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G TV에 월정액을 한 달간 무료로 볼 수 있는 쿠폰이 생겨 그동안 못 본 영화를 몇 편 챙겨 보았다. 한 일주일쯤 지난 것 같긴한데 앞으로 몇편이나 챙겨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반려견을 키웠던지라 마음이 짠해질 것 같아 영화를 보는덴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도 일단 내가 유인석을 좋아하고 코미디라 부담없이 봤다. 하지만 이야기의 깊이는 없다. 그냥 유기견을 만들지 말자는 캠페인 정도로 보면 좋을 것 같다. 예전에 <퀼>이란 일본 영화를 본 적있는데 그거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구나 싶다. 유인석과 차태현이 업치락 뒤치락하는 건 볼만하다.  


브랜든 프레이저가 누군지 내가 모르는 배운 줄 알았다. 그런데 한참 생각하니 오래 전에 이 배우가 나온 영화를 본 것 같다. <조지 오브 정글>이란 영화. 오래 전 본 영화니 기억도 잘 안 나지만 저렇게 살이쪘으니 못 알아보는 수 밖에. 그때만해도 날렵했는데.


특수분장을 했고 실제로 살을 좀 찌웠다고도 했던 것 같다. 말에 의하면 브랜든은 거의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휩쓸고 제 2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남우주연상을 다고해서 크게 기대하고 보면 실망할 수도 있는데 그런 기대없이 보면 그럭저럭 볼만하다.


우린 이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 귀를 기우릴 필요가 있다. 먼저는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겠지만 그도 한계는 있을 것이다. 


워낙에 거구라 조금만 움직여도 땀을 비 오듯이 쏟는다. 병원엘 오지 않으니 의사가 정기적으로 방문을 하는가 본데 친구처럼 잘 지낸다. 가끔은 찰리의 넓은 어깨에 기대기도하는데 뭐 영화니까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땀냄새 장난 아닐 것 같다. 특히 겨땀은. 어떻게 참고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을까 싶다.ㅋ


최근에 본 영화중에 가장 실망한 영화다.

탕웨이를 좋아해 기대를 많이했는데 역시 난 봉준호는 좋아해도 박찬욱은 좋아할 수가 없다. 내가 아무리 탕웨이를 좋아해도 박찬욱을 이길 수 없다는 교훈만 얻었다. 결국 보다 엎었다. 박찬욱은 나에게 '공동경비구역 JSA' 거기까지라고 생각한다. 난 이제 탕웨이 아냐 탕웨이 언니가 나온다고 해도 박찬욱이 만든 영화는 안 볼꺼다.


비교적 오래된 영화긴 한데 화가 클림트에 관심이 있다면 꼭 보라고 추천한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클림트에게 이런 과거가 있었다는 게 좀 놀라웠다. 물론 클림트는 나오지 않는다. 영화만 보기엔 좀 난해할 수도 있다. 클림트에 대한 예비 지식을 갖고 본다면 의미있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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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6-21 14: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좋은 영화 많이 보셨네요.
한달 무료면 아직도 시간이 남아 있으니 재미있게 영화감상 하세요.
따지고 보면 월정액을 내니까 무료라는 것도 공짜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G TV는 한달에 이용료가 얼마나 되나요.

