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롱이가 죽던 날은 8월 15일이었다. 3일 뒤는 오빠의 8주기였다. 오빠 떠나고 해마다 이맘때면 마음이 싱숭생숭했는데 올해는 다롱이 보내느라 그럴 여력도 없었다. 그리고 내일은 내 생일이면서 다롱이가 세상을 떠난 지 꼭 한 달이 되는 날이다. 뭔가 절묘한 트라이앵글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해 질 무렵과 아침에 눈을 뜨면 녀석이 많이 생각이 난다. 그러다 한 번씩 예상치 않은 곳에서 훅하고 눈물샘을 사정없이 치고 들어오는 때가 있다. 어제 같은 경우 TV를 보고 있는데 교회 성경공부 리더님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평소 웬만해서 전화를 잘 안 하시는 분인데 요즘 내가 그분께 소위 말해 자꾸 삐대니까 뒤늦게 뭔가 심상치 않다 싶어 전화를 하신 것이다. 9월이 되면 성경공부가 다시 재개되는데도 이달 한 달은 안 나가겠다고 하기도 했으니. 사실 평소에도 그분과 내가 딱히 맞는 스타일도 아니다. 지난 6월 말에 봄 학기를 마치면서 다롱이가 얼마 안 남은 걸 아시는데도 방학 동안 어떠냐고 묻지도 않았던 게 내심 섭섭한 것도 있다. 어제 통화하다 다롱이가 죽은 걸 그제야 알렸는데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내 울면서 전화한 건 아니고 리더님이 나름 재밌으신 분이라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이미 건드려진 눈물샘은 오늘까지도 잘 수습이 되지 않는다. 


든 자리는 표가 안 나도 난 자리는 표 난다고 이제 집을 나가나 들어오나 다롱이를 빼고 모든 것을 봐야 한다는 건 생각 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 주엔 모처럼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을 가는 길에 작년까지만 해도 녀석의 털을 깎으러 갔던 개 미용실을 지나쳐야 했다. 그곳엔 성실하고 싹싹한 청년 둘이 일을 한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다롱이를 픽업했는데 작년부턴 하지 않았다. 이유는 다롱이가 너무 노견이라 픽업 과정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는 수없이 엄마가 다롱이를 데리고 가서 털을 잘랐다. 이제 더 이상은 여기를 올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게 참 쓸쓸했다.


글쎄, 오지랖일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몇 블록만 더 가면 다롱이가 다녔던 병원이 있는데 웬만하면 가서 녀석의 부고와 그동안 잘 돌봐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은데 아직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녀석은 비교적 건강체여서 사는 동안 병원에 갈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 재작년인가 췌장염에 걸려 걱정했는데 그곳에서 잘 고쳐서 한동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다롱이가 죽기 한 달여 전부터 엄마와 내가 번갈아가며 약을 지어갔다. 벌써 안 다닌 지 한 달이 됐으니 그곳 원장도 지금은 대충 짐작은 하고 있을 거다.


한 가지 위로라면 반려견의 13%만이 가족이 보는 앞에서 죽는다는데 다롱이는 그 상위 13% 안에 드는 운 좋은 강아지가 되었다는 정도. 요즘엔 길을 걷다 누군가의 반려견을 보면 얘도 13% 안에 들게 될까 걱정 반 의심 반이다. 사람도 늙고 병들면 버림 당하기도 하는데 하물며 개라고. 걱정이다. 반려동물 시장은 해마다 늘어나는데 사람의 의식은 그것을 쫓아가질 못하고 있으니. 얼마 전 TV에서 반려견들이 어떻게 버려지고 있는가에 대한 실태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좀 충격적이었다. 개 농장의 실태야 제쳐둔다고 해도 소위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유기견 보호소도 돈은 돈대로 받고 개 도축업자와 결탁해 결국 마지막에 가는 곳은 보신탕집이었다. 예쁘다고 물고 빨 때는 언제고 자신이 키웠던 개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저리도 태평하게 잘 사는 건지 모르겠다. 새삼 놀라운 건 아직도 개를 먹는 인종이 있다는 게 놀랍다. (그렇게 안 되니까 하는 소리지만) 난 능력만 되면 수명이 1, 2년 밖에 안 남은 개를 돌보며 살고 싶다. 물론 힘들고 슬프긴 하겠지만 그도 익숙해지면 삶과 죽음이 서로 먼 것이 아니고 공존하고 순환한다는 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


내 막내 조카는 개를 너무 좋아해 대학도 관련 학과를 전공하고(물론 수의학은 아니다) 한동안 애견 카페에서 일하다 최근 무슨 유기견 보호소에서 정식 직원으로 일을 하게 된 모양이다. 녀석은 이미 집에 두 마리의 개를 물고 빨며 키우고 있다. 언니는 저러다 둘 중 한 마리가 죽으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한다. 그렇지 않아도 한 마리는 노견으로 아직은 잘 버텨주고 있기는 한가 본데 내년을 장담하지 못한다. 그랬을 때 녀석이 슬픔을 잘 감당할지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 걱정 하지 않는다. 녀석은 그곳에서 일하면서 삶과 죽음을 객관적으로 보게 될 것이고, 어차피 감당해야 할 것이라는 걸 안다면 잘 감당할 것이다.


