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너무나 유명하다. 막상 읽어본 사람은 별로 많지 않겠지만 그 제목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다. 무척 오래전인 1980년의 일이지만 유명한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이 매우 대중적인 과학 프로그램 시리즈 '코스모스'를 만들었고, 꽤나 성공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 세이건은 오래 살지 못했다. 불과 60대 초반의 나이에 병으로 명을 달리했다.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10년정도 전에 읽었는데 과학자 답지 않은 특유의 문체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70-80년대 보이저호가 찍었을 오래된 태양계의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실제로 코스모스는 전세계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세이건이 죽고 30년 정도 후인 2014년에 미국에서 뉴코스모스라고 새로운 코스모스 시리즈를 만들었다. 비슷한 책도 나왔는데 뉴코스모스다. 이럴 적 세이건과 서신을 주고 받은 저자가 원조 코스모스 이후 발전한 우주에 대한 지식을 새롭게 알리고자 발간한 책이다. 이 책은 원조보단 좀 건조했고, 대신 과학적 지식이 더 꽉들어찼었다. 대충 3년정도 전에 본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책이 세 번째 코스모스 책이다. 저자인 앤드루얀은 칼세이건의 아내다. 세이건이 죽은지 벌써 25년이니 드루얀에겐 쉽지 않은 세월이었을 것이다. 하여튼 칼세이건과 우주와 인간 지구에 대한 많은 세계관을 공유한 그의 아내가 쓴 책이니 이번 코스모스도 의미가 남 다를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알겠되었는데 미국에선 세번째 코스모스 시리즈도 준비중이란다. 이번엔 책이 먼저 나온 셈이다. 

 세이건의 아내가 쓴 만큼 이번 코스모스도 과학책 같으면서도 문학책 같기도 하고 인문사회도서 같기도하며 철학책 같기도 하다. 우주의 생성과 태양계의 생성, 그리고 지구에서의 생명의 탄생과 그 진화, 인간의 행위, 여러 공헌을 한 과학자등 이야기가 다채롭다. 원조 코스모스와 뉴코스모스와 비교한다면 어쩌면 가장 체계가 없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1. 생명의 탄생과 분화

우주는 은하를 낳고, 은하는 별을 낳는다. 그리고 별은 행성과 위성, 소행성을 낳는데 지구도 태양아래 그렇게 태어났다. 지구가 생기고 대지가 갈라지자 뜨거운 맨틀이 바닷물에 닿았다. 지구는 이미 생성초기 신나게 소행성 샤워를 당해 물이 충분한 상태였다. 그리고 맨틀의 유기분자와 광물질이 바닷물에 점점 축적된다. 이 생명의 수프는 구멍이 송송 뚫린 탄산염 바위의 구멍에 갇힌다. 그러다보니 바닷물보다 더욱 농축되었고 이게 생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걸로 추정된다. 

 생명 탄생을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탄산염 바위의 알칼리 물과 산성인 바닷물이 만나 생긴 반응열이 에너지로 작용한듯 하다. 여기서 RNA, DNA가 생성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물과 이산화탄소가 유기분자로 바뀌어 생명 탄생의 연료가 되자 그로부터 메탄과 수소가 생성되었다. 그래서 초기 지구는 지금과는 매우 다르게 철분이 많아 붉은 바다에 하늘도 노랗고 달도 궤도도 다르고 지금보다 가까워 훨씬 컸다. 대기는 탄화수소 스모그로 가득했고, 보랏빛 화산이 불을 뿜고 있었다.

 그러다 27억년전 남세균이 등장한다. 민물, 짠물, 뜨거운물, 암염수등을 가리지 않고 살며 무엇보다도 광합성을 해냈다. 4억년간 이 남세균이 지구를 바꾼다. 이산화탄소를 섭취했고 산소를 내뿜었다. 그래서 노란하늘이 파랗게 디었고, 산소가 바위를 부식시켜버렸다. 지구의 5천종 광물질중 산소와 반응한 3500종 광물질이 이렇게 생성되었다. 오래도록 번성하돈 최초 생물인 혐기성 생물은 독성 산소로 거의 사멸한다. 산소가 부족한 해저나 일부 환경에서만 살아남았을 뿐이다. 한편 의외의 결과도 다가왔다. 산소가 대기중 가득한 메탄을 제거하고 이산화탄소를 증가시키니 지구대기의 온난화 효과가 급감했다. 갑작스레 추워졌고, 지구는 하나의 스노우 볼이 되고 만다. 번성하던 남세균은 얼어죽었다. 죽음의 행성이 되려던 순간 화산폭발이 여기저기 일어나 기온을 되찾았고, 화산은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내뿜었다. 거기에 죽은 대량의 남세균도 이산화탄소를 내뿜어 대기엔 두꺼운 이불이 생겨 어느정도의 온난화 기능이 회복되었다. 이후 지구의 기후는 빙하기와 해빙기를 반복한다. 