stella.K 2023-06-21 18:00   좋아요 1 | URL
제가 알기론 기본 요금이 3만원인 줄 알고 있어요.
저희는 이것저것 결합상품이어서요. 정확히는 잘...
그런데 말씀하시는 것처럼 사실은 무료가 아니죠.
그래도 가끔 TV쿠폰도 넣어주고 이렇게 무료 월정액을
주는 건 첨 있는 일은 아닐까 싶어요.
저도 몇년 전에 월정액 써 봤는데 그게 다달이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3개월, 6개월, 1년 이렇게 단위별로 쓸 수 있게 되있는 것
같더라구요. 물론 영화비 정도로 거의 무제한으로 볼 수 있긴한데
어떤 건 안 되는 것도 있어요.
그리고 괜히 돈 아깝다고 열심히 보게 되니까 다른 일을 못하겠더라구요.
이것도 무료니까 보는 거지 일부러는 못 보겠더라구요.ㅋ
대신 요즘엔 그동안 못 본 최신 영화를 볼 수 있어 좋긴하더군요.
네. 그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나리자 2023-06-24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어질 결심> 대본이 블로그에서 엄청 보였던 것 같은데 그 영화인가요?
탕웨이가 나오는군요. 많이 실망하셨나봐요.ㅎ
저는 넷플에서 가끔 드라마를 보는데 최근엔 어쩌다가 중국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데 동양이라 그런지 우리와 비슷한 감성이구나, 했네요. 재밌어서 아껴가며 조금씩 보고 있어요.ㅎ
주말에 좋은 에너지 충전하시길 바랄게요. stella.K님.^^

stella.K 2023-06-24 19:20   좋아요 1 | URL
그니까요. 저도 많이 보여서 꽤 괜찮은줄 알았는데 탕웨이 거니까 왠만하면 참고 봐줘야하는데 박찬욱은 정말 용서가 안되더군요. ㅋ 다음 사이트에 엄청 욕을 많이해 놨더군요. 그러고 보면 서양사람들 꽤 동양에 대해 묘한 신비감을 갖는 거 같아요.
고맙습니다. 모나리자님도 좋은 주말보내십시오.^^

얄라알라 2023-06-26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어질 결심

만족스럽지 않으셨나봐요

저는 그 영화를 극장, 심야 극장에서 무서워하면서 보았던지 꼭 1년이 다 되어가네요

stella.K 2023-06-26 14:05   좋아요 1 | URL
엇, 무서우셨어요? 박찬욱 감독이 그로테스크한 면은 있지만 무서운건ᆢ하긴 좀 몇몇 장면은 좀 거시기하긴 하죠? 더구나 심야에 보셨다니 좀 그랬겠어요. 근데 심야영화가 하긴하는군요. 전 심야에 주로 자기 때문에 좀 낮설어요. ㅎㅎ

2023-06-26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26 1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천명관의 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 2권 초반부에 보면,  주인공 권도운이 짝사랑하는 연인이자 에로 배우인 원정이 유 회장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오밤중에 술기운을 빌어 그의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가 그의 똘마니로부터 봉변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딴 이유는 없고, 원정이 자꾸 유 회장에게 전화해 귀찮게 구니 정신 차리게 해 준다는 명목이다.


 옛 애인이든 그의 똘마니든 뭐든 지간에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봉변을 당하는데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도운이 일찍이 이소룡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고, 어설피 배운 무술을 연마한 몸으로 무사히 악당의 (자신의 애인을 위험에 빠트리는 사람은 다 악당이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손아귀에서 벗어나 둘은 원정의 오피스텔로 간다.


 사실 그때 도운은 70년대 무술영화의 인기를 등에 업고 충무로 영화판의 으악새 배우(주인공의 옆발차기 한 대로도 으악하며 죽어가는 엑스트라 배우)로 자리를 잡느냐 못 잡느냐 하던 때이기도 했다. 즉 몸을 낮추고 조용하고 겸손하게 지내야 하는 때란 말이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원정의 옛 애인인 유 사장은 영화판을 접수한 거물급 인사고 따라서 그의 똘마니들을 건드려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건드려서 좋은 건지 나쁜지는 나중 일이고 당장은 그의 똘마니들에게 원정을 구했다는 것에 안도한다. 그러나 그도 잠시, 원정이 봉변을 당할 때 입은 상처 때문인지 아니면 버림받은 설움 때문인지 눈물을 터트린다. 그러자 도운이 말없이 으악새 배우들의 필수품인 안티푸라민을 조용히 꺼내 원정의 얼굴에 발라준다. 원정이 처음엔 이를 거부한다. 그 특유의 냄새 때문에. 그러자 도운이 멍든덴 최고라며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얼굴에 발라준다.  