다롱이가 죽고 화장을 위해 업체에서 오길 기다리고 있을 때 엄마는 평소 성격대로 다롱이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녀석을 돌보느라 늘어놨던 여러 잡동사니 물건들을 치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그러는 엄마가 속으로 편치 않았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저리 치우나 싶었는데 당신은 당신대로 그렇게 하는 것이 다롱이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다롱이가 떠났다고 꼭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녀석이 떠나고 우리 집은 깨끗해졌다. 물 낭비도 없어졌고 무엇보다 녀석이 건강할 땐 하루 세 번씩 (어떤 땐 네 번도) 싸대는 똥을 치울 일도 없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린 다롱이의 보호자였구나 싶다. 연극이 끝나면 배우는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듯이 다롱이가 무지개 너머로 갔으니 보호자의 역할도 끝난 것이다.


대신 집안은 다소 적막해졌다. 이러다가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면 집안 분위기가 순간 달라질 거라는 건 안 봐도 비디오다. 하지만 상상하지 않기로 한다. 다롱이가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다음에 키울 개를 상상한단 말인가. 다롱이가 이 사실을 알면 섭섭해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린 이제 더 이상 개는 키우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어느 정도 열어놓고 있긴 하다. 가끔은 뜻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다롱이를 키우기도 했고. 그런 운명이면 모를까 일부러 인위적으로 인연은 만들지 않을 거다.

그리고 얼마간은 8월이 되면 오빠보단 다롱이를 더 많이 생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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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14 2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일 미리 축하드립니다. 사람이든 반려견이든 비워있는 자리는 언제나 크게 느껴지더라구요 ㅜㅜ 보고싶더라도 힘내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21-09-15 12:2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시간이 지나야겠죠. 개니까 사람 보단 길지 않을 겁니다.
힘내겠습니다.^^

서니데이 2021-09-15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려동물이 떠나고 나면 상실감을 느끼는 분들 많다고 해요.
가족처럼 애정을 나누고 오래 살았으니까, 가족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을 거예요.
생각해보니 stella.K님도 9월 생일이시지 했는데, 오늘이었네요.
생일 축하드립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일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stella.K 2021-09-15 12:30   좋아요 1 | URL
기억하고 계셨군요. 고맙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개는 가족처럼은 지낼 수 있어도 가족은
아니지 않을까 싶어요. 그냥 우리는 다롱이를 보호해줬지
하면 그렇게 많이 슬퍼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다롱이 때문에 울어도 넘 과도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래도 가끔 이런 글을 남기는 건 앞으로 펫로스를 경험하게될
사람들이 있다면 한번쯤 공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죠.ㅋ

좋은 날 보내고 계시죠, 서니님.^^

희선 2021-09-15 0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 님 오늘이 태어난 날이군요 축하합니다 다롱이가 떠나고 한달 뒤였군요 지금도 조용한 집안이 이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 많네요 처음에는 좋아도 시간이 흐르면 귀찮아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좋을 텐데... 사람은 자기만 생각할 때가 더 많은 듯합니다

stella.K 님 오늘 더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stella.K 2021-09-15 12:44   좋아요 1 | URL
조금 허전하긴 하죠. 그래서 대신 TV를 일부러 틀어놓기도 하죠.
작년에 팬더믹 땜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답니다.
그러다 올해 어느 정도 완화가 되고나니 키우던 반려동물이 어느새 골칫거리가
됐다는 보도를 언젠가 들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버려질 동물이 더 많겠죠?
그렇게 버리면 재앙으로 돌아 올 텐데 걱정이어요.

고맙습니다. 희선님도 좋은 하루되십시오.^^.

책읽는나무 2021-09-15 0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 해 생일은 좀 울적한 생일이 되시겠군요?ㅜㅜ
그래도 내일 미역국 챙겨 드시고 힘 내세요~
저도 미리 축하 드리겠습니다♡

stella.K 2021-09-15 12:45   좋아요 2 | URL
앗, 그러게 말입니다.
작년엔 끊여 먹었던 것 같은데 올핸 아시다시피 제가 이렇게 됐고
또 추석이 코 앞이라 건너 뛰어야할 것 같아요.
그래도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책나무님.^^

니르바나 2021-09-15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생일 축하합니다.
아직은 다롱이와 이별이 힘들겠지만
힘내세요. 아니 벌써 어리잖아요.^^

stella.K 2021-09-15 20:11   좋아요 0 | URL
다롱이 이후의 시간이 쌓이면
또 그만큼 다롱이에 대한 기억이 멀어지겠죠.
그래서 시간이 약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누가 생일이라고 깜짝 선물로 케잌을 보냈는데
이런 기억이 쌓이면 오늘도 좋은 날로 기억될 겁니다.
생일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페크pek0501 2021-09-18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개를 포함해) 죽고 이게 세상이지 싶습니다.
죽음은 삶의 일부라잖아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받아들이는 마음자세가 필요할 듯합니다.
저 역시 죽음은 그냥 죽임일 뿐, 삶의 연장선에서 보지 못하겠더라고요.

