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 돌베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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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속한 온라인 독서 모임에서 3월 한 달 동안 읽었던 책이다. (그곳은 무조건 정해진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면 책을 찾아가 함께 읽는 것이다.) 왜 이 책을 읽었는지에 대해선 책 제목이 말해주고 있으니 굳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


권보드래. 이름이 독특하다. 저자에 대해선 문학평론가면서 대학교수 외엔 특별히 알려진 게 없다. 굳이 추가한다면 최근까지 왕성한 저술 활동을 했다는 정도? 건조한 문장에 한자어를 많이 사용해서 어느 나이 지긋한 남자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 중간쯤 읽다 아무래도 저자가 궁금하여 찾아봤더니 여성이다. 이럴 수가.


이 책은 지난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서 나온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쓰기 전 저자가 3.1운동에 관한 책을 낼 거라고 하자 주위에서 좀 의아스러운 눈으로 보더란다. 역사 전공자가 아니고 문학평론가 그런 책을 내겠다고 하니. 하지만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뚝심을 가지고 밀어붙인 결과라고 한다.


저자는 문학을 전공한 만큼 당대 문학가 내지는 문필가들에 다소 집중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전혀 가치가 없거나 편파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역사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봐야 하기 때문에 그 나름의 성과가 있다고 보아진다. 그런데 역사 학자만이 논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면 그거야말로 사대주의 아닌가. 다양한 전공자들이 (그것이 비록 일반인일지라도) 저마다의 시선을 가지고 새롭고도 다양한 해석할 수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 또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 방면에 관심이 있다면 아울러 장석주의 빛나는 저작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 1권을 참조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그런데 이 책에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어 잠시 소개할까 한다.

“ 이들 중 누구도 일본어 글쓰기를 최종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이광수는 1910년대에 <매일신보>와 <청춘>을 무대로 '조선어로 쓰는 조선 문학'을 적극적으로 개척했고, 주요한은 1918년경부터 일본어 시 창작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 우리말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염상섭은 일본에서 지방지 기자로 사회적 이력을 시작했으나 <동아일보>의 초빙을 받고 귀국했으며 김우진은 3.1 운동 직전의 분위기 속에서 일본어 대신에 한글로 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김기진 역시 1923년 <개벽>에 '프롬나드 상티망탈'을 발표하면서 정력적으로 평민과 소설을 써 나가기에 이른다. 이들은 문학청년 시기에 한때 일본어로 글을 썼고 일본 문단 진출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3.1 운동 전후 한글 쓰기에 정착한다. 근대 한글 글쓰기는 이들을 통해 비로소 새로이 규범적이고 미적인 영역을 개척했다. 이윽고 1920년대를 통해 놀라울 정도로 풍성해진 공식어로서의 한글은 "조선말로 미문을 쓸 수 없다."던 시대에서 "특수한 학문상 술어 이외에는 조선말로 쓰지 못할 말이 없도록"까지 비약했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바 독자적 자국어의 밀도를 갖추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1919년 3.1 운동 이후 민족어 글쓰기의 공간이 대폭 확대됨으로써 가능케 된 상황이었다. ” (456p)


이른바, 일제 치하 36년. 물론 굴욕의 세월임엔 틀림없고, 이 기간 동안 한글을 사용할 수 없고, 일본어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였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한 세대 이상을 남의 나라말을 사용해야 한다면 정말 모국어를 잊어버리게 되는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1913년 당시의 조선인 사이에 일본어 해독률은 0. 61%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1930년대가 되면 10%를 돌파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일본어는 20% 정도 밖엔 구사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시 생각해 보면, 당시 일본어를 꼭 사용해야만 하는 곳은 학교나 관공서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우리나라 문맹률은 상당히 높았고, 학교에 갈 수 있는 사람도 소수에 불과했으니 상대적으로 일본어의 사용 빈도는 그리 높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어를 쓰나 일본어를 쓰나 감시하는 것도 한계는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당대 지식인들 중엔 문맹률을 낮춰야 하는 것에 공감을 했을 것이다. 글을 읽어야 무지를 깨칠 수 있고, 나라를 빼앗긴 것도 알고 보면 백성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탓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차치하더라도 어쩌면 당시 문맹률이 높았던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해 본다.


나는 저 글에 언급된 지식인들이 일본어를 의도적으로 탈피해서 조선어로 문학 활동을 했다는 게 대단하고 역시 지식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것이 해방도 되기 이전 1920년대 놀라울 정도로 풍성해진 공식어가 됐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해방의 조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앞서 진행되고 있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식민 경험이 있는 다른 나라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런 문학의 조상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작년(2024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면서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노벨문학상 작품을 원어로 읽는 호사를 누린다고 입을 모았던 거 아니겠는가?


사실 우리는 모국어가 너무 익숙해서 공부할 게 뭐가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한 달 전쯤이던가? <유퀴즈...>란 TV 프로에 어느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외국인 교수가 나와서 자신은 지금도 한국어 공부를 10시간씩 한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원래 남의 나라말은 어려운 것이고, 그건 그 교수의 남다른 한국어 사랑이거나 성격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 원어로 읽는 호사란 말이 안 나오겠는가?


