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 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
교육과정디자인연구소 지음 / 테크빌교육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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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미셸파이퍼가 교사로 나온 영화 '위험한 아이들'이 있었다. 당시엔 위압적으로 느껴지던 거친 아이들의 외모가 지금 보면 다소 촌스럽고 심지어 귀엽게까지 느껴지는 세월이 지난 영화다. 당시 어린 나의 눈에도 이상하게 교사인 미셸파이퍼는 자신의 교육과정을 들고 다니며 교장에게 홍보를 했다. 나 이런 교육 계획을 갖고 있는 사람이니 뽑아달라고. 

 이 상황은 과거이든 현재이든 한국에서는 매우 이상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립이든 공립이든 어찌보면 교사의 주요 전문성 중 하나인 교육과정을 보고 교사를 선발하는 학교나 교육청은 없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시험이나 면접을 보는 수준인데 그도 그럴것이 한국에는 오래전부터 금지옥엽같은 국가교육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표준화 교육과정은 테일러부터 시작되는 표준화주의자들의 오랜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국가중심의 표준화 교육과정이 다 나쁜건 아니다. 시민들에게 필요한 어느정도의 공통의 필수 교양이나 지식을 쌓게하는데는 이만한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성과 역량이 요구되는 미래사회에 맞는 교육과정인지는 크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개별 교사의 교육과정에 대해 다소 모순적인 면을 갖고 있는 편이다. 교육여건은 국가전체에서 안으로 들어가 각 광역단체가 각각 상이하고, 더 들어가면 기초자치단체들이 모두 상이하며, 더 들어가면 동, 읍, 면에 소속한 학교의 여건이 모두 상이하다. 한국의 교육자들은 이를 무려 30여년 부터 인식해 7차교육과정부터 각 지역이 자율성을 갖고 교육가정을 구성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놓았다. 하지만 형식적 마련일 뿐이며 국가가 자율성이 파고들만한 여지를 별로 주지 않는 국가교육과정을 여전히 상세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현행 2015개정교육과정까지 이어지는데 이로 인해 국가의 상세한 지침을 따르느라 상당수의 검정 교과서들은 출판사와 저자만 다양하지 내용이 다양하지 못한 한계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결국 미래 사회의 교육은 개별 교사가 주체가 되어 구성하는 교사 교육과정을 요구한다. 이것이 미래사회에 걸맞는 변화를 담아낼 수 있고, 지역과 학급, 학생에 가장 밀착해 그에 가장 걺자는 교육내용을 담아낼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수업이 효과적이 되고, 교육자치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개별 교사가 마련해야 할 교사교육과정을 짜는 방법과 그 당위성, 구체적인 방안을 수로한 책이다. 우선 교육과정 문해력이 중요한데 교육과정 문해력이란 교사가 국가가 세워놓은 교육과정 체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눈을 말한다. 그것의 조망이 가능해야 자신의 지역과 담당 학생에 맞는 교육과정 수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2015 개정교육과정은 교육과정달성의 목표로 성취기준을 제시했는데 각 교과의 성취기준들의 내용과 기능을 잘 파악하고 이들을 지역과 학생의 상황에 맞게 잘 통합하고, 묶어내어 교과를 넘나드는 새로운 통합단원을 만들어내는 게 교사교육과정이기 때문이다. 

 국가교육과정에 얽메여 좀 잘가르치는 선생님과 좀 못가르치는 선생님 정도의 차이만 있는 교육에서 벗어나 각 교사가 자율성과 전문성, 그리고 다른 교사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공공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교육을 실현하는 교사교육과정이 실현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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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부족주의 - 집단 본능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가
에이미 추아 지음, 김승진 옮김 / 부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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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어느새 협력과 그에 필요한 이타심, 그리고 이에 기반한 고도의 윤리체계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여기엔 적용범위가 있다. 어디까지나 이들이 나의 내집단에 속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와 같은 언어와 비슷한 복장과 생김새, 주거지역, 먹는 음식등이 비슷해야 비로서 나의 내집단으로 여기고 협력과 윤리성이 적용된다. 이에 벗어나면 금방 적개심을 갖거나 적이되는데 최근 미국을 뒤엎고 있는 플로이드 사건만 해도 그렇다. 백인과 흑인은 서로 모든게 매우 다르다.

