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슬러 월터 테비스 시리즈
월터 테비스 지음, 나현진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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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가 되는 두 가지 길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다른 모든 것은 작파하고 심지어는 속세를 떠나 살과 뼈는 물론이고 영혼까지 갈아 대가가 되는 것. 또 하나는 세상 속에서 즐길 거 다 즐기고 볼 꼴 안 볼 꼴 다 봐 가면서 최고가 되는 것. 이 책은 전자는 아닌 후자에 속하는 이야기는 아닐까 한다.

또 그럴 경우 전자보단 후자가 더 흥미롭지 않나 생각해 본다. 전자의 이야기로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나 율곡과 신사임당 같은 이야기도 좋겠지만 위인 전기를 보는 것 같을 수도 있다. 그런데 비해 후자는 여러 많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 주면서 인간 내면을 여지없이 보여줘 이야기가 더 풍성할 수 있다.

이왕 당구 이야기가 나왔으니 전자의 이야기가 되려면 정정당당한 스포츠 대결로 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후자로 풀려면 도박 이야기로 풀어야 할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영화 <신의 한 수>가 생각이 난다. 난 바둑이 도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 영화에서 처음 알았다. 그전까지 바둑은 앉아서 하는 건전한 스포츠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하긴 스포츠와 도박의 경계를 넘나드는 종목이 있긴 하다. 이를테면 경마가 그렇다. 화투는 그렇지 못함에도 농담 삼아 스포츠라고 말하기도 한다.

당구가 언제부터 정식 스포츠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주인공 에디가 살았던 1960년대도 당구가 항상 도박이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얼마든지 건전 스포츠로 즐길 수도 있는데 도박의 경지에서만 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에디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렇다 할 꿈이나 비전 없이 자란 에디는 당구에 소질 있다. 이런 걸 두고 우리 옛 어르신들은 사람은 자기 먹을 밥통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셨나 보다. 자기가 잘하는 것 가지고 빌어먹고 살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더구나 에디가 사는 곳은 자유가 자유스럽게 보장되는 미쿡이다. 자나 깨나 배곯을까 걱정해야 하는 우리나라완 다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유교적 사고방식이 있어 노름으로 밥 빌어먹고 산다면 혀를 끌끌 차던가, 호적을 파던가, 접시 물에 코 박고 죽던가 해야 한다. 설사 접시 물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 바닥의 룰과 살벌한 약육강식에서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솔직히 말을 하자면 이 소설은 그런 치열함 같은 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냥 좀 아기자기하면서 재즈스럽다고나 할까. 얼핏 들으니 이 책이 처음으로 쓰인 당구 소설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런 만큼 하나의 전범으로 손색은 없어 보인다.

읽다 보니 주인공 에디가 누구를 만나게 되는가가 눈에 들어왔다. 에디는 제일 먼저 찰리와 함께 미네소타 뚱보를 만난다. 찰리는 이를테면 에디의 매니저 같은 역할을 잠시 한다. 그래서 당구계의 전하 무적(?) 미네소타 뚱보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런데 이때만 해도 에디는 좀 순진한 데가 있었다. 도박이건 게임이건 치고 빠져야 한다. 즉 누가 빨리 승점을 획득하느냐인데 뚱보가 끝이라고 해야 끝나는 거란다. 끝나야 끝난다란 말을 이런 식으로 적용하다니. 미친 거 아닌가?

결국 우리의 에디는 졸음과 피곤을 꾸역꾸역 참으며 게임을 계속한다. 머리만 잘 쓰면 이길 수도 있었는데 역시 게임은 기술만 좋다고 이기는 건 아니라는 걸 에디도 그쯤에 어렴풋이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판세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다. 또 그런 만큼 미네소타 뚱보는 뚱뚱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상대를 넘어뜨릴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찰리와 헤어진 후 버스 터미널 카페에서 새라를 만나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결국 가까워지고 그녀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이런 이야기에 연애가 빠지면 배신이다. (이건 이야기의 공식이다.) 하지만 그들은 동거만 할 뿐 결혼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삶은 노터치다. 그냥 섹스 파트너 겸 동거인으로서 간섭하지 않는 삶을 살 뿐이다. 나는 이런 유형의 동거를 꽤 오래전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를 봤을 때 보고 좀 놀란 적이 있었다. 난 그때 동거는 결혼식만 안 올렸다 뿐 사는 건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살을 부대끼고 사는데 어떻게 서로의 삶을 터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의아했다. 그런데 이게 오래전부터 가능했었나 보다. 역시 미국은 끕이 다르구나 했다.

