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에서의 표준어는 전라도 말이다. 등장인물 중 서울 말을 쓰는 사람은 남자 주인공 황희태와 그 가족들 정도만 쓴다.지금까지 극중 등장인물이 사투리를 쓴다면 그건 극을 재밌게 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또한 이 드라마는 유명 배우들은 나오지 않는다. 다들 어느 드라마에선가 조연으로 연기했을 배우들만 나온다. 그런 점에서 제작비가 많이 절감되었을 것 이다. 아무래도 시대를 타는 드라마고 80년대 레트로 분위기를 생각하면 굳이 회당 출연료의 정점을 찍는 5성급 배우를 기용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그 예상은 그대로 적중해서 출연진들은 연기를 잘했다. 조연이 주연이 됐으니 얼마나 의욕이 넘쳤을까. 게다가 요즘 젊은 배우들 좀 연기를 잘하는가.


사람이 모방하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때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사투리 구사가 아닐까 한다. 나도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전라도 사투리를 흉내 내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실제로 서재에서 답글을 달 때 전라도 말을 쓰기도 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이 드라마를 보는 중(나는 본방이 아니라 VOD로 봤다)에 목포를 처음 여행하기도 했는데 현지에서 듣는 전라도 말이 어찌나 좋던지.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케이블카를 타려고 승강장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먼저 타고 내린 어느 초로의 어르신 한 분이 처음 타 본 양 내려서는 "좋구마!"하는데 웃음이 났다. 전망대 입구에서 주차지도하는 아저씨의 전라도 말씨도 정겹고.



이 드라마의 원작은 <오월의 달리기>란 역사 동화를 각색했다고 하는데 난 아직 읽어 보지 못했다. 원작은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 김명희의 한참 터울 나는 동생 김명수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5.18을 알리기 위해 씌여진 것이다. 그것을 드라마에선 젊은 남녀의 핏빛 사랑으로 새롭게 썼다. 하지만 원제가 딱히 와닿지는 않는 느낌이다. 그냥 어느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쓴 거라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의 제목도 거의 같은 느낌이긴 한데 우연히 이 드라마가 5.18을 배경으로 했다는 걸 알고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드라마의 미덕이라면, 그런 역사를 배경으로 했다고 해서 반드시 어둡고 칙칙한 건 아니다. 중간중간 웃음을 자아내는 부분이 많아 크게 부담스럽진 않았다. 애초에 남녀 간의 사랑에 방점을 뒀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특히 세 사람, 명희와 희태, 명희의 친구이자 희태의 약혼녀 수련과의 점점 꼬여가는 운명은 억지스럽지 않고 꽤나 현실적이다. 그만큼 대본이 탄탄하다.


이들의 운명의 얽힘을 보고 있노라면 저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저리 가라다. 또 못지않게 이들의 부모 역시 서로 질긴 악연으로 얽혀있다. 하긴 비극적 사랑의 원형은 셰익스피어를 원형으로 하지 않는가. 5. 18이 비극적인 만큼 드라마도 결코 해피엔딩일 수는 없다. 그래도 왜 원제가 <오월의 달리기>인지 뒤에 가면 알 것 같다. 5. 18이 터지고 누나를 찾아 광주에 온 명수가 누나를 만나긴 하지만 명희는 동생과 함께 집에 갈 수가 없다. 그때 명희는 혼자서는 집에 가지 않겠다는 동생을 설득해 뒤돌아보지 말고 계속 집을 향해 뛰라고 한다. 과연 그래서 그런 제목이 붙였겠구나 이해가 간다. 하지만 명희는 곧 뒤따라 가겠다는 동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드라마 말미에 보면 5. 18이 있기 하루 전 성당에서 희태와 명희가 결혼 서약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혼 서약이래봤자 서로를 위한 기도해 주는 것인데 명희가 기도문을 읽는 장면이 가슴이 찡하다. 내용을 옮길 수 없지만(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광주의 아픔을 아픔 그대로 갖고 있지 말고 그것을 밟고 일어서라는 뜻의 기도를 하는데 과연 기도는 그런 것이겠구나 싶다. 우리의 기도는 자칫 우리 자신의 안위와 기복을 위해 빌 때가 얼마나 많은가. 기도는 우리와 공동체의 상처의 치유와 평화를 위해 빌 때야 비로소 기도다워진다는 걸 이 드라마는 명희를 통해 보여준다. 


더 공교로운 건, 이 드라마의 여운이 다 가시기도 전에 광주 5.18 사태를 주도했던 노태우와 전두환 씨가 불과 한 달 차이로 세상을 떠났다. 특히 전두환 씨는 이렇다 할 사과도 없이 세상을 떠나 광주 사태의 피해자들의 공분을 샀다. 그건 정말 사람으로서 할 짓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죽는 마당에서조차 잘못을 사과할 줄 모른단 말인가. 그 인생이 참 안타깝다 싶다.


그도 그렇지만 아직도 전두환 씨를 옹호하는 세력이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그들은 전두환 씨의 국립묘지 안장을 촉구했는데 그건 정말 추태란 생각이 든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피해자들이 저렇게 살아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건 상처에 소금을 붙는 격이다. 더구나 전두환 씨의 사망 하루가 채 지났을까, 광주 민주화 사태의 피해자로 지난 40년 동안 육체의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마약성 진통제로 버텨 온 어느 초로의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어쩌면 전두환 씨가 죽기를 기다렸던 건 아닐까 싶다. 우리는 그렇게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모쪼록 그분의 명복을 빌 뿐이다.


이 드라마의 또 하나의 미덕은 마지막 회다. 세월이 흘러 현재를 보여주는데 드라마 거의 대부분이 그렇듯 마지막은 지난 회에 비해 약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엔딩도 찡하다. 이 드라마는 5.18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또 하나의 좋은 예를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닐까 한다. 꼭 한 번 보면 좋겠다. 원작과 대본집도 보고. 단 좀 아쉬운 건 계엄군과 시민의 충돌을 보여주는 장면이 너무 어색하고, 임팩트가 약하다. 너무 제작비를 의식했을까.  


