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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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진주귀고리 소녀 출처-네이버블로그]

뒷글에서 역자는 모나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생각만큼 매혹적이지도 않고, 여러 의미를 보이는 미소가 비웃는 것 처럼 보였다고 한다. 가장 끌린 그림은 얀 베르메르의 진주귀고리 소녀라고 한다. 뭔가 우수에 찬 눈빛에 촉촉한 입술과 큰 눈동자, 사연이 있어 보이는 얼굴. 거기에 검은 배경까지. 그래서 진주귀고리소녀를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칭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자나 역자는 이를 기분나빠할 것 같다. 화가인 얀 베르메르 역시 별로 유명치 않다. 남긴 그림도 적으며 당대에 유명한 다른 네덜란드 작가들에 빛이 가렸다.

 소설 진주귀고리 소녀는 이 사연있어 보이는 얼굴의 주인공과 화가인 얀 베르메르에 대한 상상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저 소녀의 이름을 그리트로 정했다.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활동지인 네덜란드 소도시 델프트에 살고 있으며 네덜란드 답게 이 도시에도 운하가 있다. 그리트의 아버지는 타일을 만드는 타일쟁이였는데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며 그리트의 집 가세가 급격히 기운다. 아버지는 공장과 더불어 양눈을 잃었고, 삼남매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그리트는 집을 돕기 위해 남동생과 여동생을 나두고 하녀가 되기로 한다.

 그리고 그리트가 하녀가 된집은 운명적이게도 얀 베르메르의 집이었다. 얀 베르메르는 화가였다. 대책없이 아이를 많이 낳고 있었는데 베르메르는 무려 11명의 자식을 두었다고 한다. 그 집에서 그리트는 고된 하녀생활을 하며 주말에만 집을 향한다. 생활은 고되었지만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될 수 있었고, 꼼꼼한 성격의 그리트는 하녀역할을 잘 해 큰 마님의 눈에 든다. 하지만 웬일인지 베르메르의 아내 카타리나와 선배 하녀 타네커는 그리트를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긴다. 거기에 베르메르의 딸 중 한명인 코넬리아는 이상스레 그리트를 자꾸 괴롭힌다.

 그리트는 시장의 푸줏간이나 야채가게로 심부름을 가는 일도 많았는데 특히 푸줏간을 자주갔다. 그건 그리트의 고기고르는 솜씨와 흥정하는 재주가 제법 괜찮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리트는 시장엘 자주가서 바람을 쐬고 친동생을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푸줏간집 아들 피터가 그리트에게 보이는 눈이 심상찮다. 그리트는 이상스레 그의 손톱 밑의 빠지지 않는 핏물과 고기 냄새가 싫었다. 피터가 제법 근사한 외모의 소유자였음에도 말이다. 시장엔 카타리나의 아이들을 데려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아이들과 시장에 나선 어느날 그리트는 자신의 친여동생을 만나고 반가워하는  동생을 향해 심하게 고개를 내젓는다. 자신의 여동생과 비슷한 또래의 집주인 아이들의 심기가 불편해질까봐서였다.

 동생에게 전할 미안할 마음을 털어버릴 요량으로 주말만 기다리던 그리트에게 비보가 전해든다. 자신의 집이 있는 구역이 전염병으로 격리된 것이다. 수개월후 격리는 풀리나 그리트의 여동생은 전염병으로 죽고만다.

 상심에 빠진 그리트에게 큰 마님은 다락방의 청소를 맡긴다. 다락방은 베르메르의 작업화실이었다. 그곳엔 많은 신기한 물건과 그림이 있었고, 그런 그림들을 그리트는 좋아했다. 그리트는 타고난 예솔적 기질이 좀 있었던 탓인지 청소하는 과정에서 물건들의 배치를 잘 기억하고 손대지 않았으며 이게 마음에 든 베르메르가 그리트에게 물감을 만드는 일을 시키기 시작한다.

 남자 안주인의 이런 행태는 그리트의 위치를 불안하게 한다. 카타리나와 타네커는 이일을 계기로 그리트와 더욱 멀어지게 되었으며 큰 마님은 이를 염려하면서도 묵인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과 그림 그리는 속도가 시원찮은 사위가 그래도 그리트가 작업을 도운 이후로는 속도가 제법 붙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리트는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피터외에도 베르메르에게 그림을 청탁하는 부호는 툭하면 추문을 던져댔다. 그가 최종적으로 원한 것은 바로 그리트의 그림이었는데 이는 그리트를 더욱 곤란하게 했다. 이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구애를 하고 어려운 부모님의 형편을 돕는 피터에게도, 그리고 자신의 부모님에게도, 카타리나와 타네커에게도 허용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처녀여성이 그것도 하녀가 그려진다는건 여러모로 곤란한 시대였다.

 그럼에도 그리트는 모델이 된다. 싫었지만 좋기도 했다. 사실 그리트는 얀 베르메르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얀 베르메르와 큰마님 역시 매우 곤란했으나 작업을 맡기로 한다. 돈은 현실적으로 필요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림은 완성되나 뭔가 허전했다. 감각이 예민한 그리트 역시 이를 알았다. 빈 공간을 메울 무언가는 바로 베르메르의 아내 카타리나의 진주귀고리였다. 베르메르는 그리트에게 감히 자신의 아내의 진주귀고리를 착용할 것을 명한다.

 그리트는 거부하고 싶었으나 힘이 없었다. 하녀이기에 그를 사모하기에 그리고 그림을 보고 싶었기에 받아들여야 했다. 귀를 뚫는 과정도 아팠다. 자신의 적은 급여를 틀어 마취약을 샀고 바늘을 달궈 한쪽 귀를 뚫어냈다. 그런 그리트에게 베르메르는 매정하게 반대쪽 귀마저 뚫기를 지시한다. 반대쪽은 그림에 나오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림은 그렇게 완성된다. 당시는 여성이 머리카락을 드러내는게 정숙치 못한 것으로 취급되어 그리트는 모자를 항상 썼지만 베르메르가 추천한 천을 머리에 터번처럼 둘렀다. 입을 열고 있는 것 또한 정숙치 못한 것이었으나 베르메르가 요구했다. 우수에 젖은 눈은 방금 생살을 뚤어낸 귀의 아픔일수도 복잡한 마음이 만들어낸걸수도 있었다.

