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 털보 과학관장이 들려주는 세상물정의 과학 저도 어렵습니다만 1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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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전작인 공생멸종진화를 작년에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 다음작인 이 책을 자연스레 접하게 되었다. 전작과 좀 다른 점이 많았는데, 전작이 비교적 과학에 집중한다면 이번 작은 과학을 어느 정도 토대로하고 사회와 인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모았다는 점이다. 아마 이 책은 어딘가에 수록한 글들을 모은 책인 듯 하다.

 이런 점 때문에 이정모 저자의 전작을 재밌게 보고 비슷한 것을 기대한 사람은 조금 실망할 수 도 있을 것 같고, 반면에 이 책으로 처음 이정모 저자를 만난다면 오히려 접근 장벽이 낮아 더 나을 수 도 있겠다.

 나는 비교적 전자인 편이라 책이 그리 재밌진 않았는데, 그래도 몇가지 재밌는 과학 상식을 건질 수 있었다. 저자는 강연을 갈때마다 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는 방귀이야기를 자주 한다고 한다. 이유는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라는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방귀이야기만 나오면 재밌어 하고 강연에 집중한다고 한다. 사람은 하루에 14-25번 정도 방귀를 뀌는데 산에 올라가면 유독 방귀가 잦아진다고 한다. 산에거의 가지 않아 잘 몰랐던 사실인데, 이는 대기압의 변화와 관련한다. 산에 오르면 기압이 낮아지고 대장에 대한 기압도 약해져 대장이 내부의 가스로 인해 팽창하고 이로 인해 방귀가 잦아진다는 것이다.

 지저분한 방귀 이야기 다음으로는 꽃이 재밌었다. 꽃들은 크기도 하고 작기도하는데 저자는 작은 꽃의 생존전략을 말한다. 대개 곤충입장에선 작은 꽃보다는 꿀이 보다 많고 발견하기도 쉬운 큰 꽃이 보다 탐스러울 것이다. 이렇기에 작은 꽃이 세운 전략은 두가지다. 하나는 대규모로 군락을 이루어 함께 꽃을 피우는 것이다. 큰 과일 하나와 작은 과일 수십개가 대결하는 셈이다. 다른 전략은 큰 꽃과 개화시기를 달리하는 것이다. 겨울을 난 상태에서 작은 꽃들은 새잎파리를 내기도 전에 온몸을 꽃으로 먼저 뒤덮는다. 개나리나 벚꽃 등이 그러한 예일 듯 하다.

 마지막은 모기였다. 자연을 사랑하는 저자지만 모기로 인해 한해 전세계 80만의 인구가 운명하기에 감히 모기의 존재를 긍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모기의 입장을 살피는데 모기가 사람의 피를 빠는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8-10초 정도란다. 인간입장에선 모기를 알아차리고 죽이는데 짧은 시간일 수 있으나 모기 입장에서는 목숨을 건 그야말로 지옥같이 긴 시간이다. 모기는 살기위해 마취제도 살포하고, 공기중에 노출된 혈액이 응고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히루딘이란 응고억제제를 분비한다. 하지만 사람몸 역시 이런 모기의 존재를 본체에 알리기 위해 히루딘이 몸에 들어오면 여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히스타민을 분비한다고 한다.

 알레르기 반응물질이니 몸은 자연스레 부어오르고 간지러워진다. 통념과는 다르게 모기로 인한 것이긴 하나 물린 부위기 부어오르는 것은 사실 사람 몸에서 만든 물질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에는 다른 과학적 이야기. 그리고 관련한 사회 이야기, 정치에 대한 비판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난 좀 그랬지만 이런 부분에 재미를 느낄분도 많을 것이란 생각이다. 자연사박물관장 답게 자연사 박물관에 대한 소신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전체적으로 가볍게 보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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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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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말한 대로 검사는 애증의 대상이다. 아내의 사촌이 검사가 되어 결혼을 하였는데 그의 아내될 사람 역시 변호사였다. 폼나게 법원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주례를 맡은 로스쿨 법대교수의 주례사도 인상적이었다. 두사람다 법조인으로 주변의 시기와 질투를 쉽게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하며 겸손하게 살라는 것이었다. 여러 주례를 들어봤지만 너무 잘난걸 티내지 말라는 주례는 처음이어서 색달랐다. 그만큼 법조인 특히 검사는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검사는 의외로 사실 공무원인데 일반 행정적과는 다르게 급수가 없다. 공무원들 중에는 이렇게 급수가 없는 공무원이 좀 있는 편인데 검사의 경우는 책을 보니 무려 3급공무원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고 있었다. 공립학교의 평교사들이 7급 정도의 대우를 그리고 지역의 면장이 5급인걸 생각한다면 상당한 대우다. 하지만 권력이 강하면 부패도 일어나는지라 저자가 말한 것처럼 재벌이나 정권과 결탁하여 떡검소리를 듣는 것도 검사다.