 5억 4천만년 쯤 캄브리아기에 생명이 대폭발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두껍게 형성된 산소로 오존층이 생겨 자외선을 막았고, 잦은 화산활동으로 바다에 칼슘성분이 많아져 생물이 이를 이용해 껍질이나 등뼈를 형성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요인이었다. 어쩌면 바이러스 때문일수도 있는데 바이러스는 숙주간 이동시  자신의 DNA 조각을 흘려 뜻하지 않은 진화를 촉발하기도 한다. 일전에 읽은 '눈의 탄생' 이란 책에서는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요인으로 포식자가 눈을 발명한 것을 지적했다. 대충 감으로 촉수나 다른 것을 뻗어 수동적 포식을 하다 한 개체가 눈으로 먹이를 포착해 적극적 포식을 하기 시작했다. 멸망 위기에 놓인 다른 경쟁 포식자와 먹이들 역시 눈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더 빠르게 이동하기 위한 수단, 방어를 위한 껍질, 그리고 그걸 깨기 위한 강한 이등 여러가직 군비경쟁이 일어나 생물이 대폭발했다는 것이다. 


2. 의식과 지능의 탄생

물질에서 의식이 탄생한 과정을 살피려면 지구의 바다에 처음 나타난 단세포 생물까지 거슬러가야 한다.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결정적 특징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인데 그것이 의식이기 때문이다. 스트로마톨라이트 군체는 미생물 매트인데 놀랍게도 자기들 끼리 의사소통을 한다. 먹이로부터 멀리 있는 가운데 부분의 군체일부가 배가 고프면 포타슘형태로 전기 메시지를 메트 가장자기 미생물에게 전달한다. 그러면 놀랍게도 가장자리 미생물이 먹이 섭취를 줄인다. 이를 세포간의 의사소통의 시초로 볼 수 있다. 인간 같은 동물의 의식은 곧 신경세포간의 전달과정이기에 이 과정은 매우 유사하다 볼 수 있다.

 6억년전 생명이 환경을 의식하고 반응하는 지휘 본부인 뇌를 처음으로 탄생시켰다. 최초 사냥 동물인 편형동물이 만들었을 가능성인 높은데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어쩌면 뇌의 등장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쌍안시를 갖추어 거리감을 느껴 먹이를 또렷이 파악하고 포식했다. 

 그리고 2억년전 포유류가 출현했다. 포유류는 뇌에 최초로 신피질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갖고 있었다. 이는 혁신의 싹으로 포유류는 새끼에 젖을 물리고 양육했다. 신피질은 여러층이 겹겹히 쌓여 표면적을 늘렸고 그 결과 정보처리능력이 향상되었다. 뇌엽에도 고랑이 파여 표면적이 더욱 넓어졌고 뇌의 연산도 빨라졌다. 지능의 탄생인 셈이다. 


3. 인간외에도 네트워크를 가진 것들

숲을 보면 모든 나무와 풀이 따로 노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아바타를 보면 그 행성의 식물과 생물들은 모두 사실 연결되어 있는데 놀랍게도 직접 서로 연결하는 촉수도 있다. 그런데 이 생각은 상상이 아니었다. 아마도 감독과 각본가들은 균사체에 대해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균사체는 곰팡이, 식물, 동물이 고대부터 협력해 만들어낸 비밀스런 통신망이자 운송망이다. 지구 식물의 90%가

균사체를 통한 상호유익 관계에 참여한다. 우리가 먹는 버섯은 바로 이 균사체의 자실체 즉, 생식기관으로 버섯이 많다는 것은 균사체가 많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 균사체로 인해 숲은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나무의 뿌리 끝은 균사체의 푹신한 커넥톰과 연결된다. 뿌리망을 통해 나무들은 서로 양육하고 보살핀다. 심지어 한 나무가 나뭇꾼에 의해 그루터기만 남은체 잘리는 절망적 상황에 놓이면 다른 나무들이 뿌리끝을 통해 희생자 나무에 생명 유지에 필요한 물과 당분, 영양소를 전송한다. 그 덕에 잘린 그루터기는 무려 수십년에서 수백년까지 생존한다. 놀랍지 않는가. 나무들이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알수 없다. 인간처럼 눈에 보이는 공동체정신이나 협력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인다. 오랜 진화끝에 생존에 적합한 네트워크와 협력체가 생겨난걸지도 모른다. 

 곤충중 꿀벌도 네트워크가 있다. 꿀벌은 춤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거리 방향, 경관, 각도까지 완벽하게 설명한다. 풍속에 의한 도착시간까지 계산하기에 그 설명은 완벽에 가까우며 이로 인해 수km떨어진 곳도 춤을 통한 설명으로 찾아가는게 가능하다. 꿀벌은 다른 대륙, 다른 집에 소속되어도 비슷한 춤을 춘다. 춤이 오래전 진화했음을 말해주는듯하다. 거기에 방언처럼 서로 춤이 달라도 통역이 쉽게 이루어지니 인간 언어보다도 나은 면이 있다. 통념과는 다르게 꿀벌은 군주제 사회가 아니다. 단지 여왕벌은 가장 중요한 생식기능을 하기에 대접받을 뿐 그이상의 권력은 없다. 여왕벌이 대를 다하고 다음대에 왕홀을 넘기면 전체벌 중 1만마리가 분봉을 준비한다. 분봉은 벌 집단의 생존이 걸린 지대한 문제다. 장소설정에 신중해지는데 곰같은 포식자를 피하면서도 나무 안의 구멍의 크기와 깊이가 적당해야 한다. 꿀벌은 동면을 하지 않기에 집의 표면적이 중요한데 추위에 견딜만하면서도 겨우내 먹을 꿀을 충분히 채울만한 크기여야 하기 때문. 그래서 정찰 꿀벌들이 사방으로 탐색을 하고 돌아와 벌 개체 전체에 자신이 발견한 입지를 설명한다. 당연한 것이지만 정찰벌 개체마다 선호하고 주장하는 좋은 입지가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인간과는 다르게 정치적 힘을 얻기 위해 거짓선동이나 과장, 허언을 일삼지 않는다. 주장에 동조하는 벌이 많아져서 다수가 되면 반대자들도 빠르게 이에 흡수되어 같은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꿀벌은 잠도 자고 꿈도 꾼다고 한다. 신비롭다.