황희태 역을 맡은 이도현 배우는 목소리도 좋고 발음이 정확해 다시 한번 보게 만든다. 하지만 내가 그보다 더 지켜본 건 다름 아닌 수련의 오빠 수찬(이상이 분)이다. 평소 이상이 배우는 껄렁껄렁한 조연으로 많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기선 제법 소신 있는 젊은 사업가 겸 명희를 짝사랑하는 친구 오빠 역으로 나온다. 이런 역은 주연보다 더 좋게 보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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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1-29 2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드라마 방송 당시 한 회만 잠깐 봤었는데 주인공들 연기에 영 몰입이 안되어 일단 보기를 멈췄었어요.남녀 주인공들을 실은 제가 넷플릭스의 <스위트 홈>에서 연기하는 걸 본 직후에 봐서 더욱 몰입 못했던 것 같아요.
시간 많이 지나서 몰아보기로 다시 봐야지~싶어 미루기만 했네요^^
드라마가 역사 동화를 각색한 건 줄은 몰랐네요...
지금 구경이 몰아보고 있는데 이 드라마 다 보고 나면 오월의 청춘 봐야겠네요^^
전두환의 죽음은 참...더군다나 국립묘지 안장이라니요???!!!! 그런 사람들이 있었으니 본인이 옳다고 더 굳게 믿었을까요??
참.....에혀....사람이라면....

기억의집 2021-11-30 09:17   좋아요 1 | URL
국묘행은 안 될 거예요. 국묘 되면 침 한번 뱉어주러 가야죠!!!

stella.K 2021-11-30 10:09   좋아요 0 | URL
제작비를 아끼고 인물 중심의 드라마라 보기에 따라선 몰입이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의미는 심박합니다.
저도 봐야할 드라마가 줄줄이어요. 구경이 저도 대기중이죠.

자료 조사 하는데 나중에 이순자 씨가 남편을 대신해 사과했던 모양인데
아주 안하는 것 보다야 낫겠지만 그것 가지고 광주 시민들이 분이 풀리겠어요?
전두환은 자신이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끝까지 우릴 실망시키네요.ㅠ

2021-11-30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30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1-11-30 0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원작이 동화였군요 자세히 못 봤지만 언제가 이 드라마 이야기 조금 본 듯도 합니다 전라도니 모두가 전라도 사투리를 쓰겠습니다 이 드라마 보실 때 목포에 가셔서 느낌이 다르기도 했겠네요 자신이 한 잘못을 제대로 사과도 안 하고 죽다니... 그런 거 잘 모르기도 할 듯했습니다 건강이 괜찮았을 때도 그런 생각 안 했겠네요

stella.K 님 십일월 마지막 날 잘 보내세요


희선

stella.K 2021-11-30 11:51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그놈의 권력이란 게 뭔지.
죽을 땐 달라지는 게 사람의 마음인데
전두환은 어쩌자고 그렇게 돌아간 건지...ㅉ

세월 정말 빨라요. 내일이면 벌써 12월이네요.
어쩌면 11월 보내기가 12월 보내는 거 보다 더 어려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물론 막달이라고 센치해지기도 하지만 새해를 기다리는 마음도 있잖아요.
요즘은 다섯시 반만되도 깜깜하잖아요.
난 그게 좀 싫더라구요. 한 6시까지만이라도 환했으면 좋겠어요.
1월이 되면 그 희망이 생겨서 좋더라구요.ㅎ
희선님도 11월 마무리 잘하시기 바래요.^^

2021-11-30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30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변의 카프카 - 상 -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무라카미 하루키란 작가를 좋아하는가란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다소 주춤하게 된다. 분명 관심있는 작가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난 분명 단편으로 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지만 그의 장편을 보면 적나라한 섹스 묘사에 결국 질리고 만다. 적당히만 했었어도 그를 완벽히 좋아했을지 모를 일이다.


정말 오랫만에 그의 장편 소설을 완독했다. 완독을 해야한다면 <1Q84>여야한다. 오래 전, 세 권을 완비하고 2권 3분의 1까지 읽었던가 하곤 방치했다. 게다가 1권은 무려 두 번이나 읽었다. 다시 읽을 생각을 했다면 2권을 이어 읽으면 되는 것을 그래도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하자 하곤 그렇게 되고만 것이다. 그리고는 '역시 하루키의 장편은 내겐 넘사벽이군.' 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완독하다니. 이유라면 글쎄, <1Q84>는 세권이고, 이건 두권이라는 정도? 아무래도 <1Q84> 보단 빨리 읽을 것 아닌가.


읽지 말까를 고민했던 때가 딱 한 번 있긴 했는데 그건 역시 섹스 묘사였다. <1Q84>을 읽다 포기한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작품은 겨우 15살 밖에 안 된 다무라 카프카 군이 가출을 해서 어머니일지도 모르는, 또 누나일지도 모르는 사람과 섹스를 한다. 물론 이들의 존재는 끝내 밝혀지지는 않지만 하루키의 이런 설정은 오이디푸스 신화를 비틀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때 나는 언젠가 읽은 그의 인터뷰 내용을 생각했다. 자신은 성에 대해 보수적이지만 소통의 기재로 다루길 좋아한다고 했다. 나름 인정은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너무 다루니 흥미롭지는 않다. 차라리 그 부분을 빼거나 줄이고 다른 의미있는 것으로 채우면 좋을 텐데 좀 질린다 싶다. 옆에 있으면 알려주고 싶다. "저기요, 그런 거 독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게다가 오해 받을 수도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별 볼 일 없는 작가가 빨리 주목 받고 싶어 발광하는 걸로. 하지만 매해 노벨 문학상 후보에 지명되는 대가에게 이런 지적질이 가당치 않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읽는 것을 포기할까 했을 때 잠시 숨고르기를 할 겸 읽기를 중단하고 (끝까지 읽기의 동력을 삼으려고) 저 유명한 파리 리뷰지와의 인터뷰 내용을 다시 읽었다. (<작가란 무엇인가> 1권에 실렸다) 마침 <해변의 카프카>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그는 이제까지 쓴 작품중에 가장 어려운 작품이라고 했다. 역시 작품을 보는 눈이 작가와 독자가 다르구나 싶다. 독자인 내가 볼 때 하루키는 다소 지루할 수는 있어도 어려운 작품은 없다. 그것이 그의 장점이다. 물론 이 작품은 약간의 초현실을 다루고 있는데 그래서 어렵다고 했을까. 그렇다면 그는 상당히 겸손한 작가다. 그의 글 쓰기 스타일과 코드를 안다면 어려운 건 없다.


