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 카너먼 :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들 지식인마을 11
안서원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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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자신도 믿기 어렵지만 난 한때 경제학과의 학생이었다. 물론 최종선택은 내가 한 것이었지만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건 IMF라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이었다. 좀처럼 나랑 어울리지 않는 학문이었는데, 경제학과 시절 교수님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이거 였던 것 같다. 바로 '만약'이다. 가끔 '만일' 이라고 말하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도 잘 이해는 안가지만 경제학은 뭔가 그럴듯한 모델을 하나 만들어내기 위해 무수한 가정을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깔끔한 수학식으로 뭔가를 설명하기에 현실에는 계산과정에 넣어야 하는 무수한 변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수님들이 IF를 사랑하신 것은 경제학의 이런 어쩔수 없는 면 때문이었다. 만약을 통해 다른 무수한 변수를 고정시키고, 효과를 알고 싶은 변수 몇개 만을 허용하고 움직여 법칙이란 걸 만들어 내는 학문이라는게 경제학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경제학에는 문화란 문제도 있었다. 문화라는 것에 따라 사람들에게 경제학에서 매우 중요한 경제적 가치나 효용이라는 것의 개념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친화적 문화를 가졌던 아메리카 토착민에게 경제학이란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들을 경제학의 기본전제인 사유재산 개념도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다음은 바로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것인데, 인간을 마치 컴퓨터 기계처럼 철저한 이성으로 무장한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한다는 것이다. 역시 IF가 들어간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들은 이 점을 파고 들었다. 우리 인간은 합리적인 척 하지만 본질적으로 상당히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이 결정이나 선택, 의사결정, 문제해결을 하는 과정에  있어 제한된 합리성을 갖고 있거나 비합리적이라고 보았는데 이를 휴리스틱이라고 칭했다. 휴리스틱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정보처리능력과 연산능력이 완전하지 못한데서 발생한다. 외부환경에서 무수히 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지만 이를 모두 처리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며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간은 적은정보로 편향된 빠른 판단을 한다.

 휴리스틱이 생기는 두번째 이유는 인간이 정서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감정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책에 등장한 예로 카드 게임이 있는데 한 종류의 카드는 뒤집었을시 그 결과가 이득과 손실에서 위험성이 높은 리스크가 강한 카드였으며 다른 한 종류의 카드는 반대로 리스크가 낮은 것이었다. 참가자들은 초기 두 카드의 특성을 모르고 별 긴장없이 뒤짚었으나, 곧 특성을 파악하고는 리스크가 높은 카드의 경우 회피하거나 긴장하며 뒤집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감정부분을 다루는 뇌가 손상된 환자의 경우 위 게임에 참여했을때 리스크가 높은 카드와 낮은 카드에 대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인간이 판단및 문제해결에 있어 위와 같은 경향성을 갖게 된 것은 진화상 매우 당연한 일이다. 모든 외부 정보를 연산하여 최대한의 효율적 판단을 할만큼 두뇌가 커지는 형태로 진화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이며, 설사 그게 가능하더라도 외부환경이 그리 오래 시뮬레이션을 하도록 허용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생물은 행동을 함에 있어 목적을 갖고 가치 지향적으로 외부의 것에 대응하는데 이는 그렇게 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생존에 유리한 경험을 주는 외부대상에는 쾌의 감정이 반대의 것은 불쾌의 감정이 쌓이며 이러한 경험이 향후 판단에 영향을 주는 것은 진화상 지극히 유익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이먼과 카너먼은 이러한 휴리스틱에 대하여 거의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었지만 사이먼은 마치 진화론자의 용어처럼 이것을 적응적인 것으로 보아 제한된 합리성으로 비교적 효율적인 문제해결을 할수 있게끔하는 좋은 기능으로 파악하였으며 카너먼은 반대로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보았다. 둘다 맞는 말이다. 

 카너먼은 인간의 판단과정이 두 가지의 형태라고 보았는데 시스템1과 시스템2이다. 시스템1은 빠르고 자동적이며 정신적 노력을 요하지 않는 대신 통제나 수정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반면 시스템2는 느리고 계열적이나 정신적 노력을 요하고 의도대로 통제되며 융통성있고 규칙을 따르는 것이다. 다른 학자들도 용어만 다를뿐 거의 비슷한 구분을 했는데 시스템 1,2보다는 다른 학자가 말한 직관과 분석이 사실 개인적로 더 직관적으로 와 닿는다. 

 카너먼의 판단과정중 휴리스틱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시스템1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2라고 해서 휴리스틱에서 완전히 벗어날수는 없겠지만 휴리스틱에서 벗어나 보다 합리적 결과를 도출할수 있는 과정을 기대할수 있다. 어려운 수학문제가 나타났을때 문제를 읽고 순간적으로 답을 내놓는 것은 1일 것이며 오랜 고민과 계산과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은 2가 될것이다.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시스템 1을 먼저 만들어내고 점차 2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을 것인데,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2의 발달이 더욱 촉진되고 리처드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처럼 시스템 2를 구현하기 위한 갖가지 도구가 생존기계를 뚫고 나왔을 것이다. 인류의 여러가지 계산도구나 가장 최종 버전인 컴퓨터가 그것일 것이다.