 

4. 양자역학

 빛은 초기에 입자로 여겨졌다. 직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빛을 파동처럼 생각한 사람도 있었고 입증도 되었다. 유명한 이중슬릿 실험이다. 하지만 실험이 정교해지자 광자는 놀랍게도 관찰전에는 입자의 성질을 관찰후에는 파동의 성질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아원자 입자가 다 그러한데 관찰 전에는 확률적 성질을 띠다가도 관찰에 개입되면 전혀 다른 상태가 되는것이었다. 

 거기에 우주의 모든 광자를 얽혀있다. 우주 한끝의 광자와 반대쪽 끝의 광자가 서로 엃혀있다. 우리가 한 광자의 스핀을 관측하면 그 순간 반대쪽 끝의 광자도 이를 알고 변한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빨리 이동할수 없는데 어떻게 빛보다 빠르게 정보전달이 가능할까? 둘은 한몸인 것일까? 하여튼 관측은 둘 사이의 얽힘을 깨버린다. 

 우리가 빛을 볼때 광자는 망막에 도착하고 그러면 망막세포는 화학적으로 변한다. 망막은 그 변화를 겨우 0.8초만 저장하고 다시 몰려드는 광자를 위해 그 이미지를 지운다. 당연히 망막은 세포수가 적어 모든 광자를 감지하지 못하며 오는 광자 중 소수만 받아들여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고 망막의 모든 세포가 광자를 받아들이지는 않기에 어느 세포가 광자를 받아들일지도 알수 없다. 즉, 이런 측면에서 바라보면 객관적으로 느껴지는 시각도 결국 확률게임이 되고 만다. 어느 광자를 받아들일지 어느 세포가 받아들일지 알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시각은 확률인 셈인데 그러면 우리가 관측하는 세상에 대체 뭐가 확실할지 알 수 없게 된다.

 하여튼 양자역학은 무수한 어려움을 만들어내는데 해결책이 두개 있긴하다. 물론 어처구니 없게 느껴진다. 하나는 다중세계 해석이다. 관측등의 중요한 개입이 있을때마다 가능한 새로운 세계가 무한대로 생겨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초결정론이다. 우주가 생겨난 이후 지금까지의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사실 모두 이미 그렇게 되도록 결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너무 멀리 떨어진 광자간의 얽힘도 설명이 된다. 원래 그렇게 반응하도록 계획 된것이니까.

 

5. 나가며

 이토록 어려운 우주와 미시세계를 설명해주는게 과학이다. 책은 플랫랜드라는 소설을 예로 든다.수년전에 본책인데 무척 재밌다. 내용은 제목처럼 2차원 세계다. 평면에 사는 이들은 졸라맨 처럼 생긴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볼때 서로 길이가 다른 직선으로만 인지가 가능하다. 집들도 삼각형, 사각형, 육각형으로 다양한데 가까이서 만져야 뾰족함이 느껴져 여러 측면에서 봐야만 무슨 각형인지 간신히 인지가 가능할뿐 그냥 보면 역시 직선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차원 높은 존재인 우리 인간에게 플랫랜드의 모든게 인지가 가능하다. 우리는 그들을 그려서 쉽게 창조하기도 하고 가로세로밖에 없는 그들에게 위나 아래서 접근이 가능하다. 손가락으로 그들의 평면을 위에서 집는다면 플랫핸드 사람들이 보기엔 갑작스레 거대한 뭔가가 나타난것일 것이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선 어쩌면 하나의 차원 혹은 몇개의 차원이 더 필요할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앤 드류얀은 이런 우리가 다가가기 힘든 차원으로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게 과학이라 말한다. 인상적인 설명이었다.

 앤드류얀은 인간이 망쳐놓은 환경과, 종교적 극단주의, 민주주의의 파괴, 우경화를 걱정한다. 그리고 자연적 위기와 지구온난화는 이미 수십년전에 과학자들이 예측했던 것이다. 다만 그것을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이 확실하지 않다고 부정했을 뿐이다. 하지만 담배의 위해성도, 프레온 가스의 위해성도 처음엔 부정되었지만 결국 입증되었다. 낙관론자처럼 드루얀은 과학의 힘과 따뜻한 인간의 마음으로 이 위기가 과학의 올바른 사용으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제발 그렇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책은 세권의 코스모스 시리즈중 주관이 많이 반영된 것겠지만 가장 재밌었다. TV로 나올 시리즈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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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오를 곳만 오른다 - 경제의 신과 함께 하는 앞으로 5년, 돈 버는 알짜 부동산 20
김학렬 지음 / 페이지2(page2)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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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시장을 보면 화가난다. 실물경제와 국민소득과 상당한 괴리를 보일만큼 엄청나게 오른 서울 집값. (둘다 연봉 5천이상의 상위 5%이내의 맞벌이 부부가 10년을 한푼도 안써야 간신히 살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걸 놓쳤다는 엄연한 사실(돈도 없고, 지방에 산다.) 게다가 MBC 스트레이트를 보며 지금의 집값상승의 시발점이 2014년 부동산 재개발재건축 완화 3법에 기인한다는 생각때문이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여기엔 사람들의 욕망과, 한방향으로의 쏠림, 무엇보다도 유동성의 대폭적 증가, 현 정권의 다소 안일한 태도도 복합적으로 자리했을 것이다. 

