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시대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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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알고 있는 대로 박노자는 독특한 면을 갖고 있다. 특이한 정체성과는 다르게 러시아 출신이고, 한국에서 오래 공부하고 활동하고 있으나, 정작 사는 곳과 근무지는 노르웨이다. 한국에 대한 애착이 강해 한국이름도 있는데, 러시아 사람이란 뜻으로 '노자'다. 한자로 러시아가 '노'이니 노를 쓰고, 사람이나 아들이란 뜻으로 '자'를 쓴 것이다.

 이렇게 독특하다보니 시각도 남다르다. 한국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외국인만한 객관자가 될수 없는 없는데 그는 이런게 가능하면서도 외국인이 놓치는 한국만의 정체성과 문화에 대한 이해도 상당히 갖고 있다. 즉,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이해와 관찰이 가능하달까? 거기에 러시아와 노르웨이에 대한 경험으로 상호 비교가 가능하니 날카로운 통찰과 시사점 제공도 가능하다.

 이번 책도 그랬다. 전에 읽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연장선인데 이번엔 모음글을 엮을 책이다. 전작은 박근혜 치하에서 나온만큼 상당히 절망적이고 어조가 강했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정말 말이 안되는 일만 사라졌을 뿐이지 나라의 근본 문제는 여전해 책에서는 여전히 문제의식이 강하다. 대통령만 조금 나아졌을 뿐 바뀐것은 많지 않으며 변화의 속도와 깊이는 약하다는게 그의 전반적 평이다.  

 책 제목은 전환의 시대인데 그가 말하는 전환은 3가지로 '탈분단', '탈군사', '탈자본'이다. 전환을 필요로 한단 이야기는 박노자가 보기에 이 세 가지 것들이 한국사회의 근원적 문제라고 보고 있다는 뜻이다. 우선 탈분단으로 그는 통일이란 말이 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오래된 진영의 논리이고 북측을 동등한 파트너이자 주체로 생각하는 느낌이 약하기 때문이다. 탈분단이 필요한 이유는 우선 분단이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양측의 젊은이들 중 상당수가 의무라는 이유로 정당한 대가없이 긴 기간 군복무를 해야한다. 거기에 국방비로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한국의 국방비는 GDP대비 상당한 수준이며 매번 국방비리와 주요구매처가 미국이라는 점에서 효율적 집행도 안되는 편이다. 이 비용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경제협력으로 썼다면 진작에 평화는 구축되었을 거라는게 박노자의 생각이다. 북측입장에서 생각하는 것도 재밌다. 북측입장에서 보면 적국인 한국과 미국의 전력은 막강하기 그지 없다. 한국하나만 보더라도 자신들의 수십배에 달하는 경제력과 기술력을 갖고 있으며 그로 인해 군사력도 상당하다. 거기에 러시아와 중국이 떨어져나간 자신들과는 달리 여전히 세계 최강국의 군사가 주둔하고 있다. 가히 위협적이라 할 수 있으며 북의 핵무장도 이런 논리의 연장선에서 이해한다.

 다음은 '탈군사'이다. 박노자는 이전 저작부터 한국의 군사문화가 사회전반에 퍼져있는 것을 의아해하며 문제시했다. 그리고 그는 한국사회의 갑질 문화도 이 군사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한다. 한국이 군사화 된 것은 사실 분단때문인데 이승만 정권이 미국의 의존하고 냉전의 전초기가 된 것이 그 시초로 볼 수 있다. 한국은 냉전의 대리전을 통해 지독히 가난함에도 대병을 유지해야하는 군사국가가 된다. 이로 인해 한국의 인구대비 군사의 숫자는 세계최고 수준에 달하며 이로 인해 상당수 한국민들이 업악적이고 수직적인 관계를 상당기간 거치며 내면화하게 된다. 또한 외세에 의존한 정부역시 이로 인해 상당히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갑질 문화를 내포하게 되었으며 이들의 수혜를 받아 각종 특혜로 성장한 대기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로 인해 사전에도 없어 한국어 발음으로 표기할 수 밖에 없는 갑질문화가 한국사회 널리 퍼졌있다는게 박노자의 생각이다.

 마지막은 '탈자본'이다. 한국은 상당히 신자유주의에 친화적인 국가다. 돈이 많이 들고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어리석은 정치인이 있지만 여전히 한국의 gdp 대비 복지예산편중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거기에 최근의 모 드라마에서 잘 지적한 것처럼 한국의 인적재생산은 철저히 부모계층의 자본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엄청난게 오른 집값과 부동산 값은 물론이고 엄연한 계약관계임에도 사용자와 노동자와의 갑을관계는 자본의 폐해를 매우 잘 보여준다. 박노자는 적어도 인간의 최소생존조건인 교육, 의료, 주거에 있어서는 자본에 모든 걸 맡겨놓아서는 안된다고 본다. 질도 그다지 좋지 않은 교육을 학벌이라는 이름으로 팔아먹는 대학, 지불능력이 없는 환자는 진료하지 않는 병원, 집값을 올리는 토건세력과 있는데로 상인을 쥐어짜는 건물주역시 모두 적폐로 본다.