 저자는 이런 본인의 검사생활을 썼다. 읽다보니 검사생활에 대해 좀더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평검사-부장검사-차장검사-검사장으로 이어지는 라인이나 지청 등의 개념도 알게 되었다. 그들이 겨우 2년마다 자리를 옮겨야 하고 그로인해 그 빈큼이 수사 공백으로 이어지거나 이를 악용하는 범죄자들의 케이스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악랄한 범죄자들의 수법은 정말 치가 떨릴 정도로 어이가 없었는데 이런 이들의 생태와 정신세계를 여러 가지 비유로 재밌게 표현하는 서술의 이 책의 독특한 재미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났다면 이 책 역시 그저 사회적으로 관심받는 직종세계를 표현한 여느 평범한 드라마들과 차별성이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의 차별성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법조계의 근원적 문제점을 잘 드러낸 점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지나친 고소인 중심의 법체계다. 주진우 기자도 그의 책 사법활극에서 지적했듯 사람이 마음 먹고 다른 사람을 고소하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괴롭히기 쉽다. 고소는 자유롭고 그들의 고소할 권리는 무한정 보장되는 반면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의 권리는 크게 보호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불균형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법체계에서 가해자의 권리는 상당히 보장하는 한편 피해자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비교적 당연하게 생각하는 형법의 경우도 그렇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피해자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보복할, 혹은 응징할 자신의 권리가 모두 국가에 위임된채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상당수 선진국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그 회복과정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적극 참여시킨다고 한다.

 이처럼 가해자나 고소인 중심의 체계는 과거 국가권력이 지나치게 강대하여 생겨난 부작용인데 세월이 충분히 지났고, 어느 정도 민주사회가 성숙한 만큼 돌이켜볼 제도인 듯 하다.

 또 다른 것은 사법부의 비 민주성이다. 민주국가는 삼권분리의 체제로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로 구성된다. 행정부의 최고 수반인 대통령과 각 지자체의 단체장, 그리고 입법부의 구성원인 국회의원과 지자체 의원은 모두 국민의 손으로 뽑히며 견제된다. 반면 사법부는 전혀 국민의 손을 거치지 않고 시험을 통해 선발된다. 김웅검사는 이것의 비민주성을 지적한다. 이런 부분을 오랫동안 당연히 생각해 와서 읽으면서 무척 부끄러웠고 깨달음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판사의 80%가 임명직이 아닌 선출직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행정권력인 검사를 판사가 견제하며 사법 권력인 이 판사를 국민인 배심원이 견제하는 것이다. 우리 역시 뒤늦게나마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했지만 판사가 배심원들의 판결을 거부할수 있다는 점에서 큰 한계가 있다.

