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일본서점대상 수상기념 리커버)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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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레임이 천천히 돌아가는 착한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소설 쓰기가 읽기 보다 쉽지 않은데 서점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잘 풀어 나갔다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나의 과거에 두고 온 서점 출입기도 떠올리게 돼서 나름 가슴 따뜻한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독서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지만 본격적으로 서점을 출입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였다. 그전엔 학교 앞 문구점에 어린 문고를 낱권으로 팔아 굳이 서점까지 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 시절 내가 살던 동네 시장 근처에 서점이 두 곳이 있었다. 서점은 특별한 인테리어나 장식이 거의 없이 책들을 무조건 천장까지 높이 쌓아 놓고 팔았다. 손님들이 자주 찾는 베스트셀러는 가까이에 두고, 없을 것 같은데 있는 책은 주인이 사다리나 의자를 놓고 올라가 뽑아 주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가끔 책과 책 사이에 낀 책을 뽑다가 실수로 책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머리나 손목 또는 발목을 다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주인은 안 아픈 건지 아픈데 참고 있는 건지 알 수는 없는 표정으로 책을 손님에게 넘겨준다. 그런 걸 보면 난 가끔 무슨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책을 넘기다 손을 베였다는 건 잘 믿기지 않지만 책한테 두들겨 맞는 건 너무 이해가 간다. 요즘은 그런 광경은 헌책방이나 가면 볼 수 있으려나?


학교 시험이 끝나거나 주말이면 난 습관처럼 서점에 들르곤 했으니 결국 서점 두 곳 중 하나가 나의 단골 서점이 되었다. 서점 주인아저씨는 풍채가 좋고 후덕한 인상으로 조카 대하듯 나를 편안히 맞아 주었다. 서고같이 단조롭기는 했지만 매장이 좀 큰 편이었다. 책을 사면 손님이 괜찮다고 하기 전까지는 무조건 책표지를 서점 로고가 찍힌 포장지로 싸 주는 것이 관례였다. 일종의 서비스다. 바로 그 틈을 타 주인아저씨와 책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때 아저씨는 한비자를 비롯해 동양 고전에 심취해 있었고, 독서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아저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낮에 서점을 가니 아저씨가 자작을 하고 계셨다.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한잔해."했다. 난 당연 거절했고 아저씨 역시 진짜 권할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어서 와의 다른 인사는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렇게 이물 없이 나를 대해주셨던 서점 아저씨가 생각이 난다.


그렇게 나의 단골 서점과의 인연은 거의 10년 가까이 이어졌던 것 같다. 그동안 서점은 한 번의 이사를 해 더 넓은 매장과 그에 걸맞은 인테리어를 갖추기도 했다. 하지만 난 그 10년 중 2, 3년은 안 다녔던 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동네가 있는 구(區)에 지하철역에까지 큰 서점들이 거의 경쟁적으로 생겼다. (전에 큰 서점은 종로나 광화문에 있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큰 서점에 가면 그만큼 책 구경을 더 많이 할 수 있으니 발길이 멀어진 것이다.


그러다 오랜만에 들렀는데 아저씨는 여전히 계셨고 특별히 오랜만에 왔다고 환영해 주는 법도 없었다. 그냥 지난번에 오고 또다시 와준 조카 대하듯 여전히 서글서글하게 대해 주셨다. 난 그게 좋았고, 어쩌면 아저씨는 내가 발길이 뜸해질 줄 알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 단골은 일순간 멀어질 수는 있어도 결국 돌아오는 게 단골이란 걸 아저씨는 알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이 폐업을 했다. 그곳이 서점이었다는 흔적만 아직 남아 있지 그 많던 책들과 주인아저씨와 가끔 보던 주인아줌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나마 그 흔적도 조만간 사라질 운명이었다. 난 좀 놀랐다. 그럴 것 같으면 미리 언질이라도 해 주실 일이지 갑자기 이게 뭔가, 비록 나이는 어려도 단골인데 내가 그렇게 아무런 존재도 아니었나 섭섭했다. 하지만 이내 아쉬운 생각을 거두었다. 내가 한동안 안 다닐 때도 말하고 안 다닌 건 아니지 않는가. 이것 역시 평소 아저씨의 스타일의 하나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모르긴 해도 그동안 아저씨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힘드셨을 것이다. 그렇게 대형서점들이 잇달아 오픈을 하는데 그런 동네 서점이 무엇으로 버틸 수 있었을까. 책을 좋아하면 책만 읽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책이 좋아 서점을 꿈꾸기도 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책을 더 못 읽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도 한때 막연하게 서점을 꿈꾼 적이 있었는데 그 말 듣고 꿈을 접었다. 그 아저씨도 그러지 않았을까. 이제 해 볼 건 다 해 봤으니 책이나 원 없이 읽어보자며 그만둔 것은 아닐까. 난 그저 아저씨의 무사안일만을 기원했다. 살아오면서 느끼는 거지만 인연이란 언제 맺어져서 언제 헤어지는지 모르게 헤어지는 게 인연인 것 같다. 인연이 있다면


뭐든 크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위용을 자랑했던 대형서점도 권불십년일까. 가히 서점 거리라고 해도 무방할 그 대로변의 큰 서점들이 10년을 못 버티고 문을 닫거나 축소 경영을 했다. 책 안 읽는 민족으로 유명한 나라에 그렇게 경쟁적으로 큰 서점을 연다고 해서 책 읽는 민족이 될 리가 없고, 무엇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아무래도 인터넷 서점 앞에 맥을 못 췄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큰 서점들이 온라인으로 전환한 것이 아닐까. 변화에 대처하는 종만이 살아남는다고 하지 않던가. 대형서점들이 온라인 서점의 등장을 예측하지 못했을 거라고 보지 않는다.


