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건 몰라도 해마다 나의 최애 작가가 김보일 작가로 나오는데 도대체 언제적 최애 작가인지 모르겠다. 물론 내가 과거 이분의 책을 두어 권 읽었던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이후 읽은 적이 없으며 애정하지도 않는다. 한때 사석에서 몇번 뵌 적이 있긴 하지만 만나도 나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몇몇하고만 마주보고 얘기하는 것을 보고 낯을 가리는 타입인가 보다 했다. 나야 뭐 어차피 친하게 지낼 사이도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았다. 책도 내 돈 주고 산 적도 없다. 출판사에서 이벤트 하기에 리뷰한 게 다인데 최애 작가라니.


최근 몇년 간 난 김탁환이나 천명관 작가의 책을 구입한 적이 있고, 그전에는 김훈 작가를 좋아하기도 했으니 이들 작가들이라면 최애 작가라고 해도 인정하겠다. 또 그래서 말인데 내가 처음으로 읽은 작가의 책을 리뷰하면 며칠 지나 내가 그 작가의 마니아라고 한다. 어떤 건 읽지도 안고 관심도 없는데 그렇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산출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뭐 알라딘이 이 부분에 대해 해명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하면 좋고) 해마다 이런 행사를 하니 이왕 하는 거라면 좀 더 성의있고 근거있게 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말이다. 어쨌든 이번에도 알라딘의 생파 재미있었다. 특별히 올해는 알라딘이 어떤 의미냐고 묻기에(전에도 물어었나?) 그냥 '만나면 좋은 친구!'라고 했다. 그게 꼭 어느 지상파 방송의 로고를 위한 것마는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가끔은 알라딘의 역사가 나의 블로그질 역사와 거의 같다. 알라딘에 서재가 생긴 게 알라딘이 있고 얼마 안 있어서니까. 그동안 서재질을 하면서 느끼고, 겪고, 생각한 것들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씩 했었는데 알라딘이 올핸 그렇게 물어보니까 웬지 좀 가려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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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4-07-02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문학동네~ 생각해보니 한 권 읽었는데 ‘마니아’가 떠서 이상한 적이 많아요.

요새 책 한 권 내면 ‘작가’, 사진전/미술 개인전 한 번 하면 ‘작가‘가 되는 세상이라 아무 생각 없이 익숙하게 지냈네요. 신춘문예로 등단해야만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해도 ’작가‘라는 이름의 문턱이 너무 낮아져버려 헤프게 남용되어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stella.K 2024-07-02 21:19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사실 저도 그래요. 저도 문학동네 책을 최근에 사 본적이 없는데 계속 문학동네래요. ㅎㅎ 그나마 문학동네가 싫지 않으니까 그냥 봐준다쳐도 최애작가를 몇년째 김보일로 나오니 이렇게 맞지 않는 걸 왜 하나 싶어요.

한 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라고 한 번 작가는 영원한 작가죠. ㅎㅎ
헤프게 남용되는 건 좀 그렇긴 해요. 동감입니다. 요즘엔 블로그에 뭐만 끄적여도
작가라고 하는 시대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죠 뭐.

cyrus 2024-07-02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님은 저보다 알라딘에 오래 활동하셨는데 구매한 책이 많지 않네요. 내가 책을 너무 많이 샀나? ㅋㅋㅋㅋ

stella.K 2024-07-03 11:47   좋아요 0 | URL
ㅎㅎ 내가 몇권을 구입했는지 아는 사람 거의 없지 않을까?
그러나 확실한 건 네가 책을 좀 과하게 좋아하니 나 보다 많을 거란 건 자명하지.^^

Falstaff 2024-07-03 0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르한 파묵이랍니다. 좀 낫네요. ㅋㅋㅋ
2년 동안 책을 거의 안 샀는데요, 책을 안 사도 읽을 책이 넘쳐나는 겁니다. 다 방법이 있더라고요. 출판사, 책가게는 독자들한테 진짜 고마워해야 합니다.

stella.K 2024-07-03 11:51   좋아요 1 | URL
오, 오르한 파묵! 정말 저 보다 낫네요. ㅎㅎ
저도 오르한 파묵 정도라면 저런 글 쓰지도 않았을 겁니다.
근데 책을 안 사도 책이 넘쳐난다굽쇼? 도서관 애용하시잖아요.
그것 말고 또 다른 방법 있으시면 소곤소곤 알려주시죠^^

2024-07-03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7-03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감 2024-07-04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생각보다 검소하십니다, 알라딘 하신지도 오래되셨던데 ㅎㅎㅎ
저는 저 금액에서 한 절반쯤 되는데, 그것도 대부분이 쿠폰할인이에요 (뿌듯)

stella.K 2024-07-04 17:59   좋아요 1 | URL
ㅎㅎ 제가 책을 꾸준히 읽기는 하지만 좀 오래 붙들고 있어서 많이 사지는 않았죠. 옆동네에서 사기도 했고 이벤트 책도 읽고. 사실 현금 쓰는 일은 많이없죠. 그래서 사알짝 미안하기도 한데 대신 정성스런 리뷰 쓰는데 시간을 들이고 있으니 알라딘도 그렇게 손해 보는 건 아닐거예요. 안 그랬으면 25년까지 왔겠습니까? ㅋ
 


이 영화의 장르를 굳이 말하라면 폭력 액션 피 환장 환타지 뭐 그런 거 아닐까?