 현 정권은 정말 강력한 법안으로 그간의 상승을 막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은 관성적으로 집값이 더 오를 거라 말한다. 홍콩도 그렇고 런던이나 시드니,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를 예로 든다. 하지만 거기엔 외국의 자본이 많이 들어왔고, 홍콩은 더 나아갈때 없는 섬이다. 그리고 소득이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레 몰린 지역이다. 대한민국의 서울이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지는 의문이다. 

 하여튼 이 책은 서울의 각 구와 경기도의 주요 지역, 그리고 비수도권에서는 세종시만을 다룬다. 물론 구는 강남, 서초, 송파의 강남삼구를 시작으로 마용성인 마포구, 용산구, 성동구, 광진구, 강동구, 중구, 강서구, 영등포구, 서대문구, 동작구, 양천구를 다룬다. 각 지역의 주요 시세와 앞으로의 교통이나 개발호재 같은 알짜 정보가 많다. 그 지역 거주하면서 청약을 노리는 사람이라면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서울은 이미 상당히 발전한 도시임에도 각 지역의 연결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지하철 이외에도 트램이나 지역 경전철이 많이 계획되고 있었다. 거기에 주요 지역의 역세권 개발과 대규모 첨단 대기업 위주의 단지 개발이 많다는걸 알 수있었다. 그리고 주거지역으로서의 쾌적함을 높이기 위해 준공업지역이나 혐오시설이 점차 사라지는게 경향성이었다. 

 경기도에서는 과천시, 성남시, 하남시, 광명시, 고양시를 다룬다. 과천은 오랜 주공아파트가 대규모로 재개발되고 과천지식정보센터 구축으로 적은 인구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것이 호재다. 성남은 분당구 이외에도 다른 오랜 구가 개발되는 것. 그리고 주거, 인구, 일자리가 완비된 도시라고 본다. 하남은 서울과 가깝고 지하철교통망이 확충되고, 주거 , 일자리, 인구가 늘어나면 과거 분당이 개발되는 것처럼 될 것이고 강남의 확장지역이 될 것이라고 보낟. 광명은 모든 지역이 재개발되고 서울의 웬만한 지역과 견줄 만한 지역이고 탄탄한 수요지역이라고 본다. 고양은 인구가 많지만 수요가 몰릴만할때마다 주변 평야지역인 김포, 검단, 파주가 개발되며 수요가 분산되었다고 보다. 고양은 좋은 지역이지만 지금도 재개발이 많아 옥석을 고르기 쉽지 않다고 본다.

 부동산 투자에 대한 생각은 많은 기대와 욕심이 제각각일 것이다. 때문에 이 책도 지난 몇년간의 폭등기처럼 뭔가를 노리기 보다느 내가 살 지역 혹은 내가 살고 싶은 지역의 주요 변화와 특징을 알아가는 차원에서 본다면 좋을 것 같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득을 본다면 그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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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차일드 (리커버 에디션) 옥타비아 버틀러 리커버 컬렉션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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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을 보고 이번에 나온 이 강렬한 표지의 리커버 판에 낚였다. 제목도 블러드 차일드라는게 의미심장해보였다. 하지만 킨을 본 사람이라면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이 책에서 기대하면 좀 곤란할 것이다. 이 책은 단편집이고 거기에 SF이기 때문이다. 하긴 킨도 어찌보면 SF 같은 느낌이 좀 들었다. 소재는 인종차별이지만 70년대의 사람이 갑작스레 수백년전으로 타임워프한다는거 자체가 SF이지 않은가.

 이 책엔 여러 단편집이 수록되어 있는데 번뜩이는 거도 그냥 그런것도 있었다. 우선 타이틀인 블러드차일드. 최근 본 단편집중 타이틀을 차지한 단편이 가장 맘에 드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이번엔 괜찮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인간은 외계인과 공존하고 있다. 물론 가축돼지와 인간의 관계를 공존이라고 인정할수 있을 경우만 그럴 것이다. 이 외계인들은 긴 촉수를 가진 표면이 매끈한 큰 생물들이고 지성적 존재로 인간과 대화하고 교감한다. 이 녀석들은 자신들의 알을 인간에게 제공하고, 촉수의 침으로 마약같은 효과도 누리게 해주는데 다 목적이 있다. 인간은 이 외계인이 가장 적합하게 번식하는데 훌륭한 숙주기 때문이다. 녀석들의 알은 왜인지 인간을 반쯤 맛이 간 황홀경에 빠지게 하고 수명마저 놀랍게 늘려준다. 