확실히 인터넷 서점은 매력적이긴 했다. 그 매력에 대해선 여기에 구구하게 쓰지 않아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을 테니 생략한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책을 구매한다는 것만 아니라 더 정확히는 그와 연계되는 블로그나 SNS는 매력 정도로 얘기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거야말로 가히 혁명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전에 누가 감히 책을 권했던가. 일반인들은 감히 상상도 못했다. 물론 아는 지인끼리야 정보 공유와 선물을 하지. 그러나 어디에 대고 감히 이 책 좋으니 한 번 읽어 보라고 권한단 말인가. 그건 소위 셀럽들이나 하는 일이고 당연히 그들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것을 일반인들도 블로그나 SNS에 익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추천을 할 수 있게 됐다. 또 이를 통해 파워블로거 또는 인플루언서가 양산되기도 했다. 지금은 이런 게 너무 잘 알려져서 실감을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혁명이라 부를만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책을 읽게 된 건 현실도피의 이유가 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병원에 입원을 했었고 2 학기를 통째로 날려 먹었다. 이후 다니던 학교를 계속 다녔다면 좋았을지 모르겠는데 그 사이 우리 집은 이사를 했고 전학은 불가피했다. 새로운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학업을 잘 따라가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짜리 계집아이가 현실을 도피한다면 어디로 하겠는가. 이것밖에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도 없겠다 싶었다.


책을 읽으니 새삼 깨달은 건 세상엔 책 읽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 우리 집에서도 책을 읽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고나 할까. 그나마 아버지가 신문과 시사 잡지를 돌아가시기 전까지 읽으셨지만 당시만 해도 잡지나 신문은 독서 행위에 포함시키지 않는 분위기라 그렇게 따지면 내가 유일했다. 그에 대한 자부심도 작지 않았다. 더구나 학교에서는 독서를 장려하지 않는가. 그러다 보니 책을 많이 읽으면 굳이 학교를 다닐 필요가 있을까란 의문을 갖기도 했다. 실제로 난 학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겨우 마쳤다.


블로그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도 그 점을 지적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것에 나 역시 쉬 동의하지 못하겠다. 물론 비슷한 취향과 관심을 가진 블로거들만 모인 곳이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교육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자식들 공부에 좋다는 건 뭐든 다 시키는데 설마 독서를 제외했다고 보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 초등학교 때 부모로부터 세계 명작 한 질 정도 안 받고 학교 다닌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학교에선 늘 책을 읽으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다녔다. 그 후로도 TV를 비롯한 매스컴에서 캠페인성 독서 프로그램을 수시로 방송했었다. (지금은 좀 뜸해진 느낌이긴 하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 1년에 1권 내지는 1권도 읽지 않는다는 통계는 어쩌면 정확하지 않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아니면 독서 편중이 심하다는 얘기일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아도 어디선가 '샤이 북맨' 또는 '내숭 독서인'이 적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뭐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지만 아주 근거 없는 얘기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렇게 온라인에 멍석을 깔아줬더니 정말 책 읽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다. 난 그때야 비로소 내가 책을 그리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전까지는 비교가 안 됐는데 이제는 비교가 가능해진 것이다. 고백컨대, 나는 지금까지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읽은 게 70권 정돈데 (그나마 그것도 오래전 수치다) 어떤 사람은 그에 2배 3배를 읽는 사람이 있어 놀랐다. 또한 한 분야의 책만 파는 사람이 있고, 전작주의 독서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자 처음으로 독서에 대한 열등감 내지는 비교 의식 같은 것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렇듯 온라인 서점이 한 일들은 놀랍다. 적어도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운 나를 (온라인이긴 하지만) 사람들과 소통하도록 했던 게 바로 블로그 활동이었다. 작가와 독자의 간격을 좁혀 준 것도 인터넷이 아닐까. 예전에 작가와 독자가 소통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예전엔 아주 유명한 사람이 아니면 어떤 작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코빼기도 알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얼굴을 알리며 소통하게 되었다.


편의와 효율성만을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온라인으로만 책을 사야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수가 줄어서 그렇지 거리 서점은 아직도 건재하다. 아니 최근엔 오히려 상대적으로 약간 늘었다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그건 예전의 일반 서점과는 차별화된 느낌도 든다. 그리고 그것을 '독립 서점'이라 부르기도 한다. 왜 거리의 서점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걸까. 온라인 서점이 줄 수 없는 뭔가를 독립 서점에서 찾으려는 걸까. 앞서도 얘기했지만 예전에 서점은 책을 높이 쌓아놓고 판매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얼마든지 그 공간을 활용하려고 한다. 이 책에서처럼 커피도 팔고, 작가와 독자 간의 가교 역할도 하고, 독서토론은 물론이고 글쓰기 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랑방 역할을 한다. 그냥 책만 팔아도 힘들 텐데 무슨 사서 고생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사람들은 책을 통해 생각을 함께 공유하고 순환시킬 때 책이 가장 책 다워진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 그러기엔 온라인의 한계를 알지 않았을까. 그래서 서점은 사멸되지 않고 독립 서점으로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책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책과 연결된 사람들의 이면을 다뤘다. 책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얼핏 작가나 편집자, 비평가 등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책이라면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이란 작품을 추천한다.) 이 작품은 그것을 소비하고(독자) 판매하는 사람(서점 종사자) 등을 다뤘다. 주인공이자 서점 주인인 영주를 비롯한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트라우마 내지는 인생의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어떻게 서점이란 공간에서 책을 매개로 치유와 회복, 희망을 발견해 나가는가를 나름 진지하고 밀도 있게 그렸다.


