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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 - 시와 소설과 그리스도인
이정일 지음 / 예책 / 2020년 8월
평점 :
나는 독서를 시작할 때 문학부터 읽기 시작했다. 흥미롭기도 하고, 독서 습관들이기에도 이만한 분야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문학도 어느 순간 갑자기 흥미가 떨어진 때가 있었다.
거미(?)가 다리가 여러 개인 지네를 놀려줄 요량으로 어느 날 이렇게 물어봤다지. 너는 움직일 때 몇 번째 다리부터 움직이냐고. 그러자 순간 지네는 자신이 정말 어떤 다리부터 움직이는지 알지 못했다. 그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그것이 하나도 문제가 안 됐는데 말이다. 과연 이 다리, 저 다리 움직여 보지만 과연 자신이 어떤 다리부터 움직이는지 알지 못했고 결국 모든 다리가 꼬이고 말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당연한 걸 질문받았을 때 또는 한 번도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우리도 당황하게 된다. 다리가 꼬인 지네처럼.
내가 그랬다. 좋아서 읽기 시작한 문학이 갑자기 왜 읽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는 거다. 좋으면 그냥 좋은 거지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단 말인가. 그러고 나니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고 권태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결국 멀어졌다. 돌이켜 보면 아무리 자기 좋아하는 분야도 권태기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때 한 번도 안 해 본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느끼는 것도 한때고, 지금은 오히려 문학을 많이 못 읽어서 아쉽다.
하지만 역시 문학을 왜 읽는지에 대해 명확한 답은 달지 못했다. 역시 좋아하는 것에 무슨 이유가 있냐고 얼렁뚱땅 넘어갈 판이다. 학교 때 그렇게 책을 읽어라, 그것도 고전을 읽어라. 독서의 유익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많이 들었으면서 정작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내 기억엔 없다. 물론 몇 마디로 진부하게 대답은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 얼핏 기독교 서적 같지만, 우리가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짚어내고 있다. 안 믿는 사람이더라도 기독교에 별 거부감이 없다면 한 번쯤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이 있으면서 한 번쯤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책을 읽어 봤다면 굳이 읽을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어찌 보면 논문 제목 같기도 하지만 분류를 하자면 독서 에세이다. 그것도 지극히 기독교적인. 그러면 모르는 사람은 기독교 문학만을 대상으로 삼았나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여러 다방면의 책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했다. 이 책은 '기독인이여, 제발 문학을 읽어라.'라고 외치며, 왜 그런지를 끊임없이 설명하고 있다.
솔직히 문학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기란 쉽지 않다. 문학은 문학이고, 신앙은 신앙이지 이 둘을 같이 생각한다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동양 문학은 몰라도 서양 문학은 그 뿌리를 성경에 두고 있음에도 현대 문학은 꼭 그렇지만도 않으니. 그렇다고 신앙에 도움이 안 되니 무조건 읽지 말아야 할까? 그렇다면 문학의 반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건 기독교 세계관으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평생을 걸쳐 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문학을 대하는 수준이 놀라우리만치 일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문학을 대하는 수준은 오직 하나다. 잘 읽히는 작품이냐, 아니냐. 내가 좋아하는 문체냐 아니냐. 감동스럽거나 사유적 문장이 얼마나 많이 깔려 있느냐. 한마디로 지극히 원초적이다. 세계적인 명작이든 아니든 내가 읽을 수 있는 작품이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내겐 인연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별로 연연해 하지 않았다. 세상에 읽어야 할 작품이 얼마나 많은데 그 작품이 안 읽힌다고 징징대는가.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런 말을 한다. "문학을 모르면 자신을 돌보는 것이나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뭔지 모른 채 나이 들고 말 것이"라고. 저주에 가까운 말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고. 그 말처럼 무서운 말도 없는 같다. 그렇지 않아도 이 말은 이 책에 적잖이 반복되는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문학은 그렇게 되어버릴 수 있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에 쐐기를 박는 가장 좋은 약인지도 모른다.
우린 때로 남의 삶, 남의 생각 속에 나를 비쳐보곤 한다. 그럴 때 문학은 남의 생각과 삶을 알기에 가장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한다. 또한 그것을 문학이란 도구로 보지 않으면, 남의 삶의 한 단면만 보고 그것을 맹목적으로 흉내 내거나 묻어가고 싶어 한다.