하지만 에디는 언제까지나 새라하고 세세세하며 살 수만은 없다. 오는 사람 안 말려 같이 살았으니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를 실천할 때가 돌아왔다. 사실 난 이 책을 읽는 중에 영화도 찾아봤는데 이 부분이 원작과 영화가 달랐다. 영화는 새라가 에디를 붙잡는 바람에 결국 동행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제 와 이런 말 한다고 달라질 건 없겠지만 그 설정은 뭔가 난센스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새라는 나중에 극단적인 선택까지 한다. 이것은 미국의 자유분방한 정신과 별로 맞지 않아 보였다. (여기선 지면상 영화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그래도 나는 나중에 에디가 새라를 너무 나 몰라라 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에디가 양쪽 엄지손가락을 다쳤을 때 새라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사람이 은혜를 모르면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리기도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에디가 버트를 만난 거 아닐까. 에디가 버트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진정한 허슬러의 면모를 갖추게 되니 말이다. 버트는 에디에게 네가 왜 미네소타 뚱보를 만나지는 게임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지적해 주기도 한다. 또한 버트는 에디가 진정한 허슬러라는 걸 알아본다. 그리고 도사 같은 말도 한다. 이를테면,

게임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큰돈을 기다리면서 직감적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다섯 명의 상대 선수들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내기를 할 수 있는 자기만의 개성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사람이야. 그 누구도 실행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내기를 대비하지. 그건 운이 아니네. 나는 운 같은 건 없을 거라고 보네. 만에 하나 있다고 하더라도 운에 의존해서는 안 되지. 자네가 할 수 있는 건 확률에 따라 경기하고, 최선을 다해 게임에 임하는 거야. 중요한 내기 게임 앞에선,-돈이 걸린 모든 게임은 언제나 중요하지만- 배를 팽팽하게 조이고 세게 밀어붙여야 하네. 그게 바로 클러치야. 그때 타고난 루저는 죽고 자네는 다시 태어나는 거지." 212p

이런 사람 꼭 있다. 모든 것을 초월한 듯도 하고 동시에 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래도 에디는 꼴에 처음에 버트를 거절했다. 게임에서 이기면 75를 자기가 갖고 25를 버트가 갖는 줄 알았더니 그 반대란다.

버트 같은 사람은 오히려 돈 싸 들고 나 좀 키워 달라고 부탁해야 할 사람인데 에디가 아직 철이 덜 들었다. 에디에 대해 별로 아쉬울 것이 없는 버트는 에디와 안녕을 고하고 자기 갈 길을 간다. 하지만 역시 만날 이유가 있는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에디는 우여곡절 끝에 수락을 하는데 나중에 버트에게서 75를 자기가 갖는 것 못지않은 축복을 누린다. 한마디로 버트는 에디에겐 은인이다. 어디 나도 버트 같은 사람 좀 안 만날까? 이게 또 인생의 최대 과제 아닌가. 재주가 있다고, 테크닉이 뛰어나다고, 판세를 읽을 줄 안다고 최고의 허슬러가 되는 건 아니다.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

오래전 고 이이령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문학을 비교하면서, 미국은 거리의 문학이고 우리나라는 집의 문학이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 굉장한 통찰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 하나같이 집에 대한 그리움이나 가족 걱정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의 모든 만남은 집이 아닌 거리(!)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헤어지는 것에 그다지 미련이 없다.

이 책을 통해 미국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리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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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8-03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승리와 패배로 정확히 나뉘는 것들, 가령 시합이나 도박에 뛰어들 땐 승리감에 취할 기쁨을 기대하기보다 패배했을 때의 대책을 세워 놓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실력 다음으로 운, 이란 것도 중요한 변수겠죠. 영화로 보면 더 재밌을 듯합니다.
도서를 제공 받아 리뷰 쓰는 일이 저로선 하기 힘든 일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야 리뷰를 쓸 수 있는 책인지 쓸 수 없는 책인지 판가름이 나거든요. 내가 할 말이 없는 책도 있더라고요.^^

stella.K 2024-08-03 20:21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댓글 달아주셔서. ㅋ
이번에 이 작가의 작품 5권이 새로 나왔더라구요. 전 퀸즈 갬빗이 관심이가서 신청해 본 건데 혹시 그게 안될지도 몰라 이 작품을 같이 신청했는데 두권 다 보내주더라구요. 영화보단 원작이 낫긴한데 제가 미쿡문학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냥 나쁘지 않다 정도였어요. ^^