내가 설마 그런 장르를 좋아할 리는 없고 순전히 송중기 때문이다. 그는 외모와 달리 거칠고 선 굵은 연기를 제법 잘 한다. 그래서 이번엔 어떤 연기를 보여 줄까 기대하게 만든다. 영화 자체는 내 취향은 아니지만 영화에서의 거칠고도 고독한 연기는 일단 합격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치건 역을 맡은 송중기와 연규 역을 맡은 홍사빈 투톱이긴 하지만 그래도 홍 배우한테 좀 더 비중을 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어두운 조폭 세계의 이면을 다룬다. 어떤 이는 지옥 같은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두 남자의 운명을 다뤘다고 하는데 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긴하다. 근데 나는 나쁜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대체로 그런 것을 생각 했다. 하나 같이 불행한 가정과 개인사가 결국 발목을 잡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은 맞는 것 같긴 하지만 난 아직 세상을 그렇게 비관하고 싶진 않다. 이 불행한 환경과 반복되는 개인사를 끊어주면 그도 얼마든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누군가 믿어주는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근데 불행하게도 그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고 거기서 구원의 동아줄은 비슷한 세계에서 내려 온다는 것이지. 그래서 운명을 변화시키기가 어렵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인만큼 영화를 보면서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자체는 공들여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의 에너지가 넘쳐 보이긴 한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만들었지 묻는다면 답을 찾기가 어렵다. 한마디로 병맛이다. 장면 넘어가는 것 보면 아마추어 느낌이 난다. 진행도 그런 것이 시종일관 우울하다. 원래 우울한 영화에 명랑함이 깃들고 명랑한 영화에 어두움이 베어있어야 좋은데 그런 운영의 묘가 부족하다. 연규는 한쪽 눈이 사시던데 그런 디테일은 참신하긴 하다. 엔딩 때 치건과 연규가 치고 받고 싸우는 건 좋은데 나중에 연규 손에 죽는 치건은 이해할 수 없다. 그럴 바엔 그냥 연규 손에 힘들이지 않고 깨끗히 기껏 피터지게 죽지 싸우다 죽는 건 뭐람. 



앞의 영화에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이 영화 때문에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다. 이 영화 아기자기하게 잘 만들었다. 만날 만한 운명은 어떻게든 다시 만난다는 뭐 그런 내용의 영화라고나 할까? 근데 재밌긴 하다. 유리코란 일본 여자가 전에 잠깐 알았던 한국 남자를 찾겠다고 한국에 왔다. 행운처럼 어렵지않게 만나긴 했는데 나중에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그녀가 찾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결국 다시 일본으로 돌아 가려고 하는데 이번엔 남자가 유리코를 다시 붙들게 되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만남을 이어 간다는 영화다. 소품이지만 좋다. 저 두 사람의 안정감 있는 연기도 좋고. 하지만 남주인 김다현의 다소 멍청한 연기가 조금 우습기도 하다.  


단 이 영화는 흑백이라는 것. 뭐 역시 영화는 감독을 위한 것이니 취향이 그런가 보다하면 되는 거겠지만 그래도 관객의 입장에서 흑백은 좀 과유불급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흑백이 싫지 않았던 영화는  <동주> 정도다. 이 영화는 자연 풍광도 많이 담았던데 그걸 흑백으로 보여주다니 죄악 아닌가? 감독은 이제 막 첫발을 뗀 신예 감독이다.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는. 하지만 첫번에 이 정도라면 앞으로가 기대된다. 그의 다음 작품은 무엇이될런지 지금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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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6-30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께서는 영화를 참 좋아 하시는 분 같아요.
저도 영화 좋아하는데
요즘 바빠서 그런지 잘 보지 못해요.
송중기 배우가 나오면 무조건 오케이 입니다^^

stella.K 2024-07-01 12:19   좋아요 1 | URL
페페님도 송중기 좋아하시는군요. 송중기는 결혼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더 안정적이고 좋아졌다는 느낌이 있어요. 저만 그러나요? ㅎㅎ 송중기 좋아하시면 보셔야죠. 근데 썼다시피 영화는 그닥입니다.^^