 그럼 이런 꽉막힌 현실의 해결책은 대체 무엇일까? 박노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약자층의 연대다. 노동조합이나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 약자들이 뭉치고 연대해서 저항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학벌이나 명문대학은 사라지고 모두가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병력은 모병제로 충원되어 규모는 10만정도에 불과해지고, 무상치료와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람들 모두가 쉽게 거주할 수 있으며, 평화체제가 정착되어 누구나 평양이나 원산에 쉽게 다녀올수 있는 나라가 될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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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2-09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목조목 잘 정리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흐흑.. 박노자가 제시한 해결책은 조금 답답해 보이고 과연 그런 날이 올지 참 멀게만 느껴지네요. ㅠ.ㅠ

닷슈 2019-02-09 23:30   좋아요 1 | URL
저도 참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그럴수 있다면 의외로 쉽게 될수도 있긴한데 마중물을 주거나 불붙이는게 참 지난하게 느껴집니다. 책에서 박노자는 착취당하는 시민들의 분노 임계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는 것 같았습니다.

cyrus 2019-02-10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연대’를 주장하면 결집력이 생길 수 없어요. 연대하는 세력이 모두 같은 마음, 같은 사회적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없거든요.

닷슈 2019-02-10 20:17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잘 뭉쳐지지 않고 기득권층에 이이제이 당하는 측면도 크죠. 하지만 공통점도 크다고 봅니다. 최순실 게이트도 어이없게도 ‘학벌‘이라는 것의 공정성을 건드린게 도화선이 된 만큼 모든 걸 포괄하지도 못하는 어이없는 무언가가 결집과 혁명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단 생각입니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의 등장으로 케인즈 주의가 한계에 부딪힌 후 경제 패러다임은 신자유주의로 넘어갔다. 이후 세계 경제는 가난한 나라건 부자 나라 건 할 것 없이 극심한 빈부격차에 시달리게 되었다. 빈부격차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능력에 따른 정당한 차별의 결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여기엔 굳이 사회적 차원이 아닌 개인적 차원만 보더라도 자신의 태생적 능력과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사회적 지위로 인한 출발점 차이, 거기에 생산수단을 갖추고 있느냐 아니냐등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많은 것들이 작용한다. 그래서 어찌보면 빈부격차는 애초에 공정하지 못한 게임이면 결국 강자에 의한 '약탈'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의 생산성 증가로 이룬 공통의 부를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일부가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빈부격차는 상대적 박탈감 등 여러가지 갈등을 일으키며 심해지면 사회의 정치 경제 체제가 붕괴하며 새로운 체제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는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던 일이다.

 과거엔 주요 생산수단이 땅이었으니 땅의 소유 여부가 곧 빈부격차였다. 남경태는 그의 책 '역사'에서 우리나라나 중국의 역사흐름을 이 땅의 소유여부와 수취체제의 건정성에 따라 살펴보았다. 그에 따라면 통일신라나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은 빈부격차의 심화로 인한 사회 붕괴와 재건의 연속에 불과하다. 일단 한 왕조가 새로 들어서면 비교적 우호적이고 공평하며 건전한 토지 체계가 확립되고 이에 수혜를 보는 새로운 계층이 들어선다. 그리고 이들은 초기에 진취적이고 비교적 합리적이다. 이로 인해 나라의 부가 증가하고 왕국은 곧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대를 지나며 수취체계에 틈을 노려 토지의 병합이나 약탈이 일어나고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와 욕심으로 빈부격차가 심해진다. 견디지 못한 피지배층의 불만과 반란이 곧곧에서 일어나고 나라가 약해져 외침도 잦아진다. 그리고 반세력들을 규합하는 새로운 세력이 일어나 정권을 무너뜨린다. 새로운 왕조의 탄생인 것이다. 그리고 이 왕조는 그래도 이전보다는 조금 더 좋아진 새로운 토지체계를 세운다. 그리고 반란에 공을 세운 진취적이고 합리적인 새로운 지도층이 수혜를 보고 성장하며 백성도 좋아한다. 이후 시기가 지나면 쳇바퀴처럼 반복인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생산수단이 땅에서 자본이나 노동으로 이동한 이후 빈부격차는 통화로 인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다룬 책이 '인플레이션'과 '거대한 약탈'이다. 미국은 1971년 33달러당 1온스의 금으로 고정되어 있던 자신들의 태환화폐를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자로 인해 하루아침에 불태환 지폐로 바꿔버렸다. 이는 공교롭게도 신자유주의 시점과 맞물려 각국의 중앙은행은 국채나 채권을 파는 형태로 돈을 마구잡이로 찍어낼수 있게 되었다.

 이 돈을 받아 각국의 상업은행들은 겨우 2%미만의 지급준비율로 담보대출을 마구잡이로 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실물의 가치는 엄청나게 올라가고 종이돈의 가치는 대거 하락했다. 지난 100년간 달러의 가치는 무려 96%나 상실되었다고 한다. 마구잡이 대출로 경제는 부동산 위기로 이어졌고, 파생상품등을 통해 묻지마 투자를 행한 금융기업들이 대거 무너졌다. 하지만 이들을 살린 것은 사람들의 세금인 공적자금이었으며 정부는 공적자금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세금을 올리기 까지 한다. 이익은 사유화하되 손실은 사회화하는 것이다. 결국 일반 시민들은 부동산의 지나친 폭등이나 하락으로 재산의 직접적 혹은 상대적 손실은 입고, 세금을 뜯겼으며 생산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통화로 급여를 받아 저절로 약탈을 당한 셈인 것이다.