물감 2024-08-07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리뷰가 왜이리 디테일하지? 싶었는데, 출판사 제공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쩐지!
말씀하신 고수의 두 가지 부류를 제 식대로 표현하면 정파와 사파인데요, 저는 언제나 사파의 손을 드는 편입니다. 그쪽이 훨씬 매력적이거든요. 뭔가 팔딱팔딱 생동감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도 그런 글쓰기를 지향하는 편입니다 ㅋㅋㅋ 그나저나 서사가 참 미국스럽고 좋네요. 저는 거리문학이 더 맞나봐요!

stella.K 2024-08-07 13:4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아니 왜요? 저 평소 리뷰 디테일하게 쓰잖아요. 출판사에선 스포일러 주의하라고 하는데 제가 뭐 스포일틱한가요? 저는 보고 느낀 것만 씁니다요. ㅎㅎㅎ
그렇죠. 정파에서는 뭐 나올게 없죠. 그래서 작가들도 사파에 목숨거는 거겠죠?
이 작품 저는 원작이 훨 낫더군요. 영화는 당대 유명한 폴 뉴먼이 나왔다는 것 외엔 별로 였어요.
저는 지금 협찬으로 퀸즈 갬빗 읽고 있는데 허슬러 보단 재밌는 것 같아요. 나중에 리뷰 쓰면 많은 호응 부탁해요. ㅋㅋ
 


어제 작곡가이자 연출가인 김민기님이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저는 이분의 <아침이슬>도 좋지만 이 노래를 더 좋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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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3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4-07-23 20:15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지난 5월 <SBS 스페셜>에서 학전과 김민기를 다룬
다큐를 방송한 적이 있었습니다. 총 세편인데 저는 1편만 봤는데
언제고 날잡아서 나머지 편도 봐야겠어요.
기회되시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페넬로페 2024-07-23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민기 선생님 노래는 어느 하나 버릴것이 없어요.
가시는 길마저 아름답네요^^

stella.K 2024-07-23 20:21   좋아요 1 | URL
어제 세상의 모든 음악에서 추모 음악을 방송해 주더군요.
전기현 씨 멘트하는데 결국 멘트를 다 못하고 음악을 틀어주더군요.
묘하게도 그게 더 슬프게 느껴지더군요.
김민기님 건조한 나래이션이 깔린 음악인데 참 쓸쓸하고 먹먹했습니다.

카스피 2024-07-23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한세대가 저물어 가네요.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stella.K 2024-07-23 20:2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갈수록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이 자꾸 떠나네요.
 

장마라고는 하지만 밤에 퍼붓듯이 비가 와도 아침부터 밝을 동안엔 그쳐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물론 비 그치면 뜨겁고 비 오면 습도가 장난이 아니지만 일단은 우중에도 그런 때가 있다는 것에 방점을 찍어 본다.


낮에 영화 <도어락>을 봤다. 스페인 영화 <슬립 타이트>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소재만 차용하고 줄거리나 방향성은 별개라고 한다. 그러니까 원작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건 영화를 결코 잘 만들어서가 아니다. 원작의 판권을 사들일 바엔 배우만 교체하고 아예 줄거리나 방향성도 같이하는 게 훨씬 경제적으로나 효율적인가 아닌가 싶어서다. 물론 원작을 보지 않았으

니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좀 조심스러울 수도 있겠다.


영화의 완성도보단 의욕이 너무 앞서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또 의욕이 앞선 만큼 정말 의욕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건 칭찬이다.) 사실 내가 스릴러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내가 그러는 나름의 이유가 없지 않지 싶기도 하다. 스릴러치고 완성도 좋은 작품을 만나지 못한 탓도 있지 않나 싶은 것이다. 언젠가 본 <목격자>란 영화도 얼마나 답답하고 짜증이 나던지 결국 다 보지 못하고 끊어 버렸다. 그래도 이 영화는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은 있었다.


어찌 보면 영화는 장르 막론하고 트릭의 예술인지도 모르겠다. 관객을 완벽히 속일 수 있어야 좋은 영화다. 특히 스릴러나 미스터리는 더더욱. 그런데 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게 보인다. 관객을 속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설혹 속였다고 해도 그 방법이 좀 올드하다. 예를 들면 주인공 경민(공효진 분)에게 대놓고 들이대다 비교적 늦게 최후를 맞는 기정(조법래 분)이 스토커 범인 일 수도 있다. 모든 정황이 기정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이럴 경우 범인은 따로 있을 거란 건 나 같이 스릴러를 볼 줄 모르는 사람도 초반부터 짐작이 가능하게 만든다. 왜 그런지는 스포일러가 돼서 더 이상 언급은 회피하겠지만. 하긴 그게 정공법이라면 할 말은 없다. 원래 범죄 스릴러는 이 사람이 범인인가 싶다가도 저 사람이 범인인 반전의 묘미에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감독이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니다. 단지 그게 좀 많이 본듯해서 식상하다는 정도라 문제인 거지.