또 하나 생각할 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신 건 정말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백번 다 감사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당시 한글이 확 퍼져나갔던 건 아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창제된 것이지만 지난 몇 세기 동안, 한 번도 글을 깨우치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이 글을 깨우치고 죽은 사람 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러니 대왕님께서 이런 건 만들어 뭐하나 성과 없는 일이라고 해도 뭐랄 사람이 없다. 하지만 대의는 늘 실용주의 보다 앞서야 한다.그게 몇백 년, 몇 세기가 흐르든지 간에.


세종 대왕님께서도 몰랐을 것이다. 그 몇 세기가 흐른 후,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서 비로소 한글이 우리나라에 퍼지기 시작했다는걸. 그 시절 선교사들은 빨리 조선어를 익혀서 성경을 조선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선교와 교육을 해야 했다. 그러니 평민 이하의 사람들이 성경과 우리 모국어를 깨우치는데 선교사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까 역사는 그렇게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새삼 놀랍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역사에서 '개화기'란 바로 이런 것이고, 그 중심에 3.1 운동이 있었겠구나 이 책을 보며 새삼 깨닫고 정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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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5-03-30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 강점기 때 조선인들이 강제로 일본어를 사용하라고 억압받았던 것을 생각하니
편하게 한글로 언어 생활을 할 수있게 만들어주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감사드립니다.
언어는 사상의 집이란 말이 있지요.
제 생각의 틀인 한글에 대한 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스텔라님이 리뷰해주신 이 책 꼭 읽어보고 싶네요.^^

stella.K 2025-03-31 09:58   좋아요 1 | URL
아, 니르바나님! 감사합니다. 무플을 방지해 주셔서. ㅋㅋ 요즘 가끔 서재 초기 때 무플방지위원이 생각나더군요. 그땐 좋아요가 없었던 때라 자율적이면서도 누가 방지위원인지도 모르고 했잖아요. 지금은 좋아요 때문에 한때의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ㅋ
이책 한번 읽어봐도 좋긴한데 문학사관에 치우친 감이 있어요. 특별히 저자가 이광수의 문학을 애증하고 있죠. 그러니까 저도 왠지 이광수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이 책이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yamoo 2025-04-02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첨 듣는 작가네요.
흠...문학평론가가 낸 소설이라..
ㅎㅎ 읽을 마음이 샥 가십니다그려..^^
평론가 출신 소설 치고 재밌는 작품이 없었던 기억만...^^;;
그래두 스텔라 님은 한달내내 읽으셨네요...지루했을 거 같은데..
어쨌거나 창작활동을 계속 하는 작가라니...스텔라 님 덕분에 이런 작가도 알아가네요..ㅎㅎ

stella.K 2025-04-02 11:04   좋아요 0 | URL
ㅎㅎ 소설이라고 쓴적 없는데요? 3.1운동 전반을 다룬 일종의 논문 같은 책인데 역시 전공대로 문학사적 관점이 많죠. 나중엔 자신이 이광수를 못 벗어났다는 말도 남기고. 저는 자기 사관이 있어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역시 역사는 다양한 사관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잘 지내시죠?^^

2025-04-02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5-04-02 13:40   좋아요 0 | URL
ㅎㅎㅎ

페크pek0501 2025-04-02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광수는 ‘조선어로 쓰는 조선 문학‘을 적극적으로 개척했고~~˝ - 친일파 이광수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네요. 처음부터 친일파이진 않았을 거라는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만...
역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해야 하는 바, 누구도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쓰는 게 쉽지 않으니 여러 사람이 쓰는 건 환영할 일인 것 같습니다. 독자는 여러 책을 보고 판단해야 하겠고요...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최태성 작가의 <역사의 쓸모>가 떠오르는군요.^^

stella.K 2025-04-02 20:18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보니까 이광수는 우리나라를 너무 비관적으로 본 것 같았어요.
아마 그렇게 보는 친일파도 적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워낙에 힘도 희망이 없었잖아요.
그렇게 일본에 붙어 먹어서라도 살아야 하지 않는가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해요. 물론 간사하게 자기 안위를 위해 친일을 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친일에 대해 너무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책 보니까 이광수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참 부지런히 읽으시네요.^^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요즘엔 영화 보단 드라마를 주로 보는 편인데, 드라마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 가끔은 기분 전환겸 영화도 봐야할 것 같아서.


중국 애니매이션인데 꽤 괜찮은 작품이다. 하지만 보통은 애니매이션이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지는데 과연 어린아이가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굳이 말하자면 인간에게 생명을 빚진 붉은 고래가 은혜 갚는 이야기고, 거기에 중국 철학 장자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네러티브가 좀 복잡하다. 어른인 내가 봐도 조금은 버거운 느낌이다. 그래도 영상은 꽤 좋다. 

이제 중국 애니매이션도 무시 못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2010년. 꽤 오래된 작품인데 사극이라서 그런지 요즘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내용도 좋고, 당대 유명 배우들이 대거 많이 나와줘서 눈호강이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단연 황정민이다. 봉사로 나오는데 칼을 잘 쓰는 무사이면서 욕쟁이로 나오는다. 그런 상반된 캐릭터를 이렇게 잘 구사하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으리만치 연기를 잘한다. 