법륜 스님의 책을 보니 부모님이라도 돌아가시면 잘 가시라 하고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생전에 자식으로서 최선을 다하면 될 뿐, 너무 슬퍼하면 안 좋대요. 하늘로 떠나다는 이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기 때문인가 봐요. 그래도 님처럼 다롱이를 기억해 주는 건 좋은 것 같아요. ^^

stella.K 2021-09-18 18:39   좋아요 0 | URL
그런 사람이 간혹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 속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도 좀 덤덤하면 좋을 텐데.
다롱이는 정말 복 많은 녀석이죠. 살았을 때도 그렇고
죽어서도 지를 못 잊어하는 주인이 있으니.ㅋㅋ
이번 명절은 녀석 없이 보내는 첫 명절이 되었어요.
 
마음을 건다 - 정홍수 산문집
정홍수 지음 / 창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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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신형철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에서 정홍수의 <소설의 고독>을 거의 극찬하다시피해서 혹했다. (나는 일단 제목에 '소설'이 들어가면 눈이 간다. 실제로 소설은 많이 못 읽지만. 병이다.) 글 잘 쓰기로 유명한 그가 부러 자신의 책에 소개할 정도면 그냥 못 지나 차지 싶었다. 근데 엉뚱하게도 잔뜩 눈독 들인 책은 사지 못하고 이 책을 사고 말았다. (이렇게 된 건 중고샵 때문이다. 급한 대로 이 책을 사 보자 했다. 막상 사 놓고 이게 뭔가 얼떨떨하긴 했다. 풋) 그런 걸 보면 난 아무래도 책보단 작가에게 마음이 갔던 것 같다. 아마도 작가의 직책이 문학 평론가라서 그랬던 것 같다. (요즘엔 평론가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해 보니 아주 모르는 작가도 아니었다. 오래전, 고 김소진 작가를 기리는 <소진의 기억>이란 책이 있다는 걸 알았는데 그 책의 동인 중 한 사람이었다. 만날만한 사람은 만난다더니 이런 식으로 인연을 맺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이 내내 평론집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산문집'이다. 하지만 평론집으로 읽어도 그렇게 크게 속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사실 산문은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색깔을 달리하기도 하는데 평론가가 쓰면 평론적 산문이 된다.


저자의 이력이 독특하다. 1996년 <문학 사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평론의 길을 걷지만 그의 본업은 편집자다. 나는 평론가라면 대학교수들이 하는 줄 알았더니 편집자도 평론을 한다. 새삼 나의 시야가 완전 좁았구나 했다. 편집자라면 문학 생산의 현장에 있는 사람 중 한 사람 아닌가. 대학교수들이 쓰는 그것과는 좀 결이 다를 것 같다. 좀 더 생생하고 핍진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책을 읽다가 저자는 문학(야)사에 나올 법한 장면을 펼쳐 보인다. 저자가 80년대 중후반 첫 직장으로 민음사에 들어갔을 즈음 다른 동료 직원들은 퇴근하고 홀로 사무실에 남아 교정을 보고 있을 때 글로만 접했던 문인을 봤다고 한다. 바로 서정인 선생이다. 당시 선생은 <세계의 문학>에 '달궁'을 연재하던 하고 있었는데 사무실로 쭉 밀고 들어오더니 도트프린트에 연재된 <달궁> 원고를 건네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때 저자는 사무실 한쪽에서 '아!'했단다. 왜 안 그랬을까. 연예인 좋아하는 사람은 뒤통수만 봐도 "꺅!" 소리 내는데 책 좋아하는 사람이 작가 보고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겨우 '아!'라니. 역시 문학 종사자들은 너무 점잖다. 근데 저자가 오래된 얘기를 하고 있긴 하다. 도트프린트. 이게 뭔가 순간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뿐인가, 김수영문학상 심사가 있는 날엔 김우창, 유종호, 황동규 선생이 사장실에 있었는데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나 베니어판에 귀를 쫑긋하고 들었단다. 또한, 중앙일보 기자였던 기형도 시인은 당시 민음사 편집장이었던 이영준 형과 서로 친구라며 그 인맥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때는 또 성석제 형(이란다)은 소설은 엄두도 못 내던 때(!)라 어쩌다 시를 한편 완성하면 이영준 형에게 팩스로 보내 강평을 들었다니 과연 우리가 알던 그 성석제가 맞나 싶다. (대작가분껜 좀 죄송하지만 문득 깎아놓은 밤톨이 생각났다.ㅋ) 무엇보다 사무실 저자의 뒷자리엔 그 무렵 신문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로 나선 김소진이 도시락을 싸 들고 출근해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내가 다닌 편집 학교'중에서) 이런 글을 읽는 건 나에겐 큰 기쁨이다. 그림으로 남겨도 좋을 것 같(은데 난 재주가 없)다.