게다가 딸이 죽을 뻔한 일을 겪었는데 엄마는 전화로만 통화하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계모인가? 원래 가족이 남만도 못한 경우가 많긴 하니 그도 그냥 이해하기로 하자. 그런데 나 왜 이렇게 이 영화에 점수가 후한 거야? 그 밖에 이 영화의 아쉬움은 영화 사이트에 가면 많이 올려져 있으니 내가 여기서까지 뭐랄 건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에 후하고 싶은 건 앞서 말했던 것처럼 완성도는 좀 아쉽긴 하지만 영화에 대한 의욕이 보여서다. 무엇보다 주인공 경진 역을 맡은 공효진의 연기가 좋아서이기도 하다. 아마 모르긴 해도 공효진이 이 영화의 반은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걸. 이 배우는 뭘 맡겨놔도 정말 연기를 잘한다. 특히 특유의 안정감 거기서 나오는 신뢰감이 한마디로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이 영화 감히 보라고 추천까지 하고 싶은 건 꼭 공효진이란 배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이 과연 여자 혼자 살기 좋은 나라인가에 대한 뭔가 은유가 담겨 있는 것 같아서다. 1인 가구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물론 거기엔 절대다수가 남자겠지만 여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싱글 여자를 상대로 한 계획범죄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방범이라도 잘 되어있어야 하는데 경찰은 너무 미온적이다. 영화도 그렇지만 여자 혼자 사는 집 쳐놓고 남자 구두 현관에 한 켤레쯤 놓고 살지 않는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게 방범에 어느 만큼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라도 해 놓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세상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혀 줬으면 좋겠다.


내 방 창문에서 건너편 건물은 금남의 집인지 우리 집이 이사 올 때부터 지켜보건대(보려고 해서 보는 건 아니다.) 사람은 바뀌는데 항상 여자만 2, 3명쯤 살고 있는 것 같다. 뭔데 저 집엔 여자만 살고 있는 걸까 오래도록 의문스러웠다. 또 어떤 땐 내 방 창문에서 마주 보이는 곳이 그 집 주방 창문인데 이틀이고 사흘이고 밤낮으로 켜져 있는 때도 있었다. 그게 또 명절 전후인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내 짐작엔 그녀들의 본가는 다 지방이라 혹시 밤에 빈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켜 놓은 걸까 했다. 그러다 최근에 엄마의 설명으로 나의 추리는 다 틀리긴 했지만 이렇게 여자들만 사는 집이고 같은 여자인데도 뭔가 모를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내가 이럴진대 남자들은 또 어떤 상상을 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이 말은 하고 싶다. 행여 빈집에 불 켜 놓지 말라고. 그게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앞서도 엄마의 설명 때문에 나의 상상력이 깨졌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그 집 여자들은 서로를 너무 믿은 나머지 내가 소등을 안 해도 누군가 하겠지란 안이한 생각에 그렇게 된 것이다. 참고로 그 집은 살림집이 아니라 작업실 겸 창고같이 쓰는 곳이란다. 나 참...


우리나라가 이제 선진국이란다. 그 근거를 어디서 보는지 모르겠다. 경제 문화적으로 잘 살면 선진국인가? 나는 감히 말하건대 그런 거 가지고는 선진국이라 말할 수 없다. 어린아이와 노인, 여성이 안전하고 제대로 된 권리를 누려야 선진국이다. 물론 우리가 완성도 높은 영화를 봐야겠지만 가끔은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뭔가의 함의가 있는 영화라면 그것도 좀 놓치지 말고 봐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못해도 별 3개다. 그만하면 볼만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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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7-24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게라도 해 놓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세상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혀 줬으면 좋겠다.˝ - 이에 지지합니다. 그래도 외국 관광을 해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가 치안이 잘 된 나라라고 하네요.
약자든 여성이든 맘 편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stella.K 2024-07-24 15:4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우리나라 치안이 잘 되있다고 해서 전 가끔 수사극 같은 거
저거 다 뻥 아냐? 할 때도 많아요. ㅋ
하지만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거 보면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거 같아요.
이 영화 볼 때는 나름 쫄깃하고 재밌긴한데
보고나면 좀 허무해요. 말도 안 되는 것도 많고. 어떻게 스토커가
여자 침대 밑에 숨어 있을 수가 있어요? 그러다 여자가 잠들면 침대 위로 올라와
같이자고. ㅎㅎ
암튼 크게 기대 안하고 보면 볼만해요.^^
 
로라미용실 - 교제 살인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한다
박성신 지음 / 북오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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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본듯한 느낌이다. 장르는 범죄 수사물쯤? 이런 쪽의 장르라면 나는 당연히 영화로 봤을 텐데 책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예전에 대중 소설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는지를 차치하고라도 지금은 대중소설과 순수소설에 대한 관심이 비등해졌거나 오히려 대중소설이 조금 더 앞서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는 아마도 지난 세월 동안 드라마 제작사나 영화사에서 지속적으로 판권을 사들이고 작업해 온 결과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한 이 방면의 소설가들이 시나리오를 공부한 결과이기도 하고.