물감 2024-07-01 1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화리뷰 쓰는 분들 신기해요. 생각할 틈도 없이 훅훅 지나가는 영상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기록하죠? ㅋㅋㅋㅋ 책 한권 리뷰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요...

stella.K 2024-07-01 12:36   좋아요 2 | URL
귀엽습니다. ㅋㅋ
아, 이런 표현 쓰면 실롄가요? ㅋ 그러면 뭐합니까? 전 좋아요도 별로 못 받는 아싸인 것을. ㅠㅠ
제가 처음부터 저렇게 썼겠습니까? 영화는 시각에 남고 책은 생각에 남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시각이 좀 더 저장속도가 빠르지 않을까요? 그래도 영화 보단 책 보기가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전에도 말했지만 전 책을 많이 못 보니까 그나마 영화라도 보자는 쪽이어서 그럴 겁니다. 글구 영화 리뷰 잘하는 사람은 쎄고 쎘죠. 그들의 하나같은 공통점은 말이 넘 많고 빠르다는. 막 누가 와서 입틀막이라도 할까 봐 겁이라도 나는지. ㅋ
맞아요. 전 책 리뷰 한 번 하려면 3, 4일씩 걸려요. 책 리뷰는 갈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점점 수행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4-07-01 12:51   좋아요 2 | URL
영화 리뷰만 그렇게 빠르나요?
북플에서도 신간 나오면 어찌나 빨리 읽고 리뷰 올리시는지요.
정말 책 한 권 읽고 리뷰 쓰기도 힘든데도요^^
 
그 작가, 그 공간 - 창작의 비밀을 간직한 장소 28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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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문사 문학부 기자들이 책을 내는 일은 드물지 않게 됐다. 또 그들이 내는 책들은 글쓰기나 독서 에세이인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들의 건조한 문체를 좋아한다. 저자 역시 문학부 기자인데 모르긴 해도 기자들 중 가장 많은 책을 내고 주로 문학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작가를 많이 다룬다. 그는 작가를 찾아 나선다. 작가에 관한 책들이나 기존의 문서들, 한 간에 떠도는 잡설 등을 짜깁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의 글은 팔딱팔딱 살아있다.


관건은 취재력 일 것이다. 그러려면 사전 준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작가가 어디 서울 한복판에만 모여 사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찾아가는 길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처음엔 기사를 위해 그렇게 하고 기념 삼아 한두 권의 책으로 엮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꽤 오랫동안 해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번역서도 있다. 나는 언젠가 앙드레 버나드의 <악평>이란 책을 산 적이 있는데 최근 그 책의 번역자가 저자인 줄 알고 좀 놀랐다. 상당히 부지런하고 어찌 보면 기자보단 문학인이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지난 2013년도에 나온 책으로 특별히 작가의 작업실이나 집 즉 공간에 주목한다. 그건 실제로 사무실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어떤 공간일 수도 있다. 그렇게 저자와 작가가 나눈 이야기가 제법 진지하고 인간적이다. 모르는 사람은 작가에게 작업실이 뭐 필요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자유로운 영혼인데 종이와 펜을 가지고 어디든 자리만 깔고 앉아 있으면 거기가 작업실 아니냐며.


하지만 작가를 마냥 한량으로 보면 안 된다. 누구보다도 치열해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어떤 작가는 작업실 정도 가지고는 안 되고 감옥이 필요하다고까지 했을까. 그렇다고 진짜 감옥을 들어갈 수는 없고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자신을 잡아 가둘 공간이 필요하긴 하다. 그에 가장 가까운 공간을 사용했던 사람은 소설가 김태용은 아닐까 싶다. 그곳은 다름 아닌 고시원이었다. 그것도 창문도 없는. 얘기만 들어도 폐소공포증에 걸릴 것만 같다. 실제로 김태용 작가는 처음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가장 흔한 방법은 집안에 방 하나를 서재로 꾸며 놓는 것이 아닐까. 전에 얘기를 들으니 어떤 작가는 집이라도 공간을 분리해서 쓴다고 한다. 즉 글쓰기 작업을 할 때 아예 옷까지 사무복으로 갈아있고 회사원처럼 정시에 서재로 출근해서 똑같이 퇴근 시간에 맞춰 나온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은 뭘 그렇게까지 할지 모르지만 그 마음 알 것 같다.


요즘엔 카페나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도 흔해졌다. 우리나라는 유럽과 달리 카페를 차 마시며 수다 떠는 공간으로만 인식하는데 최근엔 그 풍경도 많이 바뀌긴 했다. 요즘엔 노트북 하나면 어디서든지 업무가 가능하니 카페를 사무실 삼아 쓰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러니 글이라고 못 쓰겠는가. 문학촌이나 레지던스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이게 글 쓰는 작가들에겐 최고의 공간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미국의 어떤 작가는 평생(?) 호텔에 머물면서 글을 썼다지 않은가. 얼마나 돈이 많으면 호텔에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하루 삼시 세끼 밥 차려 먹을 신경 안 쓰고 글만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비록 호텔은 아니지만 그것을 일반 작가도 문학촌에서 누릴 수 있으니 세상 좋아졌다.