무엇보다 주인공 영주는 한때 워커 홀릭으로 산 지난날을 후회하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이혼을 선택했다. 그녀의 그런 선택을 보면서 결혼이 꼭 불행해서 이혼을 하는 것은 아니구나 싶다. 결혼이 선택이듯 이혼도 선택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론 그 선택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서점을 오픈한다. 적어도 나라면 이혼은 하지 않고 직장만 그만두고 서점을 오픈할 것 같다. 서점을 평생 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고, 요즘같이 경기도 안 좋은데 부업 정도로 생각하지 누가 올인을 할까. 하다가 망하거나 너무 힘들면 그만두기도 용이하고. 하지만 영주는 그런 여지를 두지 않는다. 그런 걸 보면 영주의 이혼은 단순한 이혼이 아니었다. 더구나 남편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이혼을 감행했다. 이기적이란 오해도 받을만하다. 망하는 것은 나중 일이고 오로지 서점 운영에만 자신의 모든 것을 집중한다.


일은 해 본 사람만이 할 줄 아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인생을 소극적으로 재미없게 산다 싶기도 하고. 한때 서점을 운영해 보는 것이 꿈이라면서 해 보기도 망하면 어쩌나부터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은 실패할수록, 아플수록 단단해지는 법이다. 영주의 그런 단단함과 진지함이 서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 책을 읽는 사람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건 아니지만 서점을 해야겠다는 생각 하나가 그처럼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전엔 책을 읽는다는 것이 개인의 지식 축적에만 머물렀다면 이제는 타인과 함께 나누고 토론하며 공동체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곳 이상의 독서 클럽 내지는 SNS나 블로그를 통해 소통하려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서점이란 공간이 중요해졌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문득 영주가 서점을 열고 단 하루라도 편하게 잠을 잔 적이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사업하는 사람 대부분이 다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원했던 일을 하게 되었음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지구의 한 귀퉁이를 떠 안은 느낌일 것이다. 영주는 책 팔아서 노년까지 돈 걱정 없이 잘 살아 볼 생각으로 서점을 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더더욱 서점 같은 건 꿈꾸면 안 된다. (아직 노년을 생각하기엔 젊어 보인다.) 그녀의 꿈은 소박했다. 그냥 책 냄새 맡아가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부딪혀 보는 것. 그런데 이런 영주의 꿈을 응원해 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작품엔 나오지 않지만 영주를 아는 사람은 개업했다고 축하는 해 주지만 속으로는 낭만주의자라고 냉소하지 않았을까. 책 팔아서 무슨 부귀영화를 두리겠냐며.


사람은 목적 보다 목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목표를 들어보면 거의 십중팔구는 돈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게 돈 모르면 뭐 할 거냐고 물으면 답은 왠지 더 듣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또 그런 식으로 사람을 재단하거나 판단하려고 한다. 적어도 민주주의 나라고 세계 경제 10위 안에 드는 나라라면 아무리 소박한 꿈이라도 냉소하거나 훼손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서점을 포함한 우리나라 자영업은 개업도 많이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폐업도 많이 한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뭐가 좀 잘 된다고 하면 돈 냄새부터 맡으려고 한다. 그것이 천민자본주의를 키우고 누군가의 꿈 꿀 권리를 짓밟는다.


내가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앞서 얘기한 나의 단골 서점의 주인아저씨가 생각나서다. 모르긴 해도 그 아저씨는 서점을 그만두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저씨는 그때 40대 초쯤은 되었던 것 같다. 건강이나 신변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는 한 그렇게 이른 나이에 서점을 폐업할 분이 아니다. 아저씨에게 어떠한 꿈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일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삶의 보람을 얻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물론 임대료가 싼 어느 변두리로 터전을 옮겼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밀리고 밀리면 어디까지 밀려날지 알 수 없다.


이제 휴남동 서점 같은 독립 서점은 낯선 곳이 아니다. 그건 독립서점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다. 난 이런 서점이 계속적으로 늘어나길 희망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서점은 영주 같은 사람 혼자만의 의지로는 지켜나갈 수 없다. 이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위에 휴남동 같은 서점이 있다면 그곳을 열심히 가 주어야 한다. 누구는 그랬다. 도서관 하나가 문을 닫는 건 도시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어디 도서관뿐이겠는가. 서점 역시 마찬가지다. 없어지면 온라인에서 사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어찌 보면 그게 더 편하고 효율적일 수 있다. 있을까 싶어 서점을 갔는데 없으면 그 허망함과 민망함은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하지만 독립 서점은 필요한 책을 사러 가는 곳이 아니다. 그냥 한가한 저녁 산책 삼아 마실 삼아 갔다가 보물 찾기하듯 책을 사 가지고 오는 곳이다. 동네에 그런 독립서점 하나 있으면 마음의 등불 하나가 켜지는 느낌 이텐데 내가 사는 동네엔 아직 그런 곳이 없다.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한 나는 거리 서점이 사멸되지 않고 진화에 진화를 지켜보고 싶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사라진 서점과 도서관을 설명한다는 건 좀 끔찍할 것 같다. 제2, 제3의 휴남동 서점 이야기가 나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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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09-01 0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님의 서점 이야기도 흥미로워요.
저야말로 샤이북맨 혹은 내숭독서인이 아닌가, 잠시 찔끔했어요.