또한 저자는 뒤에 황석영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난 황석영의 소설을 두어 권 읽은 것 같긴 한데 별로 좋은 줄 몰라 더 이상 읽지 않고 있다. 민망한 일이다. 황석영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기란 쉽지 않은가 본데 사람이 덜 됐는가 보다. 그런데 루카치가 그런 말을 했단다. 소설은 '남성적 성숙의 형식'이라고. 그러면서 저자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황석영을 떠올렸다 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황석영은 남자답게 선이 굵은 작가가 아니던가. 문제는 난 그런 남성적 카리스마가(보통 이걸 허세라고도 하지) 강한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다. 그래서 <대화의 희열 3>에 첫 번째 게스트로 나왔을 때도 조금 부담스럽게 봤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 우리 문학사에 중요한 작가임엔 틀림없다. 나중에 그의 자전 <수인> 정도는 읽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저자에겐 좀 미안한 얘기지만 막상 읽어보니 과연 신형철 작가가 극찬할만한가, 물론 그가 소개한 <소설의 고독>은 어떨지 몰라도 이 책은 적어도 내가 볼 때 문체는 좀 기대만큼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읽다가 포기하게 되지는 않는다. 난 분명히 책을 완독했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보면, 주로 소설과 영화에 대한 단상을 썼는데 소박하면서도 진심이 느껴졌다. 그러면 읽히고, 읽어주고 싶다. 문체가 꼭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지금까지 평론가들은 그다지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주례사식 평론을 한다는 말일 것이다. 지금은 그 말에서 얼마나 많이 멀어졌는지 모르겠다. 

얼핏 듣기론 외국은 평론가와 작가가 거의 견원지간이라고 들었다. 외국 평론가들은 작가의 작품을 혹평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양진영에 상향평준화를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과부 상정 과부가 안다고 서로 밀어주고 땡겨주는 온정주의가 작용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예전엔 일반인이 책을 사는데 평론가들의 입김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블로그나 SNS의 발달로 평론가들은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게다가 지금은 일반인들도 서평집을 내는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서평과 평론은 엄연히 다르다. 서평은 일반인들도 할 수 있지만 평론은 일반인이 할 수 없다. 그건 좀 더 전문적인 영역이고, 많은 식견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 물론 분명 오늘날 독자의 책 선택에 평론가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을 분석하고, 의미 있게 하고, 기록하는 일이 그들의 일이 아닐까. 지금 우리가 환호해 마지않는 작가들이 있지만 그들의 작품은 앞으로 1년 뒤 또는 3년 안에 우리의 관심에서 완전히 살아질 확률은 매우 높다. 물론 부지런해서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하면 아주 잊히지는 않을 수도 있다. 문학도 일종의 산업이라 새로운 신예 작가가 나오면 그쪽으로 눈을 줄 수밖에 없다. 그때도 누군가는 어떤 시기에 어떤 작가가 어떤 작품을 썼으며, 어떤 문학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상기시켜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평론가의 할 일 아니겠는가. 서평가들은 오직 그 책에 관해서만 말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는 옛 문학가들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것 같지만 사실은 평론가의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요즘의 평론가들은 좀 다르긴 한 것 같다. 그런 인식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로서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독자와의 소통을 시도하는 평론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들은 더 이상 동굴 안에 있지 않다. 예전에 누가 평론집을 읽었던가. 그건 정말 문학을 지극히 사랑하거나 학자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이 아니면 읽지 않았다. 그들의 그런 자구적 노력이 아직은 다소 미미해 보이긴 하지만 언젠가 일반 독자들도 본격 문학 평론집을 가지고 토론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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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13 2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평론집의 느낌이 있는 산문집인가 보네요. 서평과 평론의 차이를 하나 알고 갑니다~!!

stella.K 2021-09-14 11:25   좋아요 1 | URL
저도 예전엔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생각해 보니 대충 그렇겠더라구요.^^

페크pek0501 2021-09-18 1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석영 작가 하면 삼포 가는 길, 이란 단편이 유명하죠. 국어교과서에도 나왔을 것 같아요.
제가 읽은 건 두 권으로 된 <무기의 그늘>이었는데 그야말로 남성적으로 느껴지는 소설 같아요. ^^

stella.K 2021-09-18 18:45   좋아요 0 | URL
지나치게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작품은 전 별로 더라구요. ㅎㅎ
근데 황석영은 정말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더군요. 부럽기도 하고.ㅋ
 



슬의생2는 시즌1에 비하면 확실히 좀 김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건 아무래도 작가에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작가가 원톱이다. 물론 서브 작가가 있겠지만 메인 작가가 그것도 의학드라마에서 한 명이 쓴다는 건 아무래도 그렇지 않나.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잘 쓴 대본을 연출이 말아 먹을 수는 있어도 못 쓴 대본을 연출이 살리는 법은 없다고. 드라마의 답은 사랑이라고 결국 슬의생 5인방도 사랑찾기로 귀결나는건가 싶기도 하다.


이 드라마가 성공적이지 못하는 것은 또 있다. 드라마가 너무 밝다. 드라마는 언제나 인간 내면을 보여줘야 하는데(그런 점에선 '낭만닥터 김사부'는 탁월했다) 거의 대부분 치료 가능한 케이스를 보여준다. 뭐 그만큼 현대 의학이 좋아지고 있으니 굳이 실패한 치료를 보여줄 필요도 없고, 밝은 명랑 드라마니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환자와 보호자들은 하나 같이 의사에게 배꼽인사를 한다. 마치 그들이 생명을 주관하는 신인 양. 게다가 슬의생 5인방뿐 아니라 등장하는 의사들은 하나 같이 친절하고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나라도 그런 의사를 만나면 배꼽인사를 할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라 그렇지 우리가 배꼽인사를 하고 받고하는 관계는 아니지 않나? 인터넷의 발달로 의사를 만나기 전 자신의 병을 조사하고 진찰 때 의사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나 안 하나 간을 보지 않나.