 책은 행동경제학의 기반학문부터 출현 배경, 그리고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인 사이먼과 카너먼의 이론을 간략하게 잘 소개한다. 읽으면서 행동경제학이 인간 본성을 무시한 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 심리학 부분에서 출발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인간이 그러한 본성을 어떻게 해서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학문이 진화론이라는 점에서 행동경제학과 진화론간에 협업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지식인 마을 시리즈의 좋은 점이면서 나쁜점인 것처럼 입문서이다보니, 매우 친절하지만 역시 방대한 내용을 압축할수 밖에 없다보니 따라가기 좀 어려운 면도 있다. 이 책도 상당히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볼때마다 훌륭한 기획이었다는 생각이다. 시리즈가 나온지 이미 10년인데 새로운 지식인 마을 버전이 나올때도 되지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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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12-14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문에서 만약...은 경제학뿐만 아닌 것 같습니다. ^^

닷슈 2017-12-14 20:34   좋아요 1 | URL
옳은 말씀입니다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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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를 보던 영화를 보던 이렇게 주인공이나 핵심인물의 나이가 어느덧 내 나이보다 아래거나 비슷하면 기분이 묘하게 착잡해진다. 이렇게 다루어 질 정도면 사회에서 꽤나 나이가 들었단 말인데, 나도 그렇겠구나 라는 심정이 들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 주는 처음 느낌은 그러했다.

 책은 한국사회에서 그리 예전도 아닌 80년대 초반에 태어나 자란 평범한 여성이, 자신의 성 때문에 겪는 여러가지 차별과 부조리가 담겨져 있다. 다 읽고 나니 느낀건 성차별이 이정도였나라는 마음과 아래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였다. 이게 가능했던건 책이 매우 화가나는 사안에 대해서 정말 무덤덤하게 다루면서 더욱 끓게 만들고, 김지영씨란 사람이 정말 흔한 그 이름처럼 내 주변 누군가이것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책에서 다루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한 지극히 평범한 한국 여성이 당한 성차별이 나에게 예상보다 새로웠던 것은 내 삶이  성차별 부분에 있어 단순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김지영과 비슷한 시기에 서울의 변두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여성과 남성이 내삶에서 특별히 다르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집에는 여자형제가 없었고, 어머니 역시 직장생활을 하며 살림도 담당했지만 우리아버지가 워낙 가사분담을 잘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김지영씨의 어머니도 그랬듯 당시엔 그런건 당연한 것이었다. 

 학교의 여자친구들이 특별한 존재로 슬슬 느껴질 무렵, 이런걸 잘 간파한 어른들은 묘하게 남여공학임에도 이 시점에 남여반을 분리했다. 그래서 내가 처음 남여를 다르게 느끼게 된 건 여성의 특별함보단 남성의 특별함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폭력성이다. 묘하게도 작년만해도 남여합반상태에서 조용하던 남자아이들이 일년만에 상당히 폭력적으로 변모했다. 호르몬의 변화일까, 아니면 짐승 같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사라져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수컷들끼리 모이니 새삼 동물스럽게 서열정리라도 필요해서 였을까

 하여튼 남고로 진학 후, 이런 폭력성은 더욱 심해졌고, 급기야 대학진학시점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여성이 이성적으로 남성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갖게되었다. 이 생각은 대학진학후 거의 확신처럼 굳어졌는데, 하필이면 진학학과가 남성중심의 경제학과였기 때문. 희한하게도 동기녀석들은 이상스레 어린나이임에도 하이에나 마냥 장차커서 돈벌궁리만 하고 있었다. 당시 나에겐 이 것은 폭력 및 서열정리의 고급버전 정도로만 보일 뿐이었다.

 답답한 학과생활에 들어간 곳이 교내 신문사. 여자 선배들이 많았다. 동아리가 신문사이다 보니 지적으로 세련되고, 심지어 운이 좋아서인지 대부분 아름다웠다. 역시 여성이 확실히 났구나. 라는 생각이 콘크리트처럼 굳어질 무렵 군대를 갔다. 군대야말로 남성을 가장 남성스럽게 만드는 곳이기에 여성이 남성보다 이성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은 이젠 강철수준까지 변모하였다. 

 그러다 다른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이곳은 여성이 다수인 곳이었다. 드디어 남성들에게서 해방이란 생각으로 상당한 기대를 하고 갔건만 희망은 오래지 않았다. 대학내 여성들이 오랜 나의 편견과는 다르게 상당히 이기적이고 보신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믿었던 여성들에게 마져 다소 실망을 하게 되니 이젠 남성들이 예전보다 났게 보였고, 사고 방식이 상당히 남여중심적으로 변모해갔다. 

 졸업후 취직한 직장 역시 그들이 그대로 모이는 곳이었기에 이런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직장은 여성이 다수인 곳이고 급여 및 대우에 있어 거의 모든 것이 완전히 남여평등적인 곳이다. 이렇게 삶이 입체적이지 못하고 편평하기에 김지영 같은 삶은 내게는 마치 다른 나라의 삶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아내에게 넘겼는데, 후딱 다 읽고나서 아내 역시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괜스레 죄진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나에겐 아무소리도 안했다는 것. 내가 생각보다 양성평등적인 남편이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알라딘 달려라 책 이벤트로 받은 것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넘긴 것인데, 아내에게 다음엔누구에게 넘길 것이냐고 물어보니 직장 상사에게 드린다고 한다. 왜냐고 물으니 최근 그분이 성차별은 아니지만 부당한 요구에 대해 제대로 항의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히는 모습이 안타까워서란다. 이런 좋은 책 달리기가 계속 잘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뭔가 바뀔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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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0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0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17-12-11 11:5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건담과 일본
타네 키요시 지음, 주재명 외 옮김 / 워크라이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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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우연히 검색하다 제목만 보고 바로 구매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담과 그것이 탄생한 고향인 문제많은 일본이라니. 이보다 더한 궁합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읽지도 않은 '국화와 칼'이 떠올랐는데 정말 웃긴일이다. 웬지 비슷할것 같았다. 

 일본은 유난히 로봇만화가 많은데, 이 로봇이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전투로봇이고 상대편들은 항상 지구침략자들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전쟁만화가 될수 밖에 없는데 로봇을 위해 전쟁만화를 만든것인지 전쟁만화를 만들기 위해 로봇을 만든건지는 알수 없는 노릇이다. 아마 둘다일지도.