그는 소설을 쓸 때 큰 틀만 생각하고 나머지는 그때 그때 생각나고 내키는대로 쓴다고도 했다. 어찌보면 그건 재즈를 닮았다. 하지만 우린 그가 재즈 스타일로 글을 쓴다고 하지 않고, 그 자신 즉 '하루키 스타일'로 쓴다고 한다. 그렇게 그에게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또 한때 국내외 적잖은 작가들이 그의 글 쓰기를 흉내 내기도 했고 지금도 있는 줄로 안다. 예전엔 누가 누구를 따라하면 독창적이지 못하고 하수로 보는 시각도 없지만, 지금은 글쎄 오리지널리티를 인정 받은 마당에 굳이 하루키 스타일이라고 헐뜯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건 솔직히 독자인 나도 따라해 보고 싶기도 하다. 그 무엇에도 구애 받지 않고,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 보지 않고 정말 그날 그날 마음내키는대로 글을 쓰고 싶다. 하다못해 하루키처럼 쓰겠다는 욕망도 내려놓고. 물론 그렇게 쓸 수 있는 게 하나가 있고, 우리는 이미 그렇게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건 일기다.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를 사용하면서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일기로 돌아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블로그에 올리는 글은 어느 정도 각을 잡고 써야한다. 게다가 누군가를 흉 보거나 헐뜯는 말도 할 수가 없다. 물론 딱히 누구라고 하지 않고 익명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이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일기는 그 모든 게 가능하다. 어차피 나밖엔 볼 사람이 없으니까 맞춤법이 틀리거나 말거나, 누구를 흉보거나 좋아하거나 아무렇게나 써도 자유롭다. 그만큼 글 쓰기에서 중요한 건 자유함 아닐까. (갑자기 생각난 건데, <1Q84>에서 편집자 덴고가 어떤 소녀의 원고를 보는데 난독증에라도 걸렸을까 문법은 엉망인데 그 속에 뭔가 있다고 하면서 버리질 못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해서 하루키에 대해 글 참 쉽게 쓴다고 일갈할 수도 없다. 쉬운 게 사실은 더 어려운 법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작품도 쓰는데만도 6년인지 7년이 걸렸다고 한다. 헤밍웨이가 그랬다지. 작가의 모든 작품의 초고는 다 걸레라고. 하루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독자도 만만하게 보고 따라하고 싶은 어느 글도 쉽게 써진 글을 없다는 얘기다. 솔직히 하루키의 문장은 깊이가 느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굳이 표현하자면 겉절이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다.


내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았던 건, 그는 자신이 읽은 책과 들어 온 음악만 가지고도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다. 이 작품도 보라. 카프카는 물론이고, <겐지 모노가타리>도 나오고, <아라비안 나이트>나오고, 소세키도 나온다. 그뿐인가 <대공 트리오>도 나오고, 그의 독서팁도 슬쩍 흘리기도 한다. 이왕 <대공 트리오>가 나와서 말인데, 예전에 문학수 음악 전문 기자겸 평론가가 그런 말을 했다. 혹시 어떤 글에 음악으로 아는 척 하고 싶으면 절대로 흔히 알고 있는 작품을 가지고 쓰지 말라고. 그의 <1Q84>를 보라. 야나체크의 음악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야나체크가 누구지 하며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만일 거기에 우리가 잘 아는 베토벤의 <운명> 같은 걸 썼다고 하면 그건 정말 싸 보이는 거라고 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가 읽어 온 책이나 들어 온 음악은 그의 책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끊임없어 대담집이나 에세이 등으로 재생산 되고 있다. 그야말로 하루키 스타일을 넘어 월드, 하나의 세계를 구축했고 그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또한 그때 그때 생각나는대로 자유롭게 쓴다는 점에서 빙산의 일각이란 법칙은 하루키에겐 예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즉 작가는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자료들과 생각들을 수면 아래로 숨기고 아주 조금만 보여준다고 해서 붙여진 법칙. 하지만 모르긴 해도 하루키는 그런 건 바보나 하는 일이라며 오히려 빙산의 일각조차도 다 보여주는 최초의 작가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처럼 화수분같이 왕성하게 써 대는지도 모른다.


물론 작가가 다섯 발자국쯤 앞서가서 독자들에게 "따라 올 테면 따라 와 봐."하며 뭔가 독자의 사고를 고양시키는 작가도 좋지만, 이렇게 뭔가 만만한 게 느껴져서 독자도 따라해 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면 그게 더 좋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아예 글 잘 쓰는 작가가 있다면 독자는 그냥 우러러만 보면 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 어떤 작가도 그의 처음은 독자였고, 글 쓰기를 가르치기 보다 독자로 하여금 글 쓰기의 욕망을 자극하는 게 더 우위고 상수다. 그래서 하루키는 제자를 두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진짜 하려고 하는 말은 따로 있다. 그건 '작가는 무엇으로 증명되는가'다. 지금까지 작가는 작품으로 증명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일까. 난 거기에 의문을 재기한다. 어쩌면 작가는 작품으로 증명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건 작가가 죽었을 때나 가능하다. 작가가 죽어서도 그 작품이 회자되고, 독자가 기꺼이 읽기를 마다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작가다. 그러나 작가는 살아 있을 때가 더 중요하다. 생각해 보라. 나는 하루키란 작가를 80년대 말, 90년 대 초에 듣기 시작했다. 그의 데뷔 년도가 1979년이니 우리나라에 알려지기는 내가 아는 것 보다 더 일찍일 수도 있겠다. 비슷한 무렵에 우리나라에 하루키 못지 않게 이름을 알린 작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작가 수명은 그리 길지 못하다. 기껏해야 20년? 그 기간 동안 뭐가 됐든 열심히 쓴다. 그렇게 문단계에 이름을 알린 작가들은 지금 어디론가 사라지고 가끔 떠올리면 뭐하고 사나 궁금해하다 만다. 그들은 어느 새 신진 작가들에게 문단계의 방석을 물려주고 어디가서 자신이 무슨 작품을 썼다며 추억팔이나 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정말 늙기도 전에 이미 노쇄해져 버린 것이다.