 영화로 봤다면 어디서 본듯한 클리셰라고 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책으로 읽으니 그도 나쁘지 않다. 더구나 전혀 멋지지 않은 도운이 그렇게 심각하고도 섬세하게 나오니 분위기가 웃기면서도 묘하게 젖어든다. 


그런데 문득 안티푸라민의 용도가 궁금해졌다. 멍든데 최고라고...?

안티푸라민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6, 70년대 가정상비약으로 이 약을 비치해 놓지 않은 집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의 용도는 모기에 물렸거나 넘어져 무릎이 까졌을 때 빨간약 대신 바르는 거 아닌가? 하지만 새삼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검색에 들어갔다. 그 결과 정확히는 소염진통제의 일종이었다. 그걸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이렇게 관심이 생긴 것도 관절이나 근육이 예전만 같지 않으니 그쪽 계통에 관심이 생기는 것이다. 예전에 팔팔한 근육을 가졌을 때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 안티푸라민의 개발 일화도 있었다.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회장이 아내 호미리 씨가 유한양행 건물 2층에 소아과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당시 한국에는 연고의 개념이 없어서 아이들의 타박상이나 염좌상(흔히 삐끗하거나 접질렸을 때)에 마땅히 발라 줄 약이 없었다고 한다. 이에 호미리 씨가 당시 막 신설된 유한양행 학술과에 건의해서 만든 약이 안티푸라민이라고 한다.  참고로 안티푸라민은 유한양행에서 최초로 자체 개발한 약품으로 올해가 100주년을 맞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약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약이다. 


나는 안티푸라민이 그저 미국의 바셀린을 본떠 만든 약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바셀린과 안티푸라민은 좀 다르다. 바셀린은 한마디로 화상 같은 피부 외상 치료에 주로 사용되는 약이다. 


안티푸라민은 그 이름도 적절해 보이는데, 반대를 뜻하는 안티(anti)와 염증을 뜻하는 인플래임(inflame)을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 이게 또 군부대에도 들어간다고도 하니 역시 이건 어린아이들을 위한 약만은 아니었다. 군부대에 들어갈 정도라면 확실히 실제 으악새 배우들도 썼을 법하겠다.  


그런데 안티푸라민은 그렇게 6, 70년대는 대세였지만 이후로 비슷한 류의 약들이 경쟁적으로 나오면서 급격하게 우리의 뇌리 속에서 사라져 갔을 것이다. 난 정말 이 약이 이제 안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까지 손흥민을 앞세워 CF가 나오기도 했으니 우리가 기억을 못 하고 있을 뿐 그건 항상 있어왔다. 아무리 만병통치약이라고도 세월을 이기는 약은 없는가 보다. 


그런 안티푸라민을 도운이 떨리는 손으로 원정에게 발라줬다니 확실히 상대의 마음을 훔치고도 남았을 것 같다. 게다가 때를 놓치지 않고 시크하게 한마디 한다.


- 그리고 보니 많이 닮았네요.

- 뭐가?

- 여기 그림에 있는 여자 하고요.

그러면서 도운은 연고 뚜껑을 들어 원정에게 보여준다.

기억하는가? 버드나무 상표 아래 간호사 캡을 쓴 여자의 얼굴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무엇을 본들 그 사람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평소 쟁반같이 둥근달에도 그 사람이 보이는 법이다.  

그러자 원정은 도훈에게 평소 숙맥인 줄 알았더니 아부하는 재주도 있다며 그를 춰준다.

