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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테의 사람들
민혜 지음 / 디멘시아북스 / 2023년 9월
평점 :
디멘시아 문학상이라는 상이 있다고 한다. 벌써 5회째를 맞이했고, 이 작품은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문학상은 치매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사회적 이해와 공감을 촉진하기 위해 지난 2017년에 처음 제정되었다고 한다.
이런 문학상이 있다니 좀 놀랍기도 했고 반갑기도 하다. 문학이 해야 하는 역할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회의 외지고 그늘진 면을 밝히는 것도 그중 하나가 아닌가. 하지만 막상 이 책을 읽으려니 마음이 좀 무거웠다. 아무리 문학의 역할을 운운해도 내용 자체가 유쾌한 건 아닐 테니. 그래도 염려한만큼 그렇게 무거운 건 아니고 생각할 거리가 있기도 하다. 엔딩도 그만하면 희망적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치매 당사자 보다 그를 돌봐야 하는 가족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읽힌다.
난 아직 가족이나 친척 중 치매에 걸린 사람은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엔 상대적 개념이 수반될 것이다. 이를테면 치매에 걸릴만큼 오래 살지 못하거나 가까운 사촌 이내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는 게 좀 더 정확한 말이 될 것 같다. 아는 사람의 누가 걸렸다는 소식은 간혹 듣기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많다는 치매 환자를 실제로 본 적은 없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치매 환자에 대한 관리를 잘하고 있어 그런 건가?
책은 치매에 걸린 노모를 돌보는 비혼의 어느 나이 많은 여성의 고단한 삶과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너무 사실적이어서 처음엔 혹시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가 했다. 읽고 있으면 남 얘기 같지가 않다. 나도 이미 고령에 접어든 노모가 있고 언제부턴가 걱정할 때가 많아졌다. 아직 비교적 건강하신 편이긴 하지만 언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지 모르고, 나 역시 더 이상 젊지는 않으니 내가 노모를 제치고 먼저 치매에 걸릴지 알 수 없다. (글을 노트북으로 쓰고 있는데 올해 유난히 오타가 심해졌다. 치매일까. 예전에 비해 총기도 떨어지고.ㅠ)
우리나라는 아직도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어 치매에 걸린 부모를 시설에 맡기는 걸 부담스러워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게 몇 년 전 기사였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핵가족화 되어가고 있고, 자식에게 짐되는 거 싫다고 오히려 시설을 선호하는 부모도 늘어나고 있지 않을까.
작품에도 나오지만 고대 로마에선 노인을 '데폰타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모시기 힘들어진 부모를 다리 위에서 떠민다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고려장의 또 다른 의미인 것 같다. 어떻게 부모를 그럴 수 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당시는 효나 윤리 이전의 시대라면 또는 사회 복지를 논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면 아무 죄책감 없이 행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그 시절엔 치매라는 용어도 없지 않았을까.
노모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주인공도 노모가 죽기를 바라지 않던가? 도덕과 윤리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게 솔직한 인간의 마음이다. 짐승도 무조건 새끼를 위하지 않는다. 흠이 있거나 병약하면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하물며 짐승도 그러는데 사람 그것도 자식이 그런 생각을 갖는 건 당연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더 잘 모시라고 무조건 효자라고 떠드는 건 그 사람을 두 번 상처 입히는 일이 아닐까.
치매뿐만 아니라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면 당사자도 그렇지만 이를 돌봐야 하는 보호자의 삶의 질도 함께 떨어진다. 더구나 현대 사회는 모든 사람을 경제활동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24시간 함께해 주는 가족은 없다. 그럴 바엔 간병인을 쓰거나 시설에 맡기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당장 나부터도 내가 아프면 가족의 도움을 받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감기나 어딘가 다쳐서 잠시 도움을 받는 거라면 모를까 나을 기미가 없는 병에 가족을 볼모로 잡는다는 건 나 자신이 용서를 못 할 것 같다.
사실 그렇더라도 가족이라고 마음이 편할 리는 없다. 그냥 치매에 걸린 가족을 시설에 맡겼다는 것뿐이지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주인공이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내친김에 간병인을 쓰고 누리는 그 며칠 간의 자유란 과연 어떤 느낌일까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누군가는 이런 자식을 두고 치매 걸린 부모가 병원에 누워 있는데 집에서 어떻게 자유를 만끽할 수 있냐고 나무라는 보수적이다 고지식한 남의 집 노인이 있을까. 모르긴 해도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문학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분야가 아니다. 실존의 문제를 다룰 뿐이다.
치매 환자와 보호자의 삶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이들을 보는 제삼자의 태도도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모녀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주인공을 걱정하고 위로해 주려고 하는 외삼촌과 주인공의 친구(선자?)와 (껄떡대는) 초등학교 동창에 마음이 갔다. 이런 사람이 있는 한 보호자는 지쳐 쓰러질지언정 나 몰라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 몸과 정신은 정말 복잡하고 신비해요. 치매란 끔찍한 병 같지만, 실은 가면을 벗겨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감춰진 인간의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서 그렇게 놀랍고 당혹스럽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죠. ...... (중략) 치매란 인간이 삶으로부터 느끼는 공포나 긴장, 괴로움 등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니까요.(170p)"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치매에 대해 너무 몰랐고 막연하게 두려웠다. 나를 잃어버리는 병 아닌가. 분명 치매 환자를 돌본다는 건 힘들고 어려운 일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렇다면 현재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줄 수도 있지 않을까. 모르긴 해도 그런 소통과 이해가 어디선가는 하고 있을 거라고 본다.
수상 소감에서 저자는 공모 소식을 듣고 마감 두 달을 앞두고 글을 썼다고 한다. 무조건 써야겠다는 충동에 의해서.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작가는 늘 정해진 루틴에 의해서 글을 쓴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런 강한 충동은 또 그런 루틴에 의해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육감이 그런 거 아닌가.) 그럴 땐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그런 저자의 대담한 글쓰기가 부럽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이유를 알 수 없는 후각과 출생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치매를 다루려는 시도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장편이어서일까? 조금 더 치밀하고 복선이 더 많이 깔렸으면 하는데 뭔가 서둘러 마무리되는 것 같아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이 문학상은 다른 문학상에 비해 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문학성을 지향하는 여타의 문학 상보단 치매를 알리고자 하는 공공의 목적이 더 강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충분히 그 목적을 이루었다고 본다. 앞으로 이 문학상이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