하루키는 마라톤으로 단련되어서일까 아직도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 작가는 독자와 함께 나이들고 늙어갈 수 있어야 한다. 작가를 누가 기억해 주겠는가. 당대의 독자들이다. 그걸 작가들은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과거의 자신 속에 안주해버리는 것 같다. 지금 작품을 쓰고 있지 않다면 그는 작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의 2, 30대 독자들이 앞으로 기억할 사람은 8, 90년대 작가들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의 작가들만 기억할 것이다. 그나마 그들도 언제부턴가 새로운 작품을 쓰지 않는다면 선배 작가처럼 될 것이고, 그 소수의 독자들만 멈쳐버린 시간까지만 기억할 것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기억될 수는 있다. 그러나 증명되지는 않는다. 작가는 그 존재감으로 증명되어져야 한다. 내가 당신들과 함께 있다고 독자들에게 잊을만하면 한번씩 새 작품을 투척해 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키에게 커다란 동굴같은 도서관도 지어주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게 만들지 않는가. 우리나라에 사람의 이름을 딴 도서관이 과연 있던가. 김대중 도서관이 있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작가 이름을 딴 도서관이 있던가. 그러고 보니 이 책에 고무라 도서관을 소개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 작품 년도가 2006년인데 그로부터 15년 뒤에 그의 이름을 딴 도서관이 지어질 거라고 하루키는 예감했을까. 그에 비해 우린 뭔가? 원로중 최근까지 작품활동을 한 조정래나 황석영 작가를 위해 도서관을 짓는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다. 타계한 작가는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박물관이나 생가 보존 정도는 하는 것 같다만. 이건 또 작가만의 문제는 아닌듯 히다. 뭔가 국가적으로 예우할 것이 있으면 해야하는데 (늘 우리 소시민이 하는 소리를 되풀이 한다. 정치인들 서로 싸움박질만 할 줄 알지 그런 것도 신경없다고) 한숨만 나온다. 혹 그런 시도가 있다고 해도 사상 검증이 안 됐다고 퇴짜를 놨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과북이 갈렸다는 건 얼마나 많은 발전을 저해시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재밌지? 그는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19세기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두꺼운 장편을 읽었다고 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는 거의 읽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놓고 그는 이렇게 두서너 권씩이나 되는 장편을 잇달아 내놓기도 했다. 그나마 팔에 힘이 떨어졌는지 요즘엔 제법 얇은 책도 내더라. 아무튼 독자와 함께하는 작가가 좋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루키를 완전히 좋아하진 않지만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데미안>은 몰라도 이 작품을 감히 청소년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차마 권하진 못할 것 같다. 읽을 것 같지도 않고. 지금은 20세기를 너머 21세기다. 그냥 15세 소년이 나오는 어른들을 위한 판다지 동화 같은 소설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난 그의 단편과 에세이는 좋아하는데 그것만이라도 부지런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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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11-25 22: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에 대한 stella.k님의 글 너무 공감됩니다.
저도 하루키를 좋아하기도 아니기도 해요. 얼마전에 읽은 서머싯 몸의 <케이크와 맥주>에서 몸은 작가가 이름을 알리려면 끝까지 계속 써야한다라고 하더라고요. 스텔라님 말씀처럼 제가 젊었을 때 많이 읽었던 작품을 쓴 한국의 작가는 지금 작품을 거의 내지 않고 있어 안타까워요~~
하루키작가에게 자신만의 세계가 확실히 있다는 점이 저는 좋아요^^
‘빙산의 일각의 법칙‘, 오늘 새롭게 알았어요~~

stella.K 2021-11-26 12:36   좋아요 2 | URL
자랑은 아닙니다만, 제가 책 리뷰를 가장 많이한 작가가 하루키더라구요. 이달의 당선작으로 적립금을 가장 많이 받았고. 정말 좋아하지도 않는다면서 왤케 많이 썼나 싶어요. 나중에 책 한 권 낼까봐요.😄

청아 2021-11-25 22: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겉절이ㅋㅋㅋㅋ👍1Q84 재밌게 읽었는데 늘 그렇듯 다 지워져서 스텔라님이 언급해주신 내용 기억하나도 안납니다ㅋ😳 게다가 야한 장면?!!
여성 캐릭터 혼자 살면서 아주 멋졌던 것만 기억나요~^^♡
그리고 저도 생가 홍보보단 작가도서관이 더 늘어났음 좋겠어요.

stella.K 2021-11-26 12:44   좋아요 1 | URL
생각해 보니 그렇겠더라구요. 동네 이름 딴 도서관은 있어도 작가 이름 내세운 도서관하나없으니 도서관 애용자들 아쉬울 것 같아요. 겉절이 괜찮았나요? 그거 말고 더 괜찮은 단어가 없더라구요. 겉절이 김치 맛있잖아요. 아마 하루키도 맛 보면 좋아할걸요?🤣

새파랑 2021-11-25 22: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하루키 단편도 좋은데 장편을 더 좋아해요.ㅋ 해변의 카프카는 특히 더 좋다는 ^^ 그래도 다른 책에 비해 해변의 카프카는 나름 요즘(?) 음악이랑 책이 언급되어서 더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 글을 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그리고 청소년 권장도서는 절대 아닌것 같아요 😅

stella.K 2021-11-26 13:46   좋아요 2 | URL
아, 그러시구나. 해변의 카프카가 사실은 음악겸 그림이더라구요. 근데 하루키가 음악 인용하기 좋아한다고 유튭에서 그 음악 찾아보고 그러면 어떡하죠?🤣

기억의집 2021-11-26 01: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글 너무 잘 쓰셨어요. 저는 하루키 좋아하고 섹스 묘사에 그렇게 반감을 갖고 있지 않아서 딱히 그게 걸림돌인 적은 없었어요. 젊었을 때 글은 관망적이고 초월적인 작가의 세계관, 환상과 잘 어울렸던 것 같고 나이가 들면서 묵직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미야베 미유키 혹은 많은 일본 작가들의 글을 초기부터 현재 출간된 것까지 많이 읽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좋은 작품은 하루키였어요. 이건 저만의 감상평이라… 아마 하루키는 더 이상 글을 쓰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이야기는 잘 만들어내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음악이든 글에 대한 것이든 자기만의 세계관이 확실한 작가임에는 분명해요. 맞아요. 야나체크 다 검색했을 걸요~

stella.K 2021-11-26 18:54   좋아요 2 | URL
알라딘엔 독서의 숨은 고수들이 많이 계시죠. 전 그중 한분이 기억니이라고 생각해요. 거봐요.미미 여사를 비롯해 일본 작가들 잘도 꿰고 계시잖아요. 하루키에 대해서도 저보다 잘 알고 계시고. 나중에 일본문학 리뷰집 한번 내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저 그책 꼭 살꼬예요.😉