이쯤 되면 안티푸라민은 누구에겐 사랑이겠다. 도운이 발라주는 안티푸라민과 함께 육체의 상처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참고로 안티푸라민에 얽힌 내 어린 시절 속된 추억 하나를 얘기하자면, 난 그것을 립글로스 대용으로 사용했다. 물론 그건 입술 튼데 바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절 당대를 주름잡았던 여자 가수들이 어느 날 TV에 나왔는데 입술에 무엇을 발랐는지 반짝반짝 윤이 났다. 그러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게 어찌나 육감적이던지 나도 발라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게 뭔지도 몰랐고 설혹 알았다 해도 엄마가 어린 나에게 그런 걸 사 줄리 없다. 화장품의 일종일 테니. 꿩 대신 닭이라고 안티푸라민이라도 바르고 나는 남이 안 보는대서 하춘화나 정훈희를 흉내 내며 나만의 백일몽을 꿈꿨다. 

하지만 역시 원정의 말처럼 안티푸라민의 냄새는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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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6-17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안티푸라민보다도 호랑이
지름이 ... ㅋㅋㅋ

브루스 리, 1권은 읽은 것
같은데 2권도 읽었는지 가
물가물하네요.

stella.K 2023-06-17 10:29   좋아요 1 | URL
ㅎㅎ 매냐님 그럴리가요. 6,70년대 유년시절을 보냈다면 안티푸라민 세대입니다. 우리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쓰셨겠죠.ㅋ
2권은 1권에 비해 재미가 좀 없긴하지만 이야기의 힘은 전혀 빠지지 않더군요. 이만하면 가히 괴물이다 싶어요. 천명관 작가.

서곡 2023-06-17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입술에 바세린 추천드립니다 ㅎㅎ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stella.K 2023-06-17 11:21   좋아요 1 | URL
립크린이 없을 때는요. ㅎㅎ 고맙습니다. 서곡님도 좋은 주말보내시기 바랍니다.^^

기억의집 2023-06-17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세대의 안티푸라민 대단했지요. 바세린과 더불어~ 저도 요즘 무릎 관절이 안 좋아 병원 다녀요. 나이가 들긴 드나봐요. 나이 드니 관절이 힘들어 합니다!!

stella.K 2023-06-17 20:55   좋아요 0 | URL
백번 이해합니다. 저도 몇년 전 아파서 병원에 다녀댔죠.
좀 서글픈 생각도 드는데 아프니까 관절에 좋은 약이 뭔가 자꾸
찾아보게 되요. 그러다보니 새롭게 알게 된데 안티푸라민이구요.
몸조심해요. 내 몸 내가 위해줘야지 누가 위해주겠습니까?ㅠ

니르바나 2023-06-17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의 책이야기를 보니 천명관의 이 소설이 더 재미있게 보이네요.
안티푸라민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주 가끔씩 멘소래담 로션과 번갈아요.

stella.K 2023-06-17 21:08   좋아요 1 | URL
니르바나님 젤 첫번째로 댓글을 쓰실 뻔하지 않았나요?
무슨 얘긴지 좀 궁금했는데...ㅎㅎ
북풀에는 댓글이 완전히 지워지지가 않고 흔적이 남거든요.^^

니르바나님은 아직도 쓰시는군요.
저는 몇년 전까지만해도 멘소레담 썼는데 그것 보다 더 강력하고
손에 약 묻히지 않고 바를 수 있는 젤형으로된 파스를 쓰고 있죠.
붙이는 파스는 피부가 가려워서요.
제가 어느새 이렇게 되버렸답니다. ㅠㅋ

아, 저 이제부터 천명관 팬되기로 했습니다.
오늘 2권 다 읽었는데 재미에 뭉클함까지
갠적으로 올해의 부커상에 감사해요.
천 작가 부커상 후보되지 않았다면 이 책 언제 읽었을지 몰랐어요.ㅋㅋ

2023-06-17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18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 상반기가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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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6-15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올해 상반기 잘 지내셨네요.^^
조용히 지나간다고 하시니까요.
세상사에 마음이 어지럽지 않은 것만해도 얼마나 다행스런 일입니까.
그저 가만가만 조용조용히...

stella.K 2023-06-23 20:27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저 조그만 다이어리 가름끈을 보니까 문득 상반기가 지나고 있다는게 느껴져서요. 초반에 쓸 때 참 안 움직인다 했거든요. 근데 어느새 중간에 와 있어요. 남은 반도 무탈하게 지나가길 빌뿐입니다.^^
 