이도 저도 할 수 없으면 자기 쓰는 책상이나 하다못해 식탁을 자기 공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알지 않는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로 데뷔하기 전 재즈 바를 운영했고 매일 문을 닫으면 거기서 글을 썼고, <해리 포터>의 작가 롤링도 매일 밤 아이를 재워 놓고 식탁에서 몇 시간씩 글을 썼다고. 그러고 보면 이 공간 확보에 대한 인간의 노력은 치열하면서도 진화적이란 생각도 든다.


하긴 우리도 어렸을 때 혼자만의 공간을 얼마나 원하며 자라왔던가. 책상 밑이나 장롱은 기본이고 누구는 세탁기 통에도 들어갔다던데 그맘땐 왜 그렇게 구석진 곳을 좋아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엄마의 자궁에서 나온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공간은 핑계다. 저자는 작가가 머무는 공간보단 역시 본 업무인 문학 얘기를 더 많이 한다. 이를 통해 우리 문학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꽤 오래전에 구입하고 한 번 읽기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요 근래야 비로소 완독했다. 또 그러길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온 작가들 두 세명을 제외하고 다들 한 번씩은 책을 읽거나 귀동냥으로 들어 알게 되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모르고 읽으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조금이라도 알고 읽으니 읽는 맛이 난다.


또한 그동안 저자가 다룬 작가 중 유명을 달리한 작가들 있다는 걸 볼 때 만감이 교차했다. 김윤식 교수는 그렇다고 해도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이외수 작가가 고인이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도 문학촌을 운영하고 TV에 나와 싱거운 농담에 서투른 살림 솜씨를 보여주곤 했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중 김윤식 교수의 대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저자가 취재했을 때만 해도 신인 작가였던 백수린 작가를 많이 칭찬했고, (우리나라 소설은) 장편보단 단편을 더 많이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에겐 둘 다 뜬금없긴 했다. 내가 기억하는 작가는 성석제나 김영하 정도까지만이다. 나에게 백수린 작가는 아직도 젊은 작가인 줄만 안다. 그런데 돌아간 김윤식 교수가 입에 올렸다면 그도 더 이상 신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동안 내가 참 무심하고 맹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장편보단 단편이라니. 내내 들어왔던 건 우리나라 작가들은 단편만 쓰려고 하지 장편은 잘 안 쓰려고 한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작가의 안일함과 게으름을 꼬집고 나아가서는 인문정신이 없음을 비판했다. 장편도 뭔가 인문학적 지식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단편 가지고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점점 소설을 읽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세상에서 정말 장편이 의미가 있는 건가 회의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알지 않은가. 단편이 장편 보다 쓰기 어렵다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 김윤식 교수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도 없다. 앞으로 소설은 어디로 갈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난 이 책의 백미는 맨 마지막 챕터인 저자 자신의 공간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 나는 저자 후기가 왜 이렇게 길지 했다. 그런데 자신의 사무 공간을 조근조근 설명하는데 빠져들었다. 기대하지 않은 관음증을 만족시켜 준다. 내가 애초에 이런 책을 좋아하는 것도 작품 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고 돌려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관음증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어느 때부턴가 아주 훌륭한 인테리어 감각을 자랑할 목적이 아니면 자신의 공간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은 이제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진으로까지 찍어 보여주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저자가 더 친근하고 뭔가 초대받은 느낌이다.


기자가 작가 얘기하면 폼 나 보이긴 한다. 이 책을 펴낼 때만 해도 저자의 자제가 군 복무 중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훨씬 지났으니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을 것이고, 저자도 은퇴를 했거나 준비 중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 본격 작가로의 저자의 활약상을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이런 기자가 있어 한국문학은 외롭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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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신병이 다 그렇긴 하지만 망상장애가 그렇게 무서운 병일 줄 몰랐다. 그로 인해 가정이 어떻게 해체되고 고통을 당하는가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문제작이다. 영화는 2년 전 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있는 모녀를 그린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때부턴가 엄마는 망상장애가 시작된다. 이제 겨우 18세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 안타까운 건 엄마의 망상장애 때문에 시험을 못 치르고, 결국 엄마는 집을 나와 차안에서 지내고 나중엔 홈리스까지 된다. 또한 딸의 졸업식에 와 졸업식을 망치고 모녀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그래도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고 엄마를 끝까지 돌보려고는 딸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다. 