엔딩 크레딧이 나오고 맨 마지막 장면이 뭔가 방점을 찍듯 하는데 역시 이준익 감독 특유의 노련미가 돋보이는 엔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의 작품이라면 언제나 OK인데 이제야 보다니! 몰랐다. 알았으면 좀 더 일찍 봤을 텐데.

 문득 여기에 나온 배우들의 연기하는 모습을 앞으로 얼마나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안 보이기 시작한 배우들이 몇있던데...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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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5-03-10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봄날에 영화감상 좋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즐겨보시니 몸도 마음도 청춘이라고 칭찬해드리고 싶습니다.
미세먼지만 없어주면 좋겠는데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구요.

stella.K 2025-03-10 20:32   좋아요 1 | URL
ㅎㅎ 솔직히 드라마 보는 일이 고역이죠.
영화는 그냥 2시간 집중해서 보면 되는데 드라마는 아무리 봐도
끝나질 않아요. ㅠ 그래도 왠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다 보는 건 아니고 마음에 드는 걸로만 보지만. ㅋ

미세먼지가 좀 그렇긴하죠? 작년인가 언제 방송을 들으니 그동안
중국과 우리나라 접경 지역에 나무를 많이 심어서 미세먼지를 많이 줄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만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무튼 요맘 때가 가장 조심할 때이긴하죠.
니르바나님도 건강 유의하세요.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5-03-19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신문에서 입수한 정보, 폭싹 속았수다를 볼 예정이에요. 누가 칼럼에 이 드라마에 대해 썼는데 재밌을 것 같아서요. 찾아보니 16부작이더라고요. 길기도 하네, 하며 한숨이 나왔어요.ㅋ 앞에 몇 편 보고 나면 끝까지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이 되겠지요. 황정민, 제가 좋아하는 배우인데 사극으로는 보지 못했네요. 잘 어울릴 것도 같네요.
저는 영화가 두 시간이 넘어 버리면 잘라서 봅니다. 집에서 넷플 볼 때 중간에 화초에 물을 준다든지 과일을 먹는 방법이 있어요. 책이든 영화든 길면 질색인 건 늙어서 그런가 봐요.ㅋㅋ

stella.K 2025-03-19 13:57   좋아요 1 | URL
ㅎㅎ 맞아요. 나이 드니까 그래요. ㅋㅋ 폭싹 속았수다가 그렇게 재밌다면서요? 근데 제가 보는 지니TV에선 안하더군요. 중증외상센터도 재밌다는데.ㅠ 인터넷 말고 TV로 보면 좋은데 일부러 애써 볼려고 하지 않으려고요. 언니 말씀마따나 보는 게 넘 힘들어요. 그냥 인연이 없나보다 해요. 근데 저 어제부터 옥씨부인전 보고 있어요. 뭔가 재밌을 것 같은데 언제 다 보게될지 모르겠어요.ㅠ
저 두 영화 저도 끊어서 봤어요. 이제 영화관에서 영화보는 일 없지 싶어요. ㅋㅋ 기회되시면 한번 보세요.^^

2025-03-27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27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은 절판됐지만 내가 이 표지의 책을 살 때는 작가가 맨부커 상을 받고 난 직후였다. (지금은 작가가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받는 바람에 새로운 표지의 책이 다시 나왔다.) 그제야 난 이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하지만 난 이 책을 사고 난 후에도 쉬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농담이지만) 결국 난 맨부커상만으로도 안 되는구나. 노벨문학상은 돼야 읽는구나 했다.

사실 노벨문학상도 나에겐 언제부턴가 그렇게 큰 의미로 와닿지는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큰 문학상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건 남의 나라 문학상이라고 생각했다. 더 정확히는 우리나라와는 인연이 없고 후보로만 만족해야 하는 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었다고, 정말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나는 노벨문학상을 배출한 나라의 국민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솔직히 얼떨떨했다. 내가 수상한 것도 아닌데 이 느낌은 뭐지? 우리나라는 노벨문학상과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런만큼 노벨문학상은 한강 작가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온 나라의 영광이었던 것이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무엇보다 수상 작가의 작품을 원어로 읽는다는 호사와 자긍심을 갖게 했다. 모르긴 해도 세종대왕님도 뿌듯해하셨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긴 하다. 막상 읽어보니 노벨문학상은 문학상이고, 작품은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그랬다. 처음 읽는 작가의 작품치고 좀 센 작품을 읽은 거라고. 좀 늦었지만 <소년이 온다>나 <흰 > 또는 <작별하지 않는다>부터 읽어보길 추천했다. 확실히 진입 장벽이 느껴지긴 했다. (이게 다 맨부커상 때문이다. >.<;;) 하지만 나도 좀 미안하긴 했다. 난 이 책이 단순히 작가의 소설집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보니 연작 소설집이었다. 그러니까 난 그것도 모르고 샀던 것이다. 적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 는 거 아닌가.