stella.K 2024-09-01 20:14   좋아요 0 | URL
ㅎㅎ 의왼데요? 그러지 마십시오.
긴 글인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cyrus 2024-09-01 08: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산에서 유명한 책방이 ‘주책공사’에요. 주책공사 책방지기가 제일 싫어하고, 비추천하는 책이 <휴남동 서점>이래요. 그분을 실제로 뵌 적이 없어서 싫어하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요. 제 생각인데, 책방을 운영하는 그 분 입장에서는 <휴남동 서점>이 책방 운영을 미화하는 소설로 느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이 책을 읽고나서 책방을 열고 싶다고 생각한 독자들이 있었다고 해요. ^^;;

꼬마요정 2024-09-01 12:15   좋아요 1 | URL
저 지난 4월에 주책공사 다녀왔는데 분위기 좋더라구요. 생일책 샀는데 <무뎌진다는 것> 투에고 지음 이 나왔어요. 신선했어요.

stella.K 2024-09-01 20:23   좋아요 1 | URL
주책공사. 이름 참 잘 짓는다. 좋은데? ㅋ
근데 네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그분 너무 민감한 건 아닌가
싶기도하네. 이 작품은 그냥 소설이야.
소설은 낭만과 이상을 품고 있지. 나쁘게 쓰려면 얼마든지 나쁘게
쓸 수도 있겠지. 그러면 그분 왜 나쁘게 쓰냐고 또 뭐라고 할걸?
난 작가의 시선과 태도가 마음에 들더라. 아직 젊은 사람 같은데
성실하게 잘 썼어. 너도 기회되면 함 읽어 봐.^^

꼬마요정 2024-09-01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현실과는 다르다고 느꼈지만 뭔가 부러웠어요. 물론 영주는 월말이 되면 혹은 고지서 납부일 등이 다가오면 쉽게 잠들지 못할 거라 생각해요. 그래도 자기 일을 하면 그 고난도 견딜만하다 느끼기도 하니까요. 근데 책에 둘러싸인 삶이라… 좀 두근두근합니다. ㅎㅎ 스텔라 님의 단골 서점 아저씨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서점이나 도서관이 늘 흥하면 좋겠습니다.ㅜㅜ

stella.K 2024-09-01 20:31   좋아요 1 | URL
힐링 소설이잖아요. 당연히 다를 수 있지요.
영주도 그렇고 그 단골 서점 아저씨도 그렇고 지자체에
도움을 받아가면서 자기 일을 놓지 않고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금 그 아저씨 많이 늙으셨을 거예요. 가끔씩 생각났었는데
이 책 읽느니까 더 생각나더군요. 어디선가 잘 지내고 계시겠죠?
맞아요. 한 국가의 저력은 그런데서 나오는 건데 흥해야죠!

페크pek0501 2024-09-03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40대에 주로 동네 서점에서 책을 샀는데 자주 사니까 서점 주인이 대학원생이냐고 갈 적마다 물었던 게 생각납니다. 이젠 인터넷으로 책을 삽니다. 여행지에선 독립 서점이 눈에 띄면 들어가 보고 책 한 권을 구매하는 편이에요. 나는 인터넷이 편해 인터넷 구매를 하지만 서점이 없어지는 건 섭섭해서 눈에 띄면 사 줘야 할 것 같아서요.^^

stella.K 2024-09-03 16:28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동감입니다. 많이 사 줘야할 것 같은데 저는 그런 서점이 눈에 잘 안 띄어요. 근데 대학원생으로 오해를 받으셨다니 살짝 부러운데요?^^

물감 2024-09-04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스텔라 님이 쓴 <아무튼 서점> 느낌의 글이네요 ^^
저는 어려서 서점을 안다녀봐서 잘 모르지만, 자주 가던 곳들이 사라진 기분은 알 것 같아요.
나만의 추억들이 진짜 추억 너머로 사라져버린 그 기분이요.
요즘은 식당들이 그렇게 줄폐업을 하는데 참 쓸쓸해요 ㅎㅎㅎ

stella.K 2024-09-05 10:07   좋아요 1 | URL
그럼 제가 잘 쓴 건가요? ㅎㅎ 저도 서점 잘 안 다니긴 하는데 근처 중고샵있으면 한번 나가보세요. 시간 잘 갑니다. 책이 뿜어내는 스멜도 좋고. 그러고 보니 저도 언제고 날잡아 한번 나가봐야겠어요. 😂
그래서 울나라는 백년가게가 별로 없다잖아요. 뭐가 좋다면 우르르 쏠리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길거리만 나가도 저 사람들은 뭐해 먹고 살까 궁금하기도 하더라고요. 에효~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

근래에 내가 기억하는 가장 뜨거웠던 여름은 지난 2018년 여름으로 이었다. 그전까지는 그냥 근근이 견딜만해서 에어컨 같은 건 키우지 않았다. 더위를 심하게 타는 체질도 아니어서 선풍기로 버틸만했다. 하지만 그 해 여름의 끝자락에 결국 에어컨을 달았다. 하지만 그 이후 또 그럭저럭 견딜만한 해서 에어컨은 그다지 절실하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 2018년과 같은 여름이 오지 않을까 했더니 올해가 딱 그런 해고 전기 사용량이고 뭐고 너무 더우니 에어컨이란 물건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싶다.

올여름은 이미 2018년의 기록을 모두 갈아치운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누가 말하기를, 어떤 운동선수는 태국으로 전지 훈련을 간다고 해서 의아했단다. 그 더운 아열대 나라를...? 그랬더니 우리나라 보다 덜 더워서 가는 거라고 했단다. 일본도 기온이 떨어졌다는데 왜 우리나라만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열대야만이라도 사라지면 좋겠는데 입추와 말복도 한참 지났건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예보에 의하면 앞으로 이런 폭염은 열흘은 더 지내야 한다고 하니 걱정이다.