 

 

 

 

 

 

 

 

 

 

 하지만 약탈은 통화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땅과 집을 통해서도 약탈은 이루어졌다. 책 땅과 집값의 경제학은 그것을 다룬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는 아메리카 토착민 부족의 한 추장이 땅을 팔 것을 요구한 백인들에게 보낸 답서가 나온다. 내용은 땅이란게 나도 쓰고 다른 부족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동물과 자연이 공유하는 것인데 어찌 팔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내게 아닌데 어떻게 파냐는 말이다. 과거 인구가 적어 땅이 좀 널려 있긴 했지만 인류역사에서 오래도록 땅은 이처럼 공유지의 개념이었다. 물론 땅을 점유하거나 이용하는 등의 권리(경작권이나 수취권)등은 옛부터 있었지만 지금처럼 철저히 배타적인 소유권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

 경제학은 생긴 이래로 여러가지 이론을 만들고 발달을 해왔지만 유독 땅과 집에는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책의 저자는 바로 이런 경제학의 패착이 지금의 약탈경제를 불러온 주 이유라고 보고 있다. 즉, 지금의 빈부격차를 강화해나가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성이 꾸준히 올라감에도 경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집과 땅에서 비롯된다라고 보는 것이다.

 책은 이를 논증하기 위해 우선 땅과 집의 과거를 살핀다. 그리고 책에서 다루는 사례는 유럽이며 그 중에서도 영국이다. (읽다보니 한국과 너무나 비슷해 놀랐다) 다른 유럽국가처럼 영국역시 봉건사회에서는 땅의 대부분을 왕과 귀족, 교회가 소유했다. 그러던 것이 르네상스와 민주주의 혁명, 산업혁명등이 어우러지며 땅의 소유권이 공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는 중상류층이로 이전되게 된다. 토지에 대한 소유개념은 토지에 대한 안정적인 확보가 필요했던 이들 계층의 요구에 맞게 발생했다.

 초기의 토지소유권은 이처럼 긍정적으로 작용해 새로운 계층이 등장하고 이들이 경제를 발전시켜나가며 인권의 개념이 태동하는데도 일조하는등 긍정적인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곧 이들은 새로운 가진자로 등장하여 토지를 대규모로 병합하거나 소유하는등 부작용을 발생시키기 시작했다. 이에 고전경제학에서는 경제의 3가지 요소로 노동, 자본, 토지를 포함시키며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와 개발로 인한 토지의 가치상승에 주목했다.

 그래서 등장한게 토지가치세란 개념이다. 토지가치세는 주변의 개발로 토지의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 이에 대해 과세하는 개념이다. 이는 매우 도덕적이면서 합당했는데 사실 개발이라는 것이 토지주인의 노력이라기 보다는 사회기반시설이 들어서는 등 국가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토지가치세는 실현되지 못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산업혁명 이후 토지의 사용이 농업생산에서 산업자본의 생산현장으로 용도가 변경되고, 토지가치세를 주장하던 경제학파가 유럽의 사회주의자들과 연합에 정략적으로 실패하였다. 거기에 신고전경제학이 대두하면서 땅을 자본에 포함시키는등 경제의 주요 생산과 분배이론에서 땅과 지대의 역할이 과소평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각국의 정부는 땅과 부동산에 과세하기 보다는 소득과 지출에 과세를 하기 시작했으며 이 같은 흐름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 영국정부는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이 끝나며 참전군인들과 공습으로 대규모로 파괴된 국토와 엉망이 된 민간경제사정으로 인해 대규모의 공영주택을 건설하게 된다. 이 때만해도 나라의 주택 정책은 국가위주의 공급형태였다. 이때부터 1970년대까지 집과 땅의 가격은 사회의 생산성 증가로 거의 동일한 정도로만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후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은행 금융이 다양화하면서 사태는 급변한다.

 영국의 대처는 부동산을 공급하는 것에서 수요를 창출하는 것으로 정책을 급 선회한다. 저가주택이나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보다는 사람들로 하여금 집을 사게 도와주는 정책이다. 이를 통해 민영주택이 대규모로 개발되었고 사람들에게는 주택보유를 위한 대출의 편의성을 돕는 정책과 주택 보유시의 각종 감면정책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30%정도에 불과하던 영국의 자가보유율은 21세기 초반 60%까지 치솟았으며 쉬운 대출로 자금을 풀리자 집과 땅의 가격도 급등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너도나도 사용가치보다는 재산의 증식수단으로 주택을 보유하기를 원하였고 이로 인해 가격은 더욱 오르게된다.

 이렇게 되면 집을 갖지 못한 상당수의 사람들을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집이 없으므로 집을 통한 담보가 어려우며 이미 집값이 상당히높아져 결국 주택을 사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들에게 남은 선택은 임대뿐인데 높아진 집값으로 인해 임대료도 상당히 비싸진다. 이래저래 갈곳이 없게 되는 셈이며 이들이 사회의 생산성을 높여 얻어진 부가 집과 땅값의 증가로 약탈되는 셈이다.

 책은 21세기 들어 오래도록 생산성은 계속 증가하여 경제가 성장함에도 일반 시민들의 부가 증가하지 않고 오래도록 선진국 경제가 저성장의 국면에 빠진 원인도 집과 땅값의 급증에서 찾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은행은 사회의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기업에 대출하기보다는 주택담보대출에 열을 올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혁신과 생산성이 하락하며 고용역시 줄어든다. 또한 가계에서도 자신들의 자산중 상당수를 부동산에 몰아넣음으로써 가처분소득이 크게 줄어 소비여력이 감소한다. 즉, 기업과 가계가 모두 어려움에 처해 기술혁신과 과학의 발달로 생산성이 증가하여 경제가 꾸준히 성장함에도 고용과 소비가 모두 부진한 불황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즉, 부동산 가격의 급증이 사회생산성의 증가로 이룩한 부를 약탈해가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런 암울한 진단을 마친 후 책은 몇 가지 해결책도 제시한다. 토지를 사적으로 놔두기보다는 싱가포르처럼 공유화하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땅의 90%가 국유지로 기업과 가계는 국가로부터 토지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대여한다. 때문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사회기반 시설로 토지의 가치가 증가하더라도 이는 고스란히 국유화되어 다른 곳에 투자된다.