희선 2021-11-26 0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소설을 써야 소설가다 말하기도 했어요 소설가가 되는 사람은 많아도 언제나 소설가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도 하더군요 한국도 그렇게 다르지 않겠습니다 지금 소설 쓰는 사람을 알고 읽기도 하지 예전 건 잘 찾아보지 않기도 하네요 고전은 보는 사람 있군요


희선

stella.K 2021-11-26 13:41   좋아요 3 | URL
하루키도 그런 말을 했군요. 역시 하루키...! 작가는 썼던 사람이 아니라 지금도 쓰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21-11-27 2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섹스 장면을 많이 쓰는 작가라는 건 예전에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라는 장편을 읽고서 알았어요. 의외였죠.누구에게 그 책을 선물하기가 곤란할 정도였어요. 전 이런 해석을 하게 되어요. 현실 속에서 섹스 하는 관계가 많은데 그걸 작가가 제외시키고 쓰면 안 되니까. 철저히 현실 반영을 해야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말이에요. 또 하나는 자기의 보수적 성향을 그런 걸 씀으로써 상쇄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고요. 둘 다 아닐지도 모르지만요...^^

stella.K 2021-11-28 17:1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언니 말씀대로라면 하루키는 후자쪽이 아닐까 싶기도해요.🤔

고양이라디오 2021-12-06 12:50   좋아요 0 | URL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맞을 꺼예요. 하루키 인터뷰에서 하루키가 섹스를 소설에 쓰는 것은 현실반영이라고 말했었어요. 현실 속에서 섹스를 하는데 소설 속에서 굳이 숨길 필요가 있느냐?

니르바나 2021-11-28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소설을 한권도 읽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읽어볼까 생각해서 몇권 주문해서 제 책장에 서 있긴하죠.
그러나 하루키 현상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선인세를 지급하고
하루키 소설을 계약하는 것을 보고
뭐 그렇게 까지 읽을 만한가 생각이 들어서요.
제가 한국 여성 소설가의 소설도 좋아하는데
한국 작가 중에 공지영 소설도 한권도 안 읽었습니다.
백만부 팔리는 작가들은 영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루키의 수필은 몇권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가볍게 읽은 책이지만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은 없는게 하루키 수필이 준 인상입니다.
저는 오에 겐자부로의 글이 마음에 듭니다.

추신)
스텔라님 리뷰을 보니 갑자기 하루키가 땡기네요.ㅎㅎ


stella.K 2021-11-29 06:28   좋아요 1 | URL
ㅎㅎ 공지영은 한 권 읽었는데 저도 별로여서 그후 안 읽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작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위 말하는 궁합. 제가 볼 때 니르바나님은 하루키완 맞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저는 오에를 오래 전에 읽으려다 좌절했는데 저도 니르바나님께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1-12-0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ㅎ

전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하루키예요ㅎ 당연히? 섹스묘사에 대해 반감도 없고요.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인터뷰에서 하루키씨가 현실에서 섹스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소설 속에서도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거 같아요.

stella.K 2021-12-06 18:01   좋아요 0 | URL
엇, 그랬나요? 성적으론 보수적이고 그냥 소통의 하나 뭐 그 정도로 얘기하던데. ㅋ 전 하루키가 삶은 보수적이잖아요. 단순하고 특별한 스캔들도 없고. 그래서 싫진 않더라구요. 사생활도 복잡하면 당연 거들떠도 않봤겠죠?ㅋㅋ
 

노버트 데이비스의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출판 전말기


 북스피어의 김홍민 사장은 일명 마포 김 사장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그가 쓴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는 책은 정말 재미이기도 하거니와, 과연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사장이라면 이 정도의 썰은 풀 줄 알아야지 싶게 그 분야의 해박함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중 인상 깊었던 건 노버트 데이비스의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의 출판기다.

 

 (지금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마포 김 사장은 2013년 11월부터 <한겨레>에 매달 한 편씩 칼럼을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비슷한 무렵 900페이지 짜리 <비트겐슈타인 평전>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냥 있어 보일 것 같아서 읽었고, 몸짱 헬스클럽 강사가 근육강화제를 복용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읽었다고. 그러면서 의외로 비트겐슈타인의 평전은 생각했던 것만큼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말도 전한다. (그러니까 나도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 평전에 따르면 이 천재 철학자가 의외로 추리소설 마니아였다. 그의 책장엔 <디텍티브 스토리 매거진>이란 잡지가 가득 차 있었고, 유독 그가 좋아했던 작품은 노버트 데이비스의 <두려운 접촉>이었다. 그는 자신이 읽었던 수백 편의 소설 중 좋은 책이라 부를 만한 책 두 권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 책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말을하니 노버트 데이비스가 누군지 알고 싶어졌다.


 그는 1909년 4월 18일, 일리노이 모리슨에서 태어났고, 스탠퍼드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그의 친인척 중엔 로버트란 이름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노버트란 이름을 지어줬다고 하는데 그는 그 이름을 싫어했다고. 가난한 농촌마을 출신의 법대생이었던 그는 대공황 직후 어려운 시절이라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던 중 그는, 잔디를 깎고 차를 닦고 모래를 퍼서 날라보았지만 성실히 노동하는 삶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타자기로. 그러니까 학비를 벌기 위해 탐정소설을 쓰기 시작했던쓰기 시작했던 것.