무엇보다 사람은 다양한 것을 경험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필요 없는 경험까지 하므로 시간과 정력까지 낭비할 필요는 없다. 할 수도 없고. 그런 건 문학이 한다. 사람들 중엔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특히 소설 같은 허구를 왜 좋아하냐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있다. 물론 과학과 이성이 중요한 세상에 살고 있긴 하지만 사람이 과연 그것만 가지고 살 수 있는 존재던가. 하루키도 <언더그라운드>란 책에서 똑똑하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사람일수록 오히려 더 사이비 종교에 빠지더라고 했다. 그것에 대해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평소에 문학을 읽었다면 극단적인 상상력을 신비 혹은 초월로 포장한 조잡하고 단순한 사이비 교리에 빠지지 않을 거라고. 은유, 초월적인 것을 이해하는 비논리의 힘을 모르면 인간은 거짓을 분별할 수 없게 된다고.
또한 저자는, 무모할 정도의 확신도 필요하지만 유연하고 통찰력 있는 사고도 필요하다고 했다. 어디 그뿐인가. 세상은 세상대로 적극적 사고와 온갖 처세술을 강조하는 책으로 넘쳐난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럴수록 유연한 생각과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저자는 소설 읽기는 일종의 복기라고 했다. " ... 승패가 결정된 판을 다시 되짚는 것이다. 어떤 수에서 승패가 갈렸는지, 승자는 보았지만 패자는 보지 못한 경우의 수가 무엇인지를 간단히 되짚는 것이다. ...... 이 복기가 일상에서는 자기 검증이며, 바로 소설이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소설은 실패한 인생을 글로 복기한 것이다. ......
소설은 인생, 특히 실패한 인생에 대한 관찰 보고서와 같다. 보고서는 팩트에 근거하여 정보를 전달하지만 소설은 그 정보가 뼛속까지 느껴지도록 만든다. 실패한 인생을 다양한 시점으로 복기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뼛속까지 알게 하는 것이다."(154쪽)
역사는 승자의 보고서지만 문학은 패자의 보고서라고 했다. 그러니 소설을 단순히 상상력과 허구의 산물이라고만 취급하지 말아야겠다. 그러면서 저자는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 회개는 잘 하지만 복기는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반박할 여지는 없지만, 복기를 안 하기는 비기독교인도 마찬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똑같은 상황이 왔을 때 역시 똑같이 반응하고 허탈해 한다. 그래서 사람은 인생에 한 번은 자기 자랑으로 가득 찬 회고록이 아니라 온갖 실수와 어리석음으로 가득한 고백록을 써야 하는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나도 어느새 저자의 생각에 동화된듯하다. 이 책은 어디를 펼쳐 읽어도 우리가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설득한다. 어찌 보면 교회 오빠에게서 받는 과외 수업 같기도 하다. 과외수업에서 중요한 건 맥을 잡아주는 일 아닌가. 문학뿐만 아니라 신앙의 맥도 잡아주니 일석이조(?)다. 믿음 있는 사람은 어디 이런 과외 선생 없나 할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말도 두 번 이상 들으면 잔소리가 된다. 사람은 잔소리 듣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하지만 가끔 잔소리해 주는 사람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저 사람은 얼마나 확신에 차있으면 저렇게 잔소리도 각잡고 하는 것일까 싶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난 이 말에 꽂혔다. "세상에는 타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있다. 이 선택은 본능적으로 나타나는데, 문학이 그 과정을 설명한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 힘에 대해, 우리는 사랑의 섬광을 견디는 법을 배우기 위해 잠시 지상에 머문다.'라고 표현했다. 시인은 이런 빛나는 통찰을 어떻게 붙잡았을까? 문학은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는 창문을 열어주는데, 그것이 상상의 힘이다."(254쪽) 과연 문학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싶다. 이런 문학을 향유하길 거부한다면 우린 인생에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난 저자의 사유의 깊이와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다시 각 잡고 문학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아쉬운 건 설득은 좋은데 다소 동어반복적 부분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건 확실히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너무 자세히 쓰다 보니 지루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런 것만 견딜 수 있다면 이 책은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굳어진 사고에 자극을 주는 책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뭐 때문에 책을 읽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