 그렇게 그림은 완성되고  못된 아이 코넬리아의 고자질로 모든 것을 뒤늦게 알아낸 카타리나로 인해 그리트는 그집에서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날은 피터가 그리트의 부모님께 청혼을 허락받으로 간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십년이 지나며 어느새 피터의 아내이자 푸줏간 안주인이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리트에게 타네커가 찾아온다. 그리트의 몸에선 어느새 그토록 싫어하던 고기냄새가 떠날줄 몰랐고, 피터처럼 손톱 밑 사이로 핏물이 빠지질 않았다. 십년만에 찾은 저택에서 그리트는 베르메르가 죽었으며 자신에게 유언을 남긴것을 알게 된다. 바로 그 진주귀고리의 상속이었다.  

 그리트는 그 진주귀고리를 갖고 고민한다. 피터의 아내이며 과거에 하녀였고, 고기집의 안주인은 그리트에게 귀고리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물건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그리트는 귀고리를 처분한다. 그리고 받은 돈 20길더중 15길더는 남편 피터에게 주려한다. 베르메르의 집은 피터의 고깃집에 15길더의 외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5길더만이 그리트에게 남았고,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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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사피엔스의 식탁 : 인류가 선택한 9가지 식품 - 인류가 선택한 9가지 식품
문갑순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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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특질은 여러가지가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특질은 바로 먹을거리다. 책은 인간의 먹을거리 변화가 얼마나 진화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고, 사회문화적으로도 인간 역사에 많은 작용을 하였으며 향후 환경에도 미칠 영향을 지적한다. 책은 그렇게 크게 3가지 부분으로 나눌수 있는데 그러다보니 과학책 같기도 사회문화역사책인 것 같기도 환경책인것 같기도 하다.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는 부분은 역시 농경사회 더불어 인간이 선택한 9가지 종류의 먹거리인데 대충 예상한 것도 있었고, 전혀 의외의 것들도 있었다. 책이 선정한 9가지는 우선 [밀, 쌀, 옥수수], 감자, 콩, 소금, 향신료,  설탕, 생선, [커피, 차, 카카오], 바나나이다. 하나씩 책을 따라가며 기존에 먹기만 하던 식품들의 유래와 관련 지식, 세계사적 영향력에 대해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1. 밀, 쌀, 옥수수

 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경작하는 종으로 전분외에 단백질이 포함되어 물과 반죽하면 글루텐이란 망상조직을 생겨난다. 이걸 통해 우린 밀을 빵이나 국수로 가공해서 먹는다. 밀은 재배가 까다로운 편인데 토양에 질소량이 풍부하고 강수량이 적으며 한랭한 기후에 잘 자란다. 그리고 이러한 기후는 바로 지중해성 기후대다.

 하지만 밀은 파종 대비 수확량이 고작 3배에 불과하며 3대작물중 열량도 가장 낮아 인구부양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유럽지역은 과거부터 가축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았으며 낮은 인구밀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20세기들어 새로운 육종법의 개발로 수확량이 크게 늘어난다.

 쌀은 인디카와 자포니카의 두 종이 있으며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작물중 최고다. 거기에 쌀은 기후에 따라 2모작이나 3모작이 가능해 밀과 비교한다면 인구부양력이 무려 3배에 달한다. 쌀의 주산지인 아시아가 땅의 넓이도 있지만 지금까지도 서구와 비교해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이유다. 쌀 역시 품종개발로 키가 작고 수확량이 많은 품종이 개발되었으며 우리나라의 통일벼도 그중 하나이다. 한때 통일벼는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세계 최대에 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품종은 맛이 떨어져 수확량이 충분한 지금에는 사라지고 말았다.

 옥수수는 파종 대비 수확량이 무려 80배에 달하며 토질이 안좋아도 잘 자라는 품종이다. 미국에서 옥수수에 주목한 이래로 하이브리드 옥수수가 개발되어 잡종 1세대의 경우 멘델의 유전법칙에 따라 장점만 나타나 수확량이 크게 증대되었다. 하지만 잡종 2세대는 열성형질이 드러나 수확량이 떨어져 잡종 1세대를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에 종자를 의존해야하는 단점이 드러난다.

 과거 아즈텍인들은 자신들을 옥수수 인간이라 칭할 정도로 옥수수 사랑이 대단했지만 지금은 전세계 사람들이 스스로를 옥수수 인간으로 칭해야 할 정도로 전세계인들은 옥수수에 의존하고 있다. 수퍼마켓에 분포한 4만 5천여 제품중 무려 25%가 옥수수를 원료로 하고 있을 정도다. 거기에 고기 수요 급증으로 인한 대량 비육을 위해 옥수수는 사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옥수수 전분은 소시지나 과자 식품 전반에 사용된다. 가격이 싸고 잘 변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과거 설탕을 사용하던 당류도 이성화당의 개발로 고과당 옥수수 시럽으로 대체된지 오래다.

 

2. 감자

감자는 재배적응력이 높고 옥수수 정도의 파종 대비 수확량을 자랑한다. 거기에 조리가 쉽고, 재배 방법이 간편하며 영양성분이 우수하고 한랭한 기후에서도 잘 자란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신대륙에서 도입된 감자는 좀처럼 유럽에서 자리잡지 못했다.

 이유는 종교 때문인데 당시 기독교의 영향으로 유럽인들은 신과 가까운 하늘의 음식인 새고기가 과일을 중시하고 땅에서 자라는 것들은 악마의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감자를 가지과 식물로 오인하여 마녀나 미신과 관련한 음식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이런 감자에 주목한 유럽국가는 독일이었다. 프리드리히 대제는 감자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식용조치하였다. 이에 프랑스가, 그리고 다른 나라로 감자는 전파된다. 가장 극적인 나라는 아일랜드였는데 영국의 식민지가 된 아일랜드는 식량수탈로 먹을 것이 없었다. 영국인이 남긴건 유제품류 뿐이었는데 당시 기술로 영국으로 가기전 모두 썩기 때문이었다. 이런 아일랜드에 감자와유제품의 조합은 나쁘지 않았다.