1932년(어디는 34년이다) 6월, 데이비스는 펄프 잡지 <블랙 마스크>에 첫 작품을 발표하고, 이듬해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미 <다임 디텍티브>, <디텍티브 픽션 위클리> 등에 작품을 쓰며 작가로 활동한다. 탐정소설을 쓰는 것만으로도 벌이가 충분하다고 판단한 그는 변호사 시험을 포기하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데이비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작품을 쓰며 여러 펄프 잡지 작가들과 교류했다. 이들의 모임은 ‘픽셔니어즈’(The Fictioneers)라는 이름이었고 스물다섯 명 정도가 이 그룹에 속해 있었다. 데이비스와 같은 동네에 살았던 레이먼드 챈들러도 모임에 나왔다고 한다. 챈들러는 데이비스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블랙 마스크>에 자신의 첫 작품을 발표하기 전 펄프 픽션에 대해 연구했고 노버트 데이비스의 초기 작품을 읽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실제로 데이비스의 <레드 구스>는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소설은 <블랙 마스크>에 실린 여러 소설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라고 챈들러는 추앙했고, 많은 작가들이 노버트 데이비스의 소설에 주목했다.


아무튼 이 사실을 그냥 놓칠리 없는 마포 김 사장은 자신의 칼럼에 이 사실을 알리는 글을 써 송고한다. 그렇지 않아도 매번 뭐에 대해 쓰나 고민이 많았는데 그때만큼은 마감 지옥에서 벗어나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갑자기 출판사로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것도 부족해 어느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분의 전화도 받았는데, 도서관으로 <두려운 접촉>에 대한 문의가 너무 많아서 업무를 볼 수가 없다. 번역이 되지 않아 그럼 원서인 <Rendezvous with Fear>라도 구하려고 했지만 당최 찾을 수가 없다. 아니, 우리나라에 출간도 되지 않았고 원서도 구할 수 없는 책을 일간지에 적어놓으면 어떡하냐며 원망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주의해 달라는 당부까지 듣는다.


순간 마포 김 사장도 빡치고 만다. 젠장, 요즘 사람들 신문을 읽지 않는다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 그는 요즘 사람들이 신문을 읽지 않는데 번역되지 않은 책 좀 소개했다고 무슨 대수랴 했던 모양인가 보다. 그건 확실히 그가 요즘 사람들을 얕잡아 보긴 했다. 벽에도 귀가 있다는데 눈이라고 없을까.


그래도 어쩌겠는가. 화난다고 문의한 독자들에게 화를 낼 수는 없고, 그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두려운 접촉>은 한국에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Rendezvous with Fear>도 구하기 힘들 겁니다. 원서를 구할 수 없는 이유는 'Rendezvous with Fear'라는 판본이 절판된 이후 미국에서 'The Mouse in the Mountain'이란 이름으로 출간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절판이라 헌책방에서나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미안합니다."를 앵무새처럼 반복했다고. 딱히 미안하지도 앖았지만 예의상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문의 전화는 몇 달간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김 사장은 'The Mouse in the Mountain'의 한국어판을 내가 만들어 버리면 어떨까란 생각을 한다. 그때부터 그런 문의 전화에 한결 답하기가 수월해졌다. "아. 그 책이요? 올해가 가기 전에 북스피어에서 내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그러자 미안하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어졌고 오히려 고맙다는 칭찬만 잔뜩 들었다고. 그래서 나온 책이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다. 어떤가. 이만하면 관심이 가지 않나. 무엇보다 비트겐슈타인 형님이 사랑했다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출판 관계자들이 그렇게 기민한 건 아닌가 보다. 몇 달씩 문의 전화에 시달릴지언정 한국어판을 낼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니.


참고로, 노버트 데이비스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지만 비운의 작가였다. 40년대에 들어 펄프 매거진 시장도 조금씩 붕괴해 갔고, 이 업계 외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하던 그는 심리적, 물질적으로 위기 상태에 있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1949년에 데이비스는 그의 두 번째 아내 낸시와 코네티컷으로 이사를 갔다. 그것은 낸시가 뉴욕 출판사들과 더 가까이 있기 위해 권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해 7월, 데이비스는 홀연히 휴양지인 케이프 코드로 떠났고, 자동차에 호스를 연결한 다음, 머물고 있던 곳의 욕실로 끌어왔다. 그는 그곳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다. 유서는 남기지 않았다. 그가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이때 그가 소유한 재산은 얼마 되지 않았고, 암 판정을 받은 상태 등 이런저런 나쁜 상황들이 겹쳐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만 할 뿐이라고. 

 


아랫줄 오른쪽 끝이 노버트 데이비스, 윗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레이먼드 챈들러 | www.thrillingdetective.com

아랫줄 오른쪽 끝이 노버트 데이비스, 윗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레이먼드 챈들러 | www.thrillingdetect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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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1-11-19 2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페북에 팔로우 한 분이 마포김사장님이신데… ㅎㅎ 참 글 잘 쓰세요. 페북에 글 올리시뱐 댓글 자주 다는데, 마포 아파트 파시고 일산으로 이사 하셨어요. 제가 유일하게 애정을 갖고 있는 출판사겸 사장님이시네요~

stella.K 2021-11-20 11:26   좋아요 0 | URL
저는 김 사장님 일하시는 곳이 마포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군요.ㅎ 이 양반 글 능청스럽게 잘 써요. 장르소설 안 읽는 저도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게 말입니다. 기억님이 좋아할만 하시겠어요.🤩

페크pek0501 2021-11-20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리소설을 읽어봐야겠군요. 갑자기 끌리는군요. 챈들러의 책을 사 놓고 아직 읽지 못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극찬해서 산 게 아니라 오디오북으로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를 들으니 챈들러의 문장이 아주 좋더라고요. 그래서 샀죠. ^^

stella.K 2021-11-20 13:09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그책 사놓고 여태 못 읽고 있습니다. 이젠 무엇부터 읽어야할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큰 일입니다.ㅠㅠ

2021-11-22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2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2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2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2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2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2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2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님께


제목을 저리 쓰면 요즘 한창 배포중인 도스토옙스키의 새로운 버전의 책인줄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이 책이 그렇습니다. 제가 좀 짓궂죠?ㅋ


오늘 낮에 이 책을 받았습니다.

며칠 전 님께서 이 책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을 때 얼마나 가슴이 찌릿찌릿 하던지요. 얼마 전 TV에 나오신 임헌영 선생님을 뵙고 지난 날 선생님과의 짧은 사제관계를 회상했고 더불어 선생님의 새 책이 나온 것도 알았습니다. 처음엔 그저 언제고 사 봐야겠다고만 생각했는데 웬지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강렬해지고 조급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님께로부터 이 책을 선물 받게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벌써 작년이었군요. 제 책을 님께 보내드린 게. 제 책이 나온 게 2015년 가을이었는데 무려 5년이나 늦게 보내드렸으니 면목이 없었죠. 님을 결코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닌데 이걸 보내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차일피일 미루고 결국 잊어버렸죠. 무엇보다도 님께서 워낙 조용하신 분이라 함부로 알은 체하기도 뭐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그때 서운해 하신 걸 보고 진작 챙겨드리지 못한 것을 많이 후회했습니다. 