 이런 인간의 미개해보이는 특성은 상당한 장점이 있다. 내집단의 협력성은 나의 적합도를 현저히 높인다. 짝짓기 기회도 높이고 먹이도 나눌 수 있으며 외부 침입에서 나를 보호한다. 또한 외부에서 온 녀석은 알수 없는 전염병 같은 것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여러모로 이런 특성은 과거 분명 유효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오래 지나며 이런 작은 규모의 내집단은 다른 내집단에 잡아 먹히거나 합세하기도 하여 점점 그 크기를 키웠나갔다. 그래서 이룩된게 현대 국가다. 한국처럼 과거 여러 다민족이 서로 한민족이라는 신화에 하나로 융합되어 스스로가 단일민족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면 그 융화가 상당히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경우는 분명 아니며 한 국가에 억지로 상당한 정체성과 반목을 가진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경우도 잦다. 이는 역사적 우연에 의해서이기도 하고 일부 힘있는 나라들의 장난질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서로가 매우 이질적으로 생기고 문화와 종교가 다른 외집단들이 서로 같이 살고 있음에도 서로를 어느 정도 강한 내집단으로 여겨 같은 나라의 국민으로 스스로를 여기고 그 나라에 충성하는 국가가 하나 있으니 바로 미국이다. 저자는 그래서 미국이 세계 주요 강대국중 유일하게 수퍼집단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수퍼집단을 이룬 강대국은 많지 않다. 영국은 국호는 영국이나  사실상 그 좁은 나라안에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잉글랜드가 따로 논다. 캐나다 역시 프랑스계와 영국계가 아등바등하고 살며, 프랑스내에서도 기존 프랑스 인외에 이민자 집단과의 갈등이 심하며 프랑스는 강제 통합정책을 실시한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내 다양한 민족과 그들의 정체성을 허락한다. 그래도 미국이라는 하나의 수퍼집단으로의 통합을 자신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와 미국의 개척자 정신으로 하나가 되어온 오랜 역사적 전통에서 비롯된 자신감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게 미국에 항상 긍정적으로만 작용한 건 아니다. 우선 외교에서 그랬다. 우리한테 한 것만 봐도 미국은 전통적 지지를 얻던 민족주의 진영을 무시하고 친일파와 미국에 협력하는 우파 세력에만 손을 뻗었는데 이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 무지한 결과였다. 미국은 한국에만 그런게 아니다. 베트남에서도 헛발질을 했는데 그들은 베트남이 중국에 오랜 저항을 해온 역사를 갖고 있고, 소규모 집단임에도 오랜 지배로 기득권을 얻어온 중국의 후예인 화교집단에 대한 적대감도 몰랐다. 단지 한국에 그랬던 것처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안경만 끼고 바라 봤을 뿐이며 결과는 참당함 실패였다. 물론 미국이 이러는데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들의 성공적 통합 경험이 있다. 서로 작은 별볼일 없는 집단이 아둥바둥해도 강한 힘과 민주주의라는 정의 앞에 결국 하나로 통합되어 국가를 이룰거라는 순진한 믿음 말이다. 또 거기에 미국은 다른 오래된 강대국들에 비해 식민지 운영 경험이 일천하다. 구 열강들은 원거리에 위치한 강대한 식민지 국가를 지배하기 위해 그들의 역사와 민족을 철저히 연구했고, 반목집단을 서로 이용함으로써 지배를 유지해왔다. 미국은 이런 경험이 없다.

 하여튼 이런 정치적 부족주의에 대한 몰이해로 베트남에서의 실패, 아프간에서의 실패, 이라크에서의 실패를 쪽 살펴본게 이 책이다. 다만 베네수엘라의 예는 미국과는 조금 덜 상관있고 더욱 재밌는 예이기에 자세히 살펴본다.

 베네수엘라 하면 죽은 우고 차베스와 미인대회, 석유, 파탄난 경제가 떠오른다. 아마도 대중적으로 미인대회가 가장 친숙할텐데 베네수엘라의 미인대회의 수준은 상당하며 실제로 세계 미인대회에서의 성적도 좋은 편이다. 베네수엘라 자체내에서도 미인대회의 시청률이 80%에 이를 정도로 대국민적 관심사다. 그런데 베네수엘라 미인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남미적 특성이 좀 섞여 더욱 매력적이긴 하지만 유럽인에 가까운 미인이 생각나지 않는가. 그래서 나도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대개 그런 스타일인 많은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 베네수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우고 차베스처럼 생겼다.

