌 입자에 하나의 속성을 관측하면 반대입자는 그 반대 속성을 바로 갖게 되는데 이게 빛의 속도보다 빨리 이뤄진다. 정보전달이 빛의 속도에 얽매이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단한 현대 물리학에서 모르는건 이 뿐만이 아니다. 왜 우리 우주가 이렇게 생명체에 친화적인 물리법칙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며, 각 기본 입자들과 힘이 왜 그런 성질과 값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전자는 원자 안에서 궤도의 특정 부분에 확률적으로 존재하며 정수값의 에너지를 가지며 각 궤도로 도약하는데 대체 왜 이러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여기에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우주를 팽창시키는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도 발견하지 못했으며 이들이 왜 이런 작용을 하는지도 모르며, 무엇보다 빅뱅이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빅뱅이 일어났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또한 우주 바깥이 있는지 있다면 대체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우주 자체만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다. 사실 이런 건 대통일 이론이 발견 되도 모를 일이다. 

 앞의 게임으로 돌아가서 게임 세계에서 자체 구축된 개체가 발전하여 그 게임에 적용된 물리 법칙과 원리들을 모두 알아내는데 성공했다쳐도 이들은 자신들이 바깥에서 만들어진 세계에 의해 창조되고 살고 있으며 창조자들이 왜 그런 물리 법칙을 적용했는지 알 순 없을 것이다. 이런 여러가지 알 수 없는 문제들 때문에 물리학은 철학적 성격도 상당히 갖고 있다.  

 시간의 물리학에서 저자 리 스몰린은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이 시간에 대해서 보여준 태도를 부정한다. 그가 보기에 시간은 절대적이며 비가역적인 것으로 실재한다. 시간이 실재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비가역적이어야하며 우주의 모든 것에게 동시성이 있어야 한다. 상대성 이론은 시간에게 이 두 가지를 빼앗아가 사실상 환상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리 스몰린은 우리 우주는 자체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주의 설명에는 외부의 계가 필요하지 않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그 자체로 자기충족적이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세 가지 논리를 제시한다. 충분한 근거의 원리, 식별 불가능자의 동일성 원리, 추동된 자기 조직화의 원리다. 충부한 근거의 원리는 우주를 설명하는데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식별 불가능자의 동일성 원리는 우주 안에 완전히 모든 조건이 같은 물질은 서로 식별이 불가능하며 이런 것들은 사실상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렇게 되려면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지막은 추동된 자기 조직화의 원리로 요동에 의해 균일성이 깨져 중력에 의해 뭉친 물질과 에너지가 항성을 형성하고 이 항성이 내뿜는 광자로 인해 주변 세계가 고도로 점점 조직화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리 스몰린은 우리 우주가 진화하고 있다고 믿는데 이 때문에 묘하게도 인류원리가 등장할 만큼 생명체와 그 토대인 은하계와 항성, 행성의 생성에 친화적인 물리법칙들을 설명한다. 그는 새로운 우주는 블랙홀안에서 새로이 생성되므로 각각의 우주들은 블랙홀을 많이 생성하는 쪽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블랙홀을 많이 만들어내는 물리법칙과 값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은하가 왜 그런 법칙을 갖게 되었는지가 설명된다. 오랜 진화끝에 만들어진 법칙과 값인 것이다. 

 리 스몰린은 공간을 다시 설명한다. 그는 공간이 사실 물질보다도 더 작은 격자구조라 생각한다. 공간을 확대해보면 매듭들이 존재하고 이 매듭 간의 길이는 딱 플랑크 길이다. 그리고 물질인 입자는 공간의 매듭들에만 존재할 수 있는데 그래서 물질들의 공간에서의 이동은 사실상 건너뛰기가 되게 된다. 우리는 연속적으로 공간을 이동한다고 생각하지만 확대해서 보면 사실상 건너뛰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꽉 찬것처럼 보이는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가 텅 빈것임을 감안하면 터무니 없는 주장도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질이 이동한다고 생각하면 전자가 원자에서 궤도간 이동을 할 때 왜 정수값으로 점프를 하는지도 설명된다. 그렇게 움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리 스몰린의 격자 공간은 양자얽힘도 설명한다. 이 격자들은 사방으로 연결되는데 각 매듭들은 인접한 매듭과 연결되지만 간혹 차원을 넘어서 멀리 있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입자는 이 매듭들을 계속 건너뛰어야 하기에 이동은 속도제한을 갖게 된다. 빛의 속도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반면 어떤 입자들은 멀리 연결된 매듭에 위치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양자얽힘상태다. 때문에 얽힌 입자는 멀리 떨어진 매듭으로 같이 얽힌 입자와 연결되어 있어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바로 정보전달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리 스몰린이 제시한 격자공간은 굳이 지금의 우주와 같은 3차원 형태를 가질 필요가 없다. 하지만 3차원인데 스몰린은 이에 대해 이런 설명을 제시한다. 우주 초기 빅뱅이 전 공간은 모두 사방으로 매듭이 연결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여기엔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요동으로 빅뱅이 발생하며 에너지와 물질이 퍼져 높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매듭연결이 끊어지고 대부분 인접한 매듭끼리만 연결되어 3차원 형태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여튼 공간이 이런 식의 구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시간은 사실상 실재하게 된다. 동시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리 스몰린이 이런 공간 구조로 상대성 이론도 설명해 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책엔 아쉽게도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사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격자 공간이더라도 중력으로 공간이 크게 휘어지면 많은 격자 공간이 움푹 패일테고 당연히 입자가 직선으로 같은 거리를 이동하는데 더 많은 매듭을 이동해야 한다. 시간이 느려지는 것이다. 

 리 스몰린의 이런 대담한 주장은 당연히 입증된 것이 아니며 더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 그는 카를로 로벨리와 같이 양자고리중력을 연구했는데 그럼에도 둘의 시간에 대한 입장은 완전히 상반된다.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읽으면 시간은 환상임이 분명하고 리 스몰린의 책을 읽으면 시간은 실재하고 공간이 환상 같다. 

 리 스몰린은 메타상태를 제시한다. 우주가 블랙홀이 많은 상태로 진화한다면 그 진화를 추동하는 법칙을 찾게 된다. 즉, 메타법칙을 찾게 되는데 그 메타법칙 역시 또 다른 메타법칙을 당연히 갖게 된다. 무한 퇴행하는 셈인데 그래서 리 스몰린은 메타법칙에 보편적인 원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법칙과 상태 두 가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동시에 존재하는 메타배열을 제시한다. 즉, 우주를 외부가 아닌 자기 충족적으로 꾸준히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쉽지 않았다. 잘 이해가 안되어 여러 번 앞으로 돌아가야만 했고 검색도 해야했다. 대충 이해한 것 같은 지금도 사실 완전히 이해했는지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책은 무척 재밌었다. 상당히 신선한 주장이었고, 앞으로 물리학이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떤 검증과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하다. 책은 2013년 책으로 이미 10년 전의 책이다. 이제서야 번역이 된 셈인데 그간 더 많은 연구와 성과가 있었을 것이다. 기다려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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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2-07 2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