그때 님은 저의 책을 그냥 받기가 뭐하셨는지 책을 선물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저의 방은 읽은 책 보다 읽지 않은 책으로 포화상태라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저는 그냥 마음만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님은 잊지 않으시고 이렇게 1년도 더 넘었는데 이 책을 보내주시니 정말 뜻밖의 선물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책도 책이지만 님께서 보내주신 카드는 감동이다 못해 뭉클하기까지 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이렇게 20년에서 몇년을 뺀 세월을 무던히도 알라디너로 있게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긴 제가 현재 다니고 있는 교회를 30년째 다니고 있으니 말 다했죠. 저도 서점이든 교회든 왜 그렇게 바꾸지도 않고 오래 다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사는 집도 20년 넘게 살고 있고, 미용실도 10년 넘게 다니고 있습니다.ㅎ 물론 불만이 없는 것도 아니고 권태롭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간간히 외도라는 것을 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더군요. 그리고 오랫동안 무던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보니 오늘 같은 날도 있지 않습니까.ㅎ 


제가 알라딘을 쉬 떠나지 못하는 건, 글쎄요... 님이 카드에 쓰셨던 것처럼 저처럼 오래 인연을 맺어 온 분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거기엔 님 또한 계시죠. 저는 알라딘 서재가 처음 생길 때야 비로소 온라인 활동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저의 책에도 그런 내용의 글을 쓴 것으로 기억하는데, 인터넷 안에서의 인연을 과연 인연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저는 참 오랫동안 의문을 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 온 저로선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고, 서로 웃고 떠들고, 기쁨과 슬픔도 함께 나눠야 그게 인간관계 아닌가 하는데 이렇게 간헐적이고 나를 적극적으로 나타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 인터넷 안에서의 인간관계를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하지만 이제 그 질문은 진부한 느낌이 듭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과 또 다른 차원에서의 인간관계를 가능케 하더군요. 이렇게 님과 제가 20년에서 몇년을 뺀 세월을 한결같이 만나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분도 마찬가지구요. 전 그분들이 여전히 좋습니다. 오프에서 만나 온 사람들은 오프에서 만나야하고,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은 온라인에서 만나야 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엔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길래 이런 글을 쓰는 걸까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는데 이젠 그런 생각이 잠시 들다가도 그냥 내려놓게 되더군요. 아, 그렇다고 너무 온라인 오프라인 구분짓는 건 아닙니다. 


님은 저에게 보내신 카드에 그리 약속하셨습니다. 알라딘서점이 망하거나, 서재가없어지지 않는 이상 끝까지 서재를 지키시겠다고. 저도 똑같은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알라딘서점이 망하거나, 서재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끝까지 서재에 남겠습니다. 우리 우정과 의리로.ㅎ


늘 지켜봐주시고, (요며칠을 제외하고)거의 대부분 저의 허접한 글에 조용히 좋아요만 눌러 주시고 사라지시는 님께 오늘은 존경과 친애의 마음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보내주신 책은 조금씩 아껴가며 읽겠습니다. 늘 평안하십시오.

그럼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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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1-17 21: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stella.K 2021-11-17 21:53   좋아요 4 | URL
책나무님과도 아름다운 관계일 수 있어요.🤗

페넬로페 2021-11-17 22: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께서 내신 책이 궁금해요.
저는 서재에 들어온지 2년밖에 되지 않아서 잘 몰라요~~
책선물 받아 좋으시겠어요^^

stella.K 2021-11-18 06:35   좋아요 3 | URL
이젠 올드해진 책이라... 일종의 독서에세이죠. 당대의 명저 <네 멋대로 읽어라>라고나 할까요?ㅋㅋ 관심 가져 주셔서 감읍할 다름입니다.😚

초란공 2021-11-17 22:1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계속 이어지는 ‘사랑의 릴레이‘ 군요^^

stella.K 2021-11-18 06:36   좋아요 2 | URL
ㅎㅎ 알흠답죠? 고맙슴다.^^

청아 2021-11-17 23: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를 좀 더 일찍했으면..싶은 생각 가득인 제게 너무 부러운 내용입니다~^^♡

stella.K 2021-11-18 06:41   좋아요 2 | URL
아유, 무슨... 시간 금방 갑니다. 지금도 잘 하시고 계시잖아요. 한 가지 말씀드리면 서재 활동은 가늘고 길게 가야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굵고 길게 가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오래만 남아있어 주시옵소서.😘

mini74 2021-11-18 00: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라딘 북플친구님들과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습니다 *^^* 스텔라님과 그 분의 인연이 참 소중해보입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저도 스텔라님 책 궁금 ㅎㅎ안녕히 주무세요

stella.K 2021-11-18 06:47   좋아요 2 | URL
할 수 있습니다. 벌써 미니님은 각이 딱 잡히셨습니다.
저의 책은 부끄럽지만 <네 멋대로 읽어라>입니다. 그저 기억만 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읍할 다름입니다.😊

2021-11-18 0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1-11-18 06:58   좋아요 3 | URL
ㅎㅎ 제가 정말 총기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제가 그 옛날 그런 기특한 일도 했었네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 올 수 있는 것 아니게습니까?ㅎㅎ
이책 이상 더 무슨 책을 선물해 주실려구요?
보내주신 책과 카드는 오래도록 간직하겠습니다.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희선 2021-11-19 0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 님 축하합니다 언젠가 사 봐야지 한 책을 보내주셨군요 좋은 인연이네요 앞으로도 잘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여기가 있는 한 떠나지 않겠다니... 알라딘 없어지지 않아야 할 텐데...


희선

stella.K 2021-11-19 09:40   좋아요 0 | URL
쉽게 안 없어질 겁니다. 그래야 울 희선님하고도 오래도록 만나죠. 여기 오래 계셔주실 거죠? 고맙습니다.😉

2021-11-20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1-11-20 13:13   좋아요 1 | URL
ㅎㅎ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바쁘신 분이 알라딘 활동을 어찌하시겠습니까? 제가 뭔가 오해하게 한 것 같군요. 어쩌나.ㅠ

2021-11-20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포 근대역사 박물관이다. 이곳에서 드라마 <호텔 델루나>를 찍기도 했다고 한다.