물론 나는 지금까지 열정적으로 병원을 다녀보지 않아 의사들이 실제로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대체로 친절하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도 보인다. 일종의 방어막을 치는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환자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혹시 치료 가능한 병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런 것 아니겠는가. 물론 너무 빼면 능력없는 의사로 보일 수도 있으니 어느 정도로 나를 보여줄 것이냐가 고민이긴 할 것 같다. 그러다 환자가 고비를 넘기고 회복하면 그들의 어깨는 한 없이 높아진다.    


또한 의사는 살인적인 업무량을 소화해 내기도 한다. 환자 보고, 학생 가르치고, 논문 쓰고 이것만으로도 머리가 빠질 것 같은데 율제병원은 사랑의 병원이긴 하다. 과부 사정 과부가 알고, 전장에서 피어나는 우정이나 사랑도 남다르긴 할 것이다. 원래 드라마에서 사랑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보여지고 있는데 여기선 5인방이니 사랑도 다섯 가지로 보여줘야 한다. 다섯 가지로 보여주려니 작가도 머리 깨나 아팠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들 5인방의 사랑을 평해 볼까 한다. 개인적으로 김준환과 익순과의 사랑은 가장 드라마에 익숙한 사랑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 이들의 연기는 나름 좋다. 하지만 그냥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정도다. 


그런데 비해 안정원 커플은 개인적으론 가장 짜증 난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라면서 선생과 학생의 관계를 영원히 떨쳐버리지 못할 것만 같다. 조금 편하게 봐주면 오누이 관계 정도? 안정원이 한때는 사제가 되려는 마음도 품었으니 몸에 벤 경건의 모습도 있을 텐데 작가가 그런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하긴 초반에 사제인 안정원의 형을 보면 이건 그냥 시트콤이다. 안정원의 상대(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누가 모범생 아니랄까 봐 안경 쓰고 눈만 껌벅거리는 이미지는 끝까지 개선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뭐 병원이란 특성도 있으니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진짜 사랑하는 사이라면 대등한 관계를 보여줘야 하는데. 드라마를 생각한다면 사랑 타령은 접고 원래 마음 먹은 사제의 길로 가는 것으로 좋을 것 같은데 그럴 가능은 1도 없지? 이래서 결론을 알 것 같은 명랑 드라마가 힘들다고 하는가 보다. 이대로 언제고 시즌3을 한다면 난 안 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장 이상적인 건 역시 익준과 송화 커플은 아닐까. 가랑비에 옷 젖듯 친구로 지내다 사랑으로 발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뜨겁게 연애하다 결혼하는 거 난 별로다. 결혼해서도 뜨거울 수는 없다. 자고로 결혼은 친구처럼 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둘은 대학 때 사랑을 할뻔 하지 않았나. 그걸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후에 이루게 됐으니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신뢰고 친밀함이다. 문제는 익준도 그렇고 송화도 그렇고 흔한 인간형은 아니라는 것.  


엉뚱한 건 양석형-추민아 커풀이다. 이미지에 맞게 곰 같은 사랑을 한다. 특히 11회를 보다 나도 모르게 심쿵한 장면이 있었다. 둘이 영화를 보고 거리를 걷는데 늘 질문이 많은 추민아가 역시 또 질문을 한다. 왜 고백하지 않냐고. 그러자 석형이 꼭 고백을 해야하는 거냐고 되묻는다. 그럼요 한다. 그러자 석형이 넌 내가 무섭지 않냐고 묻는다. 내가 너의 생각과 달리 나쁜 사람이면 어쩔거냐고. 그러자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팔자려니 하죠. 그리고 덧붙이기를, 걱정 없다고 자신이 좋은 사람이니까라고 말한다.


그걸 보는데 새삼 난 누구의 좋은 사람이 되본 적이 있던가 싶다. 누구든 사랑(또는 고백)의 흑역사가 있지 않을까. 즉 고백했다 까이는. 왜 사랑은 꼭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물론 성공하면 좋긴 하지만 실패할 것이 두려워서 시작조차 못하는 사랑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물론 실패하면 엄청 아프긴 하다. 하지만 빨리 실패하면 그만큼 빨리 일어나지 않을까. 난 그런 방법도 있다는 걸 누군가를 몹시 좋아만 하고 고백하지 못했던 그 젊은 날엔 생각도 못했다. 또한 아무리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해도 고백을 해 보는 것과 하지 않는 건 다르지 않을까. 그건 어쩌면 상대 보다는 내 자신을 위해 해 보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데미안>의 알 깨기 같은 거라고 하면 너무 뻔한 대답일까? ㅋ 


어쨌든 추민아가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의외의 반전이고 웬만한 자신감이 아니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사랑이어도 자기 자신 이상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래서 설혹 그 자리에서 석형의 고백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얼마 후엔 마음을 추스르고 또 자신의 삶을 살아내지 않을까.동시에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다.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얼마나 자기 자신과 상대를 옥죄는 것인가. 모르긴 해도 우리가 익준 같은 완벽한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가장 인기있는 사람이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 유머 감각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유머 감각은 장착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물론 노력하면 되지만. 하지만 그게 실제 사람 선택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얼마나 인간적이냐, 따뜻한 마음을 가졌느냐, 얼마나 예의 바른가 뭐 이런 거 아닌가. 그렇다면 석형이 같은 인간형을 만날 확률이 익준 보다는 좀 더 높지 않을까.         