 이 책에서 말하는 건담은 '기동전사 건담'으로 워낙 오늘날까지 건담시리즈가 많은 지라 '퍼스트 건담'으로 칭하기도 한다. 건담시리즈의 시초인데 무려 1979년 작이다. 이 작품은 이전에 일본에 많았던 수퍼로봇과 구분하여 리얼 로봇계열의 만화로 구분하는데 상당히 모순적 표현이다.

 건담에 등장하는 무기들이나 기술수준, 그리고 이족 보행로봇이란것들 자체가 이미 현대과학의 수준에서 봤을때 리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담이전의 일본만화에 등장하는 마징가z 같은 수퍼로봇들이 무수한 적의 공격에도 쉽사리 파괴되지 않고 압도적 강함을 자랑하며 그 과학수준이 더욱 넘사벽인걸 감안하면, 전쟁상황에서 적의 제대로 된 일격이면 파괴되는 건담의 로봇들은 확실히 진짜 전쟁느낌이 나며 리얼하긴하다. 

 

[퍼스터건담 1회의 장면, 출처: 네이버 블로그]

  

 건담의 세계관은 대충 이렇다. 먼 미래에 지구상의 인간의 수가 너무 많아져 그 수용한계를 넘어서게된다. 인류는 자구책으로 지구 궤도 근처에 거대한 인공구조물을 만들고 이를 콜로니라 칭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콜로니로 이주시켰는데 이 시대부터를 우주세기라고 새로 연호를 만들었다. 퍼스트 건담의 시기는 우주세기0079년이다. 이 콜로니가 제법 모이면 사이드란 명칭을 붙였는데, 지구궤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으면서 가장 오래된 콜로니인 사이드3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계층들이 우주로의 이민을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오랜 우주생활에 적응한 이들은 스스로를 지구인과 구분하여 자신들을 스페이스 노이드로 명하며 지구연방으로부터의 자유를 원하게 된다. 마치 영국으로 부터 독립하려고 한 초창기 미국같다. 이런 사상적 이론을 제시한 사람이 지온 다이쿰이며 그의 이름을 따 사이드 3는 지구연방으로 독립을 선언하며 자신들을 지온공국으로 칭한다. 지온다이쿰은 지구연방으로부터 콜로니 사람들의 평등과 자유를 원했는데, 이 지온 다이쿰은 야심가이자 동료였던 데긴 자비에 의해 암살되며 데긴 자비는 그의 권력을 가로채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며 전쟁을 일으키는 독재국가를 만들어낸다. 데긴의 아들 기렌 자비는 지구와 콜로니들을 신인류인 스페이스 노이드가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는데, 자유와 평등에서 나아가도 한참 더 나아간다. 

 우주공간의 지온 공국은 당연히 국력및 자원면에서 지구연방에 크게 절대열세였는데 인간형 로봇 병기인 자쿠를 개발하고, 상대편의 레이더를 교란하는 미노프스키 입자란 신기술로 초반 전황에서 승승장구한다. 대부분의 우주궤도 사이드와 기지를 석권했으며, 지구에도 상륙해 유럽과, 북미대륙등을 점령한다. 이 과정에서 거대한 콜로니를 지구에 떨어뜨리는 야만적 공격도 서슴치 않았으며 이로 인해 개전 10일정도만에 전체인류의 무려 절반이 죽어나가게 된다.

 퍼스트건담은 이런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구연방이 지온의 자쿠를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낸 초병기이다. 사이드7에서 이 작전이 지온에 발각되고 아무로 레이를 비롯한 민간인들이 이에 휘둘리며 전쟁에 참가하게되 1년여의 활약끝에 결국 지온이 항복하는 과정까지가 퍼스트 건담의 내용이다. 퍼스트 건담에는 지온 다이쿰과 그의 아들이 샤아의 이야기가 잘 나오질 않는데 최근에 현대적으로 퍼스트 건담을 다시 다룬 '건담 디 오리진'에서 이를 자세히 알 수 있다.


  

  [건담 디 오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어릴적엔 당시가 냉전시대였던 만큼 지구연방과 지온은 내게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대결처럼 보였다. 스타워즈의 제국군이 공산국가, 반란군이 자유주의 진영처럼 느껴졌듯이 말이다. 실제로 지온쪽은 군인들의 복장이나 유닛 색상들이 전체적으로 녹색에 붉은 색 계열이 많아 뭔가 전체주의적이고 독재적인 느낌을 준다. 반면 연방쪽은 전투 유닉과 군인 복장이 주로 흰색이나 푸른색등 자유주의 진영의 느낌이었다. 책을 보니 지온쪽의 유닛과 군인은 독일군의 느낌이 나게끔 묘사했다고 한다.

 차별을 피해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우는 지온진영이 오히려 반대의 느낌이 나니 아이러니다. 거기에 만화의 주인공인 아무로 레이와 건담 진영은 지구연방쪽이다. 이상하기도 많이 이상하다. 책은 이런 지온의 이중성을 과거 2차대전시기의 일본의 이중성의 투영이라고 본다. 당시 일본은 서구 유럽국가들을 추격하면서 그들과 동등한 일원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여러전쟁에서의 승리와 무수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러하지 못했고, 그 결과 심지어 다시 아시아로 회귀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아시아 공영권이란 말이 나오게 된다. 서구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일본이 중심이 되어 지켜나가자는 것인데, 상황에 따라 철저히 자신들이 중심에 있고, 이를 위해 때론 서구와 아시아를 오가며 이용하는 모습이 상당히 모순적이다.  

