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본의 아니게 몇편의 영화를 몰아서 봤다.
지난 한 주간 동안 G TV에서 가치봄 영화를 결제없이 볼 수 있는 이벤트를 했는데 난 그걸 금요일 밤 잠자기 전에 알았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괜찮은 최근 한국 영화를 원없이 볼 수 있었던 기회였는데 많이 못 봐서 아쉬웠다.
본 영화 중 최고는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물론 이 영화는 오래 전부터 영화 전문 채널에서 방송해 주긴했지만 끝까지 눈에 불을 켜고 볼 자신이 없어 보기를 밀어뒀다. 그러다 이번에 볼 수 있어 얼마나 좋던지.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좋다. 단지 좀 우려스러운 건 이제 이준익 감독은 컬러로는 영화를 안 만들건가 하는 것과 전기 영화 같지 않은 전기 영화를 만들건가 하는 거다. 이러다 자기 스타일에 빠져 예술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설경구의 연기도 볼만했지만 이정은과 변요한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 옮길 순 없지만 가끔씩 툭툭 튀어 나오는 명대사도 좋고. 정말 정약전은 자신어보를 어떻게 썼을까 궁금해진다.
한때 이 영화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아서 궁금하긴 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 궁금증을 풀었다. 일단 나쁘지 않았다. 독립영화스럽긴하다. 독립영화라면 저예산에 상상력의 자유로움 아니겠는가. 장국영이라 우기는 귀신이 찬실이 자취하는 집에 산다는 설정부터가.ㅋ
솔직히 뭘 가지고 찬실이가 복이 많다는 건지 모호하다. 그나마 우연히 알게된 연하의 영화감독과 연애에 성공했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고. 영화에서 보여준 거라곤 성공 못한 사람은 연애도 못한다는 그렇고 그런 통념을 역시 뛰어넘지 못했다. 고작 영화가 보여주는 건 영화 감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영화가 엎어지고 인생이 뭐냐고 한탄하다 결국 없는 희망을 짜내어 다시 영화의 길을 간다는 (그것도 프로듀서였지 아마?) 다소 억지스럽고 자위적인 내용이 다다.
그나마 다소의 리스크를 안고 장국영이라 우기는 귀신을 과감하게 기용했다는 것이 나름 주효했던 것 같기도 하다. 김영민이 정말 장국영을 연상시켜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 배우가 심상치 않았는데, 나는 이배우를 나의 최애 드라마인 <나의 아저씨>에서부터 봐왔다. 민소매 런닝셔츠에 사각 팬티를 입고 맘보춤은 장국영의 트레이트마크 아니던가. 그 패션은 따라하되 맘보춤은 추지 않는다.
그래도 이 영화를 좋게 보는 건, 찬실이 역을 맡은 강말금의 역도 좋았지만, 특별출연처럼 출연했던 윤여정이 찬실이 자취하는 집 쥔할머니로 나와줬다는 거다. 이미 오래 전부터 주류영화에서 잔뼈를 키워왔던 윤여정이 이런 독립영화에 기꺼이 출연을 허락했던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여튼 그녀는 너무 멋진 배우라고 생각한다.
왠지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을 것 같고, 찬실이는 감독의 페르소나 일 것 같다. 감독이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만들었겠구나 싶기도한데 스토리가 역시 좀 아쉽다.
강하늘의 나오는 영화는 다 좋(옳)다.
불만 아닌 불만이라면 전반적으로 사춘기의 첫사랑의 감성이 있다는 거고, 이제 이런 영화에 강하늘은 마지막 영화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강하늘이 얼마 전 드라마에 나오던데 등급이 있더라. 그런 것으로 봐 좀 다른 면모를 보여주지 않을까 싶은데 조만간 볼 생각이다. 암튼 이 영화는 아기자기한 청춘 영화다. 강하늘 좋아하고 청춘 영화 좋아하는 사람에게 강추다.
사랑은 눈이 멀다. 사랑엔 눈이 없다.
뭐 그런 실상을 보여주는 영화라고나 할까? 그냥 엎치락 뒤치락하는 그렇고 그런 로코 영화는 아닐까 싶었는데 의외로 가면 갈수록 꽤 괜찮은 영화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감독이 조은지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알고 있는 그 조은지 배우 맞나 했더니 맞다. 오래 전부터 조연으로 감초 연기를 도맡아 왔던 배우다. 언제부턴가 TV엔 뜸한 것 같았는데 감독으로 나오다니. 새삼 반갑고 감독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다니 달리 보게 만든다.
뭐 로코인만큼 재미는 보장한다. 그런데 눈여겨 봐야하는 건, 주인공 김현(류승룡 분)을 좋아하는 유진 역의 무진성이다. 여기서 유진은 남자다. 그렇다. 유진은 소위 말하는 게이다. 그것도 늙다리 소설가이자 대학 강사인 김현을 좋아하는. 김현을 좋아해 그가 다니는 대학에 들어왔고, 김현이 1년을 쉬자 덩달아 휴학계를 쉬고 다시 대학 강단에 복귀하자 그도 복학을 하는 집요한 사랑꾼이다. 사실 겉으로만 멋있어 뵈는 소설가지 알고보면 갈수록 글도 못 쓰고 첫번째 부인과 지금의 부인과 엎치락 뒤치락 삼각관계다. 그것도 모자라 사춘기인 전 부인이 낳은 아들과도 그다지 좋은 관계도 아니다. 그것도 부족해 이번엔 게이가 자기를 좋다고 쫓아 다니니 확실히 웃픈 인물이다 . 그도 같이 좋아하면 좋겠지만 김현은 동성을 좋아 할 마음이 전혀 없다. 그러니 골치가 아플 수 밖에. 그나마 유진이 악마적 속성을 가진 인물이라면 좋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상당히 반듯하고 좋은 감성도 가졌다. 관객인 내가 봐도 꽤 매력적이다.
솔직히 난 성적으론 보수적이고, 동성애를 다룬 작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동성애자를 혐오해서라기 보단, 난 가끔 드라마에 동성애를 슬쩍슬쩍 다루는 걸 보면 오히려 더 화가난다. 그걸 만드는 사람은 동성애를 옹호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의식있는 사람인가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싫다. 물론 처음엔 어느 정도 약발이 먹힐 수도 있겠지만 자꾸 그러면 오히려 동성애자들만 더 이상하게 만드는 꼴이 되는 건 아닌가 싶고, 그런 일방적인 되다만 장면을 보여주는 것 보다 이 영화에서처럼 차라리 문제제기를 보여주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그러므로 서로를 이해의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동성애자들 중엔 유진이처럼 반듯하고 매력적이기만 하겠는가. 하지만 무조건 같은 성을 같은 사람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는 이상한 인물로 그리는 거 같은 동성애자가 봐도 기분 나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영리하게 보여줄 것만 보여줬다는 생각이 든다. 나 같은 사람이 보고 나서도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깔끔한 느낌을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밖에 몇 편의 영화를 보다가 말았다. 역시 뭔가를 한꺼번에 몰아보는 건 내 취미는 아닌 것 같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