       

분명 시즌2는 1에 비하면 쳐지긴 하지만 슬의생이 추구하는 중심 주제까지는 깎을 생각은 없다. 뭐 병원이 실제로 그렇게 인간적인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는 이상을 담기도 하지 않은가. 드라마 때문에 율제병원 같은 곳이 앞으로도 많아진다면 그도 좋은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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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11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즌 1은 잠깐 본것 같은데 시즌 2는 본적이 없네요 😅 확실히 시즌 1이 인기 있으면 시즌 2는 전편보다는 힘을 못받는거 같아요 ㅜㅜ
이런 이상(?)적인 병원 모습이 일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stella.K 2021-09-12 12:25   좋아요 1 | URL
형만한 아우가 없는 거죠.
저는 2를 그냥 습관성으로 봤습니다.
2를 본 건 이 작품이 처음이지 싶어요.
예전에 <보이스>를 재밌게 봐서 2를 한다기에
기대를 가지고 봤다 그냥 접었죠.
좋다고 하는데 전 좀 질리더라구요.
그런 장르를 즐기지 않는지라.ㅋ

페크pek0501 2021-09-12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는 시간 맞춰 보기가 어려워 주말연속극만 충실히 보게 됩니다.
의학드라마는 한석규 님이 나오는 것 있었잖아요. 그거 흥미롭게 봤었어요.
오늘 주말드라마인 KBS의 광자매는 괜찮았어요. 끝날 때가 되어서인지 잘 짜여져서 지루한 줄
몰랐어요. 어떤 날은 시시했거든요. 후속 드라마의 광고를 본 듯해요. 몇 회 안 남은 듯.
슬기로운~ 도 봐야겠군요. ^^

stella.K 2021-09-13 14:45   좋아요 1 | URL
ㅎㅎ 낭만닥터 김사부요. 맞죠? 조기다 썼는데...ㅋ
그건 시즌2도 좋았어요. 형만한 아우 없다는데 그 작품은 예외더군요.
사실 드라마는 시간도 많이 들죠. 영화는 앉은 자리에서후딱 보는데.
저는 주로 다시보기로 해서 제가 보고 싶을 때 보는데
그것도 시간이 꽤 들더군요. 덕분에 영화를 많이 못 봐요.
영화든 드라마든 부지런하지 않으면 못 보는 것 같습니다.ㅠ

희선 2021-09-13 0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학드라마인데 여기 나오는 사람 다섯 사람 사랑 이야기도 다 있군요 그런 거 쓰려면 쉽지 않겠습니다 어느 한사람이 아닌 다섯 사람이 중심인물이기도 해서 다들 사랑도 하게 하는가 보네요

드라마에 나오는 의사, 간호사는 다 좋아요 실제 그런 사람은 없어 보이는데... 제가 잘 모르는 거고 어딘가에는 있을까요 병원에도 거의 안 가면서 의사, 간호사 말을 했군요


희선

stella.K 2021-09-13 14:52   좋아요 1 | URL
ㅎㅎ 건강하시군요. 병원에 안 가면 좋은거죠.
의사나 간호사는 기본적으로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적어도 제가 만난 사람들은 그랬어요.
그리고 아픈 사람 앞에서 불친절할 수는 없겠죠.

의학드라마는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더구나 5톱으로 그들 각자의 캐릭터와 사랑을 쓰려니 힘들겠죠.
이우정 작가 다음엔 누구하고 같이 쓰면 좋겠어요. 안쓰럽더군요.
전 이상하게 드라마든 영화든 감독이 누구냐 보다 작가를 먼저 보게
되더군요.ㅋ
 

처음 이 드라마가 시작됐을 때 생각 보다 별로란 생각이 들어 안 보려고 했다. 그러다 자꾸 좋은 반응이 올라와 다시 열심히 챙겨 봤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8, 9회를 연속으로 보게 됐는데 처음 보는 듯한 장면이 의외로 많아 빨려 들어가듯 봤다. 


슬의생 5인방의 나이는 40세로 설정되어 있다. 결혼을 하지 않거나 돌싱으로 설정한 것도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그런데 참 옛날의 40과 지금의 40은 확실히 다르긴 하다. 옛날의 그 나이면 애가 둘 셋쯤 있고, 돈 버느라 허리가 휘고, 드라마에서도 조연 정도로만 나올 텐데 이 드라마에선 40이 이렇게 풋풋할 수 있다니 새삼 놀랍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동창을 세월이 흐른 후 같은 종합병원에서 일하게 됐다는 설정은 행운이라면 행운 아닐까. 나도 종종 예전에 같이 싸우고 복닦거렸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 일해보면 어떨까를 생각해 본다. 그때가 다시 온다면 싸우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잘 할 것 같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일뿐이고 다시 만나면 다시 싸우고 복닦거리겠지? 그래도 다시 회춘한 느낌은 들 것이다. 그런 실험을 했다 잖은가. 몸은 70(?)대인데 20대 옷과 화장을 하고 그때 그 시절을 재현한 환경에서 살게 했더니 진짜 20대로 돌아간듯 세포가 젊어졌다고. 