 감자덕에 아일랜드의 인구는 820만까지 늘었으나 감자마름병으로 100만 이상의 아사가 일어났으며 인구는 440만까지 격감한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여러 음식이 퍼지는 계기가 되는데 감자도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도시노동자에게 감자만한 식품이 없었고, 기름이 저렴해지며 감자를 튀겨먹는 풍습이 자리한다. 기존의 생선튀김과 어울려 피쉬앤 칩스가 탄생한 계기다.

 미국의 경우 유럽의 편견과 다르게 감자가 빨리 자리잡았으며 감자는 노동력을 적게 요구해 땅은 넓고 인구는 적은 미국에 매우 안성맞춤이었다. 미국은 감자를 품종개량해 러셀버뱅크종을 개발하는데 이는 분절감자로 튀김에 매우 적합했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감자가 강원도 화전민들의 대체식량으로 들어왔으며 잘 부서지지 않는 점질감자인 수미감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감자는 이외에도 당면의 재료, 비타민c의 원료, 술주정등 여전히 다방면에서 사랑받는다.

 

3. 콩

농경을 시작한 문화권은 곡류와 더불어 콩류를 같이 재배한다. 이는 콩류가 곡류의 부족한 부분을 잘 보완하기 때문인데 콩류는 단백질이 무려 20%나 분포하고 대두의 경우 40%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는 콩의 뿌리에 자리한 뿌리혹 박테리아 덕에 질소고정으로 콩류가 단백질 형성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콩은 지방 역시 20%나 갖고 있어 콩기름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나머지 찌꺼기는 단백질이 풍부한 사료로 적합하다.

 콩은 한민족과 관련이 깊은데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 북부와 만주지역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각종문헌도 콩을 처음으로 활용하여 발효시킨 민족이 한민족임을 말해준다. 콩은 영양가가 매우 높지만 단백질 소화저하 혈청용해, 소화불량등의 부작용도 있는데 발효는 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또한 콩을 발효하면 콩단백질이 분해되어 글루탐산을 형성해 매력적인 갈색과 풍미가 더해져 음식맛을 드높인다.

 콩은 중국남부에서 동남아시아로 전해졌는데 이들은 콩간장에 캐러맬화한 야자당과 향신료 혹은 어장을 첨가하여 걸쭉하게 만들었고 이를 케첩이라 불렀다. 이것이 유럽에 전해져 유럽인들이 자신들이 활용가능한 버섯이나 토마토를 활용하여 나름의 소스를 만들어 토마토 케첩이 된 것이다.

 농업을 산업화하는데 천부적인 미국은 콩을 주목했다. 대규모 콩 가공공장을 설립하는데 이들은 콩 전체를 섭최하는 아시아와는 달리 콩에서 기름을 생산하고 잔류물을 사료로 사용하는 공정을 택했다. 또한 잡초가 많이 자라는 콩밭의 제초제로 라운드 업을 개발했고, 라운드 업에 견디는 유전자 조작 콩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4. 소금

수렵시절 인류는 육식을 통해 소금을 자연히 얻었지만 농경시 시작되며 소금의 확보는 필수적이 되었다. 실제로 세계 문명의 산지 근처에는 강과 더불어 소금산지가 있음을 이를 잘 증명한다.

나트륨은 고등동물의 세포 외액에 존재하고 칼륨이 내액에 존재한다. 이들간의 농도차로 신경세포의 전기신호가 전달되며 영양소흡수에도 관여한다. 나트륨이 부족하면 신경전달은 물론 영양전달이 안되고 근육을 움직일 수 없단 의미다.

 반면 움직임이 없는 식물을 나트륨이 필요없어 그 함량이 낮다. 인간이 소금을 찾아 헤메게 된 이유다. 과거 로마에서는 병사에게 급료로 소금을 지급했는데 소금을 뜻하는 살에서 샐러리란 용어가 파생한다.

 소금은 매우 귀했기에 국가의 번영과 관련했다. 5세기 아틸라의 훈족의 사육을 피해 베네치아에 지라잡은 이탈리아 인들은 도시의 소금을 이용해 번영한다. 지중해 연안은 겉보기에만 좋은 절벽이 가득해 소금생산에 매우 불리했다. 베네치아는 소금을 통한 무역으로 1000년가까이 번영한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국가차원에서 소금을 전매한다. 5세기까진 소금전매가 국가수입의 무려 80-90%였고, 청대에는 25%였다. 중국이 소금전매제를 폐지한건 최근인 2014년에 이르러서였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소금 수요는 커졌는데 중세 유럽의 주요 식량이 청어와 대구가 되면서 염장을 위해 소금수요는 더욱 커졌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화학이 발달하며 소금은 그 활용도가 더욱 커졌지만 통조림의 등장과 냉동 냉장 기술의 발달, 건강에 대한 염려로 그 수요가 크게 줄어들게 된다.

 

5. 생선

인류는 수렵채집기부터 육식을 시작했는데 가장 안전한 육식은 아무래도 생선이었다. 인간의 뇌에는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불포화지방산이 많은데 이는 인간이 오래도록 해산물을 섭취한 증거로 받아들여지기도한다.

 유럽이 기독교화되자 교황청은 교인들에게 엄격한 금육 금식을 요구하였는데 이는 예수의 고행과 관련한다. 금육기간은 연간 무려 251일일까지 늘어났는데 예외로 생선은 허용되었다. 물고기는 예수의 이름과 비슷하고 성경에 여러차례 등장하는등 긍정적 이미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생선 수요에 비해 잡는 기술은 떨어져 초기에는 강과 양식업이 중시되었다. 여러 물고기를 양식했는데 특히 물밖에서 무려 6일이나 생존하는 뱀장어가 중시되었다. 하지만 결국 늘어나는 수요로 바다를 향하게 된 유럽인들은 청어를 잡기 시작한다. 청어는 떼로 몰려다녀 그야말로 대박 생선이었다.