작품이 좀 당혹스럽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효과인 건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인지 읽고 난 후 예전 같으면 화를 냈을지 모르겠는데 '아, 작가가 이렇게 쓰는구나.' 작가가 먼저 보였다. 무엇보다 문체가 상당히 안정적이다. 그냥 단순히 글을 잘 쓴다는 말이 아니다. 그 사건 또는 에피소드를 상당히 잘 구축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건 또 뭔가 끝까지 쓰겠다는 작가의 결기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다. 같은 주제라도 좀 쉬운 방법으로 쓸수도 있지 않았을까? 일부러 어려운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는 생각이 들었고, 왠지 그것은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작가가 일부러 어려운 또는 흔치 않은 방법으로 글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고집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솔직히 그 과정에서 쓰다가 포기하고 싶은 때가 없었을까? 글 쓰다 막히면 포기하거나, 우회하거나, 다음 기회로 미루고 싶은 유혹 세상의 작가라면 다 있을 거라고 본다. 꼭 이 방법이어야 했을까? 다른 방법으로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왜 이 방법으로 밖엔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작가는 무수히 많이 물어보며 썼을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이건 독자로서 작가에게 묻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어떤 작가는 (영감이 충만해서) 내 안에 어떤 목소리가 있어 받아쓰듯 썼다고도 하던데, 왠지 한강 작가는 그렇게 썼을 것 같지가 않다. 이렇게 한 여자와 가족들 처참한 지경에 몰아넣고 신들리듯 쓸 수 있었을까? 오히려 펜이 바늘이 되어 한 땀 한 땀 자기 살에다 새기듯 쓰지 않았을까? 또 그런 과정에서 자주 머릿속이 하애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 작가는 쉬운 방법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분명한 것 같다.

사실 내가 이 작품을 쉬 읽지 못했던 이유는 꼭 어떤 선입견이나 게을러서만도 아니었다. 적어도 90년대 이후 우리나라 문학은 뭔가 편중된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이전 작품들이 다채로웠냐면 그렇지도 않다. 한때 민주화에 몰두했고, 그것이 사그라들자 문학은 사변화되어 인간의 허무나 일탈과 방황을 묘사하는데 급급했다. 게다가 열린 결말이라며 이도 저도 아닌 결말을 보여주는 게 트렌드였다. (물론 그런 중에도 독자적인 길을 간 작가도 없지 않다.) 그러니 연작인지도 모르고 표제작이자 첫 번째 수록작만 읽고 내가 느꼈던 건 잊고 있었던 그때의 문학 정서를 마주한 느낌이기도 했다. 그건 나머지 두 작품을 다 읽었다고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젠 이 작품에 대해 감히 혹평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마음에 맞는 사람 서넛과 술잔을 기울이며 작품을 안주 삼아, 시쳇말로 까대기를 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젠 노벨문학상 작가를 배출한 나라가 되지 않았는가? 그에 맞는 품격을 가지고 작품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작품에 대해 좋은 말을 해 줄 수 없을 것 같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환대를 못 받는다고, 세상 다시없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본토 일본에선 아주 환영받는 작가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테면 작가도 거지 뭐.

그런데 나의 친애하는 한 이웃분께서, 사람들이 폭력을 폭력인지도 모르고 하는 경우가 있다며 사람은 동물을 죽여 먹지만 식물은 남을 해치지 않고 물과 햇빛만으로 살 수 있으니 주인공이 식물이 되려고 하는 게 이해가 간다고 하셨는데 과연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찌 보면 그건 살생하지 않다는 불교의 세계관의 역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자 애초의 당혹스러움이 줄어들면서 이해의 폭이 다소 넓어진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독자는 책을 읽는대서 끝나지 않고 리뷰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의 진정한 책무를 다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자 작가의 작품이 동티가 났다. 그러자 한 간에선 이렇게 품귀현상을 빚으면 뭐 하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중 하나라도 끝까지 성실하게 읽어낼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것이다. 뭐 꼭 틀린 건 아니지만 난 왠지 그게 사실이어도 싫지 않다. 우리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언제 또 원어로 된 노벨문학상 작품을 만져 보겠는가? 책이라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질기고 힘이 세다. 어떤 책은 사 놓은지 10년, 20년 만에 읽게 되는 경우도 있고, 실제로 어떤 책은 나중에 빛을 보고 역주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사 놓기라도 해라 언젠간 읽게 될 테니!

반가운 소식은, 요즘 동네 책방이 의외로 각광을 받는다고 한다. 거기선 여러 가지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람들을 끈다고 한다. (우리 동네는 아직 없다. ㅠ) 그 프로그램 중 빠지지 않는 건 독서 토론일 것이다. 아마도 이런 경사를 계기로 동네 책방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내가 이 작품을 읽은 것도 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이 작품을 읽고 토론한다고 해서 읽은 것이기도 하다. (온라인이라 편한 것도 있지만 약간의 한계도 있긴 하다. 하지만 나름 유용했다.)

노벨문학상을 비롯해 세계 주요 문학상 수상자는 그냥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고 본다. 물론 우리가 입시 치르듯 무슨 상을 바라보고 문학작품을 써서는 안 되겠지만 평소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고 확산되고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토론이 부재해서 지금 국가적으로 얼마나 난감하고 해괴한 일을 겪고 있는지 우리는 너무나 똑똑히 보고 있지 않은가.)

작가가 있기 전에 먼저 독자가 있었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을 통해 우리나라 작가의 위상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단순히 거기에만 머물면 안 된다. 그에 맞는 독자의 품격도 갖춰야 하고, 지금이야말로 독자는 어떻게 문학을 생산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가를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한강 작가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적어도 이 말은 올해 새로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때까지 유효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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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2-24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벨상이건 문학상이건 빈손이건, 누가 알아보아 주면서 크게 기리는 책이 아니라 하더라도, 삶을 밝히고 살림을 노래하는 책이 차분히 고루 읽히는 나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이 터전은 아름다운 나라로 나아갈 만하지 싶습니다.