영화에서 보면 소녀를 좋아해 껄떡대는 남자친구가 나오는데 잘 생기긴 했지만 알콜중독이다. 힘든 상황에 있는 주인공에게 남자친구는 적잖은 힘과 위로가 되기도 한다. 나는  관객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좀 생뚱맞긴 하다. 알콜중독이라고 해서 다 인간말종은 아니겠지만 저렇게 잘 생긴대다 어떻게든 자신에게 도움이 되려고 하는 친구를 마다하기는 쉽지 않다. 과연 이 둘의 관계가 앞으로도 건전하고 희망적으로 갈 수 있을까엔 아무래도 긍정할 수 없다. 여자친구로 인해 술을 끊게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주인공이 남자친구로 인해 같이 알콜중독이 될 수도 있다. 너무 앞서갔나? 암튼 영화가 나쁘진 않지만 즐겁고 재미있는 영화를 찾는다면 권할만 하지는 않다. 선택을 잘 하라는 말 밖엔.


내가 좋아하는 박서준도 나오고 나름 영화에 대한 평점이 높아 기대를하고 봤는데 가끔은 평점 높다고 다 좋은 영화는 아니다. 아쉽게도 이 영화가 그렇지 않나 싶다. 물론 영화는 코믹과 감동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고 노력했다. 그 점은 인정한다. 대사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극한직업>을 만들었던 이병헌 감독이 아이유까지 영입해서 만들었다. (아이유는 쉽지 않은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잘도 친다. 지금은 예전만 같은 인기는 아니지만 확실히 타고난 엔터테이너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의욕이 어떠했을지 짐작은 간다. 


하지만 2시간이란 러닝 타임이 좀 지루하다 싶다. 1시간 반이나 못해도 40분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어느 싸이트엔 영화 넘 재미없다는 혹평으로 도배를 했는데 사실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해피엔딩이 허락되는 장르가 있다면 그건 스포츠 영화가 아닐까. 러닝타임 내내 힘들게 경기를 지켜 봤는데 엔딩조차도 진 걸로 한다면 욕 먹는 일 아닐까. 감동을 못 주면 신파고 그런 영화가 해외에 나가서 대~한민국을 좀 외쳤다고 국뽕이 되는 건지 그건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애초에 신파라고 생각했던 건 홈리스들에 관한 이야기가 전면에 깔려 그런 거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알고보면 하나같이 구질구질하지 않은가. 그런 그들이 홈리스 월드컵이란 실제 있기도 한 대회에서 판판히 지다가 천신만고 1승도 아니고 한 골을 집어넣고 난리부르스를 쳤으니 그게 공감을 못 얻은 거겠지. 더구나 평소 장애인 스포츠에 관심도 없던 관객들이 홈리스 스포츠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나마 박서준과 아이유가 나온다니까 기대를 했겠지. 영화가 좀 전략적이지가 못해서 그렇지 개인적으론 아주 망한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재밌는 건 홈리스 월드컵은 일반 축구의 3분의 2 정도다. 출전 선수도 팀당 다섯이던가 하고 축구장은 물론 골대도 작다.꼭 소인국에 온 것 같다. 실제로 2010년도에 우리나라가 출전했고 그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무엇보다 이때를 깃점으로 우리나라에선 더 이상 노숙자란 표현을 쓰지 않고 홈리스라고 고쳐 부르기로 했단다. 이 영화는 무려 그 사실을 알리고 있다. 그렇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않았을까. 


볼거리도 있다. 특별히 모델로부터 시작한 박서준이 역시 슈트빨 휘날리는 장면이 끝내준다. 물론 박서준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도 되는 장면 넣어 시간만 끈다고 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가혹하지 않나? 영화 말미에 박서준이 그런 멘트를 날리더라. 우리는 기록을 남기러 왔는지 기억을 남기러 왔는지 선택해야 한다(나 뭐라나)고. 뭔가 멋 있는 말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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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4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24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4-06-24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많이 보십니다. 저는 극장에서 두 시간짜리 보려면 몸 컨디션이 좋아야 가능하더라고요. 영화 보는 게 피로해서요. 넷플릭스가 그런 점에서 좋아요. 중간에 한 번 쉬면서 보면 피로하지 않거든요. 누워서 볼 수 있는 것도 장점. 저도 이번 해에 영화를 많이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래도 하나만 택하라면 영화보단 책이에요. 책이 훨씬 편해요,

stella.K 2024-06-25 12:1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긴 하죠? 그래도 극장 의자가 비행기 의자만큼이나
편한 구조라고 들은 것도 같은데 그건 고사하고 관람료가 비싸서도
더 못 가겠더군요.
맞아요. 집에서 편하게 보는 게 최곱니다. 놓치거나 이해 안 되는 장면
있으면 다시 리와인드해서 볼 수도 있고.
영화전문 채널도 있지만 그거 안 본지도 꽤 됐어요.
요즘엔 보다가 잘 때도 많아서. ㅎㅎ
책이 젤 좋지요. 책을 볼 수 없으면 영화라도 보자는 주의라
가급적 보려고 하는데 많이 봐 봤자 일주일에 두 편이네요.^^