 하지만 청어는 기름기가 많아 쉽게 부패하여 소금이 많이 필요했는데 네덜란드에서는 이 청어를 빠르게 가공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네덜란드는 청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얻고 이를 통해 금융업, 목재업 분야로 진출하며 스페인에게 청어무역이 봉쇄당하자 향후 향신료를 찾아 눈을 돌린다.

 청어 이후 유럽인이 주목한 생선은 대구다. 크기가 무려 1m에 달하고 무게도 100kg에 달하여 식량가치가 높은 대구는 흰살생선에 단백질이 많아 영양가가 높았다. 거기에 유순하여 상대적으로 잡기가 쉬웠는데 이 큰 대구에 먼저 도전한 것은 바이킹이었다. 이들은 북유럽과 그린란드 아이슬란드에 대구 가공공장을 세웠다.

 다음은 스페인의 바스크인으로 천일제염이 많은 자신들의 지역 특성을 이용해 오래도록 대구어업으로 번영한다. 바스키인의 어장은 오랜 비밀이었는데 영국인들이 이 곳이 뉴펀들랜드 지역임을 알아내고 이로 인해 이 지역으로의 이주가 시작된다. 미국에는 대구어장을 통해 보스턴이 설립되고 뉴잉글랜드 인들은 좋은 대구는 유럽으로 판매하고 질이 나쁜 대구는 카리브해의 노예용으로 판매한다. 대구 판매로 카리브해에서 당밀을 수입하고 이를 통해 노예무역을 하는 삼각무역이 이루어져 번영하나 미국의 독립후 노예제가 폐지되어 수요가 급감하자 북미 대구어업을 큰 타격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거대하게 성장하는 미국 내수시장의 성장으로 산업자본가화하는데 성공한다.

 

6.향신료

인류는 고귀한 향으로 인해 향신료를 신에게 봉헌물로 사용하곤 했다. 또다른 용도는 병의 치료였으며 다른 하나는 음식의 부패를 막고 산미를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십자군 원정으로 유럽은 향신료의 존재를 알게되고 대량으로 유립하게 된다. 당시 유럽인은 양질의 고기는 귀족이 하품을 일반 농민이 소비하였는데 일반 농민은 대개 훈제나 염장고기를 먹고, 부패가 심해 이를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향신료는 부패취를 감추고 맛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향신료는 가격이 매우 비쌌으며 소금 무역으로 자본을 축척한 베네치아가 콘스탄티노플을 대상으로 향신료 무역을 한다. 베네치아가 공급한 향신료는 유럽 전체 공급량의 80%에 달했다.

 반면 포르투갈은 직접 향신료 산지를 노렸다. 이들은 다우전투의 승리로 인도양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정향과 육두구의 산지를 발견하고 실론섬의 계피도 차지한다. 포르투갈은 이로 번영하고 베네치아는 쇠퇴하나 곧 네덜란드가 등장한다. 이들은 포르투갈의 산지를 하나씩 빼았았다. 또한 포르투갈과는 달리 유통루트 차단을 넘어선 생산지 차단 관리에 들어간다. 이는플랜테이션 농업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비밀은 없다고 세월이 훌러 다른 나라에 향신료가 유출되기 시작하며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져 향신료의 시대는 종말을 고한다. 과학의 발달로 약리효과도 사라지고 음식 본연의 맛을 중시하게 되었으며 합성향신료도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7. 설탕

단맛에 대한 인간의 갈망한 상당한데 설탕이 없던 과거 북아프리카와 중동은 대추야자, 아시아에서는 엿기름, 그리스는 포도와 무화과가 감미료 역할을 해왔다.

 설탕은 사탕수수나 사탕무에 다량 존재하며 결정화가 쉽고 맛이 상쾌하다. 설탕은 7세기 이후 이슬람 세력이 확대함에 따라 지중해 전역으로 설탕정제술과 사탕수수가 퍼져나간다. 설탕 제조 방법은 강한 노동을 요구해 초기부터 노예노동이 시작되었다.

 사탕수수는 베어지자마자 옮겨져 수액의 추출과 가열이 시작되었는데 수액이 마르면 설탕의 수확과 결정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사탕수수는 크고 무거워 옮기는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서부를 강탈하고 노예공급을 시작하였는데 베냉지역에서 노예를 공급하다가 고갈되자 콩고지역으로 거기도 고갈되자 앙골라와 아프리카 전역으로 이루어지는 식이었다. 설탕재배는 콜럼버스에 의해 카리브해로 도입되었고, 지력 소모가 심해 섬을 자갈밭화하였다. 처음에는 자메이카, 다음은 아이티, 다음은 쿠바로 이동한다.

 유럽지역에서는 차마시는 문화가 퍼져나가며 설탕소비량이 급증한다. 홍차, 커피, 카카오등에 설탕이 사용되었으며 18세기 후반 영국이 서인도제도에서 벌어들인 설탕 관련 수입은 다른나라에서의 교역수입을 능가할 정도였다. 이처럼 유럽 각국에서는 설탕자본을 통해 거대자본이 등장하고 이들이 산업자본으로 변모하였다.

 이를 위해 18-19세기 동안 무려 1000만 가까운 아프리카 노예가 수입되었고, 이들은 이동과정에서 지그재그로 누워 서로의 토사와 용변, 땀으로 뒤범벅되어 죽어나갔다. 이동과정에서 20%가 사망했다. 설탕플랜테이션은 매우 가혹하여 3년이내에 50%의 노예가 사망했다. 흡착롤러에 손과 온몸이 들어가기 일쑤여서 흡착롤러 곁엔 항상 도끼가 있었다. 이들 노예들은 영굯산 면직물과 염장대구 옥수수로 연명했다.