아무튼 오늘 다시 봤더니 슬의생 5인방은 서로 먹는 것을 엄청 챙기더라. 서로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하고,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하고, 간식 먹자고 정원에서 모이고. 먹는 게 뭐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병원도 전쟁터라면 전쟁터 아닌가.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상대가 그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해방감을 줄 것 같다. 더구나 집 떠나 혼자 자취하는 사람들은 더하지 않을까. 집이 아니면 혼자 밥 먹는 걸 어색해 하는 나는 오늘 유난히 그 점이 눈에 확 들어왔다.  

다음에 언제고 10회를 하면 이어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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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5 2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국 드라마 넘 ㅎ 잘만들죠 넷플릭스에서도 한드는 스토리 영상 연기 모두! 완성도가 높아서 놀랍니다. 아나토미 미드 보다 슬생에 한 표! 🖐

stella.K 2021-09-06 18:38   좋아요 1 | URL
크~ 저는 아직 넷플릭스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답니다.
그건 인터넷으로 보는 거 아닌가요? 뭐 지상파나 종편도 괜찮은 거
많이해서 그거 소화하기도 벅차서리.
제가 이렇게 구식이랍니다.ㅋ
최근에 <괴물> 봤는데 끝까지 쫄깃쫄깃한게 잘 만들었더군요.^^

희선 2021-09-07 0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건 한두 사람만 튀지 않고 다섯이나 앞에 나오는군요 종합병원이니 여러 과가 있기는 하겠습니다 나이도 거의 비슷하고 친구기도 한 사람이 함께 일해서 괜찮을 듯하네요 의사는 제대로 먹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로 그걸 알아서 먹는 걸 잘 챙기나 싶기도 합니다

stella.K 님 밥 잘 챙겨드세요


희선

stella.K 2021-09-07 18:40   좋아요 2 | URL
어렵죠. 그도 그렇지만 쉴 때 쉬지 못하고 병원 튀어 들어가는
거 보면 짠해요. 그런 거 보면 의사라는 직업이 뭐 좋은가 싶기도 하지만
그런 의사가 있어 세상은 돌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희선님도 잘 챙겨 드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1-09-07 13: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같이 밥먹자는 말. 그 자체가 따스함을 전해 주어서 저도 그런 말을 즐겨 듣고 즐겨 쓰고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

stella.K 2021-09-07 18:43   좋아요 1 | URL
참 인간적이죠. 사람들은 공수표만 날리는 그런 인사가 뭐가
좋냐고 하지만 그중에도 지키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죠?
그런 인사조차도 안 하는 만남도 많잖아요.ㅋ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 선선하다. 정말 가을을 얘기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얘기하면 여름이 섭섭하다고 하지 않을까. 엄밀히 말하면 지금은 늦여름이다. 적어도 9월 첫주 정도까지는. 난 그렇게 우겨 볼란다.


어떻게 8월을 보내는지 모르겠다. 읽기만 하고 리뷰를 쓰지 못한 책이 점점 쌓이고 있다. 특히 상금이 꽤 되는 독후감 대회가 오늘이 마감인데 그것도 결국 패스하고 말았다. 가끔은 책은 너무 좋은데 리뷰를 못 쓰겠는 책이 있다. 출전하려고 읽은 책이 딱 그런 책이다. 그래도 나중에라도 짧게 써야지.


지난 주 금요일엔 백신을 맞았다. 백신 접종이 처음 시작됐을 때만해도 나도 맞아야 하나 떨떠름 했는데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보면서 맞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막상 백신을 맞으러 가 보니 의료진들의 수고가 말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벌써 6개월 이상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긴 한 팀이 계속 이러고 있는 걸까? 몇팀으로 나눠서 당번제로 하지 않을까? 나를 문진했던 담당자에게 넌지시 물어 볼껄 그랬다. 당시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당연히 몇 개월째 이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비록 1차긴 하지만 맞고 보니 국민으로서 할 도리를 다한 것 같기도 하고, 이젠 누구를 만나도 좀 안심하고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오늘 보도를 보니 젊은 사람들은 건강한 탓에 면역반응을 겪을 수 있고 때문에 2차에서 노쇼가 대량으로 속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던데 공익을 생각해서 많이들 참여해 줬으면 좋겠다.


올 8월은 아무래도 조금은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다롱이를 보내고 3주차다. 다롱이를 보낸 첫 주는 정말 많이 울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는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사람 같지 않은가 덤덤해지는 마음이 오히려 다롱이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나도 별 수 없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그리고 이번 주부터는 그동안 미루었던 일상 기도를 다시 시작하려고 했다. 원래 기도를 그다지 충실하게 하는 편은 아닌데다 여름은 더워 못하고 게다가 올여름은 다롱이가 떠나지 않았던가. 그래도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도 되고 아침 저녁으론 제법 선선하니 다시 해 보는건데 웬걸 어제 시도했다 혼쭐 나는 줄 알았다. 시작부터 눈물이 줄줄 나 앞으로 당분간은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언제쯤이면 일상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다롱이가 아직 살아있을 때 난 녀석을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물론 살려 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았다. 그저 다롱이의 하루만을 위해 기도했을 뿐이다. 잘 먹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것과, 잘 잘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외엔 무엇을 더 기도할 수 있을까. 내가 다롱이를 위해 이렇게 기도하게 될 줄은 몰랐고 거기에 그토록이나 많은 눈물이 필요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마당에 또 울어야 한단 말인가. 