지난 수요일 모처럼 아는 지인을 강남역에서 만났다. 지인을 만난 것도 오랜만이고, 강남역 자체를 나간 것도 오랜만이다. 강남역에 나가면 무엇이 있는가? 내 마음의 성지(?) 중고샵이 있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간다고 강남역 나가면 거의 빼놓지 않고 가는 곳이다. 그런데 정말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갈 것 같지? 지나간다. 자랑은 아니지만 생각해 보니 지난 코로나 기간 동안 중고샵을 들렸던 기억이 없다. 한 번 있었나? 


역시 엔데믹은 위대하긴 하다. 사실 코로나 중에도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근데 가면 또 책을 살 텐데 자제하느라 핑계대고 안 갔던게지. 그런데 이번엔 좀 이유가 있긴 하다.


요즘 작가 천명관이 부커상을 받느냐 안 받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인데 그래서일까? 오래 전에 이 책을 사 놓고 안 읽고 있다가 분위기에 편승해서 얼마 전부터 읽고 있다. 근데 이 작가 한마디로 美친 작가다. 어쩌면 그렇게 글을 잘 쓰는지.

요즘 다른 책은 거의 읽지도 않고 이 책에 빠져있다. 그러다 보니 뭐 전작을 할 건 아니고 그래도 주요작은 읽어야지 하는데 마침 <유쾌한 하녀 마리사>가 중고샵에 있다는 걸 알고 그걸 사기 위해 간 것이다. <고래>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건 그리 급한 건 아니니 꿩 대신 닭이다.



오랜만에 들린 중고샵은 좀 바뀌어 있었다. 예전엔 입구에 들어서면 카운터 맞은편에 큰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걸 치우고 매대를 늘려서 더 많은 책을 비치해 놓았다. 테이블은 어디 갔나 했더니 저~어쪽 구석에 있다. 테이블은 없어진 걸까 했더니 그렇게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싶다. 서점에 앉을 자리 하나 없다면 그건 빵점짜리 서점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중고샵이라고는 하지만 진짜 중고책은 거의 없고 빤닥빤닥한 철 지난 새책이 중고책으로 놓여져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 책을 정가 보다 싸게 살 수 있는 건 좋긴 하지만 이런 새책을 중고책이라 할 수 있을까? 결국 밀리고 밀려서 여길 온 건 아닌가. 묘하게 마음이 쓰린 느낌이 든다.


그런 와중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봄,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원작은 어떨까 궁금해 적어도 1권은 사 봐야지 했는데 마침 중고샵에 나왔다. 물론 중고샵엔 전권이 다 나와있다. 그런데 마주하는 순간 책이 제법 위용있게 생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 봐야지 했는데 실물을 보니 앞으로 더워질 텐데 내가 이런 책을 붙들고 있을 수 있을까 갑자기 회의가 밀려와 결국 눈에만 담고 사지는 못했다.


그 책을 보면서 새삼 세상엔 책을 열심히 쓰는 작가가 정말 많구나 싶었다. 이 책의 작가도 이런 두꺼운 책을 한 권도 아니고 5권이나 냈으니 얼마나 열심히 썼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조만간 언제고 사 봐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1권만이라도. 예를 표하는 의미에서. ㅋ


 이민진 작가의 책도 눈에 띄었다. 그 유명한 <파친코>도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1권만 있어 사 볼까 하다 결국 구매력이 떨어져 사지 않았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두 권 다 있었는데 어떨지 몰라 덥석 사기는 뭐했다.


지인과의 만남 시간이 다가와 오래 있지는 못했는데 나오기 전에 청소년 세계 문학전집이 꽂혀 있는 게 보였는데 책이 제법 예뻐 보였다. 이 나이에 청소년 문학 전집을 읽을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면 한 번 사 볼까 했는데 아쉽게도 그 책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왠지 그렇게 보고만 있는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가 만일 다시 사춘기로 돌아갔다면 이 책을 좋아라하고 샀을 것 같다.