이제 소설 쓰는 작가들은 단순히 내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바라지 않는다. 아예 쓰는 단계에서부터 영화처럼 쓴다. 그것을 난 이 책을 읽으며 확인했다. 과연 이렇게 쓰는 작가들은 언제부터 나타났으며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또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영화 제작 편수가 1년이면 몇편이나 되겠는가? 영화처럼 소설을 쓴다고 해서 다 영화화되는 것도 아닐테니 오히려 소설로 둥지를 틀기도 하겠지. 그러고보면 장르 소설은 더욱 팽창할 것이다.)


시나리오는 소설 쓰는 것보다 몇 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까 옛날 같으면 (시나리오 작가가 많지도 않았지만) 시나리오 쓰는 게 어려워서 소설을 쓴다고 해도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지금은 그 말도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창작의 세계에선 더 이상 쉬운 길은 없다.

침대만 과학은 아니다. 시나리오도 과학이다. 이것은 단순히 1+1= 2라는 말이 아니다.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영화에서 맥거핀(영화의 내용과 상관없는 장면을 슬쩍 끼워 넣는 것)이란 것도 있긴 하지만 이유 없는 결과가 없듯 이유 없는 장면은 없다. 초반에 밑밥을 잘 깔고 그것을 후에 회수하는 것도 시나리오가 가져야 할 덕목이다. 또 그러기 위해선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이 씨줄과 날줄처럼 잘 엮어야 좋은 작품이 되는데 그 어려운 것을 이제 소설도 해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위의 것들을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지면상 하나하나 설명할 수는 없고, 대충 풀어보면 여기서의 메인 플롯은 어린 찬서가 미장원 일을 하던 엄마가 교제하던 전탁근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후, 찬서는 엄마와 함께 살던 무산으로 돌아와 복수를 꿈꾼다(이건 복수극의 전형적인 시나리오 방법이다). 전탁근이 25년형을 받고 만기 출소해 무산으로 돌아온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 이게 메인 플롯의 과제다.

그런데 25년 만에 돌아온 무산은 환경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는데 사람이 변했다. 엄마가 일하던 로라 미용실엔 웬 알지도 못하는 수상한 늙은 여자가 원장이란다. 또한 이젠 동네와 함께 늙어간 여사님들이 이곳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데 바로 그들이 마을의 정보원 노릇을 한다는 것을 깨닫는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전탁근의 둘째 아들이 일찌감치 내려와 술집을 경영하고 있는데 똑똑한 놈이라는 건 알겠는데(외과의사 면허증이 있으니),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알 수가 없다.

이상한 건 찬서는 그저 전탁근에게 복수하려는 것뿐이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미장원 원장과 엮이는 느낌이다. 그러다 마침내는 원장으로부터 탐정이 되라는 권유를 받는다. 물론 처음엔 거절했지만 어느새 미장원 바로 위층에 탐정 사무소를 차리고 사람들의 억울한 일을 해결해 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몇 개의 일을 해결하는 공도 세웠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몇 개의 일이 다 교제 살인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서브 플롯이 되시겠다. 즉 이 이야기 가는 길은 미스터리한 인물들이 어떤 정체의 사람인가, 교제 살인의 가해자들을 찬서가 어떻게 응징하는가 또한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전탁근을 어떻게 복수하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정말 읽고 있으면 영화에서 느끼는 통쾌함과 희열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살짝 갈등도 느낀다. 영화로 볼 걸 굳이 책으로 읽나 하는. 하지만 등장인물은 어떤 배우가 캐스팅이 되면 좋을까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 게다가 아직 영상화될 건지 아닌지는 미지수다 )

그런데 이 소설이 좀 특별했던 건, 이 책에선 약간의 윤색을 했는데, 꼭 60년 전인 1964년, 21세의 젊은 남자가 길에서 마주친 18살 여성에게 키스를 했다 혀가 잘린 사건이 있었다. 그로 인해 한순간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게 되었고, 여자는 성추행범이 되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고, 반면 남자는 먼저 가해를 했음에도 인정되지 않고 풀려난 사건이 있었다. 더 황당한 건 당시 판사가 여자에게 남자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결혼하라고까지 판결을 내렸다. 난 그때 뭐 그런 황당한 판결이 있는지 좀 놀라웠다. 우리나라 법이 단순히 무른 줄만 알았는데 미개하기까지 하구나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것도 그렇지만 일개 판사가 나서서 결혼해라 마라 훈수까지 두다니. 궁금했다. 그 판사도 자신의 여동생이나 딸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런 판결에 복종할 수 있는지.