나도 그 드라마를 몇 번 보긴했는데, 극중 호텔이 인상적여서 여긴 어디서 찍었는고 궁금했는데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하지만 막상 보면 좀 소박한 느낌이다. 그러니 방송은 뽀샵질의 쾌거를 보여준 셈이라고나 할까. <알쓸신잡>을 여기에서도 찍었다는데 실제로 안에 들어가 보진 못했다. <알쓸신잡> 목포편이라도 다시 봐 줘야할 것 같다.




평화의 소녀상도 그 앞에 있었는데 이곳이 발원지였나 의문스럽기도 하다. 독일에 있는 건 영구존치를 못하고 단 1년 간만 존치하기로 했다는 건 알고 있는데...


갈 때는 목포가 뭐 그리 볼게 있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뜯어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곳이었다. 사실 가족 여행도 뭐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역시 여행은 마음에 맞는 친구 한 둘과 하거나 아니면 혼자 떠나 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여행엔 둘째 조카 덕을 좀 많이 보긴 했다. 녀석은 떠나기 전부터 스맛폰으로 여기저기 유명한 곳, 맛집, 찻집을 찾아 놓았다. 시간 배정도 하고. 덕분에 헤메지 않고 시간을 절약하기도 했지만 너무 스맛폰과 네비게이션에 의존하는 건 아닌가 좀 애처롭기도 했다. 여행 가서 길을 잃어버리란 말처럼 옛날에 그런 것들이 어디 있는가. 어디든 여행지만 정해지면 아무데나 발길 닿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다녔지. 물론 그래서 정작 가야할 곳을 지나칠 수도 있다. 그래서 여행은 갔던 곳을 또 가야하는지도 모른다. 갔던 곳을 또 가면 어떤가? 갈 때마다 새로울 텐데. 


아쉬웠던 건, 조카가 이끄는대로 어느 레트로 감성 물씬나는 7, 80년대 카페에서 잠깐 앉았다 나왔는데 아쉽다 못해 허무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다른 전망 좋은 카페도 많았는데.ㅠㅠ  여행에서 카페는 유명하다는 곳 가지 말고 무조건 뷰가 좋은 카페에 들어 가시라. 또한 여행은 팬션이나 캠핑카 등을 이용해 직접 음식을 해 먹는 방법을 선택할 것. 아니면 아무 곳이나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나면 그곳에 가서 먹을 것. 유명하다는 맛집을 돌아다녀 봤는데, 맛집은 정말 주관적인 것이다. 하다 못해 누구라면 알만한 어느 셉럽이 추천했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이분 혹시 알바하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곳이 아니면 맛 볼 수 없는 특산물이 있기는 하지만 글쎄,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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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15 21: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행의 재미는 맛집 탐방인데 별로였나 보네요 ㅜㅜ 다음번에는 맛과 경치도 좋은 곳에를 가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21-11-15 22:03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 쓰신 글이...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ㅠㅠ
근데 사실은 귀엽습니다.ㅋㅋㅋㅋ
예. 그러겠슴다. 다음 번엔 꼭 맛있는 곳으로 가겠슴다.
그래도 경치는 좋았습니다. 새파랑님께 추천 드리고 싶으리만치.^^

프레이야 2021-11-16 00: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맛집 검색해 가는 거 비추에요. 간혹 괜찮은 때도 있지만ㅋ
적절히 다니다가 보면 딱 느낌 오는 곳이 있지요.
레트로풍 카페는 우리갬성엔 별로지요. 신세대야 새로우니 쌈박하겠지만
저도 뷰 좋고 널찍하고 현대적인 곳이 좋더군요. ㅎㅎ 연식이 또 나오네요.
목포 저곳은 예전에 가 봤는데 이젠 소녀상에 마스크까지 ^^
목포 가시면 영란횟집은 추천드려요. 민어회, 민어전, 온통 민어로다가! 팔월 제철이에요
번화로 42-1

니르바나 2021-11-16 00:15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의 맛집 추천 정보라면 신뢰 만점 드리겠습니다.^^

stella.K 2021-11-16 14:11   좋아요 1 | URL
회를 못 먹고 온게 아쉽긴합니다. 조카의 스케줄에 포함되긴 했는데 그럼 다른 걸 못 먹겠더라구요. 담에 가면 말씀하신 곳에 꼭 가 보도록하겠슴다.^^

니르바나 2021-11-16 0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행길 정답은 따로 또 같이입니다.
따로도 다녀보고, 같이도 다녀보고.
다 나름대로 장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맛집 정보는 말 그대로 정보일 뿐입니다. 참고 정도만 하는 정보.
왜냐하면 소문난 집에 정작 먹을 게 없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찻집이나 카페는 스텔라님 말씀대로 뷰가 좋은 곳이 여행지에선 필수이지요.
일단 분위기로 먹고 들어가잖아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에 조카 찬스 사용하셨으니까 만점 여행 아닌가요.^^

stella.K 2021-11-16 14:17   좋아요 1 | URL
ㅎㅎ 조카 찬스! 그렇죠. 어디를 가든 젊은 사람이 함께 가면 좋긴 하더라구요. 요모조모 쓸모가 많잖아요. 근데 제가 어느새 그런거 따질 나이가 됐어요. 😂

희선 2021-11-16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자면 여기저기 아무데나 가도 괜찮지만 여러 사람이 다니려면 먼저 어디 갈지 정하는 게 낫겠습니다 잘 알려진 맛집보다 거기에서 보고 괜찮은 곳에 가는 게 나을 듯합니다 그래도 stella.K 님 조카분이 마음 써서 여기저기 찾아보고 갔겠네요 그런 것도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이 되겠지요


희선

stella.K 2021-11-16 14:21   좋아요 1 | URL
그럼요. 여행에 대한 기억은 사랑의 기억만큼이나 강하다잖아요. 독일은 학교 커리큘럼이 온통 독서와 여행이라는데 부럽더라구요. 다음 생엔 독일에서 태어나 볼까 생각중이에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