 이렇게 다 좋은데 문제가 있다. 숙주가 되서 이 외계인의 새끼를 낳는 과정이 죽음에도 이를 수 있는 무척이나 위험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무려 이 짓을 세번이나 했다. 물론 그 덕에 평균수명의 세배를 살긴 했다. 사실 숙주로 더 적합한 것은 남성보단 여성이다. 하지만 인간이 가축에게도 그러하듯, 여성은 숙주인 인간의 새끼를 재생산해야하기에 소모되는 것은 수컷인 남성이다. 인간이 키운 가축수컷의 운명도 대개 거세후 고기가 되지 않던가. 하여튼 외계인의 촉수로 남성이 숙주가 되거 알이 깨어나 애벌레가 되어 적절한 시기가 디면 이 외계인은 남자의 배를 가른후, 피흘리는 인간의 살속에 파고든 애벌레를 하나하나 꺼낸다. 그 후 치료를 받아 인간 남자는연명하게 되는데 이 것이 제목이 블러드 차일드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과거 인간은 항거한듯 하기도 한데. 어찌된 일이지 외계인에게 제압당해 공존의 길을 택하게 된듯 하다. 그래서 인간 가정에 라이플 같은 무기는 금지다. 

 다음 재미난 이야기는 신이 나타난 이야기다. 일상생활을 하던 작가인 나아게 어느날 신이 나타난다. 그리고 나에게 과거의 선지자들처럼 막강한 전권을 주겠단다. 내가 인간의 일정부분을 원하는데로 바꿀수 있는데 이를 통해서 공멸의 길로 나아가는 인간을 구원해보라는 것이다. 어찌해야 할까? 주인공은 일단 인구증가가 위험이라는 점에서 모든 사람이 둘만 아이를 낳으면 저절러 생식기능이 사라지는 생각을 한다. 신은 바로 반박한다. 강간 당하는 사람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은 사람은? 두 아이를 사고로 모두 잃은 사람은? 그리고 상식적으로 출산률이 2를 다소 넘어야 인구가 유지되는데 딱 2라면 장기적으로 인간 종은 생존이 어려운데? 

 주인공은 말문이 막힌다. 그외 여러 대안을 생각하는데 하나같이 어렵다. 인간종은 그만큼 복잡하고 고려해야할점이 많았다. 다른 동물이라면 이리도 어려울까나. 결국 생각해낸게 꿈이다. 꿈에서라도 행복하고 원하는 걸 하게 해준다면 실상에서의 많은 갈등과 폭력이 줄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다 꿈에서 깨어나길 원하지 않고 일상을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한다면? 신은 바로 반박한다. 어렵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방법을 택한다. 물론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독자에게 맡긴걸까? 

 위 두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민을 하게 한다. 나라면 자유인으로 외계인을 거부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까? 아니면 노예같지만 수십년에 한 번 오는 큰 고통을 참아내고 긴 수명과 가족의 안락함을 보장 받을까? 내게 인류를 변화시킬 전권이 주어진다면 무얼바꿀까? 일본을. 트럼프를. 일본을 바꿀까? 아니면 집안일부터 해서 문제 교회들을 바꿀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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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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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현준의 책은 알뜰신잡에 나온 이후 것들만 봤다. '도시는 무엇으로 살 것인가'는 꽤 괜찮은 책이었고 후작인 '어디서 살 것인가'는 잡탕 느낌이 많은, 기존의 그의 책들을 큰 차이가 없어 굳이 나올 필요가 없는 책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번 책이 좀 불안했는데 다행이 '공간이 만든 공간'은 제법 괜찮은 책이었다. 건축에 대한 유현준의 인류사적 생각이 드러난 책이었고, 그래서인지 역설적으로 정작 건축자체에 관한 내용은 의외로 별로 없는 느낌이었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잘 드러낸 십여년 전에 나왔던 책 '동과 서', '생각의 지도'같은 책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류사적 느낌이 나듯 저자는 인류의 초기부터 짚어나가며 책을 연다. 지구는 어느정도 질량을 가진 행성이 그렇듯 구의 형태다. 그리고 다들 그런것처럼 항성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스스로 자전도 한다. 그런데 자전축이 기울어져 계절 변화가 일어나고, 과거 얼음 소행성과 많이 충돌해 물도 많다. 이게 극적 변화를 일으킨다. 태양의 에너지를 받는 부분간의 차이를 이 물이 구름이 형태로 변해 바람따라 운반해주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형이란게 생기고 기후도 생긴다. 그리고 자신이 갇힌 좁은 기후대에서 생존해야 하는 인간은 자신의 적합도를 높이기 위해 건축이란걸 한다. 

 그러니 건축은 기후은 어찌보면 기후에 적응한 인간의 산물인 셈이다. 그리고 기후에서 중요한 건 기온과 강수량이다. 특히 강수량이 중요한데 현대에 이르러서도 방수와 누수, 그리고 침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한다면 매우 당연한일이겠다. 단순하게 나누어 인간이 재배하는 곡물은 밀과 벼인데 비가 연간 1000mm이상 강수량이 있다면 벼를 키우고, 그 이하이면 밀을 경작한다. 양 곡물은 큰 차이를 보이는데 벼는 키우기가 무척 어렵고, 파종시기나 수확시기, 그리고 물을 준비하는 시기와 키우는 과정에서 물의 확보및 차단이 무척 중요해 집단적이며 노동집약적인 농사형태를 갖게 된다. 반면 밀은 키우기가 쉬우며 대충 밭에 씨를 뿌리면 된다. 그렇다보니 벼농사지역엔 집촌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모여사는 반면 밀농사지역에 넓은 밭에 농가가 띄엄띄엄하다. 서양영화보면 실제 그렇다. 