물감 2024-06-25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캐스팅이 중요합니다. 재미가 없을지언정 비주얼 보는 맛이라도 있어야 하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박서준... 아이유....

stella.K 2024-06-25 12:14   좋아요 1 | URL
에이~ 캐스팅 잘했다고 만회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관객들 눈이 얼마나 높은데요. 다행히 이 영화는 못해도 중간은
하지 않았나 싶어요. 이 영화에선 박서준이 눈가의 살도 약간 쳐지고
이 배우도 이제 나이를 먹는가 보다 싶더군요.
아이유는 아주 많이 좋아하는 건 아닌데 싫어하기도 쉽진 않죠. ㅋㅋ
반듯하고 예쁘잖아요.

근데 물감님 ㅋㅋㅋ 너무 좋하하시는 거 아니예요? ㅋㅋㅋ

물감 2024-06-25 16:53   좋아요 1 | URL
과거형입니다. 학생때의 아이유를 좋아했어요ㅋㅋ 그리고 저는 아이유 드라마 하나도 안 봤어요~ 그냥 노래나 가끔 듣는정도ㅋㅋ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 - 시나리오에서 소설까지 생계형 작가의 글쓰기
김호연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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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김호연 작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고, 그는 <망원동 브라더스>로 시작해서 (이 작품은 무려 문학상 수상작이다. 대상은 아니지만.) <불편한 편의점> 시리즈로 입지를 굳히더니 지금은 내놓는 작품마다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되기까지 작가의 녹록지 않은 과정을 쓴 책이다. 뭐랄까, 그 일에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짠 내 나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글쓰기 어디까지 해 봤니? 난 여기까지 해 봤다.~"라고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게 싫지 않다. 왜? 그맘 아니까~! 읽다 보면 나의 지난했던 삶과도 일부 오버랩도 돼 절로 배시시 웃게 된다. 내가 글쓰기에 관한 책을 조심스러워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수도 있는데 이런 책 읽고 자꾸 추억만 떠올리면 뭐 하겠는가? 글을 써야지, 글을.

이 책의 시작은 작가가 2001년 압구정동의 모 영화사에 면접을 보러 간 것으로 시작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작가의 시작은 시나리오부터다.) 나는 속으로 '이 작가 21세기를 나름 화사하게 열었군.' 했다. (원래 21세기는 2000년이 아니라 2001년이라 하지 않던가) 나는 그보다 조금 앞선 20세기가 서서히 저물어 가던 무렵 교회에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A4 2장 반 분량의 짧은 대본을 쓰는 것이다. 그렇다고 평소 내가 대본 쓰는 일에 관심이 있었냐면 그건 전혀 아니다. 작가가 꿈이긴 했지만 그 시절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시 아니면 소설이지 희곡은 비인기 종목이었다. 그런 내가 이 해 보지도 못한 일에 차출(?)된 건 김호연 작가도 책 말미에 그런 글을 썼지만 작가의 마감 때문이다.

나 같이 의지가 박약한 사람은 아무리 작가를 꿈꾸더라도 쓰기기는 하지만 항상 중간도 못 되어 중단하곤 한다. 나중엔 그런 내가 꼴 보기 싫어서 작가고 뭐고 꿈도 꾸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일이 내게 주어진 것이다. 물론 싫으면 안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것처럼 좋은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마감을 몸에 익힐 수가 있지 않은가. 작가와 작가가 아닌 것의 차이는 마감과 원고료 아니겠는가. 이 일을 수락만 하면 난 이 두 가지를 다 가질 수가 있다. 채찍과 당근 모두를. 막상 해 보면 현기증 난다. 내가 이걸 언제까지 완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하기도 싫다. 꼭 외줄 타는 느낌이다. 발 하나만 삐끗 잘못 내디디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그래서 초기 땐 쓰다가 안 풀리면 컴퓨터 모니터를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끼곤 했다. 어쨌든 그렇게 난 마감을 몸에 익혀 갔다. 글 쓰는데 요령도 생기고. 하지만 그건 탄탄대로가 아니라 고난의 행군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난 주일학교 교사이기도 했다. 교사 첫해에 알았던 제자 녀석 하나가 나의 일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사실 작가라고는 하지만 주일학교 교사의 업무의 연장이라 글만 쓰지는 않는다. 쓴 글이 연극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도와주면 나야 고맙지.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때 누구와 닮았다 했는데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어니'역을 맡은 디카프리오를 연상시킨다.) 그해는 어니가 고3이 되던 해라 처음에만 도와주고 수능 보고 다시 오겠다며 떠나갔다. 난 녀석이 없어도 그럭저럭 잘 해 나갔다. 그러다 정말 대학생이 되어 짠하고 다시 나타났다. 근데 웬걸, 머리 좀 커졌다고 오자마자 하극상을 부리는데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었다. 물론 구체적으로 말은 하지 않겠지만 상황이 또 그렇게 굴러갔던 것도 있었다. 결국 나와 어니는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말이 좋아 떠난 거지 사실은 쫓겨났다.

