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왕 줄 것 같으면 좀 더 일찍 줄 일이지
드디어 노벨문학상이 어제 발표됐고, 오늘은 아무래도 그에 대한 관련 기사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올해는 아니 에르노가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예전에는 웬 듣도 보도 못한 작가가 되는 게 거의 상례다시피했는데 근래엔 이렇게 알거나 알 수도 있는 작가가 되기도 한다. 그게 그만큼 출판사와 번역자들이 발 빠르게(?) 움직여줘서 일 수도 있지만 (꼰대같은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독자와 수상 작가가 그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은 아닐까란 생각도 해 본다. 솔직히 아니 에르노는 중년 독자는 알아도 2, 30대들은 그게 누구냐고 하지 않을까.
아무튼 아는 작가가 수상자로 선정이 되니 새삼 노벨문학상이 친근해지는 느낌이고, 왠지 하루키가 될 날도 얼마남지 않겠구나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인지도나 유명세로 봤을 때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암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니 에르노는 경험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녀를 가리켜 자전 소설가 또는 오토픽션 작가라고 한다. 난 솔직히 이 작가가 과연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을까? 좀 회의적이었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작가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오토픽션은 그닥 인기있는 장르는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이게 새삼 이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프랑스는 개인주의와 평등의 나라 아니던가. 그런만큼 개인이 존중 받는 나라이기도 할 것이다. 또 아니면 문학에 편견을 두지 않는 나라일 수도 있고.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떤가. 겉으론 개인주의를 표방해도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이기도 하다. 이런 나라에서 과연 아니 에르노 같은 오토 픽션이 환영 받을 수 있을까. 게다가 문학을 이해하는 폭이 그리 넓지도 못하다.
개인적 경험이 중요하긴 하겠지만 어떤 독자가 읽기에 따라선 공감도 안 되고 지루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작가는 같은 개인적 경험을 얘기하더라도 찰지게 잘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작가들 중 개인적 경험을 쓰지 않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작가는 먹히고 어떤 작가는 먹히지 않는 건 정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독자는 기승전결이 확실한 걸 좋아하지 자칫 고양이 풀 뜯어 먹는 것 같은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만 지루하면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고가 바로 튀어 나온다.
그런데 이게 참 웃긴게 독자의 입장에선 지루할 수 있는데 작가가 되면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거다. 개인의 경험을 얘기하는 것만큼 쓰는 사람의 입장에선 중요하고 재미있는 게 없을텐데 왜 독자들은 관심을 안 갖는지 모르겠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것처럼 가성비 좋은 글쓰기도 없을 텐데. 출판하기도 쉽지 않고. 또 그래서 블로그 같은 개인 가상 공간이 중요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난 이번 에니 아르노의 수상이 꽤 인상적이란 생각이든다. 모르긴 문학을 보는 독자의 눈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노벨문학상 좀 짖궃다 싶은 생각도 든다. 원래 대부분의 문학상이 그렇긴 하지만 이 상은 현존해 있는 작가에게 수여한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 80이 넘었다. 어마어마한 상금을 받아도 쓸데가 없을 것 같다.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다닌다면 몇번이나 다니려나? 이왕 줄 것 같으면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줄 일이지 이렇게 나이 먹어 주다니 안타깝다.ㅠ
그나저나 나는 아니 에르노의 책을 읽는다면 <칼 같은 글쓰기>를 읽고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은 오래 전에 절판되었다. 일반 중고샵에선 엄청 비싼 가격으로 나와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모르긴해도 이번 수상을 기념해서 다시 복간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프랑스가 좀 부럽긴하다. 벌써 몇번째 수상자를 배출한 거냐?
우리나라는...? 말해 뭐해.ㅠ
2. 곽 작가는 복도 많지
노벨문학상으로 떠들썩 하던 중 대조적으로 곽재식 작가의 기사가 눈에 띈다.
이제 곽재식 작가는 유명해서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을 것 같다. 그가 언젠가 단편선을 냈었나 보다.