 유럽에서는 계몽주의와 더불어 노예해방운동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아이티가 프랑스러부터 독립을 시도한다. 성공하나 프랑스는 아이티에 대량의 배상을 요구했고, 프랑스와의 무역금지,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들의 무역 봉쇄로 아이티를 탄생과 더불어 최빈국으로 전락한다. 미국은 노예제가 폐지되자 루이지애나의 설탕농업을 하와이로 이식하는데 노동력이 부족하자 쿨리라고 불리는 인도계약노동자를 도입한다.

 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불만을 제기하자 다음은 중국, 그리고 다음은 일본, 그리고 다음은 한국, 포르투갈, 필리핀 노동자순이었다.

 한편 유럽에서는 나폴레옹의 전쟁으로 대륙이 봉쇄되자 사탕무에서 설탕을 정제하는 방법이 개발된다. 이를 통해 카리브해의 설탕농업은 붕괴하고 향후 아스파탐과 이성화당등의 개발로 설탕 농업은 사양화한다.

 

8. 차, 커피, 카카오

 신대륙에 도착하기전 전 유럽은 그야말로 술에 취해 살았다. 16세기 스웨덴인은 지금의 40배의 맥주를 마셨고, 영국은 1인당 하루 무려 3리터의 맥주를 마셨다. 이는 당시 염장음식이 많아 갈증이 심했고, 깨끗한 식수를 구하기 어려웠으며 힘든 현실의 도피처 역할을 술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대륙 도착이후 17세기 부터 커피와 차, 코코아가 이를 대체하기 시작한다. 커피는 예멘지역에서 재배되며 오스만 제국이 이를 통제했다. 초기엔 이슬람과 기독교 모두 악마의 음료로 배척했으나 점차 퍼져나가며 빈에서는 비엔나 커피가 영국에서는 커피하우스가 등장한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정치 비판과 학술의 장소가 되었으며 여기서 증권사나 은행, 보험사등의 근대적 기관이 탄생하기도 한다.

 차는 육로와 해로 양자로 퍼졌는데 육로에서는 차로 발음되고 해양에서는 푸젠어로 티로 알려진다. 영국은 쌀쌀한 날씨로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은 차가 인기가 좋았다. 중국과의 차무역에서 적자가 누적되자 영국은 인도에 심은 아편으로 이를 상쇄하였고, 이는 아편전쟁으로 이어진다.

 영국은 꾸준히 인도에 차를 이식하여 아삼지방에서 차나무를 재배하나 맛이 얼싸해 인기가 없었다. 그러다 중국의 차산지와 유사한 히말라야 인근의 다르즐링에서 차나무 재배에 성공하여 중국의 차 독점이 깨어진다.

 초기 미국인은 영국인들의 차습관을 모방하나 영국과의 갈등이 심해지고 보스턴 차사건으로 이어지자 홍차를 버리고 커피를 선택한다. 아메리카노의 시작이다.

 카카오는 다 익은 열매를 발효시키면 갈색으로 변하는데 이것을 건조한게 카카오 콩이고 볶아서 분말로 만든게 카카오페이스트며 여기서 카카오 버터를 제거한게 카카오 음료이고 카카오 버터와 설탕 우유를 첨가해 굳힌게 초콜릿이다.

 산업혁명시기 코코아 음료가 영국에서 인기가 드높았는데 카카오버터로 인해 맛이 기름지고 껄끄러웠다. 네덜란드인 콘라드 반 호템이 카카오 버터를 제거한 탈지카카오를 개발해 인기가 좋았으며 브리스틀의 프라이가 카카오버터를 곧힌 판형 초콜릿을 개발한다.

 당시 유럽에서는 스위스의 약제사 네슬레가 개발한 밀크초콜롯이 인가기 좋았고, 미국의 허시는 자신만의 밀크 초콜릿을 미국에서 개발한다. 그는 아몬드가 들어간 초콜릿과 허쉬 키세스를 개발한다. 포레스트 마스는 아버지와 더불어 초코바 밀키웨이를 개발했으며 스니커즈를 만든다. 후에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아 허쉬의 윌레엄머리와 합작하여 만든 초콜릿이 M&M이다.

 카카오는 비극을 낳았는데 카카오 주산지인 아프리카 서부 지역의 나라가 독립하여 가나가 된다. 가나의 대통령은 아프리카 카카오 카르텔을 구성하여 이익을 챙기고자 했으나 허쉬와 다른 기업의 사재기에 밀려 실패한다. 이들의 가격 후려치기에 원주민들은 열대우림을 파괴하여 카카오 경작지를 늘려나가나 가뭄과 화재로 가나의 카카오는 붕괴한다. 카카오는 이웃나라인 코트디부아르로 이동하는데 역시 원가후려치기에 이나라는 아동노예무역으로 원가절감에 대응한다.

 최근 이런 사태를 유발한 이 기업들에 철퇴가 내려지고 자정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9.바나나

마지막은 의외로 바나나다. 바나나는 우리에겐 과일이나 동아프리카와 열대지역 주민 4억명에겐 쌀과 같은 주식이다. 바나나는 보존성이 없어 냉장기술이나 포장법등 식품 유통기술의 발달에 기여한다.

 미국의 프레스턴이 최초로 바나나 기업인 UFC를 만들고 이것이 지금의 치키타이며 바카로는 Dole을 설립한다. 바나나는 주로 중남미에서 생산되었는데 이들 기업이 이를 독점하고 1920년대에 농민들이 자신들의 적은 대가에 분개해 분쟁이 일어난다. 미국 정부는 이들 기업과 더불어 노동자 파업을 잔혹하게 진압하였고, 1940-1950년대 콜롬비아에서만 무려 18만의 농민이 희생된다.

 과테말라에서는 ufc에 대항하여 아르벤스 대통령이 당선되나 미국과 이들 기업에 의해서 추방된다. 한편 이런 행태에 대한 세계적 비난과 미국내에서의 비판적 여론으로 미국 법무부는 태도를 바꾸어 이들 기업을 독점법으로 제재한다. 그 결과 UFC는 중남미에서는 철도사용권을 그리고 미국내에서는 수퍼 독점권을 잃는다. 그 사이 미국인의 입맛도 다변화하여 바나나의 수요가 급감해 이들 기업은 사양세를걷는다.