어제 아침에 뉴스를 보니 이런 찜통더위에 어디는 어제 마라톤 경기를 하다 온열환자가 나와서 경기를 취소했다나 뭐라나. 그나마 더위 때문에 오후 늦게 했나 본데 요즘 해가 져도 더위는 식지 않는데 뭐 그런 오싹한 일을 감행했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 본 영화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만들었다. 솔직히 좀 놀랐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이런 영화를...? 국가기관에서 만들었으니 건전 영화(?)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웬만한 첩보 스릴러 못지않다. 보다가 재미없으면 끊어야지 했는데 끝까지 다 봤다.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좋다. 시나리오가 좋으면 영화는 끝까지 보게 된다. 우리나라 고등어 납품 세 곳의 비리와 담합 사건을 파헤친 사건이다.


공정거래위원회 내에 '사건 수사 신속 신속지원팀'의 활약상을 그렸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회사 사람들과의 머리싸움도 볼만하지만 그 과정에서 같은 팀끼리 서로를 의심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과 나중엔 차가운 냉동차에 갇히기까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끝까지 간다는 뭐 그런 의지도 보여서 나름 신뢰가 느껴지기도 했다. 공무원이 예전만 같지 않다는 말이 있는데 이 영화가 과연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다. 그래도 공정한 사회를 위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환영이다.


괜찮은 영환데 평점이 의외로 낫다. 배우 몇 사람을 제외하면 정말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섭외한 건 아닐까 싶게 낯설다. 아무래도 국가에서 만든다고 하니 출연료가 그다지 세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샤이한 면이 있어서 기존의 배우는 선뜻 출연할 마음을 먹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유명 배우와 스토리가 조금만 더 풍성했다면 급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그 점은 좀 아쉽다. 국가 기관에서 만든 만큼 무료로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봐 줄만하다. 기회되면 한 번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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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8-20 0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웹드라마도 있군요 영화하고는 다른 내용일지... 드라마를 먼저 만들었나 봅니다 일본 소설 《공정의 파수꾼》(신카와 호타테)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이 소설에 공정거래위원회 심사관이 나와요 본래 제목은 ‘경쟁의 파수꾼’인데 공정한 경쟁을 하기를 바라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희선

stella.K 2024-08-20 16:47   좋아요 0 | URL
엇, 웹드라마가 있었나요? 그건 못 봤네요.
웹드라마도 재밌을 것 같네요.
공정의 파수꾼도 있군요. 그럼 그 소설 보고 착안해서 시나리오를 썼을까요?
암튼 괜찮았습니다.^^

페크pek0501 2024-08-20 15: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점이 낮은데 의외로 좋은 영화가 있더라고요.^^

stella.K 2024-08-20 16:5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그런 게 있죠?
좋은 줄 알았는데 막상 별로 보단 훨 낫죠? ㅎㅎ
너무 더우니까 휘지네요.
태풍이와도 더위는 꺾이지 않을 거라니 걱정입니다.
마지막까지 건강 조심하세요.^^

고양이라디오 2024-08-28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좋은 영화 추천 감사합니다.

맞아요 2018년 이후로 가장 더운 여름 같습니다. 열대야가 심했는데 그래도 요즘은 조금 꺽인 거 같습니다ㅎ

stella.K 2024-08-28 13:28   좋아요 1 | URL
저는 괜찮았어요. 고라님도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네요.
이 뜨거운 여름도 이제 서서히 등을 보이려나 봅니다. 밤날씨는 그제 다르고 어제 다르고 하던데요? 좋긴한데 또 관문이 남았죠. 가을 모기! ㅋㅋ
 
퀸스 갬빗 월터 테비스 시리즈
월터 테비스 지음, 나현진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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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테비스의 <허슬러>에 이어 두 번째로 이 책 읽었다. 현재 같은 출판사에서 작가의 작품 5권이 번역되어 나와있다. 일단 이 두 권만 가지고 보자면 <허슬러>는 당구를, 이 책은 체스를 소재로 다뤘다. 둘 다 스포츠 소설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스포츠 전문 작가는 아닌 것 같다. 이 둘은 좋게 말하면 두뇌 스포츠고 나쁘게 말하면 잡기다. 나야 잡기라면 화투 정도 밖엔 모르고, 그것도 혼자 하거나 100원 내기 또는 딱밤 맞기 정도의 미나토(?)여서 이 잡기의 세계가 얼마나 넓고 심오한지는 알 길이 없다. 그나마 화투도 어린 시절 외엔 잡아 본 적이 없으니 말 다 했지.

체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츠바이크다. 워낙 오래전에 읽어 내용은 거의 기억에 없지만 그 문장의 우아함과 심리 묘사가 뛰어난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알다시피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 작가고 월터 테비스는 미국 작가다. 뭐 당연한 소리긴 하겠지만 같은 소재라도 어느 나라, 어떤 작가가 쓰느냐에 따라 그 문체나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다.

월터 테비스는 가장 미국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은 아닐까 싶다. 미국의 가장 세속적인 면을 여지없이 드러내 준다. 난 이미 <허슬러>의 리뷰에서도 그런 언급을 했지만 이어령 교수의 말마따나 미국은 거리의 문학을 표방한다. 이 소설도 8살짜리 소녀 베스 허먼이 사고로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고아원으로 가게 되는 게 첫 시작이다. 가정이 없어진 것이다. 좀 놀라운 건,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고아가 됐는데도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인다는 거다. 뭐 8살짜리가 죽음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만 그래도 부모가 돌아갔는데 어떻게 그렇게 담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보모를 회상해도 좋고 아름다운 기억보단 불온하고 불만스러운 기억을 떠올린다.