 저자는 이런 과거 일본의 모순된 모습이 지구로부터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그 국가체제가 독재이며 결국 스스로가 인류전체의 지배자가 되고자 하는 지온의 모습에 투영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기에 건담에서 지온은 그 충분한 독립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지온은 전쟁 방법에 있어서도 상당히 잔인한데, 지구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콜로니를 추락시킨 작전과, 저항하는 콜로니에 독가스를 주입한 작전, 전쟁 말미 위기에 처하자 아군까지 상당수 희생시키는 거대 빔병기를 쓴 작전들이 그러하다. 이런 다소 비겁하면서도 비인륜적인 작전은 일본군이 2차대전때 수행했던 많은 작전과 수단들을 연상시키는데, 일본이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며 그러한 비인권적 방법을 수행한 것은 역시 모순이다. 

 책은 이외에도 퍼스트 건담의 주요인물인 샤아를 일본의 주요 정치인의 삶과 비교하거나 심지어 건담의 제작자와도 비교하기도 한다. 또한 전쟁병기인 지온의 자쿠와 일본의 제로센, 그리고 지구연방과 2차대전 당시의 연합군을 비교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약간 그럴듯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어느정도 자의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좀더 전문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이 다소 아쉬운 대목이었다. 

 만화 역시 하나의 문화인 만큼 탄생한 국가의 사회와 문화,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게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전후 일본에서 등장한 무수한 로봇전쟁만화는 2차대전에 대한 일본사회의 하나의 반응일 수 밖에 없다. 이런 부분을 전체적으로 날카롭게 꿰어낸 책이 하나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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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8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12-16 0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패전 후 전투기 만들던 엔진을 처리하기 어려워 그 기술과 부품이 오토바이쪽으로 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일본 오토바이 산업이 잘 나갔다죠. 그쪽 잘 몰라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지진 등 지질학적 영향으로 일본은 아시아 공영권 개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고 봐요. 아시아권 내에서 가장 서구문물을 잘 활용한 자신들의 능력에 자부심도 섞여 있었을 테고요. 아무튼 복잡하죠.

닷슈 2017-12-16 13:39   좋아요 0 | URL
훌륭한 말씀감사합니다
 
버려진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 모두가 쉬쉬하던 똥 이야기 사소한 이야기
리처드 존스 지음, 소슬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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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인간이 똥에 대해 보이는 반응은 상당한 거부감과 혐오감이다. 이런 혐오감은 진화적으로 매우 유익했기에 생겨난 것인데 똥에는 엄청난 박테리아들이 서식하는데다가 기생충까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똥을 혐오하는 것은 인간의 생존에 지극히 유익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똥을 비교적 혐오하는 이유다.

 하지만 지구의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 동물 전체를 보고 굳이 호불호를 가린다면 오히려 똥은 선호에 가까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똥떵어리가 갖는 하나의 엄청난 매력 덕분인데 바로 똥이 영양분 덩어리라는 점이다. 그 오랜 진화와 상상초월의 방법들에도 불구하고 동물들의 소화능력은 아직 다른 이웃들을 식량으로 삼아 다시 자신의 몸과 에너지로 재구성하는데 익숙치 않다. 그러기에 똥에는 아직 본래 에너지의 70-80%가량이 잔존해있다. 충분히 노려볼만 한 것이다. 

 책 '버려진 것은 어디로 가는가'에는 이런 똥을 식량이자, 새끼의 둥지, 자신의 짝짓기 장소, 혹은  삶의 터전, 그리고 그것도 아니면 먹을 것들이 많이 모이는 사냥터로 삼는 녀석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장 똥을 사랑하는 녀석들은 주로 절지동물들인데 똥딱정벌레, 파리들, 거기에 어울리지 않게 나비까지 있다. 


1. 여러 초식동물들의 똥

 우선 책은 현 지구상의 주요 똥 공급원들의 똥의 특징에 대해 언급한다. 가장 대표적인게 소인데 소똥은 수분이 75%정도로 사람의 대변과 거의 수분함량이 유사하다. 그럼에도 소의 섬유질 소화능력이 워낙 강해 변에 섬유질이 거의 남지 않다보니 형태가 잘 유지되지 않고 물처럼 쏟아져 나오며 이후에도 약간의 덩어리진 웅덩이 같은 느낌을 준다.

 다음은 말의 변이다. 말은 소정도의 섬유질 소화능력을 갖추지 못해 변이 덩어리져 나온다. 수분함량은 소와 비슷함에도 말이다. 말은 소와 달리 되새김질도 없고 소화능력도 떨어지다 보니 이를 보충하기 위해 소보다 풀을 믾이 뜯게 된다.

 다음은 양의 변인데 양은 건조지역에서 진화한 동물이다 보니 몸의 수분 유지를 위해 상대적으로 건조한 65%수분 함량의 변을 만든다. 이 같은 변은 배변시 몸에 변이 묻지 않아 위생적이고 다리에 구더기등이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

 마지막은 토끼인데 이 녀석들은 소장과 대장 사이의 맹장에서 섬유질을 흡수한다. 하지만 맹장의 크기가 충분치 않다보니 영양소 흡수가 부족해 토끼는 자신이 초변을 배변과 동시에 바로 입으로 흡수해 재소화한다. 우리가 보는 소위 토끼똥은 이미 초변이 아닌 재변인 셈이다.(집에서 키우는 토끼에 함부로 뽀뽀하지 말자.)


2. 사람의 대변이 갈색인 이유는?