 바나나는 씨앗이 없는 품종으로 그 유전형질이 모두같다. 과거 그로미셸종이 사용되었으나 병으로 절멸하고 현재는 개번디시 종이 주 품종이다. 이 품종 역시 파나마 병에 취약하여 아직 병이 진행되고 있어 위험한 상태다.

 바나나에 의존하는 4억명의 사람들에게 큰 위기인 셈이다. 거기에 바나나는 아기에겐 이유식 그리고 이가 약한 노인도 먹을 수 있는 영양가 높은 과일이어서 고령화 시대에 적합한 작물이다. 우리가 바나나에 신경을 써야하는 또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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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는 하나의 정치적 소원이 있다. 바로 죽기전에 딱 한번이라도 보수정당에 투표해보는 것이다. 과거엔 투표연령이 지금보다 높았기에 만 20세가 넘어 투표를 시작한 이후로 대선이든,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단 한번도 보수정당에 투표해본일이 없다. 기껏 저지른 일탈은 늘 승리를 위해 투표하던 야당이외에 비례대표정도로는 진보정당을 찍는 것이 고작이었다.

 내가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경우는 딱 두가지일 것이다. 아마도 하나는 정말로 보수정당이 일본우경화세력과 협력하여 북한을 적대시하여 공존해나가는 망국의 길에서 탈피하여 정치적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진정한 자본주의 질서를 확립해나가며, 국익이란걸 진정으로 우선시하는 그야말로 진정성 있는 보수로 환골탈태를 하는 경우다. 지금의 그들은 사익이 우선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마도 나의 재산이 정말로 많아져서 나의 이득이 우리나라 보수정당의 그것과 상당히 일치하게 되는 경우다.(물론 나의 하는 짓과 직업으로 봤을때 매우 희박한 가능성이다.) 나에게 다가오는 심각한 재산상의 손실을 각오하면서도 정의를 택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단순히 재산이 많아진다고 해서 모두가 보수적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 역시도 두고 볼 일이다. 그냥 상상속에 기대하는 재밌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어쨌든 지금의 민주사회는 크게 진보와 보수로 구분되며 이는 미국도 우리나라도, 일본도, 유럽의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새가 좌우로 난다지만 불운하게도 좌우가 균형적이거나 합리적인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이는 많은 국가에 불행을 몰고온다.

 최근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었다. 유시민 작가의 책을 여러권 보았지만 이 책은 유시민작가가 정치권에서 쓰라린 패배와 실패를 겪고, 다시 사람 유시민으로 돌아와 낸 첫 책이다. 그래서인지 그 어떤 책보다도 작가 유시민이 잘 드러난다. 책은 유시민의 다른 책들 보다 월등히 읽기 쉬운 편인데 아무래도 지식보다는 삶에 대한 유시민의 깨달음이 책의 주내용이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앞서 말한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었다. 대개 우리는 진보와 보수를 문과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데 유시민은 의외로 양자의 구분을 과학적으로 한다. 유시민 작가 책을 보면 그가 생각보다 꽤 과학적 소양이 있음을 알게 된다.

  유시민은 우선 진보주의는 보수주의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철학이나 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으며, 진보주의는 어떤 이론의 집합이라기보다는 타인과 세상을 대하는 감정 또는 정신적 태도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런 주의는 감정이나 정신적 태도이기 때문에 당연히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인 것이며 이를 타인에게 강제하는 것이 옳지 못한 일이 된다. 여러 보수논객과의 토론에서 당연히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신이 그렇게 생각할 수 도 있다고 말하는 작가의 언행은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다.

 유시민은 이어서 보수정당을 싫어한다고 솔직히 고백하는데 그 이유는 보수정당이 인간의 여러 본성 중 진화적으로 익숙하고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부분을 대변하고 부추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물질에 대한 탐욕과 이기심, 독점욕, 증오, 두려움, 강자의 오만, 약자에 대한 괴롭힘 등인데 이런 태도는 보다 원초적인 것인 것이고 인간의 욕망과 본능에 가장 가깝게 자리한다.  유시민은 이런 것에 보수가 기반하기에 상대적으로 인기도 높고 결집이라는 것이 보다 잘 된다고 다른 책에서도 밝히고 있다.

 반면 그가 지지하는 진보정당은 인간 본성 가운데 진화상 새롭고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자유, 정의, 나눔, 평화에 의존하며 이런 것은 비교적 늦게 진화한 인간의 이타심에 기반하는 것들이다. 유시민은 이런 이타적 본성과 공감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연대라고 칭하며 이 연대가 일 놀이 사랑과 더불어 삶을 가장 의미있고 품격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보와 보수를 과학적으로 구분한 책은 하나가 더 있다. 똑똑한 바보들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나온 책으로 보수와 진보주의자가 서로 다른 뇌를 가졌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인간에게는 경험에 대한 개방성과 성실성, 신경증성, 외향성, 친화성이 있는데 진보와 보수주의자는 개방성과 성실성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진보주의자들은 개방성이 있어 강정을 보이는 반면 보수주의자는 성실성에서 강점을 보인다.

 실제 양자의 생활공간을 비교하면 진보주의자는 여러 경험을 나타내는 물건과 새로운 것 물건이 비교적 어지럽게 널린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성조기나 국가의 상징물, 달력, 스캐줄 관리, 청소도구등이 가지런히 정렬해있다.

 또한 보수주의는 애매모호한 것에 대한 인내력이 부족하고 독단적이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사고과정이 덜 통합적이고, 종결에 대한 욕구가 크다. 그리고 진보주의자는 이외 정 반대다. 양자는 뇌에서 차이가 나타나는데 보수주의자는 편도체가 발달하고 진보주의자는 회백질이 발달한 편이다. 편도체는 공포와 관련한 본능이 깊이 관련하 부분이며 회백질은 비교적 최근에 발달한 이성과 사고의 부분이다.