 마지막 하나는 국민의 재판을 결과에 불복할 권리다. 우리나라의 재판은 행정은 2심 일반 민사나 형사는 3심제다. 물론 재판이 3심까지 갖어도 재판에서 판결의 근거가 된 증인이나 증거에 대한 재판을 새롭게 걸수는 있다.(이런 식이면 사실 무한의 게임인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 3심재판이면 사실상 개인이 더 나아가기는 힘든 형국인데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재판결과에 대하여 헌재에 불복소원을 할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재판결과가 헌법재판소의 소관이 아닌데 이 것이 결정된 것도 87년체제에서 전두환의 잔당인 민정당이 한 짓이라 개선이 필요해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검사의 생활과 기가 막힌 범좌자들 우리나라의 비균형적인 가해자 중심과 고소인 중심의 법체계, 그리고 사법체계 자체의 비민주적 요소를 많이 깨달을 수 있었다. 문체도 상당히 재밌지만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김웅검사는 진화론과 행동경제학, 그리고 여러 사회과학 및 철학적 인용을 본문에서 많이 한다.)이 드러나 있어 책이 더욱 깊이가 있었다. 아무래도 다양한 사람을 접하다보니 인간에 대한 깊은 호기심과 통찰력이 그를 다양한 독서의 길로 이끈 것 같다. 물론 본문을 보면 어릴적부터 책 귀신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유익한 책이었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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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 2018-03-18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굿
 

 

 이 책을 무려 14년만에 봤다. 14년전엔 군대를 막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한 상태였는데 당시 수강한 교양과목 교수님이 한 학기동안 10여권의 책을 읽게하였고, 이 책은 그 중 하나였다. 어릴 적 중학교 선생님께서는 어릴 적 본 책과 나이가 들어서 본 책은 새롭고 다르다는 아주 당연한 말씀을 절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나이의 나에게 하셨던 기억이 있다. 이젠 그 말씀을 제법 이해할만큼 세월을 느껴서인지 책은 새롭게 다가왔다. 어쩌면 14년 전을 기억하지 못해서 일수도 있다. 과제로 읽은 책이 다 그렇지 않던가.  실제로 책을 다시 다 보고나서야 새로운 표지의 거북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되었으니 말이다.

 조금 더 나이가 든 나에게 이 책은 자본주의 비판서로 다가왔다. 책이 바로 시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이 중요하고 우주 만물이 그러하듯 자본주의 사회 역시 시간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즉, 뭔가를 만들어내는데 시간이 반드시 소요되므로 동일 시간 내에 최대한의 생산을 하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생산성이라 부르며 매우 중시한다.

 그렇다 보니 자본은 항상 사람을 시간적으로 짜내며 그걸 효율성이라던가 생산성이 높다며 포장한다. 시계란걸 만들어내어 시간을 쪼개어 통제하고, 매우 장기간의 노동을 시키며 정해진 시간안에 누가 가장 문제를 잘 푸는가로 어려서부터 사람을 재단한다. 그리고 몇년전 시간이 자본주의의 핵심임을 잘 파악한 영화도 하나 있었다. 바로 인타임이다.

 

 

 출처-위아래 사진 둘모두 네이버 카페

 

인타임은 썩 잘만든 영화 같진 않았지만 굉장히 기발한 소재의 영화였다. 상당히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 영화를 인상적으로 평가하였는데 아무래도 자본의 핵심인 시간을 찔렀기 때문인 듯하다. 현재 자본은 직접 빼앗는 것이 불가능한 노동자들의 시간을 비교적 간접적 착취 방식인 노동과 돈으로 환산하여 착취한다. 노동과 돈을 만드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타임의 세계는 다르다. 여기선 과학기술의 발달로 직접 시간을 주고 받는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화폐는 사라지고 자본가들은 직접 노동자들에게 착취한 시간으로 영겁의 시간을 누리게되며, 노동자는 착취당한 시간으로 직접적인 생명의 위기를 느끼게 된다. 영화는 더 나아가서 시간마져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노동자들을 더욱 곤경으로 몰아넣는다. 어제까지 1잔에 5분이던 커피가 다음날엔 7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다시 소설 모모로 돌아간다. 모모는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다. 신비한 소녀로 부모도 없고 고향도 없으며 소녀자신조차 그걸 모른다. 한 허름한 도시의 상징처럼 더욱 허름한 원형극장에 소녀 모모는 자리잡는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엔 모모를 이상하게 여겼지만 점차 소녀에 빠져든다. 소녀는 이상한 매력이 있었는데 보고 있으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본심을 말하게 만드는 것과 오랜 시간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모모를 돕는다. 미장이나 집을 고쳐주고, 음식가게 사장은 먹을 것을 주었다. 그리고 모모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아이들도 모모를 좋아한다.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모모와 함께 있으면 손쉽게 환상의 세계로 빠져 즐거운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회색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마을 어른들을 하나씩 꼬드기기 시작한다. 마치 소크라테스라도 되는냥 마을 사람들 하나하나의 허름한 인생을 꼬집고, 성공하지 못한 인생을 꼬집고, 친구들과 떠들고 이야기 하고 노느라 허비한 시간을 지적한다. 이에 자극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짜내기 시작하고 생산성을 높여나가기 시작한다.