 그리고 이는 생각의 차이를 불러왔다. 집단적 협력이 중요한 벼농사 지역은 농사와 치수에 협력이 중요해 집단적이고 관계를 중시하는 사고가 형성되었고, 밀농사 지역은 개인주의적 사고가 형성되었다. 때문에 동양에서는 관계를 중시하기에 절대적인 법칙 보다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중용같은 가치를 중시되었고, 서양에서는 개인에 방점을 두어 모든 것을 개별화하고 원자화했으며 절대적 법칙이나 선을 강조한다. 때문에 이 코로나 형국에서도 한국에선 자신을 희생해 남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서양지역엔 남들의 안위보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자신의 권리를 더 부르짖는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기후는 건축양식에도 차이를 가져왔다. 동양은 비가 많이 내리니 땅이 자주 무르고 땅과 닿는 부분이 손상될 우려가 컸다. 때문에 기초가 되는 돌을 땅에 깊숙히 박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워 건축하는 양식이 발달했다. 그리고 비를 막기 위해 경사진 지붕을 크게 지었다. 거의 건축의 입면 절반가까이가 지붕이 된다. 그리고 집단적 사고는 집에도 영향을 미친다. 관계를 중시하고 상대적 사고를 하기에 집안에서 자연을 보고 집과 자연의 경계가 벽이 없는 기둥건축이기에 모호하다. 한국의 단청은 얼핏보면 단조로운 집의 색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튀는 강력한 보색이지만 집안에서 바깥은 바라보면 단청과 자연의 색이 하나과 되어 집의 안팎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자연과 집이 어울리기에 집의 형태를 없는 편이었고 자연을 따라 건물이 뻗어나가는 형태가 없는 건축이었고 빈공간을 중시했다. 반면 서양의 건축은 비가 적게 내려 땅이 단단해 벽이 힘을 받는 내력벽 건축이다. 비가 적게오니 지붕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집안이 벽으로 막혀 실내장식에 치중을 많이 했다. 또한 건물도 자연과 어울리기봐는 건물 자체를 바깥에서 보는 것이기에 외관 장식도 신경썼다. 그리고 창은 당시 유리가 비싸고 벽이 무게를 받기에 수평으로 길게 내거나 크게 만드는게 어렵고 수직으로 창을 작게 내고 거의 항상 닫고 있었다. 절대법칙을 선호하기에 원이나, 사각형, 삼각형 등의 기하학적 형태로 황금비율을 고려하여 건축했다. 이렇듯 건축은 동양의 비가 많이 내리는 기후와 관계와 비움을 중시하는 사고, 그리고 서양의 비가 적게 내리는 환경과 개인주의적 사고, 절대법칙과 윤리를 반영했다.

 하지만 교통수단이 발달하며 변화가 일어난다. 과거 동서양의 교역은 육상 실크로드를 통한 비단과 향신료였다. 둘은 귀하기도 했지만 장거리 교역에 적합하고 가볍고, 잘 썩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다 오스만에 의해 지중해 항로를 통한 교역이 막히자 네덜란드 지역에서 역풍에도 배를 전진시키는 삼각돛이 개발된다. 삼각돛은 베르누이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데 역풍이 불면 삼각형의 불룩한 부분과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의 바람속도가 다르다. 튀어나온 부분은 빠르게 바람이 지나가고 오목한 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러면 오목한 부분으로 공기가 몰려 양력이 생겨 밀어내는 힘이 생겨나는데 그렇게 역풍에도 전진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구조상 비스듬히 가게 되니 일정 시간이 지나면 돛의 방향을 바꾸어서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이런식으로 지그재그 전진이 된다. 하여튼 그렇게 아메리카에 도착하고 동남아시아 및 동아시아에도 유럽인이 도착해 배를 통한 교역이 시작된다. 중국에서의 주요 수입품은 도자기였는데 도자기 자체도 유럽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지만 도자기에 그린 그림도 이에 못지 않았다. 그림에는 서양과는 전혀 다른 정원과 집들이 그려져있는데 텅빈 공간과 자유로운, 관계적 요소가 서양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은 17세기 들어 도자기 산지에서의 반란과 만주족의 반란으로 도자기 생산지대가 초토화된다. 이 점을 파고든게 국제교역망의 끝부분에 자리 잡은 일본이다. 때문에 일본은 조선이 비해 떨어지는 도자기 생산기술을 갖고도 무역에 참여하였고, 부를 쌓게되며 이후 산업화의 길도 걸을수 있게 된다. 일본은 도자기를 포장할때 판화하고 남은 종이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 판화도 유럽으로 건너가 영향을 미친다.