난 그저 그곳에서 그 일을 하면서 마감을 몸에 익히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조직에서 경질될 일인가? 나락은 그렇게 오는 거구나 했다. 쪽팔리기도 하고. 많이 울었다. 이후 뭘 해야 하나 막막했는데 어느 날 신문에 아기 주먹만 하게 조그만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모처에서 수강생을 모집한다는데 그곳이 창작을 가르치는 곳이다. 내가 웬만해서 뭘 배우러 다니는 스타일이 아닌데 그땐 왠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등록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더니 그곳은 내가 있어 온 곳하곤 사뭇 다른 곳이었다. 80년 대 한창 뜨거웠던 시절 광장에서 젊음을 보내고 지금은 한산한 중노년을 보내고 있는 마치 신선이 사는 곳 같았다. 내가 그분들을 이제야 만나다니. 그분들을 사부로 모시고 나는 생애 처음으로 짧지만 공부다운 공부를 했다. 돌이켜보면 이게 다 어니 녀석 덕분이다.

그 후 난 1년 반 만에 조직에 복귀했다. 그럴 경우 보통은 그곳을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글을 썼다. 그런 걸 보면 내가 거기서 아직 할 일이 남았나 보다. 그렇다고 그때부터 내가 꽃길만 걸었냐면 그렇지도 않다. 지면상 역시 다 밝힐 순 없지만 난 그때부터 최근까지 이런저런 글을 쓰면서 황당하고 기가 막힌 일들을 보고 당해왔다. 뭐 그렇다고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좋고 즐거운 일도 있었다. 무슨 일이든 영욕은 항상 붙어 다니는 것 같다. 과부 사정 과부가 안다고 책을 읽으니 어찌나 공감되는 부분이 많던지 작가 인생 다 그렇구나 싶다. 노는 물이 크든 작든. 오히려 지금은 그 황당하고 기가 막힌 일들을 글로 쓰지 못해 근질근질할 뿐이다.

누가 그랬다잖는가, 앞으로 부자의 개념이 바뀔 거라고. 가진 것이 많은 게 부자가 아니라 자기 서사가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될 거라고. 작가 역시도 자기 서사를 갖고 있을 때야 비로소 진짜 작가가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건 작가 생활 한두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물론 일반인들은 잘 모르니까 작품이나 상으로 작가를 알아보는 것이고 그래서 작가들은 공모 당선 하나에 울고 웃는 거겠지. 또한 서사란 늘 승리만을 다루지 않는다. 그러면 독자들은 오히려 식상해 한다. 쓰라린 패배도 보여줘야 그제야 비로소 그들도 우리처럼 하며 동질성을 느끼고 끄덕한다. 그러니 작가의 서사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말하자면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옛 추억을 폴폴 떠올리는 건 좋지만 한 프로젝트를 끝날 때마다 짐을 쌌다 풀기를 반복하는 걸 보면서 말이 좋아 작가고 프리랜서지 보따리 장사가 따로 없다 싶다. 누가 작가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하는가. 사람들은 대체로 작가라고 하면 되게 멋있게 생각하는데 어느 작가의 말처럼 작가는 그냥 집필노동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 그런 의미에서 솔직히 누가 이 일로 벌어먹고 살겠다고 하면 도시락 싸 들고 말리겠다.