우린 우리 자신들의 대변이 갈색이다보니 당연히 변에 대해 그런 느낌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동물들의 똥은 파란색에서 초록색, 흰색까지 그야말로 총천연색이다. 가끔 봉변을 당하는 새똥만해도 흰색에 검은색이지 않은가. 사람의 대변이 갈색인 이유는 소화과정에서 밝혀진다. 사람의 소화과정에서 음식물은 위를 지난 후 소장에 들어가면서 쓸개즙에 노출된다. 쓸개즙의 역할은 녹지 않는 지방덩어리를 잘게 부수어 동그란 덩어리의 유화액을 형성하는 것인데 이 쓸개즙은 노란색이다.

 그 이유는 오래된 적혈구가 간에서 파괴되는 과정에서 헤모글로빈에서 빌리루빈이란 노란 물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화기관에서 이 빌리루빈은 스테르코빌린이라는 짙은 갈색의 물질로 변화하는데 이 색이 우리의 똥색이다. 이 어두운 갈색 색소로 인해 포유류의 똥색은 우리가 아는 똥색이 되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는 사향고향이의 변을 이용한 루왁커피에 대한 설명도 짧게 나온다. 18-19세기 자바, 수마트라 섬 등지에서는 커피재배가 이루어졌는데 당시 커피가 워낙 고가의 사치품이다 보니 정작 일을 하는 인부들에게 커피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당시 그 지역엔 야생 사향고양이드링 제법 있었는데 이 녀석들이 간혹 커피를 따먹은 모양이다. 커피는 사향고양이의 몸속에서 제대로 소화되진 않았지만 커피의 단백질이 변성되어 기존에 쓴맛은 사라지고 은은한 향이나게 되었다. 커피에 굶주린 인부들이 먹기 시작한 고양이 똥 속의 커피가 지금의 루왁커피다. 워낙 귀해 kg당 700$선이라고 한다. 이러니 인간이 사향고향이, 그리고 코끼리한테까지 커피를 강제로 먹이는 짓을 하는 것이다. 


3. 똥딱정벌레의 진화

명확하진 않지만 학자들은 똥딱정벌레의 이름에 똥이 붙게된 시점을 6천만년정도 전으로 본다. 이 시기는 공룡의 시대가 끝나고 포유류의 시대가 도래하는 시점이다. 풀의 등장과 이의 섭취를 통해 초식포유류는 충분한 영양을 갖추고 딱정벌레가 좋아할만한 성분과 독성이 적은 똥을 생산하게 되었으며 똥딱정벌레는 이에 걸맞추어 공진화했다는 것이다.

 물론 공룡시대에도 딱정벌레가 진화했을 거란 의견도 있긴하다. 하지만 현대의 똥딱정벌레들이 파충류와 조류의 똥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소 의견이 분분하다. 조류와 파충류는 포유류와는 달리 소변과 대변을 구분하지 않고 배설강이란 곳에서 똥을 만들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독성물질인 암모니아, 인산염, 탄산등의 물질이 생기게 되며 똥딱정벌레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 초식공룡의 경우 거대한 섬유질이 가득한 똥을 만들었을게 분명하며 이것은 덩어리졌을 것이고 똥딱정벌레에게 큰 요기거리였을 것이다. 또한 겉씨식물에서 속씨식물로 식물이 진화하며 이들 초식공룡들은 더 높은 영양분을 얻었을 터인데, 이는 그들의 똥 역시 더욱 영양가가 있어질 거란 의미다. 똥딱정벌레가 이를 높치지 않았을 거란것이 학자들의 의견이다. 


4. 똥과 똥딱정벌레

 똥이 들판에 나타나면 가까운 시간내에 이 향기를 맡고 똥딱정벌레를 비롯한 여러동물들이 몰려온다. 똥딱정벌레는 후각기관이 따로 없고 더듬이로 냄새를 맡는데 그 감각의 정도가 10억분의 1수준을 탐지하는 정도다. 이들의 감각기관이 이리도 민감한 것은 서둘러야 하기 때문인데 막 생성된 촉촉한 똥은 곧 마르기 시작하고 냄새또한 사라지기 때문이다. 똥이 마르면 이를 섭취하는데 큰 장애가 생기며 냄새가 사리자면 똥 자체를 찾지 못하게 된다. 

 똥이 촉촉할때 모인 동물들은 영양분이 가득하고 박테리아 건더기 까지 가득한 이 똥즙을 빨아먹는다. 똥 딱정벌레는 물론, 똥파리 거기에 아름다운 몇몇 나비종까지 이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 그리고 몇몇 포식자들은 이 똥의 유혹에 빠진 이들을 사냥한다.

 똥딱정벌레는 똥을 잘게 잘라 둥글둥글한 경단을 만드는데 이러한 경단은 자신들의 자식을 위한 것이다. 똥딱정벌레는 경단을 만들자마자 종에 따라 똥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전략을 택하기도 하며 땅으로 굴을 파서 경단을 옮기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식량인 똥을 경쟁자들로부터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함이다. 

 똥딱정벌레는 수컷의 경우 뿔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덩치가 크다고 해서 뿔도 큰 것은 아니란점이 독특하다.  애벌레에서 성체로 변태할 시기에 애벌레는 뿔의 크기를 결정하게 된다. 이는 자원배분의 한계때문인데 큰 뿔을 갖게 될 경우 상대적으로 뿔이 머리에 위치하는 종의 경우 눈과 더듬이가 작아지며, 가슴에 위치하는 경우는 작은 고환과 날개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뿔을 없애거나 작게하면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큰 뿔을 갖으면 똥자원의 확보 및 암컷차지의 용이성으로 똥자원의 탐색과 강한 생식력이 부족한 점을 보충한다. 반대로 뿔이없다면 똥자원과 암컷차지의 확보에서 밀리게 되지만 뛰어난 똥 탐색능력과 잦은 교미로 이를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미묘한 전략을 똥딱정벌레는 번데기시절 선택해야 한다. 이는 애벌레시절 환경압박에 따른 후성유전학의 결과가 아닐런지.