더 놀라운 건 베스가 들어간 고아원에선 아이들에게 일괄적으로 약을 주는데 그게 일종의 신경안정제다. 하도 아이들이 울고 보채니 약으로 신경을 마비시킨다는 건데 그게 좀 충격적이었다. 문득 60년 대 미국의 고아원은 다 이랬을까? 다 그렇진 않더라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란 생각도 든다. 아무튼 이로 인해 베스는 약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성인이 된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일까? 고아원 수위 아저씨로부터 우연히 체스를 접하게 되고 베스는 그것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비슷한 구성은 소설 '허슬러'에서도 보인다.) 하지만 고아원 원장은 어린아이에게 체스를 가르치는 걸 금지시켰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그로 인해 베스는 체스를 못하게 될 줄 알았는데 운 좋게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입양을 가게 되고 거기서 계속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된다. 하지만 완벽한 행운은 없어 베스가 입양되던 날 양아버지란 작자는 집을 나가버리고 결국 양어머니와 둘이 살게 된다. 하지만 역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고 비록 짧은 인연이지만 베스는 체스로 양어머니를 기쁘게 하며 나쁘지 않은 모녀지간으로 지낸다.

작품을 읽으면서 새삼 놀랐던 건, 체스 선수가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줄은 몰랐다. 베스는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체스에 관한 책을 사고 공부를 한다. 특히 체스에 관한 잡지를 빼놓지 않고 사던데 문득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에도 체스에 관한 책과 잡지가 있는지, 있으면 얼마나 있는지 잠시 알아봤다. 그랬더니 체스에 관한 책은 나름 꽤 있지만 잡지는 보지 못했다. 뭐 이해 못 할 건 없다. 우리나라는 잡지를 내면 낼수록 적자 구조고, 바둑이나 장기도 특정한 사람들 아니면 즐기지 않는데 이 서양장기는 또 얼마나 알겠다고 잡지까지 사 보겠는가.

책은 평이하게 잘 읽히는 편이다. 물론 체스의 기본 지식을 알고 봤다면 더 재미나게 읽었겠지만 모른다고 해서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난 베스가 체스를 어떻게 싸우고 이기며 어떻게 성장해 가는가를 보기보단 그녀의 앞으로의 인생이 자꾸만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그녀는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었고, 약물중독에, 좋은 가정으로 입양되지도 못했다. 그나마 자신에게 잘 대해줬던 양어머니도 일찍 죽었다. 남자 친구도 사귀는 족족 그녀를 떠나간다. 그렇다면 그녀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궁금하고 걱정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가 이런 인물은 불행할 거란 쪽으로 자꾸 상상하고 싶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다 결국 작가에게 한방 먹었다. 작가는 주인공의 인생을 그리 길게 재단하지도 않았다. 주인공은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채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렇다면 그 인생이 앞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지 불행한 삶을 살지 판단하기엔 너무 이르다. 그 나이에 연애에 두어 번 실패했다고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거라고 장담도 할 수 없다. 약물에 중독됐다고 해서 당장 폐인이 되어 거지 꼴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 거라고 할 수도 없겠지. (우린 약물중독에 걸린 인생이 어떤 최후를 맞게 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사실 난 작가의 작품이 나와는 썩 맞는 편은 아니었다. 지난번 <허슬러> 때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미국 특유의 세속적 낙관주의와 허무주의가 작품 전반에 흐른다. 그래도 작품의 구성이나 심리 묘사는 <허슬러>보단 훨씬 입체적이란 느낌이 든다. 문득 월터 테비스가 미국 문학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 인정하는 건 정말 열심히 썼던 작가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지난 1984년에 50대의 나이로 타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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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4-08-19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 재밌게 본 드라마인데ㅎ 소설도 괜찮나 보군요ㅎ

stella.K 2024-08-19 21:03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전 드라마는 못 봐서 말씀 드리기는 뭐한데 드라마가 훨 낫지 않을까 싶어요. 책은 그냥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어요. 어떤 작품은 원작 보다 영화가 나은데 미국 작품들이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ㅋ
 

해가 짧아졌다. 하지가 지난지도 한달이 넘었으니 당연하다. 전에는 5시만 되어도 날이 밝아 오려고 했지만 지금은 아직도 어둑하다. 저녁에도 8시 정도까지만 해도 해가 살아있었지만 지금은 완전 밤이다. 하지만 잘 체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밤이고 낮이고 날씨가 더우니.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면 실감하겠지. 그래도 며칠 전부터는 열대야라도 잘만하다. 그렇게 가을은 아주 천천히 오고 있는 거겠지. 


얼마 전 월테 테비스의 소설 <허슬러>를 읽었다. 읽기 시작하면서 영화도 보았다. 여기서 주의 해야할 것은 선택을 잘 해야한다는 것. 지금까지 동명의 영화는 세 번 정도 만들어 졌다.  내가 본 건 폴 뉴먼이 나왔던 오리지널 영화다. 폴 뉴먼하면 로버트 레드포드와 함께 나왔던 <스팅>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는 <스팅>만 못하지 않나 싶다. 


내가 영화를 볼 생각을 했던 건 책을 잘 이해하고 빨리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본 건데 중간 정도만 원작과 비슷하게 나가지 결말은 좀 다르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좀 불만스러웠다. 특히 주인공 에디의 애인 새라의 설정이 마음에 안 든다. 새라를 금발에 나중에는 자살한다는 설정은 좀 극단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가 1961년도 산인 것을 감안한다면 감독이 왜 금발의 배우를 기용 했는지 이해할 것도 같다. 그때는 금발의 전성 시대였으니까. 