 이는 남미내에 깊이 뿌리 박힌 인종차별에서 비롯하는 정치적 부족주의를 강하게 상징한다. 헌데 이는 우리의 상식과 부합하지 않는다. 북미와는 다르게 중남미는 가족이민을 하지 않아 강하게 혼혈이 이루어졌고 그래서 인종차별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지역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그리고 현지인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결정적 증거는 빈부격차인데 중남미 국가는 하나 같이 혼혈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백인 지주의 후예들이 대부분의 부와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중남미에서 혼혈인에 대한 인종차별의 역사는 매우 길다. 메시코에서는 백인과 아메리카 토착민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땅을 소유하거나 성직자가 되는걸 오래도록 금지했다. 그리고 칠레는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했을때 이를 칠레의 백인적 특성때문으로 여겼다. 중남미에서는 백인과 아메리카토착민, 흑인노예,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의 혼혈들의 마구잡이 뒤섞임을 무려 20여종으로 분리해놓았는데 차별할 필요가 없었다면 대체 이런 짓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차별의 반증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중남미에서 코스모폴리탄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부유한 백인계층이다. 여유에서 나온 사치랄까.

 이런  틈새를 파고든게 우고차베스다. 그는 이미 존재하던 인종차별에서 비롯되던 정치적 부족주의를 날카로운 정치적 감각으로 파고들었고 대중에게 이를 일깨웠다. 백인이 차지하던 요직과 권력은 자신과 닮은 혼혈인과 토착민에게 부여했다. 차베스의 집권은 베네수엘라가 고유가로 호황을 누리던 시기와 함께 지속되었고 나라가 저유가로 흔들리는 낌새를 보이는 시기 그의 죽음으로 끝났다. 남미의 반목과 백인에 의해 만들어진 코스모폴리탄의 정체를 잘 파헤쳐준 사건이다.

 수퍼국가를 만든 미국도 사실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소수이면서도 정치, 경제, 사회의 권력을 잡은 시장지배적 소수가 있을때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데 오늘날 미국엔 이런 소수가 없어 위협을 모두가 느끼는 모순이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미국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정치적 부족이 위협을 느낀다. 권력을 장악한 백인도, 흑인도, 무슬림미국인도, 멕시코계 미국인도, 아시아계도, 미국의 여성도 모두 위협을 느낀다. 경제적 어려움과 중산층의 붕괴가 사회의 안정성과 통합을 해쳐 모두가 위협을 느끼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는 확실한 주도적 세력이 없기 때문엔데 주도적 세력의 경제, 사회, 정치 권력의 상실은 어이없게도 모두에게 위협적인 상황이 된다. 확실한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은 관용을 베풀 여유를 갖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오랜 추구로 세계 여러 부유한 나라의 중산층은 붕괴하였고, 강함을 잃었다. 때문에 정치적 부족주의는 강하게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새로운 정치적 부족주의라고 할수 있거나 그것을 넘어서는 틀이었던 민주주의는 각국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 인간이 이를 넘어 서기는 어려워 보인다. 위기에 몰릴수록 내집단에 더욱 기대는 것이 우리의 오랜 본성이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이 발달할 수록 내집단은 새로운 이념과 정체성, 신화를 내세우는 더큰 하나의 집단으로 통합되어 갔다. 한국만 봐도 고구려,백제, 신라의 정체성은 통일신라에 그대로 남아있었고 고려시대만 해도 사람들은 자신을 고려인이라고 칭하기 보다는 백제, 신라인으로 자신을 칭했다.거기서 벗어난건 조선에 이르러서였다. 새로운 정치적 부족주의로 갈아타는데 오백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세계 각국도 언젠간 하나의 지구라는 신화로 통합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닐수도 있지만. 어릴적 좋아하던 일본 만화 '마크로스'를 보면 지구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외계 거대 모함이 지구의 한 섬에 불시착한다. 이 거대모함의 불시착은 전 지구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 글 결과는 지구 통합전쟁이었다. 강한 외부의 적을 인식해 지구인 전체는 하나로 통합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로 인해 수년간의 전쟁이 수행되어 통합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그리고 이 통합정부는 결국 외부의 적을 맞이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진정한 코스모폴리탄 시각을 가지려면 둘중 하나겠다. 외부의 적의 등장과 인간을 하나로 묶는 새로운 신화의 등장이다. 무엇이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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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
로렌츠 바그너 지음, 김태옥 옮김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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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폐증은 오래된 증상이다. 과거 인구 만명당 1명의 비율로 나타났지만 지금은 68중 1 명 정도로 나타날 정도로 빈번해지고 있다. 우리는 한 때 자폐를 정신질환의 하나로 취급했고, 오늘날도 이런 전통적 관점은 상당히 남아있지만 최신의 연구결과는 자폐를 인간의 다른 특성 중 하나이거나 진화의 최신으로 보는 관점도 나타나고 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예전에 본 영화에선 지구 멸망 직전 몇몇 인류를 구출하는 외계인이 자폐인을 꼭 챙기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유인즉슨 '그 이가 인간 중 가장 진화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영화의 장면은 이런 최신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겠다.