 서양의 정원은 기존에 기하학적 형태를 갖고 전지적 시점에서 만든 정원이었다. 하지만 동양의 도자기의 영향으로 자연과 어울리고 1인칭 시점과 빈공간을 지닌 픽쳐레스크 형식의 정원이 생겨난다. 우리가 아는 센트럴 파크도 픽쳐레스트 형식이다. 동양과 서양건축의 융합은 초창기 유럽에서 생겨났다. 유럽이 먼저 동양으로 진출했고, 산업혁명과 기술발달로 역량을 쌓아올렸기 때문이다. 미스반데 로어는 초기 벽구조 기반의 서양건축에서 기둥 중심의 동양식 공간감을 쌓는 건축을 한다. 그의 허블하우스는 개인적 공간은 벽으로 막고, 부엌이나 거실 같은 공용공간은 기둥을 이용한 개방적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판스워스 하우스는 침수를 피하기 위해 기둥구조를 이용하여 집은 반쯤 올려놓았는데 그 설계 방식이 한옥과 매우 유사하다. 

 르코르뷔지에는 근대건축의 5대원리로 필로티,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 리본 수평창을 내세웠는데 이는 산업혁명 이후 건축에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사용되었기에 가능했다. 옥상정원은 철근 콘크리트와 방수재료의 발달로 옥상에 지붕이 필요없어져 가능한 것이며 자유로운 입면과 평면도 철근 콘크리트 건축으로 벽이 힘을 받지 않게 되어 가능해졌으며 리본형의 긴 수평창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중 필로티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요소가 기존 동양건축 요소라는 점에서 산업화 초기 서양건축은 동양의 기둥건축의 영향과 그 구현을 물리적으로 가능하게 해준 산업혁명기술의 융합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 문화간 융합 건축은 그 수명을 다한다. 국제주의적 양식이 등장하는데 이는 철근콘크리트로 사각형 모양의 세계어디서나 똑같은 건물이 들어서는 형국을 말한다. 당연히 지역색이 없고, 실용성만이 강조되는데 이는 개성과 다양성의 말살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존 전통건축이 자연에 대응하는 것인데 반해 기술이 충분히 발달한 현대의 건축기술로는 굳이 자연에 대응하지 않고도 극복이 가능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일수도 있어 양면성이 있다. 1970년대 건축은 철학에서도 길을 모색해 해체주의가 반영되었는데 지나치게 해체적이거나 기괴한 모양이 많아 오히려 사용자의 편의성이나 집의 기능 자체를 떨어뜨리는 모순이 있었다. 

 최근의 건축동향은 컴퓨터 기술과의 결합이다. 수치를 입력하여 프로그램으로 디자인을 하는 파라메트릭 디자인 기법이 있고, 다양한 캐드 프로그램으로 건축 디자인의 효율성과 독창성이 극대화 되었지만 반면 서로 비슷한 프로그램을 이용하다보니 비슷한 건축이 나오는 단점도 등장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쉐임 그래머란 방식인데 컴퓨터가 한 건축가의 양식이나 설계방식의 데이터를 학습하여 그가 설계하는 방식의 과정과 의도를 이해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 과거 건축가의 양식으로 컴퓨터가 건축디자인을 할 수 있으며, 현존하는 건축가가 건물을 짓다가 중대한 결함의 발견으로 문의 방향이나 위치를 수정할시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반면 이 프로그램은 그 과정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었기에 마치 이 건축가가 원래 그렇게 설계했던 식의 도면을 쉽게 제공한다. 

 책의 말미엔 지금의 디지털 공간을 건축으로 보는 재밌는 관점도 등장한다. 인간은 항상 자신의 외부와 내부를 관찰하고 탐구했는데 최근의 급격한 디지털화로 인간은 외부 세계를 잃고 있다. 디지털화가 진행될 수록 자신마저 데이터화되는데 이런 반작용으로 최근 과거 복고문화나 아날로그가 역설적으로 강조되는 것이다. 때문에 디지털 세계에서의 건축이 아무리 강조되어도 결국 아날로그적 건축이 살아남고 강조되리란게 저자의 생각이다. 아무리 디지털 공간에서 친숙해지고 기회가 많아져도 그것이 물리적 공간만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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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9-01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간과 건축은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항상 흥미롭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닷슈 2020-09-02 00:21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재밌습니다. 다이제스터님이 가볍고 흥미롭게 볼만한 책입니다.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 저출산,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는 미래 세대를 위한 처방전
우치다 타츠루 외 지음, 김영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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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주요 선진국중 앞으로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앞으로 7천만이나 늘어날 예정인데 공교롭게 앞으로 사라질 일본과 한국의 인구수를 합친 것과 거의 엇비슷하다.감소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주요 선진국들은 인구감소는 수치상 기정사실이다. 인구의 감소는 국민경제규모의 감소를 의미하고 시장의 축소와 생산력의 감소를 의미하기에 각국은 위기감을 갖는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쁜 것일까? 인구가 감소한다면 개인은 훨씬 비경쟁적 사회에 놓인다. 앞세대가 죽어서 버리고 간 자원과 통화가 그의 것이고, 취직도 쉬우며, 부동산 가격도 쌀 것이다. 사회적 대접도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며 환경오염도 덜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선진국의 이야기일 뿐이다. 전세계적으로는 아직 선진사회에 도달하지 못한 지역의 인구가 계속 늘어날 것이기에 세계인구는 100억을 돌파할 것이다. 책은 무려 2100년에 이르러야 세계인구가 정점을 찍고 감소할 것이라고 보는데 선진국의 인구라도 줄어서 그정도 일것이다. 그 전에 지구가 인간을 견뎌낼지 모를일이다. 