생각난 김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동안 몇 번의 항고와 최근 2022년 재심 요청에도 불구하고 하고 기각이 되었다고 한다. 이럴 수가. 그동안 여권의 신장과 여성 법조인이 얼마나 많이 배출되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아직도 해결이 안 됐다니. (이 비슷한 사건은 그 후에도 몇 차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자 쪽의 무혐의가 인정됐다는 것. 내가 놀라는 건 이런 사건이 그때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최근까지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런 사간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어쩔 것인가.)

아무튼 작가는 바로 그 사건을 상기시키며 '과거에서 온 엄마의 비밀노트'란 제목으로 이 이야기를 재탄생시켰다. 실제로 그 사건의 여자가 판사의 판결에 굴복해 자신을 추행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면 결코 행복할 리가 없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작가가 그 여성을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그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책에 나온 몇 개의 에피소드 역시 작가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에 작가적 상상력을 덧입혀 썼을 거라 짐작해 본다. 또한 작가가 다룬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도 아닌 빙산에서 녹아내린 물 한 방울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이 시간에도 데이트 폭력과 교제 살인은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직도 인도나 중동 지역의 여성들은 남편이나 남자 형제로부터 끔찍한 살인이나 폭력을 당하고도 마땅히 말을 곳 조차없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라고 무엇이 더 나아졌는지 알 수가 없다. (얼마 전에도 10대 청소년이 같은 동급생 여자아이를 흉기로 찔렀다는 보도를 접했다. 모르긴 해도 교제하는 사이거나 미치지 않고서야 그냥 남사친 여사친 하는 사이에선 그런 일은 생길 수 없다.) 이거 무서워 어디 데이트고 나발이고 맘대로 할 수나 있겠는가.

우리의 현실은 이런 소설 한 권 읽었다고 나아지지는 않는다. 물론 기발한 방법으로 복수를 하니 어느 정도 카타르시스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이 책의 부제가 '교제 살인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한다'다. 얼마나 강렬한 문장인가.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게 할 수도 없지만 설혹 가능하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된다. 그러면 남성의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고, 나라는 피바다가 될 것이며, 서로에 대한 혐오와 갈등은 하늘을 찌를 것이다. 소설은 나름의 기능과 쓸모가 있을 것이다. (물론 재미가 첫 번째지만) 이를테면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도 온갖 협박과 가스라이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각성과 용기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데이트 폭력으로부터 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바람직한 데이트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등 지속적인 예방과 교육이 먼저 아닐까? 이야기는 통쾌하고 재밌기는 한데 이런 것만 보면 도대체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데이트를 해야 결혼도 할 것이고 나아가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는 희망도 가져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솔직히 내가 이런 소설을 기피했던 건 순수 문학만 선호하는 것도 없지 않지만 좀 어둡고 잔인해서 선택을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솜씨가 그럴듯하다. 막 잔인하다가도 끝에 가선 해피엔딩이다. 옛말에도 끝이 좋으면 다 좋다지 않은가. 역시 화제성 소설답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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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07-08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제가 굉장히 직관적이네요. ^^ 저도 동의합니다. ^^

stella.K 2024-07-09 13:06   좋아요 1 | URL
그렇죠? 바람돌이님도 기회되면 함 읽어보세요.^^

꼬마요정 2024-07-09 0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지속적인 예방과 교육 절실해요!! 여자가 이별을 이야기 했다고 칼로 찌르거나 황산을 붓거나 불을 지르는 건 진짜 나쁜 짓이라는 걸 확실히 해야죠. 읽는데 열불이 터지긴 했어요. 실화 바탕이라는 게 더 화가 났구요. 갑자기 그 사건도 생각나네요. 청바지는 강제로 못 벗기니까 청바지 입은 여자는 강간이 아니라 동의 하에 이루어진 성관계라는 판결요. 진짜 헐이었는데… ‘교제 살인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한다’ 맞아요 맞아요!!!!

stella.K 2024-07-09 13:09   좋아요 0 | URL
ㅎㅎ 역시 요정님이 가장 분개를 많이하시네요.
근데 청바지는 정말 충격적이네요.
우리나라 법이 아직도 여성을 차별하네요. 선진국일수록 여성이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울나라 선진국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ㅉ