 이 책은 뇌과학자 헨리마크람과 그 가족의 일대기와 연구를 다룬 책이다. 그리고 그들의 연구의 중심엔 마크람의 아들 카이가 자리한다. 카이는 마크람의 셋째 아들이며 유일한 아들이며 자식중 오직 자폐증을 갖고 있다. 마크람은 여느 다른 부모들처럼 자신의 아들이 자폐라는걸 늦게 알아차린다. 자폐의 전형적 모습은 공감능력의 결여와 사람을 피하는 증상인데 카이는 너무나도 사람을 좋아하고 보는 사람마다 말을 걸어 지나치게 사회친화적이었기 때문이다. 마크람은 단지 자신의 사랑스런 아이를 ADHD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결론을 자폐였다.

 마크람은 그런 카이에게 어려서부터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유명한 동료뇌과학자들의 컨설팅을 받기도 하고 다양한 나라를 여행한다. 그리고 그 자신이 이스라엘과 독일, 스위스, 미국으로 연구거쳐를 자주 옮기기도 했다. 참고로 마크람은 남아공 태생이며 카이의 어머니는 이스라엘 사람이다. 상당히 다양한 국제적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가정환경이다. 대개 이런 환경은 다언어적 가정은 보통의 아이들에겐 중요한 경험이 되겠지만 카이에겐 오히려 독이된다. 이런 걸 마크람이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마크람은 새로운 아내 카밀라와 카이를 키우며 자폐증을 연구한다. 자폐증과 관련한 유전자 200여개를 밝히고 자폐증에 관여하는 다양한 약물이나 환경이 무엇인지 알아내며, 그리고 어째서 자폐증이 발현하는데 수년의 시간이 걸리는지 밝히는 것이었다.(자폐증을 발현하는데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많은 자폐 부모들은 아이가 원래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증상을 좀처럼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환경, 즉 자신들의 탓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들은 쥐를 통한 동물실험을 했는데 임신상태에서 약물을 주입해 쥐에게 자폐증을 유발하고, 뇌를 슬라이싱하고 죽지 않게 뇌수에 담근 상태에서 자극에 대한 반응을 살피는 것이었다. 그들 역시 처음엔 전통적 관점에 빠져있었기에 자폐는 자극에 대해 둔감한 것이라 생각했다. 낮은 지능과 공감능력의 부족, 사회성의 부족과 언어능력 및 낮은 운동능력이라는 자폐의 전형적 특징은 감안한다면 이는 필시 기능의 부족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험결과는 정반대였다. 자폐증의 뇌는 자극에 둔감한게 아니라 일반뇌보다 훨씬 강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즉, 자폐증은 뇌의 기능이 약한 것이 아니라 뇌의 기능이 오히려 강하여 발생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크람과 연구팀은 이를 강렬한 세계 이론이라 불렀다. 자폐인은 뇌의 처리 능력 및 기억능력이 지나치게 우수하기에 일반 세계의 자극이 고통스러울 정도이기에 자폐의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너무 잘 알아차리고 사람의 표정이 보여주는 미묘함을 너무 잘알기에 눈을 마주치는게 힘들다. 세계의 작은 소리가 너무나도 강렬하고 크게 다가오기에 귀를 막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공감하고, 관심이 있기에 오히려 다가가는게 너무힘들어진다.  그리고 이런 엄청난 자극을 뇌가 감당하지 못해, 뇌가 무척이나 뛰어남에도 오히려 발달 및 학습이 늦어지고 만다. 이게 그들의 이론이다.