 똥딱정벌레는 대량의 알을 낳아 새끼를 대량으로 번식하는 다른 곤충들과는 다르게 적은 새끼를 낳아 심지어 양육한다. 이는 이들이 똥을 경단으로 만들고 둥지까지 짓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끼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한다는 것은 새끼를 소수정예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똥딱정벌레는 경단하나에 대개 알하나를 낳는데, 이 알은 경단안에서부터 똥을 먹어치우고 자라나며 마지막엔 거의 껍데기만 남은 경단을 부수고 나온다. 이 안에서 자기 똥까지 먹었음이 분명하다. 

 

5. 만약에 똥딱정벌레가 없었다면

가장 대표적인 똥인 소똥의 붕괴시간은 천차만별이다. 생물학적으로 활발한 아프리카 사바나에선 20kg짜리 코끼리 똥마져 2-3시간 내에 사라지는 반면, 추운 캐나다에선 소똥이 처리되는데 무려 1년의 시간이 걸린다. 이는 모두 똥딱정벌레와 똥을 먹는 동물들로 인해 가능한 일인데, 이들이 없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호주다. 

 호주는 오랜 격리의 역사로 개척시기에 이민자들이 함부로 도입한 생물종으로 오늘날까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소 역시 마찬가지 였는데, 소의 문제라기 보단 바로 소똥문제였다. 유럽에선 쌓다하면 조만간 사라졌던 똥이 호주에선 이상하게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는 호주가 오래 따로 격리되 생물군이 진화하다보니 호주의 딱정벌레가 건조형 똥에 맞춰졌기 때문이었다. 

 캥거루를 포함한 호주의 유대류들은 이미 구대륙은 거의 없는 상황이었으며 이들의 똥은 건조 기후에 적응한 결과 매우 수분함량이 낮고 단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똥에 적응한 호주의 오리지널 똥딱정벌레에게 소의 설사와도 갖은 똥은 처치불능이었다. 

 소의 똥양은 생각보다 엄청나서 고작 5마리가 연간 1에이커의 토지를 오염시켰고, 매년 소똥으로 인해 2000km2 의 목초지가 오염되었다. 이 때문에 호주정보는 조심스레 구대륙의 똥딱정벌레의 도입을 시작했고, 오늘날엔 성공적으로 도입종의 54%생존하여 정착하였다. 이들은 4가지 역할을 하였는데 소똥을 제거하였고, 영양분을 순환시켜 풀의 성장을 도왔고, 이는 자연스레 소와 우유의 생산을 증가시켰다. 또한 소가 자신의 변을 다시 먹을 경우 기생충에 재감염되는데 똥을 처리하여 이를 줄이고, 똥을 매개로 번식하는 덤불파리의 개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책은 똥을 통한 공진화를 다루고 있으며 매우 흥미로웠다. 책의 뒤 100쪽 정도는 여러 동물의 똥의 모양과 특징, 그리고 똥을 매개로 살아가는 동물들에 대한 도감이 수록되어 있어 볼거리 역시 많다. 주로 초식동물의 똥에 대하여 다루었는데 육식동물의 똥을 매개로 살아가는 생태계 역시 다루면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다. 책의 원제는 'call of nature'인데 아무 생각없이 직역하면 자연의 부름이다. 도무지 한국제목과 연상이 안이루어져 찾아보니 call of nature는 똥이 마렵다는 뜻을 돌려 말한 것이었다. 영어로 I answer the call of nature 라고 말하면 화장실 가고 싶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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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진화론과 관련한 생명과학 책을 간혹 보는 편인데 책마다 항상 거론하는 인물이 있다. 다윈이다. 그리고 다윈엔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제법 언급되는 사람이 리처드 도킨스다. 그리고 그 인물보다 더 자주 거론되는 단어는 리처드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다. 이리 언급이 되니 책 '이기적 유전자'는 항상 마음의 짐이었다. 봐야지 봐야지 하는데 막상 무서워서 겁나는 책. 그리고 실제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거의 15년정도 전에 감히 보려고 도전했다 포기하고 접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막상 원전의 공포로 인해 그것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주변책만 엄청나게 보곤 한다. 대표적인게 '자본론'이 아닐런지. 나도 당연히 그런 부류인데, 적절한 타의로 인해 이 책을 마침내 보게 되었다. 

 1970년대에 나와 고작 40년정도의 역사를 가진 이 책을 감히 고전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난 솔직히 고전이라 생각한다. 고전이란 오랜 역사동안 살아남은 생명력과 후대에 강한 파급력을 가진 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40년이란 긴 역사란 많은 논란을 제공한 시각과 밈이란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덕에 마땅히 그 범주에 들어간다고 본다. 


1. 자기 복제자의 탄생 

 책은 우선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탄생부터 시작한다. 늘 말하듯 무척이나 결핍된 지구지만 생물이 없을 땐 뭐든지 나름 풍요로웠다. 자연계의 원자들은 상황에 따라 불안정하기도 안정하기도 한데, 당연히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고,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도킨스는 최초의 자연선택은 안정한 원자들이 선택되고 불안정한 것은 배제된 것이었을 것으로 본다. 안정된 무리들이 차츰 결합해 제법 커졌고, 어쩌다 보니 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능력을 가진 녀석들이 등장했다. 이미 만들어진걸 복제하다보니 계속 새로 시작하는 녀석들보다 훨씬 바르게 수가 증가했다. 