희선 2024-07-09 0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제 있었던 일을 소설로 썼나 봅니다 헤어지는 걸 잘 해야 할 텐데... 헤어졌는데도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스토킹을 하잖아요 그러다 죽이기도 하고... 지금은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예전이라고 아주 없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stella.K 2024-07-09 13: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고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해요!
그런 것을 가르쳐 줘야하는데 헤어지잔 말에 보복당해야 한다면
누가 이성을 만나겠어요? 분통터질 일이죠.ㅠ

물감 2024-07-09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냥 교제를 금해야 합니다 (매우 극단적) ........
그나저나 오랜만에 쓴 책 리뷰라 반갑습니다 ㅎㅎ

stella.K 2024-07-09 13:15   좋아요 1 | URL
앗, 저의 리뷰를 기다리시다닛!
이거 더 부지런히 읽고 써야겠는데요? ㅎㅎ
노력해 보겠슴다.^^

페크pek0501 2024-07-24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보다 더 쓰기 어려운 것이 드라마나 시나리오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관찰한 것들을 쭉 써도 되지만, 시나리오와 같은 작품은 인물마다 그 캐릭터에 맞는 대사를 써야 하니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런 걸 쓰는 분들이 천재들이라고 생각해요.ㅋㅋ

stella.K 2024-07-24 15:50   좋아요 1 | URL
오, 언니 이젠 소설도 그런 말 못하겠더라구요.
제가 그동안 소설을 너무 안 읽었구나 반성하고 있는 중이어요.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 정말 글 잘 쓰더군요.
단편은 그만그만한데 장편이나 장르물은 안 그렇더라구요.
정말 잘 써요. 괜히 K-소설이 아닌 것 같더군요.
저는 장르소설 휘발성 때문에 별 관심 안 가졌는데 그렇다고 그걸 폄하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일단 취향은 존중 받아야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앞으로는 가급적 장르소설 읽어 보려구요.
이래뵈도 제가 소설 쓰는 게 꿈이랍니다. ㅋㅋ
참, 언니 이미지 바꾸셨어요. 밝아보여요.^^

2024-08-14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8-14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좀 지난 얘기가 되지만 이 드라마가 방영된다고 했을 때 조금 설레었다. 결국 역사는 돌고 돈다더니 대중문화도 돌고 도는구나 했다. 그래서 복고니 레트로니 하는 거겠지만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난 본방사수 같은 건 거의 안하는 편이라 이 드라마 역시 한참 지나고 최근에야 한 3주간에 걸쳐서 봤던 것 같다. 총 10편에 지나지 않은 걸.


추리 수사물이지만 시대극이기도 하다. 1960년대가 배경인데 요즘 수사물도 온갖 화려한 볼거리를 장착하고도 겨우 볼까 말까인데 저 시대에 프로파일링 기법도 아직 없었을 땐데 어떻게 무엇을 보여줄 건가 좀 의아스러웠다. 하긴 그렇다고 우리가 드라마를 안 보고 살아 온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 시절 추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역시 예리한 추리와 빛나는 액션이 답이었다. 


초반엔 다소 어색한 느낌이없지 않지만 가면 갈수록 힘이 느껴졌다. 독특한 건 그 옛날 <수사반장> 오리지널 멤버들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    

    

맨 왼쪽이 김상순 배우고, 맨 오른쪽이 조경환 배우다. 이들 중 현존해 있는 사람은 최불암 배우뿐이다. 저 배우들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박영한 역을 맡았던 이제훈은 그동안 범죄 액션물에서 (모범택시1, 2) 인상적인 연기 때문에 캐스팅 된 것 같기도한데 너무 현대적인 이미지라 이 작품엔 다소 안 맞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제훈이 늙으면 어떻게 최불암이 될 수 있을까? 저 오른쪽 두번째 남성훈 배우가 된다면 이해하겠지만.ㅋ  암튼 열심히 하는 배우를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그냥 그렇다고. 이번 주에 그가 출연한 영화가 출격했다던데 그는 아마 미스터리 액션 뭐 이런 쪽으로 이미지를 굳힐 모양인가 보다. 


그나저나 보통 드라마가 12회에서 길게는 16회까지 하던데 이건 10회에서 끝났다. 그렇다고 딱히 시즌2의 기미를 보인 것도 아니다. 배우들의 케미도 나름 좋던데 시즌2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위하준이 3년 전 드라마 <배드 앤 크레이지>에 나오는 거 보고 이 배우 언젠가 뜨겠구나 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 나온다고 했을 때 나쁘진 않겠구나 했다. 역시 나쁘지 않았다. 근데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앞으로 안판석 작품을 더 볼 것 같지가 않다. 2007년이었나? <하얀거탑> 보고 좋아라 했다. 그 이후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까지는 봐 줄만했다. 하지만 <봄밤>부터는 뭔가 나의 인내력을 시험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좋아하는 정해인, 한지민이 나오는데도. 