 

분명 같은 문학이어도 어린이를 위한, 청소년을 위한 눈높이의 문학이 있어야 하니 그 과정에서 작품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문학을 원문 그대로 읽는 것이 가능할까? 또 그래야할 필요가 있는 걸까? 의문스럽기도 하고. 


아무튼 오랜만에 서점 나들이는 좋았다. 책은 온라인에서 클릭해 사지 말고 발품 팔아 사라던데 나도 그 말에 기본적으로 동의 하지만 얼마나 나의 발이 움직여줄지 장담할 수 없다. 이미 싸놓은 책들도 많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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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6-05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중고샵 나들이 하셨군요.^^
중고가 되었건 신간이 되었든 간에 책이 많이 있는 서점에 들어서면
몸에서 도파민이 나오는 것은 저만 그렇지 않을거예요.
좋은 책을 쓰는 좋은 작가가 정말 많지요.
서가나 매대 앞에 서면 다들 부지런히 써대고 있구나 감탄하게 됩니다.
봄에 꽃만 상춘하는 게 아니고,
서점에 가면 저처럼 스텔라님도 꽃본듯이 책을 보셨겠지요.
참, 올해 부커상은 불가리아 작가가 수상했답니다. 천명관 작가, 아쉬워라~

stella.K 2023-06-05 09:44   좋아요 1 | URL
아, 발표가 됐군요. 워낙에 글 잘 쓰는 쟁쟁한 작가가 많으니. ㅠ 그래도 천명관 작가는 정말 글을 잘 쓰더군요. 계속 책을 내줬으면 좋겠어요. 한 댓권내고 작가 인생 종치는 작가도 있던데 그러지 말았으면 해요. ㅋ
네. 정말 꽃 본듯 했어요. 사실 다리가 아픈 것도 한몫했죠. 다 갱년기죠. ㅋ 지금은 다행히도 많이 좋아져서 나들이 길이 더 좋았습니다.^^

책읽는나무 2023-06-05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천명관 작가님 아쉽네요.
전 <고래>는 들고 있는데 안 읽었고, 도서관에서 <나의 삼촌 부루스 리>시리즈는 빌려 읽었었거든요. 정말 재미나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스텔라 님은 <키다리 아저씨> 좋아하셨군요?
갑자기 책의 제목만 들었는데도 옛 시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stella.K 2023-06-05 18:53   좋아요 1 | URL
아뇨. 키다리 아저씨를 못 읽었어서요.
그래서 제 청소년기가 부실했나 봅니다.ㅠ
지금이라도 읽으면 도움이 될까하여...ㅋㅋㅋ
정말 그 앞에 서는데 뭉클하더군요.ㅠ

천명관은 재미있다는 정도가 아니예요.
정말 서사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킥킥대로 읽고 있는지 몰라요.
덕분에 요즘 뽕 맞은 느낌입니다.ㅋㅋㅋㅋ

페크pek0501 2023-06-06 16: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천명관 작가에게 주목해야겠군요.
우리 동네에도 알라딘 중고샵이 있는데 꾸며 놓은 공간도 깔끔하고 책도 깔끔해요. 새 책 같아요.
저는 한번만 빠르게 읽고 팔아서 새 책이라 믿었는데 그게 아닌가 보네요.

stella.K 2023-06-06 19:19   좋아요 1 | URL
물론 그런 책도 있겠죠. 하지만 그냥 새책이 더 많을 거예요.