푸나무는 해바람비흙으로 살아간다고 여기는데, 곰곰이 보면 ‘흙’은 “살덩이라는 몸을 입은 사람과 짐승이 죽고 나서 돌아가는 알갱이”이기도 합니다. 해바람비만 있을 적에는 풀이나 나무가 시들시들하고, 흙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풀이며 나무가 푸르고 싱그럽습니다. 사람과 짐승은 “살덩이라는 몸을 입은 삶”일 적에는 풀도 나무도 낟알도 열매도 다른 작은짐승도 먹되, “살덩이라는 몸을 내려놓고 떠날” 적에는 이 몸을 고스란히 흙으로 돌려보내어 푸나무를 살찌우는 얼거리입니다.

그래서 숲일 텐데, 고기밥이 맞거나 풀밥이 옳다고 여길 수 없다고 느껴요. 그저 이 푸른별에서 온숨결은 서로 다른 몸으로 돌고돌면서 하나인 마음, 곧 사랑으로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고기를 먹든 풀을 먹든, 스스로 사랑인 줄 알아보면서 “나를 둘러싼 모든 이웃(사람·짐승·푸나무)”도 고스란히 사랑인 줄 알아차릴 수 있으면, 걱정이나 멍울이나 생채기란 가뭇없이 녹으리라 봅니다.

그나저나 요즈음 ‘한국문학’은 너무 ‘주제(교훈)’에 치닫거나, 목소리(정의)만 높이거나, 글치레(문장기교·수사법)에 얽매인다고 느껴요. 그저 글꽃(문 + 학)이면 될 텐데, 그저 글꽃인 글이 사그라드는 듯싶습니다.

stella.K 님이 쓰신 이 글자락은 ‘서평’이 아닌 ‘문학’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25-02-24 15:35   좋아요 0 | URL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조금 아까도 여기 들어와 다시 보니 글이 다듬어 지지않아 또 고쳐썼습니다. 잘 모르시겠지만. ㅋ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할 다름입니다. 글꽃이면 되겠다는 숲노래님 말씀 저도 깊이 새겨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니르바나 2025-02-24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훌륭한 소설가의 책은 많은 독자를 만들고,
많은 독자는 또 훌륭한 소설가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가 문학계에도 적용되는 것 아닌가요.
올림픽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따면 물론 선수 개인의 영광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한 선수이기에 온 국민이 축하해주는 것 처럼
한 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도 그런 의미로 많은 사람들이 수상을 축하했다고 봅니다.
스텔라님 같은 좋은 독자를 가진 한 강 작가가 부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stella.K 2025-02-24 18:2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니르바나님! 제가 그동안 격조했죠? 죄송합니다. ㅠ 그렇지 않아도 늘 안부가 궁금했는데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작년 말인가, 올초에 차기작 나올거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직 소식이 없네요. 나오면 니르바나님 일착으로 사실 거잖아요. 저는 신간으로는 책을 거의 안 사는 편이라 저 같은 독자는 한강 작가가 안 좋아 할 겁니다. 니르바나님 같은 독자를 좋아하지.^^

2025-02-28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01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5-03-12 0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벨문학상은 작가 한사람보다 한나라 사람이 다 기뻐하는 일인 듯합니다 한국 작가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은 정말 기쁜 일입니다 한국 사람이어서 원어로 읽을 수 있는, 저는 그런 건 생각도 못했지만 많은 사람이 그것도 기뻐하더군요 노벨문학상 누가 받든 별로 마음 안 썼지만, 지난해에는 달랐네요 좋은 일이 있기도 하지만, 지금 한국은 걱정스럽기도 하죠 좀 나아져야 할 텐데...

stella.K 님 이달 당선작 축하합니다


희선

stella.K 2025-03-15 19:2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희선님과 마찬가집니다. 다음 주 정도면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올모양인데 어떤 결과가 나오든 좀 결과에 순복하는 모습도 좀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요 근래 드라마만 보다가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한마디로 말하면 대만판 '먹방 사랑이 꽃 피는 나무'라고나 할까? 어느 고등학교에 퀸카에게 같은 반 남자아이가 아침밥 조공을 바치는데 그걸 뭐든지 먹기 좋아하는 일명 먹방 소녀가 대신 먹으면서 벌어지는 사랑과 우정을 그린 영화다. 사실 난 요리 영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먹지도 못하면서 눈요기나 하는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다. 근데 여자 주인공이 복스럽게 먹는 장면은 좀 인상적이긴 하다.


대만 영화는 평소 잘 접할 기회가 없어선지 이 영화에서도 좀 낮설었다. 게다가 스토리가 명확히 와닿지는 않았다. 내가 못 따라가는 건지 아니면 영화가 좀 불친절한 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론 따뜻한 영화다.