 이는 자폐인 그리고 그들의 부모, 다른 연구자들로부터 폭발적 반응을 불러온다. 결국 자폐인들이 일반인들을 이해하지 못했던게 아니다. 그들은 일반인들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고, 너무나도 잘 이해하는 그들의 모습을 오히려 일반인들이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공감능력의 부족은 결국 일반인의 몫이었던 것이다.

 그렇게이 마크람에 의하면 자폐인은 어려서부터 보호받아야할 필요성이 생긴다. 뇌가 너무나도 자극과 그 처리에 예민하게이 비 자극적인 환경과 외부세계로의 노출이 천천히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다. 빠른 학습도 필요없다. 준비하게 기다려주면 오히려 뇌 기능이 뛰어나기에 빠르게 학습하여 따라갈 수 있다. 자신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준비할 시간을 주고, 오래 기다려주는게 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그들의 주변에는 공감하고, 사랑해주고 힘이되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진정성이 필요한데, 자폐인은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연구결과 자폐인은 뇌가 안정된 환경에서 일반적인 뇌보다 42%나 빠른 정보처리 속도를 보였다. 또한 자폐인은 천재와 공통적으로 1번염색체에서 같은 유전 변이를 보였다. 양자의 공통점은 엄청난 집중력과 끈기, 기억력과 지각력이었다.

 현재 자폐인과 우울증 외 정신질환은 나날이 많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진단기술의 양적 질적 발전에서 원인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마크람은 그것보다는 현대과학기술의 발달과 도시화로 어려서부터 뇌가 강하게 자극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을 꼽는다. 강렬한 세계 이론에서처럼 자폐인의 뇌가 계획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보호받을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 이런 안정적인 환경에선 자폐로 나타날 뇌도 안정을 찾고 자폐의 놀라운 기능은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은 아니다.

 자폐인은 책에서 나온것처럼 뇌가 꾸준히 진화한 산물일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의 뛰어난 정보처리능력과 민감성은 미래사회에 더 적합한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론 데이터라는게 폭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이해하고 사회에 정착할 수 있게 이해하고 돕는 건 인권의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혹시 아는가 언젠가 우리의 후손은 모두 자폐인으로 가득찰지. 과거 호모사피엔스가 다른 호모족들을 모두 대체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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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도시, 서울 - 당신이 모르는 도시의 미궁에 대한 탐색
이혜미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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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고란 말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지옥고는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을 말한다. 모두 우리사회에서 주거의 질이 가장 낮은 곳이라 볼 수 있는데 희안하게도 이들의 단위면적당 주거비용은 그 품질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지옥고보다도 더 위에서 노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쪽방'이다.

 쪽방은 방을 여러 개로 나누어 작은 크기로 만든 방으로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크기의 방이다. 보통 3제곱미터 전후인데 보증금 없이 월세 혹은 일세로만도 살 수 있어 홈리스나 홈리스전단계의 빈민들이 선호한다. 이처럼 쪽방은 홈리스로 전락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보증없는 낮은 문턱으로 주거공간을 제공한다는 순기능이 있다. 실제로 외국에선 쪽방같은 것을 없애버렸다가 오히려 홈리스가 늘어나는 일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 책에 드러난 우리나라의 쪽방 실태를 보면 순기능보다는 부정적기능이 압도적으로 보인다.