 마을의 생산성은 급격히 높아져 1년만에 그럴싸한 현대적 도시로 변모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를 보지 않고 이야기도 하지 않으며 진정한 자신을 잃어간다. 그리고 모모도 더이상 찾지 않게 된다. 모모는 그런 마을 사람들을 다시 찾으려고 노력하고 회색신사들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이 짜낸 시간을 착취해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즉, 자본인 것이다.  

 이 부분이 영화 인타임과 소설 모모가 닿아있는 지점이다. 때문에 소설 모모와 영화 인타임은 자본주의 비판서가 된다. 요즘 교육 현장에선 온책읽기를 하고 사후활동을 하는 교육활동이 국어교육과정에 정식으로 도입될 정도로 활성화 되고 있다. 때문에 모모같은 책을 읽고 작가와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활동이 될거란 생각이었는데 책 모모가 출간된 것이 이미 1970년이고 작가 미하일 엔데는 고인이 된지 오래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모모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남기고 페이퍼를 마친다.

 

p151

우리는 시간을 갈망하지. 아 너희들은 그게 뭔지 몰라. 너희들의 시간을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어. 그래서 뼛속까지 너희들의 진을 빨아들이는 거야.

 

p153

아이들은 우리들의 천적이에요. 아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벌써 오래전에 전 인류를 수중에 넣을 수 있었을 겁니다.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사람보다 시간을 아끼게 하기가 힘들어요.

 

p240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가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인생을 먹고 살아간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죽은 시간이 되는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찌 주인의 시간일때만 살아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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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8-03-17 0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타임을 한번 봐야겠네요

닷슈 2018-03-17 00:32   좋아요 0 | URL
재미만으로도 볼만한 영화입니다 의미도 있구요

cyrus 2018-03-17 0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마저 자본가가 통제하는 세상. 정말 암울합니다. 이런 상황이 영화 속 얘기는 아닌 것 같아요. 직원이 일찍 퇴근하지 못하도록 윗선이 무언의 압박을 주는 것도 시간 통제입니다.. ㅠㅠ

닷슈 2018-03-17 17:23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입니다

희망찬샘 2018-03-18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예쁘게 옷을 입은 책이 나왔네요. 하날 사야하나? 산 기념으로 또 읽어주어야 하나? 하는 갈등을 하게 되네요. ^^ 또 읽으면 또 다른 이야길 해 주겠지요?

닷슈 2018-03-18 09:47   좋아요 0 | URL
네 그럴겁니다
 
과학자의 철학 노트 - 철학이 난감한 이들에게
곽영직 지음 / Mid(엠아이디)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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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초년 시절 뭣도 모르고 철학을 집어들었던 기억이 난다. 알고는 싶었지만 너무 어려웠고, 의미를 찾기도 힘들었다. 남들은 원전을 본다는데 2차 서적도 보기가 버거웠다. 그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철학은 내게 어렵다. 그전만큼 관심은 없지만 여전히 흥미롭고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의 부채나 의무같기도하다. 더구나 최근엔 과학에 보다 관심이 많아 철학은 좀 많이 뒷전이었다.

 그래서인지 과학자의 철학노트란 제목이 확 다가왔다. 과학자의 관점으로 본 서양철학사라면 서양철학을 살펴보는 또 다른 관점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어느 정도 그러한 눈을 준것 같기도 하다.