난 영화나 드라마에 인내력을 시험하게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인내하고 있지? 하면 바로 안 본다. 그런 작품은 끝까지 봐도 별로 남는 것이 없다. 어차피 드라마를 보는 행위엔 시간 죽이기를 포함하고 있다. 시간을 확실히 죽여주지 못하면 채널은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만큼 시청자의 세계는 냉정하다. 아무리 죽을 고생해서 만들었다고 떠들어도 재미없으면 끝이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안판석의 작품을 좋아할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선 매력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나이 먹어 들어가면서 좀 인생을 관조하는 작품을 만들 수도 있을텐데 만들어도 꼭 로맨스다. 그것도 연상연하 커플의. 나름 파격적인 건 <밀회>지. 그냥 연상연하가 정도가 아니라 여사님이었으니. 암튼 그러다 보니 이 사람 연상에 대한 페티쉬가 있나 싶기도 하다. 드라마가 이렇다할 극적인 전개가 없는 건 우리네 인생과 닮아있다. 그래서 약간 지루한 프랑스나 일본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뭐 인생 별거 있어 하며 볼 수도 있겠지. 시청자들이 꼭 극적인 것만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 지루하고 느른한 게 당길수도 있다. 그러면 안판석표 드라마 추천해 드려요!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나름 놀랐던 건 우리나라 고등학교 국어에 정말 박완서 작가의 작품이 실렸냐는 거다. 모르긴 해도 설정일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드라마가 설정이어도 어느 정도 현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니까. 처음에 이 사실을 알고 격세지감은 맞지 않는 표현일 것 같고, 나름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실렸으니, 요즘 아이들은 좋겠네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건 좀 아니겠구나 싶다. 그나마 내가 학교 때 좋아했던 과목이 국어인 건 사실이지만 그건 정말 그나마지 정말 좋았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 국어 좋아한다는 아이들도 다를 바 없겠구나 싶었다. 솔직히 박완서 작가의 작품은 나이들어 갈수록 좋아지지 첨부터 좋기엔 뭔가의 장벽이있다. 특히 그 독자가 젊은 사람일수록. 나도 20대 때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그땐 작가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고, 내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라였다. 하지만 그때 작가는 주인공을 30대 말 40대로 설정했던 것 같다. 왜? 작가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난 그때 20대였으니 글을 잘 쓰는 건 알겠는데 공감하기엔 좀 버거웠다. 그걸 지금의 아이들도 똑같이 느끼지 않을까. 그렇담 이거 완전 통돌이 아닌가. 왜 우리나라 국어 교과서는 그래야만 하는 건가 싶은 것이다. 젊은 아이들에겐 그에 맞는 정서의 작품을 읽게해 줘야하는 거 아닌가? 젊은 작가의 젊은 감각의 작품도 많을텐데 하필. 그렇다면 아이들은 평생 국어는 고루하고 재미없는 과목이란 인식에서 못 벗어날 것 같다. 


하긴 문득 옛날 생각난다. 그때 2000하고도 몇년도쯤인지, 어느 알라디너가 고등학교 참고서인지 교과서가 있는데 그냥 버리기는 좀 아깝고 혹시 필요한 분 계시면 보내주겠다고 해서 내가 넙죽 손을 들었다. 그때 국어를 비롯해 사회, 도덕 같은 내가 좋아했던 과목이라 제가 읽고 버리겠다고(?) 나에게 보내주시라고 했다. 그때 받고 후회하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는 또 신앙인이라 내가 후회하면 후회하는만큼 보내주신 분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다. 지금은 그런 꿈은 안 꾸는데 한동안 내가 학교에 있는 꿈을 종종 꾸곤했다. 그 꿈을 그때 다시 꾸게 될까 봐 쫄기도 했다. 


최근 어떤 사람이 우리나라 수능의 문제점을 고발한 책을 냈다고 하는데 모르긴 해도 학력고사 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아무튼 우리나라 교과서는 좀 재미있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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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7-07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 때는 다른 책은 몰라서 안 보고, 교과서밖에 안 봤군요 그렇다고 재미있게 본 건 아니고 학교에서 공부 시간에만... 교과서는 재미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과서가 재미있으면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희선

stella.K 2024-07-07 19:23   좋아요 1 | URL
제 말이요. 교과서라도 재미있어야 하는데 그래 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좀 재밌으면 안 되는 걸까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