 지옥고나 쪽방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한국엔 놀랍게도 최저주거기준이란게 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것인데 14제곱미터, 즉 4.3평정도의 면적에 부엌과 전용목욕시설, 화장실을 갖춰야한다는 것이다. 지옥고와 쪽방은 물론 이것이 갖춰져 있지 않은데 이는 이들이 비주택으로 분류되는 법망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쪽방은 그 어느법의 적용도 받지 않는듯하다. 실체가 불분명하다보니 숙박업도 아니고 임대업도 아니어서(물론 사실상 임대업이다.) 공중위생관리법이나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보호 및 적용대상이 아니다. 이 애매한 공간에 사는 이들이 서울만 3296명이며 다른 지역 및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를 더한다면 배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쪽방은 놀랍게도 난방 및 냉방기능이 없다. 힘없는 쪽방의 사람들은 쪽방의 대기수요도 많기에 세입자로서 당연한 요구를 감히 하지 못한다. 목욕시설도 당연히 바깥에 있으며 화장실도 공용이다. 창문은 언감생심이다. 이런 쪽방의 주인들은 대부분 타지인인데 놀랍게도 임대투자목적으로 대개 쪽방건물을 구입하고 운영한다. 운영은 주인이 직접하는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개 쪽방에 거주하는 사람이나 근처 중개사를 이용한다. 때문에 쪽방주민들은 대개 이 관리자들을 주인으로 착각하며 살며, 정식 부동산 임대차 계약이 아니기에 서류상 주인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당연히 이들의 임대수익은 정식으로 잡히는 돈이 아니며 탈세로 이어진다. 삼층짜리 쪽방건물에 방이 10개라면 쪽방의 평균임대수입이 22만원이므로 한달에 220만원의 임대수익이 주어진다. 일년이면 2600만원 가량되는 셈이다. 이 금액은 면접대비로 친다면 강남 타워펠리스의 수배에 달한다. 질은 수십배 낮음에도 말이다.

 더 기가막힌 것은 이 쪽방의 수리를 행정당국이 맞고 있다는 것이다. 마땅히 주인이 해야하나 타지인인 주인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관리자도 주인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주거민의 생활안정을 위해 행정당국이 매년 국민의 세금으로 땜질식 수리를 한다고 한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거기에 쪽방은 위험관리도 되지 않는다. 돈만되면 마구잡이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받다보니 전과자나 위험성향을 가진 인물이 입주하는 경우가 많고 이들의 주변 쪽방 이웃들에게 위해를 가해도 특별히 방법이 없다. 쪽방엔 장애인들도 무척 많이 사는데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많이 거주한다고 한다. 또한 쪽방은 성차별적이기도 하다. 남성의 경우 홈리스 신세를 면하고나 면해가는 과정에서 임대주택의 전단계로 쪽방에 거주하기도 하는데 여성의 경우 쪽방촌의 거주민이 대부분 남성이고 사생활 보호가 전혀되지 않아서 거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쪽방의 가장 안좋은 점은 주민들의 발목잡기다. 쪽방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잠시 이곳을 스쳐지나가는 목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하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다. 쪽방에 거주하는 평균 기간은 무려 11.7년에 달한다. 한번 들어가면 장기간 여기에 묶이는 것이다. 이는 쪽방에 사는 사람들이 경제적 능력이 취약하다는 점과도 관계하지만 아무래도 과도한 임대료도 한몫하지 않는다고 하기 어렵다.

 이런 쪽방이 대학가에도 있다고 하니 바로 대학가 신쪽방촌이다. 언젠부턴가 대학가에서는 기존 주택을 불법개조하건나 신축하여 쪽방크기의 원룸임대가 성행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대학이 학생 10명당 거의 1명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기숙사시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가 신쪽방촌은 대개 노후한 다가가 주택을 리모델링하여 원래 존재하지 않던 방을 둘이나 셋 만들어 호수를 부여한다. 신축하는 경우는 법에 맞게 사용승인을 일단 받은후, 이후 더 많은 가구로 나눠 방을 쪼개는 경우다. 101호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102호와 103호가 나오는 형국이다.

 이들은 주로 대학가에 당연히 위치하는데 몇년전 한양대가 기숙사 건립을 추진하자 쪽방주인들이 나서 대거 항의한 적이 있다. 당연히 이 지역 정치인도 합세하여 더욱 문제가 된 사건인데 한양대는 이들과의 갈등으로 아직도 기숙사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대학생들과 주변 직장인들이 이 쪽방의 주 고객인데 이들은 사회초년생이라 자신들의 권리에 미숙한 면도 있고, 워낙 주거비용이 비싸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이런 방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곤 한다. 이런 쪽방은 당국의 행정지도에도 불응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적발되어도 시정비율이 불과 5%에 못미친다고 한다. 이는 이행강제금보다 월세수익이 이를 상회하기 때문이다.