솔직히 난 로맨스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건 학교 영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예 자막이 없어도 끝까지 봤을 것 같다. 내용과 상관없이 옛 추억에 젖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배우들이 연기는 잘하는데 인물은 좀 빠진다는 느낌이 든다. 학교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건 역시 학교 축제 장면이다. 내내 보면서 난 왜 저 시절을 즐기지 못했을까, 다시 청소년 시절로 돌아가면 끝내주게 잘 살 것 같은데 역시 하나마나 한 소리겠지? 그래도 돌이켜 보면 추억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다. 헛헛할 때 보면 좋긴 한데 너무 빠져서 보진 마라. 그러다 나도 모르게 먹을 것까지 챙겨 먹으면 책임 못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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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12-23 1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영화가 있긴 하지만 책과 영화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저는 책, 이에요. 영화를 보려면 부담스러워요. 두 시간 정도 꼼짝않고 시청하는 게 저는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영화를 오늘 반, 보고 내일 반, 본다면 연결성에 문제가 있을 것 같고요. 책은 오늘 몇 쪽 읽고 내일 몇 쪽 읽어도 앞 내용이 생각나지 않으면 들춰 보기가 어렵지 않은데 넷플릭스 영화는 앞으로 되감아 보려면 내가 찾으려는 장면이 쉽게 나오지 않는 거예요. 영화관에서 볼 땐 더 어려운데, 긴 대사를 놓칠 때 아 나는 독서 체질이야 영화는 어려워, 그런답니다.ㅋㅋ

stella.K 2024-12-23 19:46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제가 드라마로 옮겨 탔다는 거 아닙니까? ㅎㅎ
책 보는 거하고 비슷하잖아요. 1시간이면 충분하고 누워서도 볼 수 있고.
예전에 저의 선생님도 영화를 끊어서 보지 말라고 하셨는데
전 그렇게라도 보는 게 아주 안 보는 거 보다 낫지 않나해요.
또 언니 말대로 꼼짝 안하고 볼 자신이 없으니까 극장도 점점 멀어지더군요.
코로나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안 갔으면 말 다했죠? ㅠㅠ
 
레지스탕스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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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저자의 이름에서 조선의 왕자를 생각했다. 본명일까?

좀 놀라운 건 이 책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2018년에 초판이 나왔고, 지금까지 3쇄가 나왔다. 조금 더 놀라운 건, 그렇게 쇄를 거듭할 때마다 다듬고 살을 붙여 개정판을 냈다는 것. 물론 쇄를 거듭하는 책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리커버로는 나와도 여간해서 개정판을 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난 책에 애정이 남아 있을까? 책을 쓸 때 별의별 고생을 다해 썼다면 다시 쳐다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설혹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책을 보고 대대적으로 손을 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힐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 개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을 것 같다. 개정판을 냈다고 책이 잘 팔릴 거란 보장도 못 하고. 그러니 애써 외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쇄를 거듭할 때마다 그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고, 지금까지 세 번의 작가의 말을 썼다. (모르긴 해도 근성 있는 작가인 것 같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이 작품이 지난 초판이 나온 이래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의 문학 권력자 내지는 유수한 문학상을 주관하는 어느 출판사나 기관으로부터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니 이렇게 빼어나고 훌륭한 작품이 어떻게 그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신인문학상을 비롯한 여타의 문학상은 출판된 지 1년 안의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줄로 안다. 그것도 장편이 아닌 단편에. 그것이 맞는다면 이 작품이 무슨 무슨 문학상을 받을 일은 과거에도 없지만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나는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반면 뭔가 모를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 작품은 소위 말하는 제도권을 벗어나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이 얼마나 레지스탕스적 아닌가?


세상의 모든 작가들 대부분은 문청의 시절을 지난다. 그도 그럴 것이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망은 보통은 그 시기 전후로 갖게 되니까. 그러므로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름하여 성장 문학 한 둘은 쓰기 마련이다. 이 작품의 저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젊은 날에 젊음을 모른다고 노래했던 지금은 중년이 되어버린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젊었을 때 나는 막상 이런 장르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동의할지 모르지만, 이런 작품은 하나같이 우울한 방황과 허무, 섹스, 일탈 뭐 이런 것들로 대표되기도 하니까. 내 삶 자체가 꿀꿀하고 허무한데 굳이 이런 책을 읽어 더 꿀꿀하게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성장 문학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데미안'도 나는 지금까지 두 번쯤 읽었지만 왜 이 작품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수긍은 할 수 있지만 강한 이펙트 같은 건 없지 않나.


이 작품 역시 '데미안'의 그림자가 짙다. 실제로 '데미안'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기도 했다. 좁은 소견이지만 이문열의 일련의 작품도 생각이 났다. (이를테면 '젊은 날의 초상'이나 '사람의 아들' 같은.) 하긴 이쪽 장르의 작품들은 데미안의 사생아들 아닌가. 그러니 이 작품을 젊었을 때 읽었다면 비웃었을지 모른다. 왜 그 시절엔 조금만 뭐가 보여도 모방이니, 아류니 하면서 아는 척 조소하기 좋아하지 않는가. 문학의 'ㅁ'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머리만 커져 모든 게 시큰둥하고 만만하게 보였던 게지. 마치 이 작품의 화자 기윤처럼.