 토지의 국유화나 공유화가 어려운 곳에는 랜드풀링 같은 기법도 추천한다. 이는 기반시설을 구축한뒤 남은 땅을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방식인데 이 때 땅주인은 본래 자기토지보다 적은 땅을 돌려받게 된다. 하지만 개발효과로 이미 땅값이 크게 오른만큼 그는 이득을 보았기에 별 불만이 없이 이와 같은 방식을 수용한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회적 주택이다. 공영주택, 임대주택의 건설 역시 추천하며 개발이익 환수제 같은 방식 역시 다룬다.

 마지막으로 독톡한 방식은 금융의 변화였다. 현재의 금융은 트랜잭션 뱅킹 모형인데 이는 대출결정이 중앙집권적으로 이루어지고 자동화된 신용평가 방식을 갖춰져있다. 분기별로 높은 자기자본 수익을 요구하기에 담보가 확실한 대출을 선호한다. 즉, 지금의 주택담보형태에 적합한 금융방식이다. 책은 여기서 관계형 금융으로의 전환을 추천한다. 이 방식은 지역주민이나 기업이 소유한 협동조합이나 공영저축은행이다. 이들은 기업대출에 주력하고 담보요건이 까다롭지 않아 대출의 의사결정이 지점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즉, 대출시 담보보다는 관계에 주력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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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1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명절연휴 즐겁게 보내시고 맛난거 많이 드시고 늘 평온한 나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문화의 수수께끼 - 개정판 마빈 해리스 문화인류학 3부작 1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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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빈 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 중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17년부터 한권씩 읽기 시작해서 올해초에 마무리가 되었다. 순서는 식인과 제왕,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문화의 수수께끼 순으로 읽었는데 큰 상관은 없었지만 사실 출판 순은 문화의 수수께끼, 식인과 제왕,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순이었다.

 가장 초기작을 마지막으로 접해서인지 3권 중 문화의 수수께끼가 가장 읽기가 수월했다. 겹치는 부분이 다소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의 문화유물론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더 높아져서 일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이 시리즈가 연식에 비해 재밌고 배울것이 많다는 점은 확실하다. 겹쳤던 부분은 제외하고 인상적인 부분 3곳을 정리해보았다.

 

1. 원시사회의 경제매커니즘

 마빈 해리스는 서구인들이 신비하거나 야만스럽고 이해불가하며 괴이하게까지 보는 여러 원시사회의 문화들이 사실은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경제토대 위에 서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워낙 오랜 세월을 걸쳐 형성된 것이어서 관찰하는 서구인은 물론이거니와 이것을 실제 운영하는 원시사회의 부락민들도 자신들의 체제에 대해서 쉽사리 자각하지 못한다. 해리스는 무지와 공포, 갈등으로 일반인은 문화의 세속원인을 찾지 못한다고 보았는데 예술과 정치는 이런 것들을 이용하여 집단적 환상체제를 이룩해 일반인들이 문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호혜성 경제지역

일반론 다음으로 각론으로 넘어가면 일단 사회경제체제상 가장 열악한 지역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지역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사육한계'가 가장 낮은 지역으로 이런 곳에서는 호혜성 경제가 나타난다. 호혜성이란 서로 간에 돌려받을 대가가 무엇인지, 또는 언제 그 대가를 받을 수 있을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 개인사이에서 교환이 일어나는 경제를 말한다.

 호혜성 경제가 나타나는 지역으로 부시맨들의 부락을 저자는 관찰하였는데 이들의 노동시간은 놀랍게도 일주일에 5-6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이들은 이 기간중 사냥이나 채집을 하였고 그것으로 연명했다. 하지만 매우 짧은 시간만을 사냥하고 집단으로 사냥하지만 실패하는 경우도 있기에 이에 대한 대비로 상호간의 호혜성 경제가 나타난다. 나의 실패를 다른 사람이 대비해주고 다른 사람의 실패도 내가 대비해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충분히 더 동물을 사냥하거나 채집이 가능해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 지역이 초과생산을 향해 집중적인 노력을 하는 경우 자연이 파괴되어 사육한계 자체가 극단적으로 낮아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문화에서는 열심히 일하거나 명예를 추구하는 이들을 매우 위험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로 한 인류학자가 부시맨들에게 매우 기름진 수소를 제공하였는데 모든 부시맨들이 이 매우 기름진 소를 아낌없이 먹고 즐겼음에도 수미일관하게 수소가 생각만큼 살이 찌지 않았고, 맛이 없고 대단치 않았음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시맨들은 수소를 제공하는 이에게 과도한 빚을 지지않으려고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호혜성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그들만의 문화로 보인다. 명예나 일방적인 수혜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의 지위 추구는 지역의 사육한계를 넘어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부시맨들은 매우 잘 알고 있었던 듯 하다.

 

- 전쟁 경제체제

이 지역은 호혜성 경제체제는 넘어섰지만 지역이 섬이거나 좁고 불모한 땅이 많아 사육경제 한계가 상당히 뚜렷한 지역이다. 저자는 태평양 한 섬의 마링족을 관찰했다. 이들은 십수년마다 돌아오는 독특한 사이클을 가진 이상한 문화를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카이우라고 불리는 축제였는데 카이우는 다름 아닌 돼지를 집단으로 도살하여 즐기는 문화다.