 그리고 자기 복제자들끼리의 경쟁이 시작되어 안정성이 더욱 높은 녀석들이 자연선택되었고,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슬슬 결핍환경이 다가오니 경쟁복제자의 구조를 파괴하는 화학적 물질을 어쩌다 양산하여 그들의 구성요소를 자기복제에 활용하는 원시적 포식능력 까지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방어하는 입장에선 화학적 방어막이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단백질 벽을 구축하는 군비경쟁을 벌이게 되는데 도킨스는 이것이 최초의 살아있는 세포의 탄생일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2. 이기적 유전자와 생존기계

도킨스는 이런 자기복제자를 이기적 유전자라고 부른다. 도킨스는 자연선택의 단위는 앞서말한 것처럼 시작부터 이들이었으며 지금도 이들 유전자 수준이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이 유전자들은 자신들의 무한한 복제를 위해 여럿이 뭉쳐 서로 협력하여 생존기계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생존기계란 바로 지구상의 DNA를 가진 모든 생물을 말한다. 도킨스는 책 내내 동물이나 식물, 생물이란 표현보다는 압도적으로 생존기계란 용어를 고집한다. 자기 복제자들은 이 생존기계의 구축이란 방식으로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번영해왔는데 진화한 자신의 가장 최근 버전으로 이 생존기계의 몸과 마음을 구축한다. 

 여기서 약간 문제가 발생하는데 자기복제자들은 도킨스의 비유를 들자면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램의 구동방식을 설계해서 짜지만 이후에는 몸안에만 갇혀 아무것도 할수 없게되므로  실제 프로그램인 생존기계들은 이후 상황에 따라 시행착오를 거치며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따라서 자기복제자들은 하는수 없이 이 생존기계들에게 기억과 의식이라는 프로그램을 짜넣는다. 기억을 통해서 생존기계는 무엇을 하는게 생존에 이득이고 무엇을 하지 않는게 생존에 불리한지를 학습해 나가며 기계안의 유전자들을 보호하고 복제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마치 독이 있는 풀을 매번 먹어보고 결정하는 무식한 방법은 한계가 있기에 자기복제자들은 목적성을 갖는 의식을 부여한다. 이 의식을 통해 고도로 발달한 생존기계들은 기억에만 의존해 직접 문제를 시행착오를 거쳐 해결해나가는 방식보다는 시뮬레이션 방식을 통해 문제를 사전에 점검하고 해결해나간다.

 이런 시뮬레이션 시행을 위해서는 고도로 발달한 뇌가 필요하며 그 정점에 속한 인간은 적어도 다른 생존기계들과는 다르게 감히 자신들의 궁극적 주인인 유전자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될 정도로 발달한다. 도킨스가 말한 것처럼 자위를 하거나 아이를 감히 낳지 않는 생존기계의 행동과 의식을 분명 유전자의 의도 밖의 것이었을 것이다.  


3. 이타성의 발달

책 제목과는 다르게 도킨스는 책의 상당부분을 이타성을 위해 할애한다. 이타성은 기본적으로 유전적 근연도를 갖는 혈연집단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만을 생각하기에 유전적 근연도가 있는 혈연집단의 다른 생존기계에 대해 이타성을 발휘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화는 당연히 초기부터 주변의 다른 경쟁복제자들과의 관계에서 시작했기에 그들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공진화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타성을 유전적 근연도가 부족한 집단과도 상당히 일찍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도킨스는 유전적 근연도를 갖는 혈연집단에서 이타성이 발휘되는 조건으로 당연히 서로간의 유전적 근연도와 상대방의 기대수명, 근연도의 확실함을 꼽는다. 유전적 근연도는 당연한 전제조건이며 아무리 근연도가 높아도 상대방의 수명이 내일모래라면 그들을 위한 이타성은 낭비가 된다. 또한 근연도의 확실함 역시 필수적이다. 이타성엔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쓰이기 때문이다.

 이타성을 발달하여 어느덧 근연도가 낮은 다른 개체로도 향한다. 이런 호혜적 관계가 서로 즉각 주고 받는 경우라면 상관이 없지만 실제 자연세계에서 즉각적 주고 받기는 거의 이루어질수 없다. 당연히 호혜적 관계는 지연성이 되는데 이런일이 발생하면 소위 말하는 '먹튀' 배신자가 나타난다. 즉 도움만 받고 자신은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연성 호혜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런 배신자를 식별하고 응징하기 위해 서로를 개체로서 식별하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지연성 호혜주의는 이런 능력을 갖춘 종에서만 발달한다.

 도킨스는 이타성의 발달이 이기적 유전자 입장에서 이득이라는 점을 보이기 위해 그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제시한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서로 협력하면 대충 3점 정도를 얻게 되며 양자중 하나가 배신하면 배신자만이 5점 정도의 큰 점수를 얻고 속은 자는 마이너스의 점수를 얻게 된다. 또한 둘다 배신하면 당연히 둘다 마이너스의 점수를 얻게 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이 단 한번만 이루어진다면 어떤 경우든 당연히 배신하는 쪽이 가장 이득이 크다. 하지만 게임이 계속된다면 배신은 무의미해진다. 따라서 당연히 협력이 생존가능성을 높이므로 그러한 방향으로 전환이 되는데 도킨스는 여러전략을 사용한 시뮬레이션 결과 마음씨 좋고 관대하면서도 분개할줄 아는 전략이 가장 높은 점수를 얻게 됨을 보여준다.

 즉, 초기에 협력적으로 나가다가 상대방의 배신을 발견하면 응징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라는 것이다. 물론 응징은 서로간의 영원한 복수를 부르므로 적절한 응징후 다시 협력적 관계 회복을 위해 관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인데 이건 한두번 정도로 족하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는 개체군의 대부분 구성원이 일단 그 전략을 선택하면 다른 대체전략이 좀처럼 그 전략의 효용성을 능가할 수 없다는 전략이다. 즉, 초기에 이타성을 갖춘 전략이 환경의 불리함에도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이 되면 이는 곧 일반적인 전략이 된다는 셈이다. 이는 자연계의 상당수 생존기계들이 이타성을 그들의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잘 뒷받침하는 나름의 근거가 된다.