실제로 그렇지는 않지만 마를린 먼로는 금발에 백치미로 유명했고 그녀가 이루어 놓은 이미지 때문에 이 영화에서도 그 이미지를 반영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런데 왠지 그게 석연치가 않다. 여자를 완전 호구로 그랬다는 것. 책은 오히려 그렇지 않다. 좀 더 당당하고 자율적인 인간으로 그렸다. 영화가 꼭 원작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는 하지만 엇나가도 너무 엇나갔다 싶다.



아무래도 올림픽 특수 때문일까? 오랜만에 프랑스 영화 한 편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딱 걸렸다. <장미의 이름>, <티벳에서의 7년> 등으로 유명한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언제 또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지난 2019년 노트르담 대성당에 화재 사건이 일어났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는데 이걸 영화화 했다니 좀 대단하다 싶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한 소방관과 성당 관계자들간의 활약상을 그렸다. 덕분에 이번 생엔 프랑스에 갈 일이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노트르담 성당 내부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놀라운 건 그곳에 예수님이 쓰셨다는 가시관이 보관되어 있는데 알고 봤더니 모조품이라는 것.(이건 사실인지 영화적 상상인지 알 수가 없다.) 화재는 어느 개념없는 성당 관계자가 첨탑 어디쯤에서 버린 담배 꽁초와 역시 생각없는 비둘기 한 마리가 전선을 쪼다 일어난 것. 비둘기야 인간계가 아니니 원망하거나 나무랄 수 있는 건 아니고, 앞으로 그런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은 적어도 일하는 동안만큼은 금연하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엔 분명 화재경보기가 작동되지만 정말 화재가 난 건지 아닌지 반신반의하고 그렇게 우물쭈물한 사이 불은 자츰번져 간다. 역시 사람은 엄청난 사실일수록 설마하며 잘 믿고 싶어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성당의 첨탑까지 올라 가는 계단이 300개라는 것도 이 영화를 보고 새롭게 알았다. 그렇지 않아도 어느 나이들고 뚱뚱한 아저씨가 화재를 확인하기 위해 그곳을 헉헉대며 올라가던데 바로 거기에서만이라도 확인했더라면 더 빨리 진압을 했을 것이다. 분명 자기 옆에서 화재 연기가 나기 시작하는데도 못 보고 올라 온 계단을 다시 내려간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육안으로도 화재가 났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소방관이 출동을 한다. 얼마 뒤 화재 현장에 도착하지만 긴 소방호스를 어깨에 매고 또 예의 300개의 계단을 올라가는 건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하고 안타깝다. 겉으로만 화려하고 웅장했지 워낙 오래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지 내부 골조는 다소 허술해 보이기도 한다. 유럽 사람들이 옛 건물에 대한 가치 보존 때문에 여간해서 손 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또 그런 생각이 화재를 더 키운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영화는 긴박하면서도 나름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긴 하는데 만일 우리나라 소방관이 저 일을 맡았다면 어땠을까를 생각을 해 보게도 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같으면 헬기부터 띄우지 않았을까? 영화가 뭐 하나가 빠졌다 했더니 헬기가 한 대도 안 떴다. 물론 나중에 우왕좌왕하다 드론을 띄우긴 하는데 그것도 적극 활용하지 않고 그냥 정찰을 위한 목적으로 한 번 띄우고 만다. 이미 화재에 드론이 사용된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영화가 약간은 클리셰가 있는데, 그런 영화에 꼭 사람 애간장을 녹이거나 전혀 뜬금없는 사람 꼭 있다. 예를들면 대피 명령이 떨어져 다들 성당 밖을 나가는데 엄마 손 잡고 대피한 아이가 돌연 엄마 손을 뿌리치고 다시 성당에 들어가 촛불 하나 더 밝히고(하나라도 꺼야할 때) 기도까지 하고 나오는 걸 어떻게 봐 줘야할지 모르겠다. 또 어떤 아줌마는 모두 성당의 화마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혼자 고양이가 지붕에 올라가 떨어지기 일보직전인데 구조를 요청하면서 안타까워 찔찔 울고 있다. 물론 그런 것을 통해 대비 효과를 주는 것이겠지만 약간의 짜증이 유발됐다. 그러고 보면 쟝 감독이 좀 옛날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래도 존경스럽단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우리나라도 숭례문이 불에 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었지만 누구가 영화로 만들 생각은 못했다. 그냥 어느 술주정뱅이가 벌인 헤프닝 정도로 취급하는 분위기였다. 그나마 복원도 매끄럽지가 못해 잡음이 일었고. 