 단순한 축제라고도 볼 수 있지만 카이우에는 몇가지 이상한 점이 관찰된다. 우선은 도살하는 돼지의 수가 극단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자기네 부락민들이 먹고도 한참 남을 정도로 많은 돼지를 도살하는데 여기에는 경제적 이유가 자리한다.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면 마링족은 우선 전쟁이 끝난 후 룸빔이라는 나무를 심는다. 그리고 카이우 이후 남겨놓은 돼지들도 다시 적극적으로 사육하기 시작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수마리의 돼지들은 수십마리로 증가하게 되고 집안의 여자들은 돼지의 사육과 경작이 힘에 부치기 시작하며 남편들에게 투덜대기 시작한다. 어느 덧 돼지들은 그 수가 자못 많아져 사람의 경작물을 파먹기도 하고, 울타리를 부수기 까지 시작한다.

 이쯤되면 남자들은 때가 되었음을 감지한다. 룸빔이 충분히 자라 축제의 시기가 다시 도래한 것이다. 그러면 남자들은 룸빔을 뽑은 후 돼지를 대거 도살하고 남은 돼지를 동맹에게 충분히 제공하며 전쟁준비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웃 적대 부락과의 전쟁이 시작되며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새로운 룸빔을 심고, 다시 돼지를 치며 전쟁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전쟁후 승리한 쪽도 패배한 쪽도 전후처리가 이상하다. 승리한 쪽은 승리했음에도 굳이 패배한 부락을 흡수하거나 그들의 경작지를 차지 하지 않는다. 패배한 쪽도 마찬가지여서 상대편이 자신들의 경작지를 차지 하지 않았음에도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경작지를 개척한다. 그들이 다시 예전의 경작지로 돌아오는 것은 십수년 후인데 카이우의 축제 텀과 대충 일치한다.

 이 이해가 안가는 풍습에는 역시 경제적 이유가 자리한다. 마링 족이 거주하는 지역은 섬이면서 밀림이 우거진 지역으로 마링족은 화전을 통해 경작지를 확보한다. 하지만  십수년간의 경작과 사육으로 경작지는 지력이 고갈되며 마링족은 정확히 이 주기에 맞추어 전쟁을 시작한다. 전쟁을 통해 마링족은 지역을 고갈시키는 돼지와 경쟁자들을 지역내에서 제거하게 되며 새로운 룸빔이 자라는 동안 다른 지역을 경작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수십년간 지력이 고갈되었던 이전의 경작지는 다시 밀림으로 돌아가 지력을 회복한다.

 즉, 마링족은 카이우 축제라는 독특한 전쟁경제로 지역의 사육한계를 자각하며 이에 걸맞는 문화 속에 살고 있었던 셈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더 남아있다. 지역내 경작지의 자연적 순환은 확보하더라도 자신들의 부락 인구증가는 피할수 없는 문제였다. 전쟁도 이를 해결해주진 못했다. 전쟁으로 죽는 인구는 대부분 남자이고 그 수도 그리 많지않았다. 설사 남자가 거의 절멸사태에 이르더라도 여자가 무사하다면 소수의 남자라도 한 두세대 만에 인구회복은 충분히 가능하다.

 마빈 해리스는 마링족의 이상한 성비에 주목했다. 사실 남성대 여성 자연성비는 남자가 조금 많은 수준인데 이 원시족의 성비는 무려 150대 100에 이르렀다. 이는 암묵적이고 광범위한 여아 살해는 의미하는 것이었다. 마링족은 이를 통해 인구조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또한 전쟁경제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만큼 남자전사의 선호는 이를 더욱 부채질 했을 것으로 보인다.

 

- 지위 경쟁 경제체제

남태평양 멜라네시아 지역엔 대인(big man)이란 독특한 지배자들이 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대인을 본받아 대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대인은 지역 사회의 추장같은 존재인데 높은 명예와 지위를 갖고 있으며 자신의 추종자를 노동시킬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다. 대인 후보자들은 어려서부터 대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이는 다름 아닌 많은 재산을 모으는 것이다. 보다 많은 경작지를 경작하고, 많은 가축을 키우며 많은 과일을 채집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인후보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다수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노동에 가담하기도 한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재물이 모이면 대인 후보자는 인근의 주민들을 불러모아 대축제를 개최한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배부르게 먹고 이젠 대인이 된 자의 재산을 분배하여 가져간다. 대인은 최소한의 찌꺼기만 갖게 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다시금 대인이 될 준비를 시작한다.

 북아메리카 콰키우아틀 족에게도 비슷한 문화가 있다. 바로 포트래취다. 이는 축제 때 선물을 주거나 교환하는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남태평양의 대인들보다 포트래취는 더욱 경쟁적인데 포트래취를 여는 추장은 이웃의 부족민을 초대하고 이들은 이 엄청난 선물과 재물에 눈에 휘둥그레지면서도 대단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 귀중한 것을 살뜰히 모두 챙겨가며 엄청난 부담을 않고 이웃부족 추장의 명성에 뒤지지 않을 포트래취를 준비하고 개최하는 것이다.

 대인이나 포트래취 풍습은 아직 지배계급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긍정적인 경제작용을 하는데 모든 사람이 비슷한 자급자족적 경제조건을 가진 지역에서 생산력이 우월한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들의 것을 재분배하여 전쟁이나 흉년등의 악조건을 대비해주는 역할을하기 때문이다.