 어쨌든 이 책은 인구감소를 옹호하는 책 같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구감소를 막는 방법과 인구감소가 불러오는 사회변화에 주목한 책이다. 더구나 한명이 쓴 책이 아닌 여러분야의 사람이 인구감소를 주제로 자신의 전문분야와 관련에 썰을 풀어낸 책이라 일관성도 없다. 여러모로 기대와 다른 책인셈. 재밌는 저자의 글만 좀 뽑아봤다.

 공동 저자중 한명은(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미래 자본주의 사회가 두뇌자본주의 사회로 변모할거라 한다. 지금까지는 노동자의 수가 아무래도 전체 생산규모를 크게 하고 시장도 크게하기에 중요했는데 이젠 머릿수가 아닌 질적인 두뇌수준이 그 나라의 경제규모를 결정할 것이란 이야기다. 특히, 앞으로 모든걸 다할 수 있는 범용인공지능이 개발될 경우 이 범용목적기술을 활용해 먼저 생산활동의 급격한 변혁에 성공한 국가가 패권국가가 될거라 보았는데 매우 그럴듯하다. 앞으론 인구규모보단 4차산업혁명 기술을 성공적으로 도입해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기술 혁신이나 생산력 증가를 불러오는 나라가 세계패권국가가 될 것이다. 아직은 그 과도기라 세계기술패권국가인 미국과 저렴한 노동력을 가진 개발도상국만 경제가 성장하는 듯하다. 

 여기엔 나름 논리가 있는데 농업혁명시기엔 토지와 노동이 투입되어 생산활동이 이루어지고 그 산물이 농작물이었다. 토지가 정해져 있고 노동을 아무리 늘려도 그 결과 먹을 입도 늘기에 경제성장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못했다. 산업혁명 시기가 되자 생산요소로 토지에, 기계, 그리고 노동이 추가된다. 기계는 노동이 늘어도 소모되지 않고 기계가 기계자체를 생산하기에 자본이 무한 증식이 가능했다. 처음엔 고성장이 가능하고 경쟁이 심화되고 기술적으로 무르익으면 지금처럼 2%수준으로 경제성장이 수렴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기술을 가진 나라와 아닌 나라간에 대분기가 일어났다. 그리고 앞으로 올 시기엔 생산요소로 노동이 빠지고 인공지능과 로봇기계가 들어선다. 이들은 만든 생산품 자체가 투자요소가 되므로 산업혁명초기처럼 무한 성장이 가능하다. 제2차대분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사람은 제품개발이나 인공지능, 로봇관리, 경영관리의 역할만 하게 된다. 이렇기에 빨리 통일을 해야할 듯 하다. 북한과의 결합이 불러오는 주요 장점중 하나인 저렴한 노동력은 이런 사회가 올 경우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인상 깊은 글은 저출산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와 그에 걸맞는 윤리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이 사람은 한국일본 같은 유교전통사회와 프랑스, 스웨덴 같은 유럽 사회를 비교하는데 한국, 일본은 저출산 문제가 심화된 반면 프랑스, 스웨덴 같은 유럽의 저출산 국가들은 1.5이상의 출산률로 나름 선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보기에 양자의 차이는 혼인 관계에 대한 집착의 유무다. 동아시아 국가는 결혼제도를 중시하고 저출산 대책도 혼인한 부부에게 초점을 둔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경우 이미 혼외자녀가 50%이상에 가까울 정도로 높고 그만큼 혼인을 강요하거나 윤리적으로 여기지도 않으며 지원도 같은 수준으로 이루어진다. 즉, 한국과 일본 같은 나라가 출산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혼외자녀 같은 다양한 가족 구조를 인정하고 윤리적으로 옹호하며 지원도 같은 수준으로 이뤄져야한다는 것이다. 매우 그럴듯한 생각이다. 

 또 다른 인상 깊은 생각은 지방과 사람관계에 대한 생각이다. 자본주의는 무연고 사회로 돈만 있으면 사실 사회적 관계가 그렇게 필요치 않다. 이게 사람간의 단절을 불러왔는데 지방의 여러 1차산업종사자와 도시민들의 연결을 해보자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들은 건강에 좋지만 당연히 시장성은 없을 제대론 된 가격의 1차상품을 만들고 도시민들은 직접 가서 일을 돕기도 하고, 그것을 사먹으며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방을 살리자는 것이다. 이는 저출산 대책의 하나가 지방으로의 인구회귀라는 점에서 나온 생각이다. 지방엔 적절한 수준의 사회 인프라도 필요한데 주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어머니의 관심은 결국 육아지원과 교육수준, 의료, 문화시설인데 이를 지방에 갖추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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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9-01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에 백퍼 동의합니다.
닷슈님의 낮은 평점에 약간 불안하지만 제목만큼은 엄청 끌리는 책 입니다. ^^

닷슈 2020-09-02 00:20   좋아요 0 | URL
저도 제목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제목은 좋지만 내용은 좀 부족합니다. 다이제스터님 성에 차지 않을 것입니다. 비추입니다. 일본 학자들 책은 일본식 한자때문인지 아니면 스타일에 안맞는 건지 맘에 드는 경우가 이상하게 적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