개인적으로 영어를 제외하고 가장 아름다운 외국어를 뽑으라면 프랑스어고, 다음으론 이태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 마디도 못하지만. 누가 우리나라 언어를 칭찬하던데 나쁘지 않지만 약간 각진 느낌이 있어서 난 그닥 좋은 줄 모르겠다. 딱딱 떨어지는 것으로야 일본어 따라갈 언어가 있나. 중국어는 너무 찡찡거린다. 다음 생이 있다면 프랑스인으로 태어나 보고 싶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림픽이 어느덧 내일이 폐막이다. 크게 이변이 없는 한 우리나라가 10위 안에서 드는 성적을 거두고 마무리를 지을 모양인데 230개국 중 그 정도면 상당히 잘 싸운 거라 여한은 없다. 그래도 사람의 욕심은 한도 없어서 이번엔 일본을 이기지 않을까 했는데 그 점은 살짝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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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4-08-11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불어를 배워서 지금도 불어 몇마디는 할 줄 압니다.
스텔라님이 다음 생에 프랑스인으로 태어나면 바로 배울 말들이지요.
니르바나의 생각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글은 우리말 우리글입니다.^^

stella.K 2024-08-11 11:19   좋아요 1 | URL
저는 문자로 봤을 땐 한글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사각형안에 자음과 모음이 하나로 다 들어와 있잖아요. 이렇게 쓰는 나라가 거의 없지 않을까합니다. 불어는 첨엔 뭐 이런 말이 있나 싶은데 들으면 들을수록 귀에 감기는게 있어요. 잘 배워두셨네요. 저는 지금은 못 배울 것 같아요. 암기력이 바닥이라. 한쿡 말이라도 잘 쓰는 방향으로.ㅋ

cyrus 2024-08-11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프랑스 문학과 예술을 좋아해요. 그 이유가 제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와 예술가들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주제로 작품을 만들거나 이전에 선보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든요. 좋게 보면 도전 정신인데, 나쁘게 보면 상식과 클리셰를 너무 벗어난(무시한) 망작 또는 괴작이에요. ^^;;

stella.K 2024-08-12 20:3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프랑스엔 천재가 많다는 얘기 아닌가? ㅎㅎ
프랑스가 묘한데가 있지. 사람을 끄는.
네가 프랑스를 좋아하다니까 내가 괜히 쑥스러워지려고 그러네. 흐흐


희선 2024-08-12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를 구해달라고 하는 말을 보니, 얼마전에 봤던 기사가 생각나네요 불이 난 곳에서 아이가 집에 있다면서 구해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고양이였어요 동물도 구해야 하지만 고양이를 구하러 소방수가 들어갔다 못 나오면... 자신이 잘 챙겨서 데리고 나오지 왜 그러지 못했나 싶기도 합니다 사람도 잘 챙기기 어렵기는 하겠군요


희선

stella.K 2024-08-12 20:39   좋아요 1 | URL
그런 일이 있었군요.
서양은 반려동물한테 유산도 물려주고 그런다잖아요.
그래서 그런 건 아닐까요?
물론 위험에 빠진 동물도 그해야겠지만 감독이 그렇게 연출하니까
묘한 대비가 되면서 그 고양이는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긴 하더군요.
나중에 한 사람도 사상자가 없었다는 것에 안도하고 시민들이
찬양 부르는 장면이 좀 묘하더군요.

페크pek0501 2024-08-14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리 올림픽 하면 센강 오염 문제가 잊히지 않을 것 같네요. 충격이었어요...

stella.K 2024-08-14 14:39   좋아요 0 | URL
그렇죠? 2조를 쏟아부었다는데 그 많은 돈은 어디로 간건지? 그돈이면 한강을 살리고도 남는 돈 아니었을까요? 암튼 이번에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어요. 올림픽의 권위도 예전만 같지않은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4-08-15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가 짧아졌다는걸 저도 실감하고 있어요. 조금만 견디면 더위도 누그러지겠죠!
스팅, 영화 완전 추억입니다.
두 배우도, 음악도 좋았어요.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후 단 며칠만에 1조가 모금었다는 사실에 충격 받았어요. 프랑스는 그만큼 문화강국인가봐요.
딸아이 친구중에 프랑스인이 있는데
2조를 쏟아 붓고도 센강의 오염은 심하다고 하네요 ㅎㅎ
그래도 TV에서 보이는 파리는 멋지더라고요^^

stella.K 2024-08-16 14:30   좋아요 1 | URL
와, 그 소식은 몰랐는데 대단하네요. 우리도 숭례문 불 탔을 때 모금운동 했으면 얼마나 모였을까요?
오늘도 덥네요. 서울은 지난 2018년과 같은 기록으로 열대야라고 하던데 아마도 오늘 내일로 갈아치울 것 같아요. 이제 말복도 지났으니 다음 주 정도엔 열대야는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그만 더 견뎌보죠.^^
 

이 책 괜찮은 책인지도 모르는데 초반에 좀 눈쌀이 찌푸려지는 대목이 발견되었다. 이를테면 1장에서 구정이란 단어가 나오던데 이제 구정이나 신정은 그만 사용해도 될 텐데 아직도 이 모양이다. 우리가 일정에서 벗어난지가 언젠데 아직도 이런 실수를 하는 건지. 설도 있는데.  

작가가 모르고 썼을지라도 편집이나 교열이 잡아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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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4-08-09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는 말씀이긴 한데 구정 신정을 무슨 말로 대체하면 좋을까요.구정이야 설날이라고 하면 되지만 신정은 뭐라 부를지 좀 애매하네요.

stella.K 2024-08-10 20:2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뭐라고 했는데. 새해 첫날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구정은 설이라고 해야하는데 아직도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더군요. 물로 많이 안 쓰는 것 같긴합니다만
그래도 글로 밥 벌어 먹는 사람들은 특별히 신경 써야하는 거 아닌가해서요.

cyrus 2024-08-11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24>에 혹시 구정과 신정과 관련된 내용이 있는지 찾아봤는데 못 찾았어요. 시간 나면 찾아보죠. ^^;;

stella.K 2024-08-12 20:42   좋아요 0 | URL
쳇, 너 누나 못 믿어?
나중에 찾게되면 비댓으로 달아라. ㅋㅋㅋ

근데 너 이 책 읽는구나. 좋다는 얘기 많이 들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 나도 언제 한 번 사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