 

호혜성 경제체제나, 전쟁경제체제, 지위경쟁체제는 채집수렵경제에서 사육재배경제로 변모해가면서 변화해 가는 과정이다. 인류는 기술이 발달하기 전 자신들의 사육한계를 자각하고 자연을 보호하고 조화하는 문화를 발달시키고 갖고 있었다. 하지만 사육재배경제로 변하고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보다 노동생산성을 투입하여 많은 수확물을 얻게 되었고, 이에 보다 많아진 잉여물을 이용해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아직 지배권을 확립하지 못한 시기가 지위경쟁체제로 볼 수 있으며 빅맨들이 확고한 지배자가 되면 시혜는 끝나며 종속과 지배가 시작된다.

 호혜성경쟁체제나 지위경쟁체제에 머무르는 체제는 그 이상의 지배체제를 만나는 경우 높은 생산성과 기술에 압도되어 정복되거가 흡수되고 영향력을 받아 변모하였다. 이런 지배체제가 우리가 알고 있는 왕국이나 제국이며 지금의 국가의 모태일 것이다.

 

2. 예수는 게릴라에서 평화주의자로 변화한 까닭

 우리는 기독교의 교리에서나 성경을 통해 예수가 매우 평화적인 사상을 펼친 인물로 알고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라든지' '왼뺨을 맞거든 오른 뺨을 내주라든지' 이런 여러 말이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실제 기록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게릴라 메시아니즘이 창궐하던 시기라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무장독립투쟁쯤 될 것이다.

 당시는 로마제국이 유태인을 지배하던 시기로 유태인의 하느님은 오래전 그들에게 다시는 정복당하지 않고 정복을 하는 민족이 될것임을 약속하였다. 다윗의 왕국이 생겨나고 한동안은 그게 현실이 되는 것 같았지만 좋은 시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의 왕국은 강력한 세력들이 풍요로운 이집트나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진군하는 길목이었고 이로 인해 잦은 침략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런 실패에도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실패원인을 하느님이 아닌 자신들에게서 찾았다. 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신앙이 부족하였기에 하느님의 예언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강력한 정복자인 메시아가 나타나 이런 하느님의 예언을 실현시킬 것으로 믿기 시작했다. 거기에 식민통치와 그 부역자들이 행한 이중의 착취로 민중은 고통받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발이 게릴라적 메시아니즘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예수가 있었던 시기에 예수와 세례자 요한을 제외하고도 대충 5명정도의 게릴라적 메시아가 등장했다. 예수는 이들중 비교적 온건했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 역시 게릴라적 메시아즘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스스로도 본인을 그렇게 만들고 생각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초기 성경에는 이런 예수의 전투적이고 파괴적인 말들이 담겨져 있는 것이 남아 있으며 예수의 12제자들 역시 그러하여 이들중 검을 잘 다루고 휴대하는 이들이 많았으며 예수역시 제자들에게 그런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실제 성경에선 베드로가 예수와 마찰을 일으켰던 사람의 귀를 잘라버리는 과격한 장면이 아직 남아있다. 과연 평화주의자의 제자가 맞을까?)

 하지만 결국 예수는 다른 메시아들처럼 실패했고, 처형당했다. 성경은 당시 총독인 빌라도를 매우 온건한 사람으로 그렸지만 이는 예수를 치장하기 위함이고 실제 빌라도는 당시의 유태인 동굴 게릴라를 무참히 토벌하는 강경파였다. 때문에 저자는 예수와 같이 처형된 사람들 역시 도둑이나 살인범 같은 강력범이 아닌 예수와 비슷한 게릴라들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수 사후 예수의 신앙은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매우 평화적으로 흘러간다. 여기엔 시대적 변화가 자리한다. 게릴라 메시아즘은 한때 잠시 성공하여 지역내 반란으로 영토를 수복하고 왕국을 세웠지만 고작 3년을 간다. 토벌은 매우 잔혹하였고 게랄라작전의 실패로 기독교는 로마제국내에 자리잡는 것을 인정해야하는 지경에 몰린 것이다. 바울은 예수의 환영을 본후 유태인들을 중심으로 온건하게 변화된 신앙을 전파하였다. 구원의 대상도 유태인에서 모든 사람으로  바꾸고 전파대상으로 주로 도시지역내 로마인으로 거주해야만 하는 유태인들을 삼았다. 이 때문에 예수의 사상중 정치 군사적인 부분은 후대에 의해 제거되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평화적인 모습만이 지금의 기독교 안에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3. 마녀

15세기에서 17세기는 마녀 사냥이 극에 달했던 시기로 무려 50만명 정도가 유럽에서 마녀나 마법사로 몰려 화형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녀나 마법같은 신비한 것에 대한 미신은 세계 어느나라에나 있는 편이며 이는 기독교에 오래도록 불편한 존재였다. 신말고 신비한 것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인지 로마교황청은 서기 1000년동안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녀 같은 존재가 있다고 믿는 것을 금기시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500년 후인 1484년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마녀같은 존재는 없다고 부인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마녀사냥은 시작된 후로 그 고문의 잔혹성과 사형방식의 끔찍함에도 꾸준했는데 이는 재판관이나 마녀 수사관들이 마녀를 끊임없이 양산해내었기 때문이다. 우선 마을에서 거동이 수상하거나 만만한 여성을 마녀로 누군가 신고하거나 의심한다. 그러면 아무 근거없이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그녀를 잡아가 매우 잔혹하게 고문한다. 마녀로 지목된자는 자신이 마녀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마녀집회에서 본 사람을신고해야만 했는데(그래야만 고문이 끝나고 편하게 죽을 수 있었으며 협조적인 경우 고문과 화형없이 목졸라 죽이는 행운을 간혹 누릴수 있었다고 한다.)이를 통해 마녀는 끊임없이 공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기하급수적 증가여서 대개 한 마녀당 두명 이상의 마녀를 지목하곤 했다.