 이런 쪽방 사업은 투자대비 상당한 수익을 올리는 고수익 비즈니스 사업이다. 빈곤 비즈니스라 할 수 있는데 정상적인 임대업에 비해 자신들은 어떠한 책임과 임차인에 대한 기본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매우 악랄하다 할 수 있다. 결국 해결은 당국에 있는듯하다. 법의 개정으로 쪽방과 대학가 신쪽방에 대한 관리. 또한 결국 임대주택의 많은 보급 그리고 대학의 책임있는 자세가 문제의 해결책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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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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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이 책에 대한 수준 높은 리뷰가 무척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기회가 되어 보게 되었다. 책의 외양만 보면 도무지 과학 소설 갖진 않은데 저자는 포스텍 화학과를 나온 공대출신 작가다. 최근의 과학소설은 미래기술을 많이 다루어 좀 어려운 감도 없지 않은데 이 책에 나오는 미래과학들은 어렵지 않고 매우 쉽게 읽혀 소설로서 과학과 미래의 묘미도 살리고 드라마적 요소도 잘 살린 느낌이다. 그래서 두께가 좀 있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두시간 정도면 전체를 충분히 다 볼 수 있다.

 이 책도 단편집을 모은 책인데 수록된 거의 모든 작품들이 상을 받았지만 가장 높은 상을 받은 단편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며 그래서 이게 타이틀이다. 하지만 단편집들이 많이 그렇듯 타이틀이 가장 재밌진 않다.

 내가 가장 흥미를 느낀 단편은 '공생 가설'이다. 미래에 류드밀라란 사람이 있다. 외롭게 자랐는데 그는 언젠가부터 한 행성의 모습을 그리기 사작했다. 당연히 우주를 가본적이 없는 사람이라 상상화로 여겼는데 그의 그림은 묘하게 전 인류의 마음속 깊은 무언가를 건드리는 힘이 있어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그는 어른이 되어서는 행성의 구체적 물리수치까지 제시하며 그림이 구체성을 띠었드며 말년엔 이별의 감정을 토로하는 색채가 강한 추상화를 남기곤 했다.

 그런데 류드밀라가 죽은 후 우주를 관측하던 천체우주선이 실제 류드밀라가 그린 행성과 물리적 수치가 일치하는 행성을 발견한다. 하지만 관측한 빛은 오래전의 빛으로 실제 류드밀라의 행성은 그 항성계의 태양풍으로 모두 타버린 후.

 그리고 인간의 뇌파와 동물의 뇌파로 언어가 아직 미숙한 존재와의 의사소통 체계를 연구하던 팀은 이상한 연구결과를 얻는다. 아직 언어전 이해가 없어 사고가 미숙해야 할 어린 아이들이 고도의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던 것. 아이들의 뇌파가 말하는 언어는 고도의 윤리, 철학, 이타성에 관한 것이었고, 이런 뇌파는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7세가 되는 시점에 사라진다. 그리고 7세이후로는 아이의 생각과 말, 뇌파가 일치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 모순되는 결과에 고민하던 연구팀은 류드밀라의 행성을 본 아이들이 상당한 집중력을 보였고, 엄청난 감정의 고양이 일어났음을 알아낸다. 충격적이게도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인간이 태어나면 외부환경과의 접촉을 통해 뇌에 특정 생물들이 자리잡고 이 생물들이 7세이전 인류의 특성인 고도의 사회성과 윤리 및 철학체계의 기초를 뇌에 만들어놓는 다는 것. 즉, 결론은 류드밀라 행성의 멸망과 함께 지구로 오게된 미생물들이 초기 태아의 머릿속에서 문명의 기본을 만들고 7세가 되면 사람의 몸에서 사라지는 일종의 공생상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류드밀라의 경우는 특이하게도 어른이 되면서도 이 미생물들이 사라지지 않았고, 그로인해 류드밀라의 행성을 그리는 것이 가능했던 것. 이 작품은 몇몇 생물학자들은 지구 생물진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 외계도래설을 제시하곤 하는데 아무래도 여기에 영향을 받은 소설인듯하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다른 재밌는 단편집들이 많은데 나 같은 경우 공생가설이 가장 인상적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모두 비슷한 수준의 재미와 여운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다 읽고 보니 단편소설들의 주인공이 모두 여성이었다. 처음 겪는 일인데 이것도 이 단편집의 또 하나의 매력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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