 책의 구성은 연대순이다. 다른 철학서적 처럼 그리스로마시기-헬레니즘-종교시대-르네상스-절대왕정시기-계몽주의-과학혁명으로 나아가는 순이다. 개별장마다 각 주요 시기의 철학자가 나오는데 독특한 점은 그들의 실제 얼굴은 아닐지언정 일단 알려진 얼굴이 나오고, 삶이 간략히 소개되며 그 후 철학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하나의 철학자마다 철학의 내용을 제법 압축해서 소개한다. 물론 저자의 생각에 따라 철학자들의 분량이 꽤 차이나긴 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렇다 보니 많은 철학자가 소개되고 책의 볼륨도 제법이다.

 나 역시 시대 흐름을 느껴가며 읽었다. 이번 리뷰는 그 와중에 나름 인상적인 사람들 중심으로 써보려고 한다. 가장 처음 나오는 그리스로마시기는 사실상 서양철학의 씨앗을 뿌린 시기다. 물론 그 대개의 내용이 지금의 관점에선 터무니 없지만 이들의 통찰력은 사실 상당한 수준이라고 느껴진다. 이 사람들이 지금의 문명수준으로 세계를 볼 수 있었다면 상당히 엄청났을 것이란 건 분명해 보인다. 뭔가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신, 법칙, 로고스, 숫자 등)등에 대한 생각이 나타났고, 물질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생각도 나타났다.(4원소설이나 원자, 등) 어찌보면. 이후의 철학은 이 생각들이 서로 주도권을 주고 받으며 발전하는 과정이기에 사실 토대는 이미 완성된 셈이라고 볼수도 있다.

 종교시대도 생각보다 재밌었다. 다른 철학책이 주로 아퀴나스나 신학을 위해 철학을 사용하는 부분을 많이 거론한다면 이 책에서는 기독교의 교리의 완성과정을 잘 소개한다. 종교시대에 기독교의 문제는 크게 두가지였는데 하나는 예수를 어떻게 볼 것인지의 기독론과 어떻게 하면 구원이 가능한지의 구원론 두가지였다.

 예수는 신적인 존재이면서 인간이었기에 문제가 되었다. 양자를 모두 인정하기도 부인할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인데 무수한 많은 이론이 오랜 시간을 걸쳐 결국 익히 알려진 삼위일체론으로 정리되었다. 구원론은 인간이 원죄를 지은 결과 선행능력을 상실하여 결국 신의 은총에 의한 구원만 가능하다는 설과, 자유의지지가 있어 자신의 선행으로 구원이 가능하다는 설이 있었다.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기독교가 부패하고, 종교개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으로 볼 때 전자에서 후자로 점진적으로 생각이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르네상스 시기 인상적인 사람은 단연 데카르트였다. 그리스로마시기의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보다 체계화 했으며 그로 인해 근대철학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책은 평가한다. 데카르트는 세계를 형이상학적인 영역에 속하는 정신의 세계와 역학법칙의 지배를 받는 자연으로 나누었다. 그는 물질의 속성으로 연장개념을 제시하였는데 연장은 물질이 공간을 차지하는 속성이다. 즉,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물질인 것이다. 이런 연장개념은 과학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당시 자연계에 만연한 정령이나, 영혼등의 전통적 사고를 물질에서 제외하는 성과를 낳았으며 이는 자연과학이 발전하는 밑거름이 된다.

 데카르트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개념에서 착안하여 자신의 철학을 전개시켰는데, 증명할 필요가 없는 의심을 여지없는 제1원리를 찾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로 인해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제1원리가 생성된다. 문제는 제1원리에서 다른 원리로 이행되는 과정이었는데 데카르트는 다소 어이없게도 선한 신이 있어 나를 속여 존재하지 않는 다른 것을 인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르네상스시기를 거쳐 도래한 계몽주의는 절대왕정과 로마카톨릭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되었다. 계몽주의의 성향은 당시 각 유럽 국가의 정치적 상황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었는데 프랑스의 경우는 대혁명의 계기가 되었고, 영국은 이신론과 자유주의에 영향을 독일에서는 국가건설을 위한 문명화의 일환으로 이용되었다.

