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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大기자, 연암
강석훈 지음 / 니케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박지원이 스스로를 기자라고 한다고 했을 때 난 좀 얼떨떨했다.
그렇다면 난 이제까지 그를 무엇이라고 알고 있었을까? 실학자겸 문장가 아니었나? 소설가라고도 하고. 그것은 또 허균과 얼마나 많이 헷갈리던가. 기자가 그리도 오래된 직업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일기도 했다. 기자는 우리나라엔 적어도 20 세기 초에나 생겨난 직업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연암은 무려 1780년 건륭제의 70회 생일을 맞아 진하 사절단으로 북경으로 갈 때 자칭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것은 또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거의 1 세기나 앞선 것이기도 했으니 긍지를 가져도 좋을만하겠다. 기자라는 직업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기자가 쓴 글을 좋아해서 이 책을 읽었다.
기자가 쓴 글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내가 읽은 건 문학이나 출판 분야에 한정되었으니 이렇게 역사적 인물을 대상으로 쓴 글은 이 책이 처음이다. 게다가 저자는 중국 특파원이(었)다. 그러니 기자로 본 연암 연구라고나 할까. 책이 제법 묵직하다. 저자가 왜 주제를 그렇게 잡았을지도 알 것 같기도 하다. 중국 특파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으니 과연 기자로서의 연암을 추적하고 싶었을 것이다. 더불어 기자는 과연 어때해야 하는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연암은 1737년(영조 13년) 음력 2월 5일 처사 박시유와 함평 이 씨(?) 사이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조부 박필균은 지평, 교리 등 벼슬을 했지만 아버지 박시유는 벼슬에 별 뜻을 두지 않고 조용히 살았다고 한다. 때문에 연암은 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연암 역시도 과거를 포기하기도 했으니 그 점은 아버지를 닮은 듯도 하다. 또 그게 과거를 볼만한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는 과거 시험장에서 답안을 쓰긴 했지만 내지는 않고 과감히 그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고 한다. <과정록>을 보면 그가 쓴 고체시가 하도 기이하고 뛰어나 친구들이 그것을 외웠을 정도라고 하니 가히 천재급 아닌가.
그는 왜 그랬을까. 원래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 그의 목표가 아니었다. 그렇게 하므로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무언의 항거 수단이었고 그러한 저항을 통해 양반 사회의 이중성과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진정한 선비 정신으로 가다듬고자 했을 것이란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 시절이나 이 시절이나 입신양명은 보통 사람의 한결같은 꿈인가 보다. 연암이 멋있는 건, 그는 타고난 배경과 학식이 있음에도 그것에 매이지 않고 자유했다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연암이 생각하는 기자는 어떤 사람일까.
읽다 보면 그가 술을 부어 먹을 갈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딱 이것만 읽으면 멋과 풍유가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그렇진 않다. 그때 하필 물이 없어 급한 대로 술을 썼던 것이다. 급하게 기록해야 할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에게 필수인 적자생존이란 말은 최근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 아니구나 싶다. 그나마 가까이 술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도 없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인간의 기억이 그리 오래지 못하고 누구는 7초 이상을 가지 못한다는 말도 있던데, 먹이 어디 7초 안에 갈아지는 물건이던가. 휘발되는 자신의 기억력을 어떻게 부여잡았을지 말이 좋아 멋이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에 비해 현대에 들어와서 아날로그 시대 땐 수첩과 볼펜을 썼을 것이고, 지금은 스마트폰을 필수 도구로 사용할 것이다. 과연 기자의 적자생존이 그 옛 시대보다 나아졌는지 기자들에게 물어볼 일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고사성어가 있긴 한가 보다. 말안장에서 붓과 벼루를 꺼내 술로 먹을 간다는 뜻의 손주마묵. (그런데 한자사전에선 찾을 수가 없다. ㅠ) 과연 낭만적이다. 연암이 풍유 정신과 적자생존의 정신은 모두 갑이었으니 둘 다 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이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연암의 기자 정신과 글쓰기 정신이다.
그중에서도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연암이다.