그래도 그나마 글 쓰는 환경은 조금 나아졌나 보다. 옛날에 글 쓴다면 무조건 짐 싸서 절로 갔는데 지금은 심사만 잘 통과하면 문학촌이나 레지던스를 이용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게 좀 부럽긴 하다. 중국은 나라에서 작가한테 월급 준다던데(정말?) 우리나라 작가들은 나라에서 월급 받는 것과 레지던스를 이용하는 것 어느 것을 더 선호할지 궁금하다. 둘 다면 좋겠지만 그 둘엔 장단점이 있지 않을까. 아무튼 이것도 글을 쓰니까 노려 볼 수 있는 거지 일반인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래서 이것 역시 글쓰기 어디까지 해 봤니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리고 책을 읽다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서점 매대에 자신의 책이 깔리고 안 깔리고는 그 작품의 인기의 척도와는 상관없는 마케팅의 영역이다. 즉 출판사 측에서 일정 기간 매대 이용료를 내고 자기네 책을 진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이건 내 생각이지만 정말 작가로 인정받으려면 적어도 다섯 작품 정도는 내봐야 하지 않을까. 겨우 한 두 작품 낸 걸 가지고 뭐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다섯 작품이 시중에 돌다 보면 어느 땐가 누군가에 의해 입소문이 나게 되어 있다. 한 작품이 조명을 받으면 초기작이 다시 재조명 받기도 하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건 작가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책에서 작가는 '연적'이 망했다고 죽상을 하던데 물론 다소의 시차는 있겠지만 이 작품에 대해 내가 알아 본 바에 의하면 작품이 독특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그래서 나도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면 '연적'부터 읽으려고 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이 책부터 읽게 되었다. 어쨌거나 옛 추억과 더불어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 준 작가에게 감사를 전한다. 전작은 모르겠고 기회 있는 대로 주요 작은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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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06-21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겪은 글쓰기 역정을 죄송하지만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특히 어니와의 서사에는 소리내어 웃었어요. 참 재미있게 잘 쓰시는 재능이 있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24-06-21 10:08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런가요? 사실 그거 서사가 좀 디테일한데 여기에 주저리 밝히기는 뭐해서 그 정도 썼어요. 재미있으셨다니 제가 오히려 고맙죠. 원래 현실은 비극이고 과거되면 희극이고 그런거 아닌가요? ㅎㅎ 고맙습니다. 무플이어서 좀 뚱했는데. ㅋ 오늘도 덥네요. 브랑카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물감 2024-06-21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글은 책 리뷰라기보다 스텔라님 에세이 같은데요 ㅋㅋㅋ 어떤 분야든지 마감과의 싸움을 하는 분들은 존경스럽습니다. 물론 거의 대다수 직장인들이 월말에 시달리긴 하지만요 ㅋㅋㅋㅋ
작가란 직업은 집필노동자! 너무 확 와닿습니다. 그럼에도 써야만 한다는 걸 스스로 알아서 기꺼이 몸과 영혼을 내어주고... 언젠가 스텔라님의 늦깎이 데뷔소식이 들려오면 좋겠어요 ^^ 요 알라딘 마을에서 제가 좋아하는 몇없는 문체의 소유자 십니다 ㅎㅎㅎ

stella.K 2024-06-21 20:58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아니 제 문체가 어떤데요?
이거이거 두근거려 오늘 밤 잠이나 잘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ㅋㅋㅋ
그렇지 않아도 문체가 매끄럽지 않아서 고치고 있는 사이 물감님 오신겁니다.
물론 다시 읽으셔도 뭘 고쳤다는 거야? 하실 거 같아서 감히 다시 읽어 달란 말은 할 수는 없구요.

글치 않아도 물감님 리뷰도 살짝 봤는데 공감이 넘사벽이더군요.
거기다 이달의 당선작도 되시고.ㅎㅎ
사실 리뷰를 가급적 쓰려고 하는 것도 마감이 있는 느낌이 있어서죠.
그 느낌 뭔지 알죠? ㅎㅎ
아, 그리고 잘 모르시겠지만 저 9년전쯤에 이미 책 냈답니다. 독서에세이로.
자랑하는 건 아니고, 서점 매대 이야기도 그때 첨 알았죠.
저도 몰랐을 땐 김호연 작가와 같은 생각을 했더랬죠.
그때 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는 거구나 했습니다.
암튼 꿀꿀했는데 고맙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희선 2024-06-22 0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일 학교 교사도 하셨군요 지금은 어떠신지... 그때 아이들 만나서 즐거웠을 것 같기도 합니다 처음에 이름이 잘 알려지는 사람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이름이 알려지는 사람도 있는 듯합니다 그만두지 않고 썼기에 그랬겠네요 김호연 작가도 다르지 않겠습니다


희선

stella.K 2024-06-22 11:38   좋아요 1 | URL
제가 그 시절 그다지 좋은 교사는 아니었죠. 그래서 그만두려고 했는데 그 일에 붙들려서 그래도 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션찮음에도 제법 아이들이 절 많이 따랐습니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죠. 그래도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교사를 잘 할 수 있을까 그건 여전히 의문이예요. ㅋㅋ

페크pek0501 2024-06-24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편한 편의점>을 오디오북으로 완독했어요. 재밌더라고요. 끝까지 듣게 될 만큼.
그런데 불편한 편의점2는 포기했어요. 투까지 완독하고 싶을 만큼의 매력은 없었서요. 딱 그냥 베스트셀러 같았어요.

stella.K 2024-06-25 12:3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럴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좀 청개구리과인지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잘 안 읽게되더라구요.
왜 베스트셀러인가 알아 볼 필요도 있을텐데.
암튼 저도 언니처럼 일단 1권을 읽어보고 더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겠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