4. 성의 분화

생존기계들 중 수컷과 암컷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도킨스는 생식세포가 그 수가 매우 많고 작은 것이 수컷이고 그 반대 성향을 가진 것을 암컷으로 제시한다. 최초에는 성구분이 없는 동형배우자끼리 상호간에 접합으로 번식이 이루어졌는데 한 동형배우자가 어느날 양분을 더 많이 갖고 덩치를 키우자 자녀 발생에 유리해졌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자 동형배우자들은 경쟁적으로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난자의 시작이다. 또한 이런 난자를 겨냥하여 이들의 영양분을 착취하고 자신의 유전자만을 결합시키고자하여 영양분을 몽땅 털어내고 운동성만을 갖는 동형배우자가 탄생했는데 이것이 정자의 탄생이다.

 이런 성향의 차이로 인해 기본적으로 암컷은 자식부양에 많은 투자를 하고 이로 인해 상대방의 선택에 상당히 신중해지는 경향을 갖게 된다. 반면 수컷은 자식부양을 거의 하지 않고 상대방의 선택에 당연히 신중하지 않고 많은 상대방을 만나고자 하는 성향을 갖게 된다.

 때문에 상당수의 암컷들은 자식부양에 대한 착취를 피하고자 가정적이고 성실한 수컷을 고르는 전략을 수립하게 되는데 생존기계들중 일부는 이를 위해 오랫동안 접촉을 거부하고 수줍어하는 행동을 보이거나, 둥지를 짓게하는등의 에너지를 쓰게하는 행위, 먹이를 요구하는 행위등을 전략으로 구사한다.

 재밌는 부분은 포유류, 파충류, 조류는 대개 헌신적 수컷이 극도로 부족한 반면 어류에 있어서는 가시고기처럼 상당히 헌신적인 수컷들이 많은 편이라는 점이다. 이는 수정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하는데 전자들은 암컷의 체내수정을 통해 번식하며 수컷이 정자를 뿌린후 암컷이 자식을 가진상태에서 먼저 달아나는게 가능하다. 하지만 어류는 물속에서 암컷의 난자와 수컷의 정자가 방사를 통해서 번식하는데 암컷의 난자는 영양분으로 무거워 물속에서 어느정도 시간동안 고착이 가능한 반면 수컷의 정자는 바로 물속으로 흩어진다. 때문에 입장은 정확히 반대가 된다. 수정을 위해선 수컷이 정자를 먼저 방사한 후 도망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망이 가능한 것은 오히려 암컷이기에 어류에 있어서는 헌신적 수컷이 나타날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재밌는 부분은 대개의 동물들이 성적인 선전을 수컷들이 하는 반면 인간은 여성들이 그것을 한다는 점이다. 도킨서는 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하지 않지만 자연계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현상으로 여기고 있다. 


5. 병목형 생활사

병목형 생활사는 다음 세대로 넘어감에 있어 몸이 일부분에서 자라서 떨어져나가거나 분리되서 자라는 것이 아닌 다시 하나의 세포로 돌아가 처음부터 새로운 개체로 다시 발생하는 방법을 말한다.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이 번식방법에 대해 도킨스는 이것들이 진화상의 장점이 있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몸의 일부가 상당히 자란 상태에서 떨어져나가 그대로 다시 자라는 것이 훨씬 에너지도 덜 들고 위험부담이 적다. 하지만 생존기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힘든 방법을 택하는데는 3가지 이유가 있다고 도킨스는 말한다. 

 우선 진화상의 돌연변이 발생시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형태는 그 반영이 지극히 어렵다. 하지만 유전자에서 발생한 돌연변이를 다시 하나의 세포수준에서 반영할 경우 설계도를 다시 그리는 것 같은 효과로 돌연변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다. 둘째로는 처음부터 발생하는 것이 시기에 맞는 기관의 발달을 위한 최적의 생장주기를 정형화하는데 유리하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떨어져나가는 형태의 경우 유익한 돌연변이가 발생시 그 부분만 돌연변이되 떨어지기전 다른 유전자들과 협력적 관계가 잘 구축되지 않을 염려가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발생하는 경우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모든 세포가 공유하므로 당연히 불협화음이 생길수가 없다는 것이다. 


무려 40여년 전에 나온 책이란 점이 다소 놀랍다. 다 읽고나니 내가 나름 읽어온 진화와 관련한 생명과학 책들은 도킨스의 영향력을 많이 받은게 틀림 없어보인다. 사실 몇몇 저자들은 도킨스가 새로운 학설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존의 진화론을 잘 종합하고 이기적 유전자란 관점의 제시와 밈의 제시정도를 업적으로 보는데 그것 역시 맞는 것 같다. 이 역시 상당한 능력이다. 밈의 경우 밈학을 탄생시킨 책 치곤 다루는 분량이 의외로 상당히 적으로 도킨스 역시 당시엔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열어놓고 큰 가능성만을 보았을 뿐 던져놓은 듯한 느낌이 많이든다. 밈이 이정도로 발전하고 다른 학문을 자극할지 본인은 과연 그당시 알았을지. 우수한 책이지만 오래전의 책이다보니 약간 가독성이 떨어지며 아직 젊고 패기있을 당시의 도킨스라 말도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 도킨스는 이타적은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시뮬레이션을 채택했는데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이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오기위한 작위적이란 느낌이 좀 들고, 의식과 관련한 설명에서는 70년대의 한계가 느껴지기도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40년의 세월을 충분히 많이 뛰어넘고 충분히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책 말미에 자신의 새로운 책 확장된 표현형을 무척 광고하는데 짐을 하나 덜었더니 또하나의 짐이 생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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