결국 또 어디서 숨었던 눈물이 나타난 건지 모르겠다. 날씨까지도 도와주시고. 나의 몸과 마음은 아직 안정을 되찾을 마음이 없는가 보다. 잠도 아주 못 자는 건 아니지만 잘 자는 것도 아니고. 딱히 뭘 해야겠다는 의욕도 없다. 그런데 참 웃기지. 벌써 1년째 앓고 있는 나의 족저근막염이 다롱이의 죽음 직후부터 서서히 낫고 있는 느낌이 든다. 물론 찬바람이 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걸 보면 녀석이 세상 떠나 가면서 위에 계신 분께 간청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렇게 8월의 마지막 밤이 저물어 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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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31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헬기 착륙 시동 중~~~~~~~
  ___   ___
     ̄ ̄ ̄干 ̄ ̄ ̄
        _皿__    ( ̄ ̄)
      /∧_∧ \_// ̄
     /  (・ω・`)  / 
      L_O¶O_ノ】__/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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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__( )
(=•ㅅ•=)
(💓⊂)∫
U--U착지 완료 ^ㅅ^

stella.K 2021-09-01 11:33   좋아요 1 | URL
ㅎㅎㅎ 대~에박! 멋짐 폭발! 이걸 어떻게,,,?!!!
여튼 고맙슴다. 리스펙트!^^

2021-08-31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1-09-01 11:36   좋아요 1 | URL
맞아요. 갱년긴 것 같습니다.
빨리 세월이 지나가야겠죠.^^

희선 2021-09-01 0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월초도 좀 더운 적 많았는데, 그래도 저는 구월이 오면 바로 가을이다 생각해요 2021년에는 비가 와서 구월을 서늘하게 시작했네요 다롱이와 산 시간이 그리 짧지 않았으니 지금도 생각나고 눈물도 나겠습니다 stella.K 님이 아팠던 데가 좀 나았다니 다행이네요 정말 다롱이가 저기 위에 부탁했나 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고 조금 웃으시면 좋겠네요


희선

stella.K 2021-09-01 11:40   좋아요 2 | URL
예전엔 9월이면 완전 가을이었죠.
요즘엔 10월도 낮엔 약간 덥더라구요.
전 갠적으로 5,6월과 9, 10월이 좋더라구요.
이제 다시 좋은 계절이 오고 있어요.
백신도 맞았겠다 그동안 집콕만 했는데 슬슬 밖으로
나가고 싶어져요.
요즘엔 덜 아프니까 좀 살겠더군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읽는나무 2021-09-01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보슬비님 키우던 강아지 보내시고 한동안 울적해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쉽게 잊혀지지 않겠지만...좋았었던 추억을 되새기시길요^^
다롱이가 스텔라님 족저근막염 가지고 갔나 보군요?참 충성스러운 강아지였네요.~
그리고 백신 맞으셨군요?전 담주 화요일 백신을 맞으러 가는데 부작용 있을까봐 조금 걱정이 앞서네요.여튼 국민들 백신도 무사히 다 맞아서 내년은 좀 숨쉬기 편한 세상이 되었음 싶네요^^

stella.K 2021-09-01 19:25   좋아요 1 | URL
그걸 펫로스증후군이라고 하죠.
저도 기억나요. 가끔 알라디너분들 그런 소식 전하는 걸
보곤하는데 그때마다 전 얼마나 진심을 담아서 위로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슬프고 허전한데...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은 왜 그렇게 하나 같이 우울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가겠죠.
위로의 말씀 고맙습니다.

백신은 걱정 마시고 맞으세요.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백신을 독려하는 정부의 노력이 눈물겹기도 하잖아요.
도와주자구요.ㅎ

페크pek0501 2021-09-04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1차 접종은 했는데 2차 주사 맞고 2주 뒤부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2차는 후유증이 좀 있다고 하네요.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빨리 접종을 했으면 좋겠어요.
족저근막염, 저도 있었는데 괜찮아졌어요. 설거지할 때 푹신한 것 밟고 하면 도움이 되는 것 같고
슬리퍼나 샌들은 안 좋습니다. 저는 운동화로 바꿔 신은 뒤 괜찮아진 것 같아요.
구두는 결혼식에나 갈 때 신어요. ㅋ

stella.K 2021-09-04 19:29   좋아요 0 | URL
엇, 그런 거여요? 저는 1차만 맞아도 몇 퍼센트의 예방 효과가 있다고
들은 것 같아 안심하고 어제 오랜만에 지인을 잠깐 만나고 들어왔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하지만 괜찮을 거예요. 지인이 2차까지 다 맞은 분이라. ㅎㅎ

글치 않아도 싱크대 개수대 앞에 매트 깔아놨습니다.
작년 가을에 일단 다롱이를 위해 쓰고 그후 제가 쓰겠다고 산 건데
녀석이 가고 없으니 온전히 제 차지가 되었습니다. 훨씬 편하죠.
지금도 조금 아프긴 한데 예전만큼은 아니어서 이제 나으려나 보다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구두 안 신은지가 꽤 되요.

어제는 다롱이가 드디어 꿈에 보였는데 좀 싱싱하면 좋을텐데
꿈에서 조차 늙어서 비실대고 있더군요.
이제 안 울려구요. 잘 있겠죠. ㅠ