그런데 이 나이 되어 이 작품을 읽으니 오히려 좋았다. 작가가 철학과 역사와 문학을 기반으로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썼을지 알 것 같다. 이 작품의 밑 작업만 4년이 걸렸다니 알만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난 이 작품을 다 읽었을 때 뭔가 모를 허전함과 숙연함마저 느꼈다. 왜 가끔 좋은 작품을 읽으면 이 작품 이후에 무슨 책을 읽을지 막막함이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은가. 그건 여간해서 잘 체험되지 않는데 아주 오랜만에 그런 느낌을 갖기도 했다. 바꿔 말하면, 난 어쩌면 이 작품 이후에 다른 책들이 나의 의식에 틈입해 오는 것을 쉽게 허락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단 생각도 든다.


문장이 좋다. 그렇다고 뼈를 때리고, 가슴을 후비는 뭐 그런 문장이어서 좋았다는 게 아니다. 그런 문장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뭔가 쉽게 잊히면 안 될 것 같은 문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밑줄이라도 거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따라 해 보고 싶은 문장이었다. 그리고 인물이다. 공감이 간다.


사춘기가 되면 부모나 형제보단 친구가 더 중요해진다. 특히 상급학교 진학을 두고 부모와 갈등을 겪으면 더 그렇다. 부모는 가급적 자식이 배경이 되어줄 만한 학교를 진학해 주길 바라지만 기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철이 없어서 이 세상이 학연, 지연 등으로 엮여져 있다는 걸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 더구나 대입도 아니고 고입을 재수한다고? 그건 기윤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지방의 이류쯤 되는 학교에 지원해 다니게 된다. 어떤 학교가 되든 어차피 한 시절 대충 때우다 가는 곳이다.


하지만 학교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걸 곧 알게 된다. 흔히 일진이란 불리는 불량서클에 발을 들여놓은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거기서 일진의 수장인 상민와 친해진 건 따분한 학교생활에 활력이 되고 권력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이를 경계하게 만드는 건 이인자인 관석이다. 그는 알게 모르게 기윤이 상민과 친해지는 것을 방해한다. 상민은 이런 권력의 역학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다 결국 기윤이 일진에서 떨려 나가는 사건을 맞이하는데, 그건 어처구니없게도 상민이 보다 좋은 신발을 신었다는 것에서 발생한다. 한마디로 기윤은 거기에도 엄연한 질서와 조직이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즈음 <데미안>에서 화자인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소개를 하듯, 기윤은 민재를 소개한다. 민재는 기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전학생으로 오면서 이들의 만남은 시작된다. 하지만 기윤에게 민재는 처음부터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부잣집 도련님에,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인 한마디로 재수 없는 타입이었다. (사춘기는 열등감을 이런 식으로 표출할 줄 아는 탁월한 시기이도 하다.)


그런데 그렇게 잘나가는 아이가 왜 이런 지방 소도시 그것도 일류도 아닌 이류 학교에 전학을 왔을까? 특이한 건, 민재는 특별히 친구를 사귀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 늘 책을 가까이하며 홀로의 자유를 고독과 맞바꾼 아이였다. 민재와 가까워지게 된 건, 기윤이 상민이 패거리에서 쫓겨나자 점심시간이면 급식실에서 만나는 것이 불편해서다. 상민을 피해 도서실에 가면 늘 민재는 혼자 책을 읽고 있다.


그렇게 가까워진 민재는 알면 알수록 새로웠고 여느 아이와 달랐다. 이미 그 나이에 깊은 사랑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고, 독서 편력을 쌓기도 했다. 덕분에 기윤은 덩달아 책을 읽고 민재와 가까워지게 된다.


사실 민재를 가장 적확하게 보여준 사건이 몇 개가 있는데, 하나는 학교에 학생과 교사 간의 어떤 소요 사태가 일어났을 때 그가 보여준 행동이었다. 그럴 경우 일반 아이들이라면 세를 결집해서 데모를 하거나 업무를 마비시키고, 고작 기물을 파손하는 정도겠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건 그들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때 민재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학생들 편에 서는데 이른바 프랑스 대혁명 때를 모방하여 학교 측에 몇 개의 반박문을 써서 대자보를 붙이는 대담함을 보인다. 그것이 레지스탕스를 연상케 해 한동안 회자가 되기도 한다.


또 하나는, 그는 문학을 사랑해 시인이 되기를 바랐지만 좌절하고 부모가 바라는 대로 의대에 어렵지 않게 합격한다. 하지만 부모가 바라는 자신은 거기 까지라며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몸을 실을 계획을 세운다. 그는 떠나기 전 기윤에게 선물처럼 자신이 타던 오토바이와 쓴 많은 시중 100편을 추려 기윤에게 맡긴다. 너무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시에 큰 제목이 없다. 나중에 혹시 시집을 낸다면 제목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기윤이 민재가 잘 떠나려니 했는데 뜻밖에도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 민재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슬펐지만 기윤은 민재의 장례가 끝난 후 그를 위해 시집을 출판하기로 한다. 결국 이 책의 제목 레지스탕스는 민재의 시집의 제목인 동시에 그 자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나는 한동안 기운이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기윤에게 그토록 울림을 줬던 민재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고?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충격적이면서 동시에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이내 그를 인정하기로 했다. 민재는 민재로서 민재답게 살다 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스무 살도 채 살지 않은 민재에게 함부로 연민을 갖는 건 오히려 그를 욕되게 하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보단 얼마나 자기답게 값지게 살았냐가 아닌가. 그는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자신이 해 볼 수 있는 것은 다 해 봤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희곡도 써서 자신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래서 신은 그렇게 민재를 일찍 데려갔나 보다. 결국 신도 인정한 삶 아닌가.