소설에서 중요한 건 서사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엔 문체를 많이 따졌는데 앞으로는 서사가 좋은 작가가
대세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해요.
천명관을 이제야 알아봤다는 게 좀 미안할 정도예요.
꼭 한번 읽어보세요.^^

얄라알라 2023-06-13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래>는 아예, 인기가 너무 많아서 도서관 예약 순위도 안 오네요^^
다른 책부터 읽는 것도 방법이네요. stella K님처럼^^

stella.K 2023-06-13 10:09   좋아요 0 | URL
앗, 정말요? 그게 역주행을 하는가 봅니다. 2004년도에 나온 작품인데. 아무래도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니. 사실 전 고래도 샀어요. 마침 중고샵에 최상품 있어서요. 리커버판 사고 싶었는데 그냥 최상품에 만족하기로하고. ㅋㅋ
 

오늘 알라딘 고객센터에 <소설가의 공부> 파본에 대해 변상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 보았다.

솔직히 전에도 고객센터에 이런저런 일로 문의를 해서 만족한 답변을 얻은 경우가 거의 없어 이번에도 그냥 넘어 갈까 하다가 혹시 또 의외의 결과를 얻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무슨 소리하나 들어나 보자고 문의를 해 봤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혹시나 했다 역시나 였다. 

나는 그냥 복잡하지 않게 이 책을 샀을 때 주문번호와 증빙서류로 책의 찢어진 부분을 찍은 이미지와 간단한 설명이면 뭐 깔끔하게 같은 책으로 (그것이 새책이든 중고책이든) 받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겠다 싶었다. 

헉, 그런데 웬걸. 그렇게는 할 수는 없고 반품을 원하면 접수를 받겠단다. 나는 그게 첨엔 새책을 보내주겠다는 뜻인 줄 알아 좋아라 했다. (우리가 글을 정확히 읽는 것 같아도 의외로 오독할 때가 많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접수를 하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으니, 일단 포장을 두고 접수한 날로부터 1일에서 3일 이내로 기사님이 방문할 거란다. 그후 환불은 7일에서 10일내에 환불을 받을 수 있단다. 

어머, 환불 기다리다 숨 넘어가게 생겼다. 

그전에 포장을 해야하고, 기사 방문 때까지 꼼짝없이 집에 붙어있어야 한다니. 잘하면 화장실도 못가게 생겼다. ㅠ 어차피 책을 반품 받아도 폐기할 거면서 그런 절차를... 그래서 반품을 할까말까 잠시 망설였는데 이미 접수를 했다니 철회해 달라는 것도 좀 그런 것 같아 그냥 내버려 뒀다. 

게다가 알라딘은 중고 상품 품질 문제로 인한 별도의 보상정책은 마련되어있지 않단다. 아니, 중고샵이 생긴지가 언젠데 보상정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건가. 중고샵을 이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데 나중에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심했나 싶기도 하다. 물론 같은 상품을 받으면 좋겠지만 환불이면 된거 아닌가. 환불조차도 안 해 준다면 난리법석를 치겠지만 그게 최선 아닌가.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잘못 사면 직접 물건을 들고 가서 같은 물건으로 바꿔 오던가 환불해 오지 않는가. 근데 온라인에서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저 나의 입장만 생각하면 포장하고, 사람 기다리고, 환불 기다려야 하고 그게 넘 부담스러운 것이다. ㅠㅠㅠㅠㅠ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진상 고객이 됐다. 

근데 또 생각해 보면, 아무리 문의라고 하지만 문자로 알아보려고 하니 뭔가 점점 말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문구가 있으면 이봐, 이봐 하면서 꼬투리를 잡으려고 한다. 그러니까 아예 이런 일을 만들지 않도록 하면 좋지 않은가.

그래도 노력하느라고 하는데도 인간이 하는 일이니 실수가 없을 순 없겠지. 물론 내가 알라딘의 20년된 고객이지만 회사의 입장에선 주문서류와 사진만으로 나를 어떻게 신뢰하겠는가. 어디 되도 않은 이미지 끼워넣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새책 보내달라고 하면 보내주겠는가.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아니지만 나라도 안 믿을 거 같긴하다.

앞으로 모르긴 해도 알라딘 중고샵은 이런 일에 더 촉각을 곤두 세울 것 같다. 글치 않아도 조금의 흠만 있어도 매입하지 않기로 유명한데 나 같은 진상 때문에 책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못 파는 일이 벌어질까 그도 좀 염려스럽긴 하다. 