 수사관들의 이런 악행은 충분한 경제적 동기가 있기에 가능했는데 고문자나 수사관의 용역비용을 어처구니 없게도 마녀로 몰린 사람의 가족이 부담해야 했고, 이들은 심지어 재판관들의 연회비용과 화형용 재단의 비용까지 지불해야만 했다. 또한 지방관들은 마녀로 몰린 자들의 가족 재산을 몰수할권한마져 갖고 있었다. 마녀를 만들어 낼수록 자신들의 경제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광신적인 마녀사냥이 이루어진데는 당대의 사회경제적 변화가 컸다. 당시는 민족국가의 등장으로 중상주의가 강화되던 시기였고 이로 인해 중세의 봉건제가 붕괴하며 지역의 농민들이 경작지와 재산을 잃고 도시 유랑민으로 방황하며 가난해진 시기였다. 이들의 분노가 자연스레 가진자로 향하기 마련인데 지배층과 교회는 이들이 가난해진 것이 가진 자들의 탓이 아니라 마녀나 악마의 소행때문이라고 몰아세웠다. 이런 방식으로 국가나 교회는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으며 이를 공포속에 맹신한 피지배층들은 오히려 악마나 마녀를 피하기 위해 국가나 교회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1562년에서 1684년 동안 남서독일에서 발생한 1258건의 마녀 사건을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마녀나 마법사로 지목된 자의 무려 82%가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무기력한 노파나 하층계급의 중년여성이었다. 그야말로 약자가 희생된 것이다. 이 기간중 귀족계급은 고작 3건만 마녀로 신고되었고 그나마도 고문이나 사형으로 가지않았다. 수사관이나 재판관들은 평민이나 하층민이 마녀라는 근거없는 소문은 믿고 고문하고 사형시켰음에도 귀족이나 성직자에 대한 신고는 그럴리가 없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결국, 마녀광란은 가난한 자와 무산자의 저항운동 가능성을 박탈시키고, 서로간의 의심과 견제를 하게 만들어 사회적 거리감을 조성하고 모든 사람을 소외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더욱 지배계급에 의존하게 만들려 했던 시도로 보인다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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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의 11문자 살인 사건을 보고 구입한 책이다. 소설인줄 알았는데 에세이여서 다소 놀랐지만 색다른 재미가 있다는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소설이 아주 아닌것도 아니다, 짧고 아마추어 느낌마저 나지만 히가시노가 쓴 소설도 단편으로 두개가 들어있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 굴레와 지리적 근접성으로 여러분야에서 서로를 라이벌로 느끼고 상당히 의식한다. 특히, 스포츠분야가 그러한데 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상당히 많은 메이저 국제대회에서 한국은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실제 성적도 그런편이지만 세부를 살핀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한국의 스포츠는 철저히 엘리트중심이고 일본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 밀린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일본도 엘리트 체육을 중시하며 성과를 보기 시작했지만 사실 일본은 오래도록 학교스포츠를 중심으로 한 생활체육 강국이다. 이런측면에서 본다면 사실 스포츠가 더 발달한 나라는 일본이다. 스포츠의 목적이란게 보고 즐기는 것보단 비록 경기력이 대단치 않더라도 자신의 건강과 스트레스 해소, 친목을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인들이 즐기는 스포츠만 봐도 대번 알 수 있는데, 아무리 지형을 고려하더라도 한국인의 최애 스포츠는 등산이다. 특히, 한국의 산은 대개 이렇다할 장비없이 완주가 가능한 경우가 많아 무언가를 배울 필요도 없다. 어쩌면 그래서 장비로 배움을 대신하는지도 모른다. 반면 일본인은 한국과 비슷한 입시지옥속에서도 고3까지 자신이 초중고를 통틀어 배운 운동을 끝까지 즐긴다.

 히가시노 역시 그러했다. 히가시노는 작가가 되기 전 자신이 초중고교시절 열심히 운동을 했고, 20대가 되어서는 배드민턴과 탁구를 꾸준히 즐겼다고 한다. 그러다 직장은 그만두고 작가로 전업하면서 운동을 멀리하게 되었는데 그게 무려 10년이상이 된 것이다. 약간의 계기로 히기시노는 스노보드를 하기로 한다. 나이 40이 넘어서다. 지금의 40은 더 젊은 느낌이 있는데 이 책의 시점이 무려 2002월드컵 시점이니 그 때의 40은 지금보다 더 늙은 개념일 것이다.

 책은 그렇게 히가시노가 스노보드를 즐기며 성장하는 과정이 나온다. 스노보드를 타면서 여러 사람을 알게 되고, 일본의 이곳저곳의 슬로프를 살피며 돌아다니는 일상과 소소한 감정이 재밌다. 작가는 작가랄까? 일본은 높고 험준한 산지가 많다보니 6월경에도 스키와 스노보드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고, 이 시점만해도 스노보드 보다는 스키가 압도적으로 인기가 더 많았다는것도 재밌었다. 이 시점엔 한국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스노보드를 즐기며 히가시노의 생활도 완전히 바뀌었는데 마감에 맞추어 늘 생활에 쫓기던 사람이 오전 6시에 일어나 스키장을 가고 돌아와 일상을 하는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스키장을 가는 날에는 심지어 일찍 출발해야 하기에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마저 갖게 된다. 지극히 불규칙하던 작가의 삶이 규칙적으로 바뀐 순간이다. 사람들은 이러면서 일은 언제하냐며 궁금해하는데 놀랍게도 그게 다 무리없이 되었다고 한다.