 하지만 비교적 현대사회에 유리해 보이는 진보주의자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대개 재산의 형성이사회적 성공부분에서 진보주의자보다는 보수주의자가 더 유리한 것으로 드러난다. 또한 정치적 싸움에서도 집결력이 강한 보수가 진보를 이기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역사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이처럼 두 책은 진보와 보수가 상당히 선천적인 성향을 갖고 형성됨을 말한다. 물론 유시민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생리적 변화로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 보수화되는 경향을 띈다. 실제로 진보가 보수화 되는 경우는 상당히 많지만 보수가 진보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때문에 양자를 서로로 변화시킨 다는 것은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가 되고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가 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양자가 서로 받아들이기 이해하는게 어렵다면(특히 성향상 보수가)서로가 힘을 가졌을때 상대방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부수는걸 막는 것 정도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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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3 20: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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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3 2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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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 혁명 - 호모 헌드레드 게놈 프로젝트
이민섭 지음 / Mid(엠아이디)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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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의학이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패러다임에서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여전히 의학발전에도 불구하고 아파야 병원에 가며, 이미 아파서 간 병원에선 늦었다는 말을 듣기 일쑤다. 의사들은 방송에서나 어디서나 항상 예방이 그리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예방은 항상 뒷전이다. 어디 병원에 예방의학과라는게 강조되는 곳이 있던가? 그리고 실상 병원이라는 곳은 모순되게도 아무도 안아프면 망하는 곳이다. 환자가 없기를 바라면서도 환자가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곳이 병원이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들이 그래서 예방을 소홀히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지금까지 마땅한 예방법이란게 없었기 때문이다.

 책' 게놈 혁명'은 말로만 강조되던 예방의학의 실현을 말하는 책이다. 책이 말하는 것은 개인유전체정보를 바탕으로 본인에게 질병발병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나 강한 부분, 취약한 부분을 알고 미리 대처하여 실질적인 개인 맞춤형 예방의학시대가 열린 다는 것이다. 인간은 한때 절멸위기에 놓인 적이 있기 때문에 개인간 민족간 인종간 유전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데 대략 0.1-0.15%정도 사람간 유전자 차이가 난다고 한다. 유전체를 바탕으로 한 예방의학이 집중하는 부분이 바로 이 차이다.  

 저자는 유전체 혁명을 4단계로 나누는데 우선 1단계는 21세기의 초입에 미국에서는 인간 유전자 지도가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2단계는 유전자 지도를 읽는 기술의 혁명적 발전으로 1단계에서의 전체적인 참조 유전체를 벗어나 한 단계 진보하여 집단 유전체를 비교 연구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서 집단간 연구 비교를 통해 다양한 질병 유전체가 발견된다.

 3단계는 차세대 유전체 해독기술이 발전하여 유전체 분석의 급속한 가격하락을 가지고 와 다양한 임상에 기반을 둔 유전체 기술이 실현 된 단계이다. 그리고 4단계는 개인의 유전체 분석 가격이 무려 100만원대로까지 하락하여 본격적인 개인유전체 맞춤형 시대가 열리는 시점이다. 현재는 3단계와 4단계의 사이정도라고 볼수 있다.

 책에 나오는 다음 뭉텅이는 각 질병과 유전자들간의 관계이다. 암부터, 당뇨, 고혈압, 치매까지 다양한 질병들과 유전자, 그리고 그 질병을 막기 위한 영양소들과 생활습관이 등장한다. 이 부분은 단지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다룬 부분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유전자와 상관하여 영양소를 보다 많이 흡수하거나 적게 흡수해야함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아직은 유전자 명칭과 기능이 생소하여 유전자의 기능보다는 영양소에 대한 설명이 더 눈에 들어오지만 이런 것 까지도 아직은 내가 유전체 혁명 시대에 살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인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4단계의 유전체 시대가 온다면 나의 유전체를 의뢰하여 해독하고 적절하게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조절하는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DNA 앱스토어를 강조한다. 용어조차 생소한 이것은 개인의 DNA정보를 기반으로 건강관리가 이루어 질 뿐만 아니라 개인유전체 분석에 따른 다양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제공되는 플랫폼을 말한다. 또한 이것이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유전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유전정보가 필요한데 유전체 연구라는 것이 곧 통계를 바탕으로 차이를 알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설문조사에 의하면 이미 미국에서는 상당수 사람들이 의학의 발전이나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개인의 유전 정보 제공 동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개인의 동의가 있을 경우 그 정보를 관리하기 위해서 블록체인 기술이 등장한다. 전자화폐와 관련하여 유명해진 이 기술은 사실 개개인의 정보를 서로 연결하여 안전하게 보관하고 사용하는 것으로 개인의 유전체 정보와 헬스케어 데이터를 활용하는데 사용이 가능하며 이미 국내 한기업이 시도중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4차산업혁명시대에 있어 유전체 분석을 통한 예방의학을 매우 강조하며 한국이 그 어느나라보다 그 시행에 필요한 선결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한국은 국가주도하의 완결된 의료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있어, 개인 유전체 정보와 공유 그리고 사업의 시행에 있어서 매우 유리하다. 또한 비교적 폐쇄적인 집단을 역사적으로 구축하고 있어 유전체 비교 및 처치에 있어서 유리할 수 있으며 세계적으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빨라 이런 예방의학에 대한 수요가 가장 빠르게 증가할 것이란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현재 국가예산대비 의료비 지출이 7%수준이지만 미국은 17%수준이며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수요를 빠르게 따라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예방의학을 통해 이 수준을 적절히 유지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우려하는 연금의 고갈이나 의료대란이 다가올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가 가장 많이 내는 세금은 주민세나, 소득세가 아닌 건강보험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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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3 2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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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약탈 - 보이는 것에 투자하라!
마티아스 바이크 & 마르크 프리드리히 지음, 송명희 옮김 / 가치창조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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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는 역사상 대공황이나 세계대전, 스태그플레이션 등 몇가지 분기점을 갖는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으로 삼는 사건은 미국의 불태환 선언이다. 이는 1971년에 일어난 일인데, 미국이 2차대전 이후로 세계중심국가로 발돋움하면서 영국의 파운드를 밀어내고 달러가 기축통화로 자리잡게 된다. 여기엔 중요한 약속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미국 달러를 미국에 들이대면 33달러당 1온스의 금을 준다라는 것이었다.  