그런데 고것이 궁금하긴 하다. 어디나 진상고객은 있게 마련인데 알라딘도 있지 않을까. 언젠가 전화응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쓴 무슨 에세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제목이 기억이 안 나네. 갑자기 그 책이라도 읽고 싶어진다.           

어쨌든 오늘은 내가 실수한 거 같다. 누군지 나를 응대해 줬던 고객센터 직원분께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내가 여기에 이렇게 밝히는 건, 다른 알라디너도 참고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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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5-30 23: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찢어진 책, 정확히 말하면 상품가치도 없는 책을 알라딘에서 구매시 제대로 검수를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물론 그런 책을 알라딘에 중고 판매한 인간은 정말 악질이구요. 그런데 문제의 책을 모르고 구매한 스텔라님 스스로 진상 고객이라고 자책까지 할 이유가 있나요. 그저 환불받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불편한 점은 참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환불받는 기간이 7일에서 10일까지 걸리지 않습니다. 무슨 외국과 거래하는 것도 아닌데 그럴리 없습니다. 그래도 알라딘 중고거래에 찢어진 책이 거래되는 나쁜 예가 있다는 것을 환기시켰다는 측면에서 스텔라님께 공이 있다고 봅니다.^^

stella.K 2023-05-31 10:02   좋아요 2 | URL
앗, 니르바나님이 뿔낫다! ㅎㅎ
맞아요. 어쩌다 재수없어서 하고많은 책중에 그런 것을 골라서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ㅠ 환불기간 넘길고. 환불받아도 똑같은 책을 살거같지도 않고. 옛날같으면 빡친다고 그랬을텐데 이상하게 저도 나이가 드는지 그 직원분도 일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다시 생각하게되더라구요. 백프로 만족이 어딨습니까. 그냥 늦게라도 환불 받으면됐지요. ㅋ
근데 정말 이런 일은 다시없었으면 합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yamoo 2023-06-02 1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파본에 대한 변상보다는 불량 번역본에 대한 변상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불량 번역을 해 놓고 읽은 흔적이 있다고 절대 바꿔주는 법이 없어요. 이런 건 어디서 하소연해야될지..

stella.K 2023-06-03 19:53   좋아요 0 | URL
그건 역시 서점 소관은 아니죠? ㅎㅎ
번역협회 같은 곳이 있다면 그런 곳에 하소연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별로 받아 줄 것 같진 않죠? ㅠ

얄라알라 2023-06-13 10:03   좋아요 1 | URL
yamoo님 제기하신 문제, 알라딘에서 좀 키워서 얘기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중요한 말씀이십니다!

페크pek0501 2023-06-03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환불이 된다니 다행입니다. 저는 그것도 안 되는 줄 알았어요.
옷은 환불이 안 되는 경우가 많고 다른 옷으로 교환만 되잖아요.
진상 고객은 절대 아니올시다...ㅋㅋ

stella.K 2023-06-03 21:04   좋아요 1 | URL
오, 그런데 아직 좋아하긴 이른 것 같습니다.
좀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네요.
어제 환불 받았는데 오늘 뭐가 소멸됐다면서 돈이 확 빠져나갔어요.
그 소멸이 뭐에 대한 소멸인지도 밝히지도 않고.
빡칠려고 그래요. 또 무슨 이유를 댈지 궁금하네요.
월요일이나 되야 이유를 알겠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가지고 있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드네요.
줄친 곳도 많은데.
지네들이 검수 잘못한 걸 왜 애꿎은 저 같은 고객이 피해를 봐야하는 건지
모르겠네요.ㅠ

하긴 진짜 진상은 따로 있겠죠?
이를테면 자기 의견 관철될 때까지 대자로 누운 사람같은.
그 사람도 첨부터 그러진 않았겠죠?
얼마나 많이 당했으면 그럴까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