 영국에서는 이시기 경험론이 발달하여 과학적 사고가 발달하는데 이바지 하였고, 새로운 윤리사상으로 공리주의가 등장하였다. 책은 공리주의를 일컬어 역사상 처음으로 신이나 종교에 의지하지 않은 새로운 윤리기준으로 평가한다. 공리주의를 우습게 보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지만 이것은 근대시민 사회의 윤리기준으로 자리잡았고, 고전경제학과 자본주의의 사상적 기초이자 현대복지국가의 이념적 바탕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공리주의의 시작은 벤담으로 그는 인생의 목적은 결국 쾌락이고 이를 행복과 동일시 하였으며 이것을 도덕적인 것으로 보았는데 공리주의가 이토록 강력한 것은 이런 벤담의 통찰력이 인간 본성의 한부분을 제대로 관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독일에서는 칸트가 가장 인상적이다. 이성의 시기에 칸트는 이성을 비판하는 세가지 서적을 만드러냈다.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이다. 칸트는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각각 한계가 있다고 파악하고 이들을 종합하려고 시도하였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합리론은 인간의 인식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을 그리고 경험론은 귀납적으로 얻어진 상대적 진리만을 인정하여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지식으로의 길을 막았음을 각각 비판한다.

 해결책으로 칸트는 인간이 지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외부에서 얻어진 감각경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이것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판단하는 선천적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통해 양자가 조화되게 된것이며 지식은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일수 있게 된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칸트는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에는 결국 우리의 주관적 기능이 있어 물질 자체인 물자체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인간지성으로 사물의 현상을 분류하고 정리할수는 있으나 그 현상 너머의 본질파악을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는 인간의 이성의 능력을 한계지은 것으로 볼 수 있기도 하다.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려 욕망의 지배를 받으나 내적인 도덕법칙으로 인해 갈등상황에 놓인다고 말한다. 때문에 칸트는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현상이 아니라 물자체에서 찾아야하며 결국 이를 통해 순수이성비판에서 이성의 능력 한계로 버린 형이상학적 세계를 다시금 인간에게 이끌어온다.

 판단력 비판은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의 조합이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현실적 과학세계를 실천이성비판에서는 물자체의 초월세계를 다룬 것이라면 판단력 비판은 이들을 종합한다. 이 둘을 연결하기 위해 칸트는 인과율에 따르는 도덕이 자연과 조화를 맺고 있다고 보았다. 즉 ,물질 세계인 자연에서 도덕의 목적과 일치하는 모습을 발견할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계몽주의와 논리철학자 및 실존주의 철학의 현대철학 부분을 다룬후 과학철학 쪽으로 넘어가며 마무리된다. 사실 결론 부분에서의 언급이 없고, 전체적인 흐름을 말하는 종합이 없었기에 전체적으로 과학을 향한 혹은 과학자로서 서양철학을 바라보는 눈이 생각보다 약한 점은 이 책의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책을 보면서 느낀점은 서양철학에서 절대적 법칙을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절대주의적 사고와 감각경험을 추구하고 상대적이면서도 과학에 있어서는 법칙을 찾으려는 상대주의가 대비된다는 점이다. 이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특성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하는데 인간에게는 종으로서 공통되는 생물학적 특성과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되는 부분들이 있으면서도, 개체로서 살아가면서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부여된 자율적 지능과, 개체마다 주어지는 상대적 환경이 동시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에게 부여된 이런 절대성과 상대성으로 인해 세계 역시 결국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으로 파악하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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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3-13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이 현대라고는 하지만, 고대, 근대의 특성, 잔재(?)들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해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이어져온 엘리트주의, 대중을 일깨워야 한다는 계몽주의, 인공 지능이 나오자 어떻게든 인간 이성을 우월시하려는 자세,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종교와 미신 등등등. 이 혼재가 당연한 건가 싶기도 하고요...

닷슈 2018-03-13 21:10   좋아요 1 | URL
저도 철학을 잘 모르지만 조금이나마 알수록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많이 공감합니다
 
모멸의 조선사 - 지배 권력에 맞선 백성의 열 가지 얼굴 지배와 저항으로 보는 조선사 2
조윤민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오래전 이미 역사학계에서는 위대한 인물이나 왕들이 아닌 일반 사람들의 역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역사를 움직이고 사실상 중요한 것은 이들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아직도 역사는 주요 인물들이나 고관대작 중심으로 다루어질 뿐 일반백성들에 대한 연구와 시선을 적은 편이다. 아직 시선이 완전히 전환되지 않은 측면도 있고, 고관대작들에 비해 백성에 관한 기록은 사실 매우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모멸의 조선사는 조선시대 백성들의 삶을 다룬 책이다. 요약하면 고난함과 계속되는 수탈, 나름의 저항이라 할수 있겠다.