물론 그건 아니다. 적어도 지금만큼 유명하지 않을 때 그래도 워낙 열심히 쓰는 작가니 소수의 팬덤을 거느리게 되었나 보다. 그러다 어떤 팬이 그가 여기저기에 게재했던 단편소설을 그러모아 책을 내 같은 팬들과 함께 나눴다고 한다. 그게 300부 정도 됐다고 하던데 그런 고마운 팬이 있다니 곽 작가는 복도 많다 싶다. 게다가 미국의 듀크 대학에 있는 퍼킨스 앤 보스토크 도서관에 이 책은 관리번호 005447749번으로 등록되어 서가에 꽂혀 있다고 한다. 물론 어떤 경로로 그렇게 태평양 건너에 있게 되었는지는 그도 잘 모른단다.
실재로 난 그의 단편선이 나온 줄 알았고 이젠 하다하다 사람들이 워낙에 책을 안 사니 특별히 1쇄랄 것도 없고 300부만 찍는가 보다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이것도 방법이겠다 싶기도 하다. 일단 300부면 나오자마자 희귀본이다. 나는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고, 이걸 서재에만이라도 알려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물론 잠시지만. ㅋ 그런데 그렇게 되면 어떤 식으로 배포를 할지 모르겠다. 아무리 서점이 안 된다고 해도 전국에 있는 서점이 300군데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뭐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그런데 그는 자신이 열심히 글을 쓸 수 있었던 방법에 대해 말한다.
그는 크게 성공한 작가는 대체로 책을 많이 쓰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이유는, 책으로 많은 돈을 벌면 굳이 책을 여러 권 안 써도 먹고 살 수 있으니 그렇다는 것이다. 뭐 그렇지 않더라도 책이 큰 성공을 거두면 적어도 대개는 다음 책도 그에 버금가는 좋은 책을 쓰겠다는 각오로 글을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큰 성공을 거둘 만한 글을 준비하기는 그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완전히 망한 작가도 책을 많이 쓰게 되기는 어렵다. 현실만 놓고 봐도, 창고에 책 재고가 잔뜩 쌓여 있는데 출판사들이 책을 또 내자는 제안을 할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설령 다른 기회가 생겨도 작가 본인 역시 쉽게 글에 또 손을 대기가 쉽지 않다. 자신감이 모자라기 때문이고. 열심히 글을 썼는데,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고 별다른 평가도 받지도 못했다는 느낌을 받으면 아무래도 예전처럼 또 글을 쓰기란 어렵다.
그런데 성공한 작가와 망한 작가 사이에 어중간하게 책이 팔린 작가가 되면 글을 꾸준히 계속 많이 쓰게 되는 듯하다. 책이 적당히 팔린 것을 보면, 약간은 용기도 나고 약간은 아쉬워 약이 오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정도 쓰면 그래도 망하지는 않는구나 싶어 비슷한 힘으로 글을 더 쓸 자신을 갖게 된다고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음번에는 어떻게 조금만 더 잘하면 정말 좋은 책을 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의욕을 갖고 새 일을 잡게 된다고. 바로 그런 어중간한 범위에 있기에 끊임없이 책을 썼다고.
과연 그렇겠구나 싶다. 성경에도 보면, 나를 너무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요케도 말아 달라는 기도가 있는데 대입해 보면 그런 의미가 있겠구나 싶다. 작가라는 직업이 참 묘해서 겉보란이 많긴하다. 하지만 정말 작가는 너무 가난해도 안 되고, 부요해도 안 된다. 문득 노벨문학상 수상자들 그거 받고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긴 하다. 헤밍웨이는 그거 받고 자살하지 않았나? 그런 거 보면 잠시 부러워하다 마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작가는 명예다.
지금까지 난 곽재식의 책은 단행본으로 이 책을 읽은 것이 유일하다. 그것도 그가 유명해지기 바로 전에 읽어 그가 이렇게 유명해질 줄은 몰랐다. 제목이 특이하고 재밌어 읽었다. 내용도 재밌긴 했다. 다시 읽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까?
아무튼 난 이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그저 열심히 쓰는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곽 작가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