 이는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자신들의 역사이래로 거의 10년마다 큰 전쟁을 치뤄온 미국에겐 이것의 유지가 쉽지 않았다. 가장 큰 계기는 60년대 시작한 베트남 전쟁이었는데 자신들의 금 보유량 이상의 화폐를 남발한 미국으로선 일반적 불태환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로 인해 각국은 달러화에 자신들의 화폐가치를 고정시키던 화폐정책을 철회하고 이후로 돈은 그야말로 신용화폐로의 길을 걷게 된다.

 다음 사건은 아마도 빌 클린턴이 저지른 스티브-글래스 법의 폐기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영업을 엄격히 분리하던 대공황이 탄생시킨 이 법을 클린턴은 과감히 없애버린다. 이 사건으로 미국의 금융권은 화폐발행과 그 영업에 있어서 사실상 고삐풀린 망아지가 되고 만다.

 미국과 세계의 은행 및 금융권은 그야말로 무리한 영업을 시작했는데 상업은행의 지급준비율이란게 고작 2%정도에 불과하여 발권은행으로부터 2만원의 돈만 받아도 무려 100만원의 대출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발권은행으로부터 빌리는 돈에 대한 금리가 유일한 고삐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이마저도 곧 사라진다. 미국에서 전격적인 금리인하가 21세기 초반 실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실행한 사람은 그 유명한 앨런 그리스펀이다.

 그가 이런 짓을 한 것은 당시 미국경제가 버블닷컴의 회사들의 붕괴로 금리인하를 통한 양적완화 정책이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낮아진 금리에 은행은 대출사업을 마구잡이로 시작하게 되었고, 대출상대가 메말랐는지 금기야 일정한 직업조차 없던 위험계층인 서브프라임층에게로까지 대출사업을 시작한다. 모두가 싼 값에 대출을 받아 너나할 것없이 미국에서는 집을 마련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이로 인해 부동산가격도 폭등한다.

 금융권은 이에 질세라 파생상품 사업도 실행한다. 대출한 자금에 대한 이자수익을 증권형태로 바꾸어 이를 팔기 시작한 것이다.  은행들은 이를 통해 교묘하게 위험을 감추었고, 이 파생상품들은 파생상품의 파생상품 또 그것의 파생상품으로 그 누구도 원래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다 결국 약간의 흐름이 상당수 계층의 대출이자 상환에 문제를 일으켰고, 이것이 도미노 효과를 일으켜 미국 경제가 붕괴한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자본주의 붕괴 1.0이다.

 책은 그리고 1.0이후 우리가 배운 것이 없어 2.0 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경고한다. 책은 미국과 유럽 일본, 그리고 중국의 경제상황을 예로 드는데 미국과 일본의 부채는 국가총생산의 5-6배에 이르고 있으며 유럽의 각국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의 빚은 수치로보면 정말 놀라운데 2012년 채권자에 무려 15조 달러의 빚이 있으며 이를 국민 1인당으로 환산하면 5만달러의 빚이며 납세자 1인당 13만 달러의 빚이다. 다소 의외인 중국경제는 각 지방정부가 돈의 팽창으로 무리한 건설사업을 벌였고, 중국의 성장률의 상당수가 이를 통한 허수이며 각 지방정부가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음을 경고한다.

 세계경제가 붕괴한 후, 이를 수습하는 과정은 더욱 기가 막힌데, 우리도 익히 잘 알고 있는 공적자금의 투입이었다. 대마불사라고, 잘못을 저지른 금융권과 그들과 얽히고 섥힌 경제주체들이 너무나도 많다보니 각국 정부의 선택은 국가의 세금을 대거 투입하거나 이들 기관들을 국유화하는 것이었다. 책의 저자는 100년만의 공산주의의 부활이라며 이를 조소한다.

 저자는 이를 금융기관들이 잘 하는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오바마가 비판한 것처럼 이 위기상황에서도 금융기관의 최고경영자들은 엄청난 급여와 보너스를 챙겼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난리를 통해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전히 금리는 매우 낮으며(올릴 수가 없다. 각국정부와 이 금융기관들의 빚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쉽게 잊고 비슷한 짓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또한 각국 정부의 부채는 더욱 많아졌고, 경기의 전체적 둔화로 이를 장기적으로 상쇄할 만한 경제성장률도 보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것이 결국 국가파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역사상 국가파산은 여러번 있었으며 저자는 아르헨티나의 예를 든다. 아르헨티나가 국가파산을 하며 자국민들의 예금을 동결시켰고, 은행을 폐쇄한다. 거기에 더 나아가 자국내 모든 달러화 예금을 강제로 페소화로 바꾸었으며 그 결과 화폐가치가 대폭락하고 부동산가격이 90%이하로 폭락하고 많다. 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히 아르헨티나 국민들이었다. 거리는 범죄와 소란으로 뒤덮혔다.

 이런일들이 유럽각국이나 일본, 미국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위기가 아닌 지금에도 일반 국민들은 손해를 보고 있다. 각국 정부와 지방정부는 엄청난 부채를 해결할 요량으로 일반 근로자의 국민들에게 상당한 세율로 세금을 원천징수하고 있으며 부유층은 돈놀이로 큰 혜택을 보면서도 세금 부담은 적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책에 나온 소제목처럼 눈에 보니는 실물에 자신의 재산을 옮겨놓으라고 조언한다. 지난 100년간 미국 달러화의 가치는 무려 96%상실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물인 금은 그 가치가 무려 50배 상승했다. 때문에 이런 귀금속이나 부동산등 실물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자신의 재산을 국가와 돈놀이를 일삼는 계층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나머자 화폐나, 주식, 각종 증권 등은 모두 인플레이션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금융위기시 그야말로 휴지조각이 되기 때문이다.

 책은 대충 10년정도 전의 상황을 다룬것이다. 그후로 10년이 지났지만 세계경제는 다행히 위기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개선되지도 않았으며 여전히 비슷하다. 지금이라도 금은과 부동산을 사야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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