 책을 통해 나의 조상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조선일반 백성들의 삶의 고난함을 느낄수 있었고 더불어 단순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조선백성들의 여러 직업을 느껴볼수 있었다. 이런 것들이 이 책의 장점이다.

 조선하면 백성의 직업으로 농민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이 책은 그 이에도 상인과 수공업자, 광산업자, 광대, 백정, 노비, 도시노동자, 어부, 기생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조선이 농업에 근간한 나라인 만큼 농민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양반층은 자신들 이외에 모든 직업을 멸시했지만 그래도 농업경제이고 그것이 자신들의 세력 기반인지라 농업인을 천하의 근본이라 칭하며 우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말뿐 자신들의 세력 기반이니 농민은 착취와 수탈의 제1대상에 불과했다.

 양인인 농민은 본래 법적으로는 자신이 토지를 보유했을 시에는 토지세인 전세와 각종 역, 그리고 공납을 부담했다. 하지만 조선 중후기로 갈수록 양반층의 토지겸병이 시작되면서 병작농으로 대부분 전락한다. 병작농은 대개 자신의 수확물의 절반을 바치고, 토지세는 양반이 내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조선 후기 농업생산량이 증대하면서 노동의 가치가 하락하자, 위치가 크게 하락한다.

 노동의 가치가 줄어 소작농들끼리 대지주의 토지 경작권을 갖고 경쟁하는 위치에 까지 놓이게 된것이다. 그러다보니 지주의 몫이었던 토지세는 물론이유 내년의 종자까지 병작농의 부담이 되니 일년농사의 소출중 자신의 몫은 겨우 20%정도에 불과하게 되었다. 

 거기에 수시로 이런 저런 명목으로 역에 동원되어 농사시기를 놓치기 일쑤였으며 주변 농민이 도망이라도 치면 자신에게 그 몫이 전가되기도 했다. 역의 부담은 나날이 커져 조선후기에 이르르면 일부 농민들은 남자아이를 낳는 것을 꺼리기 까지 했다고 한다.

 조선후기 이앙법과 이모작이 성행하면서 농민층은 크게 변화한다. 조선의 세력들은 이앙법이 비교적 일찍 개발되었음에도 법적으로 금지시켰는데 이는 물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농사를 망칠 위험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금지에도 이앙법은 급속히 퍼졌는데 노동력이 크게 절감되고 생산력은 커서 각종 수탈에도 그럭저럭 먹고 살만큼의 식량을 확보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세금의 대상은 쌀뿐이었으므로 이모작을 통한 보리는 온전히 농민의 몫이 되는 점도 중요한 동인이었다.

 이앙법으로 노동력이 절감되자 토지에서 쫓겨나거나 상황이 악화되는 농민이 크게 많아졌으며 일부 농민은 부농으로 성장하여 양반층을 위협하기도 하였다.

 상인의 삶도 기막히다. 이들은 양반층에 의해 천시받았으며 상업자체가 조선초기부터 권력에 의해 강하게 틍제받았다. 이는 농업경제에 기반한 양반층이 상업의 지나친 성장이 강한 사회변혁을 이끌고 와 자신들의 기반을 흔들 것을 우려해서였다. 때문에 시장은 원천적으로 금지였으며 도성내 육의전을 운영하는 시전상인들만 상업이 가능했다. 이들 시전상인은 이런 독점의 대가로 왕가나 주요 관료들의 행사의 인력 및 운영물품을 대야했고, 이를 충원하기 위해 매점매석을 일삼고 물가를 조절하여 백성의 삶을 고달프게 했다.