 책의 시점이 2002년과 2003년이니 무려 17년 전이다. 40대 초반이던 히가시노도 이젠 60대다. 그가 아직도 스노보드를 즐길지 궁금하다. 운동이란게 한철인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요즘 육아로 너무 가벼운 글만 보는 것 같다. 슬슬 힘을 내야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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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17년에 직장독서토론을 하면서 마지막 마무리로 선물 받은 책이다. 김영하 작가 책은 작년에 검은 꽃을 처음 보았는데 이 책 제목을 보고 아무래도 진득한 사랑을 하는 연애물이 아닐까 지레짐작을 했었다. 그런류의 소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어서 책을 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이 육아로 책읽기가 힘든 시기가 아니라면 이 책은 더 오래묵었을지도 모른다.

 책은 의외로 단편 모음집이었다. 거기에 제목으로 달린 단편조차 연애물이 아니었다. 솔직히 하나도 없었다. 단편들은 소재도 다양하고 하나같이 재밌었다. '오직 두사람'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은수' '신의 장난' 이 수록작품이다. 이중 아이를 찾습니다는 김유정 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오직 두사람은 이상스레 자신을 편집증적인 애정으로 대한 아버지와 엃혀 인생이 꼬여버린 딸의 이야기, 아이를찾습니다는 제목처럼 아이를 잃어버린 부부의 가정 파탄과 아이를 되찾아서 더욱 꼬이게 되는 상황, 인생의 원점은 모처럼 만난 동창과 바람을 피우며 일어난 해프닝, 옥수수와 나는 글을 쓰는 법을 잃어버린 작가가 미녀와 밤을 보내며 다시 창작열에 불타는 이야기, 슈트는 인생에서 사라진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기 위해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과 다시 만나는 이야기, 최은지와 박은수는 출판사 사장 박은수가 미혼모가 된 최은지의 뒤를 본의아니게 봐주면서 겪는 소동과 오해들, 마지막 신의 장난은 마치 미국영화처럼 두 남녀가 한 공간에 감금되는 이야기다.

 모두 소재가 다르며 매우 다채롭다. 그리고 하나같이 재밌어 소설을 잡고 한두숨 걸려 두시간만에 달 읽었다. 가장 재미난 건 '아이를 찾습니다' 였다. 부부가 아이를 십여년 전에 잃어버린다. 마트에서였는데 아빠는 카트위에 아이를 놓고 핸드폰에 잠시 눈이 팔렸고, 엄마는 아빠만 믿고 말도 없이 화장품을 고르다 아이가 카트체 사라진다.

 아이는 이상스레 다른 사람이 카트체 자신을 데려가는데 아무 말이 없었고, 핸드폰 가게 직원도 마트직원도 심지어 감시카메라까지 누구도 그 상황을 보지 못했다. 설마 하던 일이 현실이 되며 부부는 무너져간다. 남편은 대기업 자동차회사원이고 아내는 서점에서 일했다. 서로 전단지를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라 회사는 차례로 그만두고 서울에 있던 괜찮은 아파트다 사라졌다.

 거기에 아내는 조현병이 와서 미쳐버렸다. 부부에게 남은건 지저분한 단칸 방 하나와 쌓여있는 전단지와 더 이상은 그만둘 수 없게 되어버린 아이찾기 뿐이었다. 이상스레 이지경이 되어서도 아이만 찾으면 모든게 해결될 것 같았다. 문제는 예상치못하게 갑작스레 해결된다. 난데없이 대구에서 아이를 찾았다는 것이다. 아이를 납치한, 그리고 아이는 자신의 엄마라 믿던 사람이 우울증으로 자살했고 그 과정에서 경찰이 아이의 유전자 정보를 통해 사라진 아이임을 알아낸 것이다.

 빼박인 과학적 증거를 두고도 아이도 아버지도 심지어 미친 엄마도 자신들이 가족임을 실감하지 못한다. 아이는 아버지의 상상과 너무달랐고 예상해서 만든 성장 몽타주와도 너무 달랐다. 애초 전단지는 쓸모가 없었던 셈이다. 서로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친 엄마는 실족사해서 죽고 아버진 학교에서 문제만 일으키는 아들과 고향으로 향한다. 시골에서라면 뭔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아들이 성인이 된 순간 아들은 동네 여자아이와 사라진다. 그리고 몇년후 사라진 여자아이가 아버지를 찾아온다. 그 댁의 아들이 내가 번 돈을 갖고 사라졌다. 오백이다. 돌려달라고, 아버진 농사지으며 벌어놓은 돈을 주려고 안으로 향한다. 그런데 돈을 꺼내오니 여자아인 사라지고 웬 아이가 남았다. 편지엔 아들이 사라졌고, 자신은 이 아이를 키울 수 없으니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기가 막힌 상황이지만 아버진 그다지 기분이 나빠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다시 시작할 기회를 맞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삼대에 이르는 크면서도 작은 서사, 인생의 부조리와 기가막힘, 그리고 그걸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개인, 말도 안되는 새로운 희망이 적절히 얽혔다. 그래서 읽고서 재미라기 보단 먹먹함이 남았다. 그래서 모두 재밌는 단편중 가장 기억에 남았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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