기자들 사이엔, 'Something about everything, everything abdut something'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기자는 모든 것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하고, 어떤 것은 모두 알아야 한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어찌 보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 같기도 하다. '모름지기 기자라고 하면 정치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어떤 분야에서라도 예측 불허의 뉴스거리가 발생하면 언제든 취재할 수 있는 일정 정도의 상식과 교양이 필요하며 달팽이 촉수처럼 늘 안테나를 세우고 기사를 취재할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너럴리스트로서의 기자다. 그리고 이것의 진가는 열하일기가 보여준다.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연암은 어떠한가. 앞서, 과거에서의 제출하지 않은 시험답안을 친구들이 외울 정도라고 했던 것처럼 연암은 박학다식 박람강기(다양한 책을 읽고 기억을 잘함)의 스페셜리스트였다. 대형 르포르타주인 열하일기의 큰 주제는 바로 신진 문물제도 도입과 이용후생을 통한 부민 강국을 모색하는 '조선의 국부론'이었다. 그런 만큼 연암은 탁월한 경제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기자는 과연 어떠한가. 연암 같은 기자 어디 없냐고 찾는 것이 아니다. 과연 오늘날의 기자에게 자기 전문분야는 있는지, 일부러 자기 분야 외엔 다른 것엔 일체의 관심을 갖지 않으려는 우물 안의 개구리는 아닌지 모르겠다. 또 그것은 기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인이라는 사람일수록 외골수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통섭을 외치기도 한다.
오늘날의 기자를 두고 사람들은 기레기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그만큼 기자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가짜 뉴스도 많아졌고, 직접 보고 발로 뛰기보다 인터넷 어디선가 있을 법한 기사를 자기 구미에 맞게 살짝 고치고 자기가 쓴 양 하는 기자도 많다고 한다. 또한 진실을 파헤친다는 미명 하에 오히려 싸움을 부추기거나 사람의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보도도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내 주위엔 신문과 뉴스 안 보고 산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골치가 아프다는 거다. 그때마다 기자는 한숨을 지을 것이다.
물론 세상에 이런 기자만 존재하겠는가. 분명 좋은 기자도 많을 것이다. 매스컴이란 게 워낙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다 보니 부풀려지고 때문에 좋은 글을 쓰는 기자의 글이 묻힐 때도 많을 것이다. 어떤 기자가 됐건 기사의 기술만을 배우지 말고 기자의 정신을 배웠으면 좋겠다. 연암은 나라의 부국강병과 실사구시를 추구하며 글을 썼다. 어떤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항상 발로 뛰며 현장을 중시했다. 그저 지면이나 겨우 채우는 것 같으면 그 사람은 기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한마디로 연암에게서 배웠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기자 역시 여느 작가 못지않게 글 쓰기 노하우를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연암은 법고창신의 작법을 강조했다. 즉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그는 법고만 있어도 안 되고, 창신만 고집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글을 쓰기를 격려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암의 시대에도 남의 글이나 베끼거나 글의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사실 오늘 날도 글쓰기에 관한 책들은 노하우만을 전수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아 그 밥에 그 나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글 쓰기에 관한 책은 잘 골라야 한다. 가급적 노하우는 글 쓰기 초보 때 읽고 이렇게 옛 선인들이나 창작의 정신에 대해 다루어 놓은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의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이건 나도 잘 안 된다.ㅠ)
고백하자면 난 지금 이 책을 다 이해하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한 3분의 1이나 이해했을까?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못한지도 모르겠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두 마리 토끼를 염두했다. 기자의 글을 좋아한다고 했던 만큼 저자의 글을 즐기고 더불어 연암도 알게 되는.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건 저자가 글이 못 써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연암에 대한 이해가 일천해서다. (솔직히 저자가 조금 더 풀어썼다면 하는 욕심도 없지 않다.) 그래도 내가 저자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건 저자가 정말로 연암을 좋아하는가 보다. 그리고 그런 저자의 자세가 좋았다. 누군가 닮고 싶은 모델이 있어 그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건 단순히 기술만을 추구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제고 여유를 가지고 다시 한번 정독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