 농업생산력과 화폐경제의 발달로 조선후기 들이 사상의 세력이 강해졌다. 이들이 시전상인들과 경쟁하기 시작했고, 도성주위엔 상설시장이 그리고 지방에는 5일장이 정례화된다. 하지만 이들 사상역시 시전상인의 위치를 그저 대물림한 것에 불과해 사회를 변혁하는 세력이나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킬 상업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그져 중앙의 관료들에게 줄을 대어 불공정한 비리를 저지르거나 매점매석으로 백성을 삶을 어지럽힐 뿐이었다.

 중앙에 의지하고 불공정 거래로 이미 경재력이 없었던 사상들은 개화기 외국 상품과 외국 자본에 거의 대응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자생력이 없었던 것이다.

 다음은 백정이다. 백정은 본디 고려시대만 해도 백성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것을 세종때 차별을 없애고자 이들을 백정이라 칭하면서 백정은 차별의 용어로 변모하고 본디 백정이란 말은 백성으로 대체된다. 이들은 조선의 유랑민이었다. 정착농업경제국가에서 유랑민은 위정자들이 보기에 불안한 존재였다. 여러 반란 세력에 쉽게 가담할수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수탈에서 자유로울수 있었다. 조선은 이들에게 토지를 제공하거나 역을 면해주는 조건으로 정착시키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차별은 전혀사라지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이들이 북방민족출신이 다수라는 점이 한몫한다. 이른바 오랑캐 취급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백성들중 사정에 따라 백정으로 편입되는 경우도 적지 않아 그렇게만 볼수 없는 점도 있었다. 이들에 대한 차별은 복식와 일상에서의 의례에서도 엄청났는데 남자 백성의 경우 항상 패랭이를 써야했고, 혼인한 여자는 쪽빗을 사용하지 못하고 머리를 둥글게 올려 말아야했다. 특히 패랭이는 양인의 경우 상을 치룰때만 죄인이라는 명목으로 쓰는 것이라 그 차별적 의미가 더욱 엄청났다. 백정은 일반 양인의 아이에게까지 존대어를 써야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일반 양인남성들이 백정아녀자를 성적으로 희롱했다는 점이다. 백정의 아녀자를 올라타 말이나 소취급을 하는 놀이였는데 일제시기 까지 이어져, 법적으로 차별이 금지된 당시에 자녀의 운동회에 참가했던 백정계급의 어머니가 딸이 보는 눈앞에서 그 일을 당하고 자살했다는 장면이 책에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광대다. 광대는 한때 조선시대에 4만명에 이를 정도로 수가 엄청났는데 이는 조선의 억불정책에 기인한다. 상당수의 승려가 절에서 쫓겨나면서 유랑인이 되고 광대집단에 합류한 것이다. 또한 많은 농민들이 지주에 토지를 잃고 유랑민이 되면서 합류하기도 하였다. 광대들은 주로 왕실이나 양반가문의 행사, 그리고 과거 급제 행사에 출연했다. 광대들은 조선후기에 수가 많아지는데 그 시기 들어 이전보다 과거 횟수가 매우 많아졌고, 지방에 시장들이 많아 짐에 따라 광대가 할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책 조선의 모멸사를 보면 일정한 패턴이 느껴진다. 조선 초기 공고했던 신분제가 법을 만들고 이끌어나간 양반층의 이익도모에 의해 무너져감에 따라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조선후기 들어 농업생산력 발달에 따른 농민의 분화 및 유랑민화, 그리고 상업의 발달로 시장과 상품에 대한 수요가 커진 것도 한몫한다. 이에 따라 백성들의 직업과 그 양상은 매우 다양해졌지만 수탈과 착취는 오히려 강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일부 농민이나 상업계층은 양반의 권력을 흔들어 놓을 만큼 성장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을 착취해온 시스템에 감히 도전할 의사나 안목을 갖지 못한다.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계층으로 사회를 변혁해나가기 보다는 기존 양반층에 돈으로 기대거나 합류하여 자신과 같은 백성들을 괴롭히는 세력으로 남게된다. 이래서 조선이 망한 것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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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8-03-01 1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었던 책이네요...급 관심 가요...

2018-03-13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18-03-13 10:14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예나 지금이나 권력은 피지배층을 최대한 짜내기만합니다 나름괜찮았다던 세종이나 영정조시기도 근본적으론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