그런데 이 책은 기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지나 동창회에 참석했다 우연히 잊고 있었던 민재를 회상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물론 작가의 그런 설정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겠지만, 나라면 민재 같은 친구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보다 몇 보는 앞서 가 삶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해 주는 친구를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외톨이가 될 위기에서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준 친구다. 그런데 기윤은 지난 10년 동안 민재를 잊고 남과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았다는 걸 그때야 비로소 자각했던 것이다. 왜 그런 설정이 필요했을까?


우리의 삶은 기윤과 얼마나 다른가? 나이 들수록 몇 살에 죽더라도 사는 동안 아프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게 대부분의 바람 아닌가? 우리도 기윤이 같이 느끼고 생각하며 나이 들지 않았나? 상민이의 세계를 누구는 동경하기도 하고 누구는 비판하기도 하지만, 우린 어느덧 남들만큼 살자는 게 삶의 모토가 되어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고, 뒤처지고 소외당하는 걸 못 견뎌하지 않았는가? 우린 그런 삶에 마땅히 저항할 필요가 있는데도 오히려 끌어안고 살고 있다. 기윤이 민재를 떠올리는 순간 가슴을 쥐어짜듯 괴로워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어쩌면 독자에게도 기윤이처럼 깨어날 시간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더불어 소설은 어때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여러 의견이 많을 수 있겠지. 그것은 옳고 그름으로 얘기되어 지지 않는다. 이런 소설이 있는가 하면, 저런 소설이 있다. 한동안 치유와 위로를 주는 소설이 유행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강세다. 하지만 역시 궁극의 소설은 이렇게 잠자고 있는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당신은 지금 잘 살고 있느냐고 물어봐 주는 소설이 정말 좋은 소설 아닐까?


이우 작가는 이 책에서 그런 말을 한다. 소설가는 발표한 작품과 무관하게, 처음 문학도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을 때의 순수함으로 사유하고, 탐구하고, 집필하는 존재라고. 작품을 출간해서 소설가가 아니라, 문학에 헌신하여 살아가고 있기에 소설가라고 했다.


올해도 어느덧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가 마감될 때까지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을까? 작년엔 천명관의 발견이 좋았는데, 올해는 이 책이다 싶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될 것 같다. 또한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

남은 한 달도 잘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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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11-23 1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우 작가 youtube에 자기 채널도 운영하고 있어요. 흥미로운 작가이지요.

stella.K 2024-11-23 18:15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한번 들어가 봐야하겠네요. 흥미로운 작가 맞는 것 같습니다. 똑똑한 거 같고요. ㅋ

니르바나 2024-11-23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이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라니까 급땡기네요.ㅎㅎ
한달밖에 남지 않은 2024년도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24-11-23 18:20   좋아요 1 | URL
니르바나님은 안 읽으셔도 되지않을까요? 더 좋은 책 읽으시잖아요.ㅎㅎ 그래도 뭐 젊은 작가들 응원 차원에서 읽으시겠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ㅎ
세월 참 빠르죠? 니르바나님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물감 2024-11-26 2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데미안>을 포함해 이런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비교적 건강하시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전에 누군가에게도 그랬었는데, 방황하는 사람만이 헤세를 찾고 읽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또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서 이런 장르들에 많은 위로를 얻었어요. 하지만 반대로 건강한 사람들처럼 나도 시큰둥했으면 좋겠다고 누누히 생각했고요. 그래도 별다섯 주신걸보니 정말 잘쓴 책인가봅니다 ㅎㅎ

stella.K 2024-11-27 13:39   좋아요 2 | URL
앗, 그런가요? 사실 이런 장르 답을 주진 안 잖아요. 니가 답을 찾아라는 식이죠. 어찌보면 겸손한 것 같고 어찌보면 무책임한 것 같고. 이 작가에 대한 평이 좋더군요. 이 책 독일에도 팔려 나가고 나름 잘 나가는 작가더군요. 자기는 매년 장편 한 권씩 낼거라는데 그 패기도 맘에 들고. 당분간 지켜보고 싶은 작가예요. 기회되면 함 읽어 보시길! (사실 민재 죽는데 눈물이 찔끔.. 나이 드니까 눈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일단 안구건조증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듯요. 😆 )

고양이라디오 2024-11-27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먼가 흥미로운 작가와 흥미로운 책이로군요! 찜해놓고 갑니다ㅎ

페크pek0501 2024-11-29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작가를 발견하는 것이 우리 같은 사람에겐 큰 기쁨이지요. 저도 맘에 드는 작가를 만나면 그의 모든 작품을 읽고 싶어지곤 해요. 전작 읽기를 하고 싶지만 우리의 인생이 짧은지라 시작하게 되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몇몇 작품을 읽으려고는 합니다. 확실히 각자 독서 취향이 있어요.

stella.K 2024-11-29 21:14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맛에 책 보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도 이 작가 다 보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주요작은 좀 보려고요.
마침 중고샵에도 있더라구요.^^

2024-11-30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1-30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03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